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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만뢰단맥]분기점 - 만뢰산 - 태령산 - 문안산 - 봉화산 - 양천산 - 불당산 - 합수점
2015년 2월 8일, 22일 (2일간)
요물혼자
○산행코스 : 봉항리 - 만뢰지맥 분기점 - 만뢰산 △612.2- 갈미봉 -쥐눈이안부 - △465.5 - 태령산 △450 8부능선 - 동골고개(313번
도로 - △330.9 - 문안산 △450 - 잣고개(21번국도) , 6.25참전비 - 봉화산 △411.2 - △346.3 - 한티고개(17번국도) - 파
재고개 - 그럭재임도 - 양천산 △350.2 - 주라골임도 - 느랭이도로(3번군도) - 불당산 △246.5 - 여천리 - 원리버스정류
장
○산행거리 : 접근거리 1.36km+ 단맥 약 26km = 27.3km
○산행시간 : 2월 8일 12시 50분 - 15시 40분 [ 2시간 10분]
22일 8시 50분 - 20시 05분 [11시간 15분]
종주에필요한 5만분의1 지형도 도엽명 : 진천 청주 금북만뢰단맥이란? 금북정맥이 안성 칠장산에서 분기하여 흐르며 서운산에서 성거산으로 가면서 엽돈재에서 남쪽으로 약0.3km 올라간 천안시 입장면 북면 진천군 백곡면의 삼면 지점에서 동남방향으로 금북만뢰지맥이 분기하여 흐르다가 진천군 백곡면 진천읍 천안시 병천면의 삼면 지점에서 금북만뢰지맥은 남쪽으로 흘러가고 한줄기를 동쪽으로 분기하여 만뢰산 정상을 치닫는다 진천군 백곡면과 진천읍의 경계를 따라 萬筋산(△612.2)-갈미봉-쥐눈이안부-△366봉(3.8)- 胎靈산(450)어깨-동골도로(230)에서 진천읍을 가르며 동진한다 △330.9봉(3/6.8)-文案산(410)을 지나-17번국도 잣고개(190, 2/8.8)로 내려선다 凉泉산(△350.9)-주라골임도(210, 1.5/16)를 지나 3번군도 느랭이고개(170, 2.4/18.4)로 내려선다 [신경수님 글]
峰火산(△411.2)-△346.9봉(2.3/11.1)에서 진천군 문백면을 가르며
한티고개(230)-7번군도 파재고개(270, 1.9/13)-그럭재 임도(210, 1.5/14.5)-
佛堂산(△246.8, 2.2/20.6)-188봉-허고개(70, 4.2/24.8)-중부고속도로를 지나 논두렁 밭두렁으로 이어져 만뢰산이 발원지인 성암천이 미호천물이 되는 곳(50, 3.5/28.3)에서 끝이나는 약28.3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산행지도]
일요일 할 일마져 어중간히 마치고 늦게 봇짐을 메고 영등포에서 기차를 타고 천안역에 내려 병천행 버스를 타고 병천에서 내린다.
일요일이라선지 병천 아우내장처에 시끌벅적하고 순대국집마다 아우성이다. 내가 어릴 적 병천 아우내 장터는 1일과 6일로 정해
진 장날만 벅적거렸는데 지금은 주말에 인파가 몰린다.
병천에서 봉항리가는 버스가 있는데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택시를 타고 봉항리 풍산공원을 바라보며 소류지 못가 내려야 했
다. 길따라 오르다 보면 창고같은 건물 몇 동 안으로 들어가 오른쪽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야 했다.
건물안에는 인적이 없는걸로 보아 휴일이어서 인가 보다. 고도를 높이며 오른다. 펑퍼짐한 묘를 지난다. 잔설이 아직 녹지
않은 산길이기도 하다. 무척 날씨가 춥다. 얇은 장갑으로 스틱을 잡은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손이 시리다. 바람도 세차게
풀어 갈길을 막고 얼굴을 때린다.
내원참~~
[보탑사 갈림길과 봏항3리 마을회관 갈림 길]인 만뢰지맥길에 닿으니 날아갈 듯 강풍이 세다. 아직도 겨울인가 보다. 생거진천
의 엽돈재로 가는 갈림 길 이정목을 지나 상암천의 발원지인 샘 갈림길을 지나 만뢰산성의 안내도와 넓은 공터의 헬기장이 있는 정
상에 도착한다.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 산 2-10번지의 [만뢰산성의 유래]를 보면 진천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옛지명은 만노산, 이흘산이었고 충남북
의 도계에 위치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김유신 장군의 부친인 천안 김서현 장군이 이곳에 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약 3,980척
(1300m)이고 성안에 샘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라고 한다.
현재 샘터와 신라시대의 토기 조각이 발견되고 있는 이곳은 백제의 침입을 방어하였던 신라 서북국경지대의 요충지였다고 한다.
인근 비선골에 보물 제404호인 '백비'와 최근 건립된 최초의 목탑 '보탑사'가 있다
[삼각점]이 툭 튀어 나와 있고 만뢰산의 정상석과 안내도가 정상에 있는 산정에 올라서니 600미터의 고지가 이렇게 높을까라는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진행하게 될 산줄기]와 보탑사가 있는 보련골의 연곡지와 김유신장군 탄생지인 태령산과 알 수 없는 산들이 하늘아래 가득하다.
두 번째 오른 산정은 진천군과 병천면의 경계에 서다.
[만뢰산에서 안내도가 있는 뒤 동쪽으로 진행하다 보면 정자를 지나게 된다]
만뢰산 119신고안내의 위치 번호판을 지나 이정목인 연곡저수지의 갈림길을 지난다. 햇빛이 이정목에 쏘듯이 비친다. 이곳이 갈미
봉인가 보다. 연곡지가 보련골의 삼각형 모양으로 나뭇가지 사이로 조망되는 산행으로 동쪽으로 계속 진행된다.
만뢰산 119 신고지점 제5지점을 지나.
보탑사 3.9km, 백곡구수리의 이정목을 지난다.
묘지와 철탑을 내려서면 넓은 길을 만나는 생거진천의 태령산 (태실)3.0km, 동골수녀원 3.9km, 쥐눈이마을 1.2im, 김유신장군
3.7km의 이정목을 보면 이곳의 지명이 역사적 흔적이 있음을 알게 된다.
태령산으로 진행하게 된다.
생태공원의 갈림길을 지나
[삼각점 465.5]을 찍고 태령산으로 향한다. 김유신 장군의 흔적을 찾고 싶어서다.
춥기는 여전하고 진천에서 온 듯 산님들이 몇몇이 짝을 지어 태령산으로 오른다. 혼자인 내가 쓸쓸해 보이는 듯 가끔 말을 건넨다.
'춥지요' ~~
그렇게 쉬어가며 오르막을 오르는데 사진기가 없어졌다. 어데다가 놓친걸까~~ , 이미 태령산의 8-9부 능선쯤 왔는데, 그냥 아
쉬운 마음으로 되돌아 간다.
가도 가도 없고, 삼각점 풀섶에 숨어져 있다. '태령산은 내게 인연이 아니었는가 보네'하는 내 혼자말이 자꾸 되새김하면서 산은
고도를 낮추며 큰공장이 보이는 동골고개의 313번 도로로 내려선다. GMC의 진천공장 입구였다.
날씨도 추운데 동골고개의 절개지를 오를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수가 없나 보다. 히치를 하
려 고개에 서 있으니 날아갈 듯 춥다.
걸어서 지구마을까지 내려간다. 다행히 마을에서 나오는 승용차를 타고 사석리에서 내려 천안까지 직행을 타고 천안에서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온다.
그냥 할 말이 없으면 에휴~~ 오늘 반쪽도 못한 산행에 끝이 나고 교통이 안 좋은 동골고개를 언제나 갈 수 있으려나,
얼마 후.
설 명절 연휴가 끝나는 마지막 일요일 애가 기숙사로 향하던 중 동골고개까지 데려다 준다. 일찍 출발하려 했으나 어제 부터 내리
는 비로 인해 끝이길 기다리며 늦게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달려 진천ic를 빠져 잣고개를 지나 동골고개에 도착했다.
[동골고개] 313번도로
비는 여전히 이슬비로 바뀌어 내리고 스산한 날씨에 절개지 오를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보탑사 가는 길로 내려와 사면을
치고 올랐다. 이슬비가 나무에서 뚝뚝 떨어지고 안개가 자욱해 구름속 같은 산길로 이어진다.
철탑을 지나
둥그스런 삼각점 전위봉을 지나고 철탑 아래를 지난다.
삼각점 [△330.9봉]이다. 가지고 있는 지도의 고도와 25m나 차이가 나는 것은 왜일까. 삼각점의 번호, 진천 311를 표기하고 있
다.
석물이 근사한 묘를 지나고
또 묘를 지난다.
그친 비에 흐릿한 날씨는 가리운 구름이 걷힐 줄 모르고 흐릿한 산길마져 낙엽에 쌓이고 주의하여 방향을 마추며 진행해야 한다.
바쁜 발걸음에 발을 묶는 길마져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봉분이 다 허물어진 쌍묘를 지나
너른 길로 내려와 너른 길따라 가다 삼거리를 지나
무궁화 표지석을 지나 너른 길이 끝난 지점에서 산으로 오른다. 문안산을 오르게 되는 것.
자욱한 구름은 걷히질 않고 조망이 막힌 산속은 볼것이라곤 나무와 수북히 깔린 낙엽과 안개뿐이다. 빈 안내판이 문안산 오름길
에 덩그라니 서 있고
원형철조망이 길목을 막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문안산 정상 가까이 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뢰에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이곳 저곳
에 서 있어 조심스럽고 무서워서 더 이상 그곳에서 사면을 타고 고도를 낮추며 문안산을 내려선다.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이 내 옷깃에 스미고 문안산 원형철조망에 스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듯 '무서운 고요함'이라고 할까. 그런 기분
이 문안산으로 기억되리라.
검은 돌들이 땅위를 덮고 있는 너덜지대를 지나 근사한 묘지군을 내려 선다.
'一觀三思' 한번 보면 세번 생각하라. '三思一言' 세번 생각하고 한번 말하라는 옳은 말이 석물에 쓰여있는 묘지군을 지난다.
문안산 오르는 차도를 지나
해발 195m의 잣고개로 내려선다.
잣고개에는 주유소와 문안산 쉼터란 식당을 지나 도로따라 진천쪽으로 내려가면 6.25 참전비를 만나러 간다.
[6.25 격전지비]가 있는
6.25 격전지비는 6.25 전쟁 당시 수도사단장이었던 김석원장군이 이끄는 부대가 남침하는 북한군을 맞아 문안산과 봉화산 등에서
치열한 전투를 하여 적을 섬멸시키므로써 임시 수도인 대구시 방어에 큰 역할을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특히 문안산 전투에서
는 많은 아군이 전사했는데 조국을 지키려던 애국용사들의 숭고한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1961년 6월 25일 진천중학교에 충혼위령
비를 세운 것을 1976년 이곳에 6.25격전지 반공투사 위령비로 건립한 것이랍니다.
6.25 격전지비뒤 산으로 든다. 즐비하게 있는 묘를 지나 왼쪽으로 정자가 보이는 봉화산으로 오른다.
[봉화산 △411.2 봉] 정상에 넓다. 삼각점과
150년 된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고 6.25 전쟁당시 치열했던 상흔이 나무에 남아 있으니 마음이 아프다는 생각이 든다.
꼿꼿하게 모진 풍파와 전쟁의 상처속에 살아 남은 나무를 보면서 잠시 봉화산 정상에서 쉬어간다.
[봉화산 삼각점과 산불초소]에 전쟁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은 우리나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지리산 빨치산 아지트가
제일 먼저 떠오르고 철원 노동당사는 아직도 건물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곳뿐이랴. 내가 겪지 못해 뼈저리게 느껴지지는 않
는 것을!!
봉화산에서 이런저런 생각도 잠시 헬기장을 지난다. 지뢰에 위험경고판을 알리는 안내판에 곳곳에 세워져 있는 길을 지난다.
원형철조망이 가야할 길을 막고 있기에
원덕리 미내마을인 듯 작은 마을위로 내려섰다가 산으로 오르고
삼각점이 없는 억새가 빈공터를 채운 △346.8 봉에서 삼각점을 찾는다. 이곳저곳 묵은 억새를 헤치고 뒤집어 보아도 없기에
돌아서 나와
솔향기가 듬뿍 코를 찌르는 숲을 지난다. 이럴 때 산에 왔음에 제일 행복하다.
묘를 지나
17번 4차선 도로가 오천터널 아래를 지나는 [한티고개]로 내려선다.
한티고개에는 서낭당의 유래와 한티재 서낭당에 대한 이야기가 붉은 안내판에 적혀있는 진천문화원장의 글, 진천읍과 문백면의
경계는 계속 이어지고
반가운 선답자의 분홍표지기가 나풀거리는 산을 오르고 묘를 지난다.
경주 김 묘지군을 지나
산을 파헤쳐 만든 흔적이 저 깊은 절벽아래 도로가 되는 [파재]의 7번군도로 내려서서 파재마을로 가는 입구 앞에서 묘지가 있는
산으로 올라야 했다.
[진천쪽으로 이어지는 7번군도가 구불구불] 시야가 트이긴 해도 아직도 흐릿한 조망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나무에 걸친 흰비닐이 띠를 두루고 있는 산길따라 가면 길이 된다.
묘지를 지나
공장에서 소음이 크게 들리는 산길을 철조망 따라 진행하게 된다. 잡목이 앞을 가리고 경사진 길에 묵은 나무들이 쓰러져 있고
얼굴에 스치는 가시나무들이 가득한 산길도 모자라 철조망 또한 장애물일 수 밖에.
철조망이 쳐진 묘지도 있고
분홍표지기는 나무에 나풀대며 이리 오라는 듯 손짓을 하니 이 길을 가신 님 또한 반가우리, 그럭재 임도였다.
묘를 지나
송림이 자라고 있는 녹색빛 저 언덕위에 있는 빨간 지붕의 정자가 아주 작게 눈에 들어오니 '양천산' 가까이 오고 있음에 힘을 낸다.
몇 년전에 불탄 산이 그 자리를 소나무로 채워져 길도 막혀 있다. 한쪽은 소나무가, 한쪽은 잡목숲으로 길이 없기에 가도 가도
길이 없는 곳을 가기에 시간은 가고 그 자리에 서 있는 듯 했다.
이 어린 소나무가 자라 몇 년후면 이 길을 갈 수 있을까하는 의심마져 들고..
지나온 길과 산들이 저 구름속에 있는 산들이 정렬하고
힘겹게 올랐다. 불탄 산으로 알려진 양천산에 나무가 비어 있는 넓은 산정에 정자가 있고 시야가 트인 곳이지만 보이는 것은 안개
가 산을 메우고 있다. 삼각점은 판돌불명으로 읽어 볼 수도 없고
양천산 정상석에는 해발 350.2m의 충청북도 진천군으로 그럭재마을과 안능마을로 갈림 길을 표기하고 있다.
그럭재마을로 가는 길로 산줄기가 이어지는 산릉으로 가야 한다. 편의상 너른 길따라 가다가 산으로 들기도 하고 또 너른길로
내려왔다가 산으로 들기를 반복하면서
콘테이너 박스같은 창고앞에서 너른길로 내려선다. 양천산 등산 안내도가 있는 길 앞을 지나오자 주라골임도임로 포장된 도로이
다.
주라골임도로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발아래에 있는 산길을 따라 걷고
옥성임도의 삼거리인 이곳에서 망설이다 임도따라 걷다가 산으로 든다. 공예촌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흰비닐이 띠를 두른 나무
를 따라 가면 길이 되는 산길이다.
그 길이 또렷한 길은 갈길이 아니요, 분홍빛 표지기가 나풀대는 희미한 곳이 길이 되는 산길도 있고 빨간 노끈이 띠를 두른 나무가
있는 곳이 길이 되기도 한다.
느랭이도로를 내려가기 위해 파헤친 길을 걷고 넓어진 길따라 내려가다
텅빈 저 산에서 다진 산 언덕에는 무엇이 들어설란고.
또 한 쪽으로 눈을 돌리면 산을 통째로 들어낸 낭떠러지의 끝은 빈 터로 또 무엇이 들어설란고. 도로를 건너 산으로 든다.
묘를 지나고 또 지나고 또 지난다.
묘아래 파란지붕이 공장인 듯하고
가까이 다가간 공장위 산길에 철조망이 쳐져 있는 길따라 간다. 두 개의 묘지가 있는 곳에서 철조망은 녹색철망으로 바뀌어
녹색철망을 따라간다.
날이 어두워져간다. 서둘렀지만 해를 넘기고 저녁이 온다. 문백면을 지나 오창 청원군 경계인 산줄기에 섰고 불당산에 도착하
게 된다.
[불당산]의 정상석이 나즈막하고 금북정맥의 산줄기라 쓰여있다. 정상석 옆에 삼각점 진천 319 번호를 달고 246m의 고도를 표기
하고 있는 불당산!!
생각보다 작은 산에서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지도를 꺼내여 지명을 알고 싶은 생각도 멎고 불당산을 내려가는 길은 산책로 같이
작은 오솔길로 이어진다.
어두움이 갈길을 막고 사방이 숨어버렸다. 어느 산골마을에도 어두움이 내려앉고 하나 둘 켜지는 불빛이 늘어간다.
캄캄한 산속에서 만난 철조망에 산속으로 들 수 없기에
녹색철조망을 따라 내려선다. 두 눈이 동그란 불빛이 움직인다. 소가 서 있는 목장으로 가야 하기에 더듬적 거리다 무서움이 들
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기에 여천마을로 내려선다. 인적이 드문 몇 채 안되는 곳이기에 지나가는 내 불빛을 보기에 먼저 인사를 했
다. '죄송합니다, 산을 가다가 잘못 내려와서요'
'혼자서요'
나는 이럴때 바보가 되어야 한다. 괜한 오창가는 도로를 묻고 그 길따라, 오창으로 목장아래 도로를 따라 걸었다. 지나가는 차
도 없고 검은 산줄기로 걸어야 하는 걸 도로로 걷는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꾸 왼쪽 산줄기에 눈이 가는 것은.
상말과 중간말을 지나 삼각점 △147.2 봉이라도 찾아 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시간상 접어야 했고 원리여천길따라 걸었다. 오창
으로 가는 길~~
오창과 진천을 오가는 버스정류장의 원리에서 청주로 가는 711번 버스를 타고 청주 가경터미널을 지나 조치원가는 502번 버스로
환승하여 조치원역에서 기차로 상경~귀가하여 1시가 다 되어갔다.
에휴~~
걷는 내내 산줄기따라 왔던 상암천이 미호천을 만나는 학소들과 합수점을 걷지 못한 아쉬움으로 남고 전쟁의 상처가 큰 아픔으로
남아있는 봉황산의 산정이 생각나는 것은 왜였을까.
어릴적 오창 이모집을 가려면 사석에서 환승했던 어렴풋한 기억이 사석리 버스정류장의 주인 어르신에게 물어 그 조각난 기억을 되
살려 보았던 이곳 산줄기였음을 알았다.
생각해 보니 산행은 이래서 추억을 더듬고 추억을 먹고 사나보다.
[끝]
첫댓글 무서워도 산행은 멈출 수 없는일 아닌가 대단한 산꾼일세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