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과 문학의 생활세계
한상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아우스비츠 수용소에서 온 가족이 학살되는 참극과 온몸을 면도질 당하는 인간 이하의 모욕을 겪는 고통 속에서도 프랑클(Victor Emil Frankl)은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자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극한 상황 속에 처한 인간 심리의 변화를 예리하게 지켜보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만약 인생에 목적이 있다면 괴로움과 죽음에도 반드시 어떤 목적과 의미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 형언하기 어려운 비참한 환경에 처한 사람에게 어떻게 삶에 대한 책임 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겠는가?“ 라는 두 가지 문제의 해답을 찾는데 몰두한다. 그 결과 프랑클은 파멸된 인생에게 그래도 남아 있는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짜서 삶의 의의와 책임이란 질긴 틀을 엮어 내려는 의미치료(意味治療) Logotherapy 의 원리를 체득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실존 분석”에 전념하여 정신 의료계의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며 본질적인 정신자세는 “의미를 지향하는 의지” "will to meaning" 라고 주장하고 삶 자체에 대한 책임감과 인류에 대한 사명 의식을 일깨워 주는 것을 평생 학문 연구의 목적으로 삼았다. 그런 시각에서 ”인생이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기대하지 말고, 오히려 내가 인생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또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고 했다.
데이토(Jim Dator)는 정보화 사회 다음에 오는 꿈의 사회(Dream Society)는 꿈과 이미지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고 했다. 경제의 주력 엔진이 ‘정보’에서 ‘이미지’로 넘어가고 ‘상상력’과 창조성‘이 국가 경쟁력이 된다는 것이다. 이미지는 원초적인 언어이며 의미화다. 경제의 원동력이 석탄이나 석유가 아니라 상상력과 이야기(story)가 생산 자원이 된다는 것이다. 모든 상품은 이야기와 이벤트가 첨가 될 때만 ’가치‘를 갖게 된다. 23번의 셔츠를 입으면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된 줄 착각한다. 인간이 집을 짓고 거주하며 생각을 하면서(bauen, wohnen, denken)살아간다는 것은 하나의 집에 단순히 거주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표현 방식이다. 이는 인간과 세계, 우주와의 본래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톨스토이 단편 「이바노비치의 죽음」은 가짜 삶의 의미를 실감나게 하는 좋은 예이다. 나는 정말 나의 삶을 살고 있는가? 나의 운명은 사실은 나의 “자유로운 결단”에 달려 있다. 나의 행복, 내 인생의 보람은 오로지 나의 손에 달려 있다. 인간의 자유는 불안(dread)과 고뇌(anguish)로 나타난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며‘, ’자유의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자유로운 나는 나의 행동과 결과에 책임을 져야한다. 내가 성취하고 성취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의 선택, 결단, 실천에 달려 있다.
인간은 자기 실존, 자기 브랜드의 이미지를 색깔 있는 명품으로 디자인해야 한다. ‘실존한다’는 말은 인과 관계로서만 설명될 수 있는 사물이나 사건의 차원을 넘어 ‘의미의 세계’ ‘가치의 세계’에 산다는 뜻을 의미한다. 지구촌을 움직이는 인물은 대체로 자기만의 ’독창적인 사고‘와 “상상력”으로 꽃피운 사람들이다. 경제에 디자인과 창의성을 도입한 인물이 스티브 잡스다(Steve Jobs). 그는 세계인의 라이프스타일 life style 과 문화 자체를 바꾼 디지털 혁명가이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이 전부요 진리다. 패션의 생명력은 브랜드의 이미지다. 자신의 얼과 혼이 담기고 잠재력과 자신감으로 명품 브랜드를 창출해야 한다. 이러한 실존적 삶의 오솔 길은 남모를 뼈를 깎는 노력과 정진 그리고 즐거운 고통의 작업이요 도전이다.(隨處作主 立處皆眞) “사고의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하여 명예로운 대학 교수 자리를 거부하고 암스테르담의 작은 방안에서 안경알을 갈아 팔며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색에 도취한 철학자 스피노자의 진리에 대한 순수한 정열, 얼마나 위대한가!
18세기 영국의 시인이며 비평가인 존슨(Samuel Johnson)은 언어는 ‘사고의 옷’ Language is the dress of thought 이라고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현상학자이며 실존철학자인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언어는 인간이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존재의 집‘ das Haus des Seins 이라고 말했다. 언어는 인간만의 속성이다. 그러기에 인간만의 세계에 길이 있고 길이 있는 곳에 인간이 탄생한다. 어렸을 때부터 일상생활 속에서 글을 쓰는 것은 감성과 상상력으로 자기의 세계를 창출하면서 찾아가는 인생의 ‘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바로 자기의 실존, 자기만의 고유세계(Eigenwelt), 자기의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도정(道程)의 작업이다. 우리의 현실과 동 떨어진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의 삶, 일상적인 감수성에서 발견하는 ‘문학의 생활세계’를 이룩해야 한다. 문학은 일상인의 삶 그 자체이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서 한 개인이 체험할 수 없는 삶을 상상적으로 체험하고 배운다. 문학 작품은 우리 ‘안’에 꽁꽁 얼어붙었던 감성과 상상력의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다. 문학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경험을 넓히고, 사물에 대한 감수성을 깊이 세련시키고 언어에 대한 감각을 가다듬고, 종교적, 철학적, 윤리적 문제에 시야를 넓혀 보다 깊은 정신적 세계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언어에 대한 날카로운 감수성,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사회, 역사, 정치, 종교, 철학 등에 대한 넓고 깊은 교양이 필수적이다.
최근에 최고 경영자 CEO들도 리더십 향상을 위해 창조 정신, 윤리정신, 글로벌 마인드, 인간과 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지혜와 지식을 얻고자 인문학 강좌에 열정을 쏟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백화점이나 문화 센터의 시 창작, 수필, 소설 등의 문학 강좌 이른바 주부들이 많이 참여하는 ‘하우스 문학’이 열풍라고 한다. 캠퍼스는 학습자들이 자기의 꿈을 키우고 가꾸는 ‘미래의 세계’를 창출하는 실존 공간이다. 21세기 문화를 이끌어 갈 우리들의 꿈나무들이 가정이나 캠퍼스에서 누구나 글을 쉽게 쓸 수 있는 ‘친 문학적’인 생활세계(Lebenswelt)의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육의 핵심은 바로 감성과 상상력, 독창적인 사고력을 발휘하여 글을 쓰게 하여, 사람 냄새나고 인간적인 체취와 향기가 나는 매력적인 실존 공간으로 디자인하는데 포인트가 주어져야 한다. 일본, 동남에서의 드라마 한류, 프랑스 파리에서의 K-pop 공연, 걸 그룹 소녀시대의 미국 3대 방송 출연 등 세계무대에서 한국 문화 예술이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예술은 소통이며 대화다.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예술을 창출해야 한다. 문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의미 창출이 세계적인 문화국가를 잉태시킨다. 그리고 문학 노벨수상을 앞당기게 하는 지름길이다. 문득 20세기 최고의 시인 T.S. Eliot의 ‘The Waste Land’ ‘황무지’의 첫 구절이 떠오른다.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했으니./
봄이 되어 매우 힘들고 버거운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뇌”를 예리하게 철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망각의 눈’에 덮인 겨울은 차라리 평화로웠지만, 다시 꽁꽁 얼어붙었던 땅 속에서 움을 트고 살아가야 하는 4월은 그래서 잔인하다. 그러나 4월은 잔인한 달만이 아니라 소생과 희망, 도약과 웅비의 찬란한 달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라는 철학적 제목은 보스턴의 한 미술관에 붙어 있는 프랑스 인상파 고갱의 그림이다. 이 예술가는 자기가 던진 물음에 답하고자 세련된 문화의 도시 파리와 아내와 자녀를 버리고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를 잇는 카브리 해협에 위치한 프랑스 식민지였던 타이티 섬으로 떠났다. 그 곳에서 그는 원주민들의 ’삶의 양식‘에서 영감(inspiration)을 받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발견하고 창조하면서 원주민들과 더불어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60년 만에 찾아온 흑룡의 임진년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 “서울 교원문학‘의 문학인들이 분화구처럼 왕성한 ‘창작 에너지’로 한국문학의 새로운 글로벌 르네상스 시대의 새 지평 New Horizon 을 한국인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열어갈 열정과 사명감을 인식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자고 크게 외치고 싶다. 그렇다! 우리는 ‘살아 있는 현재’ 속에서 행동하고 도전해야 한다. Act and challenge in the 'living present'. 현재가 미래를 창출한다. The Present creates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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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호: 지연知淵, 수필가, 교육학 박사, 현재 한국교육과정 교과서연구회 회장, 21세기 한국교육포럼 공동대표, 한국교육정책연구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세계문인협회 이사, 서울교원문학회 자문위원, 한국생활문학회 이사, 전 동작교육장, 전 교육부 인문과학편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