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 이렇게 만들어졌거늘
촛불을 켠다. 향을 올린다. 그대 지극한 눈망울과 입언저리, 그리고 맑은 웃음이 하나씩 살아난다. 중생은 본각이 밝음으로 말미암아 허물이 된다. 허물, 그 자체가 성립되면 본래 성품은 허물을 뚫고 나아가지 못한다. 햇빛이 구름을 뚫고 나가지 못하는 것 같이.
그 인연으로 하여 듣는 것은 소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보는 것은 색(色:물질)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들의 육감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의 망령된 기관이 보고(見), 듣고(聞), 깨닫고(覺), 알고(知) 하도록 나누어져 열려 있음은 서로 얽히고 합하고 떠나면서 결국은 본성이 허망을 뚫고 나가지 못한 채 사라지기 때문이다.
밝음을 보아서는 색상을 일으키고 그 색상을 보고는 머리속에 그와 같은 모양의 영상을 이룬다. 만약 보는 견(見)이 서로 다르면 미워지고 생각이 같으면 사랑한다. 사랑을 상대에 홀려넣어서는 씨가 되고 상념을 받아들여서 태(胎)가 된다.
서로 교접하여 생명체를 발산할 때와 같은 업(業)을 끌어당겨 흡수한다. 생명체가 잉태되는 과정을 보게나. 중생의 본자성(本自性)은 잉태되기 전 중음신으로 존재한다. 중음신은 꿈 속에서 보는 자신의 모습으로 이해하면 된다. 중음신은 착한 업으로 생긴 과보는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 보던 눈(目)처럼 환하게 다 보고 모든 것을 판독한다. 깨달음으로 관(觀)하기 때문이다. 악한 업보의 중음신은 신식(身識)이 혼미하여 느낌은 하나도 없고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버러지 같은 촉감만 있을 뿐이다.
이 두 가지 중음신은 부모가 성관계를 하는 모습을 다 보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어머니에게는 지극히 사랑을 품게 되고 아버지에게는 몹시 미워함을 품게 된다. 이때 아버지의 정수(호르몬)가 오르가즘을 타고 자궁으로 흘러 들어갈 적에는 아버지의 성적 황홀감이 마치 중음신인 자기의 생리 현상으로 착각하면서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 아버지에 대한 미움. 자신의 성적 환희. 이런 것들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 중음신이 본래 갖고 있던 전생의 오음(五陰)은 사라지고, 후생(後生)의 오음을 새로 갖추게 된다. 그 순간 전생을 모두 잊어버린다. 마치 밀랍(벌꿀 찌꺼기)으로 글자의 모양(字型)을 만들어 진흙을 박아 붙인 흙판을 불에 구우면 밀랍의 글자는 녹아 없어지고 음각된 자형만 새로 또렷이 남게 되듯이. 전생에 기억된 삶의 역사인 밀랍은 사라지고 흙으로 된 글씨체가 새로 생긴 것과 같이 과거 오음 즉 전생의 마음을 모르게 된다는 것이 [열반경]의 가르침이다. 이것들이 사생(四生) 즉, 태생(胎生 : 태로 나고), 난생(卵生 : 알로 나고, 습생(濕生 : 습기로 생하며), 화생(化生 : 변화해서 생기는데) 인연 따라 업보 따라 스스로 선택하여 태어난다.
중음신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초의식의 천안통(天眼通)을 얻은 사람은 이 중음신을 현실 같이 본다. 죽은 후에 다시 태어나는 영혼까지. 이 중음신은 세 가지로 먹는다. 생각의 느낌으로 먹어서 배부른 것, 그래서 제삿밥은 맛이 없다. 촉감으로 먹는 것, 그래서 제삿밥이나 떡시루에는 무슨 자취가 간혹 생긴다. 의식으로 먹는 것, 그래서 제사음식은 대체로 김이 나지 않는다. 이 세 가지를 사식(思食), 촉식(觸食), 의식(意食)이라 한다.
중생이 사생(四生)으로 태어날 때에 애정(愛情)으로하여 태(胎)로 나고, 상념(想念)으로는 알로 나고, 감(感)하여 화합하여서는 습생과에 들며, 서로 반하여 떠남으로 이탈하여 생기는 화생과가 있다. 애정과 상념과 결합의 연모, 그리고 싫어짐(離)이 서로 변화할 때 각자의 중음신이 생의 습성으로 생긴 개성 즉 업(業: 지음, 행위)으로 하여 사생을 받게 된다.
그때에 죄의 경중에 따라 날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하는데, 그것은 중음신의 업의 성품을 따른다. 이런 인연으로 뭇 생명이 서로 연연상속을 계속하게 된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는 생각과 애정이 맺혀서 사랑을 능히 여의치 못하므로 모든 세간의 부모와 자손이 서로 낳고 낳아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니 이런 것들은 음욕의 탐이 근본이 된다. 탐하는 애정이 아기자기하여 탐하여 생각을 능히 그치지 못하므로 세상의 태생, 난생, 습생, 화생의 힘이 강하고 약함에 따라 번갈아가면서 서로 잡아 먹게 된다. 이것은 살아 생전에 죽여서 잡아 먹는 탐욕이 근본이 된다. 사람이 개를 잡아먹으면 개는 죽어서 사람이 되고 사람은 죽어서 개가 되곤 하는 중생의 종류 즉 십종 생류(十種 生類)가 있다.
뭇 생명들이 나고 죽고 하면서 번갈아서 서로 먹되 악업(惡業)으로 서로 다시 끝도 한도 없는 미래제(未來際)를 다하게 된다. 이런 인연으로 백천 겁을 지나면서 생사 가운데 있게 된다. 이것은 다 죽이고(殺), 훔치고(盜), 음행(淫)하는 근본이 된다고 부처님께서 밝혀 놓았는데. 그러나 그대, 성경 창세기 1장 1절부터 3장 24절 그리고 신약성경 누가복음 3장 23절부터 38절을 읽어 보게나.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다. 우주만물을 육일 만에 모두 만드시고 마지막에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이 잠자는데 갈비뼈를 뽑아 이브를 만들었다.
아담은 셋을 낳고 셋은 에노스를 낳고 에노스는 가이난→마하날넬→야렛→에녹→모드셀라→레멕→노아→셈→아박삿→가이난→살라→헤버→벨렉→르우→소룩→나흘→데라→아브라함→이삭→야곱→유다→베레스→헤스론→아니→아미나답→나손→살몬→보아스→오벳→이새→다윗→나단→맛다디→멘나→멜레아→예리→아짐→요남→요셉→유다→시므온→레위→맛다→요림→엘리에서→예수→에르→엘마담→고삼→앗디→벨기→넬리→스알디엘→스룸바벨→레사→요아난→요다→요섹→서머인→맛다디아→마앗→낙개→에슬리→나훔→아모스→맛다디아→요셉→안나→멜기→레위맛다→헬리→요셉→예수그리스도
이상 76대를 성경에 의한 하나님 아담 족보를 참고로 그대로 옮겨서 적어보았다. 앞장에서 밝힌 대로 아담은 길게 잡아도 지금으로부터 6천 5백년 전에 흙으로 만들어졌다고 우겨댄다. 그러나 이브는 아담을 깊이 잠재우고 갈비뼈를 뽑아서 만들었단다. 이브도 흙으로 만들 것이지 왜 갈비뼈로 만들었을까. 갈비뼈가 적은데 갑자기 성인 여자로 만들었다니. 그러나 인류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잘 만든다. 남녀가 사랑하여 하룻밤만 자면 쉽게 아들 딸을 만든다. 석가도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인간이 만들었다. 하나님은 흙이나 뼈가 아니면 만들지 못하지만 사람은 그러한 것 없이도 묘하게 잘 만들어내고 있다. 손오공과 홍길동도 복제인간을 만들었다. 머잖아 소설이 아닌 실제 복제인간을 만들어질 텐데. 그것도 피부나 피의 세포 하나만 떼어서 말이다. 그래도 절대신이 창조했다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고 있으니. 그 어리석음을 어찌하랴.
그래서 홀연히 눈을 감고 다만 웃고 싶다. 너무 고요할 따름이다. 심심(心心)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가슴 속에 부처님의 상을 담는 것이 내 자신인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