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순교자가 아니면서 성인의 월계관을 쓴 최초의 인물은 투르의 마르티노 성인이다. 이렇듯 마르티노 성인은 초세기의 인물이지만, “예수님의 열세 번째 제자” 또는 “갈리아의 사도”라고 불릴 만큼 특히 유럽에서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큰 사랑을 받고 그의 삶을 지금 우리가 엿볼 수 있게 된 것은 그의 제자인 술피치우스 세베루스Sulpicius Severus(363?-420) 가 스승 마르티노의 삶을 기록한 《마르티노의 생애 Vitae Martini》덕분이다.
마르티노 성인은 316년경 지금의 헝가리 사바리아에서 태어났다. 당시 유럽 대부분의 지역이 그렇듯이 그곳도 로마제국의 땅이었으며,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로마제국의 군인이었는데 호민관으로 승진하여 이탈리아 북부의 파비아로 이동하면서, 마르티노는 가족과 함께 파비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 마르티노가 이 망토로 나를 입혀주었다"
마르티노 성인의 부모는 이교도였으나, 마르티노는 10세경 무언가에 이끌려 스스로 교회를 찾아갔다. 당시 로마제국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끝내고 신앙의 자유를 선포했기에(313년 밀라노 칙령), 특히 이탈리아는 그 분위기가 드높았을 것이며 어린 마르티노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세상에서의 출세를 지향하던 아버지의 반대도 있었겠지만, 마르티노는 스스로 교회 안으로 들어와 그리스도인이 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 한편, 그는 15세에 군대에 입대하여 아버지처럼 군인의 삶도 시작했다.
그리고 군인 마르티노가 속한 군대가 프랑스의 아미앵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추운 겨울의 어느날이었다.
그가 말을 타고 가는데, 초라한 행색의 거지가 길바닥에 웅크리고서 몸을 떨고 있었다. 그때 그가 가진 것이라곤 허리춤에 찬 긴 칼과 망토뿐이었다. 그 순간 그는 주저 없이 칼로 망토를 반으로 잘라, 하나는 거지에게 주고 다른 하나는 자기 몸에 걸쳤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예수님께서 그 반쪽 망토를 입고서 나타나 그러셨다.
“아직 세례도 받지 않은 예비신자인 마르티노가 이 망토로 나를 입혀주었다.”
예수님의 모습과 말씀에 그는 깜짝 놀랐다. 낮에 자기가 만났던 그 거지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에… 그 일을 예수님께서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 이 신비로운 만남 직후인 18세 때 그는 세례를 받고 예비신자가 아닌 신자가 되었다. 술피치우스 세베루스가 쓴 전기에 따르면, 마르티노는 그 꿈을 꾼 후에 세례를 받으러 "날아가듯 달려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사제가 되어 예수님과 교회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인의 신분을 벗어야 했는데, 그 계기가 자연스레 찾아왔다.
그의 전기에 따르면, 이민족이 갈리아 지방(로마제국 시기에 현재의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서부, 라인강 서쪽의 독일 지역까지를 갈리아Gallia 또는 골Gaul이라고 불렀다.)에 쳐들어오자 로마의 율리아누스 황제는 봉급을 주기 위해 출전을 앞둔 병사들을 소집했다. 그러나 마르티노는 황제 앞에 서서 봉급받기를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저는 군인으로서 폐하를 섬겼으나 이제부터는 이곳을 떠나 저의 주님 그리스도를 섬기겠습니다. 봉급은 다른 이에게 나누어주십시오. 저는 그리스도의 군인이므로 이제는 그것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너는 지금 믿음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군인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황제의 이 말에 마르티노가 말했다.
"제 결심이 믿음이 아닌 두려움 때문이라면, 저는 내일 아침 무장해제한 채 십자가 하나만 들고 적진으로 뛰어들겠습니다."
황제는 마르티노에게 말한 대로 할 것을 명령했는데, 그다음 날 놀랍게도 마르티노는 적군을 항복시키고 승전보를 황제에게 안겨주었다. 그의 말 그대로 십자가 하나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 전설 같은 사건과 함께 그는 제대하고 세상의 군인이 아닌 그리스도의 군인이 되는 길로 걸어갔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군사
마르티노는 사제로서의 길을 위해 당시 프랑스 푸아티에 교구의 주교이며 명망 높은 대 신학자인 힐라리오 주교(+367/368년, 축일 1월 13일, 교부, 교회학자)를 찾아갔다.
356년경이었다. 후대에 "서방교회의 성 아타나시오”로 불리게 된 힐라리오 주교는 당시 교회를 어지럽히던 아리우스 이단과 맞서 삼위일체 신앙을 옹호하였다.
마르티노는 힐라리오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았으며, 높은 영성과 지성의 소유자인 이 학자 주교에게서 그동안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도 배웠다. 그리하여 푸아티에에서 8km 정도 떨어진 리귀제에서 주님과 마주하여 오롯이 주님을 섬기는 삶, 이른바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그러자 아무도 부르지 않았지만 영적 향기는 멀리멀리 날아가서 사람들이 찾아들면서, 그곳은 프랑스의 첫 수도원으로 기록되었다.
368년경 스승인 힐라리오 주교가 세상을 떠나자 투르의 주민들이 마르티노 사제를 찾아와 주교가 되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그는 그 간청을 거절하고 수도자의 삶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투르의 중병 환자를 찾아갔다가 주교직을 받아들였다. 371년 7월 4일 마르티노 주교 서품식이 열렸는데, 머리는 헝클어지고 외모도 볼품없는 그를 본 다른 성직자들이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마르티노 주교는 주님의 자비와 자애와 가르침으로 교회와 사람들을 보살 폈다. 병자를 고쳐주고, 죽은 아이를 살렸으며, 심지어 짐승을 감화시키는 등 많은 기적을 행하여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불렸다. 로마제국의 신전과 제단과 신상들을 제거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심는 데에, 특히 당시 교회를 어지럽히던 이단과 맞서 교회와 신자들을 지키는 데도 전력했다. 이 거룩한 수도자이며 사목자의 수고는 프랑스를 넘어 갈리아 땅에 널리 복음이 전해지는 열매를 맺었다.
그런 한편 수도승의 삶도 포기하지 않고 주교관 밖에 마련한 골방에서 다른 수도자들과 함께 기도와 사목에 전념하였다. 사람들이 마르티노 주교 주위로 모여들면서 '대수도원인 마르무티에르 수도원을 설립했다.
술피치우스 세베루스는 마르티노 주교의 전기에서 이 수도원에 관해 상세히 적었다.
"많은 형제들도 각자 자신의 은신처를 만들었는데, 산의 돌출된 바위를 파서 만든 동굴이었다. 총 80명의 그 제자들은 거룩한 스승의 모범을 따라 훈련을 받았다. 그들 중 아무도 자기 것이라고 불리는 소유물이 없었다. 모든 것이 공동 소유였으며, 무엇을 사거나 파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책을 필사하는 일 외의 많은 시간을 기도와 관상에 쏟았다. 그곳에서는 필사자의 기술 외에는 어떤 기술도 실행되지 않았으며, 그들중 누구도 기도와 작업 시간 외에 자신의 동굴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
<마르티노의 생애Vitae Martini)는 마르티노 성인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다음과 같이 상세히 전해준다.
"마르티노는 죽음을 맞이할 날을 오래전 부터 미리 알아, 형제들에게 자기 육신이 사그라질 때가 임박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어떤 중대한 일이 일어나 캉드의 교구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 교구 성직자들 간에 발생한 불화 때문에 마르티노는 자기 생명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그 교구가 화목을 되찾게 된다면 자기 전 생애에 걸친 모든 수고의 월계관이 되리라는 그러한 희망으로 여행을 거절치 않았다.
그러나 그 도시의 성당에서 잠시 체류하는 동안 육신의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여 형제들을 불러 자기 임종의 시각이 다가왔음을 알렸다. 그때 형제들은 한결같이 안절부절못하면서 비탄 속에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왜 우리를 떠나려 하십니까? 우리 이 고아들을 누구에게 맡기시렵니까? 잔인한 이리들이 당신의 양 떼를 칠 것입니다. 목자가 부상당하면 이리들 의 공격에서 누가 우리를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그리스도를 갈망하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늦게 가신다 해서 받으실 상급을 잃을 우려가 없고 그 상급이 줄어드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떠나지 마십시오.'
...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여! 수고도 죽음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으니,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는 것을 거절하지도 않았으며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려 하지도 않았다. 눈과 손을 항상 하늘로 드높인 채 그의 무적의 마음은 기도에 굳게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모여든 성직자들은 그의 불쌍한 몸을 돌려 편히 하시라고 청하였으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두시오. 땅보다 하늘을 더 바라보고 싶습니다. 이제 여행을 떠나려는 순간에 이 내 영혼은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마치자 악마가 가까이 있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소리쳤다. '피에 얼룩진 짐승아,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거냐? 이놈아, 네가 받을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아브라함의 품이 지금 나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겨 드렸다. 기쁨 중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졌다. 가난하고 겸손했던 마르티노는 부유한 이로서 천국에 들어갔다."
397년 11월 8일 마르티노 주교의 선종 후에도 수많은 이들이 그를 기억하며 공경하였고, 그리하여 순교자가 아니면서 성인이 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축일은 11월 11 일(동방 교회는 11월 12일)이며, 프랑스의 수호성인이다. 군인, 재봉사, 가난한 이, 가축과 목동의 수호성인이다.
유럽 교회에서는 900년경까지 마르티노의 성인 축일인 11월 11일 다음 날부터 대림 시기를 시작할 만큼, 특히 대림 시기에 마르티노 성인을 기리는데, 그의 사랑과 선행을 기억하며 성탄을 맞이하기 위해서이다.
(마리아지 2023년 11•12월호 통권 242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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