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아버지 (석대 목장 배원대 집사님).hwp
그리운 아버지!
잘 계시죠? 막내아들 원대입니다.
아버지!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께 편지를 드리네요. 좀 더 일찍 썼더라면 좋았을 것을…. 죄송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버지의 넓은 등’입니다. 동생과 제가 초등학교 다니기 전이었을 겁니다. 고모님 댁의 소를 대신 팔아주시려고 왜관 우시장에 다녀오시던 늦은 밤이었습니다. 다리가 아프다면서 떼를 쓰던 우리에게 아버지는 당신의 등을 내밀어 한꺼번에 동생과 저를 업어 주셨지요. 그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머니의 등과 달리 아버지의 등은 정말 넓었고 힘도 세셨지요. 늦은 밤 달빛에 의지해서 산길을 걸어갔지만 조금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함께 하셨으니까요.
또 기억나세요? 고모네 농사를 도와주시다가 몸이 약한 저에게 메뚜기를 잡아서 구워 주시던 일, 제 다리에 붙은 거머리를 하나하나 손으로 떼어주시던 일, 부산 태종대 놀러갔다가 바다에 빠진 저를 건져 주시던 일….
어릴 적 저에게 아버지는 커다란 산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고 항상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바위 같은 그런 모습으로 우뚝 서 계셨지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시골에서 도시로 나와 막노동으로 생활하시던 아버지는 저희 5남매가 자라나자 점점 힘들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혼자 벌어 다섯 명의 자식들 먹여 살리고 학교 보내는 것이 무척이나 힘드셨겠지요. 그 땐 몰랐지만 그 때 집에서 자주 만들어 먹었던 칼국수나 수제비는 집에 쌀이 떨어졌기 때문에 먹었던 것들이라고 철이 들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학비를 댈 자신이 없어서 누나에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라고 하셨을 때, 힘들어도 고등학교는 보내야한다고 주장하시는 어머니와 심하게 다투셨지요. 눈물로 절망하던 누나는 방 한 구석에서 울고 있었고요. 우리 형제들 중에 그 누구도 제 때에 학비를 내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생활이 힘들어지자 아버지는 술을 더 자주 드시게 되었고 집 안에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다툼도 잦아졌었지요.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아직 철없던 저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절대로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하고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 그 때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봅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은 있지만 막막한 현실 앞에서 달리 마땅히 해 주실 게 없는 아버지의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겠어요? 생계가 힘들어 처자식이 집에서 봉투 만들기 부업을 하는 걸 보며 얼마나 가슴 아파 하셨을까요?
노년에는 뇌출혈로 거동이 불편하게 지내시다 마지막 일 년여의 시간은 말씀도 못하시고 튜브를 통해 코로 음식물을 드시다가 우리 곁을 쓸쓸히 떠나셨지요.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에야 우리 형제들 모두 많이도 울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평생 호강 한 번 못하시고 고생만 하다 가신 아버지의 인생이 너무 불쌍해서요. 아버지께 저희들이 아무 것도 해 드린 것이 없어서요. 가장으로서 외롭고 힘들어하셨을 아버지를 이해해 드리기 보다는 다른 집의 아버지와 비교하며 원망했던 이 못난 자신을 돌아봅니다. 비록 늦었지만 아버지께 용서를 구합니다.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10년 6월 19일
막내 아들 원대 올림
첫댓글 김정택집사님의 동의를 얻어, '최종편집실'에서의 제목 '아버님 전상서'를 '그리운 아버지'로 바꾸었습니다~~~
일주일 동안도 삶의 처소에서 분투하시면서
오렌지가 무르익어가도록 애쓰신 여러 집사님들,,
존경과 사랑을 보내드립니다..
Best Sunday!! 최고의 주일,, 되시기를!!
^^*
다시 읽어봐도 눈물이 납니다. 아직 저는 양친이 다 건강하게
살아계셔서 그런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만,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해 주시는
1/10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얼마 전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자식들에게 짐 안 지워 주려고 미리 수의를 다 준비했다 는 말을
듣고 돌아서서 얼마나 울었는지요. 부모님 마음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아마도 돌아가시고 나면 불효막심한 자식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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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운 아버지'가 훨 아버지가 더 그리워지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