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덥고 내부는 그냥 타일 구경이라 그냥 외부에서 눈도장..
사마르칸트에 대한 소개 조금 더!!
옛 문헌을 살펴보면 사마르칸트를 ‘동방의 낙원’, ‘중앙아시아의 로마’, ‘황금의 도시’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마르칸트는 현재 사마르칸트 주(州)의 주도(州都)로서 인구 약 36만 명으로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
공업 및 문화의 중심지로서 사마르칸트는 자랍샨 강(江)의 계곡과 구릉에 걸쳐 위치
자랍샨 강은 ‘황금을 뿌리는 강’이라는 뜻으로 일년내내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에서
이 강이 얼마나 중요했었는지를 잘 말해준다.
주민의 대부분은 타직민족으로,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은 집에서는 타직어를 학교에선 우즈벡어를
그리고 길거리에선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3개 국어는 구사를 한다는 사실이다.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의 중심으로서 고대 호레즘시대 부터 ‘마라칸다’로 알려졌고, 중국에서는 ‘강국(康國)’이라고 불렀다.
1220년 징기스칸에 의해 패망되기까지는 실크로드의 교역기지로 번창..
현재 도시는 징기스칸에 의해 파괴된 아프라샵(Afrasiap)언덕 아래에 다시 건설되었다.
11세기에는 티무르 왕조가 몽골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사마르칸트를 다시 부활시켰는데
그는 사마르칸트를 동방의 로마로 키우고자 하였다.
도시의 주요 건물인 모스크와 메드레세들이 대부분 유약을 발라 구워내 푸른색 벽돌로 장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마르칸트를 흔히 ‘푸른도시’라 부른다. 이처럼 사마르칸트가 푸른도시로 된 까닭은 티무르가
유독 푸른색을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사마르칸트에서 타슈켄트로 가는 동안의 풍경은 거의 일정하다. 광활한 목화밭과 쭉뻗은 도로...특별한 휴게소는 없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이자 실크로드의 중심이다.
사마르칸트 주의 주도이며, 인구 약 36만명으로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이며
옛 문헌에 ‘동방의 낙원’, ‘중앙아시아의 로마’, ‘황금도시’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대 호레즘시대부터 마라칸다로 알려졌고, 중국에서는 강국으로 불렀다.
타쉬켄트에서 사마르칸트까지는 자동차로 4시간 30분가량 소요되며 항공편은 일주일에 3회 운항되며
약 1시간이 소요된다. 현재 왕복 급행열차도 운행되고 있다. 편수는 하루에 달랑 한편..ㅎㅎ
앞쪽에 위치한 루하밧 묘..
아프라샵 호텔과 구르에미르 사이에 위치해 있는 티무르 스승의 묘이다.
맞은편의 구르에미르와 비교하면 너무 초라할 정도로 화려함이 없이 단순하다.
묘의 내부 또한 거의 관리가 되지 않아 허술하다.
하지만 어떤이들은 화려하지 않기 때문에 구르에미르 보다 더 자연스럽고 정감이 간다는 사람들도 있다.
가끔 무슬림들이 와서 기도를 드리고 가기도 한다.
레기스탄 모스크 내부 모습..
구르미에르..
‘구르’는 묘, ‘에미르’는 왕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구르 에미르는 “왕의 묘"라는 뜻으로,
아미르 티무르를 시작으로 그의 아들, 손자 등이 잠들어 있는 티무르 왕족의 묘이다.
푸른 도시라 불리는 사마르칸트에서도 한층 더 푸르름이 돋보이는 장대한 건축물이 아닐까 한다.
원래 이 장소는 티무르의 손자인 무하마드 술탄을 위해 건설된 메드레세와 하나카가 있었는데,
그러나 1405년 오트라르 원정에서 무하마드 술탄이 전사를 하자, 티무르는 그를 기리기 위해 이 장소에 묘를 건설했는데,
불과 10일만에 묘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황당!!
묘는 1404년에 완성되었지만 1년 후 중국원정 중에 급사한 티무르 자신도 이곳에 묻히고 만다.
티무르는 원래 자신의 고향인 샤흐리샵스에 잠들길 원했고, 그곳에 묘도 조성을 했었다.
그러나 살아서는 세상을 호령했던 왕이었지만 죽어서는 자신의 뜻대로 이루질 못했다.
현재 티무르의 손자가 건립한 메드레세와 하나카는 그 터만 남아있으며, 묘만 화려한 모습으로 서있다.
묘 내부는 1996년 수리가 완료되었고 건설 당시의 아름다움도 돌아왔다.
내부를 둘러싼 문양에는 금 3Kg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티무르의 묘는 흑녹색의 연옥(중국산이라고 한다.)으로 만들어졌고 중앙에 놓여져 있다.
그 북쪽에는 티무르의 선생, 손자 한 명, 동쪽에는 무하마드 술탄, 남쪽에는 울루그벡, 서쪽에는 가까운 쪽부터
아들 샤루흐, 이름모를 손자, 아들 미란샤의 묘석이 나란히 있다. 이것은 모두 묘의 위치를 표시한 묘석으로
진짜 관은 이 지하 3m에 있는 묘실에 같은 순서로 묻혀있다.
그리고 항상 머리는 메카 방향 으로 안치되어있다.
그냥 편의를 위해서 옮긴 글입니당!! ㅎㅎㅎ
이제 가장 유명한 장소 레기스탄 광장으로 향합니다..
약 500미터를 걸어가야만 레기스탄 광장입니다!!
레기스탄 광장 도착..
사마르칸트를 대표하는 장소입니다..
레기스탄은 ‘모래땅’이란 뜻으로 옛날에 모래로 뒤덮힌 사막이었다고 한다.
공공의 광장으로 왕의 알현식, 공공집회, 죄인의 처형 등이 행해졌다.
티무르 시대에는 대규모 노천시장이 있었으며, 그의 후손인 울루그벡 시대에 처음으로 메드레세가 세워졌으며
메드레세의 맞은편에 하나카가 있었다.
광장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가진 것은 그후 샤이바니 왕조의 야한그도슈 바하도르에 의해
다른 2개의 메드레세가 건립된 이후이다.
3개의 메드레세가 건립된 이후 레기스탄 광장은 이슬람 교육의 중심지로써 명성이 자자하였으며,
그후 구소련 시절에는 이슬람 종교의 탄압으로 다시 거대한 노천시장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이슬람 교육의 장소도 아니고, 노천시장도 아닌 관광지로써 제역할을 하고 있다.
광장은 왼쪽에 위치한 건물이 울루그벡 메드레세, 중간이 틸라카리 메드레세, 오른쪽이 쉬르도르 메드레세이다.
현재 광장은 명절이나 기념일 때 대규모 콘서트나 행사가 열리기도 해서 무대와 좌석들이 설치되어 있다.
우즈베키스탄 화폐 50숨짜리 지폐에 나온다.
세개의 메데레세를 향하여 이동..
울루그벡 메드레세..
레기스탄 광장의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 울루그벡 메드레세는 1420년 울루그벡에 의해 세워졌으며,
레기스탄 광장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울루그벡은 왕이자 학자로써 이름을 떨쳤는데 직접 이슬람 신학에서 수학, 철학까지 강의했었다.
울루그벡 메드레세는 그 시대 학문의 중심지로써 약 100명의 학생들이 생활을 하며 공부했었다.
처음에는 신학교로 출발했으나 후에는 천문학, 철학, 수학, 과학 등의 연구소로도 이용되었다.
천문학자로써 유명한 울루그벡을 상징하듯 외관의 문양은 하늘의 푸른 별을 형상화하였다.
어딘가 열심히 전화중인 우즈벡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
참 예쁘다!!
레기스탄 광장은 열심히 보수 공사중으로 지금 진입은 금지 되어 있다!!
조금 아쉽네..
정면에 보이는 것이 틸라카리 메데레세..
광장에 정면으로 보이는 메드레세로 1647년 쉬르도르 메드레세를 세운 야한그도슈 바하도르에 의해 급히 세워진 메드레세..
쉬르도르 메드레세가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문양으로 표현을 했기 때문에 수 많은 무슬림들의 불만을 샀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을 무마시키기 위해 전통적인 양식으로 더욱더 화려하게 이 메드레세를 건축하였다.
틸라카리는 ‘금박으로 된’이라는 뜻으로 메드레세 안으로 들어가 좌측편 푸른돔 아래의 예배당을 보면
그 이름이 어울림을 알 수 있는장소..
벽면과 천장을 모두 금빛으로 장식을 하여 화려하기 그지없다.
천장의 돔 모양을 보면 둥글게 보이나, 사실은 푸른색 부분부터는 세밀한 표현으로 둥글게 보일 뿐 사실은 평면이다.
광장과 메데레세는 모두 보수 공사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워낙 많은 건물을 보아서 보수공사가 끝나고 입장이 허용되어도 비싼 입장료에 구경을 모두 하였을지는 의문이지만!!
쉬르도르 메데레세..
광장의 오른쪽에 위치한 메드레세로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200숨짜리 지폐의 모델 문양이 그려져 있는 유명한 메드레세..
쉬르도르는 ‘사자가 그려졌다’라는 뜻으로 입구 아치에는 어린 사슴을 쫓는 사자(사자보다는 호랑이에 훨씬 가깝다)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부하라의 나지라 지반베기 메드레세의 것과 같은 사람얼굴 형상의 태양도 그려져 있다.
본래 이슬람교는 우상숭배를 금지하기 때문에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을 표현하지 않지만,
간혹 그 시대의 왕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금령을 깨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쉬르도르 메드레세를 설계하고 감독한 건축가는 메드레세가 완성되자 무슬림으로서
이슬람 교리를 어긴 양심의 가책을 느껴 스스로 자살을 했다고 한다.
예쁜 신부님과 신랑..
보수공사중인 레기스탄 광장을 구경온 모양입니다!!
건물 내부에 있어야 할 관들이 보수 공사로 이동되어온 모양!!
우즈벡에서도 경찰 군인등 관리의 위상이 대단합니다..
도로에는 단속중인 경찰들이 곳곳에 남아 있더군요!!
광장 이곳 저곳을 둘러봅니다..
보수 공사가 한창인데 언제쯤 마감될까요??
메데레세의 정문..
히바와 부하라 사마르칸트의 유적지가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내부는 대등 소이합니다!!
메데레세가 아니라 호텔 바로 옆에 위치한 아무르티무르 모스크!!
아무르티무르의 개인 예배장소라고 한다..
이곳도 뒤쪽으로 돌아가니 입장료를 징수하지 않고 자유롭게 방문이 가능하나 들어가지 않았다!!
대부분 타일 문양만이 있는 그저 그런 장소가 우즈벡의 유적지 내부..
외양은 화려하다..
돔과 미나렛으로 장식..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장소입니다!!
이제 걸어서 호텔로 돌아옵니다..
레기스탄에서 이곳까지는 약 1.5km정도 떨어져서 차를 타고 왔습니다!!
티무르 모스크에서 한국에서 일하고 온 "쇼바"라는 관광 안내인을 만나 한식당에서 식사..
그리고 우즈벡 문화를 조금 더 체험하고 여행 마감!!
이제 페르가나를 거쳐서 키르키즈스탄의 오쉬로 이동하면 우즈벡 여행은 마감입니다..
호텔앞 대로의 아침 풍경..
우리가 숙박했던 4성급 호텔 레기스탄..
배낭 여행와서 숙소를 꼭 이런 곳을 이용해야 하는지??
잠깐 들어와서 하루 잠만 자는 숙소!!
호텔앞 대로에 위치한 아무르티무르 동상..
역사적인 기반이 약한 우즈벡이 되다보니 민족을 이끄는 역사적인 동력으로
아무르티무르를 우상화하는 모양입니다!!
하긴 사마르칸트는 아무르티무르가 만든 도시이다보니 당연한지는 모르지만..
광장을 걸으면서 산책하여 봅니다..
관광 인프라를 만들려고 노력중입니다만 뭔가 2% 부족한 느낌..
이제 타쉬켄트를 거쳐 페르가나로 이동합니다..
먼저 택시 2대로 타쉬켄트까지 이동..
그리고 타쉬켄트의 택시 터미널에서 페르가나행 택시를 바꾸어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철근을 실고 가는 승용차.. 위태위태합니다!!
이런 곳이 우즈벡..
가면서 사마르칸트 마지막 모스크 방문..
레기스탄 광장과 많이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방문이 조금 번거러운 곳!!
끝에 보이는 친구가 우리 안내를 담당했던 쇼바입니다..
그냥 외관만 봅니다!!
우즈벡의 버스..
이 버스로 도대체 어디까지 이동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