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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라곤(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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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점점 개인화되어가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에 흐르고 이로 인해 사회가 메말라가는 현상은 자연스런 시대적 흐름인가? 아니면 도리와 인정만으로는 세상 살아갈 수 없음을 경험한 이웃들의 비정한 마음 닫음인가?
알고 보면, 인간미가 질펀히 묻어나고 서로 간에 믿음이 강물처럼 흐르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이상향(理想鄕)의 세계에서만 가능할 뿐이지 현실은 개개인이 시간상․재산상의 손해를 입거나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수긍하는 계산상의 영리함이 지배하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일컬어 그 속을 알 수 없는 가면(假面)사회라 할까? 어저께 필자는 서울의 은평 구석에서 무서운 세상의 그 현장을 보았다. 은평환경신문 발행인과 약속이 있어 찾아간 역촌동 한 음식점 부근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였다.
발행인과 지인 몇 명이 모여 소주와 안주를 앞에 놓고 새로운 도시로 부각되고 있는 서울 은평구 이야기와 함께 세상사는 이야기를 한참 주고받던 참에 바깥이 소란스러웠고 옆자리의 손님이 나갔다 한찬 후에 들어오더니만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다.
그때는 이 사장이 영업상의 채권채무 문제로 소송걸린 사연을 토로하면서 세상 살벌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지라 바깥에 일어난 일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하였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나서 옆자리 손님이 전화를 끝내더니만 언제 신고했는데 아직도 안 오느냐고 혼자말로 투덜거렸다.
사연을 물어본즉 10분전에 식당 바로 앞 도로상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오토바이를 몰던 청년이 일방통행 골목길에서 역주행하여 나오던 승용차에 받혀 도로상에 누워있다고 하면서 길 가던 사람들이 와서 구경만 하고 있었지 119구조대에 신고를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은평소방서 구조구급대에 신고하였고, 다시 확인전화를 하고 있는 참에 그쪽에서 하는 말이 ‘다른 곳에 출동했으니 오는 대로 현장에 보내겠다’고 대답했단다. 교통사고는 정확히 7시 42분에 발생했고 자신이 52분에 신고하였으며, 확인전화를 한 뒤에 차가 오지 않으니까 57분경에 재차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되었느냐고 띠지고 물었다고 했다.
필자가 그 사연을 듣고 바깥에 나가보니 아직 구급차는 도착하지 않았고 교통경찰 두 명이 현장 도로상에 누워있는 부상자와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 청년은 다쳤는지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현장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2분 거리에 소방파출소가 있고 3분 거리에 서북 시립병원이 있다고 하면서 왜 구급차가 빨리 오지 않느냐고 수군거렸다.
함께 있던 은평환경신문 발행인이 현장부근의 식당으로 들어가 사정을 알아보던 중에 그 식당 주인이 창 바깥으로 사고현장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발행인이 자칫하면 잘못 없는 오토바이 탄 청년이 덤터기 쓸 수 있다면서 식당주인에게 사실대로 알려주라고 당부를 했지만 식당주인은 모른 척해달라고 오히려 부탁을 해왔다.
공연히 남의 일에 끼어들어 신고를 하게 되면 경찰서에 왔다 갔다 하면서 참고 진술하느라 시간 뺐기고 장사하는데 지장 있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세상인심과 시민정신이 이렇게 변했는가를 실감하면서 멍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한 사이에 구조구급차가 사이렌 소리를 내며 도착하였는데 시계를 보니 8시 5분이었다. 5분정도면 충분히 해결이 될 가까운 거리에서도 사고가 난지 23분 만에 차가 달려왔고 그동안 부상자는 꼼짝달싹하지 못한 채로 도로 바 누워 생사의 갈림길을 헤맸던 것이다.
다시 음식점에 돌아와서 신고자로부터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다. 사고발생 원인자인 운전자가 사고 직후에 소방서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보험회사에 먼저 전화를 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사고를 먼저 안 당사자인 운전자가 부상자 구조구급 조치를 먼저해야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자신이 조치해야할 내용을 먼저 물었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자신이 잘못하고서도 대신 책임지지 않으려 하며 피해보는 것을 싫어한다. 공동사회에서 기본적인 질서가 무너진 결과인데 이대로 간다면 사회적인 불신은 더욱 커질 테고 우리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아무리 개인주의가 만연해졌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참으로 영악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되는 것은 상식선의 신고정신과 건전한 시민정신이다. 장사하는데 지장이 있기 때문에 뻔하게 보이는 남의 불행을 못 본체 지나쳐버리는 무관심이다. 특이한 경우지만 소방당국의 구조구급체계에도 구멍이 뚫렸다. 관내에 교통사고나 응급환자가 발생하였을 때 구조구급차가 다른 곳에 출동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시민정신만 강요할 문제는 아니다. 사회안전망에 대해서도 고려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손질해야 한다. 사고발생 신고자에게 신고나 참고 진술과정에서 해당기관에 여러 번 오게 하거나 귀찮게 하는 등 불편함을 주지 않는지, 생업시간을 빼먹는 만큼 그기에 상응한 보상대책은 마련되어 있는지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봐서 국민이 신고를 기피하거나 진술을 귀찮아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다.
‘라마스떼(Namaste)’라는 인도 말이 있다. 직역하면 “당신 앞에 절을 한다” 또는 “내안의 영혼이 당신안의 영혼에게 인사한다”는 뜻이며, 대인관계에서 “가장 겸손한 자세로 내 안의 모든 마음을 열고 상대를 존중하며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점차 개인주의가 만연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필요에 의해 마음의 문을 여닫는 무서운 세상의 현상을 보듬고 건강한 시민정신을 유지하는 원천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인정과 타인을 위한 배려가 없는 사회, 불행을 당하는 이웃이 있어도 모른 체 눈을 감게 하는 개인주의가 판치고 자신의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남을 해악하거나 궁지에 몰아넣는 비인간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