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가톨릭 교회 현황
베트남 가톨릭 신자 수는 약 7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7.4%를 차지한다(2024년 11월 기준). 교구 27개, 본당 2,228개, 사제 2,668명, 수도자 73개 수도회에 약 23,000명, 신학생 7개 신학교에 1,480명이다. 베트남의 가톨릭 역사는 다음과 같다.
1533년:베트남 선교 시작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 이냐시오 신부가 베트남에 도착하면서 가톨릭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1615년:예수회 본격 선교 시작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던 선교 활동은 1615년 예수회가 진출하면서 선교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1659년에는 두 개의 대목구, 1666년에는 최초의 신학교, 1668년에는 유학한 2명의 베트남 사제를 배출했다.
17세기 초~1884년:신앙박해와 프랑스 개입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이다. 응우옌 왕조는 왕정 초반 프랑스의 도움을 받았고 프랑스에 상업적으로 많은 이점을 주었다. 그러나 향후 중국과 우호를 다지면서 프랑스를 외면하였고 선교사들과 신자들을 박해하였다. 이 시기 베트남 교회는 17세기 초부터 1883년 프랑스가 베트남을 점령할 때까지 박해를 받았다. 이 시기 순교자가 무려 13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1988년 성인에 오른 이가 117위로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이어 3번째로 많다.
1884~1954년:프랑스 강제 지배) 가톨릭교회 성장
프랑스는 가톨릭 선교사 ‘박해사건'을 계기로 베트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1883년 '아르망 조약'으로 베트남 전 국토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베트남 국가와 민족사의 입장에서 이 시기는 굴욕의 시기였으나, 가톨릭교회 처지에서는 식민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급속히 성장한 시기였다.
1954년:북베트남 정부 박해
베트남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면서 북베트남 공산 정권이 교회를 박해하였다.
1988년:부분적) 신앙 자유 허용
1988년 베트남 정부는 신앙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허용하였다. 투옥되었던 성직자 40명이 감옥에서 풀려났고 전쟁으로 파괴되고 방치되었던 성전이 복구되고 신축도 되었다. 박해에도 불구하고 선조들로부터 이어온 신앙으로 사제와 수도자 성소도 끊이지 않았으며,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활기를 띠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은 기존 신자의 신앙 자유는 어느 정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신자라도 집회의 자유와 미신자에 대한 선교는 엄격히 통제하고 있기에 새 신자 입교는 상당히 어렵다. 공직이나 취업에 가톨릭 신자이거나 개종할 경우 정부는 승진과 자녀의 교육 취업에 혜택을 차단하며, 정부 관리가 찾아와 가톨릭 신앙을 포기하도록 압박한다. 교황청의 새 주교 임명, 사제들이 본당 및 보직 발령에도 개입하며, 신학생 입학정원도 통제한다. 1987년 호찌민과 하노이 신학교가 다시 문을 열면서 다른 신학교들도 문을 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는 입학생 수를 통제해 격년제로 받는 등 자유롭지 못하다. 성소 지망생은 많지만, 사제가 부족하고 80살이 넘어도 은퇴하기가 힘든 이유이다. 다행한 것은 성당 밖에서 종교행사를 금지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신앙 활동의 자유를 점차 확대하는 등 유화적 입장에 있다.
참고: 가톨릭 평화신문 자료;인터넷 자료
입력:최 마리 에스텔 수녀;2025년 1월 18일;AM 1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