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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인조의 후손으로서
헌종은 인조-효종-현종-숙종-경종,영조-사도세자-정조-순조-효명세자-헌종
철종은 인조-효종-현종-숙종-경종,영조-사도세자-은언군-전계군-철종
고종은 인조-인평대군-복녕군-의원군-안흥군-이진익-이병순-남연군-흥선군-고종
헌종과 철종은 7촌...헌종과 고종은 그냥 18촌이 맞나요? 확실한 촌수를 알고 싶어요...
그리고 철종과 고종의 촌수도 알고싶습니다.
모두 인조의 후손으로서 헌종은 인조-효종-현종-숙종-경종,영조-사도세자-정조-순조-효명세자-헌종 철종은 인조-효종-현종-숙종-경종,영조-사도세자-은언군-전계군-철종 고종은 인조-인평대군-복녕군-의원군-안흥군-이진익-이병순-남연군-흥선군-고종 헌종과 철종은 7촌...헌종과 고종은 그냥 18촌이 맞나요? 확실한 촌수를 알고 싶어요... 그리고 철종과 고종의 촌수도 알고싶습니다. |
영조 이후 왕과 왕족들의 촌수 계산하기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헌종대에서 왕통이 끊기면서 가장 가까운 왕족인 7촌인 철종이 왕위에 오르시고,
그것도 왕통이 다시 끊겨서 헌종과는 촌수가 아주 먼 종친이었던 흥선군의 아들인 고종께서 왕위에 오르셨습니다. 따라서 헌종과 고종은 그냥 18촌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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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iro1님 11.05.22
왕족이어도 8촌이 넘으면 친족이 되고 다시 멀어지면 같은 종씨의 일가가 되는 것으로 고종의 조부되는 이구도 왕족이라 할 수 없는 멀어진 왕족으로 전주이씨에 불과하여 군호를 받지 못하는 그냥 전주이씨 일 뿐이 었습니다 그런데 족보에 왕족과 3대를 접근 시키는 양자 입적으로 하여 남연군이라는 군호를 받아 왕족이 된 것입니다 흥선대원군은 아버지 남연군의 이러한 지략을 배워 철종과 가까운 인척으로 하기위해 다시 3대를 접근시키기 위하여 정조의 형제뻘 되는 역적으로 처형당한 은신군의 양자로 조상을 입적 시켜 아들을 왕위에 오르도록 아들을 다시 양자 입적시켜 왕위에 올려 고종이 되게 한 것입니다. 신고
사진으로 가계도를 풀어보겠습니다.
[헌종의 가계도]
위의 가계도가 헌종의 가계도입니다. 21대 영조의 고손자인 효명세자의 아들이죠. 헌종은 24대입니다.
[철종의 가계도]
위의 가계도가 철종의 가계도입니다. 철종의 할아버지는 은언군으로 정조의 이복동생입니다. 숙빈임씨 소생이죠. 철종은 영조의 고손자입니다. 안동김씨가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계대원군의 아들로 하여금 왕위를 잇도록 하였죠.
[고종의 가계도]
위의 가계도는 고종의 가계도입니다.고종은 인조의 삼남 인평대군의 육대손인 남연군의 아들 흥선군 이하응의 아들으로 남연군이 순조 때 은신군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어 인조의 혈통을 잇고 있다가 영조의 혈통으로 바뀌게 된 것이죠. 빨간색 선이 양자라는 것입니다. 잘 안보이네요.
[촌수]
모든 사람은 인조로부터 이어지죠.(후기의 왕일 경우) 효명세자의 양자가 고종입니다. 은신군의 양자는 남연군이고요. 이렇게 양자로만 봤을 때에 철종과 고종은 멀지는 않지만, 양자가 아니면, 매우 멉니다 .이 그림을 바탕으로 촌수 계산 해보세요. 부자간은 1촌, 형제간은 2촌 조카,숙부간은 3촌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요.이것도 잘 안보이네요.
펌 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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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촌수는 일반적인 촌수와 다릅니다. 권력다툼으로 인해 왕통을 무시하고 수렴청정을 한 대왕대비들이 후대 왕을 양자로 입적시켰기 때문입니다. 헌종과 철종의 관계는 7촌지간입니다. 철종이 후대 왕이지만 헌종의 7촌 아저씨 뻘입니다. 이는 전통적으로 왕통이 이어지던 것과과 역행하는 행위입니다. 촌수 높은 사람이 후대왕이 되었으니까요. 이는 후사가 없던 헌종의 사후, 후대 왕을 옹립하기 위한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력다퉁이 치열해 당시 정치적 상황이 매우 급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강화도에서 유배생활 중이던 철종은 순원왕후(순조비)의 양자로 입적해 조선 제 25대 왕이 됩니다. 철종은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의 손자입니다.
인평대군의 6대손인 남연군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이자 고종의 할아버지입니다. 남연군은 후사없이 죽은 철종의 작은 할아버지 은신군의 양자로 입적해 철종과 흥선군은 6촌지간이 됩니다. 흥선군이 철종보다 11살 많은 형입니다. 흥선군은 헌종의 어머니이자 효명세자의 부인인 조대비(후에 신정왕후)와 밀약해 자신의 아들(재황)을 후사가 없는 철종의 후대 왕으로 만드니 바로 조선 제 26대 왕 고종입니다. 조대비 또한 시어머니인 순원왕후가 했던 방법 그대로, 고종을 자신의 양자로 입적 시킵니다. 고부 간인 두 대왕대비(안동 김씨 순원왕후, 풍양 조씨 신정왕후)가 가문의 사활을 건 세력다툼으로 왕통을 무시하고 서로 후대왕을 양자로 입적시키니 결국 헌종과 철종의 왕통이 끊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