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제주가 감춘 ‘언더랜드’ 동굴의 오싹한 매력
‘출입금지’ 만장·벵뒤굴 언론 공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보물공간 탐험
온도 12~15도 유지되는 천연 에어컨
밧줄 구조 등 용암 동굴 특징 뚜렷
2층 구조로 된 제주 김녕굴의 내부 모습. 제주/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숨겨진 ‘언더랜드’ 속으로 들어갔다. 깊고 어두운 그곳에는 냉기가 흘렀다. 서늘한 적막을 깨고 “똑 똑 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지난 7일 낮,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있는 만장굴.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동굴의 입구가 열렸다.
문화재청이 10월에 여는 ‘2021 세계유산축전―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10월1~17일) 행사를 앞두고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제주 용암동굴을 언론에 공개했다.만장굴은 제주말로 ‘아주 깊다’라는 뜻으로, 총길이가 7.4㎞이다. 8천년 전~1만년 전에
생성된 이 굴은 1946년 김녕초등학교 교사 부종휴씨가 발견해 세상에 알려졌다. 만장굴은 세 구간(1~3구간)으로 나뉘는데,
현재 동굴 훼손 우려와 안전 문제로 1구간의 1㎞만 관람이 가능하다.
만장굴 2구간의 상층굴에 있는 계곡 지형. 제주/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이날 상층굴과 하층굴로 이루어진 2구간의 상층굴에 갔다. 조명이 없는 이 공간에서는 헤드 랜턴이 달린 헬멧을 써야 동굴
내부를 볼 수 있다. 동굴 바닥은 울퉁불퉁했다. 천장에서 떨어진 암석인 낙반이 많았다. 한 발 한 발 조심히 걸으며 바닥을
보니 밧줄을 한 올 한 올 꼰 듯한 모양이 보였다. “용암이 흘러갈 때 표면이 먼저 굳으면서 밀려 밧줄 모양이 된 것”이라며
“용암동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밧줄 구조”라고 기진석 학예연구사가 설명했다.
만장굴 곳곳에서 화산 폭발로 생긴 용암동굴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벽면에는 자로 잰 듯 반듯한 가로선이 여러 개 있었다.
용암 유선이다. 동굴 속을 흐르는 용암의 양이 줄어들면서 벽면에 남은 ‘세월의 흔적’이다. 동굴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브이자(V) 모양의 계곡 같은 지형이 나타났다. 용암이 만든 동굴 밑으로 또 다른 용암이 지나간 뒤 무너지면서 생긴 형태다.
그곳에는 낙반이 쌓여 있었다. 만장굴의 낙반은 대부분 현무암질 암석이다. 한쪽에는 낙반 위에 그물망을 덮어두었다.
낙반이 계속 생기는지를 관찰하려고 그물망을 설치한 것이다.기 학예연구사는 “만장굴은 생긴 지 만년 가까이 지났지만
밧줄 구조, 용암 유선 등 생성 당시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며 “용암동굴의 형성과정을 연구하는 학술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동굴이다”라고 말했다.
만장굴 천장을 뚫고 자라는 식물의 뿌리. 제주/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만장굴 2구간의 상층굴에서 볼 수 있는 밧줄 구조. 제주/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암흑의 동굴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1m 넘는 가늘고 하얀 줄이 보였다. 무슨 줄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식물의 뿌리였다. 동굴의 암석을 뚫고 뿌리가 자라고 있다니. 동굴의 안과 밖을 잇는 생명체가 만든 진기한 풍경이었다.동굴은 천연 에어컨이다. 여름의 더위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시원하다. 동굴 밖의 온도는 30도에 가깝지만 이곳의 온도는 12~15도를 가리킨다.
어둡고 고요한 분위기도 서늘한 느낌을 준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동굴의 에이에스엠아르(ASMR)’까지 더해 오싹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여름마다 동캉스(동굴+바캉스)를 즐기는 이들이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헤드 랜턴을 끄니 동굴 속은 완벽한 어둠으로 변했다. 빛 공해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어둠은 생소하다.
어둠 속에 있으니 청각과 촉각이 곤두섰다. 가만히 동굴의 소리를 들으며 냄새를 맡자니 만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곳의 시간이 느껴지는 듯했다. 용암이 흘러 생성됐던 당시의 모습, 과거 횃불을 들고 이곳을 발견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곳 만장굴은 거문오름에서 나온 용암에 의해 만들어진 동굴이다. 이 동굴을 거문오름용암동굴계라고 부른다.
거문오름용암동굴계에 포함되는 동굴은 만장굴뿐 아니라 벵뒤굴, 웃산전굴, 용천동굴 등 20여 개다. 독특한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이날 만장굴뿐 아니라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미공개
동굴들을 탐방했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벵뒤굴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미로형 동굴이다. 입구가 좁아 허리를
숙여 들어가야 한다. 이 굴은 용암의 흐름 과정, 미로형 용암동굴의 생성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학술 가치를 지닌다.
벵뒤굴은 제주의 아픈 역사도 품고 있다. 4·3 당시 토벌대를 피해 온 사람들의 은신처였다. 동굴 안에는 당시 외부에 빛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피신한 사람들이 쌓은 돌무더기가 남아 있다고 한다. 김태욱 ‘2021 세계유산축전’ 총감독은 “벵뒤굴은
지질학적 가치도 높지만 자연이 제주 사람을 품어준 상징적 공간으로서의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동굴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했다. 벵뒤굴 근처에 있는 북오름굴과 웃산전굴 사이에 용암동굴이 무너져 내려 생긴 붕괴 도랑 구간이
있다. 붕괴 구간에는 동굴의 천장이 없고 동굴 옆면이 남아 있다. 그 옆면에는 용암 유선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빛에 노출된 벽면에는 다양한 이끼가 있었다. 땅이 아닌 동굴 암석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나무들이 보였다.
동굴의 천장이 무너져 생긴 용암교. 제주/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동굴이 무너진 자리에 생긴 용암교도 보였다. 용암교는 동굴 천장이 무너진 자리에 다리 모양으로 남은 용암 지형이다.
용암교 아래에 있으면 양쪽으로 뚫린 공간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어둠과 빛의 대비는 신기한 풍경을 만든다.
용암교 주변에 자라는 울창한 원시림도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비공개 구간으로, 출입이 제한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의 민낯이다.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와 〈킹덤3〉를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김 총감독이 귀띔했다.이날 동굴 해설을 맡은 김상수 워킹투어 운영단장은 “동굴 입구 주위에는 이산화탄소가 많고 습해 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다.
그 주변에는 큰 나무들이 많다. 이 나무들이 자라면서 동굴 벽면의 돌을 밀어내 틈이 벌어지고 있다. 동굴 천장이 무너져
노출된 용암 유선은 빛이나 공기 때문에 산화돼 색이 점점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굴 주변에 있는 나무들. 제주/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용암동굴의 시작점인 거문오름 전망대에서 본 제주의 전경 . 제주/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동굴 탐사를 하니, 습하고 어두운 공간으로만 생각했던 동굴의 다양한 모습이 보였다.
동굴은 지질학적 시간의 역사, 전설 등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로버트 맥팔레인 작가는 〈언더랜드〉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는 두렵기에 버리고 싶고, 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것들을 언더랜드로 가져갔다”라고 말했다. 땅 위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과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지하 세계, 동굴에서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동굴을 둘러보고 가는 길, 기 학예연구사가 “발아래를 쿵쿵 밟아보라”고 했다. 발아래 텅텅 빈 느낌이 났다.
그 아래에 동굴이 있어서다. 발밑 세계가 발끝으로 느껴졌다.일반인도 이 미지의 거문오름용암동굴계 동굴을 탐방할
기회가 있다.
‘2021 세계유산축전’에서는 10월(2일, 6일, 8일, 13일, 15일)에 다섯 차례 개최하는 ‘벵뒤굴 특별탐험대’(1일 5회, 회당 6명
모집)와 ‘만장굴&김녕굴 특별탐험대’(1일 5회, 회당 10명 모집) 참여 신청접수를 8월12일에 세계유산축전 누리집(www.worldheritage.kr)을 통해 진행할 예정이다.
제주/글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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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1004807.html#csidx87008094b0c674d83aa200d07fc21c3
첫댓글 제주도에 가면 꼭 동굴탐험을 해 보아야 겠어요.
좋은 정보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