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 모든 중생이 다 한 가지 성품이다 / 청화 큰스님
*성륜사(聖輪寺) 법성당에서(2001년 11월29일)
청화(淸華)큰스님이
제방스님과 재가불자에게 설하신 동안거 결제 법어입니다.
먼저 이치로 들어가야
오늘 같이 이렇게 음산한 날씨에는 저희같이 고희(古稀)가 넘고
팔십이 가까운 사람들은 한결 심각하게 인생의 허무를 느낍니다.
부처님 공부는 조금도 무리한 공부가 아닙니다.
본래대로의 공부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본래대로 있는 참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번뇌 망상을 일으키고 거기에 따르는 업을 짓고,
인생고의 여러 가지 재난을 스스로 지어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방금 여러분들이 들으신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은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
“귀의일체삼신자성불(歸依一體三身自性佛)”하라,
또는 “삼보(三寶)에 귀의(歸依)하고 반야바라밀(般若波羅密)을 깨닫고”
하는 그러한 가르침이 육조단경의 중심 사상입니다.
여러분도 대체로 아실 분은 아시겠습니다만
이 참선(參禪)은 달마스님 때부터서,
근본 가르침은 부처님 당시부터 있어 왔지마는,
적어도 문자(文字)를 배제(排除)하고
오직 마음만 닦아야 한자는 그런 가르침은 달마스님 때부터서
특히 역설 강조해 왔습니다.
달마스님 가르침의 핵심은 이입사행(二入四行)이라,
두 이(二)자, 들 입(入)자, 넉 사(四)자, 행할 행(行)자입니다.
먼저 이입(理入)이라는 것은 다스릴 이(理)자, 들 입(入)자,
이치로 먼저 들어가고, 다음에 행입(行入)이라,
행할 행(行)자, 들 입(入)자, 우리가 실천궁행(實踐躬行)으로 해서
이른바 행동에 옮긴단 말입니다.
이치(理致)로 들어간다고 하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달마 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면
“일체중생(一切衆生) 동일진성(同一眞性)이라”
일체 모든 중생이 다 한 가지의 성품(性品)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상식적으로 중생(衆生)이라 할 때는
사람만 중생이라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는 일반 동물만 중생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지마는
부처님 가르침은 그 보다 훨씬 더 광범위합니다.
중생 그러면 이것은 유정중생(有情衆生),
동물적인 유정중생은 다시 말할 것도 없고,
또는 무정중생(無情衆生)이라, 동물이 아닌 식물이나
그런 것이 모두가 다 중생 가운데 포함됩니다.
또는 무색중생(無色衆生)이라,
모양도 없지마는,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관념(觀念)이라든가,
우리의 사고(思考), 이 모든 것도 역시 무색중생(無色衆生),
없을 무(無)자, 빛 색(色)자, 모양이 없는 중생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중생 그러면 유정중생과 무정중생 또는
무색중생 다 포함해서 중생이라 합니다.
그래서 “일체중생(一切衆生) 동일진성(同一眞性)이라”
참 진(眞)자, 성품 성(性)자, 동일진성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하면
일체중생이 모두가 다 하나의 성품이란 말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현상적인 상(相)만 보기 때문에
우리 중생과 깨달은 분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면,
우리 중생은 현상적인 상만 보는 것이고,
깨달은 분은 근본성품(根本性品)을 봅니다.
바다에 비교하면 바다 물결만 보는 것이 우리 중생인 것이고,
깨달은 분들은 그 물(水)자체(自體)를 봅니다.
그 성품(性品)을 봅니다.
앞서 말씀과 같이 중생 그러면 이것저것 다 포함 되는 것인데
다시 말씀 드리면 현상계(現象界) 모두가 다 중생에 포섭이 됩니다.
“이런 중생이 동일진성이라” 하나의 참다운 성품이란 말입니다.
참 진(眞)자, 성품 성(性)자, 진성(眞性)이란 말에는
여러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법성(法性), 법신(法身), 불성(佛性), 불심(佛心),
또는 자성(自性), 본래면목(本來面目) 등
이러한 것이 모두가 다 참다운 성품(性品)에 해당 합니다.
그때그때 조사(祖師)님들이 우리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서
말씀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표현이 되지마는
뜻은 똑 같고 표현만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일체중생 동일진성이라“는 달마 스님 말씀은
모든 것이 다 하나의 성품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범부들은 자꾸만 분할해서 갈라서 봅니다.
내가 있고 네가 있고, 미운 것이 있고 좋은 것이 있고,
이렇게 나누어 보는 것은 중생심으로 보는 것입니다.
성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본래대로 성품을 본다면
모두가 다 하나란 말입니다.
범부와 성자는 그러한 구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삼동결제를 해서 공부를 하는 것도
우리가 잘못 보는
우리 범부중생(凡夫衆生)의 망념(妄念)을 떠나서
모든 생명의 본래자리,
우리가 실상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공부입니다.
-淸華 大宗師 『마음의 고향』-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