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에 보면 모든 만물을 지으시면서 좋았더라~~~~!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말씀하셨을까?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날에는 심히 좋았더라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만물보다 더 좋은 작품 이것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은 심히 좋았을까요?
당신을 닮은 사람을 만드시고 심히 좋았더라 참 좋았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간은 이렇게 존귀하고 소중한 보배로운 존재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어떤 모습입니까? 엡4:23-24에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을 본 받아란 듯입니다. 의와 진리 거룩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온전히 함께 하셔서 다스려 주십니다. 우리 구원의 최고봉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얼마나 기뻐하셨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치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더러 어서 돌아 오라고 나즉히 속싹이며 부르십니다
본래의 모습으로 선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흉칙한 탈을 벗고 돌아 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형상화하여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때 에덴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며 여기에 인간이 회복해야만이 완전 회복이 옵니다
우리 모두 처음을 회복하여 하나님이 심히 좋았더라 말씀하신 대로 돌아갑시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었다. 왜? 더 이상 하나님의 권위을 인정하지 않겠다. 그렇게 그 권위에 순종하지 않겠다. ....그리스도인 조차도..
창세기6; ,,,하나님의 한탄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왜곡된 시대에 살고 있다.
자신이 왕이고, 자기의 운명의 결정자이며 자신 보다더 위대한 존재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사기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자신의 삶이 바람에 날려 없어질 풀잎이나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안개와 같다는 것을 알지 못한채 환상에 갇혀 살아간다.
아리스도 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 이라고 했다. 인간는 이미 정치적 입장을 정해놓은 존재라는뜻도 된다.
다른사람니 보수든 우파든 상관 없이 오직 자기편 소리만 든는다. .즉 다른사람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바른 소리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죄란?
죄는 그 근본적인 의미에서 하느님을 거역하는 것을 말한다. 에덴동산의 이야기를 보면 죄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잘못 행사함으로써 생겨났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뜻을 거역한 데서 시작되었다.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어겼을 때 가차 없이 형벌이 다가왔습니다. 아담은 죄를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죄를 짓고도 평안하게 지낼 줄 알았는데 죄의 결과가 너무나 엄청나서 아담과 하와는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을 느꼈을 것입니다.
창3: 10절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그렇게 하나님과 다정하게 지내던 그들이 죄를 짓자마자 벌거벗은 수치를 피할 수가 없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고 하나님이 두려워졌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반갑고 즐겁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소망차고 기뻤는데 죄를 짓자 하나님이 두려워지고 무서워지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숨을 수밖에 없는 비극이 다가온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결과는 당장 그들 생활 속에 수고와 가난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창 3:17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저주는 수고와 고생의 삶을 가져온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자 하나님은 가차 없이 그 죄의 결과로 땅이 저주를 받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육체적인 죽음이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질병과 노쇠와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창 3:19에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얼마나 허무맹랑한 말입니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과 즐겁게 지내며 죽음이란 그림자도 없던 그들에게 갑자기 죽음이 다가온 것입니다. 그들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선언을 받을 때 그 비극적인 심정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미국의 시인 롱펠로는 "모든 범죄는 그 속에 천벌과 사라지지 않는 고통의 씨를 지닌다."고 말했습니다. 죄에는 반드시 형벌이 따릅니다
이렇게 죄는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거스르는 상태와 행동을 말한다.
죄의 기본적인 결과는 하나님과 죄를 지은 인간 사이의 친교가 단절된다는 것이다. 이때 인간은 영적으로 피폐해진다.
롬2;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근심과 재난]과 곤고[어렵고,고생스럽다]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삼 상 16 :14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죄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파괴하기도 하지만 인간들 상호 간의 관계를 왜곡시키기도 한다
죄는 언제 짓는냐?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은 유다에게 그리고 그 전에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내려주고 싶어하시는 분이 아니였습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선지자를 보내어 그 뜻을 돌이킬 수 있도록 그들이 겸비하여 악한 길을 떠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기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이 보낸 선지자들을 죽이고 때리고 핍박하고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거부하고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스스로 자부했던 그들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거절한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했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22절 말씀을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22절에 하나님께서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프다"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예레미야 4장 19절
전쟁을 피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었는데 선지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음으로 돌이킬 수 없는 전쟁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에 대한 깊은 슬픔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 슬픔의 감정은 사실 선지자의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감정이십니다.
사람은 원래부터 하나님을 아는 존재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롬 1:18-20)
모든 죄악이 생긴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할 지식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호세아 6장 3절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토저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그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를 더 잘 아는 것이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호한 마음에 결단을 하고 죄와 싸워서 죄를 물리치고 죄를 짓지 않고 살기로 마음에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돼요. 마음에 결단을 하지 않고 그냥 좌로 우로 늘 치우치면 안돼요.
요일 3:6에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아니하나니 범죄 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은 죄를 누룩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누룩은 부패의 씨앗입니다. 죄는 인간을 총체적으로 부패하게 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합니다. 썩은 것에 쉬파리, 구더기가 득실거리듯 죄가 있는 곳에 마귀와 귀신들이 득실거리는 것입니다.
요일 3:7~8절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유대인들은 아주 긴 세월 동안 온갖 박해를 받았지만, 최고의 재능과 지능으로 최대의 기회를 활용한다. 어떻게 ...하나님을 이해 하시 위하여 [성경]공부하고. ,스스로 [배움] 글을 통해 ...더 이해,발견 하는 것 ...그래서 그들은 더 절실하고 강하다.
랍비들의 책인[선조의 어룩[Pike Avot] dp 이런글 . 배움 자체를 위해서 배우고자 하는자는 하나님은 배울수 있는 기회만 주신다.
*'배우러', '배우려', '배우려고'의 표현 차이우리말 바로 쓰기'배우러'의 어미 '-러'는 가거나 오거나 하는 동작의 목적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이고, '-려'와 '-려고'는 어떤 행동을 할 의도나 욕망을 가지고 있음 또는
겸손한자..하나님의 긍휼,,,은혜,,축복을 받습니다. ...항상 배우고 고치려고 합니다.
최민수씨 아내 강주은 아내인터뷰 자녀의 휼룡한 교육 ....아이들에게 가정에 대한 예절 가르치는데,,,밖에서는 누가 도움을 주고 ,,받으면 감사 합니다...집에 오면 부모에게 그렇게 하지 않더라 “당연하지”그래서 그런지...이것 아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아무리 가까운 가족일지언정 무엇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꼭 고맙다는 말을 해야한다고 가르쳤다. 당연한 건 없다. 감사의 표현은 가족에서 시작된다"고 전해 [서로 노력 해야 한다]
가정을 모두 잡을 수 있는 비결로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인테뷰 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사람인가?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수많은 소리와 사상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권위는 성경이다.
이제 하나님의 말슴을 듣는사람 ,,내 삶의 방식을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로 한사람 말씀을 통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이다.
바울이 베뢰아 교인을 칭찬한데는 까닭이 있다,. 그들은 바울의 설교을 간절한 마음으로 듣고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연구 하였다. 최고의 권위는 바울이 아나라 하나님의 말씀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