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
초기 힌두교 : 다양한 종교의 합일
힌두교는 하나의 단일한 종교라기 보다는 다양한 성격의 종교가 섞여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것은 각자의 카스트에 부과되는 규칙과 제의를 충실하게 준수하려 한다는 점, 또 그렇게 해야 내생이 더 행복해지리라고 믿는 것이다.
베다시대의 종교
1. 역사적 배경
아리아족이 들어오기 이전에 다사족(Dasas 혹은 Dasyus)이 인더스강 유역과 인근 지역에서 기원전 2천년 이전부터 고대 문화를 형성하며 살고 있었다. Mohenjodara 유적은 그 문명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들 다사족은 業(Karma)과 윤회사상을 맹아적으로 내포하고 있었고 모신과 동물, 풍요의 신(힌두교 쉬바 Shiva의 초기 형태라는 가설도)을 숭배했다. 그러나 문자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 문명의 실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기원전 20세기 중엽 복합인종집단인 아리아족이 남하 인도의 서북평원으로 진출하여 먼저 인더스강 상류에 정착해 부락을 이루며 살기 시작했다. 이 때 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 경제구조가 바뀌었다. 이들은 소마(Soma)를 제조하여 신들에게 바쳤다. 한편 아리아족과 다사족, 그리고 아리아족 내부의 전쟁이 있었다. 이 전쟁은 [라마야나(Ramayana)]와 [마라바라타(Mahabharata)]에 전해진다. 아무튼 전쟁의 결과로 인더스강 지류 5대 강 유역을 아리아족이 점령하게 된다.
아리아족 각 부족에는 라자흐(rajah)라는 세습제 왕 혹은 족장이 있었다. 베다 시대 막바지에 이들 라자흐의 권력이 급성장했다. 라자흐 주변에는 많은 사제들이 있었고, 전사, 사제, 농민과 목축민으로 신분이 구분되었다. 종교적으로는 공희제가 발전하고, 민담 및 서사물이 생겨나면서 종교사상도 풍부해졌다. 힌두교의 첫 성전인 삼히타(samhita, 집성)도 만들어졌다.
2. 베다의 구조와 내용
리그-베다(Rig-Veda), 사마-베다(Sama-Veda), 야주르-베다(Yajur-Veda), 아타르바-베다 (Atharva-Veda) 등을 일컫는 베다는 "성스러운 지식"이라는 의미로, 영어의 wit 및 wisdom, 희랍어 오이라, 라틴어 video, 독일어 wissen과 같은 어원이다. 이들 베다 문헌은 대단히 복잡하다. 후대에 네 권의 베다 각각에 하나 이상의 브라흐마나(Brahmana; 일종의 지침서)가 덧붙여졌다. 여기에 다시 브라흐마나를 보충하여 아라니아카(Aranyaka) 또는 [숲의 書]라는 것이 덧붙여졌다. 그 후 철학적 논의가 보충되었는데 그것이 우파니샤드(Upanishad)다. 이 우파니샤드는 특별히 베단타(Vedanta; 베다의 마지막 결론 부분이라는 뜻)로 칭하기도 한다. 이 문헌들은 모두 쉬루티(Shruti: 귀로 들은 것)에 속한다. 즉 계시를 받아 씌어진 성스러운 문헌이라는 뜻이다. 이후의 문헌은 모두 스므리티(smriti; 기억에 의한 것)라고 한다. 즉 계시에서 파생되었지만 인간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수트라(sutra), 샤스트라(shastra), 서사시 Mahabharata, Ramayana, purana, tantra 등이 이에 속한다.
리그-베다는 "찬송절구의 베다"라는 뜻이다. 전 10권으로 된 종교 시집으로 베다 시대 이전부터 당시까지의 종교행위를 반영하고 있다. 리그-베다는 구전으로 전해졌던 것들로 주로 지상, 천상, 가까운 대기에 거주하는 한 신 혹은 여러 신에게 바치는 기도문이었다.
공희제의의 발전에 따라 사제들이 등장했다. 아드흐바리우(adhvaryu)는 제의를 분비하고 경문을 낭송하는 사제였다. 호타르(hotar)는 獻酒와 招神을 맡았고, 아그니드흐(agnidh)는 공희의 불을 지피는 사제였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브라흐민(brahmin)이 제의를 주재하는 사제가 되었다. 브라흐민은 성스러운 청원 중 가장 중요한 brahman(기도)을 읊는 사제였다. 이 브라흐만이라는 용어는 "성스러운 말씀", "성스러운 지식", "주문" 등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새로운 신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공희제의가 행해지고, 역으로 새로운 공희제의에 의해 새로운 신화가 생성되기도 했다. 공희제의는 인간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 행하는 것으로, 제의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Agni, Soma, Brihaspati 등 신이 찾아와 힘을 발휘해 줄 수 있어야 했다. 한편 제의가 신뿐 아니라 우주 전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일어나면서 우주적 차원의 신도 등장한다. 그것은 우주 자체도 태초의 어떤 공희사건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믿게 된 것과 연관된다. 베다나 해설서 브라흐마나와 우파니샤드를 보면 우주는 원래 어떤 태초의 소나 말, 또는 인간이었는데, 그것이 원초의 사건에서 제물로 바쳐졌고, 그 몸이 해체되어 세계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리그-베다는 태초의 인간 푸루샤(Purusha)가 신들을 시켜서 자신을 제물로 바치게 했다고 한다. 金卵, 또는 金胚라는 히라니아가르바(Hiranyagarbha)로부터 창조주 프라자파티(Prajapati)가 탄생했다고도 한다. 태초의 공희로부터 전체 세계가 비롯되었다고 하는 송가들도 있다. 즉, 만물의 기원을 서술하는 신화가 제의에 바탕해서 탄생했던 것이다.
Indra는 인도 북서부 지방의 신으로, 중간 하늘의 신들을 지배하는 폭풍의 신, 건기를 끝내는 몬순의 신, 전쟁의 신이다. 벼락불 바즈라(Vajra)를 거머쥐고 있으며, 가뭄을 일으키는 용 브리트라 (Vritra)를 격파했다. Rudra는 쉬바의 초기 형태의 신이다. 무서운 산신으로 히말라야의 눈으로부터 무서운 폭풍을 몰고 내려오는 사나운 신이며 약초를 관리하는 신이라고도 한다. 이 신은 공포와 외경, 애원하는 태도를 갖게 한다. 한편 약초를 관리한다는 것은 쉬바의 속성인 재생의 능력과 연결되었다.
단 세 걸음에 지상과 대기, 하늘을 모두 장악하여 세상을 밤에서 꺼내주었다는 Vishnu는 루드라와 함께 다른 베다의 신들을 누르고 힌두교의 주요 신이 되었다. Yama는 죽음을 겪어 본 최초의 인간으로, 죽은 사람을 심판하고 통치하는 신이 되었다. 조상숭배의 관념과 관련된 신이다. Varuna는 도덕적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신이다. 원래 원래 天蓋의 신이었으나 자연법칙의 영역까지도 관리하는 신으로 여겨졌다. 바루나는 질서를 유지하고, 죄악을 폭로하고 참과 거짓을 심판하며 제의주의 ritualism를 수호하는 신이다. 이 신은 충성 및 약속이행의 신 미트라와 우주의 신비적 원리를 추상적으로 개념화한 Rita와 연결된다. 리타는 우주 삼라만상에 내재하는 원리이다.
한편 예배의식의 신들도 있었다. 불의 신 Agni는 제의의 불을 관리하고, 죄를 씻어주며, 악마를 몰아내어 화로 주인의 집을 보호하고, 인간을 인도하며, 신부의 정신적 남편이자 신랑의 형제로서 결혼을 성화하고, 신과 인간을 중재하는 사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아그니가 임재하지 않으면 공희제의는 유효할 수 없다고 믿었다. Soma는 소마 식물의 즙에 깃든 신이다. 제의에서 소마를 초빙하는 절차가 제의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신이 앉아있다고 생각되는 자리에 소마즙을 붓고 제사를 지내는 사람도 그것을 마시며 찬양했다. 성스러운 기도문의 신성한 힘을 가리키는 Brahmanaspati는 기도문을 음송할 때 행위가 발휘하는 신성한 힘으로, 신의 마음을 움직여 기도하는 자에게 호의를 베풀도록 하는 역할이었다. 이는 브라흐만(기도문)을 올바로 외우는 일의 중시와 관련된다.
이외에 리그-베다에는 바람의 신 Vayu, 광폭한 폭풍의 신 Marut, 여명의 신 Ushas(희랍의 Eos), 우샤스의 남자 시종 Asvin등이 있었다.
힌두교도는 적어도 그 신에게 기도할 때는 그 신을 가장 중시하므로, 자기들의 신 모두를 가장 높은 존재라고 여기는 일종의 교체신관(henotheism)을 가지고 있었다.
그밖의 베다들은 리그-베다의 부속물이다. 우선 산문으로 구성된 Yajur-Veda는 탄원, 기도, 간구에 사용되었고, 운율있는 詠唱을 모아놓은 Sama-Veda는 주로 소마 공희에서 사제가 사용했다. 그 가사 대부분은 리그-베다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Atharva-Veda는 공포, 근심, 분노, 증오, 육체의 고통, 또 그것을 치유하려는 인간의 노력 등 리그-베다에서 소홀히 다룬 체험들을 여러 가지 주문으로 표현했다. 이것은 평민들이 가정과 부락에서 행하는 것으로 축복과 저주의 주문을 많이 담고 있고, 악을 제거하는 주문과 미워하는 이에게 해를 끼치는 주문도 포함했다. 특징적인 것은 인간 육신의 생명기관, 분비작용, 골격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정확히 묘사했다는 것이다.
베다 시대가 끝날 즈음 사제의 숫자와 세력이 늘어났다. 사제들은 종교생활과 지식추구를 전업으로 했다. 한편 그 때부터 전체 만물 속에서 통일의 원리를 찾으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므로 리그-베다중 후대의 송가에서는 갑자기 비쉬바카르만(Vishvakrman, 우주의 주재자), 프라자파티(Prajapati, 생물의 주재자, 창조주), 푸루샤(Purusha, 최초의 인간) 등이 등장한다.
제 10권의 129번째 송가는 위대한 우주적 실재를 언급하는데 "유일물"이라고만 지칭했는데, 그것은 우주 있기 이전에 존재한 중성적인 원리 내지는 활동를 가리틴다. "존재(Sat)도 비존재(Asat)도 없었다. ... 유일물은 공기로 숨쉬지 않고 아직은 스스로 숨쉬고 있었다. ... 유일물 속에서 욕망이 꿈틀거렸다. ... 신은 이 세상이 창조된 후에야 나타났다. ...
베다시대 끝날 무렵 사제들의 철학적 자질이 크게 개발되어 세상과 만물의 기원을 알려는 충동으로 이어졌다.
브라흐마니즘
기원전 7세기 말엽 아리아족이 갠지스강 유역을 점령하면서 아리아인이 상위층을 차지하고 그 밑에 다른 종족들이 자리잡았다. 이 계급 구조는 사제계급 Brahmin, 지배계급 Kshatriya, 평민 Vaisya, 노예 계급 Shudra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지배 귀족층과 브라흐민 사이의 권력 다툼이 치열했으나 점령 과정에서 귀족층의 분주함을 틈타 브라흐민이 권위를 증진시켰다. 나중에는 브라흐민들이 신보다도 더 중요한 지위에 있다고 주장하기조차 했다. 聖語는 일단 낭송되면 강력한 주술 효과를 발휘하므로 신도 거기에 복종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제들은 권력의 중심은 자신들이라고 주장했다.
브라흐마나는 네가지 베다에 붙는 사제들의 지침서이다. 리그-베다에는 아이타레야(Aitareya), 카우쉬타키(Kaushitaki), 白 Yajur-Veda에는 사타파타-브라흐마나(Satapatha Brahmana), 黑 Yajur-Veda에는 타이띠리야-브라흐마나(Taittiriya Brahmana), Sama-Veda에는 8가지의 브라흐마나, 아타르바-베다에는 고파타(Gopatha)이다. 원래는 사제학교의 사제 지망생들이 암기해야 하는 구술 지침이었다가, 기원전 300년 또는 그 이후에 문자로 기록된 후 자주 개정되었다. 일종의 브라흐민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으며, 예배에 대한 철학적 사상을 보여준다. 이 브라흐마나는 사제들이 자기의 제의를 발전시키고 해석하는 일에 몰두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제의가 강제력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창조의 힘까지도 갖는다고 생각했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공식적 의례는 곡식 추수 때, 보름과 초승, 초봄, 긴 우기, 가을, 戰勝 축제에서 왕을 성화할 때, 신을 불러 위무할 때 행해진다. 가장 긴 공희는 말(馬)의 공희인 아스바메다(Asvamedha)로 1년 이상 동안 걸려서 609마리의 동물을 모아 바친다. "아스바메다를 행하는 이는 모든 죄를 탕감받는다"라고 한다.
가정에서는 화롯불을 이용해 공희를 치루는데, 아침저녁으로 아그니에게 쌀이나 보리를 바치고 매달 오고이에서 조상 영들에게 pinda(빵)를 바친다.
후대에 올수록 우주의 통일된 원칙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의식이 공희제의 절차에 대한 지침과 뒤섞였다.
리그-베다 끝부분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창조관이 생물의 주재자 프라자파티가 우주의 인격적 창조자 브라흐마 스바얌부(Brahma Svayambhu, 自存하는 브라흐마)로 되는 등 다분히 일신론적인 내용으로 변화했다. 사색적 성향의 사제들은 기도문의 성스러운 힘이 우주 대사까지도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그 힘은 신과 인간 모두를 복종시킨다고 할 수 있으므로 결국 우주의 궁극적 원리는 그 힘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쳐 우주의 궁극적 원리를 브라흐만이라고 상정하게 되었다.
우파니샤드의 철학
기원전 3세기 경까지의 구비전승들이 베다에 부속되는 여러 문헌에 수록되었다. 우파니샤드는 "스승 가까이에 앉음", 즉 "궁극적인 지혜에 관한 토론"이라는 의미이다. 이 우파니샤드는 회상을 더듬어 얘기하는 대화형식으로 구성되며 반복되는 특징을 갖는다. 크샤트리아와 여성도 브라흐민과 함께 토론에 참여하는 것으로 극화되어있다. 이는 우파니샤드가 브라흐민에 의해서만 씌어진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특히 이원론적 색채가 있는 부분은 크샤트리아 계급이 쓴 것일 것이다. 크샤트리아 사람들은 아리아족의 과거 힌두교를 원형 그대로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외부세계도 하나의 분명한 실재로서 강력한 힘 갖고 있다는 관념에 바탕해서 풍요를 위한 제의와 주술의례 수행에 관심이 있었다.
우파니샤드는 금욕주의의 경향과 제의주의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의식을 없애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제의를 대신할 어떤 것을 찾아냄으로써 실제로는 제의주의에 반발한 셈이다. 제의 대신 찾아낸 것은 고행자와 현인 리시스(rishis)의 행동, 몸가짐, 신성이었다. 공희제의의 제물은 한편으로는 생물의 주관자 Prajapati(만물을 창조할 때에 제물이 되었던 Purusha가 제의 때마다 다시 제물로 바쳐지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프라자파티 자신이 제주로서 자기 몸을 스스로 제물로 바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사타파타-브라흐마나]에 이미 씌어 있다. 즉 "공희자=공희물=프라자파티" 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힌두교의 신앙생활을 관통하는 하나의 관념은 숲속 은자가 마음속에 간직한 종교적 열정 타파스(tapas)와 제장에서 타오르는 불은 같은 것이고, 베다의 송가를 마음속으로 되뇌이는 것도 그것을 제장에서 실제로 소리내어 음송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바깥에 존재하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부터 자아 내면에서 마음속으로 제의를 올리는 것으로 전환함으로써 제의의 내면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 결과 정신이나 자아, 인간 내면의 자아 아트만(atman)을 중시하는 경향이 대두했다. 내면의 아트만에 비해 육신, 자연계(prakriti, 질료)는 별로 가치 없는 것이고, 따라서 내면의 자아를 무시하고 자연계에 만족하는 것은 무지한 행위로 환상과 고통을 낳을 뿐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는 최선의 길은 자연계 및 그 안에서 감각과 정신으로 겪는 체험을 깨버리고 나오는 것, 즉 육신을 버리고 영혼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우파니샤드의 부분적 가르침이다. 그런 관점은 프라크리티 아트만의 이원론에 머무는 셈이므로 우파니샤드 사상가들은 아트만과 프라크리티를 대등하게 놓았다가 다시 그것을 하나로 묶는 관점(일원론)에 도달했다. 즉 사물 사이의 내적 연관성 모색에서 동등성, 동일성을 발견한 것이다. 최초의 사람, 또는 암소나 말이 자기 몸을 희생해서 해체함으로써 우주 삼라만상이 이뤄졌고, 이제는 역으로 그 각 부분을 다시 모음으로써 전체를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결국 하나로 묶인다. 그 존재의 근원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떤 근원의 존재, 또는 실재 속에서 만물이 하나가 된다는 점을 깨닫고 그런 신비로운 합일을 몸소 성취해서, 삼라만상의 겉모양만을 보고 그것이 모두 서로 다른 개체라고 여기는 환상에서 벗어나고자(moksha를 이루고자) 했다. 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존재를 브라흐만이라고 칭했다. 이는 베다적 용어(기도의 성스러운 힘)에서 궁극적 실재를 직접 지칭하는 것으로 발전한 것이다.
우파니샤드에는 브라흐만에 대한 분명한 정의 없이 매우 풍부하고 다양하게 묘사했다. 인격을 갖춘 일종의 신이라고 여기는 관념도 후대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인격적 지칭(그것)과 인격적 지칭(그이)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초기 구절에서는 브라흐만을 의례히 중성자, 주형, 만물의 근본으로서의 유일물로 이해했다. 후기의 우파니샤드에 오면 "그"와 "그것" 두 가지 대명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노정한다. "그"가 신이라면 "그것"은 초월이면서도 "신"을 내포한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인격자로 현현된 브라흐만(그)과 현현되지 않는 브라흐만(그것)을 구분하게 된다. "형상 있는 것은 비실재적이고 형상 없는 것이 실재적이다."([마이트리 우파니샤드])라는 것이다. 이처럼 형상화된 브라흐만이 형상화되지 않은 브라흐만보다 실재성이 약하다고 하는 관념이 후대에 와서는 maya 교리로 발전했다. 현현되지 않은 것이 현현된 사물과 존재 모두의 원천이며 근거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완전한 실재가 아니며 감추어진 브라흐만만이 완전한 실재이며 영구하다.
형상 없는, 동작 없는 존재가 가시적이고 변화하는 형상의 세상을 창조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우파니샤드는 현현되지 않은 브라흐만은 히라니아가르바(Hiranyagarbha, 金卵)를 만들어 창조력을 그 알에 담아주었다고 설명한다. 그 금란이 태초에 브라흐만의 바다에서 떠올라 창조의 신 Brahma가 되었다. 브라흐마는 브라흐만이 가진 呪力 maya를 사용해서 세상을 창조했다. 이 브라흐마는 주재자로서의 성격을 가진 인격신으로서 Ishvara(主)라는 명칭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어떤 구절에서는 이 명칭을 파괴의 신 Shiva와 보존의 신 Vishnu에게 부여하기도 했다.
후기 우파니샤드 몇몇에서는 두 브라흐만 구별 관념이 분명해져 인격신을 Saguna Brahman(속성을 지닌 브라흐만)라고 하고, 형상이 없고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으며 불멸, 무한한 브라흐만을 Nirguna Brahman이라고 하기도 했다. 니르구나 브라흐만은 묘사하기 어려워 "Neti, neti"(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사구나 브라흐만은 인간이 알 수도 묘사할 수도 있다. 니르구나 브라흐만이 더 궁극적인 것이고 사구나 브라흐만은 인간이 직접 접하는 외부 세계의 근원이 된다.
"그"와 "그것"으로서의 브라흐만은 모든 객체, 우리 외부의 모든 것, 감각에 의해 주어지는 모든 자연계의 구성요소가 되며 그 모두에 편재한다. 동시에 브라흐만은 내면세계 전체를 의미하므로, 인간의 영혼 자체, 영혼의 활동도 모두 그 유일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여러 가지 모습 중의 하나이다. 여기에서 내면의 자아는 atman이다. atman은 철학용어로, 육신, 감각기관, 정신상태와는 구별되는 깊고 안 보이는 자아이다. 즉 육신을 통해 활동하는 경험적 자아 jiva가 아니라 육신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초월적 자아이다. Brahman과 Atman은 사실상 하나이다.
이런 추론의 마지막 결론은 인간의 진정한 자아와 세계의 영혼 paramatman(보편적 아트만)은 하나라는 것이다. Chandogya Upanishad의 "Tat tvam asi"(저것(그것)이 당신이다!)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근본 영혼인 브라흐만이 인간 영혼을 형성하는 재료가 된다. 브라흐만은 모든 sat(존재)이며 cit(의식)이고 ananda(至福)인 동시에 그 정반대이기도 하다. 개개 자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브라흐만에 근거해 일어난다. 그러므로 외부의 실체인 브라흐만과 내부의 자아인 아트만을 동일시할 수 있고,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합치는 것(梵我一如)이 궁극적 실재이다. 주객 일치이다.
모든 우파니샤드가 이런 결론에 이르지는 않았다. 일신관에 머무는 것도 존재했다. 한편 브라흐만과 아트만의 합일체만이 진정한 실재이므로 우주는 그 실재의 환영이든가 한갓 "운동경기", "놀이", "예술"이라고 보는 후기 베단타 교리에까지 이르지 못한 우파니샤드도 존재했다.
우파니샤드 사상가들은 신비주의를 바탕으로 했다. 그들은 브라흐만과 합일하거나 브라흐만에 흡입될 수 있는 기술을 알고 있었다. 지극히 평정된 마음으로 앉아서 명상하는 것, 확실하게 알려는 마음가짐을 굳게 하는 것, 단순한 의견이나 신념 정도가 아니라 영적 확신을 가지고, 자기와 주변의 감각세계가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한 것임을 생각했다. 모두가 브라흐만과 아트만의 합일체라고 여겼고, 이러한 합치는 무의식 상태에서 경험할 때 더욱 확실하다고 했다.
후대 우파니샤드 사상가들은 그것에 비견되는 세 가지 정신상태를 주장했다. 즉 깨어있는 의식의 상태, 꿈꾸는 수면 상태, 꿈을 안꾸는 깊은 수면의 상태이다. 앞의 둘은 주객, 자아와 비자아, 에고와 비에고를 구분하는 이원적 판별의식이 존재하므로 실제 체험에는 부적당하고, 꿈없는 깊은 수면 상태가 브라흐만과 합일된 경지에 가장 가깝다.
이 세가지 경지의 밑바탕이면서 셋을 모두 넘어서는 또 하나의 의식 상태가 순수의식이다. 그것은 브라흐만과 합일하는 체험(turiya 또는 caturtha)을 해야만 완전히 성취된다. 세계와 자아 모두가 왜곡과 환상을 떨쳐버린 순수한 본질 그대로의 상태에서 브라흐만-아트만의 합일체와 합치되는 체험이다. 이 의식상태의 체험이 moksha이자 마지막 해탈이며 윤회로부터의 탈피이다.
우파니샤드에는 주기적 파멸 및 재창조 이론이 있다. 세상은 피조물의 시대인 劫 kalpa 이 끝날 때마다 해체되고, 우주의 모든 영혼은 육신을 떠나 대기하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pralaya라고 하는 絶對全無,靜止의 기간이 지난 후 세상은 다시 존재하게 되고, 멈추어 있던 영혼들도 식물, 동물, 인간, 신, 마신 등으로 다시 나타난다. 이런 관념은 힌두교 육파철학에 특히 영향을 끼침
우파니샤드에서 윤회사상과 업사상이 출현했다. 원래 아리아인에게는 윤회나 업 이념 없었으므로 그런 사상은 인도땅 자체에서 싹텄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의 윤회 samsara 개념은 죽은 사람의 영혼은 브라흐만과 합일하는 상태로 돌아가는 한 경우만 제외하고는 모두 천상, 지옥 혹은 그밖의 곳에 가므로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있지는 못하다. 다른 형태로 수없이 거듭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러한 來生을 결정 짓는 것이 業이다. 즉 내생은 업 karma(행실,업적)의 법칙에 따라 결정되므로 전생의 업이 이승에서 일어나는 일의 원인이 된다. 챤도기아 우파니샤드는 현세에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내생에서 브라흐만이나 크샤트리아 아니면 바이시아로 태어나게 될것이고, 현세에서 좋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은 개나 돼지, 카스트에도 못드는 천민으로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 업의 법칙이 더 발전해서 인간의 모든 행위 하나 하나가 운명을 결정하는 작용을 한다고 이야기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힌두교도는 각 개별 행위가 내생을 결정짓는 비중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업의 법칙이 자연법칙처럼 정확하다는 믿음은 공유했다. "심판관도 없고 재판도 없다 처벌도 없고 참회나 보상도 없다. ... 영원한 우주의 냉엄한 인과율만이 있을 뿐이다." 후대에 와서는 행실의 결과를 정확히 추정하려는 경향도 생겨났다. 특히 카스트 체계는 윤회와 업의 관념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기원전 500년 전후로 카스트 제도가 확립되었다. 이 카스트 체계에 속하지 못한 불가촉민도 존재했는데 사회의 쓰레기, 부정한 존재로 취급당했다. 카스트 체계에서 더 높은 사회적 신분으로 올라갈 기회는 전혀 없다. 이러한 사회적 계층 분화는 같은 카스트 안에서도 여러 가지 신분으로 구분되었다. jati(세분된 계층)에 따라 다른 계층 간에는 혼인이 금지되고 친교의 자유가 제한되었다.
종교의 교리에서 카스트 제도는 업의 법칙과 연결되어 불평등한 삶의 현실을 포괄해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게 했다. 사회 구조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는 사회불평등 교정의 시도나 사회정의, 보상의 이념 마련하는 시도를 불경스럽고 부도덕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업의 법칙, 현세 부정의 고행주의가 발전하면서 염세관이 싹텄다. 한편 유목민이었던 아리아족이 갠지스강 유역 평야로 내려와 무겁고 기진케 하는 기후에서 생활하다보니 수동적 기질로 바뀐 영향도 있다. 아무튼 내생에서 더 낮은 신분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더 높으므로 낙심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해결책은 희망 없이 생성, 변화, 해체, 소멸하는 세상과는 다른 어떤 실재의 영역, 즉 진정한 존재와 진정한 자유의 영역, 한마디로 니르바나가 있다는 신념을 창출한 것이었다.
<참고문헌> J.B Noss, 윤이흠 역, [세계종교사], 8장
후기 힌두교 : 사회규범의 종교
자이나교, 불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실존적 고뇌로부터 벗어날 길을 빠른 시간 안에 구해보려는 절박한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철학적 사변, 공희제의로는 현재 고통받는 개인을 즉각적으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면의 고통을 겪는 개개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브라흐만교는 거부당하게 된다.
브라흐만교에 반발한 것은 통치계급 또는 왕자들(크샤트리야)들이었다. 이들의 불만은 정치적인 것이었다. 한편 우파니샤드의 일원론은 현실주의 경향이 강한 지배계층에는 부조리 한 것이었다. 또한 윤리를 중시하는 이들은 공희를 통해 인간의 비운을 해결하려는 브라흐만교의 의도를 재물과 시간의 낭비라고 여겼다. 특히 불교가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자 브라흐만교가 다시 발전하기 시작한다. 사실상 자이나교, 불교의 철학적, 도덕적 견해는 아리아족 이전의 종교에서, 그리고 발전해가고 있던 구비 베다 문학이나 특히 우파니샤드에서도 이미 제시되었던 것이다. 물론 정치적, 종교적, 윤리적 반발과 도전 앞에 브라흐만교의 성격이 다소 변화하게 된다.
브라흐만교의 변화
관념의 변혁은 제장의 불 대신 수행자의 내면에서 타오르는 마음의 불 tapa를 중시하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집단적 공희제의 대신 개인 내면의 atman이 얽어매고 있는 여러 가지 물질의 덫으로부터 벗어날 길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구원의 방법도 새로이 발전했다. 그것은 후기 우파니샤드에서 언급된 yoga(결합)였다. 요가는 궁극적 실재와 합일에 이르는 길이었다. 이 요가는 고도의 심신단련 기술이며, 궁극적 해탈을 확실하게 해 주는 길로 생각되었다.
한편 브라흐민들은 공희체계를 자신이 속한 부락 공동체에 맞도록 적응시켜 나갔다. 이들은 사실상 서구 목회자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즉 혼례, 출생과 장례를 맡아 치렀고, 구루(guru)로서 각 가정을 찾아가 가르침을 전달했으며 家神에 대한 예배의식인 puja를 집전했다.
이처럼 브라흐민들이 통일된 권위를 중심으로 조직을 갖추지 않았으면서도 우세한 힘을 재획득하게 된 것은 다른 종교를 포용하는 태도를 취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의 변함없는 욕구도 작용했다. 대중의 생활습관과 종교관습은 변화의 속도가 대단히 느리므로 엘리트의 압력보다는 자체 발전을 통해서 변화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인도인은 초자연적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방법으로 家祭를 중시했으므로, 대중은 브라흐민을 압박하여 자기들의 요구에 응하게 한 것이다. 사원, 축제, 순례, 신상, 음악과 춤은 사제와 대중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네 가지 인생의 목적
첫째 Kama는 쾌락, 특히 애착을 통한 쾌락이다. 카마 신이 임재하면 욕망이 일어난다. 즐거움도 인간이 추구할만한 목표 중 하나이고 즐거움을 찾기 위한 지침도 필요하다고 여겼다. Vatsyayana의 Kamasutra(애정의 기술에 알고 싶은 경우), Natyasastra(문학의 기술과 재능에 관심 가질 경우) 등이 그런 지침이 되었다. 하지만 카마의 전제는 쾌락만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점을 언젠가는 깨달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둘째 Artha는 권력, 재물, 높은 지위나 성공이다. 인도인들에게 부와 권력 추구가 특별한 비난의 대상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역시 최고의 목표가 될 수 없음을 언젠가는 깨달으리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
셋째 Dharma는 종교적, 도덕적 법칙이다. 인도인들은 다르마에 따라 가정, 카스트,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여겼다. 마누법전(Code of Manu)과 그 밖의 법률서(Dharmasastra)를 지침으로 삼아 개인의 쾌락, 사회적 성공의 이기적 욕망을 버리고 만인의 행복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궁극적이지 않았다.
넷째 Moksha는 구원, 해탈로 유일하게 진실된 내용에 찬 인생의 목표였다. 이것은 비애로부터 해방되어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다.
구원의 세가지 길
첫째 Karma Marga: 공덕으로 이르는 길.
제의, 특히 가제를 통한 구원의 방법이다. 공덕을 쌓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의례와 의식, 의무를 수행했다. 초기에는 공희제의를 강조했다. Brahmana는 선한 공덕을 쌓음으로써 갚아야 할 인간의 빚 목록을 제시했다. 그것은 신에게 제물 바쳐야 할 빚, 베다를 연구하는 선각자와 스승에게서 입은 은덕의 빚, 조상의 영혼에 제물을 바쳐야 할 빚과 또 다른 사람에게서 입은 은덕의 빚 등이었다. 그러다 점차 권위 있는 체계를 형성한 법률서(Dharmasastra)들에 근거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기원전 200년경부터 사제들이 집성한 생활규범인 「마누법전」이 있다. 이러한 법률서들이 강조한 것은 통과의례, 가정의 수호신에 대한 예배, 조상의 영혼 모시는 의례 shraddha(추모기도와 음식물 정기적으로 바치는 것이다. 바치는 음식은 pinda(떡)로 죽은 사람에게 새로운 몸이 된다고 믿었다.), 여자들을 위한 공덕의 길(유순히 남자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남자도 여자를 존중하라고 하지만 남성 우월성은 훼손되지 않았다.) 등이었다. 이러한 규범은 생활방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완성의 길, 구원의 수단으로 여겨졌다.
둘째 Jnana Marga: 지혜로써 이르는 길
지혜, 성찰을 통해 인생의 문제 해결하려는 시도로 우파니샤드 철학에 바탕했다. 이 길의 전제는 인간의 비애와 악은 무지 Avidya로부터 비롯된다는 신념으로, 일원론의 관념에서의 무지를 극복하는 것이다. 자아가 하나의 실재이고 독립된 개체라는 생각을 부정했다.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합치한 범아일여의 상태만이 유일한 실재이기 때문이다. 그 경지에는 구분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간은 사실상 브라흐만과 아트만의 합일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 속에서 자아를 구별하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한 윤회는 끝이 없다고 한다. 이는 인간의 구원은 세상과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 길은 깊은 명상 가운데 몰아의 경지에 이르러 자신과 세상의 참모습에 대한 확신의 불빛을 통해 얻어진다. 그러므로 긴 준비와 수련 과정이 필요하다.
마누법전은 브라흐민으로서 성실히 이행해야 할 네가지 ashrama(단계)를 제시했다. 첫째는 가르침을 받는 단계로, 스승의 집에 머물며 베다, 정화의례, 공희제의, 자기 카스트의 의무 등을 배우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결혼하여 가정을 돌보는 단계로 가정으로 돌아와 결혼하고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신앙이 투철한 브라흐민이라도 제사 모실 자손(아들)을 두지 못하면 평가받지 못했다. 이 단계에서는 오랜 종교 규범과 갖가지 의식을 준수해야 한다. 셋째는 은둔하는 단계로 정신적 삶만을 철저하게 영위한다. 공희를 하지 않아도 되고, 마음 속에 간직되었으므로 성화도 꺼버릴 수 있으며 성전을 읽지 않아도 된다. 넷째는 Sannyasin, 즉 탁발 성인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무한과의 초월적 합일을 추구하고 깊은 명상을 한다. 궁극에 최종적으로 몰입하는 경지 samadhi(三昧)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samadhi에 이르는 길은 지성의 노력만으로는 어렵고, 정신의 일상적 기능을 저지하기 위한 육신의 도움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싹텄다(우파니샤드에 yoga에 대한 최초의 암시가 있다.). 요가는 호흡조절과 대상에 대한 감각철회에서 시작하여 명상과 몰입으로 끝난다. 한편 신비의 음절 ‘옴’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셋째 Bhakti Marga: 봉헌으로써 이르는 길
박티 마르가는 평민이 택한 구원의 길이다. 고행을 통한 자기수련, 일원론이 쇠퇴하고 브라흐마니즘의 엄격한 성격도 줄어들게 되면서 Bhakti와 Puja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몇몇 신과 봉헌자 사이의 감정으로 충만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 브라흐민들도 이 상황을 인식하고 박티의 타당성을 뒷받침하였다. Bhakti란 이미 받았거나 약속된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특정 신격을 지성껏 봉헌하는 것이다. 이는 지혜의 길, 공덕의 길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Bhakti Marga를 진정한 구원의 길로 제시한 문헌은 Bhagavad Gita(축복된 주의 노래)이다. 기타는 Mahabharata 중 한 에피소드로 전해진다. 마하바라타는 8백여년의 역사를 걸쳐(기원전 400년에서 서기 400년까지) 이루어진 서사시로, 주로 아라이족의 공적을 약 10만 수의 對句에 담아 노래한 것이다. 특히 Kuru 왕족이 영웅신 Krishna의 인도를 받은 그들의 친척 Pandava 일가의 손에 몰락하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기타가 마하바라타에 삽입된 것은 서기 3세기 경이다. 기타는 세가지 구원의 길을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종합했다. 기타의 역사적 의의는 박티를 구원, 해탈에 이르는 진정한 길 가운데 하나로 확립한 점이다. 최종의 구원에 이르는 길은 정성을 다하는 복종, 즉 자기 자신의 완벽한 신앙-무조건의 박티-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기타는 박티 마르가를 지식인도 존중하는 대중의 힌두교로 정착시키게 한 배경이 되었다. 훗날 마하트마 간디도 기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힌두교 육파 철학
인도인에게 darshana는 사물의 본질에 대한 견해이다. 그것은 직관적 탐색을 통해 실재를 봄으로써 maya로부터 해탈하는 길을 가로막는 무지를 떨치려는 철학적 노력이다. 엘리아데는 “인도에서 형이상학의 지식이란 언제나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힌두교 철학체게는 기원전 500년에서 기원후 500년까지 천년동안 형성되었다. 인도인들은 그중 여섯 사유체계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평가한다. 이 육파철학의 공통점은 신앙의 근거와 최종 규범을 베다에 둔다는 점
Sankya 철학
daeshana 중 가장 오래된 산키아 철학은 우파니샤드의 일원론과 정면 대립했다. 산키아 철학의 맹아, 즉 최초의 우파니샤드보다 더 오래된 초기의 이원론은 자이나교, 우파니샤드, 초기 불교, 바가바디 기타의 공통된 원천이다. 창시자는 신화적, 혹은 半 신화적 인물로 고타마 붓다보다 한 세기쯤 먼저 Kapilavastu에서 태어난 카피라족 사람이다. 그는 자기 생각을 Asuri에게 전했고, 아수리는 그것을 Panchashikha에게 전했고, 판차쉬카는 그것을 Ishvarakrishna에게 전수했다. 하지만 이 연대는 잘 맞지 않는다. 이쉬바라크리쉬나는 산키아 철학의 체계적 진술인 Sankya-karika의 저자인데, 이 저술은 기원후 200년 이전에 씌어진 것은 분명히 아니기 때문이다.
산키아 철학은 원래 엄격한 무신론과 이원론 주장하며 존재의 범주를 두 가지로 주장했다. 즉 구조있게 짜여지면 자연계가 되는 물질 prakriti와 영혼 또는 정신 purusha(자아)였다. 이 둘 다 maya가 아니라 실재이다. purusha가 임재하면 prakriti가 움직이게 되고 자연계의 특징적 모습 guna(이음새)가 드러난다. 그것은 자연계를 구성하는 세가지 활동양식이 나타나는 것으로 sattva(통찰에 뒤따르는 명석함, 선함), rajas(열정으로 빨갛게 달아오른 활력), tamas (암흑, 둔중, 완고한 보수성)이다.
물리적 사물은 타마스의 충동을 받아 밀도 높은 요소들이 경합하여 생겨나고, 감각 능력을 가진 여러 생물의 심리현상(감각,체험,감정)은 라자스의 충동으로 일어나며, 정신의 활동은 사트바에 주도되어 일어난다.
자연계는 24가지 요소, 또는 원칙 tattvas(如如함)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에 5대 요소 sthula-bhutani(에테르, 공기, 불, 물, 흙)와 고도의 지성 buddhi, 심성 manas, 자아의식 ahankara 등이 포함된다. 이 각각은 여러 구나가 서로 달리 조합해서 형성된 것이다.
구나 가운데 무엇이 우세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이 결정된다. 예를 들면 삿트바가 우세시 지성적, 순진, 쾌활하게 되고, 라자스가 우세시 감정적, 정열적이게 되며, 타마스가 우세시 우둔하고 거칠어지게 된다.
프라크리티는 가장 조악한 물질로부터 최고의 지성에 이르기까기 광범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 모두는 자연(세상)의 각 측면이므로 영과 동일시하거나 영혼으로부터 도출된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영(purusha)의 영역은 만물을 포괄하는 우주적 영혼(브라흐만-아트만 합일체)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브라흐만-아트만은 비실존이기 때문이다. 대신 purusha는 무한한 수의 각자 독립된 영원한 개별 영으로 이루어진다. 이 영은 순수하고 영원하며 수동적이다. 여러 가지 성질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영은 자연의 영역과 격절되어 있고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근본적으로 무관하다. 이쉬바라크리쉬나는 각 영혼은 만사를 보지만 고립되어 있고 무관심하며 수동적 방관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내생의 몸과 의식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풀리지 않는 신비이다.
인간의 사고가 보다 높은 경지에 이르면 영이 육신이나 정신(생동하는 물질, 프라크리티)과 연관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으나, 그것 자체에는 스스로 벗어날 능력이 없음을 지성(붓디)의 눈을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이 벗어남은 영의 측면이 아니라 자연의 측면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자연의 영역에서 그런 경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고도의 지성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바로 그 순간에 자기 존재의 환상적 성격을 알아채고 이해의 부족(avidya, 무지)에서 비롯된 온갖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자신의 육신과 정신을 푸루샤와 동일시하는 그릇된 생각을 떨쳐 버려야 한다. 양쪽을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자 고통의 원천이며 초연한 푸루샤의 상태와 그 영원한 자유를 가리는 것이다. 인간의 지성이 환상을 깨뜨리고 자신도 해체할 때 영은 마지막으로 영원한, 그러나 이 지상의 경지가 아닌 순수한 영 자체로서의 실존에 듦으로써 본연의 자유를 실현한다.
자연계에서 영혼은 언제나 독립된 존재이고, 영혼의 해탈은 자연에 얽혀들지 않음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이 산키아 철학에서 강조하는 신념이다. 영혼의 진정한 상태는 자유, 초연이다. 그러나 항상 프라크리티 요소(탓트바)를 이끌어들이는 성질을 가진다. 그러므로 붓디(통찰)로써 프라크리티 요소들이 영혼에 부착하지 못하게 하여 궁극적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요가 철학
요가를 정교한 기술로 다듬은 이는 Patanjari(기원후 2세기)이다. 요가 철학은 일종의 수정된 유신론이다. Ishvara가 요가 수행자를 돕는 영원히 순수한 영이라고 보고 거기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이 요가의 역사적 중요성은 철학이라기보다는 거기에서 발전된 명상과 정신집중의 기술이다. 요가는 형이상학적 해탈의 길을 심리학적으로 사변화함으로써 변형시킨 것이다. 대단히 명석한 의식과 강한 의지 가진 사람 아니면 순수한 사고를 집중하는 것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똑같은 체험에 이르게 하면서 지성의 노력은 덜 요구하는 요가라는 방법이 각광받게 된 것이다. 즉 요가에서 사람들을 가장 크게 잡아 끈 것은 정신 집중을 돕는 육체와 심리수련 방법이었다. 이 요가는 특별한 자세와 호흡 조절, 적절한 사색을 운율있게 반복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파탄자리의 Raja Yoga
파탄자리의 Raja Yoga의 8단계의 첫째는 yama(욕망을 없애는 5가지 서원)는 불살생 ahimsa, 거짓말 하지 않음, 도둑질 하지 않음, 남에게 인색하지 않음(brahmacharya), 탐욕 내지 않음이다. 둘째 Niyama(자기수련의 규칙 준수)는 정결, 평온, 금욕, 학습, 기도이다. 셋째 Asana(올바른 자세로 정좌하는 것)는 오른쪽 발은 왼쪽 허벅지에, 왼쪽 발은 오른쪽 허벅지에, 손은 모으고 눈은 코 끝을 향하는 것이다. 넷째 Pranayama(호흡조절)는 존재 자체를 하나, 또는 두 가지의 단순한 박자로 수렴하여 모든 근육과 신경계통을 마음대로 다스리는 것이다. 꼿꼿이 앉아 머리와 목과 등이 일직선 되게 하고 일정 간격으로 호흡하면서 속으로 성스러운 음절 ‘옴’을 되풀이한다. 다섯째 Pratyahara(모든 감각대상으로부터 감각을 거두어 들이는 것)는 바깥 세계와 차단되는 것이다. 여섯째 Dharana(집중)는 어느 한 사물이나 사념에 대한 사유에만 꾸준히 마음을 쏟는 것이다. 일곱째 Dhyana(명상)은 일종의 半 무의식 상태이다. 여덟째 Samadhi(삼매)는 마음은 텅 비고, 객체에 대한 인식도 주체에 대한 인식도 없이 궁극자에 흡입되고 유일자와 하나 되는 것이다.
이런 수행의 중심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움직임을 스스로 억제하며 육신을 철저히 단련하여 의식의 흐름을 지연시키고 사고도 감각도 없는 순수 몰아의 경지에 이르는데 도움되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진정한 자아가 외부 세계, 자연의 인과율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와진다.
Hatha Yoga
Hatha Yoga는 후대에 좀 더 비의적 형태로 발전한 요가로 일종의 밀교 형태이다. 하타 요가는 육신을 수많은 導管, 즉 nadis(동,정맥,신경)의 얽힘으로 본다. 세 가지의 중요한 나디가 있는데, 그중 두 개는 척추 양쪽을 따라 뻗어 인후와 허리를 잇고, 나머지 하나는 생식기 뒤쪽 힘의 중심(Kali의 속성중 하나에서 비롯된 명칭인 Kundalini가 자자고 있는 곳으로, 쿤다리니는 에너지가 잠재한 원천이며 뱀처럼 둘둘 감긴 모양)인 cakra로부터 이어져 척추 안쪽을 타고 올라 복부와 심장, 인후, 미간의 다른 힘의 중심들을 통해 정수리의 힘의 중심 sahastara에 이른다. 하타 요가의 목적은 쿤다리나의 뱀과 같은 힘을 자극하여 상승에너지를 다른 차크라(힘의 바퀴)들을 통해 치솟케 하여 머리에서 의식을 밝히도록(사마디) 하는 것이다.
요가를 통달해 직관력 얻으면 그것을 통해 비범한 정신력을 발휘한다. 이 요가의 주된 목적은 자아가 세속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와지는 체험을 하는 것이다.
베단타 철학
주된 교리의 원천이 우파니샤드에 있고, 우파니샤드를 흔히 베단타라고 불렀기 때문에 베단타 철학이라고 한다. 베단타의 의미는 ‘베다의 유산을 결론지음’이라는 뜻이다. 원래 우파니샤드에는 일원론, 범신론 철학의 기반이 존재하는데 베단타 철학은 우파니샤드의 일원론 교설을 철학체계로 확립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기원전 1세기경 Badarayana가 지은 베단타 수트라는 간결하며 뜻이 모호하고 난해했다. 그후 오랫동안 구비 해석을 진행한 후 세가지 베단타 철학이 생성되었다.
Sankara(서기 788-820): 非二元論 advaita
상카라는 세계 prakriti와 개개의 자아 jiva, 브라흐만이 절대적으로 하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개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지 않은’, ‘둘이 아닌’(셋 또는 그 이상도 물론 아닌) 실재로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브라흐만은 초경험적이고, 브라흐만 이외의 모든 것은 모두 maya의 산물이다. 경험세계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어서 실제로 존재하지도, 또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전혀 설명될 수 없다. 경험세계는 브라흐만을 기반으로 하며 브라흐만에 의존하지만, 브라흐만 자체가 경험계의 직접적 원인이 되어 관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브라흐만 자체는 언제나 잠재해 있을 뿐이고, 브라흐만이 창조력과 인격을 취해 현현한 몸인 Ishvara가 마야를 통해 우주를 만들었다.
상카라의 입장은 현상계의 궁극성을 거부하고 그것을 마야로 간주함으로써 두 가지 난관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즉 산키야 철학이 똑같은 실재인 우주와 영혼이 연관을 가지지만 접합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난점을 마야 개념으로 간단히 극복한 것이고, 불교의 경우 영혼을 배제하면서도 동시에 영구히 되풀이되는 윤회를 긍정하는 난점을 가지고 있으나 산카라는 인간의 주변은 뭔가 실제적임에 틀림없으나 인간은 자기 감각에 의지해서 그것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환상에 빠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체험하는 세계는 주관적 시,공의 준거틀이며 그것을 통해 무지가 작동한다. 감각체험의 대상을 실재로 보는 것이 이 무지의 소치이다. 개별 영혼이 개별적 실재성 지닌다고 믿는 것은 마야의 세계에 묶여 하등의 지혜에 머무르는 셈이다. 자신과 브라흐만-아트만 합일체가 둘이 아님을 아는 것은 실재를 깨달아 고등의 지혜에 이르는 것이다. 감각으로 체험되는 시간과 공간 안의 세계를 실재라고 보더라도 그것이 살아 있는 神本體 god principle로서 사람들이 Vishnu, Shiva, Rama 등의 이름으로도 숭배하는 창조주 Ishvara의 작품임을 깨닫는다면 그것은 무지에 의해 만들어진 겉모양을 통해 절대적 진리를 보는 셈이다. 실재하는 것은 브라흐만-아트만 합일체 뿐이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도 없이 영원하다. “Tat tvam asi!(그건 바로 너다!)”
산카라 철학은 대중의 종교적 봉헌은 무시했다. 베다와 우파니샤드는 오직 不二(advaita)의 철학을 통해 최종의 해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일에만 관심가졌기 때문이다.
Ramanuja(1040-1137)
라마누자는 Bhakti를 강력하게 옹호했고 특히 Vaishnavism(바이쉬나 숭배)을 주장했다. 라마누자도 일원론자이지만 제한된 일원론자였다. 모든 사물과 존재는 브라흐만 안에서 합일됨을 강조하면서도 그 차이를 긍정했기 때문이다.
물리적 세계와 개개 영혼, 궁극적 실재 또는 지고의 존재는 불가분하지만 각자 실재하는 것이다. 물리적 세계와 개개 영혼이 궁극적 실재의 몸체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즉 신이 스스로 현현하는 형태가 물리적 세계와 개개 영혼이라는 것이다. 이 궁극의 실재는 인격적이며, 그 이름은 비쉬누이다. 이 비쉬누가 브라흐만으로 전지, 전능, 편재, 박애, 자비 등 온갖 바람직한 자질 모두 지닌 구체적인 인격체이다.
궁극적 실재가 신으로서 현현하는 방법은 첫째, 천상에 있는 해탈된 영혼들에게 나타나는 것이고, 둘째, 지식의 축적에서, 우주 전체의 창조, 보존, 지속, 통치에서, 그리고 반대되는 것을 극복하는 능력에서 현현하며, 셋째, 열가지 avatara에서, 넷째, 인간의 심장에 깃들어 있어 신실한 사람이 가는 곳마다 함께 가며, 때로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다섯째, 인간이 만드는 그의 형상에 깃들어 있기도 하다. 인간이 최고의 목적으로 삼을 것은 비인격적 절대자에의 합일이 아니라 천상에 이르러 완전한 의식 속에서 비쉬누의 임재를 즐기는 것이다.
Madhva(1199-?): 이원론 dvaita 학파
개인의 영혼과 절대 영혼 내지 지고의 영혼은 하나가 아니며, 합치될 수도 없고 그렇게 될 방안도 없다. 구원받은 사람의 영혼은 지고의 영혼 vishnu 앞에서 축복을 누린다고 하는 점에서 마드흐바의 입장은 유일신론이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은 지옥을 헤메거나 끝없이 윤회한다. 구원이 이루어지는 방법은 비쉬누의 아들이며 바람의 신인 Vayu를 통한다. 바유는 신의 은총을 전달하는 매개자이며, 일종의 성령으로서 구원받을 사람에게 자기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 이는 회교와 그리스도교의 흔적
Ⅴ. 대중의 힌두교
대부분의 인도인은 정통 힌두교와 각 지방의 원시적 종교형태를 동시에 실천했다. 브라흐민도 그런 관습에 관대한 태도를 취하며 초연한 입장이였다.
종파와 소의경전
인도문화의 황금기 Gupta 왕조 시대(서기 200-700)에 대중을 이끄는 스승들이 많이 등장해서 대중의 욕구에 부응해 여러 가지 제의와 상징, 형상들을 만들고, 이로써 인격적 신 Ishvara에 대해 보다 명확한 개념을 대중에게 제시하게 된다. 이 신들은 우주적 차원의 힘을 소유하면서도 인간에게 매우 친근감을 주어 박티와 푸자를 통해 대중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신으로 부상했다. 이 시기에 박티가 대두하여 대중을 끌어들이며 종교적 감성을 지닌 수많은 시인, 가인들이 박티를 뒷받침했다. 그만큼 이 시대는 종교적 각성의 시대였다. 건축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그것은 내면의 감성을 외면의 문화로 표출하는 의미였다.
쉬바, 비쉬누와 같은 신과 그들의 배우자에게까지 헌신하는 종파들이 등장하고 신과 정신적, 육체적 합일을 경하하고 추구하는 비밀스러운 의례도 발달했다. 물론 종파라는 말은 힌두교에 적합지 않은 말이다. 그 이유는 힌두교인은 필요할 때마다 각각 다른 신을 자유로이 선택해서 숭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름의 경전과 지도자, 제의를 가진 특정 종교집단에 소속하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종파 중 가장 큰 종파는 Shaiva(쉬바 숭배자), Vaishnava(비쉬누 숭배자)였다. Shaiva는 서기 100년 후 가장 우세한 위치를 차지했다. 이들은 7-12세기까지 에로티시즘과 종교를 연결시키고 그것을 각종 의례(Shaktism)와 건축물, 조상, 저작 등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1100년 이후 오늘날까지는 Vaishnavism이 우세하여 더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았다.
이 시기에 풍부한 문헌들이 새로이 등장했다. Mahabharata나 Ramayana 등 박티의 가치를 강조하는 서사시가 대중의 심성에 보다 잘 부합하였고, 여기에서 여러 종파의 소의 경전이 탄생했다. 이런 저술이 방대한 Purana(옛 이야기)나 Tantra(줄거리, 근본 가르침)였다. 대개는 쉬바와 비쉬누를 똑같이 중시하고 서로 보완해주는 관계라고 여겼지만, 양쪽 신자 사이에 갈등이 있기도 했다. 쉬바의 여성 배우자 즉 Shakti를 관심의 초점으로 삼은 것이 탄트라이다. 탄트라는 탄트리즘을 표현하고 있는 입문서이다. 남부 인도의 Tamil 족이 중시하는 일련의 봉헌시도 존재했다. 종교시인과 영창가, 이야기꾼들이 박티를 풍부한 감성으로 표현했다. 그들 가운데 생시에 성자의 지위에 오른 사람들은 나야나르 Nayanar(지도자)라고 불렀다. 비쉬누 신자들은 자기 파의 종교 시인을 Alvar(심오한 사람, 심연에 파고 든 사람)라고 불렀다. 세월이 흐르면서 박티 문헌이 발전하고 예전 문헌들도 그랬듯이 그 가운데에는 사실상 성전의 지위에까지 오른 것도 많았다. 이 박티 문헌은 인간 특유의 온정을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인격신을 초월하는 비인격적 존재인 브라흐만-아트만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지혜의 길에서 문제되는 것들이 완전히 무시되기도 했고, 비인격적인 브라흐만-아트만의 보다 친숙하고 인격적인 면에 손을 뻗는 태도가 표현되어 있기도 했다. 이 박티 지향 문헌은 대중이 종교적 봉헌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로 하는 이야기와 상징들을 제공했다.
三神觀
브라흐민들은 박티운동의 번성에 따라 예전의 보다 지적이고 우주적인 신관념을 유지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는데, 그 결과가 Trimurti, 즉 삼신관이다. 굽타 왕조 초기에 브라흐민들은 여러 신 가운데 브라흐만-아트만 합일체가 현현한 것 중 가장 중요한 존재로서 세 위대한 신 - 브라흐마, 비쉬누, 쉬바 -을 꼽았다. 브라흐마는 창조의 기능, 비쉬누는 보존의 기능, 쉬바는 파괴의 기능을 담당했다. 하지만 인도의 대중은 실천의 면에서 그런 체계적 관념에 전적으로 몰두하지 않았다. 대중은 대개 어느 한 신 또는 그 배우자에 집중적으로 헌신하면서 가호를 염원했기 때문이다.
브라흐마
Brahma는 널리 숭배 받지 못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원은 대, 여섯 개에 불과하다. 브라흐마는 창조 과업을 마친 후 지상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원시 최고신과 비교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브르하마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예술작품에서 브라흐마는 머리 넷 가진 왕자로서 베다를 읽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초연성을 상징하는 흰 야생 거위를 타고 있기도 하다.
쉬바
Shiva 신봉자들은 쉬바에게 Mahadeva(위대한 신)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쉬바는 매우 복잡한 성격의 신이다. 베다 시대의 Rudra가 후대에 쉬바로 발전했기 때문에 이 신은 파괴자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Yajur-Veda는 쉬바를 협박자, 살해자, 곤경에 빠뜨리는 자, 괴롭히는 자로 묘사하기도 한다. 이 쉬바 신명의 기원은 베다 시대 말엽의 사람들이 Rudra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줄어든 것과 관련이 있다. 고대 인도인들에게는 마령의 이름을 부르면 마령이 나타난다는 관념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형용사로 명칭을 대신했다.
쉬바의 신격에는 건설적이고 유익한 면도 있다. 쉬바는 원래 평원의 생활을 파괴하고 응징하는 일종의 山神이었으나, 쉬바의 산채에 들어 가 본 사람은 인간의 질병을 고쳐 줄 갖가지 약초가 쉬바의 보살핌 아래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겉으로는 그렇지 않게 보이지만 실상은 축복을 숨기고 있는 경우가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일어났다. 그 결과 쉬바의 파괴는 새로운 창조의 여지를 마련하기 위함이라는 관념이 형성된다.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한편 쉬바는 생물의 번식과정과 연관된다. 쉬바를 남성기로 표상하는 관습, 풍요신으로 생각하는 관념은 아리아족 이전부터 인도에 있었다. 쉬바 숭배자들은 쉬바를 성에너지와 연관시키고 남녀 생식기를 나타내는 Lingam과 Yoni로써 쉬바를 표상했다. 12세기에는 Lingayat라는 쉬바 숭배 종파도 생겼는데, 오늘날에도 약 3백만 명이 남아 있다.
쉬바를 순수 에너지, 활력으로서 생명 그 자체를 뜻하게 되기도 했다. 유명한 쉬바의 Cosmic dance는 탄생과 죽음의 순환을 가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한편 수행자와 성인들을 도와주는 존재로 생각되기도 했다. 저차원의 자아를 파괴하여 보다 높은 정신적 자아를 표출하는 의미로, 이는 일종의 재생을 의미하므로 쉬바의 재생 메타포에 합치했다.
쉬바의 배우자 및 관련 존재들을 살펴보면 우선 Devi(Deva의 여성형)는 쉬바의 배우자를 의미한다. 데비는 지역마다 명칭이 다르다. Parvati(山사람), Uma(빛)라는 이름은 우아하고 상냥한 성격을 표상하고, Durga(접근 불가능한 존재), Chandi(난폭한 이), Kali(검은 이)는 도움을 주면서도 해롭고 무서운 성격을 동시에 가진 신격으로 표상된다. 악마들의 천적이기도 해 찬사를 받기도 한다.
Durga로서의 Devi는 Thug라는 이름의 약탈자 계급을 후원해 주는 존재이기도 하고, Kali로서의 Devi는 해골로 된 목걸이를 걸고 있으며 힘센 네 팔로 희생자들을 찢어 그 고기를 입안에 가득 넣고 먹는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친절하다. 벵갈 지방에서는 Kali를 母神으로 숭배하고, Ramakrishna나 Vivekananda 같은 신비가들은 지극한 열성(박티)으로 Kali를 신봉했다.
다른 관련된 신격중 하나인 Ganesha는 코끼리 머리를 한 신으로, 쉬바와 파르바티 사이의 아들이다. 이 신격은 재치, 괴력을 상징한다. Nandi는 흰 소나 검은 색 황소의 형상으로 쉬바의 사원에 누워 있기도 하는데, 사원의 청지기이며 네 발 짐승의 수호자이다.
Shaktism
쉬바의 배우자들은 쉬바의 Shakti, 즉 여성에너지로 발휘되는 활력이라고 생각되었다. 보통 샥티 숭배는 쉬바 의례의 소주제를 구성한다. 인도 북동부에서는 쉬바의 배우자를 따로 예배하는 종파가 형성되어 개별 종교로 발전했다. 일종의 탄트리즘이지만 불교의 밀교와 구별하기 위해 Shaktism이라고 부른다.
우파 Shaktism
이들은 일종의 철학이라 할 만한 세련된 요소를 가졌으며 샥티의 온화한 측면에 관심을 집중했다. 자연의 에너지 중 이로운 면을 강조해서 그것을 일종의 모신 상징을 통해 나타냈는데, 그것은 생명과 죽음을 하나의 형상에 모아 놓은 것이었다. Tagore나 Ramakrishna 등은 우주의 신비와 실체 가운데에서도 이 면을 강조했다. 이들은 샥티를 아름답거나 무시무시한 현상계의 환상, 즉 마야를 만들어내는 힘과 동일시했다. 라마크리쉬나는 진정한 실재의 상징으로 검은 여신 Kali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좌파 Shaktism
이들은 원시적이면서도 고도로 사변화된 양상을 띠며, 주술과 비의를 특징으로 했다. 두르가나 칼리와 합치함은 관습상 금지된 본능의 충동에 휩쓸려 들어감을 의미했다. 비의에서 신자들은 얼굴을 가리고 참여하여 圓의 숭배를 하고, 춤, 술, 피를 마시고 성합 의례를 행하기도 했다. 이 비의에서는 평시에 금지되는 5M(madya 술, mansa 고기, matsya 생선, mudra 붉은 곡식, maithuna 성행위)에 탐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비의에서 쾌락을 추구하면 참가자의 안녕이 위험스러워 진다고 했다. 이 의례의 목적은 감각을 통제하여 쾌락을 넘어서 성스러운 자연의 힘과 합치하며, 마지막에는 호랑이를 타고 니르바나에 이르는 것이다.
Vishnu
비쉬누는 보존자, 자애, 가치 수호, 완벽하고 쾌활한 자애의 표본이다. 흔히 네 팔을 가진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두 손에는 당당한 힘을 상징하는 철퇴와 원반, 다른 두 손에는 呪力과 티없는 청정성을 상징하는 나팔 및 연꽃, 머리에는 왕관, 발은 푸른 색, 노란색 옷을 입고 있다. 비쉬누가 휴식을 취할 때는 우주적 뱀 Shesha, 또는 Ananta에 기댄다. 비쉬누는 Garuda 새를 타고 다니며, 물고기를 자신의 상징으로 한다. 이 비쉬누의 샥티는 행운과 미의 여신 Lakshimi이다.
베다에서 비쉬누는 태양신으로 등장한다. 악마의 제왕 Bali가 땅을 장악하자 비쉬누는 난장이 모습으로 나타나 바리에게 청을 하여 허락을 받아냈다. 즉 세 걸음으로 갈 수 있을 만큼의 땅을 달라고 했던 것인데, 허락을 받은 비쉬누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두 걸음을 뛰니 천상과 지상을 단번에 넘어섰다. 그래서 천상은 신들에게, 지상은 인간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나 지옥을 넘을 세 번째 걸음은 내딛지 않아 지옥은 악마의 수중에 남아 있게 되었다. 이 비쉬누는 필요시 avatara(하강)를 감행하여 지상으로 오는데, Rama, Krishna 등의 모습으로도 내려온다.
비쉬누의 화신
전통적으로 열 가지(아홉은 이미 일어났고, 하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음) 화신이 있다. 화신한 물고기는 홍수에 휩쓸린 최초의 인간 Manu을 구했고, 거북이는 만다라 산 밑을 헤엄쳐 신들이 우유의 바다로부터 만들어낸 불사약 등의 여러 귀한 물건을 휘젓는 일에 힘을 보탰다. 멧돼지는 송곳니를 가지고 바다 깊이 빠진 땅을 건져 냈고, 반은 사람, 반은 사자인 모습으로도 나타나 비쉬누에게 기도했다는 이유로 자기 아들 죽이려는 악마의 아버지를 갈갈이 찢어버렸다. 브라흐민 신분의 전쟁영웅으로 화신해서는 크샤트리아들을 21차례 격퇴하고 브라흐민의 우위를 확립했다. Rama 화신은 인도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이상적 남성이고 부인도 이상적 여성이다. 이 라마는 Ramayana의 주인공이다. 아내 Sita가 실론의 악마왕 Ravana에게 납치되자, 원숭이 왕 Hanuman의 도움으로 시타를 구해내고, 시타는 순결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불의 시험을 거쳐 다시 라마의 품에 안긴다. 수백만 명의 신도들이 라마의 형상에 예배하며, 최고의 신으로 받드는 경우도 있다. Krishna는 복잡한 성격의 화신이다. 마하바라타의 크리쉬나는 진지하고 맹렬하며 꾀바른 전쟁영웅이다. 신의 형상으로 나타난 비쉬누에게 인간의 관심을 돌리려는 의도이다. 반면 牧歌와 민담의 크리쉬나는 쾌활한 젊은이, 호색적 목동으로 묘사된다. 여기에서 크리쉬나는 아름다운 Radha를 사랑하는 에로틱한 면을 보인다. 그러나 정신적인 것이라고 강조된다. 소젖 짜는 소녀들을 유혹하는 것도 상징적 의미로 해석된다. 이 크리쉬나를 편파적으로 신봉하는 사람들도 많다. 벵갈의 한 종파는 Radha를 크리쉬나의 배우자로 나란히 숭배하기도 하는데, 크리쉬나와 라다를 극진히 신봉하면 그 둘이 영원히 늙지 않은 채 사랑을 나누고 있는 Brindaban(天이라는 쾌락의 숲)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고타마로의 화신, 붓다가 화신의 명단에 낀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불교와 힌두교의 화해 전략이라면 대단한 성공인 셈이다. 열 번째 화신은 Kalki로, 백마를 타고 불칼을 든 구세주로서 세상이 타락하는 제 4기가 끝날 때 내려와 의로운 사람들 구하고 사악한 사람들 파멸시키는 화신이다.
오늘날 인도 본토와 해외에 거주하는 평민의 신앙
인도 평민의 신앙은 일신관적인 것은 아니다. 특정 신을 수호신으로 삼지만 초자연적 존재라면 어느 것이든 간에 존중하기 때문이다. 인도인은 흔히 자기들이 아는 신격이 3억 3천만이라고 말하는데, 필요에 따라 어느 한 신에게 예배했다가, 다른 신에게 예배하기도 한다.
예배의 세 형태
집, 사원, 그밖의 장소 어디에서든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 직접 예배하고, 가정의 사제 또한 어느 누군가가 가족을 대신해서 가신의 형상이나 상징 앞에서 간단한 가제를 행하고, 개개인과 전체 공동체를 위해 마을 사제가 부락의 사원이나 신전에서 매일 세 번씩 puja를 올린다.
성지순례
힌두교의 성지는 때에 따라 바뀔뿐만 아니라 성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성지의 유형은 원래부터 성지인 곳도 있고 사원이나 신전을 세워서 성지가 된 곳도 있다. 첫 번째 유형의 성지는 어느 곳에든 존재하는데, 주로 큰 강가에 위치한다. 가장 성스럽게 여겨지는 강은 갠지스 강(어머니 ‘Ganga’)이다. 갠지스 강은 천상의 비쉬누의 발에서 시작하여 먼 아래 쉬바의 머리로 떨어져서 그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것이라는 신화와 관련이 있고, 그래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성지가 바라나시이다.
점성술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널리 쓰이고 있음
소의 보호
원래 숭배의 대상은 암소였다. 그러나 그 미덕이 어느 정도 수소에게도 옮겨갔다. 과거에는 소를 죽이면 극형에 처하고, 지금도 카스트 밖으로 쫓겨나며, 소를 예우하는 지방이 많다.
브라흐민의 신성한 지위
어느 카스트보다 특히 브라흐민을 신성시하는 데, 이는 마누법전에 근거한다. 마누법전은 브라흐민은 이 모든 창조물의 주인이며, 그의 탄생은 聖法의 영원한 화신이라고 찬양한다. 브라흐민 중 가장 존경받는 사람은 guru이다. 구루는 가정생활이나 가정의 의식과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된 교리를 가르친다. 단 구루가 모두 브라흐민 출신은 아니다. yogin은 요가 수행을 하여 언젠가 sannyasin, sadhu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사람이다. Sannyasin은 오늘날 대부분 쉬바 신봉자이다. 산냐신은 온 몸에 재를 바르고 쉬바의 지극한 고행을 실천한다. 인도인들의 이상적 생애에서 네 번째 단계에 이르러 얻을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다. Sadhu는 위대하고 성스러운 사람으로, 궁극의 실재와 정신적으로 합일하려는 목적을 성취해 거기에 도달했고, 여러번의 samadhi를 체험하여 성스럽게 된 사람이다.
Ⅵ. 현재의 쟁점과 문제
19세기 자유주의의 등장과 함께 여러 가지 운동이 출현했다.
1, Brahmo Samaj
서양과 접근하려는 자유주의 운동으로 1828년 캘커타에서 시작했다. 창시자는 Ram Mohan Roy이다. 이들은 모든 종교에 비슷한 정신적 요체가 있다고 하면서 그 핵심을 신봉하는 종교집단 조직이다. 우주의 창조자, 주관자이며 영원하고 신비하며 불멸하는 존재인 신의 통일성, 인격, 영성이 모든 종교의 저변에 깔려 있는 진리라고 주장한다. 특징적인 것은 다신론과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점, 畵像, 彫像, 공희 등을 금지하는 점이다. 이들은 한데 모여 찬송가와 설교, 성서를 낭독했고, suttee(殉葬), 유아 혼인 및 일부다처제도 금지했다. 하지만 적극적 개혁은 하지 않았다.
1890년대 들어 두 파로 분열되는데, 카스트 제도를 부정한 Keshab Chandra의 급진파가 Brahmo Samaj of India를 조직했다. 그러자 원래 집단은 Adi(原) Brahmo Samaj라 불리게 되었다. 그 후 대다수 추종자들이 다시 케샤브를 떠나 Sadharan(總) Brahmo Samaj를 결성했다. 케샤브는 Nava Bidhana Samaj(새로운 사면의 교회)라 칭하고, 점차 자신을 지상의 그리스도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사후 추종자들은 그러한 주장을 묵살했다.
2. Arya Samaj
베다로 돌아가자는 운동으로, 1875년 Swami Dayananda가 창시했다. 이들은 다신론, 범신론을 거부하고, 베다를 자연의 이상적 도해와 청사진이라 여겼다.
3. Ramakrishna 운동
관용과 수용을 특징으로 하는 이 운동은 19세기 라마크리쉬나의 생활과 사상에서 출발했다. 라마크리쉬나는 벵갈지방 브라흐민 출신으로 캘커타의 카리 사원에서 사제로 일했는데, 신성에 대한 직접 체험을 갈망하여 카리의 형상에 온 관심을 집중하고 samadhi를 체험했다. 이 외에도 명상, 박티, 샥티즘, 자이나교, 불교의 체험을 모두 실천하다가 마침내 속성을 지니지 않은 브라흐만과 속성 지닌 브라흐만 양 실재를 체험했다. 라마크리쉬나는 모든 종교는 신에 이르는 다른 길이며, 모든 피조물이 각자 형태를 달리하는 신이라고 여겼다. 라마크리쉬나가 죽기 6년 전에 Swami Vivekananada 주도하에 집단이 조직되었다.
4. 세속주의
현대의 인도 사회에서는 카스트 문제는 약화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견고해졌다. 조혼, 과부의 수절 문제, 인구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
최근의 변화
종교적 자유주의
Auribindo Ghose
국수주의적 철학을 거부하고 통합요가 Intergral Yoga를 통해 초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원한 샥티에서 실재의 하향 움직임을 보았는데, 이것이 인간의 심성에 영향을 끼치고 나면 평범한 인간으로부터 초인적 차원의 존재로 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Sarvepalli Radakrishnan는 서구 종교와 철학에 호감을 가졌으며, 모든 종교의 정수는 신비주의에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힌두교가 모든 종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종교라고 주장했다. 그는 궁극적 실재와의 합일을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성숙하는 것도 필수조건이라고 보았으며, 종교의 정신적 가르침을 사회활동, 정치활동에 적용하려 했다.
보수주의
Mahasabha, Rashtriya Swayamesevak Sangh(국가봉사기구)는 정통 힌두교를 지지했으며, 인도를 힌두 국가로 만들자고 주장했다.
- 출처 : J.B Noss, 윤이흠 역, [세계종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