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의 말
우주와 인생의 진리 근원을 밝힌 능엄경
“능엄경을 한 번 읽은 뒤로부터는 인간세상의 찌꺼기 책들을 보지 않는다.”(명나라 어느 유학자)
“도를 깨닫는 데는 능엄경이요, 부처를 이루는 데는 법화경(法華經)이다.”(미상)
“능엄경은 제불여래의 대총지문(大總持門)이요 비밀의 심인(心印)이며, 일대장교(一大藏教)를 통섭(統攝)하여 오시삼승(五時三乘), 성인과 범부, 진실과 허망, 미혹과 깨달음, 원인과 결과의 법들을 빠짐없이 포괄하고 있다. 수증의 삿됨과 올바름의 단계 차이, 윤회와 전도(顛倒)의 상황이 눈앞에 또렷함이 손바닥 안의 과일을 보는 것과 같다. 한마음의 근원까지 뚫었고 만법의 궁극적 이치를 갖추고 있음은 이 경전보다 더 광대하게 다 갖추고 있는 것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여래가 일대사(一大事) 인연으로 세간에 출현하셨음은 이를 버리고는 따로 열어 인도함이 없을 것이다. 진실로 이 경전으로써 구계(九界) 중생의 삿된 칼을 꺾고 성인과 범부의 집착의 성벽[執壘]을 부수어 마침내 보게 하지 않음이 없다.”(명나라 감산憨山대사)
“길도 아직 깊이 모른데다 진정한 스승도 없다면 반드시 교리를 훤히 알고서 필사적으로 참구해야 한다. 비록 삼장의 여러 경전들을 통할 수 없다면 능엄경 한 부를 정독 숙독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비유컨대 홀로 먼 길을 가는데 만약 노정(路程)을 미리 묻지 않는다면, 결정코 반드시 잘못이 있을 것이다!”(명나라 우익藕益대사)
“능엄경은 아난(阿難)이 발기(發起)하여 우리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경전은 ‘음(婬)’자에 중점을 두고 이 ‘음’자로부터 많은 문장을 설해가고 있다.
나의 어리석은 견해로는, 능엄경 한 부를 오로지 읽을 수 있다면 제일 좋다. 본문만 숙독하고 주해는 볼 필요가 없다. 외울 수 있을 정도까지 읽으면, 앞의 경문으로 뒤의 경문을 풀이할 수 있고 뒤의 경문으로 앞의 경문을 풀이할 수 있다. 이 경전은 범부로부터 곧장 성불에 이르기까지, 무정(無情)중생으로부터 유정(有情)중생까지, 산하대지와 사성육범(四聖六凡), 수증과 미혹과 깨달음, 이치와 현상, 인과와 계율을 모두 자세하고 자세하게 다 설한다. 그러므로 능엄경을 숙독하면 매우 이익이 있다.
이 경전은 원래 1백 권이 있었지만 중국에서 번역한 것은 열 권 뿐이다. 처음 네 권은 견도(見道)를 보여주고, 제5권 제6권은 수행을 보여주며, 제8권 제9권은 점차 과위를 증득하는 것이며, 마지막은 음마(陰魔) 망상을 설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이 만약 발심하여 부지런히 닦아가며 게으르지 않을 수 있다면, 십신(十信)으로부터 십주(十住), 십행(十行), 그리고 십회향(十迴向)을 거쳐 십지(十地)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한 걸음 한 걸음 진보하게 되어 등각(等覺)과 묘각(妙覺)에 이른다. 그런데 삼계칠취(三界七趣)는 환망(幻妄)이 나타난 것 아님이 없으며, 본래 한마음[一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모든 부처님들의 묘하고 밝은 각성(覺性)일지라도 한마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 향엄동자(香嚴童子)가 바로 나의 코라고 말할 수 있고, 교범보살(憍梵菩薩)이 바로 나의 혀라고 말할 수 있다. 스물다섯 분의 성현의 인지(因地)는 비록 다르지만 닦아 깨달음은 결코 우열이 없다. 그러나 현재 시대에 마땅한 가르침과 근기로서는, 발심한 초학자에게 스물네 번째의 대세지보살 염불원통(念佛圓通)과 스물다섯 번째의 관세음보살 이근원통(耳根圓通), 이 두 가지 수행공부 방법이 더 마땅할 것 같다.
능엄경에서 범부와 성인을 설하고 깨달음과 마구니를 설하는 것은 모두 5온(五蘊)은 실유(實有)가 아니라고 천명하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가르치기를 5온은 모두 공(空)한 것임을 비추어 깨뜨리며 최후에는 열반이 있음을 알고 삼계를 그리워하지 말라고 한다. 5음 마구니의 삿됨을 가리켜보여서, 5음을 설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색음(色陰)에서 음색(婬色)은 생사의 근본이다.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은 지옥의 근본이다. 5음이 공함을 비추어보면 곧 생사를 해탈하고 다시는 윤회하지 않는다.
지금은 말법 시대인데 당신은 어디 가서 선지식을 찾겠는가? 능엄경 한 부를 숙독하는 것만 못하다. 그러면 수행에 자신이 있게 되고, 수행자를 잘 보호하고 가엾이 여겨 구제하고, 삿된 인연을 소멸시키며, 그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知見)에 들어가게 할 수 있으며, 이로부터 성취하여 갈림길을 만나지 않을 수 있다! 수행자들은 노소(老少)를 막론하고 항상 능엄경을 읽기 바란다. 이 경은 당신이 휴대하고 다니는 선지식이니, 때때로 세존의 설법을 들으면 곧 아난과 함께 도반이 되는 것이다!”(중국 근현대의 허운虛雲대사)
“세상 사람들은 종교의 교리를 탐구하고 철학의 지혜로운 사유를 추구합니다. 저도 이를 위하여 여러 해 동안 노력한 적이 있습니다. 섭렵한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회의(懷疑)도 그 만큼 심해졌습니다. 최후에는 마침내 불법(佛法) 속에서 지식 욕구의 의혹을 해결했고, 비로소 도리에 어긋나지 않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경은 아득한 바다처럼 넓어서 처음 불학(佛學)을 열람하면서 불법의 중심 요령을 얻고자 한다면 정말 손댈 길이 없습니다. 조리 있고 체계적일 뿐만 아니라 불법의 정수(精髓) 요점을 개괄하는 것으로는 오직 능엄경이 불법의 요령을 종합한 한 부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들 능엄경을 다루기 어렵다고 느끼는 까닭은 첫째, 능엄경은 과학적인 증명을 추구하는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과학문명이 진보할수록 능엄경의 가치는 갈수록 높아질 것이며, 능엄경은 또렷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문학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과학적인 증명 추구 방법인 불도를 문학화 했는데, 이는 대단히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남회근 선생)
윗글들은 서기 705년에 번역이 완성되어 널리 유통되어온 능엄경에 대한 중국의 역대 고승대덕들의 평론들 중에서 몇 개를 참고로 들어본 것입니다.
한편 능엄경은 중국 찬술 위경(僞經)이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었습니다. 남회근 선생도 저자 서언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따로 능엄경 대의 요지도 말하고 있습니다.
불법백과전서이자 조요경
이렇듯 능엄경은 한 부의 체계적이고 방대하며 장관(壯觀)인 종합대승경입니다. 경중에서 언급하고 있는 불교 이론은 두루 갖추고 있어서 불교 교리의 거의 대부분의 개념과 범주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능엄경과 기타 불경들과는 마치 제석천 궁전에 있는, 무수한 구슬들로 만들어져 서로 뒤얽혀 비치는 장엄한 그물인 인드라망 같습니다. 그래서 불법백과전서(佛法百科全書)라고 합니다. 또한 불법 수행 과정에서 만날지 모르는 갖가지 난관들과 그 돌파 방법을 자세히 말하고 있는 불법실제수행지남(佛法實際修行指南)으로서 일명 조요경(照妖鏡)이라고도 합니다. 왜냐하면 삿된 마구니들을 비추어내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경은 말합니다.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말법시대에 많은 요사스런 마귀의 무리들이 세간에 성행하면서 속마음이 간사하고 음험하면서 선지식이라고 스스로 일컬을 것이다. 모두들 이미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얻었다고 선전하면서 무지하고 무식한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을 겁주어서 진심 자성을 상실하게 할 것이다. 그들이 지나간 곳의 사람들로 하여금 재물을 다 써서 없애게 할 것이다.”
그러나 차돌경, 그리고 능엄대의금석
그러나 능엄경은 참으로 난해합니다. 경전 한문의 문자는 지극히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이미 1,300여 년 전의 고문입니다. 더더구나 문자의 사용을 간소화하고 구성을 신중 엄밀하게 하였기 때문에, 설사 이미 불교 지식과 한문[古文]에 소양이 상당한 사람이라도 읽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대의 능엄경 저작들은 제외하고, 만자속장경(卍續藏經)에 수록된 능엄경의 주석서만 해도 송(宋)나라부터 청(淸)나라까지 모두 54종 153권이나 된다는 사실은, 이 경전이 널리 유포되었고 중요시 되어온 한편 얼마나 난해한 경전인가를 말해주는 반증(反證)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불교강원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 능엄경을 대승기신론 · 금강경 · 원각경과 함께 사교과(四敎科)에 넣어 전통적으로 배워왔는데, 너무나 어려워서 별명을 차돌경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래서인지 중국과는 달리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능엄경 관련 출판 도서 종류나 강의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역자가 능엄경을 처음 읽었던 때는 고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출가 승려였던 친형(뒷날 중앙승가대 교수를 지낸 송찬우宋燦禹)이 시골집에 가져다 놓은 책들을 이것저것 읽어보다가 운허(耘虛)스님이 한글로 번역한 능엄경(법보원 1963년 10월1일 재판 발행본)을 읽어보게 되었는데, 저도 모르게 환희심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난해하지만 왠지 재미있어 몇 번 통독했습니다. 그 뒤로 사회생활하면서 다른 한글번역본 몇 종들도 읽어보았는데 거의 운허스님 번역을 토대로 했고, 운허스님 번역본은 조선 세조 때 간행한 능엄경언해본을 토대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직장생활 중이던 1993년 고려대 후문에 있는 천안문(天安門)이라는 중국서점에서 뜻밖에 남회근 선생 저작의 능엄대의금석(楞嚴大義今釋, 간체자본, 북경사범대학 출판)을 만나게 되어 구입하여 읽었습니다. 남회근 선생은 이릉자(二楞子)로 불렸는데, 능엄경과 능가경을 깊이 연구하였기 때문입니다. 능엄대의금석은 책의 이름이 말해주듯이 그 대의만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였지만, 국내의 기존 번역본들 보다는 경문을 내용 요점별로 분류한 장절의 체제나 풀이가 현대적 개념이어서 그래도 이해하기 쉬운 편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를 언젠가는 번역하여 소개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1998년 직장을 그만 둔 뒤 4년이 지난 2002년 봄 서울 인사동 사거리 근처에 작은 사무실을 하나 빌려 유마서원(維摩書院)을 열었고, 같은 해 8월 중순부터 몇 분의 학우님들(김명섭, 서상욱, 윤성희, 임미경, 임정재)과 매주 한 번씩 원전 강독을 시작했습니다. 1년 남짓 동안 제4장까지 하였으나 사정상 중지되었습니다. 아쉽게도 녹음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 뒤에 저자 서언부터 제5장까지 다시 직접 번역 기록하거나 구두 번역 녹음했습니다. 그리고 제6장부터 마지막 장까지는 2009년 11월부터 또 여러 분의 학우님들(김창수, 김종호, 보덕스님, 유정식, 유의정, 정우형, 정수명, 정태경, 최병문)과 동국대학교 근처의 명지출판사 사무실에서 매주 한 번씩 3개월 동안 강독하여 마쳤습니다. 이 모든 녹음테이프들은 역시 정창숙(鄭昶淑) 님이 청취 기록했습니다.
2015년 5월 초 저는 남회근 선생 저작인 ‘장자(莊子)강의 (내편) 상하’ 책 원고를 인쇄소에 넘겨주었고, 이어서 능엄대의금석 원고 정리 출판에 착수하려 했습니다. 뜻밖에 5월8일 교통사고로 왼쪽 빗장뼈가 부러지고 그 주변 관절 등이 잘못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수술 받고 3개월을 요양했지만 유합(癒合)하지 않았습니다. 다 낫기를 기다려 원고 정리를 하려다가는 너무 미루어질 것 같고 시간이 아까워서, 겨우겨우 컴퓨터 글자판을 칠 수 있게 된 무더운 8월 중순부터 병약한 상태에서 고통과 불편을 무릅쓰고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렵사리 그렇게 6개월을 작업한 결과, 저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많이 미흡하나마 이제 마쳤습니다. 그리고 정윤식(鄭允植)님은 번역 저본 경전 원문과의 한자 및 구두점 대조, 그리고 능엄 신주(神呪)의 산스크리트어 발음 입력 작업을 꼼꼼히 해주셨습니다. 강독에 참여했던 학우님들과 정창숙님, 정윤식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능엄경 대의 풀이도 제가 이미 번역 출판했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한낱 처량한 백면서생이 정성으로 올리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법공양입니다.
외국의 어느 학자는 “장자(莊子)를 읽어보지 못한 인생은 불행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능엄경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인생은 크나큰 행운 중의 행운입니다. 왜냐하면 백천만겁에도 만나기 어려운 경전으로서 우주와 인생의 진리 근원을 밝혀주기 때문입니다.”
남회근 선생은 1960년 저자 서언에서 말했습니다. “이 책의 번역은 곤궁하고 간고한 세월 속에 이루어졌습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진실한 지혜에 의한 해탈의 진리를 깨달아, 전도(顛倒)된 몽환(夢幻) 같은 인생세계를 평온하고 안락한 진선미(眞善美)의 영역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제가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2016년 2월 중순
신평리 심적재(深寂齋)에서
송찬문 삼가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