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동요, 박노해, 문숙
우리는 생계를 위해 식료품을 사고 문화생활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하여 일을 합니다. 그러니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살아있는 값으로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렇든 저렇든 사람에게서 일이란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숙명일 것입니다.
서양 잠언에 시간을 보내기 가장 좋은 발명은 일이며, 일보다는 걱정이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고 합니다. 또 하늘 아래 한자리를 차지하려면 손에 물집을 기대하라고 하였습니다. 더불어 일과 제휴하지 않으면 아무 성취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칼라일은 일이 불행과 질병에 대한 양약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일과 놀이는 하나였다고 합니다. 예술의 노동기원설입니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그 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 일과 놀이는 점차 분화되었다는 것이죠. 놀이는 춤, 노래, 그림 등으로 갈라졌고, 그중 노래는 멜로디와 노랫말로 갈리고, 노랫말은 마침내 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물레야 물레야 잘도 돈다
오서산이 고리싸리
칠갑산이 고리싸리
석수대정 드른 가락
들메국을 제기면은
오롱조롱 잘도 돈다
위 민요는 충남 청양 지역에서 옷을 만들기 위해 실을 잣는 물레를 돌리면서 부른 「물레 노래」입니다. 여성들이 주도한 여성노동요입니다. 여성노동은 대개 방에 모여 앉아서 이루어집니다. 끊임없는 노동을 하면서 이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면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전승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노래를 보겠습니다.
왔다 에에야 헤아~헤
저건너 갈미봉 아~헤
비몰아 온다 아~헤
우장을 두루고 헤-헤-헤-헤
에야혜 어허듸야 에야헤
위에 인용한 민요 역시 충남 청양 지역에서 가을에 타작을 하면서 부르던 「타작노래」입니다. 힘이 필요한 남성 위주의 노동이며 여성이 보조 역할을 하는 노동이 타작입니다. 이처럼 민중들은 끊임없는 노동을 하면서 가중되는 피로를 노래로 잊었던 것입니다.
민요 가운데 노동요를 보면 일과 놀이가 덜 분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농부들은 김을 매고 모를 심으면서 노동의 시름을 잊고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하여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일과 놀이가 분리된 채 노동의 참된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일군의 시인들이 노동의 참된 의미를 찾기 위해 시 속에서 노동의 가치와 율동을 추구하였던 것입니다.
박노해는 노동자계급 사상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1980년대 대표적인 시인입니다. 아래 시는 명사인 '시다'의 시점으로 시가 진술됩니다. 이 시는 나, 너, 그 등 인칭대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시들이 인칭대명사를 생략하여 시를 진술하기도 합니다. 또 이 시는 화자와 청자가 구분이 안 됩니다. '너' 일 수도 있고 '나'일 수도 있고 '그'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 정서보다 집단정서를 강조하는 시에서 자주 쓰입니다.
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으로
장밋빛 꿈을 잘라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둑 잘라
피 흐르는 가죽본을 미싱대에 올린다
끝도 없이 올린다
아직은 시다
미싱대에 오르고 싶다
미싱을 타고
장군처럼 당당한 얼굴로 미싱을 타고
언 몸뚱아리 감싸 줄
따스한 옷을 만들고 싶다
찢겨진 살림을 깁고 싶다
떨려오는 온몸을 소름치며
가위질 망치질로 다림질하는
아직은 시다.
미싱을 타고 미싱을 타고
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시다의 꿈으로
찬바람 치는 공단거리를
허청이며 내달리는
왜소한 시다의 몸짓
파리한 이마 위로
새벽별 빛난다
-박노해, 「시다의 꿈」 전문
모두 4연 30행으로 된 이 시는 열악한 섬유노동자의 고된 노동현실을 시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이 시의 주인공은 '시다'로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1연에서 주인공은 추운 공장 안에서 피로한 상태에 있습니다. 2연에서는 잠 안 오는 약을 먹으면서 철야를 하고 있습니다. 3연에서는 미싱을 사용해 직접 옷을 만들지 못하는 시다의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연에서는 시다의 소망을 확장시켜 세상을 연결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처럼 삼인칭 화제중심의 말하기를 통해 열악한 노동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리어카를 끌고 오는 용수 할매
가을비는 폐지를 적시며 내리고
길 앞으로 쏟아질 듯 뒤따르는 리어카가
야윈 걸음을 밀고 있다
일찍 자식 앞세우고
어린 손자랑 등 기대며 살던 할매
컴컴한 골목길
휘파람 휙휙 날던 밤
손자마저 낙과처럼 떨구고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중심을 잃은 채
길처럼 매달렸던 하나님도 놓고
몇 달을 주검처럼 보냈단다
오늘은 저승이라도 끌고 오는지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가지 끝에 매달린 가랑잎처럼
리어카 손잡이 움켜잡고
흰 고무신에 담긴
마른 풀잎 같은 다리로
미끌미끌 버티며 오고 있다
-문숙, 「용수할매」전문
모두 3연 20행인 이 시는 가난한 독거노인의 힘든 노동생활을 관찰자 입장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1연에서 시적 주인공인 용수 할머니는 리어카로 폐지를 수집하여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창작자는 화자의 시선을 통해 비가 내려 리어카에 실린 폐지를 적시고, 주인공이 야윈 걸음을 하고 있다며 비극적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2연에서는 주인공의 비극적 가족사가 서술됩니다. 자식은 먼저 죽고 같이 살던 어린 손자 역시 불량배들에게 죽은 것으로 암시됩니다. 주인공은 삶의 충격으로 다니던 교회도 그만 두게 됩니다.
3연에서는 주인공이 리어카를 끌고 있는 상황입니다. 리어카를 끄는 노동은 저승이라도 끄는 것처럼 힘겨우며, 손은 가랑잎처럼 마르고 앙상합니다. 다리는 풀잎처럼 가늘고 말랐습니다.
사회보장 제도가 미약한 우리나라의 노인노동 현실을 객관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용수할매'라는 비극적 주인공이 안간힘으로 현실을 버티며 사는 가난한 노파의 삶을 적실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공광규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2025. 2. 18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