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회
* 엥꼬
오래 전의 일이란다. 엠비씨의 아무개 아나운서가 처음으로 차를 장만했을 때, 그이는 차란 마냥 굴러가는 물건이라고 생각을 하고 즐겁게 몰고 다녔는데, 어느 날 길 한가운데에서 차가 슬슬 서더니 마침내 움직이질 않더란다. 놀란 마음에 '카센터'에 연락을 하고 보니 글쎄나 기름이 다 떨어졌던 게다. 운전의 재미에 푹 빠진 초보운전자가 그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자동차란 기름을 계속 넣어줘야하는 물건이라는 걸.
그런데, 그렇게 기름이 바닥난 상태를 뭐라 하느냐고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엥꼬'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엥꼬'는 '주저앉음', '자동차 따위가 고장으로 움직이지 않음'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기름이 떨어졌다','동났다' 등의 상황에 맞는 우리말을 써야겠다.
그 외에도 자동차와 관련해서 잘못 쓰이고 있는 말들이 많다. 어떤 말들이 있을지, 어떻게 말하는 게 옳을지 주변을 꼼꼼히 돌아보자
52회
* 빠떼리?
지난겨울, 선배 아나운서의 자동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아서 전기를 대주느라 애 먹은 기억이 있다. 덕분에 점프케이블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잘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자동차의 문제는 바로 '배터리'에 있었다. 자동차에 전기를 공급해주는 젖줄 노릇을 하는 게 바로 '배터리'다. 근데 사실 '배터리'를 '배터리'라고 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영어 'Battery'를 외국어 발음에 서툰 일본사람들이 '빠떼리'라고 읽었다. 그러니 '빠떼리', '빼터리', '빳데리'는 일본투 발음이라는 것이다. 이제 이런 말들은 버리자. '배터리'라고 하든가 아니면 종류에 따라서 '충전지' , '축전지', '건전지', '전지'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53회
* 하제
우리말의 섬세함을 보여주는 한 보기가 있다. 날을 꼽는 말인데, 오늘을 기준으로 과거를 세는 어제, 그저께, 그끄저께가 있고 미래를 세는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가 있다. 그런데 이 낱말 가운데 '내일(來日)'만이 토박이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챘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겐 내일을 뜻하는 말이 없었단 말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당연히 있다. '하제, 올제, 후제'가 바로 '내일'을 뜻하는 토박이말이다.
어떤 이는 우리 겨레가 옛일에 집착한다고 하지만,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을 놓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손으로 꼽아보자. 지난날은 사흘을 기억하지만, 앞날은 나흘이나 내다보니 말이다.
54회
* 빵꾸
자가운전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운전만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자동차 일일점검과 응급처치도 익혀야한다. 길을 가다가 차바퀴에 바람이 빠졌을 때 바퀴 갈아 끼우는 요령 정도는 누구나 숙지하고 있어야겠다. 그래야 진정한 자가운전자가 되는 게 아닐까?
그런데 길을 가다보면 '빵꾸'라고 써 붙인 '카센터'가 많은데 '빵꾸'라는 말은 어디서 온 말일까?
이미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말 역시 일본에서 만든 말이다. '구멍 뚫다, 구멍나다'라는 영어 'puncture'를 말 줄여 만들기 좋아하는 일본사람들이 앞의 넉자만 따서 '팡크'라고 한데서 비롯된 말이 '빵꾸'다. 이런 어설픈 말을 쓰기보다는 '구멍났다', '바람 빠졌다', '터졌다' 등 상황에 맞게 우리말을 쓰는 게 바람직하다.
그리고 바퀴를 갈아 끼우기 위해 차를 들어올릴 때 쓰는 기구의 이름은 '자키'가 아니라 '잭'이라는 것도 기억하자.
55회
* 바람/바램
노사연의 '만남', 토이의 '바램'이라는 노래는 지금도 애창되는 노래다. 그러나 우리말나들이는 이 노래에 점수를 후하게 줄 수 없다. 노랫말(제목)때문인데, 대중가요의 노랫말이 언어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무척이나 크다. 무심코 따라하는 노랫말 때문에 고운 우리말이 상하고 있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바램'이 문제다. 이 노래들에서 '바램'은 무엇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뜻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바람'이라고 했어야한다. '바램'은 '바래다'라는 움직씨(동사)의 이름꼴(명사형)인데, '바래다'는 '볕이나 습기에 빛깔이 변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즉 '바램'은 '퇴색함'을 뜻하는데, 이는 소망, 기원을 뜻하는 '바람'과는 거리가 먼 말이다.
우리말나들이에겐 '바래지' 않는 '바람'이 있다. 온 국민이 나서서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고 사라져가는 우리말을 되살리는 것이다.
56회
* 휴대폰
문명의 이기가 퍼져나가는 가속도를 보면 실로 놀라울 때가 많다. '삐삐'라고 불리는 무선호출기를 신기해하던 때가 엊그저께인데, 이젠 시도때도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소리가 일상소음이 되어 버렸다. 공연을 보러 가더라도 입장권 뒤에 '공연중에는 호출기나 휴대폰 등의 전원을 끄거나 진동으로 바꿔주십시오'라는 말이 으레 적혀있기 마련이다. 오늘 하고싶은 이야기는 사용인구가 천만이 넘는다는, 어느새 우리 생활 깊숙히 들어와있는 '갖고 다니는 전화기'에 대한 것이다.
손에 들고 다니기 때문일까? '핸드폰'이라는 말이 나온 까닭이.. 영어로는 cellular-phone이라고 하는 걸보면, 영어처럼 생긴 '핸드폰'이란 말은 영어권 사람들이 쓰는 말이 아닌 얼치기 영어란 걸 알 수 있다. '갖고 다니는' 전화니까, '휴대전화', '휴대폰'이라고 하는게 좋겠다. 물건이 외국에서 들어왔다고해서 말까지 수입해오는 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57회
* 깡총깡총
노래를 하자! 어릴 적 동무들과 함께 부르던 추억에 잠겨 노래를 해보자. 생각난다면 노랫말에 맞춰 춤을 춰봐도 좋다. 곡목은 '산토끼'이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총깡총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이 노랜 틀렸다. 세상에 '깡총깡총' 뛰는 토끼는 단 한 마리도 없다. 그럼? 토끼는 '깡충깡충' 뛴다. 토끼나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묘사하는 말은 '깡충깡충'이 맞다.
양성모음이 음성모음으로 바뀌어 굳어진 경우에는 음성모음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이 1988년 표준어 개정 때 생겼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오똑이'가 아니라 '오뚝이'가 맞다.
표준어 규정이 바뀐지도 그러고보니 어느새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다. 그런데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깡충깡충'이 아니라 '깡총깡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노랫말의 영향, 특히 어릴적 배운 동요의 영향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 어린이들이 요즘 부르고 있는 동요의 노랫말도 다시한번 돌아볼 일이다
58회
* 삐까뻔쩍
'반짝반짝 작은별..'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기억하시는지? 밤하늘의 별,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의 그 '반짝임'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반짝이다'의 큰말이 '번쩍이다'이다. '반짝','번쩍'. 모두 고운 우리말이다. 그럼, '삐까뻔쩍'은?
'반짝반짝'에 해당하는 일본어가 '삐까삐까'라는 것을 알고 계신지. 그러니 '삐까뻔쩍'은 일본어 '삐까'와 우리말 '번쩍'이 합쳐져 만들어진 이상한 국적불명의 말이다. '삐까뻔쩍' 대신에 '으리으리한', '멋진', '아주 좋은' 등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을 골라 써야겠다.
59회
* 애국가
얼마나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한번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우리말 나들이가 제공하려한다. '애국가 바로 부르기!' 초등학교 때 도덕 시험문제로 자주 출제되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헷갈리는 부분들이 있다. 다음 괄호를 채워넣어보라.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이 ( )하사..'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 )하세!'
우리말나들이가 직접 거리로 나가 시민들에게 이 부분을 노래하도록 해본 결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보호', '보존'으로 노래했다. 정답은 '하느님', '보우', '보전'이다.
'하느님'은 특정 종교를 넘어선 절대자, 하늘의 높임말이다. '보우'는 지킬 보(保), 도울 우(佑), 즉 지키고 돕는다는 뜻이고, '보전'은 지킬 보(保), 온전할 전(全), 보호하여 유지한다는 뜻이다.
'하느님'이 우리를 '보우'하시듯이, 우리도 우리말을 잘 '보전'해야겠다
60회
* 밝다
우리말 발음 중에 특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 받침의 소리다. 겹받침의 발음은 더 어렵고 헷갈리는데, '밝다'의 발음은 어떻게 될까?
힌트! '맑다', '늙다'를 소리내보라. [말따],[늘따]라고 읽지 않았기를 바란다. 이 보기들의 바른 소리내기는[막따],[늑따]이다. 겹받침 'ㄹㄱ'은 어말 또는 자음 앞에서 [ㄱ]으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밝다', '밝지'의 발음은 [박다][박찌]가 된다. 단, '밝고'는[발꼬]가 맞다.
자꾸만 혼탁해져가는 우리말의 현실을 보면 우리말의 미래가 그리 '밝지[박찌]' 않은 것 같은 생각에 우울해지지만, 우리말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우리말의 앞날은 더 '밝아[발가]'질 것이다.
61회
* 바람
정신없이 걷다가도 순간 이마에 와닿는 선들바람에 멈춰서 계절을 숨쉬게 된다. 자연은 그렇게나마 한 해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주는 걸 게다. 그래서 바람은 고맙다. 사시사철 불어대는 바람이지만, 철마다 같지 않음을 보면 오묘한 자연의 이치를 생각하게 된다.
바람은 철에 따라, 또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봄에는 동쪽에서 샛바람이 불어온다. 속담에 몹시 졸리운 모양을 '샛바람에 게눈 감기듯'이라 하는 걸 보면 봄바람에 졸리운 건 사람만이 아닌가보다. 여름에는 남쪽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기운을 담은 마파람(앞바람)이 부는데, 남풍이 불면 게가 눈을 급히 감추는 모양이다. 그래서 옛말에 급히 해치우는 모양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라 한 것이 아닐까. 가을이 되면 서쪽에서 하늬바람이 분다. 하늬바람이 불 때면 곡식이 여물기에 '하늬바람에 곡식이 모질어진다'는 말이 있다. 북쪽에서 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겨울이다. 북풍은 된바람, 삭풍이라고도 한다.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라는 김종서의 시조가 떠오르지 않는가?
62회
* 굴삭기
다섯살배기 조카가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길래 '이건 뭐니?'하고 물었다. 조카의 조그만 입술 사이로 나온 대답은 '음.. 포크레인이예요'. 아, 이건 어른들의 잘못이다. 이제 말배우기에 한창 재미를 들인 이 어린이의 예쁜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게 한 것은. 땅을 파서 흙을 퍼옮기는 기계는 '포크레인'이 아니라 '굴착기(掘鑿機)'라고 해야 옳다. '포크레인'은 '굴착기'를 만드는 프랑스의 한 회사의 이름일 뿐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장난감 '포크레인'을 절대 사주지 말자. 대신 장난감 '굴착기'를 안겨주자. 그리고 '굴착기'를 '굴삭기'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굴삭기'는 일본투 말이라는 것도 더불어 알아두자.
또, '포크레인'처럼 회사 이름이 곧 물건 이름으로 굳어진 다른 보기가 있다. 바로 '클랙슨(Klaxon)'인데, '크락숑'도 '클랙슨'도 아닌 '경적'이라고 하자. 굳이 영어를 써서 잘난 척 하고 싶다면 '혼(horn)'이라고 하던가.
63회
* 옷깃
1.옷깃 2.에리 3.칼러 4.카라 5.컬러... 앞의 다섯가지 중에 저고리의 목부분을 이르는 바른말은? 1번 옷깃, 깃이 바른말이다. 그런데 요즘 옷깃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칼라나 카라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른 네 개가 왜 그른지 따져보도록 하자. 2번 에리는 옷깃의 일본어이다. 3번 칼러는 옷깃을 뜻하는 영어 collar이다. 4번 카라는 'ㄹ' 받침이 없는 일본에서 '칼러'를 '카라'로 발음한 것이다. 5번 컬러는 빛깔을 뜻하는 영어 color다.
이제 아시겠지? 에리, 칼러, 카라, 컬러는 아름다운 우리말, 옷깃 혹은 깃으로 바꿔써야 할 말이다. 그리고 옛말에 '오다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는 말이 있는데, 한번 생각해보라. 옷깃이 스치려면 그건 정말 보통 인연이 아닐게다.
옷깃과 관련된 말로, '옷깃차례'라는 말도 있다. 흔히 무슨 일을 돌아가며 하는 차례를 정할 때, 시계방향이니 '고도리방향'이니 하는 말들을 쓰는데, 앞으로는 이 '옷깃차례'라는 말을 쓰면 어떨까 싶다. '옷깃방향'이란 시작한 사람으로부터 오른쪽으로 향하여 돌아가는 차례를 말한다.
64회
* 장본인
잡지나 책 같은 것을 읽다가 피식피식 웃음이 새나올 때가 있다. 하지만 결코 즐거운 웃음이 아니다. 글쓴이의 의도는 결코 그것이 아님이 분명하지만, 글쓴이는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단 하나의 낱말로, '장본인'이라는.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아무개는 방송언어에 무관심한 풍토에 젖어있는 이들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한 '장본인'이다." 이 말대로 한다면 이 아무개씨는 사람들이 방송언어에 관심을 갖도록 한 아주 나쁜 사람이 된다. 즉, 말이 안 되는 말이다. 아무개씨가 한 일은 올바른 일이다. '장본인'은 '일을 꾀하여 일으킨 사람'으로 대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의 중심인물을 말한다. '뇌물 수수 사건의 장본인'처럼. 위 예문의 아무개씨는 훌륭한 일을 한 '주인공'이다. '생일잔치의 주인공'처럼 '주인공'은 좋은 일의 중심인물을 가리킨다.
말을 잘 한다는 것, 글을 잘 쓴다는 것. 그 시작은 적절한 낱말을 적절한 곳에 쓰는 것 아닐까? 낱말과 문장이 '부적절한 관계'가 되지 않도록 조금만 더 관심을 갖자.
65회
* 콩팥
무심히 지나쳐서 그렇지, 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참 많다. 모양은 강낭콩인데, 빛깔은 팥이라...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렇다. 바로 '콩팥'이다. 농담이 아니라, 신장의 토박이말이 '콩팥'이 된 까닭이 바로 그래서이다.
그러면 심장의 우리말은 무엇일까? '염통'. 아주 염치 없이 뻔뻔한 사람보고 '염통에 털났다'라고 하고, '염통에 고름 든 줄은 몰라도, 손톱 눈에 가시 든 줄은 안다'는 속담도 있다. 눈 앞의 작은 이해관계에는 밝아도, 큰 손해나 타격을 가져올 가려진 일은 모른다는 뜻이다.
그 외에도 신체 각 부분을 가리키는 토박이말들이 있는데, 다음 기회에 또 살펴보도록 하자. 궁금하다면 지금 사전을 펴봐도 좋을 것이다.
66회
* MESSAGE
호출기를 쓰는 사람이라면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듣는 말이 있다. "메세지 녹음은 1번...", "몇 개의 메세지가 있습니다." 이 안내뿐이 아니다. 무슨 사용설명서 따위를 봐도 '메세지'라는 낱말을 버젓이 쓰고 있다. 그러나 '전하는 말이나 용건'을 뜻하는 이 외래어의 바른 표기와 발음은 '메시지'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전하는 말'이나 '용건'같은 우리 말을 쓰는 것이겠지? 그리고, Sausage 역시 '소세지'가 아닌 '소시지'가 옳은 표기와 발음이다.
'메시지'나 '소시지'는 영어에서 온 말인데, 영어를 쓰는데에 무슨 표준어가 있고 맞춤법을 따지느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건 외래어와 외국어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류이다. 외국어는 말 그대로 다른 나라의 말이다. 그리고 외래어는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우리나라 말의 범주에 든다. 그러므로 외래어는 외국에서 왔을 뿐 우리나라말이란 뜻이다. 그럼, 당연히 국어어문규정에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영어를 구사할 때는 제대로 된 영어발음을 쓰고, 우리말에서 쓸 때는 '메시지'라고 해야한다는 말이다.
67회
* 본
우리는 아직 일제의 지배에서 제대로 독립하지 못했다. 일상생활 아주 작은 부분에까지 깊숙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침투해있는 일본을 본다. 오염이 가장 심한 곳이 '말'일 것이다. 말은 얼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말도 있다. 엄연히 우리 말이 있는데, 그 자리를 일본말이 차지하고 있다. 한없이 속상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대형 텔레비젼 광고를 보면 '수평해상도 *본'이라는 문구가 있다. 그리고 양주나 이른바 '먹는 샘물' 포장 상자에도 '본'이라고 쓰여있다. 요즘은 맥주 캔에도 '본'이라는 말을 쓰는데, '본'이 우리 말일까?
'본(本)'은 일본말이다. '가늘고 긴 것'을 세는 일본 단위가 '본'이다. 우리는 '개비','자루','병' 등이라고 하지만, 일본에선 '본'이라고 한다. 수평해상도는 '*선'이라고 해야 바른 우리 말이다. 일본문화를 개방한다고 해서 각계에서 우려를 나타내는데, 우리 말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도록 더욱 더 촉각을 곤두세울 일이다. 모두가 다 함께...
68회
* 햇살, 햇빛, 햇볕
'비 내리는 흐린 날은 왜 우울해지는 걸까?' 바로 '햇빛' 때문이란다. '햇빛'의 양이 부족해서 우리 몸이 그런 화학반응을 낸다나? 사람의 감정까지도 화학반응이니 뭐니 해서 과학으로 설명하는 것이 좀 그렇지만, 검증된 사실이라니 인정을 할 수밖에.
우리 속담에 '봄볕에 그을리면 보던 임도 몰라본다'는 말이 있다. 봄 '햇볕'에는 따가운 줄도 모르는 사이에 까맣게 탄다는 말이다. 그래서 '가을볕에는 딸을 쬐이고, 봄볕에는 며느리를 쬐인다'는 말도 나왔나보다.
아침무렵 창가에 쫙 퍼지는 '햇살'을 보며 밝은 하루를 기대할 때가 있다. 계절마다 얼굴에 와닿는 느낌이 다른 것이 '햇살'이지만, 아침무렵의 투명한 '햇살'은 언제나 아름답다.
'햇빛'과 '햇볕'과 '햇살'의 차이를 말하고자 서론이 길어졌다. '햇빛'은 일광(日光), 즉 해의 '빛'이다. '햇볕'은 해의 내리쬐는 '기운'이다. '햇살'은 해가 내쏘는 '빛살'이다.
좀 혼동되는 말들이긴 하지만, 분명히 조금씩 다른 말이다. 알아두면 보다 정확한 말을 구사할 수 있지 않을까?
69회
* 봉오리, 몽우리
요즘 어려운 시절에 힘을 주는 흘러간 노래 가운데 '봉우리'라는 노래가 있다. 노랫말 때문이다. '봉우리'는 우리가 향해 가는 목표이자, 우리가 잠시 앉아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며 쉴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봉오리'는 아니다. 우리는 '봉오리'엔 오를 수 없다. 왜냐면, 그 아무리 큰 '봉오리'라 할지라도 우리가 오르기엔 너무나도 작기에.
'봉우리'는 '산봉우리'를 말한다. 그리고 '봉오리'는 '꽃봉오리'의 준말로 '몽우리'와 같은 말이다.
'봉우리','봉오리', '몽우리'... 이 세 낱말을 보면 생각나는 말이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오 다르고 우 다르다'겠지만. 표기와 발음이 비슷해서 자주 혼동되지만, 헷갈리는 영어 철자 외우는 정성 반의 반만 기울이면 되지 않을까? 모국어를 바르게 구사하는 것은 국민의 자존심 문제라고 생각한다.
70회
* 절대절명?
'절대절명, 풍지박산, 야밤도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건, 모두 틀렸다는 것이다. 흔히들 쓰고 있는 말이긴 하지만, 옳은 표현이 아니다.
'몸이 갈라지고,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절박하다'해서 생긴 말로 아주 위급한 경우를 가리켜 흔히 '절대절명'이라고 하지만, '절체절명(絶體絶命)'이 바른 말이다. 요즘 방송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절대절명'이라는 그른 말을 버젓이 쓰는 이가 있는데, 우리 말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끼게 된다.
'풍지박산'과 '야밤도주' 역시 '풍비박산 (風飛雹散)'과 '야반도주(夜半逃走)'가 옳다. '풍비박산'은 '사방으로 날아 흩어짐'의 뜻이고, '야반도주'는 '야간도주'라고도 하는데 밤도주 밤또주 , 즉 밤에 도망치는 일을 뜻한다. 아마 밤과 연상해서 '야밤도주'라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71회
* 애끊다/애끓다
갑돌이: "어휴! 놀라서 애 떨어질 뻔 했어!" 갑순이: "남자한테 무슨 애?"
갑순이는 오해를 하고 있다. 남자인 갑돌이의 뱃속에도 분명히 '애'가 들어있다. 아니, 그게 무슨 해괴망측-해괴망칙은 그른 표현이다-한 소리냐고? 남자 뱃속에 어찌 '애'가 있을 수 있냐고?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이 말 속의 '애'란 '아이', 곧 어린아이의 준말이 아니라 본래 '창자'를 일컫는 토박이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요즘엔 '근심에 쌓인 마음 속' 혹은 '마음과 힘의 수고로움'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인다.
'애끊다', '애썩다', '애타다', '애끓다'처럼 '애'와 관련된 말은 많다. 그 가운데 비슷해 보이는 '애끊다'와 '애끓다'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 '애끊다'는 '창자가 끊어질 듯이 마음을 아프게 하다'는 뜻이고 '애끓다'는 '너무 걱정이 되어서 속이 끓는 듯하다'는 뜻이다.
제 2의 건국을 부르짖는 요즘,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라며 나라를 향해 '애끓는' 걱정을 했던 이순신 장군의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겠다.
72회
* 음식 이름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효석-메밀꽃 필 무렵 본문 중에서) 유명한 소설 한 구절이다. 이 소설 덕에 이효석의 생가가 있는 봉평은 메밀꽃 필 무렵이 되면 그 풍경을 보고자 찾는 이들로 붐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 나오는 메밀꽃과 우리가 먹는 메밀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일까?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아는 사람들은 많은데, 왜 음식이름은 '모밀'이라고 하는 이가 많은 것일까? '모밀'인지 '메밀'인지 헷갈릴 때는 이효석을 떠올리자! 그의 '메밀꽃 필 무렵'을...
더불어 찹쌀, 율무, 콩 등을 갈아 섞은 건강식은 '미숫가루'란 것도 알아두자. 흔히들 '미싯가루'가 표준어인 줄 알지만, '미숫가루'가 옳다. 그리고 예전에는 '상치'가 표준어였지만, '상추'로 바뀌었다. 언제부터? 1989년부터.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처럼 바른 언어생활을 위해서 표준어를 쓰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메밀', '미숫가루', '상추'.... 오늘은 이 세 낱말을 꼭꼭 씹어 입에 배도록 하자.
73회
* 실랑이
문화방송 아나운서국에서는 '우리말 전화'를 통해 시청자들이 문의해오는 우리말 관련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있다. 그런데, 가끔 문의가 아니라 의견개진을 하거나 항의성 내용인 전화도 있다. 그럴 때면 전화 받는 아나운서와 전화 건 시청자가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실랑이' 하는 것인가? 아니면 '승강이' 하는 것일까?
'실랑이'는 '남에게 못견디게 굴어 시달리게 함'이다. '승강이(昇降:이)'는 '서로 자기 주장을 고집하여 옥신각신 함'이다. '실갱이'라는 말도 쓰는데, 그것은 표준어가 아니다. '실랑이'와 '승강이', 소리내기가 비슷해서 그렇지 뜻은 전혀 다른 두 낱말이다. 구별해서 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어떤 사전에는 '실랑이'를 '승강이'의 뜻으로 적어놓는 것도 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괜히 '승강이'하자는 것은 아니다. 사전의 올림말을 고르는 것은 편찬자의 판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까. 그래서 정말 믿을만한 사전이 하루 빨리 나와야한다.
74회
* 법률용어
문화방송의 법정 미니시리즈 '애드버킷'이 흔치 않은 법조인의 세계를 다뤘다고 해서 관심을 끌었는데, 사실 법률용어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과 너무 동떨어져 있고 어려운 한잣말이 많고 또 일본투 한자도 많아서 들어도 이해하기 어렵다. 흔하게 쓰이는 법률용어 몇가지를 알아보자.
또 '개전의 정이 현저한'은 '뉘우치는 빛이 뚜렷한'이라는 뜻이라는데, 말은 우리 말임이 분명한데 따로 설명이 없으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한글 세대인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더 그럴 것이다. 이것은 젊은이들이 한자를 몰라 그렇다라고 문제삼을 일이 아니다. 국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법정이다. 그래서 요즘 대법원에서는 법률용어의 한글화를 권하고 있다고 하는데, 법조계의 우리 말 쓰기가 하루 빨리 생활화되길 바란다.
75회
* 시달리다
불교가 한반도에 들어온 역사는 멀리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활 깊숙이 파고 든 불교, 따라서 불교가 우리 언어생활에 미친 영향도 알게 모르게 크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 가운데 뜻밖에도 불교에서 나온 말이 있다는 얘기다.
우선, '이판사판'이다. '막다른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을 '이판사판'이라고 하는데, '이판'은 불교교리를 연구하는 승려이고 '사판'은 절의 살림을 맡은 승려를 말한다. 그런데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을 폈던 조선시대, 곤궁에 처한 승려들의 처지를 빗대 '마지막 궁지에 몰린 상황'을 가리켜 '이판사판'이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시달리다'는 말도 불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는 인도 승려들이 고행한 '시다림'에서 나온 말이다. 또 '말세' 역시 실은 불교용어에서 나온 말이다. 불법이 땅에 떨어져 어지러운 세상을 '말법시'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말세'라는 말이 나왔다는 설(說)도 있다.
76회
* 성대모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는 바로 사람의 목이란다. 사람의 목소리는 다른 동물의 그것과는 달리 다양한 음 빛깔을 내기도 하는데, 어떤 이들은 남다른 재주를 보이기도 한다. 다른 이의 목소리를 비슷하게 흉내내기도 하고, 사람의 소리 뿐 아니라 별별 소리를 내기도 하는 재주로 남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그런 걸 두고 '성대모사(聲帶模寫)'라고 한다. 그런데 '모사(模寫)'와 '묘사(描寫)'를 혼동해서 '성대묘사'라고 하는 이들이 뜻밖에 많다. 심지어 방송에서 세트에 '성대모사'라고 분명히 씌여있음에도 출연자들은 '성대묘사'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말에 있어서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 아닐까?
그게 그거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를 혹자를 위해서 '모사(模寫)'와 '묘사(描寫)'의 사전의 뜻풀이를 비교해보자. 먼저 '모사(模寫)'이다. 1)무엇을 흉내내어 그대로 나타냄 2)어떤 그림을 보고 그대로 본떠서 그림. 다음은 '묘사(描寫)'. 1)눈으로 보거나 마음으로 느낀 것을 글이나 그림 등으로 객관적으로 표현함. 따라서 '남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은 '성대모사(聲帶模寫)'이지 '성대묘사'가 아니다.
77회
* 안갚음?
옛날 얘기 하나 하려한다. 옛날 옛날에 어미 까마귀와 새끼 까마귀가 있었다. 어미새는 새끼새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며 정성스럽게 돌봤다. 그렇게 새끼새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어느덧 어미새는 늙어서 혼자서 먹이를 찾을 수 없게 되었는데, 그러자 이제는 다 자란 새끼새가 어미를 돌보았다. 이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 '반포지효(反哺之孝)'이다. 그 새끼 까마귀처럼 부모에게 은혜를 갚는 것을 토박이말로 '안갚음'한다.
그런데 이 '안갚음'이라는 낱말을 말할때는 발음에 주의해야한다. 자칫 '앙갚음'이라고 했다가는 전혀 다른 말이 될테니까. '남이 저에게 해를 주었을 때, 저도 그에게 해를 주는 일'이 '앙갚음'이니 발음은 '안갚음'과 비슷해도 그 뜻은 하늘과 땅 차이란 말이다. 소리내기의 문제는 '안갚음'의 '안'을 길게 발음하면 자연스레 해결된다.
'아-ㄴ갚음'..이렇게.
78회
* 사주단자와 부부금실
예로부터 혼담이 오가고 선을 본 후에 혼담이 결정되면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사주단자'라고 한다. '사주'란 신랑이 태어난 해달날시(年月日時)를 적은 종이이고, '단자'란 부조하는 물건의 이름, 수량 등을 적어 받을 사람에게 알리는 종이를 말한다. 가끔 사주를 넣은 함단지 정도로 생각해서 '사주단지'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사주단지'는 틀린 것이다. '사주'와 '단자'를 적은 종이를 함께 보낸다해서 '사주단자'라 한다는 것이다.
또 내외가 사이좋게 화목한 것을 '금실이 좋다'고 한다. 이때의 '금실'은 '금실지락(琴瑟之樂)'의 준말이다. '금실'은 거문고와 비파를 말하는데, 이 두 악기의 어울림이 아주 좋다해서 내외의 다정함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79회
* 결혼과 혼인
'결혼'과 '혼인', 같은 말 같지만 다르다. 먼저 '혼인(婚姻)'에는 남녀평등의 뜻이 담겨있다. '혼(婚)'은 '어두운 저녁에 여자를 얻었다' 곧 '장가들다'의 뜻이고, '인(姻)'은 '매파를 통해 인연을 맺는다' 곧 '시집가다'의 뜻이다. 예전에는 여자쪽에서는 매파를 통해서만 혼인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혼인(婚姻)'이라는 말에는 장가들고 시집가는 곧 남녀평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결혼(結婚)'은 다르다. '결혼(結婚)'은 '장가를 맺는다' 곧, 장가드는데 여자가 연결되는 남존여비사고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80회
* 예물
혼례식에서 반지를 약지-네 번째 손가락-에 끼는 이유를 알고 있는가? 다섯 손가락 가운데 가장 독립심이 적은 손가락이 바로 약지, 곧 무명지이어서 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구속한다는 의미란다. 요즘 예물반지로 이 보석반지를 많이 하는데, 그 보석이름이 오늘의 문제이다.
'다이아몬드', '다이어몬드', '다이아', '다야', '다야몬드' 따위로 부르는 이름도 가지가지이다. 하지만 옳은 외래어는 단 하나 '다이아몬드'이다. 또 작은 다이아몬드 조각을 '쓰부'라고 하는데 이는 '조각'이라는 뜻의 일본말이니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
반지 얘기가 나온 참에 다른 액세서리-악세서리는 틀린 외래어표기이다-도 생각해보자. 반지와 함께 하는 예물로 '목에 거는 것', '귀에 거는 것', '손목에 차는 것'이 있다. '목에 거는 것'은 '목걸이'라고 한다. 그럼 '귀에 장식으로 거는 것'은? '귀걸이'? 아니다. 그건 '귀고리'이다. 귀에 장식으로 다는 '고리'는 '귀고리', 귀에 걸어 추위를 막는 기구가 '귀걸이'이다. 그리고 '손목에 차는 것'은 당연히 '손목시계'이고. '우데마키'라는 일본말에서 온 '팔목시계'란 말을 예전엔 많이 썼지만 요즘은 이 말이 '손목시계'로 바뀌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81회
* 남편의 남동생은?
혼인을 하고나서 처음 겪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복잡해진 호칭, 지칭어일 것이다. 더욱이 요즘은 핵가족화로 일가친척이 만날 일도 그리 많지 않다보니 큰 집안모임에서 서로를 소개하고 촌수를 따지느라 한바탕 우스운 소동 아닌 소동이 벌어지는 것을 볼 때도 있다. 하지만 그리 먼 친척도 아닌 아주 가까운 사이, 곧 남편의 동생들을 부르는 것부터 틀린다면 그것은 웃을 일이 아니다.
남편의 남동생 곧, 시동생은 미혼이라면 '도련님', 기혼이라면 '서방님'이라고 불러야한다. 간혹 '도련님'을 '데련님'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일부 지방의 사투리일뿐 표준어도 아니고, '도련님'을 다정스럽게 애교있게 부르는 것도 아니다. 또, 남편의 누나는 '형님'이라고, 누이동생은 '아가씨(아기씨)'라고 부르면 된다.
82회
* 청포? 창포?
요즘 물, 공기가 예전 같지 않다. 맑은 물, 깨끗한 공기를 찾아 일부러 여행이라도 떠나야 할 판이다. 공기 문제야 그렇다 치고, 물 좋기로 이웃나라에까지 소문났던 이 땅이 이렇게 망가지고 있는데는 생활오수의 탓이 클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깨끗한 물, 좋은 물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천연세제를 썼기 때문 아니었을까? 단옷날이면 몸과 머리를 씻어내던 '창포물' 말이다. 오월 단오에 남자들은 씨름을 하고 여자들은 '창포'의 잎과 뿌리를 우려낸 물로 머리를 감았는데, 나쁜 귀신을 쫓고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고 윤기가 난다고 해서 행해진 풍습이다. 요즘도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적에는 창포비누라는 것도 있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게 머리는 '창포'로 감았는데, 그럼 '청포'라는 것은 무엇일까? '청포', '창포'.. 풀은 같은 풀인데 쓰임새가 다르다. '청포'는 '녹두묵'을 말한다. 그리고 '창포'로는 머리를 감는 것이다.
83회
* 열사와 의사
안중근, 이준, 류관순... 공통점은? 일제에 항거해 순국하신 애국지사이다. 따라서 그 뜻을 길이 기리고 기억해야한다. 그럼, 차이점은? 의사(義士)와 열사(烈士)이다.
열사(烈士)는 뭐고, 의사(義士)는 뭐냐고 머리를 갸우뚱할런지도 모른다. '의사(義士)'란 안중근 의사처럼 피를 흘려가며 무력으로 항거해 의롭게 죽은 사람을 뜻한다. '열사(烈士)'는 이준 열사나 류관순 열사처럼 맨몸으로 저항해 죽음으로써 자신의 지조를 보인 사람을 말한다. 곧 무력항거냐 맨몸저항이냐에 따라 '의사(義士)'와 '열사(烈士)'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총으로든 맨주먹으로든 많은 의사와 열사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싸워 되찾은 나라이다. 그 나라를 온전하게 지키는 것은 뒤를 이은 우리들의 몫이다.
84회
* 호박이 **째...
뜻밖에 좋은 일을 만났거나 무언가를 얻었을 때, 우리는 '호박이 **째 굴러 들어왔다'는 말을 한다. 이 말에서 **에 들어갈 말이 무엇일까? 에이~~ 무시를 해도 그렇지, 너무 쉽다!!고 생각할런지도. 보기가 있다는 말까지 한다면 더 기분이 나빠질까? 1번 넝쿨, 2번 덩쿨 , 3번 덩굴. 아무 죄 없는 머리를 괜히 긁적이지는 말자. 열에 아홉은 아마 고개를 갸우뚱할 테니까.
문제의 정답은 하나뿐일 것이라는 선입견에서부터 벗어나자. 정답은 1번 넝쿨과 3번 덩굴이다. '호박이 넝쿨/덩굴째 굴러 들어왔다!'가 맞는 말이 된다. 헷갈린다고? 그럼, 덩쿨이 틀린 말이라는 것 하나만 기억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짚고 넘어가자. '째'와 '채'. '그대로 모두'의 뜻을 지닌 말은 '째'이다. 그래서 '덩굴째', '껍질째', '통째'가 맞는 말이 된다.
85회
* 오순도순
인기 있는 대중가요의 노랫말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입에 익숙해진다. 대중가요의 힘은 대단하다. 그 보기로 아무개 가수의 노래 이후 아주 많은 사람들이 '바램'이라는 말을 잘못 쓰고 있다. '우리의 바램이었어..'라는 노랫말 때문에. 그 노래의 경우에는 분명히 '바람'이라고 해야했다. 그 가수는 그 노래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그 노래를 즐겨 듣고 부르던 많은 이들의 말습관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노랫말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는지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앞에서 든 보기의 노래만큼이나 큰 인기를 얻은 곡은 아니지만, 건강한 노랫말로 아끼는 이가 많고 꽤 알려진 노래가운데 '사노라면'이라는 노래가 있다. 요즘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위안을 안겨주는 이 노래에 안타까운 '옥의 티'가 있다. '오손도손 속삭이는...'이라는 대목이 걸린다. '오손도손'은 비표준어이다. 표준어는 '오순도순', '의좋게 놀거나 지내는 꼴'을 일컫는 말이다.
86회
* 이사가는 날
우리말나들이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위해서 드라마나 콩트형식을 빌릴때도 있다. '이사가는 날'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때마침 여의도에서는 '아버지 이야기'라는 시대재현 행사가 있었는데, 박나림 아나운서와 김완태 아나운서가 그시절 학생으로 분장을 하고 한 편의 드라마(?)를 찍었다. 제목하여 '이사가는 날'.
완태네 집에 세 들어사는 나림이네가 집세를 못내 쫒겨 이사간다는 슬픈 내용인 '이사가는 날'은 짧지만 아주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첫째, '삭월세'는 틀린말이라는 것이다. '사글세'가 표준어이다. 둘째, '손 없는 날'에 대한 설명이다. '손'이란 동서남북 네곳을 옮겨다니면서 사람의 일을 방해하는 귀신이다. 그래서 '손 없는 날(해코지하는 귀신이 없는 날)'에 이사 따위를 하는 것이다. 셋째, '집들이'는 새 집에 이사간 이가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을 말한다. 초대받아서 새 집을 방문하는 것은 '집알이'라고 한다. 따라서 '집들이 간다'가 아니라 '집알이 간다'라고 해야 옳은 표현이다.
1분짜리 짧은 드라마에 참으로 많은 것이 담겨있지 않은가? 자, 단 1초도 긴장을 놓지 말고 우리말나들이 동영상자료를 돌려보자. (朴)
87회
* 맞아가 맞아?
어느 학습지 광고를 보면 '맞아! 맞아!'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 '맞아'가 맞을까? 그리고 '같아'와 '같어', '잡아'와 '잡어'.. 하여튼 '아'인지 '어'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뭐, 맞든 틀리든 말하기 편한 대로 말하면 되는 것 아닌가?하고 생각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이 곳에 들어와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딱딱하지만 '근거'를 따져묻기를 즐기는 이를 위해서 밝히자면, 한글맞춤법 제 16항을 보면 나와있다. '어간의 끝 음절 모음이 ㅏ ㅗ 일 때 -아로 하고, 그 밖에는 ㅓ로 한다'고. 곧, '맞아, 같아, 보아, 놓아'가 맞고 '개어, 주어, 피어'로 해야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결론은 '맞아가 맞다!'이다.
요즘 잘 기억될 수 있도록 자극적이고 재미있게 만들어진 기발한 광고가 참 많다. 제법 많은 유행어를 낳기도 한다. 광고의 효과 뿐 아니라, 잘못된 숱한 광고 문장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광고인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朴)
88회
* 겹말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런데 그는 같은 말을 두 번씩 반복해서 말하는이상한 말버릇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늘 "입체화되다.", "결실을 맺다", "박수를 치다"처럼 말하곤 한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 이상하냐고 그의 편을 든다면 이 이야기는 더 이상 가정이 아니게된다. 왜냐면 지금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셈이 되니까.
"입체화되다, 결실(결연)을 맺다"의 문제점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같은 말이 두 번 반복된다는 것이다. '--화'에 붙는 한자 될 화(化)는 이미 '되다'의 뜻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뒤에 다시 '되다'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결실(결연)'도 마찬가지이다. 맺을 결(結)이 이미 맺는다는 뜻이므로 뒤에 '맺다'는 말이 올 필요가 없다. 따라서 그냥 '입체화하다', '결연(결실)하다'고 하면 충분히 좋은 말이 된다. (朴)
89회
* 태릉
6mm카메라로 찍는 방송은 재밌다. 다소 거친 화질에 왜곡되기도 하는 화면이 주는 일종의 일탈감(?)을 느낄 수 있기에 그렇다. 또 무엇보다 크기가 작고 조작이 간편해서 많은 촬영스태프가 필요없다는 장점도 있고. 그저 카메라 앞에 설 사람과 카메라를 쥘 사람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특별히 촬영협조를 구하지 않고도 슬쩍 찍고 올 수도 있다.
'태릉'편을 찍을 때, 그 재미난 6mm카메라를 썼다. '태릉'의 발음이 [태릉]이냐 [태능]이냐가 문제였는데, 지하철 안내방송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지하철 7호선 먹골역에서 태릉입구역을 지나 공릉역까지 한 네댓번쯤 오갔을까? 애석하게도 안내방송이 희미해서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네 귀를(PD와 MC의) 쫑긋 세우고 열심히 들은 결과 [태릉]이라고 발음한다고 결론지었다. 어쩌면 그렇게 발음해주기를 간절히 원해서 그렇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도 분명히 확신한다. '태릉'을 [태릉]이라고 발음했음을. 그럼, '태릉' 다음역인 '공릉'역의 발음은? [공능]이다. 근거는? 표준발음법 제19항. "받침'ㅁ,ㅇ'뒤의 'ㄹ'은 [ㄴ]으로 발음한다." 그래서 '강릉'도 [강능], '항로'도 [항:노], '대통령'도 [대:통녕]이 되는 것이다. 그럼, '태릉'은? 'ㄹ'앞에 받침이 없잖은가? 그러니 '릉'은 온전한 소리를 다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홍릉갈비'는 [홍능]갈비, '태릉숯불갈비'는 [태릉] 숯불갈비인 셈이다. (朴)
90회
* 괴팍하다
아나운서라는 업을 가지고 있는 죄(?)로 가끔씩 흥분하며 말 걸어오는 이들도 만난다. 도대체 표준어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표준어규정, 그것 현실언어와 동떨어진 것 아니냐고.
그렇다. 물론 말이 먼저 생겨났다. 그리고 그 후에 법이 따른 것이다. 하지만, 법이 생긴 이상에 법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때로 얼마간의 불균형을 안고 있는 법이라해도 말이다.
표준어 규정 제 10항을 보면, '괴퍅/괴팩하다, -구면, 미류나무 , 여늬, 으례, 켸켸묵다, 허위대, 허위적 허위적'을 버리고 '괴팍하다, -구먼, 미루나무 , 여느, 으레, 케케묵다, 허우대, 허우적 허우적'을 취한다는 조항이 있다. 비록 어원으로 보면 전자가 옳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발음하지 않는다해서 사람들이 많이 발음하는 쪽으로 표준어를 개정한 것이다. 문제는 '강퍅하다, 퍅하다, 퍅성'등의 낱말은 위와 같은 계열의 말인데도 표준어 개정에서 빠졌다는 것인데, 표준어 규정이 안고 있는 불균형은 분명 이 뿐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표준어 규정을 지켜야하는 까닭은 문법도 역시 법이기 때문이다.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다음 개정 때에 기대해 볼 일이다. (朴)
91회
* 멍에와 굴레
우리 대중가요에는 사랑가가 참 많다. '아름다운 구속', '사랑 밖엔 난 몰라', '사랑의 미로', '멍 에', '사랑의 굴레',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내사랑 못난이', '사랑은 야야야'... 그래, 다 좋은 노래이다. 사랑을 하면 행복하든 마음 아프든 감정이 풍부해지기 마련이어서 노래할 것도 많 아지는 모양이다.
그런데, 궁금해지는 것이 생긴다. '굴레'와 '멍에'. 정확한 차이가 뭐지? 그렇다!! 그럴땐 사 전을 찾아보면 된다. 음.. 사전을 펼쳐보니, '굴레'는 '마소의 얼굴과 목을 얼러서 얽은 줄'(그러 니까 고삐가 거기에 달리게 되겠군). 또 '베틀에서, 바디집을 걸치어 매는 끈'도 '굴레'라고 한단다. 그래서 '부자연스럽게 얽매이는 일'을 '굴레'라고 표현을 하는 것이다. '멍에'는 '달구지나 쟁기따 위를 끌 때, 마소의 목에 가로얹는 ㅅ자모양의 나무막대'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이나 행동을 고통스럽게 억누르는 일'을 비유할 때 '멍에'라는 표현을 쓴단다.
자, 이제 '멍에'와 '굴레'의 차이를 알아봤는데, 그래도 뭔가가 석연치않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 면 어떨까? '멍에'는 언제든지 벗을 수 있지만, '굴레'는 평생 마소의 코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 '삶의 굴레'라든가 '살인범의 굴레'처럼 평생 따라 다니는 것이 있고, '가난의 멍에', '불화 의 멍에'처럼 노력에 따라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있다. '굴레'가 '멍에'보다 훨씬 더 큰 무게인 것 이다. (朴)
92회
* 링거
온세계가 하나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도 않게 되어버렸다. 세상이 많이 변한만큼 우리 의 말도 참 많이 변했고, 외국의 문물이 물밀 듯이 쏟아져들어온 지난 수십년이 지난 지금 우리 말은 토박이말의 자리를 밀치고 들어선 외국어, 외래어 범벅으로 얼룩지고 있다.
무조건 외국어를 쓰지말자는 말은 아니다. 우리말로 대신할 수 없거나 힘든 말도 있을 수 있 다. 또 이미 많은 이들이 써서 사회성을 가지게 된 경우가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쓸거 라면 제대로 써야한다는 말을 하고싶은 것이다.
'링거'의 경우를 보자. 영국의 의학자 시드니 링거가 고안했다해서 '링거'라고 불리게 된 것이 다. 그러나 '링게르', '링겔'이라고 잘못 말하는 이가 참 많다. 바른 말은 '링거'이다.
'링거' 얘기가 나와서 생각나는데, 병이 나면 아픈이도 참 고생이지만, 옆에서 병시중을 드는 이 도 참 고생이다. 그래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도 생겨났을 것이다. 어쨌든, 하고픈 얘기는 병시중 드는 일은 '병구완'이라는 것이다. '병구환'이라고 하는 이가 많길래 한번 짚어보았다.(朴)
93회
* 부수다/부시다
봄은 눈 부신 계절이다.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새로이 돋아난 잎사귀와 햇빛은 투명하기 그지 없다. 아마 봄이 여름이나 가을 뒤에 찾아오는 계절이었다면 이렇게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부신 것이 눈 뿐일까? 아니다. 그릇 따위도 부신다. 웬 헛소리냐고? 아니다. '부시다'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햇빛 같이 강한 빛 때문에 눈이 어리어리한 것도 '부시다'고 하지만, 그릇 같은 것을 물로 깨끗이 씻는 것도 '부시다'고 한다. 그러니까 '설거지(설겆이가 아니다)'할 때처럼 말이다.
'부시다'가 문제가 되는 건 '부수다' 때문이다. '부수다'는 깨뜨리거나 망가뜨리는 것인데, '부수 다'와 '부시다'의 발음이 비슷해서 혼동하는 이가 많은 것이다. 이 두 낱말은 활용에서 더 자주 헷갈리는데, '부수다'는 '부숴', '부수고'로, '부시다'는 '부셔, 부시고'로 써야 옳다.
대한민국의 표준어를 바르고 정확하게 구사할 줄 아는 것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지 켜야할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거창할까? 아니, 당연한 일이라고 함께 고개 끄덕이 는 이가 많기를 기대한다.(朴)
94회
* 사시미
만약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주지 않았다면 사람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물론 어디까 지나 신화지만, 인류사에서 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불이 없었다면 참 많 은 것이 지금과 달랐을 것이라는 것은 얘기 하나마나겠지? 요즘 식도락가이니 미식가니하며 먹 는 즐거움을 말하는 사람도 많은데, 무엇보다도 먹는 게 무척 달라졌을 것이다. 다양한 조리법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불의 덕일테니까. 하지만, 아무리 조리법이 발달하고 다양해져도 우린 가장 오래되고 간단한 조리법도 여전히 즐기고 있다. 바로 날 것 그대로를 먹는 그것, '회'이다.
쇠고기를 날로 먹는 생고기나 육회 또 생선회. 물론 기호에 따라 즐기지 않는 이도 있지만, 많 은 이들이 좋아하고 또 가격도 만만치 않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오늘의 주제는 '회'이다.
'생선회'라는 말이 있는데, '사시미'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다. 물론 일본요리 이름은 '사시 미'와 '스시'이다. 하지만 모든 '생선회'를 '사시미'라고 해서는 곤란하다. 가능하면 '생선회'와 '생 선초밥'이라고 하자. 그리고 '생선회'나 '생선초밥'에 꼭 필요한 푸른 빛을 띠는 양념이름도 짚고 넘어가자. '와사비'가 아니라 '고추냉이'라는 것, 이제는 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듯 한데, 아는 것 따로 말 따로인가?(朴)
95회
* 플래카드
무슨 큰 행사가 있을 때면 꼭 등장하는 것이 있다. 한두개정도 있을 때는 그나마 봐줄만한데, 경쟁이 붙기 시작하면 하늘을 다 가릴 정도여서 거리는 온통 이것 범벅이 된다. '플래카드(혹은 펼침막)'이라고도 하는 것 말이다. 이목을 끄는 데는 분명 탁월한 효과가 있기에 많은 이들이 즐 겨 사용하는데,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이것을 부르는 말이다.
'플랑카드', '플랭카드', '플래카드', '프래카드'처럼 참 여러 가지로 말하는데, 원어가 영어'Placard' 인 것을 참고하자. 모국어는 대충 말해도 또 외국어라면 정확한 발음을 즐기는 이가 많으니 'Placard'를 근사하게(?) 발음 할 줄 아는 이도 꽤 있을 것이다.
그렇다. '플랑카드'도 '플랭카드'도 '프래카드'도 아닌 '플래카드'가 옳은 외래어이다. 옳은 외래 어를 구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능하면 우리말로 바꿔쓰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좋지 않을 까? '펼침막'이라는 좋은 우리말이 있으니 말이다.(朴)
96회
* 우리 가락 좋을씨고!!
세상에는 없으면 서운할 것이 참으로 많죠. 그 가운데서도 음악이 없는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 까싶어요. 새삼스럽게 음악예찬을 하려는 것은 아니랍니다. 우리 주변의 음악을 한번 돌아보자 는 얘길 하고자해요. '음악'하면 떠오르는 가락.... 안타깝게도 열의 아홉은 서구에서 들어온 것 이겠죠. 굳이 찾아듣지 않으면 하루에 단 한번도 듣기어려운 것이 바로 우리의 소리일 거예요. 문화방송 라디오에서도 매일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이 방송되기는 하는데 너무 짧아 아쉽거든요. 듣는만큼 관심을 갖게 되는 걸까요? 아니면 아는만큼 관심을 갖게 되는 걸까요? 어쨌든, 오늘은 우리 소리에 관해 작은 앎을 가지는 즐거움을 느껴보도록 하죠.
우리 노래에는 여러 가지 후렴구가 많이 붙죠. '옹헤야', '쾌지나칭칭나네','늴리리야', '어허야디야'....뭐, 이런 것들이 우선 떠오르는데, 혹시 '그런데, 도대체 그런 후렴구는 무슨 뜻인거야?'하는 궁금증을 가져본 적 있으세요? 경상도 민요 보리타작노래 중에 나오는 후렴구 '옹헤야'는 '올해야'가 변한 말이라는 얘기가 있더군요. '올해야말로 풍년이 들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하니 과연 농군들의 마음이 담긴 노래죠? 또 '쾌지나 칭칭나네'는 임진왜란 직후에 나온 노랫말인데요, 왜장 '가등청정(카토오 키오마사)'가 쫒겨나감을 기뻐하는 뜻이라고 해요. '좋구나'의 뜻인 '쾌재라' 와 '청정이 나가네' 쯤이 합쳐진 말이 '쾌지나 칭칭나네'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하나 더! '늴리리타령'의 후렴구 '늴리리야'는 소리는 [닐-]로 나지만, 쓰기는 '늴-'로 써야하거든요? 잊지마세요! (朴)
97회
* '깡' 시리즈 1
"주먹으로 할래 깡으로 할래?" 꽤나 인기를 끌었던 MBC드라마 '왕초'에 나왔던 대사 한토막이 죠. 음.... 오늘은 드라마 주인공 '왕초'처럼 '깡'으로 하죠! '깡', '깡'이 들어가는 말로 어떤게 있 을까요? '깡통','깡패','깡그리','뗑깡','낑깡'... 물론 이 가운데는 우리말인 것도 있고, 아닌것도 있 죠. '깡으로 하는 것'이 다 통하는 건 아니니까요.
먼저 '깡패'를 살펴볼까요? '깡패'들은 '깡'이 있기 때문에 '깡패'가 되었을까요? 아니랍니다. '깡패'는 불량배를 뜻하는 영어 'gang'과 '어울려 이룬 사람들'의 뜻인 한자 '패(牌)'가 합쳐져 생긴 말이예요.
그럼 '깡통'의 '깡'은 뭘까요? '통조림 혹은 통조림의 통'을 가리키는 영어 'can'이 '깡'으로 발음 되어 전해진 것인데, 왜 그랬을까요? '드럼통'을 혹시 아는지요? 그 '드럼통'을 일본사람들은 '도라무깡'이라고 발음하거든요. 이제 감이 잡히시는지요? 이때의 '깡' 역시 일본투 발음이 그대로 들어온 것이거든요? 그러니 '깡통'을 해부해보면 'can'+'통(桶)'이 되는 것인가요? 역시 영어와 한자가 만나서 우리말이 된 경우랍니다.
'깡패'와 '깡통'.. 만들어진 과정은 조금 찜찜하지만, 어쨌든 사전에 올라와 있는 표제어(이는 표준어로 인정한다는 뜻)예요. 쓰긴 쓰되, 어떻게해서 만들어진 말인지나 알고 쓰면 더 좋지 않을 까싶네요. '깡 시리즈' 1탄은 여기까집니다. 2탄을 기대해주시길...
98회
* '깡' 시리즈 2
자, 오늘도 '깡'으로 시작해볼까요? 지난번에는 '깡패' '깡통'에 대해 알아봤는데, 둘 모두 영어와 한자가 만나 우리말이 된 경우였죠. 그런데, '깡'이 들어간 낱말 중에는, '깡'이 있다고 봐야할 지, 우리말도 아닌 것이 버젓이 활개치며 우리말 세계를 흐리는 못된 것들이 있죠.
그 대표적인 것들이 '낑깡'과 '뗑깡'입니다. 그 새콤달콤하고 예쁜 과일(우리가 흔히 '낑깡'이라 고 부르는)은 '동귤' 혹은 '금귤'이라는 고운 우리말이름이 있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낑깡'인가 요? 짐작하시겠지만, '낑깡'은 일본말이예요. 금귤을 일본에서는 '금감(金柑)'이라고 하는데, 그 발음이 [낑깡]이거든요. '동귤'은 '작은 귤'이라는 뜻에서, '금귤'은 '황금빛 귤'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동귤','금귤'.. 물론 한잣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낑깡'보다는 훨씬 더 뜻이 와닿는 말 아닌가요?
다음 '뗑깡'은 잘 몰라서 그렇지 사실 아주 무시무시한 말이예요. 아마 말뜻을 안다면 절대 '떼쓰는' 아이들에게 '뗑깡부린다'는 말을 쓰지 못할 거예요. 왜? '뗑깡'은 '간질병, 지랄병'등을 뜻하는 일본말이니까요. 뜻이 너무 거칠어서 일본에서조차 잘 쓰지 않는 말이라는데, 우리는 몰라서 용감해지는 것일까요?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그런 험한 말을 스스럼없이 쓰기도 하니 말이예요. 어쨌든, '낑깡','뗑깡'.. 모두 솎아내야 할 일본어 찌꺼기임은 분명하죠?
끝으로 그럼, '깡'이란 도대체 뭘까요? '깡'은 '깡다구'의 준말로, '깡다구'는 '악착같은 기질이나 힘'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말이죠. 가려써야 할 말이긴 하지만요. (朴)
99회
* 통닭구이가 된 수탉
옛날 얘기 하나 해 드릴게요. 실제 있었던 슬픈 얘기예요. 옛날 옛날 중세 때, 프랑스 바슬이 라는 어느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랍니다. 당시 그곳은 마녀사냥이 한창이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수탉 한 마리가 알을 낳았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믿기 어려운 얘긴데 중세사람들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곧 수탉은 마녀재판에 회부되었답니다. (그 수탉, 영문 을 몰랐을테니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재판에서 검사는 수탉의 알이 마녀를 부활시킨다는 주장 을 했고, 수탉측 변호사는 알은 수탉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논고했답니다. 그러나 결국 수탉은 유죄판결을 받고 알과 함께 화형을 당했어요. 아.. 불쌍한 수탉!! 그 수탉의 명복을 빌며 오늘은 닭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닭!' 뭐가 문제냐면 바로 '소리'가 문제예요. '닭'의 발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닭' 은 모음앞에서는 [달]로 발음하고 'ㄱ'받침이 그 다음 모음에 연음이 된답니다. 설명이 복잡한가요? '닭을', '닭이', '달에'는 [달글], [달기], [달게]로 발음해야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닭이 소 쳐다보듯'은 [달기 소 쳐다보듣]이라고 발음하는게 옳겠죠? 어렵지 않죠? 자, 이제 앞서 얘기해드린 비운의 수탉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실 때에도 [수탈글], [수탈게]처럼 하실 거라고 믿어요!
'닭' 얘기하느라 배 고파진 김에 하나 더 짚고 넘어갈까요? 이른바 '닭도리탕'이라는 음식이 있잖아요. 닭과 감자를 숭숭 썰어 넣고 얼큰하게 양념해서 끓여먹는 아주 맛깔스런 음식이죠. 그런데, 이 '닭도리탕'이라는 이름은 별로 맛깔스럽지가 않군요. 왜냐면, '닭도리탕'의 '도리'는 '새'를 뜻하는 일본말이거든요? 그러니까 '닭도리탕'은 '닭새탕'쯤인 말이 되나요? 이상하죠? 저희 문화방송 구내식당 차림표에는 '닭감자볶음'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 요리가 바로 속칭 '닭도리탕'이더군요. 그래요. '닭감자볶음'이나 '닭볶음탕', '닭 얼큰찜' 등 더 어울리는 말이 있네요. 동감하 시죠? (朴)
100회
* 단위, 끝까지 말하자구요
산수시간 좋아하세요? 예전 초등학교시절, 산수시간만 되면 쏟아지던 그 많은 숫자들이 버겁 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기도 했어요. 음.... 미터니 킬로미터니하는 여러 가지 단 위를 배울 때였어요. 10mm=1cm, 100cm=1m, 1000m=1km 따위의 여러 단위를 외우느라 애먹었 던 기억이 있어요. 헷갈렸거든요. 그런데,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아직도 이 단위에 대해서 헷갈 리는 분들이 계신 것 같더라구요? 분명히 '센티미터'인데 '센치미터'라고 많이 말하고, 또 '킬로미터(그램)'인데 '키로미터(그램)'라고도 해요. 그 뿐인가요? '미터'도 툭하면 '메다','메타'라고 하기 일쑤랍니다. 분명히 '미터', '센티', '킬로'가 표준발음이거든요? '메다'나 '메타'는 모두 '미터'의 일 본투 발음이예요. '키로'도 그렇겠죠?
그런데 우린 발음만 틀리는 게 아니라 곧잘 단위의 뒤를 뚝 끊어먹기도 하죠. 말하자면 그냥 '킬로', '센티'라고만 하는 것이예요. 물론 앞 뒤 상황을 보면 '킬로그램'인지 '킬로미터'인지 알 수 도 있겠지만, 그래도 정확히 '킬로미터(혹은 그램)','센티미터'라고 밝혀 말하는게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朴)
101회
* 둥이? 동이?
오랫동안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영화 가운데 '초록물고기'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가슴이 에이는 듯한 아픔을 느끼게 한 영화였죠. 등장하는 세 인물의 삶이 그랬답니다. 특히, '막동이'. 그는 오랜 여운을 남기는 인물이죠.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그가 다시 떠올랐답니다. 그가 바로 '막동이'이기 때문에...
그는 막내로 태어났죠. 그래서 '막동이'라고 불렸어요. 하지만, 그도, 그를 그렇게 부른 사람들도 모두 틀렸어요. 그를 '막동이'라고 불러서는 안되었던 거죠. 그가 막내이기 때문이라면 그는 '막동이'가 아닌 '막둥이'라고 불렸어야 옳아요. 왜냐면, '사람, 동물을 나타내는 접미사'는 '-둥이'거든요. '늦둥이', '쌍둥이', '바람둥이', '업둥이'가 맞는 말인 것처럼요.
하지만 '쌍둥이'처럼 두 개가 들어있는 밤은 '쌍동밤'이라고 한답니다. 뒤에 명사를 꾸밀 때는 '쌍동-'처럼 되거든요.
혹시 이 글을 읽으신 분 가운데, 이 글이 '초록물고기'를 비난했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으시겠죠? 물론 '막동이'가 아닌 '막둥이'였으면 훨씬 더 좋았겠지만, 어쨌든 변함없는 것은 '내가 아끼는 영화' 목록에 '초록물고기'가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랍니다. (朴)
102회
* 우레
어릴 때 그런 기억 있으세요? 갑자기 사방이 컴컴해지면서 후드득 비가 쏟아지면 '번쩍'하는 섬광 후에 하늘이 깨질 듯한 소리 '우르릉 꽈광!!!', 그러면 소리를 지르며 어머니 품속으로 달려들던 기억. 마침 학교에 있을 때 그러면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교실마다에서 새어나왔죠. 뭐, 가끔가다 '왠지 짜릿한걸?'하며 즐기던 독특한(?) 친구도 있었지만요.
그 하늘에서 '번쩍 번쩍'하는 것을 '번개'라고 하는 건 모두 알고 계신 것이죠? 그럼, '우르릉 꽈광'은 뭘까요? 보기를 드릴까요? 1번 천동, 2번 우뢰, 3번 우레 , 4번 천둥. 물론 이 보기 안에 답이 있어요. 그것도 2개씩이나... 정답은? 네, 그래요. 3번 우레와 4번 천둥이랍니다.
어? 2번 '우뢰'도 정답 아닌가요? 하며 눈이 동그랗게 된 분도 계실테죠? 한자어 '우뢰(雨雷)'가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말이죠. 하지만, '우레'는 한자말이 아니라 '울다'에서 나온 토박이말이랍니다. 천둥과 같은 뜻이죠.
말 나온 김에 비 얘길 좀 더 나눠볼까요? 한여름에 천둥, 번개가 치면 '소나기'가 퍼붓잖아요. 그런데 '소낙비'라는 말도 있는데, 어느 것이 표준어일까요? '소낙비' '소나기' 모두 표준어랍니다.(朴)
103회
* 꾀다
우리말나들이 '꾀다'편을 찍기 위해서 바람 많이 부는 날 여의도 한강 시민공원에 나갔답니다. 그리고 엉성하게 생긴 꼬빡연(가오리연이라고도 하죠, 근데 왜 꼬빡연이냐면요, 하늘로 올라갈 때 머리가 꼬빡꼬빡하기 때문이라나요? 재밌죠!)도 하나 샀어요. '꾀다'와 '꼬빡연'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연줄을 잡아 젖혀서 연이 높이 날아오르게 하는 기술을 '꼬드긴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연줄을 꼬드겨 잘 날게 하는 것처럼 남을 부추겨서 어떤 일을 하게 하는 일도 '꼬드긴다'고 하는 거랍니다. 하여튼 그래서 '꼬빡연'을 띄웠는데, 잘 날아오르지를 않는 것이었어요. 왜 그런가 했더니 제 '꾀는' 기술이 좋질 않았던 거죠. 한참을 바람과 싸우며 애쓰다 보니 아!.. 어느새 하늘 저 높이 두둥실 떠있는 '꼬빡연'... 아마 그때 어느 멋진 남성이 와서 '꾄다해도' 연줄 '꼬이는' 재미에 쳐다보지도 않았을 거예요.
네? '꾀다' '꼬이다' '꼬드기다'가 같은 말이냐고요? 그렇답니다. '꼬이다'의 준말이 '꾀다'고, '꼬드기다'는 위에서 말씀드린데로 연줄을 '꼬드기는' 기술에서 나온 말로 '꼬이다'와 같은 뜻이죠. 물론 '꼬이다'는 말에는 '일이 뒤틀리다','비위가 거슬리어 마음이 뒤틀리다'는 뜻도 있죠. 그럼 누군가를 '꾀려다' 잘 안되면 마음이 '꼬이는' 것도 '꼬이다'는 말에 이런 뜻들이 함께 담겨있기 때문일까요? (朴)
104회
* 채플린 수산시장에 가다
아마 전, 현직 아나운서 통틀어 채플린 분장(아니, 변장이라고 해야하는 건가요?)을 해본 이가 또 있을까요? 더운 여름날 두꺼운 겨울코트를 걸치고 모직바지를 입고 가발에 콧수염까지.... 그리고 채플린처럼 뒤뚱뒤뚱 걸으며 수산시장으로 갔답니다. 생선을 사기 위해서. 그런데 채플린이 생선을 사기란 참 어려운 일이더군요. 생선가게 아주머니들이 야박했냐고요? 아뇨, 채플린이 어떻게 했는지 한번 들어보실래요?
생선 가게에 들어간 채플린, 인사는 꾸벅 잘했답니다. 그리고 "칼치 주세요!"라고 말했죠. 그런데 아주머니는 말없이 돌아서 버리는 거예요. '아, 칼치를 안 파는 가게구나'하고 생각한 채플린은 다시 "아줌마, 아구탕하게 아구 좀 주세요!" 그랬더니 이번엔 아주머니가 채플린을 밀쳐버리는 것 아니겠어요?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직도 깨닫지 못한 채플린은 마침내 "그럼, 제발 꼼장어라도 주세요"라고 빌며 말했다가 드디어 화가 난 아주머니의 뜨거운 손맛까지 보게되었답니다. 도대체 우리의 채플린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요?
그래요. 우리말에 무지한 채플린이었어요. 여러분은 이미 알고계시죠? '칼치'가 아니라 '갈치', '아구'가 아니라 '아귀', '꼼장어'가 아니라 '먹장어'가 옳은 말이라는 것을요. '칼치'는 비록 칼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칼의 옛말인 '갈'을 그대로 쓴 '갈치'가 표준어예요. 그리고 '곰장어', '꼼장어'는 모두 사투리입니다.
그럼, 우리의 어수룩한 채플린은 그날 아무것도 못 샀을까요? 다행히 눈치는 빨라서 '갈치' '아귀' '먹장어'를 모두 먹고 배 두드리며 수산시장을 나왔다는군요.
자, 오늘 저녁 반찬은 무엇으로 하실래요? '갈치조림'? '아귀찜'? '먹장어구이'? (朴)
105회
* 요이
요즘 어린 학생들도 그런 말을 쓰는지 모르겠네요. 저 어릴 적에는 달음박질 겨루기를 할 때면 늘 "요오이.. 땅!!"을 외치곤 했거든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냥 늘 그랬어요. 물론 학교에서는 "준비.."라는 구령을 썼지만, 학교담장밖 놀이에서는 늘 "요오이"였죠. 그런데, 그 '요오이'가 '준비'를 뜻하는 일본말이라는군요. 허어참! 그렇게 해서 제 어린 시절의 고운 추억의 한 자락은 일본어 찌꺼기로 얼룩져 버렸어요.
어디 '요오이'뿐인가요? 공부 꽤나 하셨다는 분들이 연단에서 강연을 할 때면 흔히 들을 수 있는 '에에또', '마아'같은 말들도 역시 일본어 찌꺼기랍니다. '에에또'는 '저어...'로 '마아'는 '뭐, 글쎄...'라는 우리말로 바꿔 쓸 수 있답니다. 아니, 바꿔 써야만 하지 않을까요? 자존심이 있어야죠. 36년 일제 강점기동안 우리 땅을 휘져어놓은 것도 분한데, 얼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까지 이렇게 망가지는 것은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닌가요? (朴)
106회
* 제목만 보고 영화 고를 수 있으세요?
모처럼 친구와 영화 보러 가기로 약속을 했답니다. 음.. 무슨 영화를 보면 좋을까? 아무개 영화주간잡지를 펼쳐들고 개봉중인 영화제목을 죽 훑어봤죠. '식스 센스', '빅 대디', '더 헌팅', '러브', '댄스 댄스', '딥 블루 씨', '애널라이즈 디스','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아메리칸 파이'....
휴우.... 이거 영화 고르기 전에 영어사전부터 뒤적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니면 이미 전 국민의 영어수준이 이만큼이나 높아졌나요? 어쩌면 이리도 외국어 투성이일까요? 물론 외국영화인 경우 우리말로 번역하기 힘든 부분이 있기는 하죠. 모든 외국영화제목을 무조건 다 우리말로 고치는 것이 무리라는 점은 인정해요. 하지만 노력은 해야죠. '사랑과 영혼'과 '로마의 휴일'같은 영화제목을 한번 보세요. 원제보다 번역한 우리말 제목이 더 아름답지 않나요?
게다가 위에 나열한 영화 가운데는 우리 영화도 두 편이나 들어있답니다. 굳이 영어제목을 달아야 더 근사한가요? 그것도 일종의 언어사대주의 아닌가요? 하긴, 얼마전 진행하고 있는 어느 프로그램에서 외국어가 들어간 우리영화 제목 말하기 게임을 한 적이 있는데, 끝없이 나오는 영화제목에 놀란 적도 있죠. 우리가 무심히 지내온 사이에 영화 제목에서조차 우리말이 홀대를 당해온 것이죠. 어쩌면 몇십년 후 제 손자가 제게 물어올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 그 때 우리나라 제2국어가 영어였어요? 간판이든 상표든 영화제목이든 영어가 섞이지 않은 게 없네요?"(朴)
107회
* 사리? 사라?
제가 얼마전에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이제 막 한글을 깨우치기 시작한 꼬마가 있었대요. 그 꼬마가 식구들과 냉면집에 갔답니다. 뭐든지 처음 배울 때는 참 신기하고 재미있고 또 자랑하고 싶잖아요? 어린아이는 오죽했겠어요? 그래서 차림표를 열심히 소리 내어 읽었대요. 아마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느라 그 조그만 이마에 힘깨나 들어갔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 주문이 다 끝나가도록 열심히 차림표를 읽던 꼬마가 드디어 결정을 했어요. "아저씨, 전 냉면은 싫거든요? 그러니까 여기 '냉면사리'에서 냉면은 빼고 '사리'만 주세요!"라고 야무지게 말했답니다. 그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어땠을까요? 만약 거기에 계셨더라면 뭐라고 하셨을까요? 그 주문을 듣고 있던 아이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대요. "저.. 그럼 그 냉면은 제가 먹죠!" 그 꼬마 정말 귀엽지 않아요?
그런데 혹시 그 어린이가 주문한 '사리', 어느나라 말일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사리'는 '국수, 실, 새끼 따위의 뭉치'를 말하는 토박이말입니다. 얼마든지 써도 되는 예쁜 우리말이죠.
그럼, '사라'는? 식당 같은 곳에서 '식사라'나 '사라'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것도 우리말일까요? 아니에요. '사라'는 '그릇'을 뜻하는 일본말이고, '식사라'는 한자 식(食)과 일본어 '사라'가 합쳐진 말이에요. '앞접시'나 '개인접시' 따위의 우리말로 충분히 바꿔 쓸 수 있겠죠. (朴)
108회
맞추다? 마추다?
'우정 또는 사랑, 존경의 의미로 상대방의 입술, 손등 또는 뺨에 입술을 대는 것'을 뭐라고 하죠? 요즘은 'KISS'라는 말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전 '입맞춤'이라는 낱말이 더 좋아요. 왠지 더 그윽하고 깊은 정이 느껴지거든요. 제 친구의 어린 딸은 이제 막 엄마, 아빠를 말할 줄 아는데, 그 아기도 '뽀뽀!!'하면 웃으며 제 뺨에 침 잔뜩 묻힌 입술을 갖다 대주거든요. 그럴 때면 참 기분이 좋아져요. 사랑을 주고받기 때문이겠죠?
그래요, 오늘은 '맞춤'에 대해 얘길 해보면 좋겠군요. '맞추다'인지 '마추다'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경우가 있더군요. '마춤양복'인지 '맞춤양복'인지, '안성마춤'인지 '안성맞춤'인지 헷갈리지 않으세요? 그런데 헷갈리는 게 이상한 게 아니랍니다. 왜냐면 전에는 '맞추다', '마추다'의 뜻과 표기를 구분해서 썼거든요. 그런데 혼동이 많아지자 모두 '맞추다'로 통일했답니다. 그러니 옷이든 신발이든 입이든 답안이든 모두 '맞추다'로 하시면 되요.
하지만, '화살을 과녁에 맞추다'는 틀린 문장이에요. 이 경우에는 '맞히다'가 옳죠. 운수, 정답, 눈이나 서리 따위, 침이나 주사 따위는 모두 '맞히다'를 쓴답니다.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는 것 또한 바람 '맞히는' 것이에요. 물론 그런 일은 안하는 것이 예의겠죠! 그리고 우리말을 바로 쓰는 것도 우리 민족에 대한 예의겠죠!! (朴)
109회
* 반딧불이를 아시나요?
'반딧불'을 본 적이 있으세요? 요즘 웬만한 시골에서도 '반딧불'을 보기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어느 놀이동산에서 주최한 '반딧불'축제를 찾아가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설레었답니다. '차가운 불빛'. 정말 그랬어요. '반딧불'의 느낌은 '차가운 열정'이라고 표현하면 될까요? 어째서 '차가운 열정'이냐고 의아하신가요? '반딧불이'는 짝짓기를 할 때 그렇게 꽁무니에서 빛을 발한다는 얘기가 있거든요. 그러니 '차가운 열정'이라는 말이 그럴 듯 하지 않나요?
그런데, '반딧불'은 뭐고, '반딧불이'는 또 뭐냐는 의문을 가지시는 분이 계실 것 같네요. 곤충의 이름은 '반딧불이', 그냥 '반디'라고도 하죠. 그리고 그 '반딧불이'가 내는 불빛은 '반딧불', 한자어로 하자면 '형광(螢光)'이죠. 네, 그래요.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런데 '반딧불이'를 몇 마리나 잡으면 '반딧불'로 책을 읽을 수 있을까요? 제가 본 '반딧불'은 매우 아름답기는 하지만 무척 작은 빛이었거든요. 참! '반딧불이'의 다른 이름은 알고 계시죠? 노래제목이기도 하잖아요. '개똥벌레'! 예전에 이 곤충을 '개똥벌레'라고 부른 까닭은 이 곤충이 개똥이나 소똥 근처에 많았고, 아주 흔해서 하찮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지금은 깨끗한 환경을 보존하지 못한 우리 탓에 무척 귀한 벌레가 되어버렸죠. '개똥벌레'라는 이름도 좋긴하지만, 제가 만일 그 곤충이라면 '반딧불이'로 불리는 게 더 기쁠거예요. 아!! 우리 주위에서 '반딧불이'의 고운 '반딧불'을 자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朴)
110회
* 빛깔
말의 근원을 찾아보면 뜻밖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발견할 때가 있어요.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말하는 여러 빛깔의 이름의 유래도 그래요. '붉다', '푸르다', '노랗다', '검다', '희다'는 말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한번 잠시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시죠.
우선, '검다'는 말은, '곰'이라는 말에서 나왔대요. 예전 한반도에 살던 곰은 털빛이 검었답니다. 그래서 '곰의 빛깔과 같다'는 뜻에서 '검다'란 말이 생겼다고 하네요. 마찬가지로 '노랗다'는 노루의 빛깔에서, '푸르다'는 풀의 빛깔에서, '붉다'는 불의 빛깔에서, 그리고 '희다'는 해의 빛깔과 같다고 해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물론 어원이라는 것이 확실하지 않을 때도 있죠. 어디까지나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말처럼 빛깔을 묘사하는 낱말이 풍부한 언어도 드물다는 것이에요. 아마 우리 겨레의 감수성이 풍부해서가 아닐까요? (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