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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더 이어지지 못했던 인연
예견된 일이었을까, 아니면 갑작스럽게 닥친 비극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무게의 중심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경우는 몇 달 전에 갑자기 쓰러지셔서 병원에 실려간 전력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예견된 이별이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기적처럼 깨어나셔서 이제 막 일상적인 삶으로 복귀하신 상황이자, 적어도 일정 기간은 예전처럼 그들 곁에 머무실 수 있으리라 자식들 모두가 굳게 믿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러니 이 황망한 이별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니는 한 순간에, 너무나 허망하게 그들 곁을 떠나고 마셨다.
인야가 군산에 내려온 바로 다음 날이 '어머니의 마지막 날'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고, 이미 잔인하게 정해져 있었던 어머니와 인야의 마지막 역사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오전, 집안에 갑작스런 소동이 벌어졌다. 인야는 정말이지 이 일이 그저 짧은 해프닝으로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군산 형님의 집에서 오전 중에 인야가 조카 아파트에 약을 가지러 가려는데, 그동안 줄곧 집에만 계셔 답답하셨던 어머니가 당신도 가시겠다고 채비를 서두르셨다.
형님도 이미 흔쾌히 찬성한 터라, 일행은 어머니를 모시고 조카의 차에 올라 아파트로 향했다.
아파트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출산을 마치고 와 있던 손주며느리와 갓 태어난 증손녀를 바라보며 밝게 이야기를 나누셨고, 인야는 옆방에 가 지난번 산본으로 올라갈 때 미처 챙기지 못하고 남겨 두었던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바로 돌아가려는데 조카가 가로막았다.
"삼촌, 기왕 저희 집에 오셨으니, 점심이라도 드시고 가세요."
어머니도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이셔서, 아파트에 더 머물며 다 함께 점심까지 먹게 되었다.
조카며느리가 새로 지은 밥은 어머니께서 드시기 좋게끔 촉촉하고 부드러웠고, 조카가 직접 다뤄 끓인 가자미 찌개도 국물이 아주 시원했다. 알맞게 익은 김장김치까지 곁들여지니, 비록 화려한 진수성찬은 아닐지언정 성의와 정성이 가득한 밥상이었다.
모두가 모여앉아 아주 맛있게 점심 식사를 마쳤다.
식사가 끝난 뒤, 어머니는 아파트 뒤 베란다에 있던 콩을 조금 챙기셨다.
"어딘가에 찹쌀이 있는디, 이 콩을 넣고 너에게 밥을 해 먹여야긌다."
연말을 맞아 내려온 막둥이 인야에게 맛있는 밥을 해먹이고 싶어 콩을 챙기셨던 어머니는 무슨 일인지,
"여기 온 김에 머리도 감고 싶은디?" 하셨다.
아무래도 아파트라 뜨거운 물이 나오기 때문에, 기왕에 온 김에 머리도 시원하게 감고 돌아가시고 싶다는 뜻이라,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렇게 하시도록 했다.
손자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머리를 감으신 어머니는, 젖은 머리를 말리느라 또 한참을 아파트에 더 머물렀는데...
"어머니, 이제는 가실 수 있겠어요?" 하고 인야가 묻자,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렇게 인야와 조카는 어머니를 모시고 아파트 문을 나섰다. 인야가 어머니의 갸냘픈 몸을 부축하며 아파트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는데, 어머니께서 조용히 인야에게 물으셨다.
"막둥아, 내가 서울에 꼭 한 번 가고 싶은디......"
그래서 인야는,
"그러세요 어머니, 근데... 지금은 추우니까 날이 풀리거든, 그때쯤 되면 저에게도 뭔가 변화가 생길 것도 같으니... 또 누님네도 새 아파트로 이사간다고 하니, 그때까지만 참으세요. 그때는 제가 알아서 어머니를 모셔가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해 드렸고, 어머니께서는,
"그려!" 하고 환하게 웃으시며 고개까지 끄덕이셨었다.
하지만 바로 뒤였다.
"근디, 내가 왜 이렇게 다리에 힘이 없다냐?......"
어머니는 말을 끝맺지도 못한 채, 갑자기 그 자리에 스르르 주저앉으셨다.
인야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급히 어머니를 등에 업으려 했으나,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시며 인야의 옷자락을 붙잡으셨다.
"조금만 기다려 봐......"
어머니는 마지막 힘을 다해 인야를 꼭 안으셨고, 두 사람은 아파트 계단 모퉁이에 서로를 껴안은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윽고 조카 부부가 그 모습을 보고는 뛰어내려왔고,
남자 둘이 힘을 합쳐 어머니를 부축하며 내려와 차에 모셨다.
차는 즉시 형님의 집을 향해 달렸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인야는 뒷좌석에 앉아 어머니의 상체를 자신의 무릎에 비스듬히 눕힌 채 품에 꼭 안고 있었다. 어머니는 속이 뒤틀리는지 가는 신음을 내시며 두어 차례 헛구역질을 해대셨다.
뭔가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든 인야는 형님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를 방에 눕히고, 다급하게 한의사인 친구 J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어머니 상태가 좀 이상해! 갑자기 쓰러지셨어."
"어떤 증상인데? 자세히 말해 봐!"
인야는 그 경위를 설명했고, J가 시키는 대로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열 손가락 발가락을 땄고, 인중과 목 뒤를 따서 검붉은 피를 뽑아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는지, 처지를 끝내자 어머니는 가볍게 구토를 하시더니... 이내 거친 숨을 고르며 의식을 조금 회복하셨다.
그제야 인야는 막혔던 숨을 토해내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인야는 어머니의 긴장을 풀어드리고자 짐짓 쾌활한 어조로 농담을 건냈다.
"우리 어머니는 아들에, 손자에, 며느리의 보살핌을 한꺼번에 받으시니 참 행복하시겠어요......"
어머니도 그 말이 싫지 않으셨던지, 인야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큰 고비는 넘긴 것 같다는 판단으로 형수도 안심하고 서둘러 가게 일을 보러 나갔고, 조카 부부 역시 선약이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인야는 그들도 돌려보냈다.
그렇게 방에 둘만 남게 되었을 때, 잠깐 정신을 차리신 어머니가 가슴이 답답하고 뒷머리가 아프시다고 하셨다.
인야는 어머니의 이마를 짚으며 다독였다.
"어머니, 이제 안정을 취하고 푹 자고 일어나면 훨씬 좋아질 거니까, 조금 주무세요."
그런데 잠깐 잠이 드신 듯했던 어머니는 곧 깨어나시더니,
"막둥아, 가슴이 답답허니... 소주 한 잔만 갖고 와." 하셔서,
인야는 생각 끝에 그렇게 해드리자고 결정하고 소주 반 잔을 가져다 빨대를 꽂아 어머니 입술에 물려드렸다.
소주를 드시자마자 어머니는 갑자기 대변을 보신다기에, 인야는 급히 요강을 가져다 드렸는데... 변을 보시는 와중에 다시 구토를 하셔서, 쓰레기통까지 대드렸다.
정신없는 배설과 구토가 한 차례 폭풍처럼 지나간 뒤, 요강 위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의 몸이 뼈 없는 인형처럼 밑으로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덮쳤다.
인야는 목이 터져라 형수를 불렀고, 달려온 형 부부와 함께 어머니를 간신히 눕혀드렸다.
인야는 손을 떨며 다시 J에게 전화를 걸어 바뀐 상황을 알렸더니,
J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안 되겠다. 지금 당장 병원에 모시고 가봐라!"
그래서 급히 다시 조카를 불러, 119 구급차를 요청해 병원으로 내달렸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이미 뇌출혈이 많아(이번에는 지난번보다 훨씬 양이 많아) 계속 의식 불명이셨고, 병원 측의 말로는,
"어려운 수술을 하거나, 그냥 퇴원시켜 하늘의 뜻에 맡기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하는 것이었다.
모두는 고뇌 끝에, 노모에게 더 이상의 칼을 대어 육체적 고통을 주지 않고 '하늘의 뜻을 따르기'러 힘든 결정을 내렸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어머니를 다시 군산 집으로 모셔왔다.
어머니의 호흡은 규칙과 불규칙을 위태롭게 반복하며 의식을 찾지 못하셨고, 집에 돌아와 자리를 편 지 서너 시간 만에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인야가 연말을 맞아 어머니를 뵙기 위해 고향 땅을 밟은 바로 다음 날, 그렇게 거짓말 같은 영결( 永訣 )이 찾아왔던 것이다.
사실 어떻게든 수술대에 눕혀 기계의 힘을 빌려서라도 어머니의 생명을 며칠 더 연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야는 내심, 어머니가 기적처럼 의식을 회복하시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의식이 돌아오신다면, 뇌출혈이 가져다주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실 게 자명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토록 절망적이고 확고하다 보니, 차라리 생명 연장은 인야에게 무의미한 고문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믿지도 않던 신을 향해 마음속으로 처절하게 기도까지 했다.
'하늘이시여, 차라리 우리 어머니께서 고통을 모르는 이 의식 불명 상태 그대로 편안하게 가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것이 어머니 본인에게도, 그리고 남겨진 자식들에게도 가장 존엄한 최선의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머니는 당신의 이 마지막 순간을 미리 예견하고 계셨던 걸까. 바로 전날 밤, 인야가 군산에 도착해 잠을 자려고 어머니 곁에 누웠을 때, 어머니는 어둠 속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다.
"나는... 그냥, 잠을 자다 죽었으믄 좋긌다. 아무 것도 모르게. 니네들 고생 안 시키고......"
"우리 어머닌, 평생을 착하게 사셨으니... 틀림없이 원하시는 대로 되실 거예요. 아마... 10 년쯤 뒤에요......"
인야는 구체적인 기간(10년 정도)을 들면서까지, 어머니의 손을 어루만지면서... 대답해드렸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는 정말 당신의 다짐대로... 자손들에게 가장 깨끗하고 깔끔한 모습만을 기억에 남겨둔 채... 평소의 성격대로 그렇게 단정하게 떠나셨다.
어쨌든, 어머니는 그렇게 세상을 등지셨다.
뒤늦게 비보를 듣고 서울에서 형님과 누님 가족이 달려 와,
"이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실 줄이야!"하고 애통해 했지만,
물론 너무 싱겁고 허무하게 가버리신 면도 없지 않았지만, 어쩌면 지난번 쓰러지셨을 때 자식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주신 뒤... 이렇게 안심하고 조용히 가신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인야에겐 어머니 부고를 알릴 연락처가 몇 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10년 가까운 세월을 세계 여기저기 떠돌며 방랑하다가 얼마 전 급하게 귀국한 처지였기에, 예전에 알고 지내던 지인들에게마저 선뜻 연락을 취하기가 민망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잔인한 연말연시였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하필이면 세상 사람들이 다 바쁜 이런 날에 돌아가셔서......' 하는 철없는 원망이 쑥 고개를 들기도 해, 스스로 자책하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저녁 무렵부터는 살을 에는 듯한 갑작스런 한파가 군산 시내를 집어삼켰다.
인야는 잡답한 가슴을 안고 잠시 형님 집 옥상에 올라가 어두운 하늘을 향해,
"날씨가 이렇게 사무치게 추워지면... 그나마 먼 길 와주는 문상객들에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라고 불편한 심기를 토로하기까지 했다.
저녁이 되어도 빈소에 인야의 손님은 오지 않았다.
애초에 부고를 전한 사람도 극소수였고, 그 중 두어 명에게는 예의상 통보만 했을 뿐,
"날이 추우니, 절대 오지 마!" 하고 자청해서 신신당부까지 했기 때문에, 그만큼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도 했다.
아무리 고향을 오래 떠나 살았다고 해도, 그리고 아무리 연말연시 대목이라고는 해도...
'나이가 마흔이 훨씬 넘게 살아온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찾아오는 문상객이 없다니! 인생을 헛 살았나 보구나.'
인야는 스스로 한탄해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밤 8시가 넘어가자, 차가운 바람을 뚫고 고등학교 동창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신은 없었지만 10시 무렵에는 스무 명이 넘는 친구들이 빈소를 채웠고, 자정이 넘도록... 연말 근무를 마치고 늦게 서울에서 출발한 친구들과 옛 직장 동료들 네 명도 도착했다.
그리고 새벽 1시가 다 되었을 무렵, 과거 인야가 교직에 있을 때 가르쳤던 제자 녀석들 여섯 명이 들이닥쳤을 때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동이 소용돌이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전화가 왔을 때, 그렇게 먼 데서 더구나 날씨도 추우니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건만, 녀석들은 스승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달려와 준 것이었다.
그 덕분에 인야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엄혹한 사실은 잠시 뒷전으로 밀려난 듯, 인야는 찾아와 준 조객들과 오랜만의 재회를 반갑게 나누기도 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상주라는 무거운 직함을 내려놓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마저 스쳤다.
장례식은 어머니께서 살아 생전에 다니시던 군산의 성당에서 미사로 엄수되었다.
때는 1999년 1월 1일 오전 11시 반이었는데, 온 세상이 새해 첫날의 서광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인야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형님 집에서 운구하여 시신을 제단 앞으로 모셨고, 인야는 가장 맨 앞자리에 서서... 미사가 진행되는 내내 어머니 영정 사진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전날 밤 빈소에서 주체할 수 없이 흐르던 눈물은 이제 단 한 방울도 솟구치지 않았다.
장지에는 친척들과 친구들, 그리고 성당 교우들이 대거 동참하여 장의 버스를 타고 선산이 있는 '웅포'로 향했다.
금강에서 불던 바람은 여전히 쌀쌀했지만 겨울 햇살이 내리쬐어 사방이 투명하게 맑았는데, 어머니가 누우실 묘소는 이미 먼저 가 계신 아버지의 산소 바로 옆자리였다.
아늑한 산 모퉁이에는 햇살이 가득히 내리쬐어 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따스함이 인야에게는 작은 위안이 되어주었다.
인야 친구들 여섯 명이 끈을 쥐고 관을 운구하여 미리 파놓은 광중(壙中)에 안치했다.
가톨릭식 연도가 산천에 엄숙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매장이 시작되었다.
주변 인부들과 친척들 사이에서,
"흙이 참 질이 좋고 푸근하다." 라는 감탄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살아 생전에 호강 한 번 못 하셨으니, 돌아가신 뒤에라도 좋은 땅에 편하게 묻히시길 바랄 뿐이었다.
하관이 끝나고 가족들에게 망자의 시신 위에 마지막 취토(聚土)를 할 수 있는 차례가 주어졌다. 세 형님과 누님이 차례로 관에 흙을 흐뿌렸는데, 인야는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아 고개를 가로로 저었고... 큰 형님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서, 인야는 그저 멍하니 서 있었을 뿐이다.
그 순간에도 인야의 눈에선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어머니를 차가운 땅속에 묻고, 돌아서서 군산 시내로 돌아와야만 했다.
집안의 여자들은 연신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흐느꼈지만, 여전히 인야에게선 눈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사흘 뒤 치른 '삼우제' 날은 기온이 완전히 풀려 마치 완연한 봄날 같았다.
어머니 묘소에 다시 도착해 보니, 반듯하게 다듬어진 새로운 봉분 곁으로 조객들이 보낸 하얀 국화꽃 화환이 놓여있었다.
가족들은 정성껏 묘제를 올렸고, 마지막으로 큰절을 올린 뒤... 고향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장례가 모두 마무리되자, 그동안 슬픔을 공유했던 가족들도 제각기 삶의 터전으로 돌아갈 채비를 시작했다.
누님네 식구들이 먼저 짐을 쌌고, 조카딸네 식구들도 차를 몰고 출발했다. 마지막으로 군산 근처에 살던 일가친척들까지 저마다 돌아가고 나니, 집에는 네 형제 가족만이 남게 되었다.
뒤이어 서울 형님 부부마저 상경 길에 다른 지인의 초상집에 들르기 위해 먼저 자리를 뜨자... 집 안은 정말 물이 빠져나간 한 겨울의 바다처럼 쓸쓸한 정적만이 감도는 것이었다.
그동안 장례 절차를 치르느라 경황이 없어 미처 느끼지 못했던 거대한 허전함과 서글픔이 그제야 밀물처럼 한꺼번에 가슴속으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인야는 그날 밤, 어머니가 주무시던 방의 영정 앞에서 혼자 하룻밤을 잤다.
마음 같아서는 꿈에서나마 어머니를 다시 한 번 만나 뵙고 못다 한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었는데, 야속하게도 꿈속의 풍경들은... 여느 평범한 날과 다름없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 파편으로 부서져 사라졌을 뿐이었다.
다음 날, 인야는 마지막으로 군산의 오랜 친구 몇몇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군산의 형님은 인야에게,
"갈 곳이 마땅치 않으면 당분간 어머니가 머무시던 방에서 지내도 돼."라고 했지만, 인야는 펄쩍 뛰었다.
그 뜻이 고맙긴 했지만, 인야는 결코 군산에 주저앉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장례를 치르느라 생각을 정리할 틈마저도 없었던 인야는,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 떠나고 홀로 남겨진 후에야... 엄습해오는 허전함과 막막함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막상 자신도 떠나려 하니, 앞이 캄캄했다.
'아, 정말... 이제는 어디로 가서 뭘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자신을 이 차가운 세상과 연결해 주던 가장 끈끈한 동아줄이었던 어머니가 사라지고 나니, 이 땅 위에서 가장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영혼의 안식처가 통째로 증발해 버린 득한 지독한 고립감이... 구만리장천 같은 하늘 아래 덩그러니 놓인 기분이었다.
그런데 사실, 며칠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때, 그러니까 인야가 최종적으로 '어머니가 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뇌리에 박아넣던 바로 그 찰나에, 마음 한구석에서 불온하기 찍이 없는 낯선 생각 하나가 고개를 들었었다.
'아... 이제 나는 자유다!'
그 섬뜩한 해방감이 슬픔보다 먼저 인야의 전신을 급습했던 것이다.
인야 스스로도 제 안에서 튀어나온 그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던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비극보다도, 훨씬 더 절박하고 간절하게 다가왔던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자유' 것은, 인야가 그동안 갈망해왔던 여느 자유와는 사뭇 다른, 지독하고도 무서운 독약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전까지만 해도 인야는 삶이 너무 고달파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었다 해도, 어머니가 마음에 걸려... 도무지 죽을 수가 없었다. 정신과 육체가 시커멓게 까무러쳐 가면서도, 마음의 중심은 늘 배수진을 치고 있었던 것으로...
'늙으신 어머니를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두고, 내가 어떻게 죽을 수 있겠는가?'하곤 했었다.
그리고 설사, 어쩔 수 없이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고 해도...
'나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 어머닌 어떻게 사실 수 있을까?' 하는 절박한 두려움 때문에라도, 인야는 죽다가도 깨어날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랬던 어머니가 이제 세상에 안 계셨다.
정말 자식으로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불효 막심한 말이겠지만, 이제 인야는 '스스로 죽을 수도 있는 자유'를 획득해 버린 기분이었다.
그 자유는 이전의 방랑과는 차원이 다른, 소름 끼치도록 처절하고 섬뜩한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인야는 이제 또 다른 무한의 자유인이 되었지만, 막상 그 통제 불가능한 자유의 벌판에 서고 나니... 도리어 갈 길을 잃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이제, 난 뭘 어떻게 해야 한다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생에서 이루지 못한 것, 그리고 영원히 이룰 수 없게 되어버린 실패의 낙인.
최근의 인야에게 가장 절실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대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제... 바로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는 일'을 인야는 끝내 이루지 못한, 영원한 실패자로 남게 되었다.
'못난 놈, 겨우 그 따위 처지로 살면서 감히 어머니의 자랑거리였다고 자부했단 말이지?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아무리 가슴을 쥐어뜯으며 자책을 해보아도, 자신은 세상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부끄러운 불효자'의 표본으로 전락해 있을 뿐이었다.
삶의 결말이 이토록 명확하고 참혹하게 드러난 지금, 이 실패는 인야의 영혼에 천추의 한으로 박힐 것이며, 그의 일생 최대의 치욕으로 남을 터였다.
'아, 이 비참함이 결국 내 타고난 운명이었던가 보다. 그리고 이제, 그 잔인한 결말을 내 업보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나 보다.'
그렇다고 해서 인야가 평생을 나약하게 운명론에 매달려 살아온 게으른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진심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신에게 무릎 꿇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어머니라는 존재 앞에서만큼은 한없이 작아지고 연약해지는 인야였기에, 그는 텅 빈 방에서 이런 가정을 해보기도 했다.
'만약에 내가 지난 10년 정도 외국을 부초처럼 떠돌며 방랑하던 그 긴 세월 중에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만약, 그러다가 어머니 얼굴도 못 뵙고 어딘가 먼 곳을 떠돌다가 내가 먼저 객사라도 해버렸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 두 가지 가정 모두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었고, 실제로도 위태로운 순간들이 많았다. 어머니의 5남매 자식들 중 언제나 가장 멀리 떨어져 이방인처럼 떠돌기만 했던 막둥이아들이었기에, 어머니의 임종 같은 건 감히 바라지도 못할 사치였을지도 모르는데... 비록 귀국 후 함께한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어머니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을 자신이 온전히 함께할 수 있었다는 사실, 어머니를 제 무릎 위에 눕히고 마지막 숨결을 거두시는 임종의 순간까지 두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는 이 기적 같은 사실만큼은, 운명의 자비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았다. 인야는 이것을 하늘이 점지해 준, '자신과 어머니의 운명'이라 믿었고... 두고두고 그 운명을 향해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인야도 애틋한 군산을 떠났다.
그러면 어쨌거나 그를 기다리는 새로운 삶의 서막이 다시 열리고 있었다.
일단 서울로 올라가 닥친 현실과 마주해야 마땅했으나, 제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무한의 자유와 새로운 삶의 무게 앞에 인야는 아주 얇은 현기증까지 느끼고 있었다.
인야는 멀어지는 고향 하늘을 향해 마음속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어머니, 이제 모든 걸 훌훌 털고 떠납니다. 이 못난 막둥이의 앞길을 지켜봐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