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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 그리고 자성염불
굉수(묘수, 전 구화사 주지)
1) 상기가 되어 참선을 접고 염불로
나는 일찍이 20대 초반에 출가하여 이생에 반드시 성불 하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치열하게 공부하였다. 그런데 늘 나의 수행을 방해하는 마구니가 있었으니 바로 병치레였다. 전생의 업이 얼마나 두터운지 수행을 해도 해도 병마는 늘 나를 따라 다니며 괴롭혔다. 그래도 그 병을 이끌고 여기 저기 선방을 다니고 영천 은해사 백흥암에서는 10년 쯤 살면서 열심히 참선수행을 하였다. 성불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출가자의 큰 서원이지만 몸이 자꾸 아프다 보니 내 발원에는 늘 본인의 업장 소멸도 함께 들어가 있었다. 하루도 빼지 않고 108배에서 300배씩을 하면서 “전생부터 쌓인 업장소멸해주시고, 아울러 일체중생 구제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부처님에게 빌며 참선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런데 공부할수록 마장도 높아진다고 하더니 나에게도 정말 견디기 힘든 아픔이 다가왔다. 너무 욕심이 과했던지 상기 병이 생겨, 상기만 되면 기가 목으로 올라가는 것이 마치 온 몸뚱이가 하늘로 올라가듯이 딸려 올라가고 목을 누르면 앞으로 꼬꾸라져 선방에서는 물론 길을 가다가도 드러누워야 할 정도이다. 결국은 출가하여 성불하겠다는 일심이 무너지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몇 년 전 어떤 보살이 한 말이 떠올랐다.
“스님은 머지않아 아미타불신앙을 갖게 되겠습니다. 염불을 열심히 하셔서 성불하십시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참선한 사람인데 무슨 소리야!’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렸다. 결국 선방에 앉아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염불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처음 도반 스님이 있던 송광사 감로암에 가 있으면서 ‘광명진언’을 열심히 하였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큰스님과 주변 스님들이 모두 “묘수 스님은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하였고, 내가 보아도 정말 내 몸에 놀라운 변화가 오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관세음보살‘ 정근도 열심히 하였다. 남해 보리암에서 백일기도 할 때도 함께 묵언 수행하던 스님이 놀랠 정도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였다. 태안사에 가서 청화 스님을 뵙자 ’아미타불‘ 염불을 하라고 하셨으나 그때는 내 병을 고쳐야 한다는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에 매달렸다. 그래서 태안사 가까이 있는 비구니 스님 토굴에서 하루 10만독씩 100일 기도를 했다. 신라의 발징 화상은 하루 10만독을 해서 말할 때마다 입에서 빛이 나왔다는데 나라고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하였다. 새벽 4시부터 저녁 10시까지 10만 독을 이어가는데 매일 10만독을 다하려면 밥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였다.
큰 공부를 하려면 큰 절에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데 몸이 아파 그럴 처지가 안 되기 때문에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안동 봉정사에 갔을 때 지족암에서 열심히 수행하는 스님이 계시다는 말씀을 듣고 찾아올라갔다. 거기서 처음으로 도융 스님을 만나 뵈었다.
“아주 깨끗이 잘 닦으셨습니다.”
스님이 보시기에는 그렇게 보였는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과한 말씀이라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저는 열심히 하려고 하였지만 업장이 두터워 늘 아파서 철저하게 정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다 상기병이 걸려 참선을 하지 못하고 병을 낫기 위해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고 있습니다.”
“참선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필요 없습니다. 참선으로 득도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길이라 난행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쉽게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해서 극락에 가면 바로 불퇴전이 되기 때문에 이행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 정근도 좋지만 관세음보살의 본사이신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관무량수경에 보면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나오고, 모든 관세음보살 상을 보면 머리에 부처님을 모시고 계시는데 바로 아미타불이십니다. 그리고 아미타불이야 말로 모든 사람의 병을 고쳐주시는 의왕이라고 하니 아미타불을 열심히 염불하면 수명도 오래 갈 것입니다.”
도융 스님의 이런 법문을 듣고 그날부터 나는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시작하였다. 관세음보살에서 나무아미타불로만 바뀌었지 염불하는 마음자세는 똑같기 때문에 아미타불 정근에 바로 집중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가까운 대구에서 염불선원을 여시고 계시는 수산 노스님이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수산 노스님은 염불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아미타불이 어떤 분인지 극락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말로 된 「아미타경」을 주셨다. 그때부터 「아미타경」을 읽기 시작하여 보지 않아도 외우게 되자 아미타불이 어떤 부처님이고 극락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 확연하게 알게 되고 정토법문에 대한 신심이 더욱 깊어졌다.
우리말에 ‘도로아미타불’이란 말이 있다. 출가하여 처음 ‘나무아미타불’을 배우고 나서 참선을 비롯하여 많은 수행을 하다가 결국은 다시 ‘아미타불’로 돌아온다고 해서 ‘도로아미타불’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나도 20년 가까이 참선 한다고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아미타불로 돌아온 셈이다.
2) 10년 염불하고 만난 관정 큰스님과 정토선
1990년 어느 날 도융 스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상주에 한 보살이 큰 원을 세워 아미타불을 모시는 불사를 하려고 하니 그곳에 가서 아무 생각 말고 죽기 살기로 염불만 하십시오. 10년 안 가서 한 소식을 들을 것입니다.”
나는 당시 몸은 아프고 어디 갈 데도 없는 처지였고, 도융 스님은 나를 정토로 이끄신 선지식이기 때문에 무조건 도융 스님 말씀하신 대로 불사를 하는 상주로 가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고 거기서 2000년까지 10년 세월을 보냈다.
1990년 갔을 때 불사를 하기 위해 터만 닦아놓은 상태였다. 그 동안 나는 힘닿는 대로 불사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보살을 돕고 오로지 나무아미타불 염불만 열심히 하였다. 당시 자주 아프고 갈 곳도 없는 나를 회주보살은 정말 정성껏 도와주었고, 나는 자주 아프기 때문에 짜증을 내기도 하고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에게 정말 잘해 주었다. 나도 마치 어머니 같은 생각이 들어 불사에 한 몫을 하려고 노력하였다.
불사가 거의 다 되어가는 1997년 어느 날 도융 스님이 찾아와서 말씀하셨다.
“얼마 전 중국에서 극락을 다녀오신 관정 스님이 오셔서 극락에서 배워온 정토선 염불을 가르쳐 주셨는데 해보니 정말 수승한 수행법이었다. 묘수 스님도 이 법에 따라 염불해 보시오. 이 염불을 하면 머지않아 자성염불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 소리를 자성이 염불하는 것으로 주변의 어떤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 것입니다. ”
나모아미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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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무량공덕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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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