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철 형, 정래야 이게 어쩐 일이야? 두 사람이 한꺼번에?
한 사람은 강릉에 남기로 하지 않았었어?
말 해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버지도 수철 형 얘기 하던데,
꼭 필요한 사람이라 다시 불러와야한다고 하셨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구정에 음식 남긴 것이 잘못되었나봐,
우리는 같이 먹었는데도 괜찮았는데,
어머니가 식중독이 심하게 나셔서 별안간 돌아가셨다,
초상을 치르고 나서 며칠을 형하고 의논했다,
그리고 사장님하고 상의도 할 겸, 너도 보려고 온 거야,
그동안 경황이 없어서 연락 못해 미안하다.”
“아니! 세상에 그럴 수가, 식중독 때문에 돌아가시다니,
정래야 너 그럴 수가 있어?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내게 아무 연락이 없었다니? 말이 돼?
수철 형도 그렇고, 나, 너에게 배신당한 심정이다,
내가 얼마나 너희 어머니를 좋아했는데, 연락조차 않다니 너무 섭섭하다.”
“나도 뭐가 뭔지도 모르고 시간이 갔다,
정신 차려 보니 어머니 산소 앞에 있더라,
수철 형 아니었으면, 우리 남매 둘 다 죽었을지도 몰라,
아예 넋이 빠져 있었으니까 누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아직도 울기만 해.”
정래의 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된다,
그들 남매가 강릉에서 소문난 효자 효녀였는데,
더욱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가, 별안간 돌아가셨으니 정신을 차릴 수 가 없었을 것이다,
가까운 일가붙이도 별로 없는 그들 남매는,
그나마 수철이 곁에 있었기에 그나마 초상도 치를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하기는 너희 남매 같은 효자 효녀가 없
그래, 내가 오히려 미안 하다,
친척도 별로 없는 집에서 수철 형이 혼자서 너무 고생이 많았어요,
형에게도 사과 할게, 난 그것도 모르고내 생각만 했다,
두 사람 다, 몸 보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거야,
수철 형도 그렇고 형, 내가 속이 좁았어요, 정말 미안해요.”
‘두 사람이 식도 안올리고 같이 살아서 보기가 좀 그랬는데,
그게 전화위복이었었네,
정말 수철 형 아니었으면 정래와 누나가 큰일 날 뻔 했구나.’
“그럼, 무슨 다른 계획이 있는 거야?
아니면 두 사람이 다 여기에서 일 할 생각이야?
그럼 나야 좋지만, 누나는 어떻게 하려고?”
“땅은 남에게 세 로 주고, 이곳에 세를 얻어 이사를 오려고,
누나 혼자 거기에 있으면 병나서 죽을 가봐,
그리고 우리 중에 한 사람이 거기 있다 해도,
농사일 때문에 누나 혼자 방에 남아있게 되니 안 될 것 같다,
차라리 고향을 떠나 이곳에 있으면 사람들이 부근에 많아서 심심치 않아,
누나도 나을 거 같아서, 사장님께 일자리 부탁하러 왔어.”
“그래, 고향을 떠나 있는 것이,
이럴 때는 오히려 나을 거 같아서 이사 하려고 한다.”
“잘 됐네,
수철 형은 아버지가 쓰시고 싶어 하시니까, 말할 필요도 없고,
정래는 그래 나와 같이 자재관리를 같이 하면 되고,
그렇지 않아도 지금 보조를 하나 구하는데,
넌 조금만 일을 하다보면 나보다 다 잘할 거야,
네가 아주 자재담당을 맡아 준다면 나도 다른 일을 할 수가 있겠고,
잘 됐다.”
“너, 나에게 창고 맡기고 뭐 하려고? 다른 거 하고 싶은 거 있냐?
참! 원석이는?
걔는 어쩌고 걔도 자재 담당이잖아?
나, 걔 별로 안 좋아, 싫어하는데, 내가 더구나 그 녀석 밑에 있어야 되는 거잖아?
차라리 다른 현장에 일자리를 알아 봐야 할 거 같다.”
“업무 파악할 때까지만 그렇고 안 그래,
창고가 두 개로 나뉘어 있어서 업무 자체가 틀린 걸,
원석이는 음~ 예를 들자면 배선과, 배관 쪽,
그러니까 나는 기술적인 조립품, 큰 기계 같은 쪽이거든?
조금 더 시간이 지나게 되면 두 창고의 업무자체가 틀려져서
완전히 별개로 관리하고 운영해야 돼서 별 상관없다.”
“나는 그 녀석은 이상하게 정이 안가서 싫어,
너무 나대기도 하고, 평상시에도 사람을 깔보잖아,
지가 무슨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아들인양 말이지.”
“그런 건 염려 말라니까! 네가 온다니 너무 좋다,
난 공사감독과, 안전점검 쪽으로 일을 하고 싶다,
나는 현장에서 일 하는 모습을 보면,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이 금방 떠오르거든?
그래서 몇 번 회사에 공을 세웠잖아, 하하하하
어차피 나중에 회사를 내가 맡을 건데, 미리 많이 배우는 게 좋지,
정래야 끝까지 나하고 같이 있자.”
“그렇다면 좋지,
정길아, 그럼 있다가 다시 보자,
수철 형은 사장님 뵈어야 하고, 나도 같이 인사드려야지,
이사?
아마 이사는 적어도 한 달 정도 걸려야 될 걸,
누나의 몸도 그간에 추슬러야하고 논밭도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겨야 하니까.”
한 참 바쁘게 현장으로 나갈 자재를 처리하고 있는데,
은숙과 그 동생이 뛰어오고 있다,
처남이 웬일이지? 하며 같이 오는 은숙을 보니,
그 얼굴에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있다, 무슨 일이지?
안 좋은 일인가 하여 정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은숙이 정길의 앞에 이르자 남을 의식하지 않고, 그의 품으로 뛰어 든다.
“오빠! 엉 엉, 흑흑흑 아 앙,
오빠, 오빠 아버지가, 아버지가 글쎄, 으앙!
오빠, 나 좀 안아줘, 아 앙.”
“어, 처남 언제 왔어? 누나 도대체 왜 그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난 거야?
누나가 대체 이러는 거야, 무슨 일이 있어서 이러는데?”
‘나야 좋지만 사람들도 보고 있는데,
은숙이가 냉정을 잃은 것 같으니 웬 일이지?
이 새침덩어리가 이런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아, 별 일이네.’
“매형, 아버지가 내일 무죄로 석방 된데요,
그 사건의 진범이 며칠 전에 자수 했어요,
나도 조금 전에 작은 집에서 연락받고, 누나에게 가서 같이 오는 거예요.”
“아니! 뭐라고? 언제 알게 됐어?
언제? 세상에 칠 년이나 생사람을 잡아 골병들게 해놓고,
이제야 그게 밝혀지다니,
누구래? 누가 범인 이래? 뭐?
죽은 사람의 친구고, 죽은 사람에게 빚을 졌던 빚쟁이였다고?”
죽은 사람은 친구인 범인이 돈을 빌려달라고 하자,
이자를 많이 준다는 말에 넘어가 청하는 돈에서 모자라는 돈을 정길의 장인에게 빌려,
자기 돈과 같이 친구인 범인에게 빌려주었고,
얼마가 지나 정길의 장인이 돈을 급히 쓸 일이 생겨,
죽은 이에게 돈을 돌려 달라니까,
죽은 사람은 자신의 돈과, 정길의 장인의 돈을 합쳐서
빚 놓은 범인을 만나서 돈을 갚아달라고 했고,
시일이 너무 촉박하니 며칠만 말미를 달라고 사정하는 그의 말에,
그 역시 다음날
, 정길의 장인과 술을 한 잔 하면서, 그같이 말을 전하는 과정에서,
죽은 사람과 장인과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고,
정길의 장인은 언제고 말만 하면 돌려주겠다고 한 말을,
이제 와서 어기면 어쩌느냐 하면서, 큰소리가 오고가다
멱살잡이까지 하게 되었고, 이웃들이 말린 한 후에야 끝이 났다,
정길의 장인은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생전 처음 친구와 싸운 것도 그렇고 그것이 더욱이 돈 문제 때문이라, 더 화가 났다,
자신은 친구가 잠깐만 필요하다 해서 시한도 정하지 않았고
대신에 자신이 쓸 데가 있는 돈이니, 쓰다가 내가 필요할 때,
돌려 달라고 하면,
언제라도 바로 돌려줘야 한다는 약속을 그 친구와 하고서 빌려준것인데,
그 친구가 그 돈으로 이자를 놓았다니, 어이가 없었다, 너무 화가 났다.
혼자 근처의 구멍가게에서 소주 한 병을 사,
그 자리에서 마시고 집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그 때 마침 범인이 자기 집의 방문과, 창문을 새로 바르기 위해,
쓸 창호지를 사가지고 가는 길에,
돈을 빌려준 친구 집에 기한을 조금만 더 연장해 줘야 하겠다는
자신의 말에 대한 대답을 들으려왔다가, 집에 다른 이가 없고,
죽은 이 역시 친구와 싸우고 나서 화가 나,
집에 있던 소주를 마시고 혼자 술에 취해서 자는 것을 보자,
순간, 이 사람이 죽으면 돈을 안 갚아도 된다는 악마가 주는 악한 살의에 빠져버렸다,
다시 한 번 주의를 살펴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사가지고 가던 창호지를 한 장 빼내어 물에 적셔서 그의 얼굴에 덮었고,
밖에서 어떤 기척이 나는 것 같아 급히 방 밖으로 피했다,
집 뒤에 숨어 있다가 시간이 지나도 이상이 없자,
주위를 살피고 방에 들어가 보니,
숨이 멈춘지라 죽은 것을 다시 한 번 확인 한 후에,
증거물인 창호지를 몸에 감추고는 주변을 살핀 후에 도망갔다.
정길의 장인은 그를 말렸던 사람들의 증언과,
구멍가게에서 술을 마시며 장인이 화가나서 아는 사람에게 하소연하던 것을
본 사람들이 장인이 집에 가기 전에 마지막에 본 사람들이었고,
그 증언으로 인해, 변명의 여지없이 범인으로 몰렸던 것이다,
이웃들의 증언이 두 사람이 같이 있었다는 말과 심히 싸웠다는 것,
경찰은 그 후에, 정길의 장인이 소주를 마신 후의 행적이 분명치 않아서,
그가 다시 찾아가 죽였거나 죽은 자는 싸울 때의
어떤 충격으로 인해 죽었을 것이라는 것으로 판단하고,
사건의 해결을 그 쪽으로 몰고 갔다,
당시의 사회는 조그마한 범죄에도 강한 처벌을 하던 시대인데다,
경찰들은 각 경찰서에 배당 된 검거실적을 올리기에 급급한 실정이었다.
사건이 종결 된 후,
안심하고 있던 죽은 이의 친구인 살인자는,
그 때부터 양심에 심한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살아온 친구를 돈 몇 푼으로 인해 죽였으니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몇 년 간을 죽은 친구가 꿈속에 나타나는 악몽에 시달렸고,
그 부인이 마침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 년 사이에 그 몸이 홀쭉해지도록 밤마다 괴로워하며,
잠을 못 이루는 그의 남편을 보자 안 되겠다 싶어,
계속 설득해서 자수를 시킨 것이다,
그냥 둘 경우에 남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자수해서 벌을 받는 것이 그 아내도 자식들에게도 편할 것 같았다,
그야말로 완전 범죄가 이루어졌는데,
그 죽은 자의 악몽이 정길의 장인을 살리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