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의 시작은 야마대국(邪馬臺國)의 여왕 비미호(卑彌乎)로 시작된다.
비미호가 신라에 왕자를 사신으로 보내어 통교한(7370-AD173)후 가야국에 들려 가야국 공주와 통혼하여, 알알이(경경저(瓊瓊杵))왕을 낳으니, 이분이 바로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외손이시다.
1대 신무왕(神武王) - 이파리(伊波禮)왕 본래 이름은 선(先)으로 가야국 거등왕의 아들이다. 왕명으로 왜국을 정벌하고, 야마대국의 여왕 일여(壹與)를 왕비로 맞이하였다.
2대 수정왕(綏靖王) - 눈깔왕 갈성(葛城)에 궁궐을 두었다.
3대 안녕왕(安寧王) - 담쟁이왕
4대 의덕왕(懿德王) - 칼왕 신라계왕이다.
5대 효소왕(孝昭王) - 밝혀시네왕 의덕왕의 아들이다.
6대 효안왕(孝安王) 본래 이름은 여비조(餘飛鳥)로 백제계 최초의 왕이다.
7대 효령왕(孝鈴王) 1년(7479-AD282) 이름은 의려(依慮)로 부여계 불열국(拂涅國) 왕이었다. 선비의 모용외에게 쫓기어 왜국(倭國)으로 도망하여 즉위하였다.
8대 효원왕(孝元王) 이름은 의견(依牽)으로 의려왕의 아들이다.
9대 개화왕(開化王) 효원왕의 아들로 이름은 의화(依華)이다. 시대가 오래되어 그 시기를 알수 없으나 1대 신무왕에서 시작하여 9대 개화왕에 이르니, 그 연도가 7460년에서 7500년 사이이다. 이는 모두 한 계통의 왕이 아니고, 각각의 영지를 가진 왕으로 생각되어지니, 각각 가야계와 신라계 백제계 부여계의 족속이 각각 영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0대 숭신왕(崇神王) 1년(7497-AD300) 이름은 의라(依羅)로 의려왕의 아들이다. 불열국이 망하고 3년(7482-AD285)후 동진(東晋)의 도움으로 부여국을 다시 세웠으나 모용외의 침략으로 무너지고, 다시 의로(懿路)땅에 의라국을 세웠다. 이때가 7493(AD296)년이다. 이후 다시 왜국으로 와서 즉위하였다. 11년(7507-AD310) 아들 풍성(豊城)을 동국왕(東國王)에 명하였다. 16년(7512-AD315) 임나인(任那人)이 조공하였다. 19년(7515-AD318) 12월 왕이 서거하였다.
11대 수인왕(垂仁王) 1년(7515-AD318) 숭신왕의 아들이다. 2년 임나인이 조공하였다. 3년(7517-AD320) 신라왕자 천일창(天日槍) 왔다. 4년 사본왕(沙本王)이 반란하였다. 26년(7540-AD343) 경행왕이 출운(出雲)을 치자 태자를 인질로 보냈다. 백제의 왜국 진출로 인하여 수인왕은 경행왕에게 패하니 부여계의 왜국통치 기간은 이로써 끝난다.
12대 경행왕(景行王) 1년(7517-AD320) 이름은 실(實)이다. 분서제의 아들로 비류제 15년에 왜국왕에 봉해졌다. 2년(7518-AD321) 웅습국(熊襲國)이 조공을 하지 않자 이를 정벌하였다. 16년(7532-AD335) 무내숙녜(武內宿녜)를 동부(東部)에 파견하였다. 18년(7534-AD337) 왕자 오구나(男具那)를 보내어 왜국 서부(西部)를 공격하였다. 22년(7538-AD341) 오구나(男具那)를 보내어 왜국 동부(東部)를 공격하였다. 24년(7540-AD343) 오구나(男具那)를 보내 출운(出雲)을 치자 수인왕이 태자를 인질로 받쳤다. 왕이 백제 계제(契帝)로 추대되었다.(삼국사기 즉위 원년은 7541(AD344)년이다.) 근초고왕자를 왜왕으로 봉했다.
13대 성무왕(成務王) 1년(7540-AD343) 근초고(近肖古)왕자로 비류제의 아들이다. 24세에 왕위에 올랐다. 3년(7542-AD345) 백제 계제가 승하하자, 백제 근초고제로 즉위(삼국사기 즉위 원년 7543(AD346)년이다.)하였다. 4년(7543-AD346) 무내숙네를 대신(大臣)에 명했다. 5년(7544-AD347) 분봉제도(分封制度)를 도입하여 백제의 왕족을 각지에 분봉(分封)하였다. 13년(7552-AD355) 중애가 반란하여 왜국왕위에 올랐다. 16년(7555-AD358) 왕자 근구수를 보내어 중애를 정벌하였다.(해설) 18년(7557-AD360) 근구수왕자가 예전(譽田)이 태어나자, 예전을 왕으로 지명하고, 신공왕후(神功王后)가 섭정하였다. 19년(7558-AD361) 근구수왕자가 떠나면서 예전을 왜왕에 임명하였다.
14대 중애왕(仲哀王) 1년(7552-AD355) 경행왕의 손자로 아버지는 오구나이다. 반란하여 왜왕에 등극. 4년(7555-AD358) 근초고제가 왕자 근구수를 보내어 치니, 중애왕이 식장족희(息長足姬)를 인질로 보내었다. 8년(7559-AD362) 6월 왕이 암살당하였다.
15대 예전왕(譽田王) 1년(7558-AD361) 근구수왕자가 백제태자로 임명되어 떠나면서 예전을 왕으로 임명하였다. 2년 5월 백제 근초고태제가 칠지도를 제작하여 예전이 왜왕임을 증명하였다. 9년(7566-AD369) 백제와의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백제 장수 목라근자(木羅斤子), 사사노궤(沙沙奴궤) 등과 함께, 비자본(比自본), 남가라(南加羅), 훼국(喙國), 안라(安羅), 다라(多羅), 탁순(卓淳), 가라(加羅) 등 7국을 쳐서 백제영토로 하였다. 이후 비리(比利), 벽중(벽中), 포미지(布彌支), 반고(半古) 등이 항복하였고, 다시 침미다례(침彌多禮; 珍島)를 쳐서 백제에 속하였다. 12년(7569-AD372) 칠자경(七字景) 및 칠지도(七支刀)등을 하사 받았다. 14년(7571-AD374) 백제 근초고제가 서거하자 근구수제가 제위에 올랐다. 제께서 예전을 태자에 봉했다. 22년(7579-AD382) 사지비궤(沙至比궤)와 목라근자(木羅斤子)를 보내어 각각 가야와 신라를 쳐 왜국에 복속시켰다. 23년(7580-AD383) 근구수제가 서거하자 왕이 백제 침류제로 등극하였다.(삼국사기 즉위 원년은 7581(AD384)년이다.) 24년(7581-AD384) 침류제께서 아신제에게 양위하고 왜국으로 오니 다시 왜왕에 등극하였다. 아신제가 너무 어려 숙부 진사제가 제위를 찬탈하였다.(삼국사기 즉위 원년은 7582(AD385)년이다.) 28년(7585-AD388) 침류제께서 예전왕으로 다시 등극하였다. 31년(7588-AD391) 예전왕께서 기각숙녜(紀角宿녜)등 4명의 장수를 보내어, 진사제를 살해하고 예전왕의 원자인 아신제를 등극시켰다.(해설)(삼국사기 즉위 원년은 7589(AD392)년이다.) 34년(7591-AD394) 예전왕께서 서거하셨다.
16대 응신왕(應神王) 1년(7580-AD383) 일명 남제왕(男弟王)으로 중애왕의 아들로 왜왕에 등극하였다. 6년(7585-AD388) 침류제께서 예전왕으로 다시 왜국왕에 등극하니, 왕이 이세국(伊勢國)왕으로 격하되었다. 12년(7591-AD394) 예전왕이 서거하자 다시 왜국 응신왕으로 등극하였다. 14년(7593-AD396) 백제가 고구려의 침략으로 수도가 함락되자, 전지왕자를 인질로 보내어 군사를 빌려갔다. 17년(7596-AD399) 제현군(諸縣君)등 17현민이 귀화하였다. 18년(7597-AD400) 고구려가 구주(九州)에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설립하였다. (해설) 22년(7601-AD404)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 대방계를 침공하였다. 백제 아신제가 서거하였다. 궁월군(弓月君)등 120현민이 귀화하였다. 백제의 왕인(王仁)이 와서 태자를 가르쳤다. 23년(7602-AD405) 왕자전지가 백제 전지제로 즉위하였다. 25년(7604-AD407) 고구려가 다시 백제를 침범하였다.(해설) 28년(7607-AD410) 왕이 서거하였다.(해설)
17대 왜찬왕(倭讚王) 1년(7607-AD410) 혹은 남협기(男狹磯)라고도 하며, 응신왕의 아들이다. 4년(7610-AD413) 윤공왕(允恭王)이 즉위하였다. 8년(7614-AD417) 왕이 습진언(襲津彦)을 보내어 신라를 정벌하였다. 10년(7616-AD419) 백제에서 목협만치(木협滿致)등이 반란하여 구이신제가 즉위하였다.(삼국사기 즉위 원년 7617(AD420)년이다.) 이에 왕이 목협만치를 소환하였다. 12년(7618-AD421) 송과 교류하였다. 14년(7620-AD423) 왕이 기각숙니와 습진언을 백제로 보내어, 구이신제를 폐위하여 압송하고, 전지제를 다시 세웠다. 16년(7622-AD425) 전지제가 왕에게 누이 신제도원(新濟都媛)을 보내니 비(妃)로 삼았다. 17년(7623-AD426) 윤공왕이 담로도(淡路島)를 침략하고, 옥새를 빼앗아 갔다. 18년(7624-AD427) 1월 왕이 서거하였다.
18대 이중왕(履中王) 1년(7624-AD427) 이름은 거내수(去來穗-이자호)로 전지제의 아들로 왜국왕에 즉위하였다. 2년(7625-AD428) 전지제가 비유제에게 백제의 제위를 양위하고 왜국으로 떠났다. 3년(7626-AD429) 전지제가 왜왕으로 즉위하자, 왜국의 후왕으로 물러났다. 5년(7628-AD431) 왕의 비가 검도태자(劍刀太子)에 의해 살해되었다. 6년(7629-AD432) 왕이 서거하였다.
19대 인덕왕(仁德王) 1년(7626-AD429) 일명 왜진왕(倭珍王)으로 전지제이다. 윤공왕에 의해 왜찬왕이 서거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왜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스스로 왜백제신라임나모한변한(倭百濟新羅任那慕韓弁韓) 등 6 제군사 (諸軍事) 안동장군이라 칭하였다. 2년(7627-AD430) 송(宋)과 교류하였다. 4년(7629-AD432) 이중왕이 서거하자 그의 영지에 반정왕(反正王)이 올랐다. 5년(7630-AD433) 반정왕을 태자로 옹립하였다. 7년(7632-AD435) 신라가 조공을 하지 않자, 장수 죽엽수(竹葉漱)를 파견하였다. 9년(7634-AD437) 장수 전도(田道)를 보내어 신라를 침공하였다. 반정왕이 서거하였다. 14년(7639-AD442) 왜진왕이 서거하였다.
20대 왜제왕(倭濟王) 1년(7639-AD442) 인덕왕의 손자이다. 8년(7646-AD449) 왕이 사자를 송국에 보냈다. 9년(7647-AD450) 왕이 신라를 정벌하는데 임나군(任那軍)와 충돌하였다. 12년(7650-AD453) 백제 비유제가 서거하고 개로제가 즉위하였다. 13년(7651-AD454) 윤공왕(允恭王) 서거하자 아들 안강왕(安康王)이 즉위하였다. 16년(7654-AD457) 안강왕이 살해되자 웅략왕(雄略王)이 즉위하였다. 왕이 웅략왕의 사냥에 초대되어 갔다가 웅략왕에 의해 살해되었다. 고구려계 웅략왕에 의해 왜제왕이 살해되고 왜국왕위가 넘어가게 되었다. 그 2년 후 다시 백제 개로제에 의해 청령왕이 왜국왕에 봉해지고 웅략왕을 정벌함으로써 왜국은 다시 백제의 후국이 되었다.
21대 청령왕(淸寧王) 1년(7656-AD459) 이름은 곤지(昆支)로 백제 개로제가 동생 곤지를 보내어 왜국왕에 봉했다. 웅략왕의 태자 성천왕자(星川王子)를 살해하였다. 3년(7658-AD461) 청령왕이 무녕(武寧)이 태어나자 태자로 임명한후 백제로 귀국하였다.
22대 반풍여왕(飯豊女王) 1년(7659-AD462) 개로제의 비로 황태부인(皇太夫人)이다. 왜국여왕에 즉위하였다. 무녕을 태자로 임명하였다. 홍계왕(弘計王)이 스스로 왜국왕에 즉위하였다. 4년(7662-AD465) 홍계왕이 백제군에 의해 전사하자, 인현여왕(仁賢女王)의 칭호로 다시 왜국 여왕으로 등극하였다. 14년(7672-AD475) 고구려가 침략하여 백제 개로제가 전사하고, 문주제가 제위에 올랐다. 이에 여왕이 무녕을 왜왕으로 임명한 후 모도왕(牟都王)과 함께 백제로 귀국하였다.
23대 안한왕(安閑王) 1년(A7672-D475) 일명 왜무왕(倭武王)으로 이름은 사마(斯麻)이다. 백제 무녕왕자로 개로제의 아들이다. 4년(7675-AD478) 백제에서 모반이 일어나 문주제가 살해되고 삼근제가 즉위하였다.(삼국사기 제위 원년 7674(AD477)년이다.) 5년(7676-AD479) 모대왕(牟大王)이 백제 동성제로 즉위하였다. 왜국의 임나(任那) 4현을 백제로 이양하였다. 8년(7679-AD482) 춘일왕녀(春日王女)와 결혼하였다. 15년(7686-AD489) 모도왕(牟都王)이 서거하였다. 25년(7696-AD499) 무열왕(武烈王)이 자립하여 스스로 왜국왕에 즉위하였다. 28년(7699-AD502) 동성제가 서거하자, 왕이 백제 무녕제로 즉위하였다. 제(帝)가 마나왕(麻那王)을 왜왕으로 세웠지만 무열왕에게 패하였다. 31년(7702-AD505) 순타(淳陀)를 왜왕으로 임명하였다.
24대 선화왕(宣化王) 1년(7703-AD506) 일명 사아왕(斯我王)으로 이름은 순타이다. 무녕제의 동생이다. 왕이 왜왕으로 임명을 받고 즉위하였다. 무열왕을 살해하였다. 2년(7704-AD507) 계체왕(繼體王)이 즉위하였다. 18년(7720-AD523) 무녕제가 서거하고 성제가 제위에 올랐다. 20년(7722-AD525) 흠명왕이 즉위하였다. 22년(7724-AD527) 계체왕이 서거하였다. 26년(7728-AD531) 왕과 왕의 일가가 흠명왕(欽明王)에게 전부 죽음을 당했다. 이로써 왜국은 무녕제 사후 왜국에 대한 지배권을 잃어버리고 선화왕의 일가가 흠명왕에 의해 몰살당하자 백제 분국으로서 떨어져 나가 독립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