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교수는 문학과 역사, 철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인문학자가 되는 꿈을 다시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꿈대로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김 교수가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게 아니었습니다. 신학대에 몸담고 있는 신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그들이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김형석 교수의 신학적 깊이와 공부한 방대한 양에 대해서 말입니다. 김형석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젊었을 때 목사님들의 신앙은 교회에서 시작해 교회로 끝나더라. 도산 안창호 선생은 달랐다. 민족과 국가를 이야기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했다.”
그때 김 교수는 절감했다고 했습니다.
“나는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되는 게 신앙의 첫째인 줄 알았는데,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민족과 국가를 섬기는 게 신앙의 첫째더라.”
그렇게 그는 우물 안 기독교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기독교를 깨달았습니다. 며칠 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커피잔을 앞에 놓고 만난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목사나 신학자가 되지 않은 게 참 다행이다. 내가 신학자가 됐으면 나의 신앙은 교리주의가 됐지 싶다. 철학자가 됐으니 나의 신앙은 진리가 될 수 있었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삶의 목적’을 묻는 인문학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인문학이 모든 학문의 뿌리라며 최근 인문학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리적, 이성적 판단력을 기르는 인문학의 토대 위에 사회과학, 자연과학이 꽃피었다는 것. 그는 “개인의 모든 활동은 오로지 전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전체주의가 범람할수록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전쟁 등 갈등이 첨예하다”며 “시대를 화해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게 인문학”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인문학 전도사’다. 전국을 다니며 인문학 강연을 열고, 전공인 철학을 기반으로 문학, 역사학을 버무린 인문학적 사고를 풀어낸다. 에세이 ‘영원과 사랑의 대화’(1961년·김영사), ‘백년을 살아보니’(2016년·덴스토리) 등 60여 년 동안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냈고 여전히 현역 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비결이다. 그는 “기업에서도 부장이나 임원 등 관리자가 인문학적 기반이 없으면 다양한 구성원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삼성 등 여러 대기업에서 강의했는데, 특히 임원들이 인문학의 가치를 인정하더군요. 각기 다른 생각을 지닌 구성원을 이끄는 리더십을 기를 방법은 오로지 인문학, 독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