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슬로바키아의 작은 도시 반스카비스트리차로 향했다. 가는 길에 빵집에 들러 빵을 샀다. 아침은 저녁에 해두었던 반찬으로 밥을 해먹고, 이경우 우리가 들고온 전기압력 밥솥이 아주 유용하다. 점심은 다니다가 관광지나 시내의 공원, 아니면 차를 세워놓고 도로변에서 먹곤 하기 때문에, 상을 차려서 우리음식을 먹기가 곤란하다. 해서 점심은 빵을 사서 꿀이나 잼, 모짜렐라 치즈를 발라 먹는다.
모짜렐라 치즈는 딱딱하지 않고 우리 순두부처럼 생겼는 데, 짜지않고 심심하고 담백해서 빵과 같이 먹는 데 잘 어울렸다. 간식으로는 바나나 사과, 체리를 배낭에 넣고 다니다가 먹는다. 유럽은 길거리 음식이 우리처럼 다양하지 않다. 기껏해야 피자, 아이스크림 정도, 케밥은 발칸을 벗어나면 보기 힘들다. 그래서 간식은 우리 스스로 챙겨서 다니다가 먹는 것이 낫다.
우리 일행5명은 일단 목적지에 닿으면 만나는 시간을 정해놓고 헤어져서 관광을 다한 다음 주차해놓은 곳으로 돌아와서 다음 목적지로 다시 이동한다. 함께하는 시간을 최소화 하는 것이 서로의 갈등을 줄이는 길이기 때문,

반스카비스트리차는 슬로바키아 중부에 위치한 도시로, 반스카비스트리차 주의 주도이며 면적은 103.37km2, 높이는 362m, 인구는 78,327명(2011년 기준)이다. 성 알주베티교회

슬로바키아에서 6번째로 큰 도시이며 도시 이름은 슬로바키아어로 "광산의 줄기"를 뜻한다.

니즈케타트라 산맥과 벨카파트라 산맥, 크렘니차 산맥에 둘러싸여 있고 시내에는 흐론 강이 흐른다. 반스카비스트리차의 공동묘지

반스카비스트리차는 9세기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1255년 시로 승격되었다. 
중세 시대부터 구리 광업의 중심지 였으며, 중세 후기 부유층 주민들이 시내에 교회와 주택, 요새를 건설했다. SNP 광장

근대에 들어서는 지하자원의 고갈로 인해 쇠퇴를 맞았으며 1944년 나치 독일에 대항해서 일으킨 봉기인 슬로바키아 민족 봉기가 이곳서 일어났다.

옛부터 주변 산맥에 접근하기 쉬워 매년 여름철과 겨울철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린다.

반스카 비스트리차는 13~14세기 동(銅)과 은(銀)을 캐는 광업도시로 발전했던 곳이다.

구(舊)도시 중앙광장에 있는 시계탑에 오르면 흰 벽에 붉은 지붕을 얹은 건축물들이 머리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슬로바키아 중부 반스카 비스트리차의 구(舊)도심 모습.

돌이 깔린 중세풍 거리를 걷는 게 이곳 여행의 진미다.

대로변 큰 건물들에 눈이 팔렸지만, 작은 골목에 들어선 골동품점과 음식점, 주점 등이 친밀하게 다가온다.

슬로바키아의 알프스 초원처럼 펼쳐진 평원을 지나 산중으로 접어들면 디즈니랜드에 등장할 법한 고성(古城)이 나타난다. 중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 중 하나로 꼽히는 슬로바키아 니트라 북부 지역의 보이니체성이다

슬로바키아에는 크고 작은 성이 100여개 남아있다. 보이니체성과 스피슈성이 대표적이다.

보이니체성이 점잖은 신사의 모습이라면, 스피슈성은 야성적인 전사(戰士)의 모습이다. 
보이니체성, 11세기에 만들어진 이 성은 하늘로 솟은 가파른 지붕과 타워 등이 중세 성의 낭만적 분위기를 풍긴다. 성벽 안쪽으로 난 원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귀족과 병사, 하인들이 살았던 거실, 침실, 부엌 등이 나타난다.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부인인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의 오빠인 막시 밀리언의 그림

아직도 물이 나오는 깊이 26m의 우물, 벽난로, 화장실 등 중세인들의 세밀한 일상을 엿볼 수도 있다.

성 안을 한 바퀴 돌아보니 중세로의 '시간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보이니체성은 여러 번의 수술을 받았다. 10세기 이전에 목재로 만들어졌다가 13세기 이후 석조로 개축된 것

이 개축이 첫 번째 환골탈퇴였다면, 16세기에 이 성을 넘겨 맡은 투르조(Thurzo) 가문은 방어 목적의 요새를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샤토(Chateau)로 개조해 정체성마저 바꾸어 버렸다.

다음 세기에 성을 넘겨받은 팔피 가문은 장장 21년에 걸친 성형 작업에 착수했다.

프랑스 루아르 지방의 고성에서 영감을 받아 르네상스 스타일로 치장하는 작업은 상속자 야노스 팔피(Janos Palffy) 백작의 막대한 재력 없이는 불가능했을 대수술이었다.

그 결과 보이니체는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 됐다.

후손이 없었던 팔피 백작은 성의 완공을 보지 못한 채 1908년에 사망했고, 유언에 따라 성은 대중에게 활짝 열렸다

대부분의 슬로바키아성들이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것과 달리, 보이니체성은 평지에 자리를 잡았다.

천장에 183명의 금빛 천사가 내려다보고 있는 금색의 방, 팔피 백작의 집무실이었던 오리엔탈 방, 창과 갑옷이 전시되어 있는 기사의 방, 체스나 카드놀이를 했던 겨울정원, 식수를 저장했던 지름 22m의 지하 동굴 등을 지나 관람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역시 팔피 백작의 무덤이다

보이니체성이 있는 보이니체는 슬로바키아 중부 트렌친 주에 위치한 도시로 면적은 19.96km2, 높이는 298m,

인구는 4,983명(2005년 기준), 인구 밀도는 250명/km2이다.

팔피백작이 쓰던 침대, 암살방지를 위해 침대높이를 높였다고 한다.

성은 당시 생활도구와 고(古)가구, 조각과 그림, 기사들의 갑옷과 무기 등을 전시한 박물관으로 꾸며놓았다


백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해자에 드리워지는 네오고딕풍 첨탑들의 반영 사진은 ‘믿기 힘든 장관’으로 평가 받는다

우물과 동굴 : 우물과 동굴이 연결되어 식수공급과 은신처로 사용.

동굴은 26미터 지하에 있어 성벽의 하단부를 볼 수 있고, 석기시대의 유물도 발견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