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정(高來亭)
김재하
잘 크던 배추가 시 월 초부터 배추 잎이 노랗게 변하고 뿌리 썩음 병이 왔었다. 여러 해를 심었는데 처음 보는 현상에 당황하여 고향에서 흥농종묘를 운영하는 막내 여동생에게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냈다. 잠시 후에 대학을 중퇴하고 흥농종묘를 같이운영하는 조카의 메시지가 왔다. 조카는 올해 초 암 투병 하던 아버지를 여의고, 지지난해부터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노균병과 뿌리 썩음 병 약을 해 주세요’ 라는 간단한 메시지였다. 고향에 갈 일이 있으면 들려서 필요한 농자재를 홍성 여동생 가게에서 구입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금산농협에서 구입한다. 오 일 간격으로 두 번 방제를 하고 이상이 없어 그냥 두었다. 배추는 잘 자라서 지난 주말에 뽑아서 김장을 하였다. 시 월 초순에 비가 많이 내려서 올해는 배추가 흉작이라고 한다.
2004년도는 노무현대통령 시절이다. 그때 나는 40대 후반의 나이에 고혈압 판정으로 혈압 약을 복용하게 되었다. 근무하던 사무실은 서구 50만 인구 절반의 관할구역과 유성구도 관할하였다. 대덕연구단지 등의 잦은 VIP 행사와 2002년부터 월드컵 국제경기도 치렀다. 외국인 담당 팀장이라는 직책을 수행하면서 이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주요 국가기관 지방이전이라는 정책을 밀어 붙이고 있었다. 당시 부동산은 대전에서 한 시간 거리에 땅을 사두면 괜찮을 거라는 소문과 주말농장을 하는 것에 대한 동경과 환상이 있었던 때였다.
대전근교에 토지를 구입하려고 교차로와 벼룩시장을 보면서 답사도 해보고, 수 개 월간 마음에 드는 곳을 찾으며 구하고 있었다. 2005년 3월경 대전에서 40여 분 거리의 금산군 남일면 봉황 천변 뚝 방 인근에 300여 평의 논이 평당 3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교차로에 나왔다. 현장에 가보니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강(江)과 같은 너른 봉황 천과 인근 덕기봉(德基峰)이 542 미터의 높이로 남북으로 길게 뻗은 고래 같은 산의 경치에 반하였다. 그리고 인근 동네와는 200여 미터 떨어져 있었다. 주변에는 우사와 돈사도 없고, 고압선도 지나지 않았다. 현장에서 즉시 계약하였다. 그리고 16년 동안 봄부터 늦가을 까지 다니며 농사를 짓고 있다. 시골 밭을 왕래 하면서 ‘식물을 기르고 수확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삶의 원동력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그해 오월 밭에는 급수 시설도 비를 피할 움막도 없었다. 덩그러니 인근 마을에서 먼발치로 떨어져 있었다. 처음 고구마를 심어 놓고는 인근 봉황 천으로 내려가서 물을 길어다가 주며 고구마를 키웠다. 다행히 일 년 뒤에 이장의 도움으로 농사용 지하수를 팠다. 금산 진산에서 농사와 한우 축산을 하는 큰 고모네 내종형님의 도움으로 가로 오 미터, 세로 육 미터의 비닐하우스를 만들었다. 고맙게도 지금까지 비닐만을 교환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지난 3월경 방송에서는 대통령이 퇴직 후 거주지에 대한 농지 불법 매입관련 방송보도가 한동안 시끄러웠다. 대통령 부인이 서울에서 경남 양산에 천이백여 평의 밭으로 농사를 지으러 다닌다는 이야기들은 실소를 금할 수밖에 없었다. 헬리콥터를 타고 농사를 지으러 다니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농지전용허가는 농지가 대지 등으로 변하면 두세 배 이상의 토지 가격이 상승되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작금의 대장동 사건의 저변에도 농민이 소유한 농토 등을 현실가격을 무시하고 싼 가격에 시청에서 강제 수용해서 용도변경 후 민간 아파트를 고층으로 건설하고 고가에 분양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었다. 관련자들이 천 배의 수익에도 ‘부끄러움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 이상이 특검을 찬성하는 이유였다.
농부(農夫)의 사전적 정의는 농사를 짓는 사람이다. 그런데 최근 우스운 소리로 농부는 ‘농사를 지어서 자급자족하며 가족, 지인들과 나누어 먹는 사람이다.’, ‘농업에 전문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농부는 사업가라 부른다.’고 한다. 나는 2018년 퇴직 후에 미루고 있던 ‘농업 경영 체 등록’을 하고 금산농협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의료보험공단에 자문을 받고 농사를 짓는 금산군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다. 농업경영체등록을 ‘공무원들이 하면 겸직금지 법위반에 해당 된다’는 법으로 인하여 그동안 미루고 있었다. 퇴직 후에는 딸아이 직장의료보험명단에 올리고 혜택을 받았었다. 그러나 2019년부터는 년 소득과 재산을 계산하여 퇴직공무원들도 지역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36년을 공직에서 종사하고 연금이 줄어드는 현상에 대하여 서운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해 부터 농민으로 50%를 감면 받고 의료보험료를 내고 있다. 16년간의 주말농장 경력은 감면에 부끄러움이 없다.
사도삼촌(四都三村)이라는 말이 있었다. 사흘은 도시에서 삼일은 농촌에서 지내며 사는 일이다. 퇴직 전에 시골에 집을 하나 장만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1가구 2주택 중과세하는 정책으로 포기할 수 밖 에 없었다. 일부 세제가 농촌의 1억 원 미만 집에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가 한시적으로 감면되는데 골치 아픈걸 싫어하는 집사람의 망설임도 한 몫을 했다. 그래서 6평 규모의 컨테이너 농막을 구입하고 가설건축물로 신고하였다. 도로 명 주소를 부여 받고 전입하여 대전을 오가며 살고 있다. 이곳 주민 센터 민원인 책장에서 ‘금산문학’ 이라는 책을 접하고 활동하는 문학인들과 함께 수년째 소통하며 지내고 있다, 그리고 오래전 생각을 세워 밭이 고래같이 길고, 인근 산도 고래처럼 길게 뻗은 것과 ‘높은 곳으로 자주 온다.’는 뜻의 한자음을 사용 고래정(高來亭)이라 농막 이름을 부르고 있다.
금산을 자가용으로 오가며 농사짓는 것에 대하여 아들이 원가 계산을 하였다. 내가 ‘아버지는 밭에 다니며 힐링(healing)하고 살고 있으며 본전은 한다. 퇴직 전 16년간 나를 지탱한 원동력이었다. 지금은 내 직장이다’라고 하자, 수긍하였다. 오랜 코로나19로 인하여 아들 식구들도 고래정에 여러 번 와서 힐링(healing)하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