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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조선사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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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성종대왕께 상황 (上皇)이 존재한다
fitfear3 추천 1 조회 411 23.05.16 17:34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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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5.16 17:50

    첫댓글 고맙습니다

  • 23.05.16 19:43

    위 글은 좀 더 면밀한 고찰이 필요해 보입니다. 특히나 원문과의 비교도 필요해 보입니다.

  • 작성자 23.05.16 19:57

    세종 6년 갑진(1424) 7월 8일(신사)

    06-07-08[01] 황제에게 처녀를 진헌하게 하고 진헌색을 설치, 판돈녕 김구덕 등을 제조로 삼다
    주문사(奏聞使) 원민생(元閔生)과 통사(通事) 박숙양(朴淑陽)이 먼저 와서 계하기를,
    “황제가 원민생에게 이르기를, ‘노왕(老王)은 지성으로 나를 섬기어 건어(乾魚)에 이르기까지 진헌하지 않는 것이 없었는데, 이제 소왕(小王)은 지성으로 나를 섬기지 아니하여, 전날에 노왕이 부리던 화자(火者)를 달라고 하였는데도 다른 내시를 구해서 보냈다. 짐은 늙었다. 입맛이 없으니 소어(蘇魚)와 붉은 새우젓과 문어 같은 것을 가져다 올리게 하라. 권비(權妃)가 살았을 적에는 진상하는 식품이 모두 마음에 들더니, 죽은 뒤로는 무릇 음식을 올린다든가 술을 양조한다든가 옷을 세탁하는 등의 일이 모두 마음에 맞지 않는다.


    세종 6년 갑진(1424) 7월 13일(병술)
    06-07-13[01] 주문사 총제 원민생이 북경에서 돌아오다
    주문사(奏聞使) 총제(摠制) 원민생(元閔生)이 북경에서 돌아왔다.

    생물을 총알 배송하고 있더라구요. 이거 북경이 있기나 한 건지.

  • 작성자 23.05.16 21:51

    성종 15년 갑진(1484) 1월 5일(계사)
    15-01-05[01] 일본국 대마주 태수 종정국이 종수리 등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다
    삼가 받들어 보건대, 황태자(皇太子)께서는 이미 하늘이 낸 상성(上聖)의 자질을 받아서 조선 동궁(東宮)의 자리를 갖추었으니, 협찬하는 데에 어찌 사호(四皓)를 번거롭게 하겠습니까? 왕위에 올라 마땅히 만기(萬機)를 맡을 것인데, 사이 백만(四夷百蠻)이 누가 마음이 쏠리지 아니하겠습니까? 신(臣)은 이미 동번(東藩)이라고 일컬었으니, 장차 황도(黃道)에 나오는 해를 우러러볼 것이므로, 뛰고 춤추는 지극한 기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
    “삼가 받들건대, 선태 황태후(先太皇太后)께서 요즈음 수렴 청정(垂簾聽政)을 파하고, 곤의(坤儀)를 교산(橋山)에 짝하였습니다.


    조선은 별도 독립된 상왕(황)부 태상왕(황)부를 운영하는 나라입니다. 각자 궁궐도 존재하고, 관리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환자.화목찬모가 필요했겠죠.
    연산군 생년 1476년(성종 7년)
    조선 세자 1483년 3월 14일 ~ 1495년 1월 25일 (11년)
    재위 1495년 1월25일 ㅡ 1506년 9월 18일 (11년)

  • 작성자 23.05.18 23:38

    성호사설 제2권 / 천지문(天地門 성조成祖 때에 와서는 중국과 오랑캐의 중간지점에 자리잡아 북쪽 왕국을 없애고 남으로 향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높은 지붕 위에서 병의 물을 내려쏟는 것과 같이 생각하였으므로 모든 적을 숙청한 나머지의 위력을 가지고 먼저 장청새(長淸塞)의 남쪽을 뚫고 나가서 북두(北斗)를 보고야 말았으니 웅대하고 용감하다고 말할 수 있다.至成祖則以為跨居華夷之交殄滅北庭 이 글은 대도 북경에서 주천(숙주)으로 옮긴 것이 아닌가 해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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