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 원어 '호이 코피온테스'는 현재 분사 능동형으로 명사적 용법으로 쓰이고 있다. 이는 스스로 많은 일들을 하여 계속해서 피곤에 지친 상태를 말한다. 무거운 짐진 자 - 원어 '페포르티스메노이'는 현재분사 수동형으로서 타인에 의해 무거운 짐을 진 채 계속해서 지쳐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는 죄와 염려의 고통이나 육체적 의무 외에 특별히 전통적으로 부과되고 있는 율법과 유전의 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사람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운다고 비난하신 적이 있다. 다 내게로 오라 - 예수는 아버지를 계시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 죄인들을 초대하시는 분이기도 하다.
즉 예수께서는 당신에게 마음을 두고 나아오는 그 어떤 사람도 모두 받을만한 넓은 사랑과 모든 인간을 친히 부르실 만큼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시고 구원과 안식에의 초대를 하시고 계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예수께서는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 그리고 '아이같이 지혜는 없으나 순박한 자들'을 모두 초대하신다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이것은 마지막날의 영원한 안식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의 모든 갈등을 해소한 후의 평화와 안식까지도 가리키고 있다. 즉 신자가 주께로 가면 신자는 죄에서의 해방과 율법의 속박에서의 해방, 불안과 염려, 고통에서의 해방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본문은 특히 '내가' 란 말이 강조되어 있다. 즉 인간에게 무거운 짐을 맡겼던 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예수께서는 친히 권위에 찬 초청에 걸맞게 절대적인 안식을 약속하셨던 것이다.
[창 3: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고통 - '아찹'새기다, 각성시키다에서 온 말로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해산의 고통을 더하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일러준다. 즉 (1)그 같은 고통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범죄가 얼마나 치욕스럽고도 중대차한 것이었는지를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2) 인간이 범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겪으시는 심적 고통 역시 여인이 겪는 해산 고통에 비견할 만한 것임을 주지 시키기 위함이다.
수고하고 - '슬픔 가운데', '고통 중에'란 뜻. 해산 때 당하는 고통이 너무나 크고 힘들 것임을 시사해 주는 말이다. 사모하고 - '슈크'을 쫓다, 원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의뢰하다', '기대다'란 뜻. 그러나 이것은 여자가 남자에게 종속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내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자기 남편의 권위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 준다는 뜻이다.
[딤전 4:10]"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 바울은 앞에서 인용한 말씀, 즉 경건이 주는 유익과 약속은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여러 동역자들의 노력의 근거라는 말로 위로하고 있다. 복음 때문에 현재 고통받고 있는 신자들은 그들의 양심 가운데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교제가 있고, 장차 즐겁고 복된 날을 소망하기 때문에 고통을 이길 수 있다. '수고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 '코피오멘'는 '힘을 다하여 열심히 일하다'의 뜻을 가진다.
또한 '진력하는'의 헬라어 동사 '아고니조메다'는 운동 경기에서 이기기 위하여최선을 다하여 싸울 때 사용되는 말이다. 바울이 이 단어들을 사용한 것은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모든 수고와 고생을 참아냈던 것처럼 어떠한 어려움과 박해도 감내(堪耐)하라는 권고의 의미이다.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 이는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수고하고 진력한 이유이다.
경건은 현재를 살아가는 삶뿐만 아니라 장차 영원한 삶을 확실히 보장하는 하나님의 약속이므로 현재의 고난을 견뎌낼 수 있다. 특히 자신이 하나님과 교리를 위하여 힘을 다한 수고가 썩어져 없어질 이 땅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결코 흔들림이 없이 자신이 맡은 책임을 위하여 수고하고 진력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을 때, 그 고난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더욱 깊게 하기 때문에 진정한 감사의 조건이 된다.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 본절에 나타난 사상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구주라고 불리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지키시고 보살펴주신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람들의 구주가 되신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바울은 '믿는 자들의'라는 문구를 첨가함으로써 그 의미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 의지는 차별적으로 임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구원의 의지를 믿고 받아들이는 자들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완고한 불신앙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시 38:4]"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무거운 짐 같으니 - 죄 및 죄책에 대한 또 다른 적절한 묘사이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의 가인도 이와 유사하게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창 4:13)라고 자신의 죄책을 언급한 바 있다
[창 4:13]"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고하되 아마르 -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는 것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다'와는 달리, 명령을 하달하거나자신의 의사를 개진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가인이 자신의 죄에 대해선 회개치 않고 단지 형벌이 중한 것에 대해서만 절망, 탄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죄벌아온- '아와'구부리다, 사곡되이 행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본래는 '죄', '악', '불법'을 뜻하나
이차적으로는 본절에서와 같이 죄에 대한 '징계', '형벌', '심판'을 뜻하기도 한다. 견딜 수 없나이다- 기본 어근은 '나사'받아들이다, 감당하다, 열망하다. 능력과 인내 면에서 역부족이라는 뜻이 아니고 부과된 형벌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범죄하고서도 하나님께 반문했던 가인의 뻔뻔스러움을 회상시켜 주는 구절이다.
하나님 앞에 범과한 인간은 자신에게 미칠 형벌에 대해 염려하거나 어떻게든 이를 면해 보려 발버등쳐서는 안되며 마땅히 자신의 죄에 대해 애통하며 괴로워해야 한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선 우리를 긍휼이 여기사 비록 진홍같이 붉은 죄라도 양털같이 희게 씻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