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19학생혁명의 도화선인 3 15부정선거 날, 모임 장소에는 회원 7명이 참석하였습니다.
9시 10분쯤 광주를 출발하여 전주로 향하였습니다. 중간에서 한 번 쉬고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한 것이 10시 반쯤 지난 뒤였습니다. 한옥마을의 남북을 가로 지르는 태조로(太祖路)의 서쪽에 있는 경기전(慶基殿) 앞 주차장에 차를 두고 경기전 외신문(外神門)과 내신문(內神門)을 통해 정자(丁字)모양을 갖춘 정전(正殿, 眞殿)으로 들어갔습니다. 정전(正殿, 眞殿)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경기전의 서쪽에 있는 부속건물(御井, 東齋, 西齋, 祭器庫, 慶德軒, 馬廳 등) 을 구경하고 나왔습니다. 다음에는 경기전 오른쪽에 있는 전주사고(全州史庫)를 보고 나왔습니다. 그 뒤쪽에는 조경묘(肇慶廟)가 있었습니다. 조경묘는 태조 이성계의 21대조인 이한(李翰, 전주이씨 始祖) 내외 양위를 모신 사당이 이었고, 그 왼쪽에 있는 어진박물관(御眞博物館)에는 태조 세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의 어진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경기전 동쪽에 있는 전동성당(殿洞聖堂,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처형당한 장소에 1907년부터 1914년에 걸쳐 세워진 신앙의 요람)을 보고나서 한옥마을의 북쪽 끝 조금 높은 산 위에 자리 잡은 오목대(梧木臺,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발호하던 왜구 아지발도阿只拔道 무리를 정벌하고 승전고를 울리며 개선하여 개경으로 돌아갈 때 전주의 이곳에서 야연野宴을 베풀었다는 곳)에서 전주 한옥마을을 둘러 보았습니다. 거기서 내려와 한옥마을 이골목 저골목을 거닐다가 마침 배꼽시계가 맡은 후각을 간지럽히는 너무 향기로운 냄새에 끌리어 ‘교동떡갈비’식당으로로 들어갔습니다. 약 2시간을 터덕거리며 걸었던 지라 얼마나 갈증이 심했던지 맥주가 콸콸콸 목구멍으로 넘어갔습니다. 떡갈비 점심특선(12,000원)도 맛의 고장 전주를 대변할만 하였습니다.
정오가 넘으니 기온이 부쩍 올라 겉옷이 부담스럽기까지 하였습니다. 부채문화관와 혼불 작가 최명희기념관을 둘러본 다음 한옥마을의 남쪽 끝에 있는 풍남문(豐南門, 원래 전주부성의 4대문 가운데 남문으로 고려 공양왕 원년인 서기 1389년에 전라관찰사 최유경이 전주부성과 함께 창건하였다가 영조 43년에 당시 성내를 휩쓴 대화로 불타버려 영조 44년 전라관찰사 홍낙인이 중건했지만 종전처럼 3층루가 아닌 현 모습으로 수축하여 이때부터 풍남문이라 불렀으며 1905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廢城令에 의해 전주부성 4대문 중 다 철거되고 풍남문만 남는 수난을 겪었음)을 보고 전주를 떠나왔습니다.
자세한 한옥마을 정보는 따로 탑재하였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