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평가
즐거운 하루였다. 하지만 한국 서예의 앞날을 생각하면서
이번 비엔날레에 나온 현 한국서단의 작품들을 떠올리면 미술을 전공한 나에겐
상대적으로 한국 서예에 대해 다소 어두운 마음이 드는 것을 지울 수 없다.
'아주 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서는 수준이 너무 낮다'
보통 예술의 다른 쟝르에서 이 정도의 큰 전시일 경우,
소수의 작품들이 기대 이하일 뿐 대다수의 작품은 상당 수준이라서
전체 작품 수준의 전문성이 비엔날레의 명칭에 걸맞게 된다.
그런데 서예에선 기대작은 극소수고
대다수가 기대이하이니 상황이 정반대이다.
또한 보통 다른 쟝르에서 이 정도 규모의 전시작품들이라면
전문가와 아마추어은 너무나 명확하게 그 차이가 현격해서
개개 작품은 누가 보더라도 아마추어 솜씨인지 전문가 솜씨인지 구분이 쉽게 된다.
미술작품을 예로 들면,
전문가들의 기술 수준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아마추어들은 도저히 따라할 수 없다.
그런데 서예에 오면 이게 안통한다.
수십년했다는 전문가들인데도
아마추어와 그 차이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가 종종 나타난다.
'서예가 원체 어려운 것이라서 평생을 해도 속기를 못벗는다' ???
(다른 예술 쟝르도 재능이 없으면 마찬가지이며,
더 중요한 것은 재능이 없으면 도태되거나
아니면 조용히 애호가로 돌아가서 스스로의 주제파악을 한다)
다시 말해서 '이게 과연 전문가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이 상황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전문가들의 자질 미달!!
서예계의 현실!!
'너무나 수준 이하이고 자질미달인 자들이 많이 전문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전문가들이라고 하나
그 수준이 아마추어들과 대차 없는 자들이 너무 자주 눈에 띄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더욱 꼴불견은 무엇인가하면...
'전문가는 자기 수준을 깨닫지 못하며
일반인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서로가 우매하게 서로를 대한다'
물론 미술계에서도 말도 안되는 3류들이
일반인들 앞에서는 1류인 양 폼 잡으며 뻥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전문가이자 권위의 대명사인
현대갤러리나 가나 아트 또는 최민 같은 권위 앞에서
그들 3류들이 절대로 얼굴을 함부로 들이밀지는 못하는 법이다.
그런데 오늘날 서예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3류든 4류든 5류든
백악미술관에서도 서예박물관에서도
누구나 전시를 한다.
아무나 서예잡지에 전문가처럼 광고한다.
잡지사에 웃돈만 주면 얼마든지
대서특필되어서 전문가인 양 거짓행세할 수 있다.
왜 이런 것이 가능한가?
1류가 아니면 발도 못들여놓는
그런 '권위있는 시금석'이 서예계에는 없기 때문에!!
이들 화랑도 잡지사도 '전문성없는 아마추어들의 전문가 행세'를 거부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이번 비엔날레 본전시 작품 중에는
다른 쟝르에서의 동급 전시 격과 수준에 비해 보자면
너무나 수준 차이가 나는 작품들,
도저히 정상급 전문수준이라고 보기는 힘든 작품들이
한 7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런데도 무지한 일반인들은
이들 수준 이하 작품들이
진짜 대단한 서예의 화신들인 양 여기며
때로는 한통속으로 거짓 찬탄 시늉을 연출한다.
(이 경우는 뻔히 알고 있지만 '다 그렇고 그런 거지'하는 경우이다)
정말 무엇인가 '흠~!' 또는 '아~!'하는 작품은 너무나 없다.
전문가로서의 예술적 미학적 철학적 사상적 고뇌가 너무 없다.
'이유는 자질미달이고 수준이하의 많은 인재들이 서예 전문가로 자처한다는 것'...
(소위 '서예공모전'이라는 어리석은 장치와 게으른 서예선생들의 자업자득임을...)
슬프지만 현실이다!
이러니 다른 예술쟝르(특히 미술)의 정상급 엘리트 전시의
수준과 격을 잘 아는 우리 동료들 입에서
한국 서예계(나아가 세계 서예)의 앞날을 우려하는 탄식이 흘러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자질미달 수준이하'인 주제에
현 서단의 저열한 시스템을 이용해서
전문가인 양 행세하는 자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이러한 서단의 저열한 시스템을 이용해서
기득권과 밥그릇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인류문명의 진수이자 인문예술의 최고형식인 서예가 아니라
이런 자들이 버티다 보니
서예계는 자질미달이고 수준이하인 자들의
밥벌이 장소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주제를 깨달아 그들이 혹세무민을 그만하고
불쌍한 일반인 수강생들을 그만 속이고
걍 애호가의 위치로 겸손히 물러나 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더욱 요원하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수준높은 전문가,
평생을 여일하게 노력해 온 전문가로 자처하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면 '대략난감'이다.
그렇지만 한가닥 희망이 있다면....
어차피 예술은 소수의 우수한 자들이 이끌어 온 것이고
이들이 높은 성취를 이룰 경우
그럴 경우에 다수의 아마추어들을 포함한 B급 작가군들은
저변으로서 그 역할을 또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나마 남아 있는 그나마 제대로 된
소수의 현 서단의 우수인재들이 더욱 각고분발하는 길 뿐일까?
그렇겠다는 생각이다.
좋은 행사, '성찰의 10년'이라는 모토를 다시 떠올려 본다.
무거운 마음을 가지지만
언제나 그렇듯~
'앗싸! 그래도 모든 것은 좋아진다~!'
서예도 점점 발전하고 좋아질 것이라고 믿으며 애써 밝은 마음을 가질려고 한다.
(석도륜 한면자 작품)
1. 일과
오전 7시 : 핸펀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세수하고 나갈 준비를 한다.
오전 7시 30분 : 버스를 탄다. 50분 뒤에 김포공항 송정역에 도착할 것이다.
오전 8시 15분 : 김포공항 송정역에 내린다. 이제 종로 3가 가는 지하철 5호선을 탄다. 40분 걸린다.
오전 9시 : 종로 3가 까지 오는 동안 하석 선생 작품집 을유집을 읽는다.
오전 9시 15분 : 종로 3가에서 3호선을 갈아타고 옥수역에 내려서 작비서상 까지 걸어간다. 가는 길에 원부 선배를 만났다. 작비서상 토요일 한문수업이 전주비엔날레 참관건으로 인해서 아침 7시로 앞당겨진 것을 원부 선배는 몰랐다. 삼은 선배로부터 이미 선생님과 한문반은 아침 수업을 끝내고 압구정동 선생님 연구실(석곡실)로 이동했으며 그곳에서 강남 고속터미널로 갈 것이니 터미널에서 합류하자는 소식을 듣는다.
오전 9시 40분 : 원부 선배와 나, 둘이 강남 고속터미널에 도착, 선생님 일행을 기다리며, 내년 석풍 08 예당 전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후 삼은 선배로부터 전화가 와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으니 오라는 식당으로 간다. 하석 선생님을 비롯해서 항백, 지언, 양우, 삼은, 규보가 와 있다. 여기에 우리 둘이 합류하니 모두 8명. 가볍게 국수로 아침들을 하고 전주행 승차구로 가서 10시 30분 전주행 버스를 기다린다. 산하와 장천, 합류해서 모두 10명.
오전 10시 30분 : 버스 출발. 규보와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석풍 08 및 이번 비엔날레 규보작품에 관해서)
오전 12시 50분경 : 탄천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 커피 한잔씩~
오전 1시 30분 : 전주 고속터미널 도착. 나누어서 택시를 타고 비엔날레 개막식이 있는 [소리문화의 전당]으로 이동한다.
오전 1시 40분경 : [소리문화전당]에 도착. 개막식장으로 이동. 많은 서예가와 관계자들로 붐비다. 컨퍼런스룸에서 개막식 시작하다. 심석 김병기 교수 사회로 비엔날레 공모전 시상 및 각종 축사 그리고 폐회하고 전시장 관람하러 모두 이동. 약 200 여명의 관객들이 온 것으로 보인다. 입구에서 이번 비엔날레 대상작가가 된 둔석 양성주 작가를 만나 진심으로 축하인사를 건넸다.
역시 반가운 것은 아는 분들, 특히 3문 선배들이다. 광주 연우회(학정 이돈흥)의 석계 장주현, 아정 이월희, 중허 홍동의, 동우 최돈상, 예송 강덕원, 동촌 심응섭, 신산 김성덕. 서울 근묵서학회(소헌 정도준)의 소운 박병옥, 이란 이진선, 여천 정명숙, 삼현 김진희, 유제 임종현, 우현 이재무, 이촌 김재봉, 남경 김현선, 우봉 이정철. 겸수회(하석 박원규)에서도 우리들 7명 이외에도 삼여 송용근, 박여 김진희, 중하 김두경과 전주 학생분들, 효산 손창락, 완석 정대병과 하동 학생분들, 고산 김용환, 탄주 고범도.
그 외에도 여기저기서 나를 알아보시고 인사를 해오시는 분들이 너무 많다. 나는 반대로 그분들 중 상당수를 몰라 뵈어서 쩔쩔매고 죄송스럽기만 하다. 겸수회 창립전, 규보-산하 개인전, 하석 선생님 주갑전 등등에 오셨던 서예인들은 대부분 나를 기억하시는 것이다. 이유는 내 독특한 머리 스타일 덕에 게다가 서단에서도 다들 알아주는 3문 선배들이 나를 너무나 반겨주시니, 다른 서예인들이 보면 내가 어딘가 별난 녀석인 듯이 보이는 게 아닐까? 쩝~~~
나에겐 개인적으로 오늘 개막식 관람의 하일라이트는 올해 91살(1917년 생)로 우리 서단의 최고 원로이신 한면자 석도륜 선생님을 뵙게 된 것이다. 하석 선생님의 소개로, 한면자 선생님께 인사 드렸다. 안 그래도 내려 오면서 항백, 지언, 양우 형들과 한면자 선생님에 대해서 화제를 삼았던 차라 기쁘기 그지 없다. 한면자 선생님 출품작 앞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하석 선생님, 항백 선배, 지언형 그리고 나. 이렇게 사진촬영까지 했다.
본전시장을 가득 메운 인파들 속에서 차근차근 한점한점 한국 그리고 기타 외국 작품들까지 샅샅이 감상한다. 항백, 양우, 중하, 박여, 지언 선배 등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기탄없이 나눈다. '한국 서예의 척박함과 열악함'이 당연 화두다. 이래저래 3시가 넘어간다.
하석 선생님께서는 번잡하고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신다. 같이 내려온 우리 일행들이 점심식사를 걸르신 걸 아시니 '다들 모여서 식사하러 가자'고 먼저 앞장 서신다. 그러다 형제같은 정을 나누시는 학정, 소헌 두분 선생님을 챙기시느라 전시장을 또 한바퀴 도시고 이래저래 겸수회원들과 학정, 소헌 선생님과 여제자분들이랑 같이 [전당] 건너편 비빔밥 전문집 [비빔소리]로 간다. 그곳으로 연우회와 근묵서학회 학생분들도 추가로 오시고, 또 일부 3문의 문하생들과 기타 전시장의 젊은 작가들 많은 수는 '청년서예전'이 열리는 [전북문예회관]으로 간다.
오전 4시경 : 식당 [비빔소리]에서 3문 문하생들이 3분 스승을 모시고 식사와 막걸리를 즐긴다. 소헌 선생님의 좌중을 압도하는 술실력과 유머로 웃음 속에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고 이미 5시 45분경 다들 일어나 저녁 만찬장인 코어 호텔로 이동한다.
오전 6시 20분경 : 만찬장인 코어호텔에 도착한다. 만찬장은 이미 만원. 남아서 같이 자리를 하라는 선생님 이하 여러 분들의 만류를 고사하고 양우, 항백, 지언 그리고 나. 4명은 서울행을 선택한다.
오후 7시 10분 : 전주 고속터미널에서 서울행 고속버스 탄다.
오후 9시 50분 : 강남 고속터미널 도착. 다시 지하철 7호선으로 대림역 그곳에서 2호선 타고 당산역 그곳에서 버스로 하성에 들어오니 밤 12시 10분이다.
수군작
2007.10.6
첫댓글 예리하신 전시 탐방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어제가서 작품들 잘 감상하고 왔습니다.
아...가보지 못해 너무 아쉽군요...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아직 공부를 하고 있는 입장이긴 하지만, 정말 공감되는 평가네요...대학에서 전공을 하긴 했지만, 스스로의 앞날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특히 '주제를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 가장 눈에 띄네요...글,,가슴에 새기고 갑니다..
예원,먹으로/ 고맙습니다. 늦게 답글들 읽었습니다. 그리고 먹으로님... 송구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