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마라톤은 그냥 거리가 길다고만 생각하고, 먹고 마시면서 뛰다가 걷다가 보면 완주하리라 생각했다.
올해 가기전에 한번은 참가하리라 생각했지만 이동거리나 대회일을 조회해보니 나에게 맞는 것이 7to7울트라였다. 거리가 가까운 천진암 울트라도 원주가는 날짜와 겹쳤기에 내년을 기약해야 했다.
보통의 대회가 거리를 정해놓고 달리지만, 7to7은 저녁7시부터 아침7시까지 시간을 정해놓고 달리는 보기드문 대회이다. 12시간안에 50키로를 달리던 120키로를 달리던 그것은 개인능력이다. 물론 6시간주도 있지만 풀과 큰차이가 없는것 같다. 그리고 10키로 같은 코스를 순환하면서 기록칩까지 제공되는 10번째 대회를 치루는 저력이 있는것 같다.
대회접수는 몇개월전에 입금 안하고 일찍 했었지만, 대회 일주일전 과음과 수면부족으로 그만둘까 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입금을 했다.
대회당일 다른때와 똑같이 가방을 챙겨들고 새벽이 아닌 오후에 집을 나섰다. 혼자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다. 기흥역이 새로 개통되어 거기까지 버스로 이동 전철에 올랐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어디 가는지 내 복장에 관심이 없으며 나도 관심이 없다. 오늘밤 12시간을 버틸 수 있을지에만 홀로 초조해 있는것 같다. 갈아타는것 없이 바로 개포동역에 도착하니 나와 비슷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 자체가 반갑다. 누구에게 말이라도 걸고 싶다.
명단 확인을 하고 바람막이 기념품과 사우나 입욕권을 받았다. 달리기 복장으로 갈아입고 분위기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폰사진도 한장찍고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면서 다른 사람들 얘기를 엿듣기도 했다. 비가 한두방울 내리고 있지만 영동5교 밑이라 공간도 넓고 마라톤아지트로 충분했다. 교각에는 강남마라톤클럽이라고 멋지게 표시되어 있다. 수지마라톤 모자가 보이길래 배번호를 보니 이세휘라는 분이다. 작년 기록을 유심히 보았기에 2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인사를 건네면서 여러가지를 여쭤보았다. 마라톤경력 2년반만에 서브쓰리 하고 올해 울트라 5번째란다. 구성에서 정형외과 원장으로 계시며 인근 마라톤클럽에서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우리도 달리다가 부상으로 궁금한 것이 많은데 전화드리거나 찾아뵙겠다고 했다. 옆으로 나이가 좀 들어보이고 빨간 옷을 입으신 분이 지나가길래 배번호를 보니 박복진이라는 분이다. 전에 이분과 관련한 기사와 홈피에서 대회축하글 올리신 것을 보았기에 혹시 울트라회장님 아니냐고 인사드리니 너무 반가워 하신다. 초면에 이름을 기억하고 먼저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명함까지 주시면서 12바퀴 완주하면 많은 지원이 된다고 격려를 하시는데 나는 울트라 처음이라고 하였다. 국제울트라협회 아시아 회장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한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당선 되었으며, faab라는 울트라마라톤화를 개발하여 저가에 보급하고, 울트라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현재 61세의 대단한 분이시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드디어 출발선에 섰다. 울트라는 페이스메이커가 없기에 이세휘님을 따라가려고 했는데 안보인다. 그냥 1시간에 1바퀴 돌아보자고 생각하고 징소리와 함께 출발했다. 여기서 1바퀴는 10키로인데 하천을 가운데 두고 다리를 건너면서 계속 같은 코스를 순환하는 것이다. 출발지가 본부이고 골인지점이면서 급수/급식/공연/휴식/의료 등이 지원되고, 6키로정도의 지점에서는 급수와 간식이 제공되면서 반환점이 되었다. 250명 정도가 출발한것 같은데 앞을 다투어 달리지 않으니 혼잡하지는 않다. 산책과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도 많았고, 이런 도심 고층건물 사이 하천에서 나무와 풀내음을 느낀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이다. 3키로정도 지나니 옆에 이세휘님이 붙으셨다. 이정도 페이스라면 제가 따라가 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첫번째 급수에서 뛰면서 물을 마신다. 내가 멈춰서 두잔을 먹고 따라붙어 끝까지 이렇게 급수를 하냐고 했더니 나중에 급식때 시간이 지체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1바퀴(10키로) 52분24초
생각보다 빠르다. 급수를 하고 바로 출발했다. 간식은 2바퀴부터 나온다고 한다. 이세휘님을 계속 따라가면서 좀 빠르지 않냐고 했더니 그런것 같다면서 조금 늦추신다.
2바퀴(20키로) 54분12초(1시간46분)
골인할때마다 카메라 후레쉬가 터지고 박수를 치면서 힘내라고 응원들을 하신다. 바나나와 초코파이, 콜라가 나온다.
3바퀴(30키로) 58분21초(2시간44분)
이세휘님에게 4바퀴까지는 따라가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이정도면 뛸만 한것 같다. 칩을 달고 뛰기에 골인할때마다 전광판에 배번호와 성명, 랩타임까지 실시간으로 나온다.
4바퀴(40키로) 58분04초(3시간43분)
이세휘님이 안보인다. 습도가 너무 높고 지친다고 하시면서 작년에 어떻게 뛰어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최종기록이 없는것으로 보아 4바퀴에서 포기하신듯...그래서 혼자 출발했다. 누구를 따라갈지 모르기에 그냥 기분대로 달렸다.
5바퀴(50키로) 1시간7분13초(4시간50분)
풀 이상의 거리를 달려서 그런지 페이스가 조금 떨어진듯...국제울트라 회장님이 혼자 천천히 달리고 계신다. 12시간 채우시냐고 했더니 그냥 갈때까지 간다는 것이다. 최종기록을 보니 8바퀴 완주하셨다.
6바퀴(60키로) 1시간21분37초(6시간11분)
주로에 달리는 사람들이 확 줄었다. 본부에서 먹고 쉬는 분들이 더 많은듯... 지친 나의 모습을 보고 어떤 분이 누워보라고 한다. 집사람 응원을 나왔는데 수사마 주치의가 하는 것을 본후 집사람에게 해줬더니 몸이 회복되는것 같다는 것이다. 갈길이 바쁘다고 했더니 그러다 쓰러진다면서 20분정도 안마를 해주신다. 대회측 봉사자도 아니신데 고마우면서 쉴 수 있는 시간이였다.
7바퀴(70키로) 1시간15분41초(7시간27분)
주로에서는 한참을 가야지 사람을 만난다. 그것도 뛰는 사람보다 걷는 사람이 더 많은듯...
8바퀴(80키로) 1시간21분49초(8시간49분)
출발점과 반환점에서 급수/급식을 하면서 쉬고 걷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그래도 중간에 걷지 않겠다는 생각이 살아있다.
사람이 뜸하니 주로에서 너구리를 두번이나 보았다. 전에 어떤 TV프로에서 양재천 너구리를 찍으려고 밤새 잠복하는것을 본적이 있는데...
9바퀴(90키로) 1시간25분28초(10시간14분)
포기하고 싶었지만 9바퀴를 돌면 10바퀴는 어떻게든 들어올것 같기에 힘을 냈다. 뛰고는 있지만 앞에 걸어가고 있는 사람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새벽에 산책나온 사람들도 점점 늘어난다.
10바퀴(100키로) 1시간12분(11시간25분)
겨드랑이가 쓸리고 발바닥이 아픈것은 참는다고 하지만 속이 울렁거려 토할 것 같다. 골인해서 물한잔도 마시기 힘들 정도다. 제공해 주는 아침식사도 못하고 짐을 챙겨 사우나로 향했다. 힘이 없어 샤워만하고 3시간정도 잠을 잤다. 일어나니 근육피로는 좀 풀린것 같은데 전철과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도 속이 계속 좋지 않다. 집에 도착하니 집사람과 애들은 다른때와 별다른 모습이 아니다. 잘 뛰었냐는 물음에 그냥 응이라 대답하고 안들어가는 점심을 조금 먹고 쉬었다. 어제 큰아들 생일을 못챙겨준 죄로 고기에 칼국수에 팥빙수까지 풀서비스를 하고 저녁에는 종령형님을 만나 가볍게 몸을 풀었다.
12시간이라는 긴여정을 보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달릴때 다시는 울트라 안하리라 다짐했건만 벌써 다음이 기다려진다.
배번 성명(9위) 5바퀴 6바퀴 7바퀴 8바퀴 9바퀴 10바퀴
주먹밥도 맛있게 주시고...
서울 도심속에서 울트라가 10회째라니...
12바퀴째를 1시간3분에...9바퀴째를 3시간39분에 들어오신분은 주무신듯...
밤을 지샌 양재천은 평화롭고 깨끗하다.
자원봉사자 분들은 계속 준비하고 정리하고...
첫댓글 정말 대단하십니다
말로만 듣던 7to7
한번 뛰어보고 싶네요~
대회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매년마다 참가하고 싶습니다.
잘 하셨네요....
저도 내년에는 서울대회 참석을 해 보고 싶네요..
마치고 도다시 울트라를 생각 하시는건 저와 같습니다...그것이 울트라 매력 같습니다..
자유님의 조언과 충고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빠른 시일내에 뵙고 싶네요
풀코스도 힘든데... 너무 부럽습니다 저도 더 나이가 들기전에 한번 도전하고 싶은데.. 너무 감동 입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더 많고, 더 잘 달리시던데요
수고하셨고 대단하십니다....
강남에서 하는 그 대회는 제가 그날은 스트레칭도 하고 임원으로 같이 있어야 했는데 광주에서 행사가 있어서 부득불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박복진님을 사진으로나마 모처럼 뵙네요....하하하..
광화문에서 함께 몇년을 동고동락한게 어제 같은데 어느덧 십수년이 흘러 버렸습니다..
사진으로 봐도 대회의 모습이 훤히 보이는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식순에 감독님 성함을 보고 저도 뵙기를 기대했었는데...그래서 바뀌었군요?
멋지게 긴 여정을 마치신 윤또꽝님 축하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가로수님도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이경화님은 얼굴을 알기에 가끔 인사를 드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