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는 두 가지 전적(典籍)이 있다. 하나는 이순신 장군(1545-
1598)이 임진왜란 당시에 친필로 진중에서 7년간에 걸쳐 붓으로 쓴 초서체의 일기본(7책 205
장)이며 국보 제 76호로 지정되어 아산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다.다른 하나는 이충무공전서
(李忠武公全書)에 실려 있는 것인데 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이순신은 자신의 일기를
두고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난중일기>란 이름은 이순신이 전사한 후, 198년이 지난 1798년
(정조19년)에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면서 편찬자의 편의상 이름이 붙여진 데에서 연유한
다.
** 필사즉생 필생즉사 (必死則生 必生則死) -이충무공 전서
선조 30년 서기 1597년(53세)
-이충무공전서 9월15일[계묘/10월25일]의 일기 -
맑다. 수(數)가 적은 수군으로써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다. 그래서 진을 우수영 앞바다로 옮
겼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면서 이르되, "병법에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
면 죽는다 (死則必生 生則必死 사즉필생 생즉필사)라고 했으며,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
람이라도 두렵게 한다'고 했음은 지금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살려는 생각은
하지 마라.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면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다"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 이날 밤
신인이 꿈에 나타나,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일러 주었다.
명량해전(울돌목 싸움)은 이순신의 해전 가운데 가장 눈물겹고 감동적인 전투이다. 사실 이순신
은 일본과 23번 싸워서 23번을 모두 이긴 세계 해전사에 유례가 없는 전승의 영웅이었다. 조선 수군
이 사실상 궤멸된 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수군을 동원해 일본 수군 대함대에 맞서 기적 같은 승리를
쟁취했기 때문이다. 당시 명량해전 직전까지 이순신이 동원할 수 있었던 배는 군함 13척과 초탐선
32척뿐이었다. 초탐선은 첩보선으로 활용할 수는 있었으나 승선 인원이 적고 무장력도 약해 실제 해
전을 수행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에 반해 칠천량에서 승리한 일본 수군은 최소 133척 이상의 군
함으로 이뤄져 있었다. 일본 군함의 수는 <이충무공전서> ‘행록’에는 333척, <징비록>에는 200여
척, <명량대첩비>에는 500여척, <난중일기>에는 133척으로 기록돼 있다. 이러한 군함 수의 차이는
울돌목 포구가 좁아서 싸움에 직접 참가한 일본 군함과 후방의 넓은 바다에서 전투 결과를 지켜보던
일본 군함이 분리돼 있었던 데서 생겨났다.
**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則生 幸生則死)
<주>오자병법(吳子兵法)은 손자병법과 함께 중국의 양대 병법서로 꼽힌다. 오자병법의 지은이인 오
기(吳起)는 76번을 싸워서 64번을 이기고 12번의 무승부를 기록한 전쟁의 천재로 알려져 있다. 오자
병법은 손자병법에 비해 훨씬 직설적으로 승리의 전략을 풀어낸다. 吳子曰(오자왈):「.....必死則
生(필사즉생),幸生則死(행생즉사)....」즉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요, 요행히 살려고 하면 죽
을 것이오.. 라는 것인데 이순신 장군이 남긴 “필사즉생 필생즉사 (必死則生 必生則死)도 바로 오
자병법에서 비롯됐다.
** 성경(마태복음)에도 필생즉사 필사즉생 (必生卽死 必死卽生)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산다” 는 뜻으로 성경(聖經)에서 예수도 이런 내용의 말을 하
였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
람은 찾을 것이다.(For whoever wishes to sa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will find it)˝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마태복음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