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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키워드로 보는 2021년 한국 정치 전망
정용일 (사)평화철도 사무처장
#1 뒤숭숭한 밑바닥 민심
그렇지 않아도 뒤숭숭한 민심이다. 코로나19 대책부터 민생, 검찰개혁, 남북관계, 노동관련 법안 처리 등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그런데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기는커녕 신년 벽두부터 민심을 더 뒤숭숭하게 만드는 일만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해 첫 일정으로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을 찾았다. 공군지휘통제기인 E-737을 타고 한반도의 하늘과 땅, 바다의 대비태세를 점검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강한 안보 없이는 평화도 없다는 판단에 따른 행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여론은 한마디로 “뜬금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민생경제가 파탄 직전에 몰려있고, 전 세계가 코로나19를 가장 긴급하고 절박한 전선(戰線)으로 삼아 싸우고 있다. 민심은 묻는다. 도대체 누구를 대상으로 한 안보이고, 무엇을 위한 평화인가.
한편, 같은 날 현충원을 찾은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기자들에게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들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소식이 보도되자 민심은 그야말로 벌집을 쑤셔놓은 형국이 됐다. “피해자인 국민들, 촛불시민들은 떡 줄 생각도 없는데 무슨 자격으로 김칫국부터 마시면서 사면 운운하는가!”하는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낙연 대표가 ‘사면 건의’를 언급한 배경에 대해서도 온갖 ‘썰’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 대표가 보수층을 끌어들여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각을 세우기 위해서라는 ‘썰’부터 이 대표의 성격상 청와대와의 사전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썰’까지. 심지어는 이명박·박근혜 두 씨를 석방시킴으로써 수구야당세력들을 친박과 비박, 친이와 반이로 갈라져 싸우게 만들고 어부지리를 얻기 위해서라는 ‘썰’도 있다.
의도야 어찌됐든 지금까지 ‘사면 건의’에 대해 환영을 표명한 곳은 친박정당인 우리공화당과 국힘당 하태경 의원 정도이고, 김종인 비대위원장이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의혹에 찬 시선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더 문제는 촛불시민들의 여론 분열이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사면’을 단행한다면 소위 친문, ‘대깨문’세력이야 무조건 찬성하겠지만, 문재인 정부를 향해 “촛불정신을 잊지 말라!”고 외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꼴 보자고 그 추운 겨울날 촛불을 들었던가!’하며 허탈과 배신감에 피눈물을 흘릴 것이다. 얻을 것이란 없고 잃을 것만 많은 이런 하수 중의 하수가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뿌리도 철학도 없는 행보가 그들이 원하는 ‘정권재창출’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민심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새해를 맞아 YTN이 리얼미터에 의뢰한 국정수행지지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긍정이 34.1%, 부정이 61.7%로 나왔다. 여론조사기관의 신뢰도 자체에 문제가 많고, 조사기관마다 결과가 현격하게 다른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를 절대화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긍정과 부정의 격차가 26.7%p로 벌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민심의 이반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반증으로 봐야 한다.
어느 대학교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오만과 불통, 무능이라는 측면에서 박근혜 정권과의 싱크로율이 80~90%에 이른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다만 노무현 정부 때의 학습효과, 다시 말해서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다가 국힘당 따위에게 다시 정권을 넘겨주면 어떻게 하나!”하는 우려 때문에 날선 비판을 자제하고 있을 뿐. 그러나 언제까지 민심이 자제력을 발휘할 지는 알 수 없다. 앞서 말한 대학교수는 이렇게 한탄한다.
“이런 정권, 재창출하면 뭐합니까!”
문 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2 코로나19
2020년 한 해는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블랙홀이었다. 무엇보다 서민들의 생계가 벼랑 끝에 몰려있다. 언제 임계점에 도달할지, 어떻게 폭발할지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아이들에서부터 나이 많은 노년층까지 위기는 연령과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소상인들, 문화예술계 종사자들, 여행업계 등이 특히 어렵다. 정부에서는 이들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최대한 빨리 지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언발에 오줌누기’식 미봉책일 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걸로는 가게 임대료도 못 내요. 차라리 3단계로 격상시켜 확실하게 잡든지…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버텨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느 소상인의 볼멘소리다. 전 세계적인 모범이라던 K-방역도 철 지난 유행가가 되어 버렸다. 현재 매일 천 명을 오르내리는 확진자 숫자는 인구 비례로 따지면 결코 낮은 비율이 아니다. 초기 종교단체로부터 확산된 것과는 달리 지금은 요양시설, 특히 교정시절에서 집단적으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당국의 안일한 대처 때문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감염원을 알 수 없는 확진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주한미군은 우리 방역체계의 감시·통제에서 벗어나 있다. 휴가차 미국 본토로 갔다 온 병사들, 신규로 한국에 배치된 미군들은 오산미공군기지를 통해 들어온다. 자체적으로 검사는 하는지, 자가격리는 하는지, 확진자의 경우 어떤 식으로 치료를 하는지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런 자들이 주말이 되면 이태원과 홍대 앞 클럽으로 쏟아진다. 나라의 방역주권, 방역전선을 무력화 하는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서 K-방역의 성과를 자랑할 수 있겠는가.
정부 당국은 그동안 여론의 눈치만 보면서 주머니 안에서 만지작거리던 의사국가고시 거부자 재시험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 블로거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 빗대 이렇게 탄식한다. “과연 기회는 평등합니까? 과정은 공정합니까? 결과는 정의롭습니까?”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잡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법도, 질서도 무시한 몽니집단에게 면죄부를 준다면, 코로나19 때문에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도 양보하고 희생을 감내했던 수많은 청년들, 국민들은 뭐가 되는가. 이런 줏대 없는 조치야말로 특권 집단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보통 사람들의 사다리는 걷어차는 전형적인 ‘배신의 정치’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국민들이 정부의 정책을 믿고 수용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스스로 신뢰를 걷어차고 있다.
#3 ‘서울·부산시장 재보선’
4월에는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이 예정되어 있다. 서울과 부산이라는 도시의 규모로 보나 상징성으로 보나 이번 재보선의 비중은 막강하다. ‘미니 대선’ 혹은 ‘대선 전초전’으로 불리는 이유다. 서울·부산시장의 역할과 영향력도 막강하거니와 내년에 치러질 대선의 시금석이라는 점에는 여야 모두 전력투구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지금까지 민주당에서는 원내대표를 지낸 4선의 우상호 의원이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졌고, 박주민 의원과 박영선 장관을 비롯한 여성 의원들도 출마를 저울질 하고 있다. 야당은 안철수 대표가 일치감치 선수를 쳤고, 자신으로의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오세훈 전 시장, 나경원 의원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으나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선거야 어차피 후보놀음이니 누가 출마하느냐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지만 여야를 불문하고 박원순 전 시장을 능가하는 후보도 찾기 어렵고, 지친 민심을 다독일 정책도 잘 보이지 않는다. 객관적 판세만 놓고 보자면 여권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현재 밑바닥 민심을 보아도 그렇고, 각종 민생 현안에 대한 정부여당의 대응을 봐도 그렇고 서울·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길 수 있는 요인은 찾기가 어렵다. 게다가 야당이 ‘미투’ 문제를 선거 이슈로 전면화 할 경우 민주당 후보들은 박원순 전 시장의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물론 아직까지 박 전 시장의 과(過)와 죄(罪)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익히 경험했듯이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이나 ‘팩트’가 아니다. 여론몰이로 상대방을 공격해서 단 한 표라도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면 그만이다. 야권은 이번 재보선을 ‘미투 선거’로 가져갈 것이고, 승리를 위해서는 후보 단일화가 관건이다. 문제는 구심력을 상실한 집단들이 자신의 밥그릇을 포기하고 대의(?)에 헌신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는 점이다. 지지율 바닥을 헤매고 있는 여당이 일정한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다.
여당은 등 돌린 민심을 돌려세울 특단의 조치보다는 선거공학에만 몰입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검찰개혁,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위시한 전태일 3법, 코로나19 신속 대응, 민생경제 등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쌓지 않고서는 그 어떤 선거공학도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4.15총선 때와는 판 자체가 다르다. 그때는 사사건건 여당을 발목만 잡는 수구야당을 퇴출시키고 여당에게 개혁의 동력을 실어줬다면, 지금은 모든 조건을 다 마련해줬는데 그동안 도대체 뭘 했느냐는 게 민심이다.
우리도 할만큼 했다고 변명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어차피 모든 선거는 집권여당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이기도 하고, 솔직히 국민들 앞에 ‘이건 그래도 우리가 잘 했소’라고 내세울 일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할 일은 쌓이고 쌓였다. 알고도 하지 않는 것인지, 뭘 몰라서 못하는 것인지 유권자들은 알고 있다.
#4 검찰개혁
무소불위의 괴물이 되어버린 집단,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선출된 권력에게도 칼을 들이대는 특권집단. 우리 국민들이 지난 일 년 동안 지겹게 보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필두로 한 검찰의 망동은 총성 없는 쿠데타다. 이를 모르는 국민들은 없다. 그러나 검찰의 반란과 이를 제압하려는 법무부의 조치를 놓고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 따위로 몰아가는 언론의 왜곡된 시각도 문제이지만, 온통 국정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는 일개 행정부 공무원의 망동을 수수방관하고 있는 인사권자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압도적이다. 도대체 이 지경이 되도록 뭘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고, 주인을 무는 개는 두드려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가 내놓은 두 번째 검찰개혁 방안은 공수처법이다. 2019년에 통과된 공수처법에 대한 여론은 의외로 싸늘하다. 반대여론이 과반을 넘었다. 검찰개혁에 대해서는 대다수 국민들이 동의하면서 공수처법에는 부정적인 여론, 어떻게 된 것일까. 결국은 신뢰의 문제이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 반대라면?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니 어떤 정책이나 행보도 저의를 의심받는 것이다.
공수처는 어차피 양날의 칼이다. 야권이 주장하듯 “권부의 비리를 감싸는 보호막”이 될지, 아니면 무소불위의 칼날을 휘둘러왔던 고위공직자들을 제압할 “정의의 보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제도나 정책도 허점은 있게 마련이다. 결국은 운영의 묘를 살리는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는 여론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이것도 결국 신뢰의 문제로 귀결된다.
난산 끝에 태어난 공수처에 대한 시선도 곱지 못하다. 공수처장에 임명된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이 ‘김앤장’ 출신이기 때문이다. ‘갬앤장’이 어떤 곳인가. 대한민국 1%의 특권층을 위해서 그리고 돈만 된다면 외국기업 편에 서서 나라 재산도 팔아먹는 ‘법피아’ 집단이다. 국정원 기조실장을 하다가 대통령 민정수석으로 임명된 신현수 역시 ‘김앤장’ 출신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삼성이 정책을 좌지우지 하더니 문재인 정부에 와서는 ‘김앤장’ 손바닥 위에서 논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그들이 일반 국민들의 법 감정을 알기나 할까? 보건복지부 장관과 법무부 차관 인사도 온통 구설수다. 과연 국민들이 정부의 인사 정책을 신뢰할 수 있을까?
#5 노동권 관련 법안
지금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영하 20도의 추위를 무릎 쓰고 단신농성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 씨, 정의당 관계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통과다. 한국은 하루에 6~7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어나가는 가장 불량한 노동인권 불모국이 된 지 오래다. 당연히 오래 전부터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자 1위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법안 초안이 만들어졌지만 야권과 기업들의 반대로 사실상 ‘누더기’가 되어 버렸다. 산업재해의 범위와 처벌 수위가 대폭 낮아진 것. 그럼에도 경총은 “중대재해 사고의 원인은 복합적이고 기업으로서는 불가항력적인 부분도 있다. 모든 사고 책임을 일방적으로 기업·경영인·원청에게 귀속시키며 과중하게 짓누르는 입법 추진을 중단해 달라.”며 반발했고, 반대로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누더기 법안으로 정말 안전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보나. 정부안은 중대재해기업 ‘면제법’이다. 이 같은 정부안은 폐기돼야 마땅하다.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고 촉구하는 내용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온전하게 즉각 입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람 목숨 알기를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보다 못하게 여기는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같은 동포들의 인권을 논하고, 안보가 곧 평화라고 주장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0년 청년 노동자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불을 달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면서 장렬히 산화했다. 그런데 21세기 대명천지에 우리는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노동조합을 만들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가? 죽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기는 한가?
여야를 떠나서 정치(政治)의 본령은 민생이다. 가수 한영애의 노래를 살짝 비틀어 얘기하자면 이렇다. “여보세요, 거기 민생을 책임질 정치인 누구 없소!”
#6 문재인 정부의 숙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3년 반을 돌아보면 기쁨과 환희가 아니라 아쉬움과 허탈함, 배신감이 촛불민심을 짓눌렀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동안은 어찌됐든 마무리가 중요하지 않겠나. 민생을 위하여,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하여.
비전향장기수들부터 돌려보내자. 이제 12명밖에 남지 않았고,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다. 남북관계가 꽉 막혀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고들 한탄이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설탕과 술을 바꾸자는 한가한 소리는 그만하고, 북측이 절실히 바라는 일, 받을 수밖에 없는 일부터 해보자. 전향 여부와 관계없이 장기수들의 송환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실현된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송환 때도 북의 입장은 일관됐다. “전향 여부와 관계없이 송환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돌려보내라”는 것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인들 다르겠는가. 뜻과 의지가 있으면 길을 열리게 마련이고, 하기 싫으면 핑계가 백 가지가 넘는 법이다. 당국의 결단을 촉구한다.
국가보안법 이제는 없애자. 국가보안법에 대한 집권 여당의 입장은 대체로 “이미 사문화 된 것 아니냐, 괜히 건드려서 보수세력에게 빌미를 줄 필요가 있는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2018~2019년 2년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은 사람은 무려 583명에 달한다. 최근 한 남북문제 전문가는 아주 오래 전 주고받은 e메일 때문에 경찰청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곤욕을 치렀다. 남북경협 기업인들이 공안당국의 먹잇감이 된지도 오래다.
국가보안법 전체를 폐기하기 어렵다면 악명 높은 7조(고무·찬양)부터 폐기하자. 이건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다. 국가보안법의 남용과 폐해는 학자, 기업인, 교사들에 그치지 않는다. 안소희 전 파주시의원은 정당 행사에서 민중가요를 제창했다는 이유로 지난 해 5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은 사문화 되지 않았다. 오히려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우리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말살하고, 생활을 파탄시키며, 빨갱이로 몰아 처형하고 있다. 만약 사문화 됐다면 없애면 될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오래 전에 제 명을 다한 악법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민생이 절벽이다. 이 땅의 노동자들이 2000만 명이요,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600만 명이다. 경제활동인구의 절대다수가 이들이다. 전태일 3법 원안대로 통과시키고, 코로나19도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제발 경제지표나 통계에만 연연하지 말고 밑바닥 민심에 귀 기울여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선거 때 제시한 수많은 공약, 다 부질없다. 다만 이 세 가지만이라도 실천해주기를 바란다.
#7 진보정당의 과제
객관적인 환경만 놓고 본다면 그 어느 때보다 진보정치, 진보정당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상황이다. 중도보수세력이라 할 수 있는 집권여당은 하염없이 촛불정신과는 상관없는 길에서 헤매고 있고, 수구야당은 최소한의 존립 기반도 상실한 채 반대를 위한 반대, 집안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다.
이런 때에 민생을 책임지는 참다운 정치,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자주정치를 보여준다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감동과 환호의 박수를 보내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참담하다. 오늘 진보정당은 아예 존재감조차 없거나 제도권 정당으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소수파 정도로 취급받고 있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새로운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진보진영과 운동가들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미덕은 ‘철저한 자기 성찰’이 아닐까 싶다. 집권 여당과 수구야당을 비판하면서 자족하는 건 진보정치의 본령과는 거리가 멀다. 진보정치세력에게는 개혁 정책에는 적극 연대하고, 반민중적 정책에는 단호히 반대해 싸우며, 우유부단한 행보에는 비판과 견인해야 할 책임이 있다. 과연 지금 진보정치가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심(下心)이 절실하다. 개별적 이익에 파묻히지 말고 우리가 왜 진보정당을 만들었는지, 오늘 민중들이 요구하는 진보정치는 무엇인지, 근본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진보의 재구성’을 통한 진보개혁진영의 공동전선만이 수구세력의 준동을 제압하고 촛불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진보정치의 재구성은 노동자들의 자각과 실천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노동자의 힘은 현장의 복원으로부터 나온다. 선거조직이 아니라 노동운동이 본래의 사명을 다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현장조직의 혁신과 새로운 현장조직이 절실히 요구된다.
# 새해 덕담
2021년 소띠 해가 밝았다. 그러나 솔직히 2021년 새해 한국 정치 전망은 어둡다. 국리민복, 평화번영과는 거리가 먼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볼 때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고,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릴 때마다 이를 바로잡고 구원해 나선 것은 언제나 민중들이었다. 오늘의 현실도 민중들의 지혜로운 선택과 결단을 요청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잘못된 권력을 쓰러뜨리는 것에 그치지 말고 제대로 민심을 반영하고, 민중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는 권력을 창출해보자는 것이다.
소의 미덕은 우직함과 끈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천천히, 느리게 가는 것만이 소의 미덕이라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분명한 목표와 전략 그리고 그 실현을 담보할 작전이 있어야 은근과 끈기가 빛을 발할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뜻을 같이 하고 한 길을 걷는 이들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다. 부디 새해에는 ‘성찰’과 ‘신뢰’를 기반으로 신발 끈 고쳐 매고 희망찬 발걸음을 내딛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