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말
조용휘
‘옛날 옛적에 뽕나무, 대나무, 참나무가 사이좋게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뽕나무가 “아이고, 배야!” 하더니 방귀를 “뽀-옹” 하고 꼈어요. 그랬더니 옆에 있던 대나무가 “예끼 놈!” 하고 야단을 쳤지요. 이것을 지켜보던 참나무가 대나무에게 “참아라!” 했데요.’
맛깔 나는 나무이야기를 들으며 노란 병아리 복장의 꿈동산 유치원 사랑반 아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립니다. 이야기에 빠져들어 쫑긋 귀를 기울이는 아이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예쁠까요? 곁에서 지켜보는 내 입가에도 슬며시 미소가 피어납니다. 어린 시절, 여름밤마다 마당 한가운데 펼쳐놓은 툇마루에서 밤하늘의 별을 세면서 할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라 더욱 정겨운 느낌이 듭니다.
월요일마다 봉사단원들과 함께 수락산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둘레길 주위의 계곡과 산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합니다. 숲과 계곡에 함부로 버려진 악취 나는 쓰레기를 집게로 주워 비닐 봉투에 담을 때는 슬며시 부아가 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끔 재미있는 일도 생깁니다. 며칠 전에는 쓰레기를 찾느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미화원 할아버지, 저기- 바위 밑에 쓰레기 있어요!”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여섯 살 손자 또래의 유치원 꼬맹이입니다. 푸른 색깔의 조끼를 입고 쓰레기를 줍고 있으니 미화원인줄 알았나 봅니다.
“고마워, 그런데 어느 유치원에 다니니?”
“그린 유치원이요.”
“그래, 그린 유치원이 최고로구나! 쓰레기는 아무데나 버리면 안 된다”
“예, 미화원 할아버지!”
큰 소리로 대답하곤 자신이 다니는 유치원이 최고란 말에 기분이 좋아진 꼬마는 일행을 향해 뛰어갑니다.
숲속에는 무수히 많은 종류의 나무가 살고 있습니다. 침엽수인 소나무, 전나무, 낙엽송과 참나무, 오리나무, 옻나무 같은 활엽수가 이웃하여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우리 단원들은 가끔 나무 이름표를 예쁘게 만들어 나뭇가지에 걸어둡니다. 그런데 애써 만든 이름표가 훼손되었거나 꽃나무가 꺾였을 때는 속상하고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등산객들도 산이 좋아서 왔을 텐데….’
나무 이름표를 제작하면서 참나무가 잎과 도토리의 생김새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열매와 껍질 모양에 따라 상수리, 굴참, 떡갈, 신갈, 졸참, 갈참나무처럼 이름이 각기 다릅니다. 수락산에는 참나무가 참 많습니다.
가을이 되면 참나무에서 도토리가 많이 떨어져 다람쥐와 토끼의 소중한 먹이가 됩니다. 먹거리가 넘쳐나는 요즘이야 도토리로 쑨 묵이 간식용이지만 예전에 먹을 것이 없었던 시절에는 사람들의 배고픔을 달래주었습니다. 그래서 김준태 시인은『나무의 말이 좋아서』에서 참나무는 사람에게 이롭고 쓸모가 많은 나무로, 잎, 줄기, 열매 어느 것이든 살아 서도 죽어서도 버릴 것 하나 없는 참 좋은 나무라고 노래했나 봅니다.
숲속에는 풀, 나무, 꽃, 나비, 벌, 매미, 개미, 멧돼지, 토끼, 다람쥐, 꿩, 산비둘기, 참새, 박새가 살고 있습니다. 또 계곡에는 게아재비, 장구벌레, 가재, 피라미, 다슬기도 삽니다. 해마다 봄이면 마른 나뭇가지에 연두 빛 새싹을 움틔우고 산수유, 진달래, 산 벚꽃, 아카시아 순으로 꽃을 곱게 피우며 향기를 내 뿜습니다. 산을 찾는 사람들의 눈과 코를 즐겁게 해줍니다.
여름철, 초록빛으로 변한 숲속에는 “맴맴”, “쌔롱” 목청이 터지라 울어대는 매미들과 “찍- 후르르” 짝을 찾아 우는 산새들의 울음소리와 ‘졸졸졸’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멋진 오케스트라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더위가 물러가고 나무들이 노랑, 빨강 고운 옷으로 갈아입은 가을 산에는 도토리를 입에 문 다람쥐가 재주를 부립니다. 나뭇잎을 모두 떨어뜨린 황량한 겨울 산에 눈이 내리면 은세계로 변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옷으로 갈아입는 산은 요술쟁이랍니다.
유년시절,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남자아이들은 꼴망태를 둘러매고 마을 뒷동산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비지땀을 흘리며 능숙한 낫질로 쇠풀을 베어 망태에 가득 담고 나면, 오롯이 아이들의 자유시간입니다. 뒷동산의 커다란 묏등과 숲은 아이들에게 훌륭한 놀이터였습니다. 느티나무에 올라 몸을 숨기고,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거나, 나뭇잎과 들풀로 위장한 모습의 병정들은 나뭇가지로 만든 총으로 “빵-빵” 쏘며 숲속을 뛰어 다녔습니다. 병정놀이가 싫증나면 묏등에서 데굴데굴 멀리 구르기 시합도 하고 씨름과 닭싸움을 하였습니다. 해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놀다보면 마을 굴뚝에서는 저녁 밥 짓는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습니다.
사시사철 옷을 갈아입는 숲 속의 나무들은 아이들에게 더 없이 다정하고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습니다. 가지가 꺾이는 아픔도 껍질이 벗겨지는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나무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친구인 아이들이 이로운 사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빌었습니다.
“얘들아, 너희는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해!”
살아서는 기둥이 되고, 죽어서는 역사가 되는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오늘도 둘레길 입구에서 어린이집과 유치원 아이들을 만납니다. 나는 아이들 앞에 서면 뽕나무, 대나무, 참나무로 변신합니다. 나무가 된 나는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함부로 꽃과 나무를 꺾거나 곤충이나 물고기를 잡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을 그들의 가슴속에 심어 반드시 실천하기를 바라는 일념에서입니다. ‘도깨비와 혹부리 영감’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며 듣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태도가 초등학생보다 훨씬 더 진지합니다.
“에잇, 도깨비가 어디 있어요? 거짓말이죠?”
한 아이의 생뚱맞은 질문에 가끔 당황할 때도 있습니다.
“참새, 짹짹!” 짝꿍과 다정하게 손잡고 줄지어 걸어가는 아이들에게 둘레 길의 나무들이 팔을 흔들며 속삭입니다.
‘얘들아, 뽕나무, 대나무, 참나무처럼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살아라!’
첫댓글 하하하! 졸지에 미화원 할아버지가 되셨어요. 자연을 아름답게 가꾸시는 미화원 봉사, 참바세의 가르침이 나무들 사이사이로 날아다닐 것 같습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수필거리는 많지요? 자주 글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손주를 보셨으니 또래의 아이들이 더 정감이 갔을 것 같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짓는 참바세님으 미소가 제 마음에까지 번집니다. 미소에도 등급이 있다면 1등급이겠지요.
숲이 가장 좋은 놀이터라는 걸 깨우치는 님의 생활이 부럽습니다. 어른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회장님과 서주 선생님, 댓글 감사합니다. 나이들수록 동심이란 말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매주 만나는 유아들의 환히 웃는 모습이 그렇게도 예쁜지요?
나무를 심는 사람(장 지아노) 한 노인의 힘으로 활폐해 가던 산이 다시 기운을 찾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름다운 곳으로 변한 이야기 나무를 심는 사람과 같이 우리도 그렇게 노력을 하는데 참바세 님은 앞장을 서셨군요 늘 동화같은 아름다운 글을 대 하여 요즘 SNS에 뜨는 난폭한 글들을 생각합니다
선생님 많이 바쁘시군요?
TV에 나오시는것 봤어요
오랜시간 글 이 안보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