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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나 동물이나 살아 있다는 증거는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다른 점이 있다면 동물들의 경우 자주 다녀서 자연스레 길을 만들 수는 있지만 인간처럼 편의를 위하여 인위적으로 길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거기에 적용할 수 있는 각종 도구를 만들어서 이동을 합니다. 이번에는 교통과 관련된 한자를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구에 위치한 범어 네거리입니다. 지금처럼 교통량이 많아지기 전까지는 로터리였는데 폭주하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네거리로 바뀌었습니다. 대구에서는 반월당 네거리와 함께 가장 번화한 곳입니다. 특히 이곳은 대구의 주요 금융기관이 몰려 있어 '대구의 월 스트리트'로 불리고 있습니다. 사통팔달(四通八達) 시원하게 뚫린 길로 자동차들이 시원하게 달리고 있습니다. 범어 네거리처럼 사방으로 뻗은 넓은 길을 나타내는 한자가 '다닐 행(行)'자입니다. 다닐 행(行)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사통팔달의 시원한 네거리를 나타낸 것이 '다닐 행(行)'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글자는 '행(xing)'이라는 발음 외에 '항(hang)'이라고도 읽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형제간의 서열을 나타내거나 가게라는 뜻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형제간의 서열을 나타내는 경우에만 항렬이라고 읽습니다. 중국에서는 은행(銀行: 돈을 거래하는 가게)이나 양행(洋行: 서양용품 가게)의 경우도 인항(yinhang), 양항(yanghang)으로 읽어서 구분을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가게라는 뜻으로 쓰일 경우에도 '행'으로 통합되어버렸습니다. '다닐 행(行)'자는 단독으로도 많이 쓰이고 부수자로도 쓰여 제부수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 글자를 부수자로 취하는 한자는 모두 큰 거리와 상관이 있는 글자입니다. 예를 들면 '네거리 구(衢)'자 같은 글자가 있습니다. 또한 네거리의 한쪽만 나타낸 앞부분인 '彳'자만 써서 별도의 부수자가 되기도 합니다. '彳'만 가지고도 '조금 걸을 척'이라는 훈과 음이 있지만 사실상 단독으로는 쓰이지 않습니다. 주로 부수로 쓰이는데 '두인변'이라고 합니다. '두인변(彳)'은 네거리의 한쪽을 나타내며 큰 거리를 나타내는 뜻으로 쓰입니다. 정(征)이나 미(微) 등 '彳'이 들어가는 글자는 예외없이 큰 거리에서 행해지는 사실을 나타내는 글자가 됩니다. 또한 '彳'은 다른 요소와 합쳐져서 새로운 부수자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彳'에 '그칠 지(止)'가 더하여지면 '쉬엄쉬엄걸을 착(辵)'자가 되고 부수자로 쓰일 때는 '辶'으로 쓰며 '책받침'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착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책받침'으로 된 것입니다. 참고로 받침은 글자의 왼쪽과 아래쪽을 감싸고 있는 형태를 말합니다. 받침에 해당하는 부수자로는 '착(辵, 辶) 외에도 주(走)와 '민책받침(廴)'이 있습니다. 민책받침은 한자로 음과 훈을 '길게 걸을 인'이라고 합니다. 이외에 제(題)자에 들어가는 시(是)자의 경우도 '받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좇을 종(從)'자처럼 彳과 止가 분리되어 쓰인 글자도 있습니다. 사방으로 통하는 큰 거리에는 사람들이랑 많은 탈것들이 통행을 하게 됩니다. 거리를 오갔을 수레(『이미지로 읽는 한자』 206쪽)나 말(『이미지로 읽는 한자』 283쪽) 등에 대해서는 이미 소개를 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인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탈것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옛날부터 있어온 순수한 인력만 이용한 탈것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마 가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릴 때 운동회 등에서 두 사람이 손가마를 만들어 사람을 태우고 빨리 달리기 등을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가마는 여자들이 시집갈 때 주로 탔습니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었죠. 특히 장이머우(张艺谋) 감독이 만든 붉은 색채가 강렬한 영화인 <붉은 수수밭(紅高粱)>에서 주인공이 시집갈 때 타고 가는 가마의 장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붉은 수수밭>의 한 장면 꽁리(巩俐)가 분한 지우얼(九儿)은 가난 때문에 문둥병을 앓고 있는 양조업자에게 팔려갑니다. 지우얼이 시집가는 날 가마꾼들은 신부의 혼을 쏙 빼놓을만큼 타악기 반주에 맞춰 가마를 흔들며 신부를 데리고 갑니다. 지앙원(姜文)이 분한 가마꾼 가운데 하나는 나중에 지우얼과 양조장을 차지하게 됩니다. 가마를 앞뒤 양쪽에서 두 손으로 든 모습을 나타낸 한자가 있는데 '일어날 흥(興)'자입니다. 일어날 흥(興) 갑골문-금문-소전-소전-해서 위에서 가마를 든 손과 아래에서 가마를 든 손이 보입니다. 금문은 해서에 많이 가까워보입니다. 소전은 두 가지 형태가 보이는데 거의 비슷합니다. 이 글자의 훈이 '일어나다'가 된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마는 바퀴가 없어서 사람이 들어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훈이 붙은 것이지요. 그래서 이 한자는 일어난다는 뜻의 단어에 많이 쓰입니다. 흥기(興起)와 진흥(振興) 등이 그런 뜻으로 쓰인 예입니다. 그러나 순수한 인력이 아닌 바퀴를 달아서 사람의 힘을 많이 덜게 한 가마도 있습니다. 초헌(軺軒) 위와 같이 생긴 가마인데 초헌이라고 하며 우리 나라의 경우 조선시대 때 종2품 이상의 벼슬을 가진 사람이 타고 다녔습니다. 실제로 초헌을 타고 다니는 사람의 모습이 찍힌 사진도 있습니다. 복장을 보니 갑옷을 입은 무신인 것 같습니다. 위 <붉은 수수밭>의 가마를 4명이 끄는 데 비하여 2명이 끄니까 훨씬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보니 균형을 잡을 때는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바퀴를 하나만 더 달면 혼자서 끌어도 될 것 같습니다. 바퀴가 두 개가 달린 탈것은 인력거(人力車)가 되겠죠. 기능면으로 볼 때 사실상 수레와 가마의 중간쯤 되는 위치에 있는 초헌 같은 탈것을 나타낸 한자도 있습니다. 수레 여(輿) 금문대전-소전-해서 '수레 여(輿)'자는 '轝'로도 씁니다. 여(轝)자는 '줄 여(與)'자와 '수레 거(車)'자가 결합된 형태입니다. 바퀴에 해당하는 '車'자가 가마가 들어갈 자리에 놓인 여(輿)자와 모양이 조금 다릅니다. 위 글자의 금문대전은 사실상 '줄 여(與)'자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輿)자는 금문대전에서도 거의 보이지 않고 소전에 와서야 보편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이것은 바퀴 달린 탈것인 '여(輿)'자가 아주 늦게 생겨났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실제로는 초헌 같은 것을 나타내기보다는 앞뒤에서 수레를 끌고다니는 것을 나타낸 한자입니다. 사람은 육로로만 다니지 않았습니다. 일찍부터 강이나 바다를 이용하면 힘을 덜 들이고도 많은 물량을 보다 쉽게 운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 넓은 중국의 육로에 북경과 항주를 잇는 경항(京杭)운하 같은 물길을 만들어 낸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끝없는 탐구와 노력의 결과 하늘길까지 열게 되었습니다만 인간이 만들어낸 하늘길을 다니는 기계는 더 이상 한자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시대의 일이라 비기(飛機: 비행기)처럼 이미 만들어진 글자의 조합으로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육로가 아닌 수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인간이 고안한 것은 다름아닌 배입니다. 배 두 척이 나란히 있습니다. 한 척은 뭍에 반쯤은 올려진 상태고 한 척은 물 위에 떠 있습니다. 모양을 보면 두 척 다 뱃전[舷]은 약간 둥그스름하게 굽은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만 한 척은 사각의 형태를 띠고 있고 한 척은 앞쪽이 뾰족한 유선형을 띠고 있습니다. 모양은 약간 다릅니다만 두 배의 공통점은 배를 가로지르는 나무인 횡목(橫木)이 두 개씩 있다는 것이지요. 오랫 동안 방치된 배인지 물에 절반쯤 가라 앉은 모양이네요. 배의 양쪽 뱃전과 횡목만 보이고 나무지 부분은 모두 잠겼습니다. 아래 배를 나타내는 한자인 '배 주(舟)'자에 보다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 주(舟)'자는 배의 뱃전과 횡목 두 개를 나타내는 모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배 주(舟)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갑골문부터 소전까지 모양이 거의 변하지 않고 사진의 각지고 횡목이 있는 배의 모양에서 따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해서에 와서는 모양이 사뭇 달라져서 많이 변하였지만 그래도 다른 한자들에 비하면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배 주(舟)'자는 단독으로도 많이 쓰입니다만 다른 배를 나타내는 글자의 부수에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예를 들자면 위에 나온 뱃전을 나타내는 한자인 현(舷)자를 비롯하여 돛배 같이 비교적 큰 배를 나타내는 선(船), 전투용 배인 함(艦), 거룻배를 나타내는 정(艇), 네모 형태의 배인 항(航)자 등에 보입니다. 탈것을 나타내는 한자는 이미 다른 요소들을 설명할 때 많이 설명을 하여서인지 여기서 설명할 글자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현대의 탈것인 비행기나 기차, 지하철 등은 위에서 이미 잠깐 말씀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한자를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기존의 한자를 결합하여 쓰고 있습니다. |
첫댓글 재미 있네요.
고맙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것이야 말로 글을 올리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지요.
감사합니다.
어디서 그렇게 적절한 사진을 구하는지 참 놀랍네.
평소에 보이는 사진 중에 한자의 상형과 겹치는 것이 있으면 보이는 대로 모아두기도 하고, 한자의 상형을 보고 사진을 찾기도 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