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신상주(法身常住)
불교에서는 법신(法身) 보신(報身)·화신(化身)으로 세 부처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신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眞身)을 일컫는 말인데 여기서 진신이란 덧없이 생사윤회(生死輪理)를 하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석가모니가 아니라 항상 보편한 진리로 존재하는 '영원의 몸'을 말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여 영원한 존재인 부처가 되시고, 존재하는 것들의 본래 성품인 적멸을 인식하고 열반을 얻었습니다. 열반경에서는 육신이 소멸한 후 얻어지는 법신의 영원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은 바로 행복입니다. 이 행복은 육신과 정신이 원만하게 충족된 상태이고,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증일아함경에서 "이 세상에서 행복을 구하는데 있어서 나보다 더한 사람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불교에서 행복을 추구하고 성취하는 목적은 결국 고(苦)가 낙(樂)이 되는 것이며, 이 낙이 청정법신으로 상주하는 것이며,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계셨을 때 병환이 심하여 자리에 누워 거동을 자유로이 못하시자 가섭의 걱정이 너무나 컸습니다. 「모든 병은 욕망과 노여움, 무지, 교만에서 오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미 이 네 가지를 초월하셨을 텐데 어찌하여 병환이 저처럼 짙으신가.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어 부처님의 깊은 뜻은 알지 못하고 (부처님도 병이나면 죽구나. 죽고 나면 무상하여 아주 없어지겠지?) 하고 의심할 것이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부처님은 가섭의 마음을 아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섭아. 걱정하지 마라. 밤과 낮은 변하지만 해와 달은 변함이 없다. 중생의 세계는 밤과 낮과 같고 부처의 세계는 해와 달과 갈다. 중생들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난 것이 해가 떠서 낮이 된 것 같이 생각하고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나면 달이 져서 어두운 밤이 된 것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해와 달은 밤낮에 관제 없이 우주법계에 상주한다. 월식이 있든 일식이 있든. 줄어들고 늘어나는 일이 없이. 밤이나 낮이나 하늘 높이 교교히 빛난다. 도회지건 촌락이건 산이건 늪이건 개울이건 강이건 어느 곳이나 평등하게 골고루 비쳐 주고 있다. 그런데 증생들은 각기 자기가 보는 만큼의 해와 달을 보고. 오늘은 해가 높이 떴다 낮게 떴다. 오늘은 날이 흐리다. 맑다 둥글다. 뾰쪽하다고 평가한다. 나는 마치 어진 의사와 같아 병의 약을 설하여 누구나 먹기만 하면 다 낮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먹고 먹지 않는 것은 나의 허물이 아니다.”
그때 비가 더욱 세게 쏟아졌습니다. 부처님은 그 비를 보고 가섭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섭아, 저 비를 보느냐?” “예. 봅니다.” “저 비는 필요가 있는 비냐. 필요가 없는 비이냐” “필요한 곳도 있고 필요치 않는 곳도 있을 것 입니다.” “그렇다. 가섭아. 마른 나뭇가지에는 아무리 비가 와도 도움 될 것이 없다. 마찬가지로 나의 진리의 비는 천지만물을 다 적셔 주지만 이것을 믿지 않는 이에겐 아무런 효과가 없다. 포는 중생은 다 똑같은 불성을 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개발하지 못한 사람은 끝없이 생사를 윤회할 것이다. 나는 윤회생사에 전전하는 불쌍한 중생들을 위하여 중생의 탈을 쓰고 이 세상에 나와 중생의 허물을 벗고
부처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봄, 가을은 중간이고 여름을 길고 겨울은 해가 짧듯 대천세제 가운데서 수명이 짧은 세계에서는 짧은 모양을 나타내 보이고, 긴 곳에서는 긴 모양을 나타내 보인다. 어머니의 태속에 들어 열 달을 있다가 태어나 4문 유관을 하고 성을 넘어 설산에 들어가 6년 고행하고 마군을 항복받고 부처가 되어 45년간 중생을 교화한 것은 사바중생의 근기를 따라 그렇게 한 것이지 부처의 본모습이 그러하여 그런 것은 아니다.
법신은 상주하고 불성은 평등하다. 내가 병을 보인 것은 중생의 업병 때문이니 걱정하지 말라. 매시풀, 사라쌍수, 판양유 같은 나무는 줄기를 자르면 곧 새순이 나지만 산유화는 다시 나지 않는다. 업력의 뿌리가 남은 중생은 다시 생을 받지만 업력의 뿌리를 다한 부처는 다시 나지 않는다. 그러나 천상의 달처럼 중생의 원을 따라 밝은 달이 나타나듯 부처도 보화(寶化)의 몸을 나투어 중생을 교화한다. 몸빛은 달라도 젖색은 하나인 소와 같이 모든 중생은 한빛 한 맛의 불성을 가지고 있으니 가섭아. 걱정하지 말라. 마침내 세계는 한맛의 불바다(佛)가 될 것ㄹ이다. 부처님은 병이 없다.
모든 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자체로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고 불성을 가꾸고 닦음으로써 성불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열반경>의 가르침입니다. 불성은 씨앗일 뿐, 뿌리고 가꿔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열반경>은 "중생의 불성은 부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니, 모든 공덕으로 인연이 화합하여 불성을 본 뒤에 부처를 이룰 수 있느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불성의 씨앗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씨앗을 튼튼하게 발아시키고 불 피우기 위해서는 마음의 운용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엉뚱한 망상과 욕심, 집착으로 허상을 바라보며 생활과 마음을 멍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원만하고 지혜로운 마음의 바퀴를 굴려 내재된 불성을 찾아내야 합니다. 진면목을 바로 보고 불성을 찾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쉼 없이 수련하고 공부해서 분주하게 일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혀야 합니다. 그리고 내속에 존재하는 불심을 찾아내야 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밭이 있습니다. 채소가 심어진 채소밭이 있고, 잔디가 깔린 잔디밭이 있고, 예쁜 꽃이 가득한 꽃밭도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관리를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잡초만 무성한 쓸모없는 밭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모두 “밭”이 하나씩 있습니다.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마음 밭'으로 누구나 가슴속에 하나씩 가지고 있는 소중한 밭입니다.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그만큼 정성껏 보살펴야 합니다. 마음은 물결 같아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밭에 좋은 생각의 씨앗을 심어 정성껏 가꾸면 꿈과 행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무엇을 꽃 피우는가는 오직 우리의 몫입니다.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