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식, <하늘 오르는 길>(그물코, 2003)
“...그들은 못다 한 우정을 다음 세상까지 이어가려는 듯, 한 로프에 의지한 채 죽음을 맞았다. 나는 그들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저자의 서문에서.
1. 매혹의 글쓰기
이 글을 쓰려는 아침, 일본은 우리나라 백색국가 제외를 감행했다. 제 2차 경제보복이다. 미칠 노릇이다. 약소 민족,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근대국가의 숙명. 아직도 제국주의 망령에 빠져 있는 저들에게 당하고 만다. 친일에서 '친親'은 친한 것이 아니라 대상을 아버지로 섬긴다는 뜻, 그러므로 친일은 일본을 어버이로 여기고, 섬기는 대상으로 하고, 우리 자신은 그 아래로, 배워야 하는 낮고,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태도이다. 아베 정부, 일본 회의 등, 일본 제국주의의 벌거벗음을, 우익들의 광기를 본다. 우리들도 산에 올라 벌거벗는 경험을 하는데...벌거벗고 겸손해지는데...아, 나부터 제대로 해야겠다. 다짐한다. 손닿는 곳에 있던 신흥무관학교, 신채호, 윤봉길 평전을 다시 책상 위, 눈 아래에 놓는다. 분노와 슬픔에 복 받치는 날 아침, <하늘 오르는 길>을 마저 읽고 쓴다. 올 여름, 산악문학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그것은 산서회, 산서선정위원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탈레이사가르는 1979년 영미 합동 등반대가 서면을 초등했고, 1984년 폴란드 원정대가 처음 북동벽을 등정했다. 1991년에 헝가리 북면을 처음 올랐다. 1997년에 호주, 뉴질랜드 등반대가 북면의 길을 따라 올랐다. 기록에 보면, 한국 원정대는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여섯 개 팀이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2000년 울산대학교 산악회가 북서릉을 통해서 정상에 올랐고, 2006년 서울산악조난구조대가 파견한 구은수와 유상범이 북벽을 통해 정상에 섰다.
1.1 <하늘 오르는 길>은 저자 손재식의 일기이다. 1998년 8월 23일부터 9월 28일까지의 탈레이 사가르 등반 일기 그리고 1999, 2000, 2001, 2002, 2003년 6월 25일, 5년이 지나서 책이 나왔다. 험난했던 등반에 관한 일기형식의 책. 이 책은 매혹 당한 자의 수기이다. 함께 했던 대원들의 죽음이라는 절대적 공간에 갇힌 저자에게는 떨어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무한한 고통의 산물이다. 2003년에 이 책을 읽고 난 후, 서재 한 켠에 놓아 두었는데, 그 책은 사라졌다. 그리고 2019년 책을 구해서 다시 읽었다. 무엇때문일까? 그 사이, 16년이라는 세월, 저자와 고인이 된 대원들 사이, 독자인 나와 저자 사이에도 변화하지 않는 고정적인 것이 있는 것 같다. 그 힘...그 불변하는 힘, 그것이야말로 매혹일 터이다. 한 순간에 머물고 만, 그 매혹의 순간. 조심스럽지만, 저자는 함께 했던 대원들의 죽음을 보고, 벼락맞은fanaticus 경험을 했을 것이다. 한 순간에 검게 타들어 간, 굳어진...매혹은 그런 것이다. 벼락맞은 이 단어에서 팬fan이란 단어가 나왔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매혹 당하는 것, 그 대상 앞에서 꼼짝없이 자신이 타들어가게 내던지는 일, 기도하는 모습이 되는 것. 남은 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글 쓰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가 남기고 싶은 본질 같은 것. 그래서 글쓰기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 된다. 죽음을 대하는 등반문학이 문학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1.2 이 책은 6명의 등반기이되, 시선의 책이다. 이 책은 두 개의 시선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히말라야 강고트리 산군에서 가장 어려운 봉우리인 탈레이 사가르를 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를 오르는 이들을 향한 저자의 시선이다. 앞의 시선이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쳐다보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 숨소리와 말소리조차도 얼어버릴 것 같은 시린 추위에 꽁꽁 언 벽에 매달려 떨면서 지새는 밤을”(78쪽) 보아야 하는 자연적 시선이라면, 뒤의 시선은 “나는 왜 이곳에 왔으며, 무엇이 나를 계속 여기 있게 하는가”(79쪽)라는 질문에 우의와 신뢰 그리고 사랑으로 답하는, “모든 것은 몸으로 부딪쳐야만 얻을 수 있”(79쪽)다는 깨달음을 향한, 이를 위해서 자신의 안으로 가라앉는, 그 안으로 내려가는 시선이다. 그 시선은 깊고 깊다. 저자 손재식은 책 앞에서, “어려움을 피해가지 않겠다는 ...생각은 등반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우리들에게 일깨워 주는 바가 매우 크다”고 쓰고 있는데, 이 문장은 “다만 오후 4시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릴 뿐이다...이틀이나 습하고 추운 빙벽에 매달려 죽음과 맞닥뜨리는 공포의 터널을 지나온 것에 비하면, 정상에서 맞이할 어둠은 차라리 포근할지도 모른다.”(17쪽)라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두 개의 시선은 이런 내용과도 어긋나지 않는다.
1.3 신상만(32세), 최승철(28세), 김형진(25세)은 저자의 혀끝에 맴도는 것이 아닌 끊임없는 시선 그 자체이다. “마음이 통하면 긴 말은 사족”(75쪽)이라고 한 것처럼, 남는 것은 오로지 포기할 수 없는 본질에 가닿는 시선이다. 가스통 레뷔파의 말을 빌리면, 그 시선은 “신비의 왕국으로...들어가는...오직 의지와 애정”(80쪽)의 발견이고 놀라움이다. 저자는 이 시선에 대해서 이렇게도 표현한다. “산에 오르고자 하는, 특히 벽을 오르려는 젊은이들에게서 바로 그와 같은 삶을 떠올리는 것은 반드시 벽에 그들이 찾는 무엇이 있거나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 옆에는 치열하게 같이 고민하고 같은 길을 바라보던 ‘사람’이 있었다. 생의 마지막을 같이 맞아도 좋은 벗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삶은 결코 가볍지 않다.”(167쪽)라고. 이 문장에서 ‘사람’은 곧 시선의 동의어이다. 성과 중심의 등정주의가 아니라 윤리와 심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등로주의에 생을 바친 이들의 순수한 시선이고, 이들에 대한, 이들과 함께 하는 공모의 시선이다.
2. 구름만이 아는 비밀
말들이 솟아나 인물들을 복원한다. “유쾌하고 잘 생긴”, “금발을 치렁치렁 어깨까지 늘어뜨린”(21쪽), “나이어린 막내지만 등반대장”(69쪽)인 김형진, “행동은 사려깊지만 엉뚱한”(119쪽), “마음 따뜻한”, “머리띠를 멋지게 두른”, “크고 바위처럼 단단한 손”(73쪽)을 지닌, “남을 따뜻하게 배려해주는 자상하고 조용한”(179쪽) 최승철, “빛바랜 모자를 약간 삐딱하게 눌러 쓴”, “구수한 사투리의”(21쪽) 신상만. 글쓰는 저자와 이들 세 명의 내밀성이 이렇게 상호 연결된다. 이들은 “대중들이 더 많이 인정하는 등반보다는 자신들의 힘이 허락할 때까지 진보적인 등반을 실천하려고 했다. 그들의 목표는 남들이 경험하지 않은 어려움이었다. 높이 자체가 어려움의 대상이었던 시절과는 아주 다른 등반관이었다.”(203쪽) 저자의 이 글을 통해서, 나는 이들이 추구했던 등반의 어려움은 정해진, 고정된 길을 떠나, 새로운 길을 창조하는 모호성의 확대이고, 웅축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등반의 완성이라고 이들은 확신했고, 저자의 글은 이들이 삶과 결별하면서까지 추구한 것을 독자에게 환기시키고 있다. 나는 저자의 글을 통해서, 등반은 오르고 올라,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을 때까지 가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관통의 행위임을 알게 되었다.
2.1 이 책은 1998년 9월29일, 인도 히말라야 탈레이 사가르 북벽(6,904m)을 오르던, 위에 이름을 적은 세 명과 “대원들을 위해서 희생하겠다고 말한”(106, 127쪽), “벼락을 세 번이나 맞고도 살아남”(125쪽)아, “명이 질긴”(189쪽) 윤길수, “정상등반을 양보하고 궂은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106쪽), “어떤 일에도 불평을 안 하는”(125쪽), “배에 임금 왕 자가 가장 선명하게 새겨”(124쪽) 져 있는 장기헌 그리고 “빠짐없이 촬영하고 기록하는 일”(106쪽)을 담당한 “저자가 사고 전날까지 그들과 함께 등반하면서 기록하고 필름에 담은 것들과 고인들의 일기를 정리해서 엮은 것이다.”(국립도서관 서지 안내글에서)
2.2 산악등반 도서에 조예가 깊은 호경필은 이 책에 대해서, “이 책을 보면 생각나는 네 가지~ 하나, 안타깝지 않은 조난사가 어디 있으리요 마는 당대 첨예한 등반을 추구했던 청춘 클라이머들의 희생으로 커다란 상실감과 멘붕 경험... 둘, 그들이 노동처럼 유익하고, 예술처럼 고상하고, 종교처럼 아름다운 등반을 했다는 비유는, 손재식형의 작가적 재능과 사려깊은 성찰의 범주를 가늠할 수 있었던 근거... 셋, 전문적인 등반 스토리였지만 선뜻 출판을 감행한 출판사의 예지로, 대한민국 산악문학의 수준을 구미의 그것과 동급으로 끌어올린 계기... 넷, 억울하고 참담한 등반기록이었지만 산악인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산서의 존재감을 깊이 각인시킨 화제작...”(한국 산서회, 북리뷰 56번 글, 안성민의 글에 덧붙인 글에서 인용) 나는 호경필의 글에서, 이 책이 우리의 등반문학의 수준을 서구 유럽의 그것과 동급으로 만들었다는 지적에 적극 동의한다. 동급이라는 즉 종이 위에 섬세하게 산과 사람들 그리고 그 위엄을 기록한 순수한 침묵으로서의 문학이라는 지적에 동의한다.
3. 돌아오지 못한 등반
귀도 레이Guido Rey(1861-1935)가 쓴, 알프스 등반과 일반 강연내용을 모은, <Alphinisme acrobatique>(1919)의 맨 끄트머리에, 우리나라 산악인들이 애창하는 글귀가 있다. “ ...as I have ever faced the mountains, humbly and sincerely, and as I have enjoyed them to the last day with all the fervour of my soul. Because I believed, and still believe, that the struggle with the Alps is useful as work, noble as an art, beautiful as a faith.” 이 문장은 귀도 레이가 몰입했던, 근대등반의 원류인 알프스 등반에 관한 내용인데, 앞 구절보다는 뒷 구절 즉 "노동처럼 유익하고, 예술처럼 고상하고, 신앙처럼 아름다움 "의 주어가 등반이 되어버렸다. 이 책의 원제목은 <Alpinismo Acrobatico>, 이 책은 1904-1912년 사이에 귀도 레이가 오른 알프스와 돌로미테 등반기와 1913-1914년 사이에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한 일반대중 강연내용을 모았다. 저자 손재식도 이 문장을 이 책 끄트머리에 인용하고 있다.(170쪽)
3.1 <하늘 오르는 길>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귀도 레이의 다른 글, 예컨대, “It is important to affirm and prove, that we go to the mountains to live and not to die, that we are not fanatics, but firm believers, and that the few accidents which occur are hard but not useless lessons.”가 눈에 들어왔다.(1863년 이탈리아 산악클럽Italian Alpine Club를 만들었고, 알프스에 산장을 많이 세운, 과학자였고, 이탈리아 제국의 예산장관minister of the new Kingdom of Italy였던 등반가 퀸티노 셀라Quintino Sella가 귀도 레이의 삼촌이었다. 오늘날 이탈리아 산악연맹이라고 할 만한 이 클럽의 목표는 산행을 통한 힘과 아름다움의 고양 그리고 덕의 실천이었다.) 산에 간다는 것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라는 문장, 그리고 “선구자적인 탈레이 사가르 북벽에 도전한 김형진, 최승철, 신상만, 윤길수, 장기헌 대원들의 등반과정을 같이 참가했던 손재식이 일기 형식으로 구성한 이 책”(안성민의 윗글에서 인용)에서, 그들의 죽음이 우리들에게 남긴 교훈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안성민은 그가 쓴 글에서, “자신들의 산에 임하는 철학과 어려움을 피해가지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탈레이사가르 북벽을 오르다 하늘의 품에 안긴 위대한 세 클라이머가 잊혀져가고 주목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우리에게 이름도 생소한 탈레이사가르 북벽이 도대체 어떤 산이고 어디에 붙어있는 곳인가?”라고 가슴 절절하게 썼다.
3.2 9월 16일, 폭설로 일주일 째, “꼼짝없이 발이 묶여”(87쪽) 전진 캠프에 머물렀다. 사진을 찍고 있던 저자는 늘 불안했다. “이 사진이 혹시 마지막 단체 사진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운명적인 생각이 들”(97쪽) 만큼, “오늘이 마지막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었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만약 더 이상 내일이 없다면 사진기록은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러나 내 손은 습관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135-6쪽)던 저자였다, “9월 26일 새벽 3시 25분경, 본 등반을 떠나기 직전에...이 때부터 셔터를 누룰 때마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143쪽) 저자를 휘감았다. 자기 소멸과 같은 느낌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법이다. 자기의 의도와 방어와 관계없이. 불안의 속도는 이렇게 격렬하다.
3.3 9월 17일, 대원 모두가 캠프1에 오른다. 다음 날에는 “고정 로프를 설치하기 시작해서 6200미터까지 올라가면, 모레는 하루 쉬고, 그 다음날 정상까지 오르는 공격만이 남은 셈이다.”(110쪽) 9월 18일 윤길수, 장기헌 대원이 밤새 앓다 아침에 베이스 캠프로 내려갔다. 그리고 장기헌이 다시 캠프로 올라왔고, “마침내 600미터 길이의 고정로프가 다 풀려나갔다.”(114쪽) 9월 20일, 패러글라이딩으로 내려오기로 한 최승철을 남겨놓고, 다들 전지캠프로 내왔다. 9월 23일, 내려갔던 이들이 캠프 1로 올라왔고, 전진 캠프에 있는 윤길수를 제외한 모든 대원들이 만났다. 계속 차가운 눈이 내렸다. “캠프에 머문 24일 가운데 15일이나 눈이 내렸다. 우리 마음은 눈에 따라서 춤을 추었고, 눈에 따라서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다.”(133쪽) 9월 26일, 첫 번째 비박지인 6450미터 지점까지 간다. 저자는 6000미터에서 6100미터 사이 쯤에서, 정상에 오르려는 이들과 헤어져 캠프1로 내려온다. 저자는 그 순간, “벽을 향해 올라가는 그들에게서 삶과 죽음의 경계”(152쪽)를 본다. 여기서 그의 시선은 벽에 매달린, “등반을 마무리하고 쉴 곳을 찾아...왼쪽 상단으로 자리를 정한 듯 모두들 그곳으로 주마링해서 오르는”(153쪽) 세 사람을 향한다. 9월 27일, 세명의 대원들은 벽에서 추운 밤을 보낸다. 다음 날, 저자는 전진 캠프로 혼자 내려온다. 오후 3시, 세 명의 대원들은 붉은 색 벽을 끝내고, 오후 6시 북벽 윗부분인 쉘 밴드에 모여 있다. 9월 28일, 정상에 오르는 날이다. 선등자가 정상 아래 검은 바위 탑, 소위 블랙 타워에 도달했다. 저자는 전진 캠프에서 망원경으로 세 명의 등반을 보고 있다. 오후 3시, 선등자가 블랙 타워 침니를 통과했다... 그 때, 등반하고 있는 벽에 구름 띠가 둘러쳐지기 시작했다. 오후 5시, “대원들이 보이지 않았다.”(162쪽) “캠프에는 어둠이 내리고 정적만이 흘렀다.”(163쪽)
3.4 9월 29일, “모든 게 완전히 뒤집히기 시작했다. 햇빛이 북벽의 하단을 비칠 때 캠프1의 왼쪽 위 5500미터 지점에 보이는 작은 물체들이 모든 상황을 확연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 물체들을 연결하고 있는 것이 로프임이 확실해지면서 혹시나 했던 우려가 최악의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 로프는 대원들이 정상에서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증거였다.”(163쪽) 이 부분에 관한 저자의 기술은 번뇌를 넘어선다. 고백보다 더 한, 기억보다 더 분명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대목이다. 저자는 두려웠으리라. 고뇌했으리라. 죽음이라는 결별이 주는 통한의 아픔 속에서 의미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리라. 나 같으면, 이렇게 썼으리라. ‘이것은 약속의 위반이라고. 함께 오르고 함께 살아서 돌아가자는 의지와 의미를 배반하는 행위라고, 살아서 진실할 때와 죽어서 더 진실할 때라는 것을 기억하고, 말하고, 쓰리라’라고.
4. 사진 속에 그들이 있다.
저자 손재식은 맨 앞, ‘책을 펴내며’라는 서문에서, “영광의 이면, 짙은 그림자, 소외감, 관심에서 멀어진, 눈길 밖에 있는” 바를 산에 오르는 일과 등가로 놓고 있다.(8쪽). 이것은 등반의 가치를 말하기 전에,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 젊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8쪽), “짧았지만 훌륭하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위로하기에는 너무나 회한이 많이 남는다”(166쪽)라는 고인들에 대한 헌사이고 고사이다. 저자는 전진 캠프에 있었고, “자기 자신의 산을 편안한 삶과 맞바꾸지 않음으로써 산을 향해 뜻을 세”(169쪽)우려는 세 명의 클라이머는 지금 북벽을 오르고 있다. 그들은 고도 6800미터에 있었다. 그 사이 구름이 끼고, 눈사태의 굉음이 들렸다. 저자가 잠에서 깨어, 망원경으로 그들을 찾았을 때, 그들은 고도 5500미터에 있었다. 세 명의 대원이 1300미터를 추락한 것이었다. “분명한 사고였다.”(23쪽). 절망의 시선이 가져다 준, 세명이 대원이 한 로프에 묶여있는 사실의 확인이었다.
4.1 8월 23일 서울을 떠나, 한 달이 조금 더 된 9월 29일이었다. 그 기간은 “버스가 진흙탕을 헤치고 (강고트리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 등반을 마친 뒤에 임시로 복구된 이 길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39쪽)의 나날들이었으리라. “빛나는 등반은 그렇게 끝이 났다. 생전에 세 대원들이 어울리던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1300미터를 추락하면서도 그들은 한 개의 로프에 몸을 묶고 있었다. 서로 다른 날 세상에 태어났으나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날 한시에 생을 마감했다.”(167쪽) 그로부터, 저자는 “아주 쓸쓸한”(170쪽) 사람이 되었다. 장기헌은 “원정에 돌아온 석 달 뒤, 승철과 형진의 흔적이 숨쉬고 있는 장수대 갱기폭으로 갔다...새 투트 하나를 냈다. 그리고 그 길에 ‘친구에게’라고 이름을 붙였다.(196쪽) 독자인 나도, 책을 덮고 고독해졌다. 이렇게 등반 기록을 책으로 읽으면서, 나는 등반이라는 용어를 너무나 남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4.2 저자는 전진 캠프, 캠프 1에서 대원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 떨어져 있을 때, 멀리서 망원경으로 대원들의 등반을 볼 때, 더 깊이 연결되어 있는 듯 했다. 그것은 이 책 안에서 저자의 불안과 연민, 연대, 고독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더 가까이 그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가 지닌 시선이 남긴 것은 대원들에 대한 매혹과 그 반사된 빛으로 담은 사진이다.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사진은 등반하는 대원들이 뿜어내는 매혹의 힘이고, 상징이다. 저자를 붙들고 있는 존재는 산이 아니라 김형진, 최승철, 신상만의 매혹이다.
4.3 탈레이 사가르 등반, 세 명의 클라이머는 등반의 본질에 가닿는 고독한 이들이었으리라. 스스로 산에 고립된, 그렇게 해서 아주 무한해진 이들이었으리라. 그들이 눈바람에 휩쓸려 추락하기 전, 벽에 매달린 채 그들이 존재했을 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리라. 곧 사라질 수 있다는 위험 앞에서, 그들은 인칭을 넘어선, 영원한 존재가 되었으리라. 등반에 관한 모든 정의와 말들의 유희를 넘어, 산에 영원히 체류하는 이가 될 수 있었으리라. 쓸쓸해졌다는 저자는 더 이상 글과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먼저 죽은 이들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것은 무기력이 아니라, 산에서 죽은 세 명 클라이머들의 매혹 때문일 것이다. 책의 저자 손재식은 이들에 매혹 당했다. 그가 “쓸쓸해진”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독자인 나도 쓸쓸하기만 하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거푸 열 번은 들은 것 같다. 여름도 쓸쓸하고 뜨겁다. (ㅇㅊㅇ)
첫댓글 교수님. 무더위에 건강한 여름되시길 바랍니다.
수락 옥류폭.
산에 온 이후,
그들을 안 이후,
탈레이샤가르라는 이국의 벽 이름과
웅조철진, 최승철과 김형진,
두 이름을 잊은 적 없습니다.
만난 적 없기에 쓸쓸하진 않으나 더러 있었음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참...곱씹으며 읽은 책입니다...
술자리에서 재식형에게 책이 나오게 된 계기를 들었는데...
'그물코'의 장은성 대표도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죠...
지금은 충남 홍성에서 마을주민들과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시죠~~~^^
형님 덕에 까실한 책표지를 다시 만져봅니다...ㅎ
웅조철진이라는 별명이 있군요~~
함께 산화한 신상만형이 저 일년선배입니다.저 졸업 4학년때인 92년에 대학산악부도 전부 프로산악인이 되야한다고 해서 저와 언쟁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그후에 뉴욕에 있는 87학번 후배 조성태와 북한산 국립공원공단 특수구조대 있는 원광대 87학번 이동윤이가 한국산악회 기술위원회 들어가서 정열을 태원던것 같네요~~ 상만형이 하늘로 간해 다른 일과 겹쳐 저도 산하고 인연을 끊었읍니다^^
"웅조철진"
설악 갱기폭 좌벽에 두사람이 개척한 인공루트 랍니다.
자신들의 이름 한자씩 따서 영웅조라는,
젊은 등반가틀의 패기와 꿈이 느껴지는,
저도 늘 가보고 싶은,
재을 형, 2003년 고 김형진의 형, 김형일이 마운틴 하드웨어의 도움으로 탈레이 사가르 원정을 하지요. 정상에는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 후 2011년 촐라체 북벽 등반에서 추락해 생을 마감하지요. 한국 산악계에서 이런 아픔을 지닌 가족사가 <집념의 마나슬루>에 이어서 또 있어요. 가슴이 참 아프네요.
@옛길(안치운) 이런 둘이 형제였어요~ 대단한 등반가들인대요^^
가슴이 먹먹해졌던 기억이 떠옵니다. 다시는 그런일이 없기를 바라며 오래전 일이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