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1991)
영어제목 : The Double Life of Veronique
원제 : La Double vie de Veronique
감독 :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주연 : 이렌느 야곱 , 할리나 그리글라스제브스카
제작국가 : 프랑스,노르웨이,폴란드
등급 : 18세 관람가
상영시간 : 98분
장르 : 드라마, 멜로·로맨스, 판타지
제작년월 : 1991-11

줄거리
폴란드에서 한 여성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할 때 멀리 프랑스에 사는 한 여성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 그런 식의 비탄에 잠긴다.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이처럼 두개의 삶을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신비로우면서도 시적인 필체로 쓴 영화다.
폴란드의 베로니카와 프랑스의 베로니크는 서로 알지는 못하더라도 실은 공통의 영역에 놓여 있는 듯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생일도, 외모도, 재능도, 심지어는 건강상의 문제까지도 공유하고 있다.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것의 문제를 성찰한다. 어딘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비주얼은 이 문제의 불가사의함을 효과적으로 강화해준다.
“충치가 생기면 이가 아프듯 보편적인 감정은 모든 인간이 똑같이 느낀다, 배우가 내면을 충실히 드러낼 때에만 생동감있고 입체적인 인물이 완성된다, 나의 영화는 마음을 열고 봐야 한다” 등 연출과 연기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들려주던 그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주제가 ‘삶을 더욱 신중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의식 혹은 무의식 중에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데, 그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모르기 때문에 각자 책임감을 느끼며 행동하라는 뜻이다.

주제
원제를 번역하면서 ‘두 여인’이 아니라 ‘이중생활’로 제목을 붙여 영화는 많은 오해를 안게 됐지만, 어쨌건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크리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정치와 미학 모두를 풍성하게 담고있는 걸작이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언제나 크지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가 작품의 주제로 삼고 있는 인생의 갈림길에서의 선택의 문제, 그리고 우연성이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 등을 매우 암시적이면서도 강렬한 영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폴란드와 프랑스에 베로니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젊은 여인의 교차하는 삶을 반추하면서 유럽의 구질서 붕괴와 근대 철학의 몰락, 그리고 그 카오스의 소용돌이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인간성의 새로운 씨앗을 모색하고 있다 할 수 있다. 폴란드 출신이라는 변방에서 타자의 시선으로, 사회주의의 붕괴와 유럽의 대통합이라는 새로운 정치사회적 명제 앞에서 선 휴머니즘을 사유한 결과가 바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다.
감상 포인트
키에슬로브스키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서 사실상 같은 사람인 두 여인의 각각 다른 삶을 조명하면서, 강렬한 색채와 음악의 조화, 우연히 지나가는 듯한 화면에 강한 상징성을 부여하는 기법, 다소 난해한 아방가르드적 연출을 통해서 관객들에게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의 연출 역량이 최고도로 발휘된 이 작품에서 우리는 인생 그 자체에 대해 항상 의문을 품는 그의 세계에 접하게 되는 것이다. 키에슬로프스키 특유의 관조적인 우울한 화면이 더없이 빛나며 즈비그뉴 프라이즈너의 고풍스러우면서도 몽환적인 사운드트랙이 영화의 분위기를 감상적으로 떠받치고 있다. 그는 18세기 네덜란드의 작곡가 반 덴 부덴마이어의 ‘E 단조 콘체르토’를 매우 효과적으로 주인공의 이미지에 일치시켰다. 또한 여주인공으로 1인 2역을 한 스위스 여배우 이렌느 야곱은 이 영화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당초 이 역할은 줄리엣 비노슈에게 제안됐는데, 그녀가 <퐁네프의 연인들>을 촬영 중이라 이렌느 야곱이 캐스팅된 것이라 한다.
O.S.T 소개- 디스크자키 전영혁 Best 20 중에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선율
아카데미 작품, 음악, 여우주연, 촬영, 각본 이렇게 5개 부문은 수상했어야 마땅한 영화다. 폴란드 감독이 만든 프랑스영화라고 상을 안 준 거다, 미국 사람들이. 우선 음악이 너무 좋고, 내가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라고 생각하는 이렌느 야곱이 나왔다. 영상도 아름다웠다.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다. 요즘에는 이상한 영화를 다 컬트라고 하는데, 이런 영화가 진짜 컬트라고 생각한다. 비현실적인 주제로 철학을 담은 영화가 진짜 컬트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세상에는 나하고 똑같은 이름에 똑같은 외모에 성격이 똑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 영화의 압권은 폴란드의 베로니카가 노래하다가 탁 쓰러져서 죽는 장면인데, 그때 프랑스의 베로니크는 이를 닦고 있다. 근데 갑자기 막 아파오는 거다. 아무 이유도 없이 너무 슬픈 거다. 자기의 분신이 죽었으니까. 그런 착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음악 역시 너무 좋다. 슬프고 아름답고. 키에슬로프스키 영화의 음악은 항상 즈비그뉴 프라이즈너가 만들었다. 그런 훌륭한 영화음악가가 있었기 때문에 영상과 음악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재미난 것은 반 부덴 메이어라는 네덜란드 작곡가의 존재인데, 영화 속에 그의 음악이라며 너무 좋은 곡이 나온다. 내가 음악은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듣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누군지 어서 알아내서 음반을 모조리 수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다 하는 음대 교수들에게 물어봤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더라. 클래식 백과사전에서 찾았는데 거기에도 없었다. 거기는 한곡만 남기고 죽은 사람들도 다 나오는데. 이 천재들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다. 반 부덴 메이어는 결국 프라이즈너 자신인 거다. 이 사람 <레드>에도 나온다. 잠깐 등장한 이렌느 야곱이 레코드 가게에 들어가서 반 부덴 메이어 음반을 찾다가 나가는 장면이다. 아무튼 굉장히 고생했다. 이 사람이 천재 콤비가 지어낸 가상의 존재라는 걸 알기까지.
감독 소개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Krzysztof Kieslowski))는
‘타르코프스키를 잇는 최후의 영화예술가’라는 극찬을 들었던 폴란드 감독이다.
텔레비전 영화 <십계 Dekalog> 중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가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A Short Film about Killung>(1988)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A Short Film about Love>(1988)이라는 극장용 영화로 재편집돼 88년에 개봉된 이래 유럽 영화계는 이 폴란드 감독의 동태를 주시했다. 90년대 이후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La Double Vie De V onique>(1991) <세가지 색> 삼부작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키에슬로프스키는 영화로 철학을 표현할 수 있는 현대 서구의 유일한 영화예술가의 지위를 누렸다.
68년 우츠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하고 <사진 From the City of Ludz>(1969)이란 기록영화로 데뷔한 후 영화감독 키에슬로프스키는 68년 3월의 학생봉기, 70년 12월의 자유화 운동, 76년의 노동자 시위사태, 80년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연대노조 운동, 그리고 81년 야루젤루스키 정권의 계엄령 선포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폴란드사회가 그렇게 혼란을 겪는 동안 폴란드영화는 부흥기를 맞았다. 70년대 중반 아그네츠카 홀란드, 안토니 크라우즈, 리자드 부가예스키, 마르셀 로진스키 등의 감독이 이른바 ‘도덕적 불안의 영화’로 정의되는 폴란드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 안제이 바이다 감독 등이 이끌었던 ‘폴란드 유파’가 폴란드영화의 현대적인 어법을 발굴해냈다면, ‘도덕적 불안의 영화’ 세대는 긍정적인 전망이 보이지 않는 폴란드 현실을 불안하게 짚어냈다. 키에슬로프스키는 물론 ‘도덕적 불안의 영화’ 경향을 띤 감독 중 한사람이었다. 이 시기에 만든 가장 뛰어난 작품은 <노동자들 ’71>로 71년 슈체친에서 일어난 노동자 파업사태를 찍은 것이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첫 극영화는 <어느 당원의 이력서 Personel>(1975). 50분짜리 중편이며 원래 텔레비전 방영용으로 만든 작품인데, 독일 만하임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지하 폴란드 공산당원이 징계문제로 당 조사위원회에 호출되어 심문받는 과정을 기록영화 형식으로 담았고 50분 동안 심문관과 피심문자의 얼굴 클로즈업만으로 계속 이어가면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놀라운 작품이다. 키에슬로프스키의 본격적인 장편 극영화 데뷔작 <상처 Spokoj>(1976)는 모스크바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키에슬로프스키는 ‘도덕적 불안의 영화’ 세대의 리더로 국내외에서 확실한 주목을 받았다. 현실을 혼란한 마음으로 통찰하던 이 폴란드 감독은 곧 유럽영화계의 자본과 줄이 닿았고 그 계기가 된 것은 바르샤바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십계> 연작이다. 84년에 <결말없음 Dlugi Dzien>이란 영화를 만들면서 같이 각본을 쓴 변호사 출신의 크쥐시토프 피시비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든 <십계> 연작은 큰 성공을 거뒀다. <십계>가 극장판으로 개봉되는 과정에서 서유럽의 자본이 들어왔고, 이런 공동작업 시스템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세가지 색> 연작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피시비츠의 조력을 받으면서 키에슬로프스키는 전 유럽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부상했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동구와 서구의 베로니카란 이름을 지닌 두 여성의 삶을 평행으로 이어붙여 개인의 정체성과 동구와 유럽의 현실, 그리고 삶을 재현하는 영화매체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놀라운 표현의 깊이를 담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섬세하고 화려한 형식미에 매혹당했던 사람들은 <세가지 색> 연작에서 키에슬로프스키의 운명론적인 도식이 너무 지루하게 남용되고 있다고 불평했다. 키에슬로프스키는 본질적으로 비관적인 운명론자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근대적 이상을 모티브로 한 <세가지 색>은 인간의 본성이 그런 이상들과 충돌하는 게 아닌가라는 우울한 진단으로 가득 차 있다.
<세가지 색> 연작의 첫번째 편인 <블루 Blue> (1993)는 자유를 상징하는 블루를 화면의 기조로 깔고 죽은 남편에 대한 기억 때문에 방황하는 여성의 이야기로, 자유를 얻기 위해 사랑의 감정을 버리려고 노력하다가 마침내 사랑을 택한다는 내용이며 <화이트 White>(1994)는 평등을 상징하는 흰색의 의미대로 사랑하기 위해 평등해지려고 노력하는 동구와 서구의 남녀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영화는 더 많은 소유를 전제로 한 터에 평등에 기초한 사랑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것을 오히려 의심쩍게 묻는다. 박애를 상징하는 빨간색을 모티브로 한 <세가지 색>의 완결편 <레드 Red>(1994)는 더 많은 소유가 답이 아니라면 더 많은 사랑이 진정한 해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물음을 탐색하지만 우연의 운명에서 자유롭지 않은 인간의 조건을 차갑게 바라볼 뿐이다.
<세가지 색> 연작에서 키에슬로프스키는 자유와 평등과 박애가 여러 경로로 굴절되는 것을 살피고 그것을 보여주는 유려한 형식미를 보여줬다. 그의 영화에는 기록영화적인 명징함과 수수께끼 같은 운명과 인간의 심리를 보여주는 화려한 스타일이 공존했다. 키에슬로프스키는 미묘하고도 복합적인 삶의 편린들에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가, 불가해한 우연으로 점철된 삶을 끈질기게 바라본다. 그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에서 당대의 역사적 전망까지 포괄하는 사색을 영화로 추구한 드문 영화 감독이었다. / 영화감독사전, 1999
관련 정보 : 씨네 21
http://www.cine21.com/do/movie/detail/main?movie_id=8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