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ng 수업에서 찾기
"My Feet is My only Carriage" - Bob Marley
2009년 7월,
우리는 맨발(barefoot) 칼럼 발표를 시작했다.
발에 대한 고민은
움직임의 학교
창립의 핵심 키워드였다.
그래서 스쿨오브무브먼트
초기 로고에는 베어풋이 박혀있다.
2010년 12월,
최하란 선생은 태국에서 왓포 발 마사지를 배웠다.
발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애초,
우리는 요가를 명상 쪽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특히 나는) 오래 앉아서 하는 명상에 대한 의구심이 갈수록 커졌다.
왜냐하면 전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 이렇게 된 이유가 있지 않겠나.
올해 프랑스를 다녀와 <인요가 :철학과 수련> 을 끝낼 때쯤 명확한 역사적 사회적 이유를 알게 됐다.
왜 유독 양반다리 모양새에 집착해 앉아 명상을 하는지 그 기원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고 나니, 양반다리 모양새 더 나아가 앉아서 명상 하는 것 자체도 지킬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자유로워졌다.
다행히 우리는 2011년에
위빠사나 명상에 대한 관심을
행동으로 연결했었다.
2011년 8월, 미얀마를 직접 다녀왔다.
미얀마는
인터넷, 전화기, 신용카드를 전혀 쓸 수 없었고 빳빳하지 않으면 달러조차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그런 나라였지만
맨발의 땅 미얀마에서 우리는 걷기 명상이 잘 지켜지고 있는 위빠사나 명상을 수련할 수 있었다.
미얀마에서 돌아오고
움직임의 학교에 알아차림 (mindfulness) 수업을 개설했다.
"역사 속으로" 같은 몇몇 특별 수업들도 열었고 그 후로 지금까지 4년 동안 걷기 명상을 기반으로 스쿨오브무브먼트의 알아차림 수업을 이어왔다.
2013년,
반 년 동안 나는
이스라엘에 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중동 땅에서 도심의 모기 떼를 피해
새벽마다 공원에서 모자란 잠을 자고는
몇 시간 씩 걷기 명상을 하던 그 시절,
반년 동안 혼자
움직임의 학교를 운영하던 최하란 선생은
더 많이
달렸다.
그녀는 달리기 대회마다 미니멀 슈즈(발가락 신발)를 신고 달렸다.
덕분에
맨발, 달리기, 걷기에 대한 관심은 진일보 했고
그만큼
최하란 선생의 궁금증도 커져 갔다.
궁금하면 직접 알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최하란 선생은 <젠틀 러닝>의 저자 뷤 선생님을 만나러
그리스의 작은 시골 바닷가까지 찾아갔다.
2013년 8월.
그리스의 코로니
바닷가에서 뷤 선생님을 만나고,
스쿨오브무브먼트의 달리기는
더욱 명확한 방향을 얻었다.
우리는 작은 수업들을 열었고
그 해 《움직임》 책 번역을 탈고했고,
포스트 시즌이 끝난 뒤,
뜻밖에
(그해 골든 글러브 투수상을 수상한)
손승락 선수가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는 2달 반 동안 일주일에 4~6시간 손선수를 지도했고 컨설팅했다.
그러면서
더욱더 뜻하지 않던
방향으로
이 모든 경험들을 종합하기 시작했다.
2014년 10월, 우리는
무에타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사마트 파얏까룽을 만나기 위해서
방콕 외곽의 체육관을 찾아갔다.
사마트 선생님의 제자들과
함께 달리면서
매우 심대한 충격을 받았다!
"유레카!"를 외쳐야 했다.
과연 "유레카!"는 그때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이 깨져 버릴 때,
심지어 지금까지 철썩 같이 믿고 있던 세상의 이치가 뒤집혀 보일 때,
그런 충격적인 인식의 순간, 외쳐야 하는 단어였다.
왜 복서와 낙무에이와 (어린) 야구선수들은 열심히 달릴까?
그들 모두 젠틀 러너다. 대체 그들은 무엇을 얻는 것인가?
머릿속의 쓰레기들부터 다 비우고,
다시 떠올리지도 말며,
해보면 알게 아닌가.
그런데, 달리기가 먼저인가, 걷기가 먼저인가.
순서는 달리기가 먼저 같다.
아래 사진은 내가 12개월 쯤 되던 때다.
그렇게 달리기―걷기로 가설을 세웠다.
그러나 달리든 걷든 일단 두 발로 하는 이동 자체에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
실제 삶에서 두 발 이동이 주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삶에서 두 발 이동을 주류로 회복시켜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현대 도시의 성인임을 잊지 않기로 했다.그것도 (나중에 직업이 뭐가 되든 간에) 최소 19세까지는 거의 모두 하루 종일 지독하게 강제로 앉혀 살아온 한국인 아닌가.
그래서 8km를 걸어서 출근했다.
2014년 11월부터 8km를 걸어서 출근했다. 대략 1시간 30분이 걸렸다.
4개월 뒤 직장에서 3km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 이후로 6개월 동안 매일 6~12km를 걸었다.
최소 6km를 걷는다.
예외는 거의 없다. 누군가 집까지 차를 태워줄 때가 예외다.
거기다 5km 정도를 더 달린다. 매일 그렇게 달릴 때도 있고 일주일에 2번 달릴 때도 있다.
미니멀 슈즈(비보 베어풋 등)를 신거나 맨발이거나 기존 러닝화도 신는다.
(어린) 야구 선수들이나 (옛) 복서들이나 사마트 선생님의 제자들처럼 부드럽게 달리면, 골반을 중심으로 파시아 수준에서 몸이 풀린다. 걷기는 자동으로 회복된다.
그러므로 걷기는 보법의 문제가 아니다.그런 결론에 다가가고 있다.
새가 날거나 물고기가 헤엄치는 데에도 비행법이나 수영법은 없지 않나.
걷기는 고치는 게 아니라 회복되는 것이다.
30분을 젠틀젠틀 달리면
거의 1만 번은 힙에서 인터널 로테이션을 하고,
거의 1만 번은 가슴에서 발가락까지 익스텐션을 하고,
거의 1만 번은 골반과 견갑대를 X로 잇는 연결성을 사용하고,
거의 수만 번은 몸의 측면을 대각선의 격자 무늬들로 교차해 신축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걸으면 잘 걸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움직임의 기초 없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저러한 보상 작용이 계속 생기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강변에 나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이 달리는데,
정말 다양하게 희한하고 신기한 패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2015년 2월 다시,
태국으로 우리는 사마트 선생님과 그 제자들을 찾아갔고
2015년 4월,
프랑스 남부의 보르도에서 더 들어가
떼냑이라는 시골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틱 낫 한 스님이 만들고 이끌어온 절과 플럼 빌리지 (=자두마을) 수도원이 있다.
틱 낫 한 스님은 걷기 명상과 알아차림(mindfulness)에 대해 가장 명망 높고 가장 정통한 분이시다.
걷기 명상 하기에 장소의 좋고 나쁨은 불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당연히 이런 자연이 더 좋다.
이곳에서는 앉아서 명상 하는 시간은 많은 날에 하루 2번,
불과 30분이다.
훨씬 더 많은 시간 동안
걷고,
움직이며,
손을 씻으며,
식사를 하며,
빨래를 하며,
차를 마시며,
일을 하면서,
명상을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또는 그렇게 깨어있고자 하지 않으면서,
단지 몇 시간 동안
혹은 하루 종일
혹은 밤새도록
앉아 명상 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오래 앉아 명상 하는 것은 확실히 건강을 상하게 한다.
우리는 2014년부터
정기적인 수업으로
젠틀 달리기 수업을 열었다.
2015년 8월,
수업을 세 가지로 재편하면서
달리기와 걷기는 움직임 능력의 개선과 확장 수업 즉 Moving 수업으로 들어갔다.
현재 무빙 수업은
간단한 바디 소프트닝을 하고,
인간의 성장 발달 과정을 모사하는 순서로 움직임과 활동 들을 60분 쭈욱 이어간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미씽 링크가 발견된다면 그것을 따로 틈틈이 연습하는 것이 그날 그 수업에서 그 학생에게 제공되는 숙제다. 이 숙제는 그저 매일, 조금이라도 매일 해주면 된다.
현재 대부분의 무빙 수업은 걷거나 달리는 데까지 성공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실용적이면서 유쾌한 수업을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매번 웃음이 넘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약한 고리를 직시하고 보강한다는 것은 때로는 딱딱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요한 일이다. 코드부터 익혀야 곡 연주가 가능할 것 아닌가. 심지어 즉흥 연주나 작곡이 꿈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움직임의 토대 platform를 잘 구축한다면ㅡ 잘 걷고 잘 달리게 된다면, 무빙 수업에서 복합 움직임들과 대인 움직임들을 더 본격적으로 펼칠 수 있다.
우리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