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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영산(靈山) 강화도 마니산(摩尼山)을 찾아서
□ 산행일시/ 2013년 1월 25일 금요일 맑음
□ 참가인원/ 나 홀로
□ 산행진행상황
08시 30분 : 파주집 출발
09시 40분 : 김포시 걸포동 버스정류장
10시 30분 : 강화도 화도면 마니산 입구
10시 35분 : 마니산 상방리매표소/ 산행시작
10시 50분 : 단군로 갈림길
11시 12분 : 웅녀계단
11시 35분 : x314봉
11시 42분 : x315봉
11시 52분 : 단군성전 갈림길
12시 00분 : 삼칠이계단
12시 15분 : x425봉
12시 38분 : 마니산 주봉 (참성단 472.1m)
13시 50분 : x469.4봉
14시 15분 : 정수사 갈림길
14시 40분 : x265봉
14시 54분 : 초피산(242m) 갈림길
15시 03분 : 함허정(팔각정자)
15시 10분 : 마니산 함허동천매표소
15시 15분 : 함허동천 버스정류장/ 산행종료
15시 44분 : 김포시 대곶사거리 버스정류장
16시 15분 : 김포시 걸포동 버스정류장
17시 25분 : 파주집 도착
(총 산행시간/ 4시간 40분)
□ 산행개요
강화도 마니산(江華島 摩尼山)
강화도는 행정구역상으로 대한민국 인천광역시의 북서부 황해상에 위치하고 있는 섬이다.
강화도는 1개 읍, 13개 면으로 면적은 약 302.14km2, 인구는 약67,000명, 세대수는 약 28,600세대이다.
이는 제주도(1,848.2km2), 거제도(378.7km2), 진도(319km2)에 이어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강화도의 역사적으로 변화되었던 강화도의 지명을 살펴보면,
상고시대에는 "갑비고차(甲比古次)" 라 하였고,
서기475년 고구려(장수왕)때에는 "혈구군" 으로, 서기844년 신라(문성왕)때에는 "혈구진" 으로,
서기1363년 고려(공민왕)때에는 "강화부" 로 부르다가,
서기1895년 조선(고종)때에서부터 "강화군" 으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최근 1995년에 "경기도 강화군" 에서 "인천광역시 강화군" 으로 바뀌었다.
강화도는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한반도의 역사를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 하겠다.
선사시대의 유물, 유적으로 하점면 장정리와 화도면 사기리, 동막리 등지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신석기 유물도 강화도내의 여러곳에서 발견 되었다.
또한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거석(巨石) 유적인 지석묘(고인돌)가 하점면 부근리를 비롯한 도처에서
80기 이상 발견되고 있어서 이 지역에서 일찍부터 사람이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강화도는 남북28km, 동서16km, 면적302.14,km2 로서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이다.
마니산은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해발고도 472.1m의 산이다.
원 지명이 두악산(頭嶽山)으로 마리산(摩利山), 머리산 등으로 불렀던 한민족의 영산(靈山)이다.
특히 마리란 머리를 뜻하는 고어로 강화도 뿐 아니라 민족의 머리로 상징되어 민족의 영산으로 숭앙되어왔다.
주변에는 혈구산, 진강산, 길상산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기반암은 화강암, 결정편암이다.
북쪽 기슭에는 화강암반이 비교적 넓게 분포하며, 풍화된 사질토와 암괴가 암파 껍질처럼 분해되는
박리현상이 나타나고 거대한 널판지 모양의 암편이 나타나고 기암절벽이 솟아 있는
정상에 오르면 경기만(京畿灣)과 영종도 주변의 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5km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정족산(鼎足山) 기슭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三郞城 사적 제130호)가 있고 삼랑성 안에 그 유명한 전등사(傳燈寺)가 있다.
북쪽 기슭에는 정수사법당(淨水寺法堂 보물 161호)이 있고,
북동쪽 해안에는 장곶돈대(長串敦臺 인천기념물29호) 1기(基)가 있다.
산세가 아기자기 하고 주변에 문화유적지가 많아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이 찾고 있다.
마니산은 지난 1977년 3월에 산 일대가 국민관광지로 지정 되었다.
산정 부근은 경사가 심하며, 서해안에 산재한 섬들과 김포평야 등이 일망무제로 시원하게 조망되고 있다.
백두산, 묘향산과 함께 단군 왕검이 강림한 장소로 유명한 마니산 정상에는 참성단(塹城壇 사적 제136호)이 있는데
이곳에서 전국체육대회 성화가 채화되며, 매년 개천절에는 제전이 올려진다.
또한 이곳의 참성단에 있는 탱자나무(천연기념물 제79호)가 유명하다.
이밖에도 강화도에는 강화산성, 고려궁터, 부근리 고인돌, 국방유적지, 선원사 등의 유적들이
섬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특히 강호도의 강화팔경으로 불리는
연미정, 적석사, 갑곶돈대, 보문사, 전등사, 초지진, 마니산, 광성보는 강화도 관광의 필수 방문코스이다.
□ 산행개념도 및 지도
산행경로 - <상방리매표소~단군로~x314봉~x425봉~참성단~x469봉~x265봉~함허동천매표소>
□ 산행사진
강화도 화도면 상방리 마니산매표소 입구
오늘은 가깝고도 먼 지역인 강화도에 위치하고 있는 한민족의 영산인 강화도의 최고봉 마니산을 오르기로 하고
파주집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차를 몰고 교하신도시를 거쳐서 오랜만에 일산대교를 건너서
김포시 걸포동의 한 교회 주차장에 차를 주차를 하고 산행출발지인 강화도 화도면 상방리로 향하였다.
서울 신촌에서 김포 송정역을 거쳐서 마니산매표소로 가는 3100번 광역버스를 타려고
걸포동 버스정류장에서 추위에 떨며15분 가량을 기다려도 3100번 버스는 올 생각을 아니하고 있어서
마침 강화터미널로 가는 3000번 광역버스가 오고 있어서 무조건 승차를 하였다.
버스안에서 운전기사에게 화도면 상방리 마니산 입구로 가는 노선을 문의를 해 보니
버스기사 하는 말이 3100번을 타야 강화초지대교를 지나서 화도면으로 곧 바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서너 정류장을 지나서 김포2동사무소 앞에서 내려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서 3100번을 탈 수 있었다.
3100번 붉은색 광역버스는 강화 앞 바다의 강화초지대교를 건너서 강화도로 진입하였다.
길상면을 지나서 강화군 화도면 상방리 마니산매표소 입구 버스정류장에 9시 30분이 다 되어 도착하였다.
산행준비를 간단히 하고 5분가량 걸어가서 마니산 상방리매표소에서 1500원에 매표를 하고 산행을 출발하였다.
마니산 상방리매표소를 지나서 포장도로를 조금 올라가니
도로 옆에 설치되어 있는 인천 파랑새산악회에서 설치한 "산악인의 선서" 표석이 보이고 있다.
참성단을 설명한 표석으로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아래와 같은 글이 각인되어 있다.
만길이나 높은곳에
현묘한 단을 쌓았는데
하늘가에 닿았고
가벼운 바람에
맑은 아지랑이는
그윽한 정을 끌어 올리네
망연히 앉아 초파리떼 헤아리니
우리 강토가 눈앞에 질펀하누나
<글 마지막으로 좌측에 글쓴이를 표기하였는데 희미하여 글씨가 알아볼 수가 없다>
잘 정돈되어 있는 참성단으로 올라가는 진입도로
단군로 갈림길
이곳에서 우측으로 단군로가 이어지고, 직진하면 918계단을 거쳐서 참성단으로 오르게 된다.
단군로 갈림길에서 개울을 건너서 우측으로 단군로로 진행을 하였다.
웅녀계단을 지나고...
마루금으로 올라서니 쉼터 안부에 방송시설과 쉬어갈 수 있는 벤취등이 설치되어 있다.
올라갈수록 얼어 있는 눈이 조금씩 많아지는 모습이 보이고...
방금 지나온 x315봉과 그 좌측으로 선수선착장으로 향하는 선수로의 산줄기가 보인다.
마루금으로 올라서면서 우측 뒤로(북서쪽 방향) 계속 조망되는 석모도를 확대하여 바라본 모습
드디어 앞쪽으로 마니산의 주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능선 우측(남쪽)으로 흥왕리 마을과 강화만 앞 바다의 시원한 모습을 바라보고...
x315봉을 지나서 좌측으로 마니산매표소로 향하는 기도원 갈림길이 나타나고...
마니산 단군로 나무계단길
잠시 뒤 돌아 바라본 선수선착장, 뒤로 바다 건너 또 다른 섬 석모도의 모습을 조금 확대하여 바라보고...
잠시 뒤 돌아서 지나온 산줄기의 모습과 능선 우측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강화만 바다의 모습을 바라보고...
x425봉에서 바라본 상방리 마니산매표소에서부터 지나온 산줄기의 모습
x415봉에서 바라본 마니산 정상위에 참성단의 모습과 그 우측으로 x469봉의 모습
x425봉에서 바라본 좌측의 후포항선착장 뒤로 바다 건너 석모도의 모습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강화평야 뒤로 별립산, 혈구산(469m), 진강산(441m) 등의 여러산들의 모습이 보인다.
참성단으로 올라서는 사면의 눈 길
마니산 정상 참성단의 개방시간은 하절기는(10:00~17:00), 동절기는(10:00~16:00)이다.
참성단(塹城壇)
참성단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 산42-1번지 마니산 정상에 있는 사적 제136호이다.
단기 54년(BC2283년)에 단군 왕검께서 한반도 민족의 영화와 발전을 위하여
봄, 가을로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니산 정상에 쌓은 제단이다.
높이 5.1m, 하단의 직경11.75m, 상단 한 변의 길이가 6.5m, 단상의 넓이는 42.25km2 이다.
참성단은 거친 돌을 다듬어 쌓았는데, 아래는 하늘을 나타내는 원 모양이고,
위는 땅을 나타내는 네모난 모양인데 이는 "하늘은 둥굴고 땅은 네모나다" 는 천원지방 사상이다.
제단 아래의 오른쪽 나무 밑에는 샘이 있는데, 지금은 나무로 두껑을 단단히 해 두었다.
뚜껑의 틈으로 샘을 들여다 보면, 물은 보이지 않고, 낙엽과 쓰레기만 보인다.
고려 원종11년(서기1270년)에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고, 1639년 조선 인조17년(서기1639년)에는
단이 허물어져서 다시 쌓았으며, 숙종26년(서기1700년)에도 보수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참성단 중수비는 참성단에서 동쪽으로 직선거리 100m에 위치한 참성단 보다는 조금 낮은 봉우리 아래에 있다.
1953년부터 7선녀가 전국체육대회의 성화의 불을 붙이는데 맑은 날은 햇빛으로, 흐린날은 부싯돌로 불을 붙인다고 한다.
참성단의 소사나무
2009년도에 천연기념물 제502호로 지정되었다는 소사나무 가지에
쌓였던 눈이 녹으면서 생긴듯한 얼음꽃이 만발하여 기가막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성화로(聖火爐)
이곳은 국조(國朝) 단군(檀君)께서 기원전 2283년에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하여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 하시던 성스러운 곳으로 이 성화로는
매년 전국체육대회때 7선녀에 의해 채화된 성화를 보관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다.
참성대에서 바라본 흥왕리 일대와 강화만 앞 바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
참성단에서 바라본 가야할 x469봉과 그 뒤로 좌측의 정족산과 그 우측으로 진강산의 모습이 보인다.
참성단에서 바라본 강화평야 뒤로 가운데 진강산(x441.3m)을 중심으로 강화도 일대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는 기가막힌 모습으로 좌측의 별립산에서 가운데의 진강산 뒤로
혈구산의 모습이 살짝 보이고 우측 저 멀리로 한남정맥의 마지막 산인 문수산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참성단을 내려와서 헬기장에서 뒤 돌아본 참성단과 그 뒤로 x425봉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참성단의 소사나무에 보이던 얼음꽃이 마니산 정상 부근의 모든 나무에서 보이고 있다.
참성단을 한 번 뒤 돌아보니 사시나무의 얼음꽃이 마치 하얀꽃 같이 보이고 있다.
헬기장에서 다시 한번 바라본 후포항 선착장 뒤로 석모도와 저 멀리 별립산의 모습과
이곳에서도 아쉽게 살짝 보이는 혈구산의 모습과 그 앞쪽으로 진강산과 중앙 저 멀리로 문수산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헬기장에 세워져 있는 마니산 정상표지목
헬기장에서 바라본 x469봉의 모습과 초피산, 정족산, 길상산이 보이고, 뒤로 동검도의 모습이 살짝 보이고 있다.
헬기장에서 다시한번 뒤 돌아 바라본 참성단의 모습
참성단 중수비(塹城壇 重修碑)
- 인천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13호 -
이 비는 참성단을 개촉한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암벽에 정남향으로 가로50cm, 세로105cm의
음각 테두리를 마련하고 그 안에 글자를 새겨 넣었다.
명문은 1행부터 7행까지는 각 30자, 8행은 28자, 9행은12자로 모두 250자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강화유수 최석항은 조선 숙종43년(1717년) 봄에
관내를 순시 하면서 마니산에 올랐다가 참성단의 상당 부분이 무너진 것을 보고
선두포 별장과 전등사 총섭승에게 중수를 명하여 공사를 마쳤다고 한다.
참성단의 보수와 개축은 여러차례 이루어 졌는데
조선 인조17년(1631년)의 중수는 일반 년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나
조선 숙종43년(1717년)의 중수는 참성단 중수비를 통해서 만이 확인된다.
- 바위에 각인 되어 있는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우리나라 국토 수천여리를 통틀어 강화는 나라의 방패가 되는 중요한 곳이며,
강화 수백리에서도 마니산은 나라에서 제사를 드리는 명산이다.
이 산 서쪽 제일 높은곳에 돌을 쌓아 만든곳이 있으니 이곳이 참성단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돌을 쌓아 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하던 곳이라 한다.
돌이켜 보건데 연대가 오래되어 비, 바람에 씻기고 깎여 서쪽과 동쪽 양면이 무너졌으며,
동편 계단 또한 많이 기울어져 이 고을 여러 어른들이 서로 더불어 개탄한지 오래 되었다.
부족한 내가 이곳의 유수로와 이 고을을 지키게 되어,
올 봄에 고을을 두루 살피면서 시험삼아 한번 올라가 보았는데 분연히 이곳을 중수할 뜻이 생겨
선두포 별장 김덕하, 전등사 총섭승 신묵에게 그 일을 주관하게 하여
다시 쌓게 하니 열흘이 채 아니되어 공역을 다 마쳤다.
아! 무너진 곳을 일으키고 고치어 옛 모습을 잃지않게 하는 것은
고을을 지키는 자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이다.
하물며 단군은 (중국의) 요 임금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시어,
실로 우리 동국 백성의 조상이 되시는데,
(손수) 단을 쌓아 하늘에 청결한 제사를 드리던 곳 임이라!
수천년이 지나도록 후손들이 우러러 보며 공경할 곳이니
고쳐서 안전하게 하는 일을 어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신묵이 일으 시말을 기록하여 후인들에게 이를 알리기를 청함으로 이를 써서 기록하는 바이다.
정유(1717. 숙종43) 단양월(端陽月 5월) (강화) 유수 최덕항이 기록하다.
앞쪽으로 가야할 x469봉의 모습과 좌측 뒤로 길상산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이름도 예쁜 칠선녀교를 지나고...
x469봉으로 가는중에 잠시 뒤 돌아 바라본 x469봉과 바로 뒤가 참성단이 있는 마니산 정상이다.
암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x469봉의 모습으로 정상에 삼각점은 없고 안내문만 보인다.
x469봉에서 바라본 내려서야할 산줄기의 모습으로 좌측의 초피산의 모습과 그 뒤로 보이는 산이
지난 2011년 4월 9일날 강화지맥 산행시 이어갔던 정족산이고 그 우측으로 보이는 우람한 산이 길상산의 모습이고
희미하게 김포시내의 모습이 보이고 우측 저 멀리 한남정맥의 계양산에서 김포의 가현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이고 있다.
함허동천 방향으로 내려서면서 마지막으로 바라본 강화도 일대의 모습으로
좌측 저 멀리 별립산에서 가운데 웅장하게 보이는 진강산과 우측 저 멀리의 김포 문수산의 모습이 보인다.
함허동천으로 내려서면서 마지막으로 바라본 좌측의 초피산과 그 뒤로
낮으막한 모습의 정족산과 우측으로 진강산의 모습과 강화도에서 바다가 가로막은 동검도의 모습등이 보이고 있다.
x469봉의 암봉에서 아래로 내려오니 함허동천과 정수사 갈림길에 이정목이 보이고...
여기까지 아이젠을 착용하지않고 왔는데 함허동천으로 내려서는
미끄러운 급경사에서 할수없이 여기서부터 아이젠을 착용하고 내려설 수 밖에 없었다.
함허동천 갈림길
이곳에서 능선길로 직진하면 초피산으로 이어지고 좌측 방향이 함허동천 방향이다.
마지막 함허동천매표소가 가까운 지점에 이르니 완만한 길이 이어지고...
마니산 함허동천매표소
함허동천(涵虛洞天)
조선 전기의 승려 기화(己和)가 마니산 정수사를 중수하고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하여서
그의 당호(堂號)인 함허(涵虛)를 따서 함허동천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전해지는데
계곡의 너럭바위에 조선시대 기화가 써 놓았다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 이라는 "涵虛洞天" 네 글자가 남아 있다.
마니산 서쪽 기슭에 펼쳐져 있으며, 빼어난 산세를 끼고 곳곳에 거대한 너럭바위들이 흩어져 있다.
이 바위들을 넘너들며 흘려내리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고
특히 계곡 한 켠에 200m에 달하는 암반이 넓게 펼쳐져 있어 마니산의 절경르로 꼽힌다.
계곡 아래에는 한국 최고의 야영장으로 꼽히는 함허동천야영장이 자리잡아 여름철이면 야영인들로 북적인다.
5곳의 야영장 외에 체력단련장, 극기흔련장, 팔각정, 샤워장 등 각종 부대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돌담을 두른 주변의 초가에서는 민박도 할 수 있어서 이곳 함허동천은 사계절 관광지로 이름이 높은 지역이다.
함허동천 버스정류장에 15시 15분에 도착하여 오늘의 마니산 산행을 마치고 배낭을 벗어놓고
동쪽을 바라보니 지난 2011년 4월 9일날 저 길상산에서 택리마을로 내려서서
강화지맥을 마치면서 저 오른쪽의 물 건너 동검도의 모습을 바라보던 것이 엇 그제 같았는데...
벌써 2년이 지났으니 참으로 세월이 유수와 같이 빠르게 흐르는 것을 실감할 수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곳 버스 정류장에서 막연하게 강화터미널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분오리돈대쪽에서 카니발 한대가 오고 있어서 손을 드니 반갑게 멈추어 히치를 할 수 있었다.
운좋게도 차주님이 잠시 강화도에 업무를 끝내고 김포집으로 가는 길이라면서
김포 대곶사거리 버스정류장에 내려주어서 곧 도착한 60-3번 버스를 타고 쉽게 김포시로 나올 수 있었다.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김포에 도착하여 걸포동에 주차한 애마를 회수하여 편안하게 귀가할 수 있었다.
그날 강화도의 함허동천에서 김포시 대곶사거리까지 태워주신 김포시에 사시는 카니발 차주님 고마웠습니다.
무원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