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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에 카페 회원 한 분으로부터 질문을 담은 쪽지를 받았다.
그분은 한국에서 발도르프 교육학을 공부하셨고, 지금도 동료들과 공부를 하시는 분인 것 같다.
그런데 어떤 매체를 통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분의 동료들이
발도르프 교육학의 배후에 뉴에이지 운동의 일종인 이단적인 기독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대부분 그렇듯이 아마도 그분의 동료들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고,
그 사실을 목사님들께 여쭈어 보기도 하면서
과연 어떻게 하면 발도르프 교육학에서 '사탄적인 요소'를 분리해 낼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등장 했다고 한다.
그 모든 것들이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들이 닥쳐서인지
여러 가지 고민들과 걱정들이 섞인 쪽지의 내용에서 세 가지 질문을 읽어 낼 수 있었다.
1. 발도르프 교육학은 기독교적인가?
2. 신지학, 뉴에이지 그리고 슈타이너의 인지학과의 관계.
3. 인지학 교회(그분의 표현으로는 ‘슈타이너 교회’)가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너무나 명료하다. 독일어로 'Jain~, 네아니요'다.
발도르프 학교는 인지학을 기반으로 한다는 의미에서 범인간적-기독교적 학교다.
그러나 도그마로서의 종교를 교육하는 미션스쿨은 아니다.
여기의 이 ‘기독교적’이란 단어는 오늘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제도적 교회들이 의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도그마가 진실이라고 믿는 이들이 ‘이단적’이라고 판결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종교가 그 초기상태에서 ‘이단’이라고 낙인찍히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막강한 권력과 조직으로 유럽문화를 다스려온 카톨릭 교회도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공인이 있기 전까지
지하무덤 카타콤베에서 예배를 드려야하는 이단종교가 아니었던가?
오늘날 개신교의 아버지인 마르틴 루터 역시 수 년 동안 독일 아이제나흐의 궁성 지하실에 숨어 살면서 성경을 번역하였고,
16세기 유럽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카톨릭 교회에 의해서 이단으로 처형되지 않았던가?
모든 새로운 사상은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존의 도그마에 의해서 이단으로 낙인찍히기 마련이다.
온라인상으로 인지학적 기독론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무의미한 짓이다.
그래서 그냥 간단히 두 단어로 축약하자면 이렇다.
인지학적 기독교 = 인간 중심적 그리스도교
(여기의 그리스도 역시 지난 이천 여년 간 교회를 통해서 그들의 도그마로 변질시킨 그리스도의 의미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슈타이너는 의식영혼시대에 사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외적인 기관으로서의 교회가 더 이상 필요 하지 않다고 하였다.
자신의 내부에 이미 살고 있는 그리스도를 인식하는 것이 인간의 과제이고,
바로 자신 내부에 그리스도가 살고 있음을 인식하기 때문에 내 건너편에 선 사람 역시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바로 교회이며,
내 건너편에 선 타인을 만나는 그 순간이 바로 제례이며, 의식이라 하였다.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죽음>에서 의미에 따라 인용함.)
3번의 질문에 해당하는 ‘슈타이너 교회’,
즉 인지학 교회에 해당하는 크리스텐게마인샤프트(Christengemeinschaft)는
1922년 개신교 목사였던 프리드리히 리텔마이어(Friedrich Rittelmeyer)가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기독론에 근거해서 슈투트가르트에 처음으로 건립하였으며,
오늘날에는 각 도시에 한두 개씩 설립되어 있다.
‘슈타이너 교회’가 있다고 해서 인지학 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그곳에 가야하는 의무는 없다.
오히려, 더 정확히 말하면, 인지학 하는 사람들이 슈타이너 하우스에 별로 가지 않듯이, 그 곳 역시 ‘거의 가지 않는 곳’이다.
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실제로 인지학을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그 교회와 무관한 듯이 보인다.
인지학계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지 이제 거의 7년이 되어 가지만,
‘슈타이너 교회’에서 좋은 강연이 있으면 내가 스스로 가끔 찾아가는 적은 있어도,
아직까지는 내게 그 교회에 나오라고 권하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어떤 사람이 ‘인지학 목사공부’하겠다고 하면 내 주변의 인지학 하는 사람들은 어이없는 표정을 짓기 일쑤다.
탈종교성이 이미 생활화 된 유럽에서,
즉 기관으로서의 종교가 더 이상 어떤 권위도 지니지 않는 유럽문화 경향에서는
소위 말하는 그 ‘슈타이너 교회’라는 것이 인지학계 내에서도 특이한 위치에 있는, 논쟁적인 위치에 있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지만 습관적으로 아직 있는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다.
2번의 뉴에이지 운동과 인지학의 관계는 조금 복잡하다.
소위 요즘에 의미하는 그런 뉴에이지가 한국에 언제 들어 왔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뉴에이지의 근원은 거의 2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은 아직 푹 잠을 자고 있던 18세기에 유럽은 산업혁명을 거의 완성하였고,
교통의 발달로 세계 각 지역과 문화교류를 하였다.
당연히 인도, 일본, 중국 등으로부터 동양문화를 받아 들였으며,
그런 것이 예술에서는 인상주의에서, 후에는 표현주의로 드러난다.
산업화로 인해서 인간의 삶이 내적으로 황폐해졌지만
권위의 상징이었던 교회가 그 빛을 잃어 가면서 정신적인 면을 채워 줄 수 없었기 때문에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이 정신적 대용물을 찾으면서 동양의 종교, 비학수행 등에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으며,
다양한 종류의 불교, 요가수행 등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당시에 살았던 예술가, 철학자, 심리학자, 작가 등의 전기를 조금만 깊이 있게 들어가 보면
상당히 많은 수가 신지학회 회원들이었다는 점에서 그 양상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유럽에도 외적인 종교기관으로서의 카톨릭 교회에 병존하여
소하르, 카발라, 그노시스, 로젠크로이츠, 템플러, 프리메이슨 등등 비학수행의 계보가
인도를 위시한 동양에 못지않게 다양하고 강하게 지속되어 왔었다.
유럽의 이런 비학 수행을 일반적으로 신지학(Theosophie)이라 하며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신을 향한 종교적 추구, 초감각적 인식추구가 된다.
19세기 중엽에 비학자 헬레나 블라바츠키가 이 신지학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비학수행조직을 위한 명칭으로 차용하였으며,
그로 인해서 오늘날에는 좁은 의미에서 이 블라바츠키의 조직을 신지학협회로 부른다.
당시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이 신지학회에서 가입하였듯이,
젊은 루돌프 슈타이너는 19세기 말에 오스트리아 신지학회 지부장이었던 프리드리히 엑슈타인의 추천으로
신지학 수행에 입문하였으며, 1907년까지 독일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신지학회에서 활동을 하였지만 슈타이너는 당시 신지학회에 만연하였던 퇴행성을 항상 강하게 비판하였다.
1907년 당시 신지학회장이었던 안니 베산트가 인도인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를 예수의 환생으로 떠받들기 시작하자
슈타이너는 그 해 10월 뮌헨 콩그레스를 계기로 신지학회를 떠났으며, 1912년 인지학회를 설립하였다.
유럽의 이런 저런 새로운 정신적 추구가 이민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전파되었으며,
그 마지막 종착지인 캘리포니아에서 1960년대에 히피 운동으로 그 정점을 장식하였다.
그 히피 운동의 파편에 해당하는 청바지와 미니스커트, 장발이 1960년대 말에 한국으로 튀어갔다.
뉴에이지라는 단어는 다음 성좌인 ‘물병자리’가 다가온다는 의미에서, 즉 새 시대가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 원래의 의미에서 완전히 분리되어서
미국의 서부에서는 주로 동양 요가사상, 불교 등과 연관된 사마지(사회)운동,
대안적 영성추구 운동, 더 나아가서 환경운동 등을 그렇게 부른다.
80년대에 유명했던 구루 중에 하나였던 라즈니쉬가 바로
미국 오레곤의 포트랜드 주변에 사마지를 세웠던 적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미국 서부에는 현대 구루들이 무수하게 살고 있고,
말하자면 옛 인도 수행법으로 물질에 치여 사는 미국인들의 돈을 거두어들인다고 할 수도 있다.
(나도 1990년대 초반에 그곳에서 잠시 그런 일을 하였기 때문에 그 실상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저런 복잡다단한 과정에서 인지학 역시 그 뉴에이지 운동의 조상 정도 된다는낙인이
주로 기존 교회세력을 등에 업고 연구하는 이들에 의해서 찍히곤 한다.
*
어떻게 하면 ‘이단 기독교적인 요소’를 발도르프 교육학에서 분리해 낼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실로 간단하지만 역시 무의미한 ‘짓’이다.
간단하다는 의미는, 이미 고안된 발도르프 학교의 방법론을 그냥 갖다 쓰면 되고,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가슴 속에서 키우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근거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교육예술 2, 방법론과 교수법>에서 슈타이너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자신이 제시한 방법론을 그대로 적용하기 보다는,
교사 스스로 영혼 안에서 생동적으로 되어 자신의 어린이를 위한 방법론을
어린이 같은 정서로 발견해 내는 것이 관건이라 하였다.
달리 말하자면 교사 스스로 진정으로 인지학을 살라는 것이다.
어린이의 영혼과 정신이 어떻게 신체 내부로 기나긴 시간 동안 스며들면서
그 신체를 형성하면서 스스로 드러나는지를 교사가 볼 수 있는 눈이 없다면,
슈타이너가 아니라 어떤 할배가 만든 최상의 방법론도 바로 그 사람의 교실에서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적인 요소(이단적인 기독교성)를 정신적인 활동(발도르프 교육)에서
‘분리’해 내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내게는
‘독실한 기독교신자’라는 그 정신적 명칭에 너무나 어긋나게 물질적으로 보인다.
세상에 눈으로 보이는 어떤 것도 절대로 분리되어서 고립된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연결되어 있기 마련인데,
하물며 정신자산에 해당하는 종교성과 교육이 어떻게 분리될 수 있을까?
슈타이너는 ‘교육’이 예술이며 종교의식이라 하였다.
“... 그 위대한 예술에서는, 음이나 색채처럼 죽은 예술적 재료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이 미완성의 상태에서 우리에게 맡겨집니다.
그 인간을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는 예술적으로, 교육적으로 완성된 인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 속에 태어나고, 새롭게 드러나고 현시하는 그 신적-정신적 존재를 교육으로 육성하는 것이
최상의 신성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교육적 과업이 문자 그대로 최상의 의미에서 종교적 의식이 아닙니까?
우리에게서 가장 신성한 감성에, 바로 종교적 감성에 바쳐진 인류의 노력이,
소질로서 현시되는 인간의 신적-정신적인 것을 성장하는 어린이 안에서 양성하려는
그 성찬식에 합류되도록 해야만 하지 않습니까?
생동하는 학문!
생동하는 예술!
생동하는 종교!
이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업입니다....“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앎, 자유 발도르프 학교 개교사 중에서>
*
발도르프 학교의 기독교적 성격에 대해서는 독일의 교사 교육과정에서도 별로 다루지 않는다.
그 이유는 소위 ‘기독교적’이라는 단어가 너무 오해의 소지를 많이 담고 있기도 하지만
-유럽인들에게는 ‘기독교=카톨릭=진부함’이라는 공식이 뼛속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기 바란다. -
발도르프 학교에서 인지학적 기독교를, 그리고 인지학 자체도 도그마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마도 인지학적 종교성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교육대학 외부에 산적해 있기 때문이기도 해서 일 것이다.
궁금하면 ‘슈타이너 교회’에 가서 물어 보아도 되고,
슈타이너 하우스에 있는 수 많은 강연들 중에 하나를 골라서 들어보면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인지학을 접할 기회가 발도르프 교사 연수과정 외에는 거의 없다 보니,
당연히 이런 문제도 교사 세미나의 과정에서 다루어야 하는데,
집중강좌 겨우 일 년에 두 번, 주말 강좌 겨우 한 달에 두 번,
어떤 곳은 한 달에 한 번 밖에 안 하니 언제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다룰 시간이 있을까?
특히 우리 세미나를 제외한 다른 세미나에는 주로 독일 강사들이 오니 한국인들의 이런 문제를 알 리가 만무다.
(우리 세미나 연수생들은 인지학적 기독론은 아직 듣지 않았지만,
발도르프 학교가 적어도 기독교적 성격을 띤다는 정도는 이제 알고 있다.)
실로 인지학적 기독교는 한국인들이 인지학을 깊이 있게 실천하기 위한 커다란 걸림돌이다.
그런데 그것은 비단 한국인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도 종교 문제로 고민하다가 학교를 그만 두는 경우 왕왕 있다.
그런데 내 학생 중에는 개신교 목사도 있다, 나보다 나이가 세 살이나 많은...
그 사람과 자주 깊은 대화를 나누는데,
슈타이너가 말하는 모든 것을 자신은 아직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인지학을 기반으로 해서 세상에 생겨난 것을 보면 인지학의 가치를 부정할 수 없다고 한다.
자신에게 더욱 내적으로 소중한 것은, 인지학을 통해서 예전에는 따로따로 떨어져서 존재하던 것들이
점차적으로 연관성을 띠면서 커다란 하나의 의미로 완성되어 간다는 느낌이라고 한다.
3년 전에 그 사람의 입학면담을 하필이면 내가 했었는데,
이력서를 드려다 보고 내가 가장 먼저 물어 보았던 말이:
“개신교 목사인데, 인지학적 기독교와 상반되는 것들을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느냐?”였다.
“목사 일에 치여서 몹시 힘든 상태에서 인지학계 의사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났다.
상반된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냥 그대로 두고,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배우면서 나아가고 싶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려있음을 암시하는 그 사람의 이 대답이 나를 안심시켰고,
나중에 교사회의에서 다른 동료들의 염려 역시 붙들어 맬 수 있었다.
자신의 믿음, 신조, 개념으로 ‘이단’이라거나 ‘사탄의 일’이라는 식으로 판결을 내리고 부정하기 보다는,
내 믿음과는 달라도 그냥 일단은 두고 보는 열린 자세,
슈타이너의 말을 빌면 ‘선한 의지’를 내적으로 키우지 않으면
진정으로 발도르프 교육을 실천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첫댓글 ..열린자세 라는 말 깊히 공감합니다.
샘... 오늘 복사해서 프린트 해둡니다. 정신차리고 다시 들어올게요...ㅎㅎㅎ
저자신의 발도르프 교육과 뉴에이지,종교 등등 오해에 도움이 많이 되는 글입니다~저희 대구대안교육까페로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