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일(토), 개천절
전날엔 영남알프스를 꿈꾸었다. 신불산으로 갈까? 재약산으로 갈까?
아침에 눈을 뜨니 10시가 조금 지났다.
아내는 어디를 가려는 것인지 꽃단장을 하고 있다.
아들은 어제 양산 외갓집에 갔다. 오늘 양산워터파크에서 무슨 행사가 있는 모양이다.
게으름.
티비를 보다가 자다가 그것도 지겨워서 책을 들었다.
창문 밖의 날씨은 어제만 못한 것 같다.
1972년2월에 국민학교을 졸업하였으니.....책꽂이에서 앨범을 빼들었다.
먼저 이승을 떠난 친구들도 제법 된다.
240여명 졸업을 하였는데 졸업 이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친구들이 반이 넘는다.
교실, 1936년경 지어진 건물은 없어지고 지금은 시멘트골조의 건물만 있다.
국민학교 1학년 때엔 8학급이었다. 4학급씩 오전 오후 2부제 수업을 했으니.......
여름날 해질녁엔 교실 바람구멍에서 수백마리의 박쥐들이 날아 가곤 하였다.
앨범을 덮고 의관을 갖출 것도 없다.
물 한통만 들고 나섰다.
등산화, 낙동정맥 700리 산길을 같이한 놈이다.
오늘 신고 동네 뒷산에 가려고 했는데 뒷굼치가 다 헤어졌다. 다른 등산화로 갈아 신었다.
가을하늘의 구름이 예쁘다.
저 구름에 빠알간 물이 든다면 엄청 예쁘겠다.
심심찮게 오는 냉면집. 아들놈이 좋아 한다.
내가 무슨 냉면의 깊은 맛을 알게나만 그래도 이 집 육수가 좋은 것 같다.
운동기구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함박산>으로 곧장 올랐다.
일본은 1m 높이의 산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표고 100m가 넘어야 산으로 쳐준다고 하니....
정상석 옆에 새겨진 이 한자를 풀 수 없다. 나의 부족함이로다.
<登高使人心曠臨流使人意遠>
반대편에 <동행>이란 글이 있는데 내용이 그런대로 좋다.
후후, 내 모습이 가관이다. 모처럼 나무지팡이를 들었다.
김해(金海)을 '금벌'이라고 한다. 황금의 바다~!
가을에 벼가 익으면 넓디 넓은 평야가 황금색으로 변했으니 그것이 꼭 바다처럼 출렁이었을 것이다.
김해평야도 조금씩 도시화 되어 가고 있으니 왜 김해인지를 후손들은 책에서나 보겠다.
한두마리는 벌써 저장하였지만 아직 배가 고픈 모양이다.
꼼짝을 하지 않고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거미도 생존하여야만 한다.
거미 또한 자연의 순리바퀴 중 하나인 것이다.
임호산.
예전엔 이 임호산 밑까지 물이 찼다고 한다. 흥부암(興府庵)의 바위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가야국의 허황후가 돌배를 타고 이곳까지 들어 왔다고 하는 것이 거짓이 아니다.
이곳도 예전에 숲이 우거지고 호랑이가 출몰하였던 모양이다.
경운산(慶雲山)은 해발이 300m가 넘는다. 집에서 2시간반 정도 운동을 하려면 경운산을 간다.
내외동(內外洞), 1990년도 초반에 신도시가 되었다. 1989년 처음 이곳을 와 보았을 때는 논이였다.
초창기에 지은 아파트는 대체로 서민 아파트다.
내가 살고 있는 뜨란채(주공)의 경우 15평형과 21평형이다.
옆단지의 대동아파트도 22평형이다. 동아1차가 그나마 30평형과 40평형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보니 15평형도 40평형도 모두 같은 크기다.
40평형에 산다고 행복할까? 15평형에 산다고 불행할까?
자족할줄 모르는 이는 억만금을 가지고 있어도 가난한 자라고 한다.
끊임없는 탐욕이 스스로를 가난하게 만든다.
김해읍이 있던 곳. 이곳도 많이 변하였고 변하고 있다.
내외동이나 삼계동에 비하면 아파트가 거의 없다. 언제가는 아파트로 숲을 이루겠지.
분성산성과 신어산 마루금이 시내를 아늑하게 만들어 준다.
우측 고층아파트는 작년에 입주한 곳이다. 고속도로 옆의 아파트, 주거환경이 좋을까?
임호산엔 팔각정이 있다. 임호정(林虎亭)이다.
산 아래서 보면 그런대로 운치가 있다. 김해시내를 조망하라고 만들었지만 나무에 가려 제대로
조망하기 어렵다.
서산으로 해가 진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야경을 보고 가야겠다.
야경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조심스럽게 하산하여 주머니를 뒤지니 8,000원이 나온다.
6,000원에 돼지국밥을 사먹고 사무실로 향하는데 뻥튀기부부가 있다.
그들도 반갑고 나도 반갑다. 무려 3개월만인 것 같다.
토요일마다 왔던 부부였는데,,,, 5,000원짜리 강정이 달지 않고 맛 있다.
몇개월을 주말마다 그들을 만나 강정을 사먹었다.
주머니엔 달랑 2,000원. 3,000원짜리를 2,000원에 준다.
강정은 다음주부터 판다고 하니 반갑다.
(1973년 부친은 부산 중앙시장 난장에서 뻥튀기 장사를 1년 가량 하였다.)
오늘 하루, 게으름이 더 컸지만 이렇게 마무리를 한다.
오늘도 기쁨은 없었지만 나름 행복한 날이었다.
가진 자의 눈에는 실패자의 변명이겠지만
나는 오늘도 자족하기에 불행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