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 안녕하신지요. 오늘은 예수회가 개신교회 안에서 벌이고 있는 반종교개혁이 한국의 기독교계 안에서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략하게 조명하려고 합니다.
한 개인을 비난하고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뿐임을 부디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작년 11월 돌아가신 정원목사라는 분이 책에 쓰신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기도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내가 가장 감미롭고 풍성하게 느꼈던 것은 주님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예수.. 충만..” 하는 짧은 문구를 드리며 기도할 때였습니다. 나는 수천 번, 수만 번, 수십만 번이 넘게 이 문구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점차적으로 예수의 영, 예수님의 임재가 전심을 뒤덮는 듯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온 몸에 황홀한 전율이 휩쓸고 가기도 했고 강렬한 임재 속에서 숨을 쉬기도 힘들 때도 있었고 기쁨과 황홀함으로 심장이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 정원목사, <예수호흡기도>, 영성의 숲, 2009년, p34
위의 내용은 “기독교포털뉴스” 기사(http://www.kporta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465)에서 가져온 내용인데요.
제가 전에 33도 프리메이슨 로버트 슐러에 대해 다뤘던 내용에 대해 기억하십니까?
프리메이슨과 로마 천주교 예수회의 반종교개혁 - 파트 3
정원목사가 ‘예수호흡기도’에서 공개한 기도법은 사실 33도 프리메이슨 로버트 슐러가 소개하는 오컬트 영성 수련법인 주문을 외우면서 명상하는 만트라 초월 명상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옳음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영입니다.”라는 글을 접해 보셨습니까?
제목: 옳음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영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의 영으로 하지 않은 모든 말과 행동은 아무리 논리적으로 옳아 보여도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마음을 상하게할 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무엇이 옳고, 그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은 우리가 논리적으로 옳은 입장에 있는가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했느냐고 물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말하고 봉사했느냐고 물으십니다.
진정 상대방을 사랑하는 자에게서는 말과 행함을 통하여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이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진정 사랑하지 않는 이들에게서는 날카로움과 정죄의 기운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그들은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옳음과 자신의 지식과 자신의 견해를 상대방보다 더 사랑하며 귀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그들은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를 도울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사랑이 결여된 많은 가르침과 조언은 비록 맞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을 피곤하게 만들 뿐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영과 영은 서로 통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진정 자기를 사랑하며 자기를 받아주는 사람들에게 본능적으로 마음을 열고 그 메세지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방들이 바르지 않은 영을 가지고 공격적으로 권면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영을 답답하게 눌리게 만듭니다. 그러한 조언을 거절하는 것을 자아가 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말에는 영적 기운이 있습니다. 악하고 독한 기운이 흘러나온다면 그 말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독약을 먹으면 죽습니다. 그것은 말도 마친가지입니다. 우리는 항상 겸손함과 낮은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분별 없이 함부로 모든 말들을 받아들여서 영적으로 약해지고 눌릴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고 싶을 때 상대가 예뻐 보이지 않으면 아무런 권면도 하지말고 그저 침묵하십시오. 그것은 상대방에게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상대가 너무 사랑스러우며 그의 잘못도 실수도 그저 예쁘게 보인다면 당신은 상대방의 문제점에 대하여 부드럽게 권면할 수 있으며 그것은 상대의 영혼에게 빛과 기쁨과 깨우침을 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잘못과 실수를 용서하시며 우리를 항상 받아주시고 사랑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립시다. 그분은 우리의 잘못에 대하여 항상 사랑과 은총이 충만한 영으로 우리를 권면하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음성과 가르침은 비록 꾸짖음일지라도 우리의 생명과 능력과 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은 그러한 사랑의 권면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사역이며 우리가 천국의 생명을 공급하는 생명의 도구가 되는 길인 것입니다.
- 정원목사
굉장히 좋은 내용의 글인 것 같지만… 사실 이 글에는 다량의 독소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 글은 33도 프리메이슨 로버트 슐러가 말한 것처럼 서로의 다른 관점을 공격하지 말고 다만 공통분모에만 집중해야 하고, 죄인이 자신의 잃어버린 바된 상태를 깨달을 수 있도록 권면하고 돕기보다는 입을 다물고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서로 포용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라는 잘못된 사상 위에 기초하여 쓰여진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죄가 엄하게 책망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그냥 살짝 덮어주시고 넘어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죄를 덮어주기만 하고 책망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출애굽 당시 금송아지 사건 때 모세가 아론과 범죄한 백성들에게 어떻게 하였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모세는 산에서 내려오며 “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십계명을 기록하여 주신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렸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괜찮아… 괜찮아… 다음부터는 대놓고 이러지 말고… 금송아지는 레위인들이 안 볼 때만 몰래 숭배하고 평소에는 저기 뒤에 숨겨놔…”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금송아지를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우”게 했습니다. 또한 백성으로 방자하게 행하게 만들어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만든 아론을 “이 백성이 네게 어떻게 하였기에 네가 그들로 중죄에 빠지게 하였느뇨”라고 책망했고, 권고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은 사람들을 범죄에 참여하지 아니한 레위 자손들에게 칼을 차고 가서 도륙할 것을 명했습니다.
무자비하고 끔찍한 일처럼 보입니까? 그러나 여러분 아십니까? 성경은 이러한 모세를 당시 세상에서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 12:3)고 칭찬하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위하여 대노하여 백성들을 호되게 책망했습니다. 지도자 아론의 죄를 거침없이 책망했습니다. 그가 사랑이 없어서 이렇게 한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길 탄원하며 백성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지 않으실 것이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출 32:32)라고 요청할 정도로 백성들의 구원을 그의 생명 같이 사모하며 백성들을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사랑은 죄인으로 하여금 죄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죄를 분명히 지적하고 책망하고 호소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완강하게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죄인을 다 덮어주고 쉬쉬하고 포용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또한 싯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행하고 우상숭배에 빠졌던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였을 때 시므온 족속의 한 족장 시므리가 대담하게도 미디안 여인을 이스라엘 진영에 데리고 와서 음행했습니다. 그때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창을 손에 들고 시므리와 미디안 여인을 창으로 꿰뚫어서 죽였습니다. 얼마나 잔인합니까? “사랑의 영”으로 다 덮어주고 쉬쉬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여러분 우리는 성경이 비느하스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해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민 25:11~13)고 말씀하시며 그의 충심을 칭찬하셨습니다. 만약 비느하스가 나서서 시므리와 미디안 여인 고스비를 죽이지 않았다면 더욱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로 인한 염병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에 따라 진리의 원칙에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죄의 문둥병에 걸린 사람을 그저 무조건 감싸 안고 용납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깨달았고 죄를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음에도 죄를 버리기를 완강히 거절하는 사람을 그저 무조건 감싸 안고 함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의 문둥병은 번지기 때문입니다.
왕상 18:17~18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여러분 죄를 책망하고 의의 길로 돌아올 것을 호소하는 일은 진정한 사랑이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남한테 싫은 소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한 사람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사업이 실패하고 원수의 조롱거리가 될 때 그 죄를 밝혀내고 책망하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직위나 인기에 손상이 있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죄를 죄라고 감히 책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죄를 책망하는 것은 무자비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은 죄를 책망하고 개혁을 촉구하는 외침을 오늘 정원목사의 글에서 읽었듯이 세상을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파수꾼들이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멸망하는 죄인들의 피 값을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으로 하여금 죄를 더욱 담대하게 짓도록 죄를 묵인하고 용납하는 사람들의 죄를 악을 행하도록 격려한 죄와 동일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악을 행하도록 격려한 죄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더 가증한 죄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진리에서 교회가 배도하여 떠나갈 때 파수꾼들은 진리의 나팔을 크게 불어 깨워야 합니다. 지도자가 정로에서 멀어졌을 때 진리의 나팔을 크게 불어 깨워야 합니다. 백성들이 불법을 행하고 있을 때 나팔을 불고 권면하고 의의 길로 돌아올 것을 호소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감정을 가졌는지로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의 원칙대로 행하였는지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마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여러분 우리는 그 누구에게 책망을 받더라도… 심지어 원수에게 가장 공격적인 책망을 받더라도 그 지적이 옳다면 겸손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지적하는 사람이 어린 아이일지라도 귀담아 듣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행여나 하나님의 법도에서 떠나지 않았는지 살피는 온유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사견이 아닌 진리의 말씀으로 책망을 받았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경험해야 합니다.
고후 7:8~10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부디 마귀의 미혹과 기만이 온 세상 뿐 아니라 기독교계 안에서 더욱 넘치는 이때에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마지막 종교개혁 (말세와 성경 네이버 블로그)
첫댓글 죄는버리지않고 사랑만강조하는사단의기만에서깨닫기를바랍니다
감사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