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교회가 사순시기에 회개와 보속을 위해 실천할 행동으로 권장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자선, 기도 그리고 단식입니다. 실제로 엊그제 재의 수요일 복음 말씀을 통해서 이 세 가지 실천을 통해 사순시기를 거룩하게 지내도록 권고를 받았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은 단식에 대해 가르치고 계십니다.
단식은 식사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재의 수요일에 우리 교회는 보편적인 규범을 정하느라 한 끼 반을 단식하는 것을 권하였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수도자들은 하루 종일 단식하기도 했습니다. 단식을 통해 육신의 지나친 욕망을 절제하는 법을 배우고, 더 나아가 절제한 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돕는 자선도 실천합니다. 이렇게 단식은 개인적으로 덕을 닦는 아름다운 행위이면서, 또한 다른 사람을 향해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는 좋은 방식입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약간 분노한 것처럼 보입니다. 단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의를 먼저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의 악행에서 벗어나야 하며, 지금까지 했던 단식의 방법을 바꾸라고 하십니다. 단식을 했다고 하면서 하느님께 그 댓가를 청하는 뻔뻔함에서 새로운 삶을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내용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나라의 멸망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멸망한 이유는 계약공동체 즉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백성들 사이에 계약을 통해 이루어진 이 공동체가 균열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사람들로 구성된 이 공동체는 어느 순간 부익부빈익빈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배가 고픈 사람들은 단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굶으면 죽으니까요. 반면에 살이 피둥피둥 오른 사람들은 단식을 하느님의 축복을 짜내는 방편으로 삼아 더욱 더 자신이 가진 권력이나 재산을 강하게 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들에게 단식은 행사일 따름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경건성을 입증받고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게 하는 방편일 따름입니다. 이 단식 뒤에는 수 많은 백성의 피눈물과 고혈이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 사실에 진노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단식을 모욕하는 행위에 대해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식을 하기 이전에 먼저 정의를 실천하라고 강권합니다. 정의의 실천이 단식입니다. 정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준다는 것입니다. 뱃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욕심과 살을 찌우는 불의와 부정을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단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단식은 단순히 개인이 하는 덕의 수련이나 경건함과 함께 이 세상을 밝히는 영적인 자세, 특히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우리가 욕심이나 부정을 통해 얻어진 것들을 포기하고 나누는 삶의 방향 전환이 단식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랑이 없는 때에, 즉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때에 당신을 기억하면서 실천하도록 말씀하십니다. 당신과 함께 있는 때는 축제의 시간이지만 그 이외의 시간에는 우리가 그분의 가르침을 기억하면서 단식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말씀드립니다. 지난 재의 수요일에 교회 규정은 없지만 바로 이런 정신으로 저는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께서 헌금을 하도록 조처했습니다. 하루를 단식한 것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신자분들께서 감사하게 이것에 응해 주셨고, 그 결과로 많은 봉헌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것을 우리 본당 근처에 있는 시설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우리 신자들의 경건한 봉헌이 이사야 예언자의 가르침대로 쓰이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사순 저금통이 그냥 장식물이 아니라 작은 나눔이 되도록 우리가 단식의 정신으로 이 시기를 지냈으면 하는 권고도 다시 드립니다. 특히 부모님들께서 우리 청소년들에게 희생하고 나누는 것이 주님의 뜻에 따르는 삶의 방식임을 잘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 58.6-7)
(비전동성당 주임신부 정연혁 베드로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