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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10월 31일 목요일
[(녹)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라며,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고 한다(제1독서). 헤로데가 죽이려 한다는 말에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며, 예언자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6,10-20
형제 여러분, 10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11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12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13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14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15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16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17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18 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내를 다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깨어 있으십시오.
19 그리고 내가 입을 열면 말씀이 주어져 복음의 신비를 담대히 알릴 수 있도록
나를 위해서도 간구해 주십시오.
20 이 복음을 전하는 사절인 내가 비록 사슬에 매여 있어도,
말을 해야 할 때에 이 복음에 힘입어 담대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1-35
31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5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루카 13,33). 계속 가면 죽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계속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루카 복음서에서 예루살렘의 의미는 뚜렷하고,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은 이미 죽음과 부활의 시작입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도 그러한 맥락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시며, 복음을 선포하시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아십니다.
헤로데가 교활하지만 막상 힘은 없어 여우와 같다고 하시면서도, 예언자가 예루살렘에서 죽는 것은 여우 같은 헤로데 한 사람의 탓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예언자의 운명임을 받아들이십니다.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는다는 것은 박해와 거부를 피하여 도망가는 것이고, 제1독서에서도 나온 표현을 빌린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에페 6,19) 선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할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6,19-20 참조). 이 ‘담대함’은 드러내 놓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 비유를 쓰거나 모호하게 돌려 말하지 않고 숨김없이 밝히는 것,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을 뜻하며,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요한(4,13.29.31 참조), 바오로(9,27.28 참조),
바오로와 바르나바(13,46; 14,3 참조) 등에게 적용됩니다. 특히 사도행전의 마지막 구절에서는 바오로가 로마에 잡혀가서도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28,31)라고 말합니다. 죽음도 막지 못하는 담대함, 반대를 받는 것은 말씀을 선포하는 이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기에 예수님께서도, 사도들도 망설임 없이 죽음을 향하여 걸어갔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대로 살아야 할 때, 우리에게도 이러한 담대함을 주시기를 청하여 봅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그리스도인에게 막연한 불안이 없는 이유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두려움으로 예수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루카 13,31)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루카 13,32-33)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생명에 집착하는 겁쟁이로 봅니다. 그래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 정체성이 ‘예언자’라고 하십니다. 예언자는 목숨을 걸고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그 이전에는 죽게 하지 않으실 것을 아십니다.
사람들은 막연한 불안을 가지고 삽니다. 언제 죽을지, 죽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로 예언자직을 수행하는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베트남 전쟁에 맥주 배달하러 간 한 남자의 실화를 그린 ‘지상최대 맥주 배달 작전’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1967년 뉴욕시 인우드에서 성당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치키 도너휴’가 주인공입니다.
미국은 북베트남과 한창 전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치키의 친구들 전사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치키와 가장 친했던 토미까지 행방불명이었습니다. 토니는 치키가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도록 독려한 친구였습니다. 그는 술김에 자신 친구들을 찾아 여전히 미국이 그들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맥주를 전해주고 오겠다고 소리칩니다.
이 소문은 온 마을에 퍼집니다. 치키의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전쟁터에 아들과 애인을 떠나보낸 이들은 그들을 만나게 되면 자신들이 주는 선물을 전해주라고 많은 양의 맥주와 선물들을 싸 줍니다. 가족과 친구들은 치키가 당연히 안 갈 것이라고 은근히 무시합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자신을 믿고 선물을 맡기는 사람들을 실망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베트남으로 떠나는 배를 알아봅니다. 혹시 자리가 없으면 핑계라도 대겠지만 3시간 뒤에 출발하는 배에 딱 한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그는 운명처럼 맥주를 들고 급유 담당으로 배를 탑니다.
2개월 후에 베트남에 도착하고 사흘 동안 휴가를 얻습니다. 혼자 친구들에게 맥주 배달을 왔다는 그를 군인들은 모두 C.I.A. 요원으로 알고 도와줍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그런 일로 전쟁터로 올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다른 친구를 찾으러 최전방까지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점점 그는 자신을 C.I.A.로 믿고 도와주는 군인 장교들의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물론 진짜 C.I.A.에게 쫓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종군 기자들보다 더 훤하게 전쟁의 상황을 파악해갑니다. 그리고 의미 없는 전쟁에 자신이 친구의 입대를 종용한 것을 후회합니다. 친구들은 처음엔 이런 미친 짓을 하는 치키에게 화를 내다가도 나중엔 고마워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치키에게 거짓으로 보도되는 전쟁의 참상을 올바로 깨닫고 미국으로 건너와 그 사실을 알려 빨리 전쟁이 종식되게 하도록 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사명을 모르고 오히려 전쟁을 찬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막상 전쟁터에 가자 불안과 공포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칩니다. 만약 이것이 하느님의 사명으로 인식했다면, 그는 그곳에서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죽음의 때와 장소는 알 수 없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베트남에서는 불안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의 예언자직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알면 지금 이 시각에 나는 절대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와 그 장소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목숨을 잃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물론 그때를 대비해 믿음을 키워가기는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하느님께서 주신 예언자직이 있습니다.
야누슈 코르착은 폴란드계 유대인 의사였습니다. 그는 거의 고아처럼 자란 탓에 부모가 끌려고 홀로 남은 유대인 아이들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고아원을 만들어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하지만 독일군들이 들이닥쳤고 코르착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소풍을 가자고 했습니다. 독일군들은 고르착은 갈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위험할 때 부모가 자녀를 버리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며 그들과 함께 당당하게 가스실로 향했습니다.
비르짓다 성녀의 ‘일곱 번의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 죽기 한 달 전에 죽을 때를 알려주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는 이 기도를 바치는 이는 예언자직을 수행하고 있을 것이란 뜻입니다.
어떤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면 그 사명이 끝나기 전까지는 데려가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 사명이 완수되어 가면 ‘이젠 때가 되어 오는구나!’를 명확히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이전이나 그 때나 불안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나를 봉헌했기 때문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작년 신문사에 있을 때입니다. 성지순례를 5번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과달루페, 이스라엘, 그리스와 터키, 이탈리아, 한국으로 다녀왔습니다. 성지순례를 가려면 준비물이 있습니다. 여권, 핸드폰, 지갑은 필수품입니다. 세면도구, 옷, 책, 노트북도 챙겨야 합니다. 여행사에서 준비한 안내 책자, 묵주, 제의, 성직자 증명서도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외적인 준비를 마치면 내적인 준비를 하면 좋습니다. 신약성서를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준비하고 순례를 떠나도 막상 성지에 도착하면 어려운 상황을 만나곤 합니다. 시차 때문에, 음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같은 방을 사용하는 순례자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날씨가 문제가 될 때도 있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릴 때도 있고, 더위 때문에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이런 질문은 하면 좋습니다. ‘나는 왜 성지순례를 왔는가?’ 성지순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순례를 통해서 배우는 겁니다. 성지순례는 신앙의 선조들이 피와 땀을 흘려 지켜온 신앙을 배우는 겁니다. 우리의 삶은 영원한 생명을 향해 떠나는 순례라고 생각합니다.
33년 사제 생활하면서 많은 분을 만났습니다. 첫 부임지에서의 설렘이 있었습니다. 질풍노도와 같은 시간이 있었습니다. 시행착오도 있었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도 있었고, 자신 있게 갔지만 막다른 길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주파수가 맞으면 방송이 들리듯이, 같은 주파수를 공유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컴퓨터 통신이 등장하고,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동호회, 동아리 모임도 있었습니다. 분에 넘치는 큰일을 맡아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수호천사가 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면 혼자인 것 같았는데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 늘 있었습니다. 말은 없었지만, 먼발치에서 응원해 주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주파수가 늘 우리 곁에 있듯이, 하느님의 사랑이 언제나 제 곁에 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마음의 문을 열기를 바라셨습니다. 마음의 문만 열면 이웃의 사랑과 하느님의 자비는 같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박해의 시대를 견딜 수 있는 준비물을 이야기합니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신앙인들에게 필요한 준비물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2000년 전의 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준비물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하는 준비물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진리, 의로움, 평화의 복음, 믿음, 구원의 투구, 성령의 칼을 이야기합니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설명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이런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로 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준비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이라는 권력 앞에 당당하게 맞섰습니다. 두려워하거나, 피하거나,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남에게 넘기지 않았습니다. 외로움도, 고통도, 죽음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며 우리들 또한 주님의 길을 충실하게 따라가면 좋겠습니다.
<길이 있습니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루카 13,33)
길이 있습니다
언젠가 한 사람이 처음 내었던
거칠고 투박하지만
삶 내음 가득한 길이 있습니다
길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뒤따라 걷기에
넓어지고 부드러워진
걸을 맛 나는 길이 있습니다
길이 있습니다
걷는 이마다 쉬운 길 내려
제멋대로 덧씌운 샛길에 덮여
첫 모습 희미해진 길이 있습니다
길이 있습니다
여전히 따라나선 많은 이들이
온갖 탐욕 깃든 정성으로 가꿀수록
참 모습 감추는 길이 있습니다
길이 있습니다
소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과 하나 되는 이
기쁘게 품에 안는
첫 모습 참 모습
결코 빼앗기지 않을
영원한 길이 있습니다
오늘의 성인
성 포일란 (Foillan)
활동년도 : +655년경
신분 : 선교사
지역 :
같은 이름 : 빠일란, 뽀일란, 파일란
아일랜드 태생인 성 포일란은 자신의 형제인 성 푸르세우스(Furseus, 1월 16일)와 성 울탄(Ultan, 5월 2일)과 함께 잉글랜드(England)로 가서 그레이트야머스(Great Yarmouth) 교외 버그(Burgh) 성에 수도원을 세우고, 이스트앵글리아(East Anglia) 지방을 순회하는 선교사로서 활동하였다. 그 후 펜다의 지휘 아래 머시아(Mercia) 사람들이 그들의 수도원을 파괴하자 그와 성 울탄은 프랑스 지방으로 떠난 성 푸르세우스를 따라 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국왕 클로비스 2세(Clovis II)로부터 환영을 받고 네우스트리아(Neustria)에 수도원을 세우고, 브라반트(Brabant) 사람들을 개종시키는 활동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제자 3명이 살해당하는 슬픔을 맛보기도 하였다.
성 퀜시노 (Quentin)
활동년도 : +287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아미앵(Amiens)
같은 이름 : 궨띠노, 궨시노, 귄띠노, 귄시노, 퀜시누스, 퀜티노, 퀜티누스, 퀜틴, 퀸시노, 퀸시누스, 퀸티노, 퀸티누스
로마(Roma) 사람인 성 퀜티누스(Quentinus, 또는 퀜시노)는 보베(Beauvais)의 성 루키아누스(Lucianus, 1월 8일)와 더불어 프랑스 지방의 선교사로 활동하였고 피카르디(Picardie) 지방의 아미앵에 정착하였다. 그의 설교는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으나 집정관 릭티오바루스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생캉탱(Saint-Quentin)으로 이송되어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퀸티누스(Quinctinus, 또는 퀸시노)로도 불린다.
성 볼프강(Wolfgang)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활동연도 : 930-994년
같은이름 : 볼판고, 볼판구스
독일 남서부 풀링겐(Pfullingen)의 백작인 슈바벤(Schwaben) 가문의 후손인 성 볼프강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 개인교수에게 교육을 받고 이어서 라이헤나우(Reichenau) 대수도원과 뷔르츠부르크(Wurzburg)에서 수학하였고, 그의 친구인 하인리히와 더불어 뷔르츠부르크와 트리어(Trier)의 대성당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의 친구인 하인리히가 956년에 트리어 교구의 대주교가 되자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구 개혁과 교회 쇄신에 앞장서는 하인리히 대주교의 성실한 협력자가 되었다.
하인리히 대주교는 964년 선종하였다.
그 후 성 볼프강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수도생활을 실천하고자 아인지델른(Einsiedeln)의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였다.
그의 뛰어난 학식과 영성을 알아본 수도승들이 그의 가르침을 청하면서 성인의 명성은 곧 나라 전체로 퍼져나갔다.
968년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의 성 울다리쿠스(Uldaricus, 7월 4일)에게 사제품을 받고, 오늘날의 헝가리 지역인 판노니아(Pannonia) 지역까지 침략해 정착한 마자르족(중앙아시아 출신 유목민족)에 대한 선교활동을 하던 중 972년 레겐스부르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즉시 교구 내의 성직자와 수도원 개혁을 단행하는 한편 여러 지역을 다니며 선교활동에 직접 참여하고 설교했으며,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교구민으로부터 ‘위대한 자선가’로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황제를 수행하여 프랑스를 여행하였고, 바이에른(Bayern)의 공작의 아들로 후에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성 헨리쿠스 2세(Henricus II, 7월 13일) 공작의 개인교수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성 볼프강 주교를 시기한 이들의 모함으로 교구에서 물러난 그는 실망하기보다는 평소 소망했던 은수자의 삶을 살고자 한적한 곳을 찾아 떠났다.
오늘날 오스트리아의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 지방에 있는 볼프강 호숫가에 성당을 짓고 말년을 보내고자 했다.
볼프강 호숫가에 있는 장크트볼프강(Sankt Wolfgang)이란 도시는 바로 성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성인의 상징으로 도끼가 등장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볼프강 성인이 호숫가에 성당을 지을 장소를 찾을 때 산 아래로 도끼를 던져 정했다고 한다.
그는 오스트리아 북부를 여행하던 중 병에 걸려 린츠(Linz) 교외의 푸핑겐(Puppingen)에서 선종하였다.
1052년에 교황 레오 9세(Leo IX)에 의하여 성인품에 오른 후 장크트볼프강의 성 볼프강 성당은 주요 순례지가 되었고, 1481년 화가이자 조각가인 미하엘 파허(Michael Pacher)는 성 볼프강과 성 베네딕투스 사이에서 성모 대관이 이루어지는 제단화를 제작했다.
그는 볼판구스(Wolfangus, 또는 볼판고)로도 불린다.
성 유대철 베드로
1826-1839(14세)포청옥에서 교수형
1925년 7월 5일 시복.
1984년 5월 6일 시성.
소년 성인 유대철(劉大喆)은 성인 유진길의 아들로 어려서 아버지의 모범과 가르침을 받아 입교하여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성 유진길아오스딩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하는 서울의 유명한 역관(譯官) 중인 집안 이었다.
천주교에 대해 적대시하고 방해하는 어머니와 누나에게 끊임없는 괴로움을 당했는데, 그때 마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을 보여주었으나 신앙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았으며, 어머니와 누나를 위해 항상 기도했다.
1839년 기해 박해가 일어나자 많은 교우들의 순교사실과 아버지의 체포소식을 듣고 순교하기로 결심하여 자수하였다.
재판관들은 어린 소년을 배교시키기 위해 천만 가지 방법을 다 사용하였지만, 소년 유베드로의 마음은 변치 않았으며,배교시키기 위한 갖은 방법에도 변함없이 오히려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어 형리들을 놀라게 하였다.
어린 나이로 견디기 어려운 혹형과 고문을 이겨냈다.
허벅지의 살을 뜯어내며 "이래도 천주주교를 믿겠느냐?"하고 으름장을 놓는 형리에게 "믿고 말고요. 그렇게 한다고 제가 하느님을 버릴 줄 아세요?"라고 대답했다.
화가 난 형리가 다시 시뻘건 숯덩이를 입에 넣으려 하자 "자요"하고 입을 크게 벌려 형리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처럼 견디기 어려운 형벌과 매질로 늘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항상 만족스럽고 평화로운 표정을 띠었?
관원들은 어린 소년을 공공연하게 죽이면 군중이 반발할까 두려워 1839년 10월 31일, 형리들을 옥 안으로 들여보내 상처 투성이가 된 그 가련한 작은 몸뚱이를 움켜잡고 목에 노끈을 잡아매어 죽이도록 하였다.
가장 어린 순교 소년 유대철은 아버지와 함께 순교하여, 우리 민족의 모든 어린이들의 신앙적인 모범이 되었다.이때의 나이는 14세 이었다.
복자 안젤로 (Angelus)
활동년도 : 1669-1739년
신분 : 설교가
지역 : 아크리(Acri)
같은 이름 : 안겔로, 안겔루스, 안젤루스
이탈리아 아크리 태생인 안젤루스(Angelus, 또는 안젤로)는 카푸친회의 입회를 두 번이나 거절당하고, 1690년 세 번째의 청원에서 허가를 받았다. 그는 주로 설교 사도직을 수행하였는데 첫 번째의 설교가 너무나 실패작이라서 수없이 기도하고 연습하였다. 그래서 1711년 사순절 동안 실시한 나폴리의 설교가 대성공을 거두자 그는 위대한 설교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안젤루스는 일생 동안 줄 곧 칼라브리아(Calabria), 나폴리(Napoli) 등지를 돌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회개시켰고, 치유의 기적도 행하였다. 또 그는 환시와 탈혼의 경험이 많아서 예언의 선물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의 영혼을 꿰뚫어 보는 능력 있는 고해신부였다. 그는 아크리타니아(Acritania)의 수도원에서 운명하였고, 1825년 12월 18일 교황 레오 12세에 의해 시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