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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1. 클럽 안 . 밤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클럽 내부.
룸 안의 영수.
유리문 너머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영수는 맥주를 한 잔 들이키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음악이 바뀌면서 갑자기 스테이지로 몰려 나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 속에서 영수도 비틀거리면서 걸어간다.
취한 영수는 스테이지 위에서 휘청거리다가 쓰러진다.
영수를 피해 흩어지는 주변 사람들.
바닥에 누워 있는 영수 위로 경쾌한 음악이 계속된다.
2. 번화가 거리 . 새벽
길가에 비스듬하게 주차해 놓은 중고 외제 차.
차 안에 영수는 술에 취해 곯아 떨어져 있다.
차 주변을 쓸던 청소부 차 유리창을 두드린다.
식은땀을 흘리며 자고 있다가 노크 소리에 눈을 뜨는 영수.
청소부는 영수가 깬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차 주변을 쓸기 시작한다.
삭-삭-삭...빗자루 소리.
영수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문다.
유리창 너머, 밤새 놀다가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잡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한 숨을 쉬며 담배 연기를 내 뿜는 영수.
3. 한강의 강변 도로 . 새벽
운전을 하는 영수.
달리는 자동차의 시점으로 강변의 경치가 보인다.
아직은 시원스레 달리는 차들. 헤드라이트를 켰거나, 혹은 미등만 켜고 달린다.
날이 밝아오면서, 멀리 아파트들, 다리들, 고가들이 보인다.
붉은 해가 뜬다.
하늘은 맑다.
타이틀
행복 (가제)
4. 수연 집 앞 . 아침
영수가 번호 키를 누르지만 문이 열리지 않는다.
영수의 표정이 굳어진다.
신경질적으로 벨을 누르고 문 앞에 기대어 앉는 영수.
5. 수연 집 안 . 아침
영수와 수연 소파에 앉아 있다.
수연 영수의 물건들을 가져다 가방에 넣는다.
영수 번호 바꿨니?
너 진짜 나쁜 년 이다.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니?
수연 ....
너 또 술 마셨구나.
영수 마지막으로 한 잔 마셨다.
수연 .....
영수 핸드폰을 내민다.
영수 니 거라서 해지도 안 된다. 니가 해지해.
수연 이거 때문에 온 거야?
영수 .....나 유학 간다.
수연 너 취했구나...
그 몸으로 어딜 가?
영수 한 일,이 년 걸릴 거야.
돌아와서 연락할게...
수연 그럴 필요 없어.
영수 그 동안 연애는 해. 너 남자 없이 못 살잖아.
수연 그건 니 얘기야...
영수 결혼은 하지 마라..나 복잡한 거 싫다.
수연 영수를 쳐다본다.
수연 너 어쩌다 이렇게 됐니?
영수 한 동안 말이 없다.
영수 ...너 전에 나보고 결혼하자고 했을 때..그 때 했으면 어땠을까?
수연 왜.. 후회되니?
영수 아니...
영수 일어나 나간다.
6. 승강기 앞 . 아침
영수 승강기를 기다린다.
수연 약 꾸러미를 가지고 나와 영수에게 준다.
영수 약을 받고 돌아 선다.
영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수연.
수연 한 번 안아 봐도 되니?
영수 돌아보지 않는다.
수연 다가와 영수를 안는다. 영수 뻣뻣이 서있다.
영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수연의 팔을 풀고 탄다.
돌아보지 않는 영수.
승강기 문이 닫힌다.
7. 바 앞 . 낮
거리를 걸어가는 영수.
걸어가다 길옆에 놓여 있는 벽돌 하나를 손에 든다.
바의 유리문으로 갑자기 벽돌을 던지는 영수.
바 유리창이 산산 조각난다.
영수 깨진 유리창을 멍하니 바라본다.
8. 사우나 목욕탕 . 낮
샤워기 아래에서 눈을 감은 채 양치질을 하고 있는 영수.
양치질을 하다가 갑자기 구역질을 하기 시작한다.
괴로운 모습이다.
영수의 머리 위로 샤워기 물이 계속 떨어진다.
9. 사우나 수면실 . 낮
영수 긴 수건을 덮고 누워 있다.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운 듯 끙끙거린다.
주위를 둘러본다.
넓은 수면실이 텅 비어 있다.
영수 수건을 머리까지 올려 뒤집어쓴다.
잠시 후 영수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10. 바 안 . 낮
낮 시간의 바는 텅 비어있다.
햇빛이 잘 들어온다.
테이블에는 영수와 동준이 앉아 있다.
서류에 도장을 찍는 영수.
영수 고맙다.
동준 아...내가 찝찝하네...
돈 꿔주고 가게 뺏는 거 같아서...
동준 주머니에서 봉투를 내민다.
동준 써라.
영수 선뜻 봉투를 받지 않는다.
동준 다음에 돌아와서 갚아.
영수 니가 가지고 있다가 통장에 조금씩 넣어 줄 수 있니?
동준 ...그게 낫겠다.
넌 애가 참 돈 개념이 없어....
동준 근데 여기서 치료 받는 게 낫지 않아?
영수 여기선 돈도 없고 있을 데도 없고...술도 못 끊고..,,
나 생각보다 심각해..
동준 .........
영수 수연이 한테는 나 가는데 얘기하지 마라. 쪽팔린다.
동준 알았어.
영수 넌 맨날 하잖아.
동준 새끼...알았다니까...
영수 가게를 둘러본다.
영수 동준아 나 망한 거 맞지?
동준 고개를 끄덕인다.
동준 쫄딱.
씁쓸하게 웃는 두 사람.
영수 문 쪽으로 걸어 나가다 고개를 돌린다.
영수 동준아..
가게 유리문 내가 깼다.
동준 넌 줄 알았어..
11. 약국 . 낮
돈을 세고 있는 영수.
돈이 모자라자 주머니에서 꼬깃한 지폐들을 꺼낸다.
그런 영수를 보고 있는 약사.
약사 이번에는 약이 왜 이렇게 많아요?
영수 유학 간다 그랬잖아요.
약사는 정말 이냐? 는 표정으로 영수를 본다.
돈을 지불하는 영수.
영수 그러니까, 전화번호는 언제 가르쳐 줄 거예요?
약사 ...
영수 그럼, 이메일 주소라도 줘요. 멜 할게요.
12. 어머니 집 마루 . 오후
작은 연립주택이다.
구석엔 영수가 사온 의료기 박스가 풀어져있다.
낡은 선풍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TV에선 영수가 사온 의료기의 광고가 나온다.
어머니 이게 좋긴 좋나보다......
영수는 어머니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워 있다.
어머니는 영수의 귀를 파주고 있다.
영수 형은 자주 와?
어머니 응... 어제 왔으면 만났을 텐데...
영수 ......
나 유학 가.. 공부 좀 더 해 보려고...
한 이년 걸릴 거 같애..
어머니 영수야, 너 지금 얼마 만에 온 줄 아니?
영수 ...
어머니 1년 반 만이야...
영수 벌써 그렇게나 됐나...
어머니 너 또 어디 간다 어쩐다 거짓말 하지 말고...
이렇게 한 번씩 들러.
그럼 됐어...
어머니 영수의 얼굴을 만진다.
영수는 고개를 돌린다.
눈물이 날 것 같다.
13. 고속버스 안 . 낮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있는 영수.
심란한 듯 창밖을 바라본다.
버스는 이제 도심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영수 가만히 한 숨을 내쉰다.
14. 가게 앞 시골 도로 . 낮
버스가 떠나가면 영수의 모습 보인다.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한적한 시골 도로.
주변을 둘러보는 영수.
선글라스를 꺼내서 낀다.
15. 가게 안 . 낮
은희는 물건을 골라 계산을 하고 있다.
가게로 들어오는 영수.
영수는 소주 한 병을 들고 계산하러 온다.
은희는 영수를 쳐다보고 인상을 찌푸리고 나간다.
영수는 가게 아줌마에게 돈을 건넨다.
영수 [희망의 집]이라고... 여기서 얼마나 돼요?
아줌마 걸어서? (영수를 훑어보며) 한 10분 걸릴 텐데...
영수 ... 여기 택시 불러 주실 수 있죠?
아줌마 부르면 천원 더 줘야 하는데...
16. 가게 앞 평상. 낮
영수가 평상에 앉아있다.
영수 앞에는 소주병이 놓여 있다.
소주를 종이컵에 한잔 따르고는 한동안 쳐다보는 영수.
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킨다.
나머지 소주를 풀숲에 따라버리는 영수.
주머니의 담배도 꺼내서 버린다.
잠시 망설이는 영수.
영수는 풀숲에 버린 담뱃갑을 찾아 한 개비를 꺼낸다.
17. 요양원 올라가는 길 . 낮
영수가 택시를 타고 가다보면 은희가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은희 옆을 휭 지나가는 택시.
먼지가 난다.
기침을 하는 은희.
18. 택시 안 . 낮
영수의 시점으로 요양원 팻말이 보인다.
[희망의 집]
영수 팻말을 본다.
19. 요양원 사무실 . 낮
사무실 벽의 도표를 유심히 살펴보는 영수.
도표에는 요양원에서 묵고 있는 환자들의 나이, 이름, 병명 등이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 40-50대인 환자들. 영수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진다.
영수 시선을 돌려 창 밖을 바라본다.
창밖으로 운동을 하는 요양원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원장 아줌마는 영수의 병원 진료기록을 보고 있다.
고개를 들어 영수를 보는 원장.
원장 한영수씨...
희망을 가지세요. 살 수 있습니다.
우리... 하이 파이브 한 번 할까요?
원장 영수를 보며 손바닥을 든다.
황당한 영수는 엉겁결에 원장과 손바닥을 부딪친다.
이 때 은희 들어온다.
원장 어...은희야 들어와...
은희씨도 여기 환잔데...오래 되서 일도 도와주고 하고 있어요...
니가 여기 온지 몇 년이 됐지?
은희 ...8년 정도...
원장 벌써 그렇게 됐니?
이제 저보다도 여기 요양원에 대해서 많이 아는 애니까...
영수씨도 생활하시다 모르는 것 있으면 물어봐요...
20. 영수 방 . 낮
큰 가방을 끌고 방 안으로 들어오는 영수.
바퀴 달린 옷걸이, 앉은뱅이책상, 낡은 옷장 하나가 보인다.
책상 위에는 건강관리에 대한 책들과 낡은 라디오, 편지지, 볼펜 등이 놓여있다.
영수는 짐을 내려놓고 방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책상으로 가서 라디오를 켜 본다.
다이얼을 돌리며 이리저리 주파수를 맞춰본다.
전파가 잡히는 방송이 별로 없다.
교통방송만 잡힌다. 방송에서 리포터가 서울 시내 도로 상황을 빠르게 재잘댄다.
다시 자리에 와서 앉는 영수.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짐을 베고 쓰러지듯이 눕는다.
21. 영수 방 . 저녁
잠들어 있던 영수는 가위에 눌린 듯 움찔하더니 눈을 뜬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 시간이 꽤 지난 듯하다.
책상 위에 작은 스탠드 불빛이 방안을 밝히고 있다.
라디오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린다.
일어나 앉으면서 보니 책상 앞에 웬 남자가 앉아 있다.
남자는 나열해 놓은 약통에서 한 알 한 알 정성스럽게 약을 꺼내서 물로 삼킨다.
영수의 기척에 돌아보는 남자. 같은 방 룸메이트인 석구다.
석구 마지막 약 통을 닫더니 영수에게 다가온다..
석구 담배 냄새나네... 담배 좀 줘 봐요.
영수 엉겁결에 지갑에 넣어 놓은 담배 한 가치를 준다.
석구 담배를 받아 부러뜨려 휴지통에 넣는다.
영수 황당하게 쳐다본다.
석구 나 폐암이야...
당황한 영수.
영수 (엉겁결에) 전 간경변인데요...
석구 담배 절대 피우지 마쇼... 독약이야...독약...
어색하게 고개를 끄떡이는 영수.
석구 식사 못했을 텐데 가서 해..
먹는 낙이라도 있어야지..
22. 식당 안 . 저녁
식당은 거의 식사가 끝난 듯하다.
몇 명의 사람들과 은희가 남아서 식사를 하고 있다.
은희는 무릎을 가슴에 바짝 붙인 채 천천히 밥을 먹고 있다.
영수 은희 앞자리에 가서 앉는다.
영수 저기... 밥 먹으러 왔는데요.
은희 대꾸도 없이 주방 쪽으로 가서 밥을 퍼서 영수에게 가져다준다.
은희 다음부턴 식사 시간 맞춰서 오셔야 돼요.
영수 식판을 보면 잡곡밥과 온통 채소들뿐이다.
밥을 한 숟갈 떠먹고 반찬을 집으려 하는데 젓가락이 갈 곳이 없다.
영수 근데...이거 먹으면 정말 나아요?
은희 그렇게 먹으면 안 낫구요... 맛있게 먹어야 낫죠...
영수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황당한 듯 피식 웃는다.
묵묵히 밥을 먹는 은희.
23. 영수 방 . 밤
석구가 코를 골고 있다.
코를 골다가 숨이 턱 막히는 석구.
잠시 후 다시 코를 골기 시작한다.
영수는 잠이 안 온다.
벽 쪽으로 돌아누워서 벽지의 무늬를 손가락으로 따라가 보고 또 돌아오고 한다.
답답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는 영수.
휴지통에 다가가 석구가 부러뜨린 담배를 찾는다.
문 쪽에서 똑똑 노크소리가 들린다.
24. 주방 옆 수돗가 . 밤
몇몇 아저씨들이 모여서 라면을 먹고 있다.
땀을 흘리며 김치까지 곁들여 맛있게 라면을 먹는 사람들...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저씨도 있다.
부남 모르겠다... 먹고 죽자...
아저씨2 (부남에게) 아저씨는 신부전증이면서 좀 적당히 먹어...
부남 (노래)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영수는 분위기에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부남 한 잔 해.
아저씨는 한 쪽에서 소주를 꺼내 영수에게 권한다.
영수 엉겁결에 술을 받아 그냥 내려놓는다.
아저씨2 왜... 술 못 하나?
영수 ...
소주가 담긴 종이컵을 내려다보는 영수.
부남 못하면 이리 줘... 아까운 걸...
아저씨를 쳐다보는 영수.
병을 가져다가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채운다.
한 번에 주욱 들이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영수.
부남 오~ 역시 간경변다워. 술 좀 하는데~
영수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목례를 하고 나가는 영수.
25. 요양원 휴게실 . 밤
공중전화로 전화를 하고 있는 영수.
전화기 건너편에서 여보세요...하는 수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는 영수.
수연 여보세요? 여보세요?
영수 ...
수연 안 들리니까 다시 하세요...
(멀어지는 목소리로) 야... 063으로 시작하는 데가 어디니?
전화를 끊는 수연.
영수는 수화기를 그대로 들고 있다.
혼잣말로 수연의 이름을 작게 불러본다.
영수 수연아...
수화기를 내려놓는 영수.
전화를 끊고 나니 사방이 조용하다.
26. 은희 방 . 밤
불이 켜진 좁은 방 안
혼자 앉아 재봉질에 열중하고 있는 은희.
시간 경과
산소 호흡기를 한 채 가래를 토하고 있는 은희.
얼굴이 땀으로 흥건하다.
은희는 목에 두른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는
다시 턱을 내려 가래를 토해낸다.
27. 은희 방 앞 . 밤
영수는 끊어진 담배를 애써 붙이려고 하고 있다.
마침내 붙인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들여 마시는 영수.
길게 연기를 내 뿜는다.
영수 은희의 소리에 방 쪽으로 다가간다.
창문너머 어렴풋이 은희가 힘들게 가래를 토하는 모습이 보인다.
28. 요양원 마당 . 아침
마당에 나와 있는 요양원 사람들.
부스스한 모습의 영수도 보인다.
원장 아줌마가 앞에 서있다.
원장 오늘 아침도 다들 무사히 만났네요.
반갑게 인사를 나눕시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영수는 어색하다.
체조를 시작하는 사람들.
쉬운 동작인데도 잘 따라하지 못하는 영수.
사람들과 계속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어디선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린다.
주위를 둘러보는 영수.
뒤편에서 은희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체조를 하고 있다.
29. 가게 앞 평상 . 낮
영수가 가게 앞의 평상에 앉아있다.
앞에 컵라면을 두고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중이다.
가게 앞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서면,
은희가 화분을 안고 내린다.
영수와 눈이 마주치는 은희.
영수와 영수 앞의 라면을 번갈아 본다.
머뭇거리는 영수.
컵라면 뚜껑을 덮어 버린다.
30. 요양원 올라가는 길 . 낮
산길을 걸어 올라가는 영수. 저 앞에 은희가 걸어가는 게 보인다.
은희는 화분을 안고 천천히 걷고 있다.
영수는 느리게 걷는 은희를 금방 따라잡는다.
은희를 휙 지나서 앞으로 걸어가는 영수.
갑자기 걷다가 멈춰서 돌아 걸어온다.
영수 은희 앞에 선다.
영수 들어 줄까요?
은희 ...괜찮아요.
영수는 화분을 빼앗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화분은 생각보다 무겁다.
빨리 내려놓고 싶은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빠른 걸음으로 뒤뚱대며 걷는 영수.
그러다 은희가 너무 뒤에 쳐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걸음속도를 늦춘다.
이런 영수의 모습을 은희가 뒤에서 보고 웃는다.
영수는 화분을 내려놓고 은희가 오는 걸 기다린다.
은희 웃는다.
영수 내가 그렇게 웃겨요?
은희 그게 아니라요...
영수 그러면 내가 좋아요?
웃는 은희. 영수도 웃는다.
산길을 걸어 올라가는 두 사람.
영수 근데 밥 먹을 때 왜 그렇게 무릎을 안구 있어요?
은희 아파서요...
영수 무릎이요?
은희 아뇨... 폐요...
꾸욱 누르고 있으면 좀 덜 아픈 거 같아요...
영수 아...네...
은희 한 40%정도 남았다는데 아직은 쓸만해요..
영수 조심해야겠네.
은희 대신 달리면 그대로 (죽는시늉)
영수 나두 있는데. 술 마시면 그대로..(죽는시늉)
웃는 영수. 은희도 웃음이 난다.
웃던 영수의 얼굴이 굳어지며 갑자기 멈춰 선다.
화분을 땅에 내려 두고 길옆으로 몸을 돌리려는데
갑자기 구역질이 시작된다.
은희 걱정스러운 얼굴로 영수를 바라본다.
31. 요양원 강당 . 낮
영수와 요양원 사람들이 의자에 빙 둘러 앉아 있다.
그 중앙에 서 있는 원장.
원장 자...몸들 푸시고...
팔과 목을 돌리며 몸을 푸는 원장.
요양원 사람들도 원장의 동작을 따라한다.
영수는 분위기에 적응이 안 되는 듯 가만히 사람들만 지켜본다.
원장 자...그럼 음악 들어갑니다.
원장이 카세트를 켜면 나오기 시작하는 흥겨운 음악.
요양원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흥겹게 따라 부른다.
시골 영감 처음 타는 기차 놀이라~♪
차표 파는 아가씨와 승강을 하네~♪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딨소~♪
깍아 달라고 졸라대니 원 이런 질색~♪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노래에 맞춰 웃기 시작하는 원장과 환자들.
당황한 영수.
노래가 진행 되면서 사람들은 서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더 크게 웃기 시작한다.
웃는 사람들 틈에서 혼자 멀뚱하게 서 있는 영수.
은희는 그런 영수를 웃으며 보고 있다.
영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웃기 시작하는 은희.
은희 하하하하하하하~♪
영수는 황당한 듯 피식 웃더니
은희를 따라 웃기 시작한다.
영수 하하하하하하하~♪
32. 텃밭 . 해질 녘
텃밭에서 일하고 있는 요양원 사람들.
영수도 텃밭에 쭈그리고 앉아 모종을 옮겨 심고 있다.
쭈그리고 앉아 일하는 것이 힘든지 일어서서 허리를 펴보는 영수.
은희 영수에게 다가온다.
은희 저기...혈액형이 뭐예요?
영수 ...뭐지...아...오형이요.
은희 나두... 원래 오형이었는데...
영수 원래요?
은희 오형이었는데 아프고 나서 검사해보니까 에이형이더라구요.
원래는 활발했는데 그거 알고 나니까 갑자기 소심해졌어요.
내가 에이형이다 생각하니...병도 그냥 당연한 것 같구.
에이형들이 잔병치레가 많잖아요.
은희 부엌 쪽으로 총총히 걸어간다.
영수는 은희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다.
33. 병원 정문 앞 . 낮
진료를 끝낸 요양원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나온다.
평소와는 다르게 서로 말도 하지 않고 각자 걸어 나오는 사람들.
모두 손에 약을 한 뭉치씩 들고 있다.
맨 뒤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영수.
영수의 손에도 남들만큼 커다란 약봉지가 들려 있다.
34. 병원 주차장 . 낮
환자들이 하나 둘 씩 차 안에 올라탄다.
35. 봉고차 안 . 낮
은희는 자신의 옆자리에 짐을 올려놓았다.
영수가 차에 타려하자 짐을 치우는 은희.
영수는 그냥 뒤쪽의 자리로 가서 앉는다.
영수는 표정이 좋지 않다.
돌아보면 옆자리에 신부전증 아저씨가 앉아있다.
달리고 있는 차 안.
창밖으로 푸른 산과 들이 펼쳐진다.
갑자기 이상한 기척이 들린다.
보면 영수 앞 쪽에 앉은 석구가 흐느끼고 있다.
조용해지는 차 안.
아무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한다.
부남 (영수를 보고) 그래도 그 때 그 라면 진짜 맛있었지...
대꾸가 없는 영수.
36. 영수 방 . 낮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영수.
석구가 화장실에서 나온다.
방 안의 냄새를 맡더니 얼굴을 찡그리는 석구.
석구 너 또 담배 피었지?
영수 ...아닌데요.
석구 뭐가 아니야? 담배 냄새나는데...
영수 안 피었어요.
석구 내가 폐암이야...근데 그것도 모르겠냐?
냄새 맡아 보니 양담배 피었네...빨간 걸로...
영수는 어이가 없는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석구 너 나가. 나 더 이상 너랑 방 못써.
영수 ...
석구 안 나가?
영수 ....왜 이러세요?
석구 못 나가?
...그래..내가 나간다.
석구는 옷장을 열어 옷들을 거칠게 꺼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무 말도 못하는 영수.
트렁크를 옷장에서 내리던 석구는 허리를 삐끗하고 주저앉는다.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는 석구.
영수는 석구를 측은하게 바라본다.
37. 영수 방 . 낮
은희 영수 방 창문 쪽으로 다가온다.
영수는 창밖을 보며 몸을 기우뚱거리며 움직이고 있다.
누워 있는 석구의 등을 밟아 주고 있는 것이다.
영수의 그런 모습을 의아하게 보는 은희.
은희 뭐 하세요?
영수 ...그냥...
은희 석구 아저씬 어떠세요?
영수 석구를 내려다보면
석구는 코를 골고 자고 있다.
베개에서 머리도 떨어트린 채 곯아떨어진 석구의 모습.
영수 ...주무세요...
은희 ...네...
영수는 석구의 베개를 똑바로 해 준다.
은희는 궁금한 듯 까치발을 들어서 안을 보려고 한다.
은희 ...산책 갈래요?
영수 고개를 들어 은희를 본다.
38. 요양원 산책길 . 낮
나란히 걷고 있는 영수와 은희.
은희 근데 찾아오는 사람이 없네요...
영수 그러게요...
... 저 고아에요...
은희 미안해요.
아, 그래서 그랬구나...
영수 뭐가요?
은희 아니, 첫날 혼자 오셨잖아요.
그런 경우 드물거든요.
동병상련이네...
영수는 은희를 의아하게 쳐다본다.
은희 저도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어요...
은희의 진지한 반응에 당황하는 영수.
영수 저... 미안해요...
농담이었어요. 찾아올 사람이 없어서...
은희 화가 난 듯 앞으로 걸어간다.
쫓아가는 영수.
은희 걸음을 멈추고 돌아선다.
은희 …….
그런 걸로 농담하는 거 아네요.
잘못했다고 하세요.
영수 ... 잘못했어요.
은희 영수를 본다.
미안한 표정의 영수.
다시 걷는 은희와 영수.
조금 가파른 부분이라서 은희가 힘든 숨소리를 낸다.
잠시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가슴을 꾹 누르는 은희.
영수 힘들어요?
은희 ...왜요.. 업어줄래요?
영수 ...
은희 아님 말구요.
길가의 바위에 앉는 은희.
영수도 건너편에 앉아서 숨을 고른다.
살짝 부는 바람에 사스락, 나뭇잎들이 움직인다.
39. 동산 . 낮
동산에 올라와 소풍을 즐기는 요양원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도시락을 먹는 라면파 아저씨들.
한 쪽에서는 사람들 모여 앉아 약초를 캐고 있다.
약초를 캐던 영수는 힘든지 나무 그늘에 와서 누워 버린다.
영수 누워 있는데 석구가 불쑥 다가온다.
산에서 방금 딴 듯한 들꽃을 영수에게 준다.
석구 담배 있나? 줘 봐.
영수 없는데요...
석구 줘 봐. 나두 한 대 피게.
영수 ...
석구 진짜루...
영수 ...
석구 내 라디오 줄게... 담배랑 바꾸자.
영수는 지갑 사이에 한 개비 껴놓았던 담배를 꺼내서 준다.
납작한 성냥갑을 꺼내 불을 붙여주는 영수.
담배 피우는 석구.
석구 자넨 피우지마...
영수 ... 아저씨... 갑자기 왜 피세요?
석구 ...내가 담배를 한 40년 넘게 피웠는데...
...핀 거잖아...
후회를 많이 했는데...
이제는 후회하지 않으려고...그래서 피는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영수 ...어렵네요...
영수를 보는 석구.
석구 올라가 봐.. 좋아. 꽃이 좋아...
영수 ...
영수는 담배 피는 석구를 의아하게 쳐다본다.
40. 영수 방 . 오후
영수가 낮잠에서 깬다.
햇빛이 들어온다.
창가에는 석구가 준 들꽃이 유리병에 꽂혀 있다.
석구는 벌써 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영수는 씻으려고 욕실의 문을 연다.
안에서 라디오 음악 소리가 들린다.
욕실의 문이 열리다가 만다.
뭔가 걸려있다.
영수 힘겹게 문을 열고 욕실로 들어간다.
41. 요양원 마당 . 오후
영수는 허겁지겁 문을 열고 뛰어 나온다.
소리를 지르는 영수.
42. 목욕탕 . 오후
사람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석구를 끌어내린다.
원장이 다가와 하나하나 석구의 상태를 체크한다.
목의 동맥을 짚어 보고, 호흡도 체크한다.
침착하게 옆에서 원장을 돕는 은희.
영수 아저씨... 어떻게 된 거죠?
영수를 돌아보는 은희.
은희 돌아가셨어요.
영수 은희를 본다.
은희 잠깐 나가 계실래요?
영수 ...
은희 ...나가 계시는 게 나아요.
영수는 불안하게 방을 둘러보다가, 석구를 보다가, 획 돌아서 나간다.
은희, 앞서 가는 영수의 팔을 잡는다.
은희 ...괜찮아요.
영수 ...
은희 밖에 좀 계세요... 곧 갈게요.
눈시울이 붉어지는 은희.
43. 요양원 마당 . 해질녘
앰뷸런스의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석구의 시신을 들고 나온다.
들것에 눕혀진 석구가 차에 실린다.
영수는 일어나 앰뷸런스 쪽으로 걸어간다.
사람들 틈에서 석구를 보는 영수.
44. 영수 방 . 새벽
방 안을 서성거리는 영수.
불안해 보인다.
석구의 자리를 보면, 이불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창밖을 보던 영수, 방문을 열고 나간다.
45. 가게 앞 . 아침
가게 문이 닫혀있다.
가게 앞 도로에서 차를 잡는 영수.
차들이 몇 대 지나가고 나서 택시가 선다.
영수 아저씨 혹시 담배 있으면 파실래요?
기사아저씨는 영수를 잠시 쳐다보더니 그냥 가버린다.
잠시 쫓아가다가 멈추는 영수.
허탈한 모습으로 서 있다가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텅 빈 밤길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영수.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46. 영수 방 앞 . 아침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은희 우산을 쓰고 와 영수의 방문을 두드린다.
똑똑똑...
아무 대답이 없다.
다시 문을 두드리는 은희.
은희 ...일어났어요?
대답이 없다.
은희 방문을 열면 방 안에 아무도 없다.
47. 가게 앞 평상 . 아침
비 오는 처마 밑.
평상에 앉아 있는 영수.
소주병과 술잔을 나란히 놓고 보고만 있다.
우산을 쓴 은희가 그 앞으로 온다.
은희의 손에 또 다른 우산이 들려 있다.
은희를 올려다보는 영수.
은희 ...안 마셔요?
영수 ...
은희가 잔에 술을 따른다.
졸졸졸-...
영수 앞에 잔을 놓아준다.
술을 들이키는 영수.
은희가 다시 잔에 술을 따라준다.
은희 저도 한 잔 주세요
영수 은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은희 나 원래 술 좀 했어요.
영수 은희에게 소주 한 잔을 따라 준다.
은희 쭉 들이킨다.
은희 변함없는 맛이네..
영수 은희를 물끄러미 본다.
영수 ... 아무렇지 않아 보여요.
은희 ... 네?
영수 ... 아프지도 않아 보이구, 힘들지도 않아 보이구...
무섭지도 않아 보이구.
은희 봐줄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감기만 걸려두 얼마나 무서운데...
영수 ...
은희 앞으론 티내야겠네... 영수씨가 봐줘요.
영수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은희 고마워요.
영수 뭐가요?
은희 ... 봐준다니까.
영수 ...
은희를 보는 영수.
은희 다가가 영수의 손을 잡아 준다.
48. 요양원 식당 . 낮
야채를 다듬고 있는 은희.
옆에서 영수가 슬쩍 슬쩍 돕는다.
지나가던 부남 그 광경을 본다.
부남 그걸 왜 영수씨가 다듬어? 찜찜하게...
영수 손 씻었어요.
부남 그래두... 은희씨가 해야 맛있지.
영수 ...아 나 옮는 병 아니라니까요...
은희 맞아요. 안 옮아요.
아저씨 놀리듯이 은희를 본다.
부남 그걸 어떻게 알어? 만져 봤어?
은희 네?
그 때 식당에 들어오는 원장.
원장 은희야... 시장 좀 가줄래?
나머진 내가 할께...
은희 네.
은희. 앞치마를 벗고 원장에게 메모를 받는다.
부엌을 나가면서 슬쩍 뒤를 돌아본다.
영수가 천천히 일어난다.
아저씨 영수 씬 왜 나가?
영수 찜찜하다면서요...
49. 읍내 중국집 . 낮
화장실에 갔다가 자리에 앉는 영수.
은희는 먹지 않고 영수를 기다리고 있다.
영수의 자장면이 다 비벼져서 놓여 있다.
영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허겁지겁 자장면을 먹기 시작한다.
은희 기름진 음식은 안 좋은데...
은희도 젓가락을 든다.
자신의 우동을 먹기 시작한다.
은희는 한 젓가락을 먹고 난 뒤 갑자기 우동 그릇을 들고 나간다.
무슨 일인가 싶어 보는 영수.
은희는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는다.
영수 왜 그래요?
은희 아뇨...
50. 읍내 극장 안 . 오후
깜깜한 극장 안.
영화를 보는 영수와 은희.
영수는 은희에게 작은 소리로 말을 건다.
영수 은희씨?
은희 왜요?
영수 근데... 아까 음식점에서 왜 그랬어요?
은희 얘기해 줘야 되나...
국물에 바퀴벌레가 있더라고요.
약간 놀라는 영수.
목소리가 순간 커진다.
영수 그걸 왜 이제 말해요?
은희 ...아저씨가 너무 맛있게 먹어서요.
영수 아저씨? ...은희씨 몇 살 이예요?
은희 ...
영수 스무살?
은희 저 보기보다 나이 많아요...
저한테 반 말 하면 안 돼요...
영수는 은희 쪽으로 다가가 은희의 얼굴을 가까이서 쳐다본다.
영수 어려 보이는데...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는 은희.
이 때 영수 뒤에 앉아 있는 군인이 영수의 등을 툭툭 친다.
고개를 돌리는 영수.
군인 아저씨...좀 조용히 해주세요...
영수 ...
은희는 영수를 보며 웃는다.
키득거리며 웃는 두 사람.
51. 올라오는 산 길 . 해질녘
걸어 올라오는 두 사람.
영수 왜 이렇게 가깝지...
다 왔네. 벌써...
피식 웃는 은희.
은희 난요... 남녀가 같이 깜깜한 극장에서 영화 보게 되면은요..
남들 몰래 손도 잡고 그런 줄 알았어요..
영수는 멀뚱히 은희를 바라본다.
은희 근데 그건 영화에서나 그러나 봐요?
영수 ......
둘은 계속 걸어 올라간다.
영수 난요... 남녀가 이렇게 한적한 산길을 올라가게 되면은요...
뽀뽀도 하고 그런 줄 알았어요.
은희는 아무 말 안하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영수도 따라 웃는다.
다시 걷기 시작하는 두 사람.
은희 ... 혹시 걱정할까봐 얘기하는 건데요.
저 옮는 병 아니에요.
영수는 은희를 바라본다.
잠시 걸어간다.
영수는 은희의 손을 쥐어 자신의 허리를 두르게 한다.
은희를 돌려 세운다.
서로 마주보는 두 사람.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눈을 감는 은희.
영수 은희에게 입을 맞춘다.
52. 요양원 식당 . 밤
은희는 산에서 캐 온 약초를 종류별로 분류하고 있다.
그 옆에서 약초를 집어 냄새를 맡아 보는 영수.
은희 옛날에 이 요양원 자리가 천주교 비밀집회가 있던 곳이었대요..
근데 그 집회에는 몰래 사귀던 남녀가 있었던 거예요..
둘은 너무너무 사랑했는데요...
어느 날 남자가 갑자기 집안 어른들이 정해준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며
그 여자를 버려 버렸대요...
그 여자는 너무너무 슬퍼서 몇 날 며칠 울다가
결국 이 앞 우물에 빠져 죽었대요...
근데 그 여자가 이 우물에 빠져 죽는 바람에 천주교 비밀집회가
발각돼 버린 거예요...
그래서 배신한 그 남자를 비롯한 천주교 사람들이 몽땅 머리가 잘려 죽었 대요..
그 뒤부터 밤 12시만 되면 물에 퉁퉁 불은 처녀귀신 한 명과
목 없는 귀신 12명이 주기도문을 외우며 방마다 돌아다닌대요..
영수 그... 천주교 집회하고 하던 데가 여기라구요?
은희 주방 뒤에 우물 못 봤어요?
영수 ...
영수는 약초를 내려놓는다.
은희는 영수의 눈치를 본다.
영수 나 그런 얘기 들으면 잠 못 자는 거 알아요?
은희 당연히 모르죠...
영수 도대체 나 오늘 잠 못 자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래요?
은희 그게 내 사정인가?
영수 안돼... 나 혼자 밤 못 새..
오늘밤 내 방에서 같이 그 목 없는 귀신인지 뭔지
진짜 돌아다니나 확인해요..
은희 제발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세요...
53. 영수 방 . 밤
둘은 이불을 같이 덮고 누워있다.
영수 자꾸 눈앞에 물에 퉁퉁 불은 처녀귀신이 아른거리잖아..
은희 엄살 좀 그만 떨어요...
영수 진짜라니까..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줄까?
은희는 영수를 쳐다본다.
은희 내가 안 보이게 해 줄까요?
영수는 멀뚱히 은희를 본다.
은희는 옆으로 누워 영수의 눈을 두 손으로 가린다.
영수 와.. 좋은데....
은희는 웃는다.
눈 가리고 있던 손으로 영수의 눈과 눈썹을 살며시 만진다.
얼굴 여기저기를 쓰다듬는다.
은희는 영수의 눈에 가볍게 뽀뽀를 한다.
코에도 뽀뽀를 하고, 이마에도 한다.
영수가 은희의 얼굴을 잡고 입술에 키스를 한다.
부드럽고 천천히 키스를 한다.
......
시간 경과
침대 위의 영수와 은희.
은희는 영수의 움직임에 따라 민감하며 반응하며 신음소리를 낸다.
신음소리가 점점 커지자 손으로 입을 막는다.
그런 은희를 보며 웃는 영수.
54. 영수 방 . 아침
자고 있는 두 사람.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깬다.
영수 급하게 옷을 입고 살짝 창을 연다.
부남 어이~ 간경변. 은희씨 못 봤어?
당황한 영수.
영수 예? 어제 보기는 봤는데...
부남 은희씨 여기 있지?
영수는 놀라 아무 말도 못한다.
부남 그럴 리가 없지...
부남은 식당 쪽으로 가고 영수는 창문을 닫는다.
영수 은희를 본다. 은희는 걱정스런 표정이다.
밖에선 은희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영수와 은희는 서로 마주보고 키득키득 웃는다.
갇혀 있는 두 사람.
영수 배 안 고파요?
은희 고프죠...
영수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나고, 얼른 문을 닫는 영수.
영수는 다시 돌아와 은희의 옆에 앉는다.
은희 영수씨... 나 전에 사귀던 남자 있었어요.
영수 은희 옆에 눕는다.
영수 난 은희씨가 처음인데..
웃는 두 사람.
은희 웃음을 멈추고 영수의 얼굴을 만진다.
마주보는 두 사람.
은희 영수씨... 저... 우리 같이 살래요?
영수는 은희를 바라본다.
은희 결혼하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나 몸도 아프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잖아요.
영수씨 몸 낫도록 내가 도와줄게요.
나중에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러면 그 때 헤어지죠 뭐.
영수는 그저 은희를 바라만 본다.
은희는 영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영수는 은희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55. 요양원 마당 . 낮
영수는 평상에 눈을 감고 누워 있다.
바람이 선선히 불고 사방은 조용한데
라디오에서는 음악이 나온다.
영수는 꿈을 꾸는 듯하다.
눈을 뜨는 영수.
지갑에서 수연의 사진을 꺼내서 본다.
사진을 반으로 접는다.
56. 동산 . 낮
영수가 풀숲을 헤치며 걷고 있다.
끝까지 가면, 영수 앞에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들판을 바라보는 영수.
바람이 분다.
바람에 흔들리는 영수의 머리카락.
영수는 평지의 끝까지 뛰어간다. 숨이 찬다.
그냥 그 자리에 앉는다.
영수는 계속 그렇게 앉아 바람을 맞는다.
57. 주방 옆 수돗가 . 오후
은희 야채를 씻고 있다.
영수가 은희에게 다가간다.
영수는 은희에게 들꽃을 건넨다.
은희 고무장갑을 벗고 두 팔을 쭉 뻗어 소중하게 꽃을 받는다.
두 사람 마주보며 웃는다.
58. 요양원 마당 . 낮
요양원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영수와 은희.
이삿짐을 실어 줄 트럭이 온다.
원장은 서운한 듯 은희의 손을 잡는다.
트럭에 타는 영수와 은희.
요양원 사람들 손을 흔들어 배웅한다.
트럭 출발한다.
59. 트럭 안 . 낮
영수와 은희는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은희는 영수에게 머리를 기댄다.
60. 집 앞 . 낮
트럭 기사가 트럭을 몰고 떠난다.
빈집의 마당에는 영수와 은희가 서 있고
단출한 짐이 둘의 옆에 놓여 있다.
농촌이나 산골에 가끔 있는 버려진 집.
하지만 살만해 보이기는 한다.
61. 집 안 . 낮
영수 방문을 열자
방에 햇살이 길게 들어온다.
햇살 속으로 묵은 먼지가 날아다닌다.
은희가 기침을 한다.
영수가 짐을 뒤지더니 마스크를 꺼내 은희에게 씌워준다.
햇살 속에 서 있는 두 사람.
62. 방 안 . 밤
둘은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 있다.
둘은 달콤한 키스를 한다.
은희 왜 뽀뽀를 하고 있는데도 뽀뽀하고 싶지?
영수는 은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영수 은희야. 넌 내가 그렇게 좋으니?
은희 응... 영수씨는?
영수 ...그런 게 있긴 있구나...
은희 그런 게 있어요, 영수씨...
영수 ... 은희야, 우리 꼭 건강해지자.
은희가 영수 품에 안기면 영수 은희를 꼭 안아준다.
갑자기 천정에서 쥐가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린다.
두두두두두....
잠시 정지된 채 누워 있는 두 사람.
이내 키득거리며 웃는다.
63. 방 안 . 아침
은희는 벽에다 시간표를 만들어 붙인다.
시간표에는 영수의 기상시간, 운동하는 시간, 약 먹는 시간 등이 표시되어 있다.
시간표를 붙인 은희는 자고 있는 영수를 깨운다.
둘은 마주보며 약을 털어 넣는다.
64. 마루 . 낮
방문 앞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영수.
방 안에서 은희의 가래 토하는 소리가 들린다.
영수 은희야...다 했니?
은희 아직...문 열지 마요...
잠시 후
은희 문을 연다.
은희의 몸은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다.
하지만 밝은 표정이다.
은희 영수씨. 다 했어요.
영수 은희의 밝은 미소를 보고는 꼭 안아 준다.
은희 영수씨.. 왜 그래요?
영수 그냥....좋아서 그래.
서로 꼭 껴안는 두 사람.
65. 마당 . 낮
영수는 신발을 신고 있다.
영수에게 장 볼 목록과 돈을 주는 은희.
꼼꼼하게 동전까지 챙겨서 준다.
은희 장 볼 돈 만원, 차비 왕복 천사백원...
이번에는 비닐에 담아오지 말고 가방에 담아 와.
비닐 값도 무시 못 한 단 말야.
영수 에이...그거 얼마나 한다고 그래?
은희 그것도 일 년 모으면 오천원은 될 거야.
오천원이면...
영수 웃으며 은희를 바라본다.
영수 은희야..내가 전에 하룻밤 술값으로 이백만원도 썼었는데..
은희 ...
영수 알았다...
은희 영수를 보며 배시시 웃는다.
은희 많이 사오지 말고, 거기 써 있는 것만 사 와.
은희 마루에 서서 영수가 마당을 지나 길에 접어들 때까지 계속 보고 있다.
영수는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고는 은희에게 손을 흔든다.
영수에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은희.
66. 공중전화 박스 . 낮
영수 동준과 통화하고 있다.
영수 ....나 요양원 나왔어. ...어, 몸은 좋아졌어.
....그래 살림 차렸다, 어쩔래. ....다음에 얘기할게.
근데 이번 달에 좀 늦네. ...아~쪽팔려. ...그래 고맙다.
전화를 끊는 영수. 한숨을 내쉰다
67. 시장 . 낮
영수는 은희가 사라는대로 하나하나 산다.
시장을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한다.
영수 처마 밑으로 뛰어 들어간다.
처마 밑에 서 있는 영수.
옆에서 지방 특산물인 복분자술 시음회를 하고 있다.
영수는 가까이 가서 하나를 집어 들고 구경을 한다.
한 모금 시음도 해본다. 맛있다. 한 모금 더 마신다...
68. 마당 . 저녁
군데군데 물이 고인 마당을 조심조심 들어오는 영수.
마루 밑에 복분자 술을 감춘다.
영수 수돗가에서 입을 헹군다.
손을 들어 입에 대고 불어본다.
영수 은희야~
방 쪽으로 걸어가는 영수.
방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다.
69. 방 안 . 저녁
은희가 심하게 기침을 하고 있다.
영수가 은희에게 다가간다.
걱정스런 목소리로 묻는다.
영수 왜 그래? 괜찮아?
은희 기침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인다.
영수 약초가 담긴 바구니와 신문지 위에 널어 놓은 약초들을 본다.
비에 젖어 아직까지 촉촉한 약초들...
영수 속상한 듯 은희를 쳐다보다 버럭 화를 낸다.
영수 이거 캐 온 거야? 비 오는데?
이거 나 먹으라고?
누가 너보고 이런 거 캐 오래? 어?
은희 서러운 듯 말문이 막힌다.
영수 너 애가 궁상맞은 거니, 멍청한 거니?
은희 영수씨 말조심해!
은희 분한 듯 벽 구석에 쭈그리고 앉는다.
화가 난 듯 한숨을 쉬는 영수.
영수 ...
은희 영수씨, 좀 나가줄래. 나 혼자 있고 싶어.
영수 ...나 이렇게 안 살았거든.
영수는 문을 꽝 닫고 나간다.
방 안에 혼자 남은 은희. 눈물이 난다.
70. 방 안 . 밤
떨어져서 등을 돌리고 자고 있는 영수와 은희.
은희 앓는 소리를 낸다.
잠을 깨는 영수.
은희에게 다가가 걱정스레 손을 댄다.
은희 영수씨..나 죽을 것 같아..
나 좀 살려줘...
깜짝 놀라는 영수
은희의 이마를 집어본다.
온 몸이 불덩이다.
71. 집 앞 길. 밤
은희를 업고 집 앞 길에 서 있는 영수.
멀리 택시 불빛이 보인다.
72. 병실 . 밤
은희가 병상에 누워 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영수.
은희를 바라보다 자신도 피곤한지 꾸벅꾸벅 존다.
잠시 후.
은희의 침상에 같이 누워 있는 은희와 영수.
은희가 잠을 깬다.
은희는 살짝 몸을 일으켜 잠든 영수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이불을 당겨 영수의 몸을 덮어 주는 은희.
영수의 손을 어루만진다.
잠이 깨는 영수.
은희 영수씨...
영수 은희야...
웃어 보이는 은희.
영수는 일어나 자리를 비켜 주려고 한다.
은희 그냥 있어...
영수씨가 옆에 있으니까 참 좋다.
내 걱정 많이 했어?
영수 응..
은희 나 죽을까봐?
영수 아니...내가 죽을까봐..
너 아픈 거 보니까....내가 죽을 거 같더라...
은희 미소 짓는다.
은희 ......
내가 전에는 아프면 죽을까봐 정말 무서웠거든...
근데....영수씨 옆에 있으니까...별로 안 무서운 거 같애..
나 죽을 때... 꼭 내 옆에 있어줘...
영수 은희를 측은하게 바라본다.
은희 약속해 줘.
영수 알았어..약속할게..
너두 내 옆에 있어주는 거지?
은희 고개를 끄덕인다.
영수 은희야... 나는 이제 너 없으면 못 살 거 같다.
미소 짓는 은희.
73. 마당 평상 . 해질녘.
밥 짓는 연기가 굴뚝에서 피어나는 해질녘 시골의 고즈넉한 풍경.
마당 한 쪽에 아기 염소 두 마리가 놀고 있다.
영수는 마당에서 세수를 한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평상에 앉으면
은희는 부엌에서 채소를 씻어 가지고 나온다.
저녁 밥상 앞에 마주보고 앉은 두 사람.
( 1년경과 )
74. 마당 . 낮
닭장이며 잘 가꾸어진 텃밭이 있는 마당.
1년 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영수는 닭장 안에서 모이를 주고 있다.
은희 정말 많이 자랐다...
영수 뒤를 돌아보면
은희 외출복을 입고 서 있다.
75. 병원 진료실 .낮
폐활량 측정기의 튜브를 입에 물고 힘껏 부는 은희.
건너편의 의사는 측정기의 숫자를 본다.
기진맥진한 은희.
영수는 침대에 누워 피를 뽑고 있다.
잠시 후
의사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영수와 은희.
은희는 영수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의사 남자 환자분 많이 좋아지셨네... 간수치가 거의 정상입니다.
약은 이제 그만 처방하구요..
각별히 술만 더 드시지 않으면 되겠네요..
은희는 영수와 잡은 손을 만지며 조그맣게 와... 하고 좋아한다.
의사의 눈치를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의사 은희씨는 나빠지지는 않았네요...
무리하지 말고 꾸준히 약을 복용하세요..
하지만 은희의 표정은 밝다.
76. 병원 복도 . 낮
진료실에서 나오는 영수와 은희.
복도 의자에 앉아 있던 요양원 사람들과 만난다.
영수와 은희를 보며 반가워하는 사람들
아저씨1 이게 얼마만이야?
애는 안 낳았어?
쑥스러운 듯 웃으며 고개를 젓는 은희.
부남 어이 간경변~그 동안 힘 좀 썼나 본데...더 마른 것 같애...
웃는 사람들.
77. 돌아가는 길 . 낮
손을 잡고 걸어가는 두 사람.
영수는 뭔가 딴 생각에 빠져 있다.
조용히 영수의 표정을 살피는 은희.
은희 영수씨...
영수 ...
영수는 생각에 빠져 은희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한다.
은희 영수씨...
영수 ...어?
은희 무슨 생각해요?
영수 ...그냥...
은희 ...나 한 번 업어 봐.
영수 응?
은희 나 한 번 업어 달라고.
영수는 은희를 보며 씩 웃더니 등을 구부리고 몸을 낮춘다.
영수의 등에 업히는 은희.
영수는 은희를 업고 걸어간다.
하지만 아무 말이 없다.
은희도 그저 조용히 업혀서 간다.
불안한 듯한 표정의 은희.
78. 밭 . 낮
밭 근처 나무 그늘의 영수.
나무에 염소를 묶어 놓고 잠이 들어 있다.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영수 눈을 떠보면 수연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정신을 차리는 영수.
수연과 동준이 영수를 내려다보고 있다.
동준 팔자 늘어졌구먼...
79. 마루. 낮
은희 영수 옆에 가서 앉아 과일을 깎는다.
수연은 은희 모습을 본다.
은희도 수연의 모습을 힐끗 본다.
수연 은희씨 참 예쁘네요...
동준 ...원래 자식이 예쁜 여자만 좋아하잖아.
은희 그쪽도 예쁘시네요.
수연 참 복도 많아.
영수 웃으면 수연 같이 웃는다.
상황을 보고 있던 동준도 낄낄댄다.
은희는 외면하듯 고개를 돌린다.
웃음이 멈추면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80. 집 앞 길 . 저녁
차로 내려가는 길.
영수가 수연과 동준을 배웅한다.
동준은 좀 떨어져 앞에서 걷는다.
차에 도착하면 먼저 운전석에 탄다.
걸어가던 수연이 영수에게 말을 건넨다.
수연 (웃으며) 나보고 결혼하지 말라며? 돌아온다며?
영수는 무안한 듯 웃는다.
영수 그럴 때가 있었구나...
수연 ...술은 완전히 끊었니?
고개를 끄덕이는 영수.
영수 그래도 가끔 생각은 나.
수연 너 좋아 보여... 처음 봤을 때 생각난다.
영수 ...
수연 결혼은 했니?
영수 ...
수연 ... 좋니?
영수 ... 좋아...
수연 뭐가 그렇게 좋아?
영수 다 좋아..
수연 그런 게 어딨어?
영수 ...
둘은 차에 도착한다.
수연 근데..너 여기 이렇게 사는 거 안 어울리는 거... 아니?
너 이런 사람 아니잖아...
영수 ......
수연 차에 탄다.
차에 시동을 건 동준이 창문을 내린다.
동준 흰 봉투를 영수에게 내민다.
동준 필요한 거 뭐 사라.
수연 나도 좀 보탰어.
씩 웃는 동준.
영수 봉투를 머뭇거리다 받는다.
영수 고맙다... 조심해서 가라.
수연이 차에서 쇼핑백을 꺼내 내민다.
수연 니 핸드폰...
영수 ...
수연 내가 답답해서 그래...
영수는 대답하지 않는다.
다시 차에 올라타고 출발하는 수연.
영수는 선 채로 차가 가는 걸 보고 서 있다.
81. 방 안 . 밤
어두운 방.
핸드폰이 충전기에 꽂혀 있고
은희와 영수는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
영수는 잠이 안 오는지 뒤척인다.
함 숨을 쉬는 영수.
은희는 옆으로 누운 채 눈을 감고 있다.
영수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은희 영수씨...
영수 안 잤니?
은희 응.
영수 왜?
은희 ...까먹었다.
영수 뭔데...얘기해 봐.
은희 까먹었다니까...
영수 얘기해 보라니까...
은희 ...그냥...
서울에서는 그런 얼굴이 예쁜 얼굴이야?
영수 (웃으며) 자자...
영수 은희를 안아 준다.
82. 마루 . 밤
방문을 조심스레 열고 나오는 영수.
마루에 앉는다.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83. 요양원 마당 . 낮
영수가 운전기사 아저씨를 도와서 트럭에서 야채를 내리고 있다.
요양원 원장 아줌마가 옆에 있다가 영수에게 돈을 건네 준다.
원장 서울서 친구들 왔다면서...
영수 아...네...
원장 영수씨 아직 다 나은 거 아니야..
영수 ...
은희 말 잘 들어야 해...
영수 ...네.
영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원장 아줌마...
영수 받은 돈을 세어 본다. 얼마 되지 않는다.
84. 가게 앞 평상 . 낮
기사 아저씨가 평상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다.
영수 씻고 나와 평상에 앉는다.
맥주를 한 잔 권하는 아저씨.
영수 망설이는가 싶더니 한 잔 쭉 들이킨다.
그리고는 한 잔을 더 따른다.
두 번째 잔도 쭉 들이킨다.
기사 아저씨 그런 영수를 보며 웃는다.
담배 두 개비를 꺼내 영수에게 한 대 준다.
맛있게 담배를 피우는 기사 아저씨.
영수 담배에 불을 붙인다.
혼자서 피식 웃는 영수.
영수 아저씨 나 술하고 담배 정말 어렵게 끊었는데...
아저씨 웃으며 영수의 잔에 맥주를 한 잔 더 따라준다.
아저씨 몸엔 좋은데 재미가 없지?
영수와 아저씨 낄낄댄다.
85. 욕실 . 밤
영수는 은희가 머리감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은희의 머리에 조리개로 물을 부어주는 영수.
영수 ... 나 서울에 한 번 다녀 올까봐...
은희 맞아. 집에 한 번 가보고 싶겠다.
영수 같이 갈까?
은희 정말?
영수 ...
은희 아니야...
86. 방 안 . 낮
영수가 옛날 옷들을 꺼내 입어 본다.
약간 헐렁하지만, 셔츠와 함께 옷을 입은 모습이 새삼 어울리는 느낌이다.
영수는 감회가 새롭다.
거울에 비춰 보다가 뒤를 돌아보면 은희가 영수를 보고 있다.
영수 전화할게.
은희 그래.
영수 ... 요양원 한 번 갔다 올래?
은희 왜?
영수 그냥.. 가 보고 싶지 않어?
은희 나중에 같이 가지 뭐...
영수 그래... 그러자.
87. 마당 . 낮
영수 은희에게 손을 흔들더니 돌아서 걸어간다.
영수 요양원 처음 올 때 입었던 옷을 입고 있다.
은희는 멀어지는 영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88. 고속버스 안 . 밤
달리는 버스 안의 영수.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서울의 풍광들이 보인다.
89. 바 안 . 밤
동준에게 넘겨 준 바 안.
바는 손님들로 북적이고 웨이터들도 바쁘게 테이블 사이를 오간다.
커피를 마시는 영수와 동준.
영수 가게를 둘러본다.
영수 ...장사 잘 되네...다행이다.
동준 가게 컨셉 바꿨더니 잘된다...
너 올라올 거니?
영수 ...
내가 어떻게 했음 좋겠니?
동준 하나 더 오픈 할려고 하는데 니가 와서 좀 맡아 줘라.
영수 생각해 볼게...
동준 누구냐... 그... 은희? 걔랑 같이 올라올 거냐?
영수 ...야, 걔가 뭐냐? 말조심 해.
동준 어쨌든.
잠시 말이 없는 두 사람.
동준 영수야 내가 얼마 전에 신문 봤는데
노후자금이 사억 칠천 필요하대...
우리가 언제까지 이 일 할 수 있을 것 같냐?
미래에 대한 계획이 필요해...
아니면 부잣집 딸을 잡든지....
영수 ....
동준 니가 보면 여자 복이 없어...
하긴...수연이 걔가 돈은 좀 있지...
그냥 좀 평범한 애를 만나라.
수연이도 그렇고 은희...그 분도 그렇고...
영수 ...
90. 수연 아파트 복도 . 밤
수연의 집 쪽으로 걸어오는 영수.
이 때, 아파트 문이 열리고 수연이 나온다.
수연 어? 벌써 왔어?
영수 어...
수연 전화라도 하지... 지금 저녁 하려고 장보러 가는 길인데...
영수 같이 갈까?
수연 아냐, 집에서 쉬고 있어. 혼자 갔다 올게.
영수 같이 가지, 뭐...
영수와 수연은 다시 현관문으로 가서 문을 열고
영수의 가방을 집 안에 들여 놓는다. 장을 보러 가는 두 사람.
91. 아파트 앞 대형마트 . 밤
영수와 수연은 카트를 끌고 장을 보고 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친한 친구처럼 보인다.
92. 수연 집 . 밤
영수와 수연 술을 마시고 있다.
거실 테이블에 반 쯤 먹은 회 접시가 놓여 있고
빈 양주병이며 맥주 캔들이 있다.
수연 많이 취했다.
영수 너 많이 취한 것 같다.
쉬어라..나 이제 그만 갈게
수연 ...그냥... 자고 가..
영수 아무 말이 없다.
영수 ... 너 많이 변했다.
수연 그러는 너는?
지금두 봐, 전에 언제 한 번이라도 술 남기고 일어난 적 있어?
영수 ...
수연 언제까지 그렇게 거기서 살 거야?
몸도 다 나았다며...
잠시 영수 대답이 없다.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내는 영수.
영수 ... 수연아. 걔 나 많이 좋아해.
수연 (웃으며) 나도 너 좋아해.
영수 ... 너랑은 달라.
수연 ...
잠시 침묵이 흐른다.
수연 ...나, 너 보고 싶었어.
대답하지 않고 수연의 시선을 피하는 영수.
수연 넌 나 안보고 싶었니?
영수 ...
수연 대답해 봐. 나 안보고 싶었어?
영수 ...
주방으로 가는 수연.
물을 틀고 그릇들을 씻는다.
수연의 뒷모습을 보던 영수 일어나 현관으로 간다.
수연 기다리라 그랬잖아...
신발을 신던 영수 일어나 부엌 쪽으로 간다.
영수의 품에 안기는 수연.
영수 ...보고 싶었어.
영수는 수연을 안아 준다.
93. 수연 집 거실 . 낮
팬티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전화를 하는 영수.
영수는 엄마와 통화를 하고 있다.
영수 아직 외국인데요... 곧 한국에 갈 거 같애요...
엄마.. 당뇨에는 상황버섯이 좋다니까...
푹~ 삶아서 매일 물처럼 마셔.
응..알았어.. 곧 들어가 보도록 할게요...
...알았어요.
전화를 끊고 TV를 켜는 영수.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 본다.
94. 시골집 . 밤
전화를 하고 있는 은희.
음성사서함에 메시지를 남긴다.
은희 영수씨 잘 있지?
내일 채소 넘기는 날인데 어떻게 하지?
꼭 연락 줘...
은희 잠시 고민하다 메시지를 지운다.
다시 메시지를 녹음하는 은희.
은희 영수씨. 보고 싶다.
걱정되니까 꼭 좀 전화 해.
... 기다릴게...
전화를 끊는 은희.
95. 수연 집 방 . 아침
침대에서 자고 있는 영수와 수연.
영수의 핸드폰 전화벨이 울린다.
잠에서 깨어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는 영수.
전화를 받지 않는다.
수연 전화벨에 잠을 깬다.
수연 전화 계속 안 받을 거야?
영수 이불을 뒤집어쓴다.
영수 수연아 나 부탁이 있는데
니가 받아서 나 좀 죽었다고 해..
한심한 듯 영수를 바라보다 낄낄거리며 웃는 수연.
영수도 따라 웃다가 갑자기 웃음을 멈춘다.
영수 너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니?
수연 니가 웃겼잖아...
영수 표정이 어두워진다.
수연 너 어떻게 할 거니?
영수 ...
너 회사 늦었다.
수연 얘가 시골 살더니 요일 감각이 없어졌어.
오늘 일요일이잖아...
수연 등을 돌리고 눕는다.
수연 너 차라리 술 먹고 얘기해. 너 그런 짓 잘하잖아.
영수 돌아누워 있는 수연의 모습을 본다.
수연의 등을 만져 본다.
수연의 목에 키스한다.
영수 수연의 위로 올라간다.
수연 너 몸 다 나았구나...
96. 터미널 . 해질녘
은희 터미널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다.
영수가 버스에서 내린다.
은희는 빠른 걸음으로 영수에게 다가간다.
영수의 얼굴을 만져보는 은희.
은희 못 생겨졌어...
은희는 영수의 품에 안긴다.
영수는 표정이 착잡하다.
은희에게 뭔가를 건네는 영수.
은희 선물을 뜯어 본다.
머리핀 하나가 나온다.
97. 버스 안 . 해질녘
버스를 타고 가는 두 사람.
은희는 피곤한 듯 영수의 어깨에 기대어 자고 있다.
머리에는 영수가 선물한 머리핀이 꽂혀 있다.
은희의 모습을 보는 영수
98. 마루 . 낮
식사하는 영수와 은희.
영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번호를 보는 영수. 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는다.
혼자 남은 은희. 방 쪽을 바라본다.
금방 나오는 영수.
다시 밥상 앞에 앉는다.
영수 은희야...너 요새 노후 자금이 얼마 드는지 아니?
은희 ...
영수 사억 칠천이래...사억 칠천.
은희 ...그렇게 많이 왜 필요해?
우리처럼 살면 큰 돈 없이도 살 수 있는데...
영수 그게 그렇지가 않은 거야...
앞날은 어떻게 하고?
뭔가 젊었을 때 대비해야 되는 거야.
은희 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앞날을 지금부터 걱정해?
오늘 하루 잘 살면 그걸로 됐지...
그리고 내일 또 잘 살고...
그렇게 살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나는
영수 답답한 듯 목소리가 커진다.
영수 야...세상이 그렇게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지 아니?
지금 좋다고 나중까지 좋으란 법 있냐?
은희는 잠시 말이 없다.
은희 난 나중 같은 거 몰라.
영수 야...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은희 ...
영수 ...
밥을 먹는 은희를 바라보던 영수, 갑자기 화를 낸다.
영수 너 이렇게 밥 천천히 먹는 거 지겹지 않니?
아...지겨워.....
영수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혼자 남은 은희.
눈물이 핑 돈다.
99. 방 안 . 밤
영수 잠이 오지 않는다.
몸을 뒤척이다 보면 은희가 영수의 손을 꼭 잡고 자고 있다.
손을 보는 영수.
조심스럽게 손을 빼면 은희 잠에서 깬다.
은희 ...잠이 안 와?
영수 ...아니야...
은희 ...
영수 은희야...
은희 ...왜?
영수 우리 놀러가자...
100. 바닷가 식당 . 해질녘
창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횟집.
회를 먹고 있는 영수와 은희.
영수는 자기가 좋아하는 회를 먹으면서도 별로 말이 없다.
은희가 손을 들어 식당 아저씨를 부른다.
소주를 한 병 시킨다.
은희를 보는 영수.
은희 영수씨 이제 다 나았잖아.
조금씩 먹으면 아무 일 없을 걸?
영수 ...
아저씨가 술을 가져온다.
영수에게 술을 따르는 은희.
은희 나도 한 잔 마실까?
영수는 은희에게 술을 따라준다.
은희는 한 번에 잔을 비운다.
은희 한 잔 더 줘.
은희에게 술을 따라주는 영수.
다시 잔을 비우는 은희,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영수 왜?
은희 (미소 지으며) 술이 써서...
은희를 바라보는 영수.
101. 바닷가 유원지 . 밤
혼자서 디스코 팡팡을 타는 영수.
점점 커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 속에서 영수도 고함을 지른다.
영수 아아아! 아아아! 미치겠다... 미치겠다... 미쳐버리겠다...
밑에서 은희가 영수를 보고 있다.
은희 미소 지으며 가볍게 손을 흔든다.
102. 요양원 마당 . 낮
창가의 화분을 살펴보는 원장 아줌마와 은희.
은희는 기다랗게 자란 넝쿨을 두 손으로 받치고 골고루 물을 주고 있다.
은희 진짜 많이 컸다.
원장 그렇지? 그럼 이제 화분을 바꿔줘야 되나?
은희 아뇨... 아직은 괜찮은 거 같아요...
은희는 다른 화분에 물을 준다.
원장 잘 해주지?
은희 네..
원장 은희 오니까 좋네...자주 좀 와..
너 없으니까 심심하다. 아저씨들 군기도 다 빠지고..
은희 저 그냥 다시 올까요?
원장: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
103. 동산 . 낮.
은희는 들꽃이 가득한 벌판을 걷는다.
들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 보는 은희.
104. 집 앞 버스 정류장 . 밤
버스 정류장에 술에 취해 앉아 있는 영수.
버스에서 내린 은희 영수를 본다.
은희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 있다.
영수에게 웃으며 다가가는 은희.
은희 영수씨 나 기다린 거야?
영수 응... 요양원 갔다 왔니?
은희 영수에게 가지고 있던 꽃다발을 준다.
꽃다발을 받고 일어나는 영수.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
영수의 손에는 술이 든 봉지가 들려 있다.
은희 영수씨 술 마신 거야?
영수 ...
영수를 걱정스럽게 보는 은희.
은희 술 마시면 안 되는 거 알잖아.
영수 은희야...내가 업어 줄까?
영수는 은희를 업겠다며 비틀거리며 허리를 굽힌다.
영수를 부축하며 힘겹게 집으로 걸어 올라가는 은희.
105. 마루 . 밤
바닥에 주저앉아 술을 병째 들고 마시는 영수.
은희는 그런 영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술병을 내려놓고 은희를 보는 영수.
은희 영수에게 다가간다.
은희 영수씨...왜 이래?
술 취한 눈으로 은희를 바라보는 영수.
영수 너 그냥 나보고 헤어지자고 하면 안 되냐?
당황한 은희 아무 말도 못한 채 서 있다.
은희 .....
영수 니가 좀 떠나줘.
난 그런 얘기 절대 못해....
너 나 알잖아...
은희 ...
영수 은희에게 다가가 손을 잡는다.
영수 은희야...니가 먼저 얘기 좀 해줘봐..
헤어지자고...
은희 나 못해.
영수 좀 해봐.
영수의 손을 뿌리치는 은희.
은희 영수씨 정말 왜 그래?
영수 나 여자 생겼다.
나 서울 갔을 때 여자랑 계속 같이 있었어.
나는 걔랑 있는 게 너랑 있는 거 보다 더 편해..
가만히 자리에 앉는 은희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을 웅크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고개를 들고 영수를 바라본다.
은희 ....
개새끼..
니가 사람이니?
어떻게 니가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하니?
너 진짜 나쁜 새끼야...
은희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난다.
고개를 숙이는 영수.
영수 미안해...은희야...
은희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 영수를 바라본다.
은희 그냥... 여기서 예전처럼 살면 안돼?
영수 안돼.
은희 영수씨 내가 그 여자 보다 더 잘해줄게..
나 잘 할 수 있거든...
제발 가지마...
영수 괴로운 듯 머리를 바닥에 쿵쿵 찍는다.
영수 아...미치겠다....
은희 영수에게 다가와 영수를 잡는다.
은희 영수씨...제발 그만해...
영수 은희의 손을 뿌리치고는 바닥에 벌러덩 누워버린다.
허공에 발길질을 해대며 소리를 지르는 영수.
영수 아~! 미치겠다~!
흐느끼는 은희.
106. 마루 . 아침
마루바닥에서 자고 있는 영수.
은희 다가와 영수의 모습을 바라본다.
107. 시골길 . 아침
시골길을 걷고 있는 은희.
눈물이 흐른다.
은희 뛰기 시작한다.
숨이 점점 차오른다.
계속 달리는 은희 숨이 멎을 것 같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는 은희.
점차 숨이 돌아온다.
108. 마루 . 낮
마루에 영수의 트렁크가 놓여 있다.
은희는 마루 한 쪽에 앉아 있다.
영수 일어난다.
영수 어제 내가 너무 많이 취했지?
은희에게 다가가 안으려고 하는 영수.
은희는 영수의 손을 차갑게 쳐낸다.
놀라는 영수.
은희 영수씨.
영수 응.
은희 나가 줘.
영수 ...
은희 이 집에서 나가.
영수 ...
은희 영수씨 때문에 내가 너무 힘들어.
영수씨가 좀 떠나 줘.
영수 은희를 본다.
은희 나 영수씨 만나기 전에 행복하게 살았어...
만나고 나서 좋았지만 이제 싫어..
영수 미안해...
대답을 하지 않고 벽에 기대어 앉는 은희.
눈을 감은 채로 말한다.
은희 미안해서 어떻게 할 건데...나랑 살 수 있어?
영수 ...
은희 나가 줘. 영수씨. 부탁이야.
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109. 마루 . 낮
영수가 짐을 들고 나온다.
영수는 은희를 쳐다본다.
영수 나 간다.
은희는 영수 쪽을 보고 있지 않다.
영수 연락할게.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 은희.
대답하지 않는다.
영수가 신발을 신고 집을 떠난다.
잠시 후.
은희가 울기 시작한다.
참으려고 하지만 자꾸만 울음이 새어나와서
결국 은희는 엉엉 울게 된다.
110. 집 앞 길 . 낮
짐을 들고 걸어가는 영수.
걸어가는데 은희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영수는 계속 걸어간다.
은희의 울음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점점 빨리 걷는 영수.
영수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 1년 후 )
111. 클럽 안 . 밤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는 영수.
술에 취해 휘청거린다.
갑자기 영수 사람들 틈을 헤치고 스테이지 밖으로 나간다.
112. 클럽 화장실 . 밤
화장실 문으로 급하게 들어오는 영수.
개수대를 붙잡고 구역질을 하기 시작한다.
괴로운 모습이다.
영수 고개를 들고 거울을 보면 눈물이 고여 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영수.
113. 수연 집 거실 . 새벽
전망이 좋은 아파트.
거실 오디오 위에는 영수와 수연의 사진 액자가 올려져 있다.
소파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영수.
거실 창 너머 아침이 밝아 오는 모습을 본다.
현관 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
수연이 들어온다.
수연도 술이 좀 취했다.
영수 옆에 털썩 앉는다.
수연 너 오늘 재밌었니?
영수 어... 재밌었어...
수연 아까 우리 쪽으로 넘어오지..
오늘 진짜 재밌었던 거 알아?
영수 나두 진짜 재밌었는데...
수연 재미없었던 거 같은데?
영수 재밌었다니까...
수연 에이... 재미없었으면서...
잠시 대답이 없는 영수.
영수 야 미친년아! 넌 이렇게 사는 게 재밌냐?
잠시 영수를 보는 수연.
수연 아니.
수연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옷을 벗으며 방으로 들어간다.
혼자 남은 영수 남아 있던 술을 마신다.
114. 수연 집 거실 . 낮
영수 트렁크에 짐을 싸고 있다.
수연 잠에서 깨어 부스스한 모습으로 영수를 본다.
수연 너 또 뭐하니?
영수 .....미안하다.
수연 웃기고 있네..
수연 부엌 쪽으로 걸어간다.
영수 돌아서 수연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트렁크에 짐을 담는다.
115. 사우나 수면실 . 낮
영수 수면실에 누워 수건을 덮고 자고 있다.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린다.
영수 액정을 열어 이름을 확인한다.
영수 여보세요..
네...
어디시라구요?
영수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116. 고속 도로 . 낮
요양원으로 내려가는 영수의 차.
117. 병실 앞 . 밤
영수 병실 앞에 서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118. 병실 안 . 밤
은희 산소 호흡기를 한 채 의식이 없이 누워 있다.
수척해진 모습이다.
영수 은희의 옆에 조용히 앉는다.
은희의 머리카락을 조용히 만져보고는
손을 꼭 잡는다.
119. 염습장 안 . 낮
은희의 몸에 수의가 입혀지는 것을 보는 영수.
영수 옆에 서있는 원장 아줌마는 소리 내어 흐느낀다.
영수는 입을 꼭 다문 채 서 있다.
끈을 잡아당겨 마지막으로 은희의 몸을 묶는 염습사.
수의가 다 입혀진 은희는 매우 작다.
염습사는 조용히 영수를 부른다.
은희 옆에 선 영수.
염습사와 함께 은희를 관에 넣는다.
120. 빈 집 마당 . 낮
텅 빈 집.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듯하다.
바닥은 어질러져 있고 여기저기 먼지가 잔뜩 끼어 있다.
영수는 은희의 영정 사진과 가방 그리고 유골함을 들고 있다.
빈 집을 둘러본다.
121. 빈 집 방 안 . 낮
영수 은희의 영정 사진을 화장대 위에 올려놓는다.
은희의 유품 가방에서 편지를 꺼낸다.
바닥에 엎드려 편지를 읽는 영수의 뒷모습
어깨가 들썩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엎드려 흐느낀다.
은희가 죽기 전에 영수에게 쓴 편지다.
영수 고개를 들어 영정 사진 속의 은희를 쳐다본다.
122. 동산 . 오후
유골함을 들고 천천히 들판을 걸어가는 영수.
바람이 분다. 꽃잎이 날린다.
영수 멈춰 선다.
유골함 보자기를 풀고는 재를 뿌리기 시작한다.
바람이 불어와 영수의 손에서부터 재가 흩어지기 시작한다.
하늘이 맑다.
123. 도로 . 낮
영수가 운전하고 있는 차가 터널로 들어간다.
터널의 조명들이 영수의 얼굴 위로 지나간다.
터널을 벗어난다.
영수는 수연에게 전화를 한다.
영수 수연아... 나야...
...걱정 많이 했구나...
내가 그렇지 뭐...
수연아...우리 결혼할까?
전화기 너머 수연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영수 우리...한 번 잘 살아보도록 하자...
행복하게...
-끝-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