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넷
한 기 정
남프랑스로 간다.
성급히 떠난 S를 빼고 육신이 있는 우리들은 남프랑스로 간다.
애초에 우리 넷은 런던을 기점으로 스코틀랜드 여행을 계획했었다. 어디 인생이 계획대로 되던가. 런던댁 S가 급하다면서 일찍 육신을 버렸기에 우리 셋은 S를 가슴에 품고 남프랑스로 간다.
대학졸업반 여름 이후 처음 같이하는 여행이다.
우리 역시 삶의 발톱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 주요 대목만 나열해도 백 개의 문장은 채울 수 있을 만큼 사는 것에 휘둘렸다. 1970년대 영국으로 유학 가 화학도(化學徒) 영국 청년과 결혼한 S. 지금 한국에서 베트남댁, 라오스댁, 필리핀댁이 경멸어린 눈초리를 받듯이 가난한 나라, 잘 알지도 못하는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 온 자그마한 새댁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런더너*들의 왕따였다. 홀대받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공부도 일도 열심을 내었고 아이들도 열심히 키웠다. 병이 드니 친구들이 제일 보고 싶더라며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여성호르몬 부족으로 오는 안면홍조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손선풍기를 들고 서울 나들이를 했지만 결국에는 서둘러 그리워하던 이들에게 이별을 가르치고 말았다.
S가 떠나고 우연히도 꼭 5년 즈음 남은 우리 셋은 남프랑스로 간다.
우리 셋이라고 편안하기만 했을까.
누군가 명문여대 나온 여자들은 모두 행복하기만 할 것 같다고 했다.
단세포적 우문(愚問)
어디 돈이 많다고, 건강하다고, 학벌 좋다고, 성격 좋다고, 잘 생겼다고 운명의 칼날이 무뎌질까.
남편에게 매를 맞고, 죽을 것이 두려워 도망치고, 아이들을 온전히 혼자 맡고, 먹고 살아야 하니 학력을 속이고 공공근로로 생계를 이어야 하고,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남편이 죽어 홀어미가 되고, 이유야 어쨌든 죽은 사람에게 미안해하고, 아이들에게 충분히 해주지 못하는 것을 자책하고, 이혼하고, 주변의 편견으로 변변한 직장에 자리잡지 못하고, 계모가 되고, 아이가 희귀한 병을 앓고, 속수무책인 일들에 눈물 흐르는 날들을 보냈다.
떠나보낸 첫사랑, 대학을 마저 마쳐야 하나 싶었던 절박감, 탈출구로서의 결혼, 시어머니와의 데면데면함, 남편의 일시적 실직, 직장에서의 사고로 얻은 상처 등은 이야깃거리에 들지도 않는다.
어느덧 환갑이 되고 머리숱이 적어지고 희어지고 가끔씩 무릎이 시큰거리고 시어머니가 되고 장모가 되었다.
폭풍 같던 시간들이 지났다.
마음과 돈이 절실했던 시간도 지나고 드디어 인생의 삼모작의 시절에 섰다.
생에 초기 꿈꿀 수 있었던 시절 뒤, 또 그만큼의 사간을 운명의 부림에 충실한 후에야 한가하게 얼굴을 마주할 시간을 얻었다. 이젠 직장 일에서 놓여나고 가정사에서도 조금은 빗겨 서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 수도 있고 삼자대면(三者對面) 카카오톡을 쏘아대며 키득거리기도 하고 느닷없이 번개팅을 할 수도 있고 와인 한 잔씩을 기울일 수도 있게 되었다.
간절했던, 아름다웠던, 치열했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그렇게도 원하던 우리들만의 여행을 떠난다.
우리, 셋은 남프랑스로 떠난다.
새로운 시작점에서, 형제처럼 나누었던 해묵은 이야기들의 자락을 펼쳐 볼 시간과 다른 어려움과 즐거움이 놓여있을 새로운 미래를 마주하기 위해 떠난다. 지금의 환희를 끌어안고 후일 위로가 될 추억을 만들기 위해 떠난다.
* 뉴욕시민은 뉴요커, 파리시민은 빠리지앵, 서울시민은 서울라이트라 하듯이 런던시민은 런더너(londoner)라고 한다.
첫댓글
한 친구를 가슴에 품고 함께 떠나신다던 친구들여행.
이러저러한 생각들이 상상되어 저까지 가슴 콩닥거렸었지요.
돌아와 심심풀이 땅콩처럼 간간이 보여주시는 사진에서 유럽의
풍경을 들여다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