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광주에서 직장 생활을 할 기회가 있었다. 어차피 서울이나 광주나 객지인 것은 마찬가지이고 광주 프로젝트가 끝나면 서울로 오기로 되어있으므로 대전에서 서울과 광주를 오가는 생활을 했었다. 어느덧 광주를 떠난지 30년이 흘렀고 그동안 5·18민주항쟁이 일어나기도 했었는데 아직까지 광주를 내려가 본 기억이 없다.
젊은 시절 객지 생활을 하면서 낚시에 빠져 처음으로 붕어를 낚아 올린 대초댐, 광주댐, 마릿수로 재미를 보았던 담양댐, 영광 수로 등지를 다니며 낚시를 즐기다가 서울에 올라와서도 한동안 낚시를 즐겼다. 얼마의 세월이 흐른 후 골프에 빠져 주말마다 골프장으로 쏘다니다가 절친한 골프 친구의 죽음으로 골프도 멀리하게 되었다. 직장 말년에 친구들과 시작한 등산이 백두대간 종주를 하게 되었으며 이제 직장을 그만 두고 유일한 출구가 산이 되다 보니 거의 매주 산으로 다니게 되었다.
백두대간 종주를 끝내고 정맥이나 지맥을 다시 시작하기에는 부담이 있어 친구들과 100대 명산을 찾아 유람하고 있다. 당연히 예전에 살았던 광주를 감싸고 있는 무등산이 아주 멀리 느껴지기도 하였지만 젊은 시절 무등산 자락에 있는 지산 유원지, 충장사, 증심사 계곡을 헤메던 기억에 혼자라도 무등산을 가 보고 싶은 곳으로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특히 장성의 영산강 강가에서 먹었던 용봉탕과 증심사 계곡에서 먹었던 닭백숙이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 특이하게도 닭발과 똥집을 참기름에 먹던 그 맛이 생각만 하면 고소하게 침을 삼키게 한다.
이곳 저곳의 산악회에서 산행지를 찾아 가야산과 무등산의 선호도를 확인해 보니 무등산으로 다섯 명이서 가기로 결정되었다. 마지막으로 연락을 취하고 뉴스에서 뉴스를 마치면서 앵커가 하는 말이 해가 뜨기 전이 제일 춥다고 한다. 그래 요즘같이 경제가 어려운 때인 해뜨기 전이 가장 춥고 어둡다고 하니 조만간 해도 뜨고 추위도 물러 가겠지.
죽전으로 나가 버스에 오르니 산행 인원은 그리 많지 않다. 곧 바로 산행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무등산을 광주 시민들이 신성시하는 산이란다. 오늘 주어진 산행 시간은 도착 예정 시간 11시 30분으로 오후 4시까지이며 5시에 귀경 출발 예정이라고 한다.
산행시간 4시간 30분이면 오늘 예정된 산행은 무리라는 판단아래 내년에 다시 와 보기로 하고 우리는 증심사에서 주어진 시간에 맞춰 가는 데까지 가는 역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잠시 잠이 든 사이 탄천휴게소에 도착하여 커피 한 잔으로 잠을 몰아 내었으나 지난 밤 밤샘의 여파로 가을 걷이 후의 한산한 황산벌을 지나 논산 삼례간 확장공사로 시멘트 양생 중인 현장을 지나자 마자 다시 잠이 들었다. 밤샘을 하고 잠을 억지로 몰아내어 출발시간까지 참으려 했으나 새벽 기도에 다녀오는 집사람 덕분에 그나마 잠을 잘 수 있었다.
원효사 입구에 도착하니 피리 소리가 처량하다. 남도의 문화를 접하는 순간이다. 다른일행이 산행 시작하는 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역산행을 하기로 하여 빈둥대고 있는데 산악회 회장은 일행과는 다른 길로 간단다. 늦재로 간다면 시간이 단축된다고 하여 우리도 부랴부랴 늦재로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늦재 가는 길은 지도상에는 도로로 표시되어있지만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군용차량만이 통과할 수 있는 것 같다.
포장도로를 따라가다가 샛길 안내표시를 따라가니 중간에 포장도로와 만나고 다시 동화사터 안내표시를 따라 등산로를 따라 갔다. 중간에 너덜지대도 지나면서 동화사터에 도착하였다. 엊그제 내린 눈은 그늘진 곳에서 솜뭉치처럼 녹지 않고 겨울이 오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동화사터에 도착하니 관리공단 직원이 지도를 나누어 준다. 바람이 덜 부는 듯한 양지바른 묘지에 자리를 잡으려 했으나 바람이 차갑다. 잠시 친구를 기다리며 하모니카 소리 나는 곳을 찾아 가보니 양지바른 곳으로 주변이 억새에 가려있는 곳이 나온다. 오늘의 식당은 이곳으로 정했다.
식사 후 구름과자를 선사할 곳을 찾으니 중봉 맞은편 방향으로 광주 시내가 바라보이는 곳이 나온다. 오늘의 산행지는 여기까지로 정하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동생의 말을 빌리면 사람 되는 과정을 거친 젊은 시절, 많은 일을 겪었던 광주가 발 아래에서 추억을 끄집어 내게 한다.
식사 후 토끼등으로 하산 하고자 하였으나 광주 사람들이 언제 다시 오겠느냐며 중봉을 거쳐 가도록 권한다. 또한 토끼등을 거쳐 하산하는 길은 가파르고 길을 잃기 쉽다고 한다. 송신소가 있는 곳을 와 보니 주상절리로 유명한 입석대가 가깝고 이전된 군부대 터에 자란 억새 밭이 보기 좋다. 그러나 서석대와 입석대는 생태계 복원공사로 말미암아 입산이 금지되어 있다. 연말에나 공사가 완료 될 예정이란다.
넓따란 길을 따라 내려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장불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우리를 임시로 가이드 하던 맘씨 좋은 아주머니는 초행인 우리가 길을 잃기 쉽다며 장불재에서 증심사 가는 갈림길까지 동행을 해주었다. 장불재에서 하산 하는 길 배가 아파오기 시작 결국은 아침에 올챙이 국수가 긴장 때문인가? 아니면 스트레스 인지? 신성시하는 산에다 지뢰를 묻어야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증심사 근처에 이르러 텅빈 식당에서 과일을 나누어 먹고 마을 근처에 이르니 아주 오래된 느티나무가 우리를 반겨준다. 이곳에서 만난 할머니는 지금까지 살아온 터전을 옮겨야 하는 아픈 하소연을 늘어 놓는다. 지금은 살던 동네 사람들이 대처로 가거나 곧 이주 단지로 옮겨야 하기에 살만한 곳인데 떠나야 한다고 한다.
증심사를 먼 말치에서 바라만보고 빠른 발걸음으로 공사중인 주차장을 지나 유치원 앞 마당에 이르니 식사가 한창이다. 맨 나중에 도착한 우리들 때문에 출발이 늦어지긴 했지만 여유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산악회 회장님은 인원이 적어서인지, 술을 좋아하는지 우리에게 두꺼비를 권한다.
내가 살았던 광주를 지나칠 때까지 저녁 노을과 도롯가 풍경을 구경하고 어둠이 내려 다시 잠 속에 빠져 오다 보니 어느덧 집에 와 있다.
집출발 7:30 → 죽전 7:35 → 죽전 출발 8:10 → 탄천 휴게소 9:30 ~ 9:50 → 원효사 12:11 12:20 출발 → 늦재 삼거리 갈림길 12;21 → 늦재 삼거리 12:33 → 동화사터 방향 전망대 하단 12:50 → 너덜지대 동화사터 하단 13:02 → 동화사터 13:13 → 식사 13:27 ~ 13:55 → 동화사터 14:29 → 동화사터 상단 14:43 → 송신소 14:51 → 군부대입구 15:16 → 장불재 15:22 → 용추 삼거리 15:45 → 중머리재 16:04 → 증심사 갈림길 16:05 → 구대피소 16:16 산악인 추모비 → 증심사입구 16:48 → 증심사 입구 삼거리 16:54 → 어린이집 17:07 ~ 17:30 출발 17:35 이인휴게소 19:48 죽전 23:20
예정 : 무등산장 → 꼬막재 → 규봉암 → 장불재 → 입석대, 서석대 → 주상절리 → 중머리재 → 구 대피소→ 증심사 → 문빈정사 → 주차장
2008. 11. 22.
첫댓글 무등산은 광주의 보물입니다. 사람의 허파와 같은 존재랄까요. 광주에 사는 저도 종종 한 번씩 다녀간 곳인데 그 먼 곳에서 이 곳까지 오셨군요.
20대 초반에 몇 번 오르고, 가질 못 했습니다. 그땐 미사일 부대가 주둔해 있어 겨우 중봉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후 군부대가 철수 했는데도 오르지 못 했습니다. 시대가 암울했을 때 광주 시민들은 새해 맞이 행사를 그 산정에서 했드랬습니다. 광주 시민들은 고개만 들면 무등산이 보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무등산을 머리에 이고, 가슴에 담고 살지요. 언제 그 정상에 꼭 오르겠다는 게 저의 소원 중의 하나입니다.
암울한 그 시대엔 연례행사 중 하나였죠. 언제 새해맞이 하러 같이 올라볼까요? 김종완샘과 오르면 무슨 특별한 이변이 생길지도 모를일이고.ㅋㅋㅋ
지난 여름의 끝자락에 무등산 종주를 했었지요. 산장에서 출발하여 꼬막재, 규봉암, 장불재, 중봉, 증심사에 이르는, 하루가 다 걸린 그 길은 생각만 해도 흐뭇해요. 걷는다는 것이 그토록이나 산뜻하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어요. 다시 또 그 감각을 찾고 싶어요. 기회를 만들어야겠어요.
2007년도 12월에 무등산 산행을 했었지요. 입석대와 장불재, 규봉암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특히 장불재의 매서운 바람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