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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치마가 휘날리는 살랑이는 봄바람 대신 세계적 재난인 코로나가 몰아치는 광풍에 개개인의 거리마저도 사이를 둬야되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다 그렇다고 매일 조심스럽게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기에는 계절이 을러대는 충동질이 너무 유혹적으로 금년 들어 처음 시작되는 한국산서회의 인왕산 인문산행 공지를 보고 무조건 신청을 했다 * 언제나 그렇 듯 봄을 먼저 맞이 하는 건 수심에 찬 인간들의 둔한 감각보다는 봄꽃들의 본능이 한 발 앞선다 마당가에 핀 영춘화(迎春花)도 개나리 같은 노란꽃잎을 벌린지 어느덧 보름이 지났건만 움추린 옷깃을 선뜻 제치지 못하는 나태함이 영 못마땅 했었다 복잡한 세상사(世上事) 만큼이나 이리저리 얽혀 있는 전깃줄 사이로 아침해가 솟는다 찬란한 오늘 하루를 축복이라도 하려는 듯...! 약속장소인 경복궁역 1번 출구로 나오니 아직 30여분의 여유가 있어 근처 바케트점에 들어가 갓 구운 빵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배낭에 걸린 산악회 리본을 본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빵도 썰어주며 고향소식을 물어 보네! 출구 앞 정면의 서울경찰청 건물 요즘 주말이면 광화문 앞으로 출동하느라 고생들이 많겠지! 약속시간이 다가오자 이곳저곳에서 모여든 6명의 일행이 출발을 한다 큰길에서 조금 벗어난 골목길로 들어서니 난삽한 먹자골목에 외국인들을 위한 간판글씨도 솔찮게 보인다 맛집 골목끝에서 뒤돌아 보니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라는 간판이 보인다 중국거리를 연상케 하는 코로나 안전수칙 플래카드가 버젓이 걸린걸로 보아 이 곳이 유커들의 뱃속을 채우는 골목이라는 건 알겠는데 왜 거기에 '세종'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름을 붙였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첫번째로 들른 '필운동 홍건익 가옥' 허나 이 곳은 코로나로 출입이 막혀 있었다 안내문과 같이 1930년 대 지어진 건물로 제대로 관리가 되지않아 주변의 현대식 건물들이 잠식을 하며 원형을 많이 훼손한 상태지만 서울시가 퇴락한 이 건물을 사들여 2015년 복원을 마치고 지금은 서울시 '민속문화재'로 보존하고 있다 한다 언덕바지를 통째로 점령하다시피 한 이 건물은 개인사택같지는 않았는데 높은 담장과 잘 가꿔진 조경수가 위압감을 준다 하긴 북한산 둘레길을 걸으며 평창동 일대에 들어찬 고급 주택들을 보고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기도 했었지만... 고갯마루에 설치된 오늘의 날씨와 시간을 보니 미세먼지가 약한 날씨는 아닐 것 같다 기와 지붕 너머로 언뜻 들어오는 인왕산을 담고 있으려니 이 곳이 '이상'과 친분이 두터웠던 화가 '구00'의 자택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외국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쓰이고 있었고! 옆에는 '흰당나귀'라는 시를 쓴 '백석' 詩살롱도 있었고~! 오늘 동행중에는 백석 시인의 이름을 가진 분도 계셨는데 초면이라 데몃데몃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언덕을 내려와 왼편의 옥인동길로 꺾어진다 한적한 시골동네 골목길 같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뭔일인가 가까이 다가가보니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려는 구매자들로써 주변 곳곳에도 마스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새봄이 오시는 날(立春) 크게 길(吉)하라는 문구도 무색하게 생각도 못했던 '우한폐렴'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봄이 혼비백산(魂飛魄散)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쨋던 봄꽃은 피어나기를 멈추지 않았다 빌라 건물앞의 산수유(山茱萸)가 앳된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중이다 길가 윤동주 하숙집 터도 지난다 비탈진 언덕길을 훠이훠이 올라 버스종점을 넘어서고! 오늘의 컨셉은 겸재 '정선'의 진경 산수화를 더듬어 보는 테마 산행이다 수성동 계곡을 보기 전 우선 눈에 들어오는 인왕산의 선바위(立石)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어쩌면 저 곳이 한국 클라이밍의 태동지(胎動地)였을지도 모른다는 조장빈님의 판단은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고개를 주억거리게 했다
물소리가 나는 계곡이라는 뜻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조장빈님의 설명을 귀담아 들었다 지금은 망가진 개울이 되었지만 겸재 당시에는 절경의 산수가 존재했을 것으로 짐작됐다 안평대군의 집터(匪懈堂)와 기린교로 안내문에는 쓰여 있지만 다리의 생김과 집터의 규모로 보아 이 곳은 그저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유회(遊回)장소였을 것이라는 조장빈님의 설명이 있었다 어쨋던 스치기 쉬운 세상 풍경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심미안으로 질좋은 삶을 추구했던 양반들의 흔적이 엿보이기도 했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게으름없이 충성을 바치라는 의미도 있었다니 은근히 동지들을 규합하려는 의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개쉬땅 나무 새순> 버들가지 한때 무속인들이 성행했던 시절에는 인왕산 자락에 그들의 기도처나 암굴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고 한다 가시덤불에 덮인 바위글씨도 무속인들이 새겨놓은 둥근 원안의 '申'자로 해석한다 인왕산 정상(338.6m) 군의 경계초소가 있었던 자리로 올라서서 인왕산 순환도로를 건넌다 돋을 새김을 한 이 佛像(?)은 탁본을 많이 해서인지 때를 많이 탓다 오른쪽 동물이 고양이라면 이건 민화에 가까울테고 만약 호랑이라면 이는 부처가 아니고 산신령일게다 아님 만신일지도....! 인왕산 약수터로 가는 돌계단은 성벽을 쌓다 남은 짜투리돌인가~? 주변과 색깔이 어울리지 않아 어색해 보인다 좀이 쓸듯 죽은 나무에는 흰버섯이 돋았고 뿌리가 뽑힌 풍도목(風倒木)은 넘어진지 얼마되지 않은 듯 솔가지가 이제 말라가고 있었다 사면(斜面)을 돌아서자 북악산과 청기와집이 상수리 나무 사이로 보인다 시멘트로 땜질하고 붙였던 걸 또 떼어내서 애매한 글자가 된 암벽 어느 무속인이 거처를 한 듯도 한데 바위에 새겨진 저 글자를 조장빈님은(물 水)자로 읽더라 옆에는 257이라는 숫자도 겨우 확인된다 죽은 자와 산 자 여기도... 운동 시설(철봉)을 통과하여 인왕천 약수를 만나러 간다 바위틈새에 부지기수의 암굴이 있었는데 입구마다 숫자를 새겨놓았다 무속인들의 기도처나 주거지로 자기집의 문패구실을 했다고 한다 인왕천 약수 旺자에서 날 日자를 떼어내어 仁王泉이 되기는 됐다 물맛이야 달라질리 없겠지만 왜놈 왕에게 물을 받을 때마다 고개를 숙이는건 면한 셈이다 전망 데크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상징같은 남산타워 작년 12월에는 저 곳으로 인문산행을 갔었지! 인왕산의 소나무 적송(赤松)으로 가지가 일부 꺾여버렸지만 조장빈님이 걱정하는 '재선충'은 아닐 것으로 본다 산신령 미륵불 來世의 부처라고 하면서 손에는 약사여래불처럼 약합(藥盒)을 들었다 이런 때는 코로나 백신을 내주는 부처가 절실하건만...!! 무속인 주거지인 동굴 한때 계룡산 밑의 신도안처럼 무속인들이 번성했던 인왕산은 치마바위의 궁중비사만 있는게 아니라 치성을 드리려는 서민들의 애환이 서렸던 곳은 아니었을까 수도(手刀) 단련을 하는 운동시설로 올라서면 전망데크가 있는 사자바위에 도착하게 되는데 서울 시내를 온전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데크가 세워져 있다 북악산(백악 342.4m) 서울의 중심지역 인왕산 치마바위도 예서 보면 주름진 치맛자락이 선명하고 누구의 짓이었는지 바위에 새겨진 글자를 지우느라 흠집을 낸 흔적은 너무 가혹하다 글씨를 새긴 놈이나 지운 놈이나~~! 저 곳이 정상이 아니고 군부대가 있는 범바위봉인가? 이 곳에도 암벽 코스가 있었는지 지워진 안내판에 여러코스의 릿지 길 흔적이 보인다 허나 지금은 출입통제 구역 팻말이 막아 서있다 감시 카메라는 무얼 감시했을까 시민들의 일상이었을까 지나간 세월을 기억해 내려는 인왕산의 옛 자취였을까 청기와집 시내 중심부 빌딩으로 둘러싸인 목멱산(木覓山) 주변 여의도 방향 우리가 지나온 수성동계곡 산신각 없어진 코와 얼굴을 억지로 만들어 붙여 괴상망축한 느낌을 준다 건너편 바위에는 미륵존불(彌勒尊佛)인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데 새김이 사뭇 세밀하고 아름답다 세월이 얼마되지 않은 듯 선도 거의 마모되지 않고 아주 선명하다 오른쪽 벽에는 잡풀에 가려진 작은 골샘물도 흐른다 저 네모진 구멍은 궁중에서 나이를 먹거나 병이 들어 물러나와 사찰에서 여생을 보낸 궁녀들이 스님들처럼 다비식을 가져 사리가 나온 경우가 있었다는데 당시 남자 중(比丘)들에게서나 나오던 사리가 상궁에게서 나와 의아해 하며 그 사리를 모시던 장소라고 한다 잠시 후 능선에서 내려온 일행 한분과 함께 일곱명의 동행이 조촐하게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래야 시중에서 구한 빵과 김밥으로 막걸리를 지고온 일행분의 안주꺼리도 못되는 것들이지만 음식 맛보다는 이야기 맛이 더 달콤한 오찬(午餐)이었다 석굴암 가는 길목에 몸을 비비꼰 사랑나무도 눈길을 끈다 석굴암 포개진 석굴안에 법당을 차려놓고 부처님의 가피를 비는 중생들을 맞이 하는 곳이다 입구에는 오랜 된 팥배나무가 새순 대신 묵은 열매를 다닥다닥 달고 있었다 좁은 마당에는 사각연못도 구색을 갖추었고! 석굴암에서 다시 뒤로 돌아서서 하마터면 빠트릴뻔 했던 금강굴 탐사를 하러간다 근래까지 군인들의 초소가 있어 일반인들은 들여다 보지 못했던 비밀스런 장소로 조장빈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몇 안되는 탐방객들이 될꺼라고 허네! 금강굴이라 하여 별다른 부처의 흔적은 없었다 10여m의 굴속은 앞면인 남쪽만 트여 있고 5~6m의 높이에 입구쪽에는 미미하나마 석간수도 흐르고 있어 예전에는 천혜의 기도터가 아니었을까 추정해 본다 여근석(女根石) 진달래꽃이 피면 달거리 하는 여인의 음부와 닮아 그야말로 환상적이라는 '재을'님의 찬사가 이어지는 곳이다 ' 예전에는 삼정승에 비유돼 귀한 나무 취급을 받았다는 삼지송(三支松) 다음은 석굴암 왼쪽에 있는 천향암(天香庵)으로 간다 이 곳 역시도 치성터로 편편한 바닥과 물이 흐르는 벽이 있는데 바로 앞의 빗돌같은 바위에서 조장빈님이 멋진 그림을 짚어낸다 작자 미상으로 수려한 산 그림에 피켈이 꽂혀있고 밑에는 날짜와 K.S.K 이니셜이 있다 왼쪽에는 김말원이라는 한글 새김도 있고! 누구의 작품일까~? 아까보다 미세먼지가 걷힌 것도 아니건만 도심 건물의 선이 더 또렷해졌다 이유는 석양으로 내려가는 햇빛이 건물벽을 오롯이 비추기 때문이 아닐까 경복궁 세옥님이 감탄해 마지않던 깨끗한 흰바위는 한 번 앉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다 삼각돌탑이 쌓인 이 곳은 인왕사터로 작은 절터로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지금은 소나무들이 어지러이 무리를 이루고 있지만...! 이 곳에도 피켈과 TOP글자와 산그림이 있는데 앞에 사람의 솜씨가 아닐런지! 이렇게 걸쳐진 돌을 다른 산에서 만났다면 고인돌이라 하겠지만 여기서는 그저 동굴일뿐이다 서울 시내를 내려다 보고있는 일행들 臥松과 瓦松은 어떤 차이일까 臥松은 땅바닥에 엎드린 소나무이고 瓦松은 古家 기왓장에 피는 다육이 같은 식물이다 물론 남쪽지방 산속의 수풀에서도 만날 수는 있지만...! 눈썹바위 다시 조망처에서 서울 시내를 조근조근 둘러본다 서울의 진산인 북악산 한양천도를 할 때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대립하며 풍수지리로 심한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아름다움이라도 남아 있다면 아무것도 없는거슨 아니지~~! 빌딩숲과 남산타워 약수산장 자리라고 했던가! 당겨본 제 2 롯데월드 굴참나무와 졸참나무? 산을 내려와 좁은 골목길로 들어간다 폐가 담너머에 있는 옥류동(玉流洞) 글자를 확인하러...! 문지방에 문양석을 앉혔던 걸로 보아 대갓집 문전이 확실하고! 퇴락한 건물들이지만 역사성도 있으련만 집관리가 어수선한 골목의 복개된 길밑으로는 옥류가 흐르던 개울이었단다 동네 이름도 그래서 옥인동이 아니었을까? 중국에 사신(使臣)으로 갔던 분들이 들여온 백송(白松)은 외피가 40년쯤 돼야 흰색이 된다 이 집도 행세깨나 하던 벼슬아치의 집터가 분명한 것 같다 다시 겸재의 수성구지(壽城舊址) 그림이 있는 어린이 놀이터로 왔는데 이 곳도 출입을 통제하고는 있지만 안내판을 볼 수는 있어 다행이었다 이 지역은 겸재가 태어나고 생을 마감한 유서깊은 곳이다 인왕산 모형 다시 길을 이어 신교동을 지나는데 눈에 익은 우당 이희영 선생의 기념관을 만난다 이후 서울농학교 교정으로 진입하려 하였으나 문앞에서 제지를 당하고 수화글씨가 있는 담벽을 따라 네거리에 도착하니 제복을 말끔하게 입은 경찰들이 사주 경계를 한다 이 곳이 청와대 정문으로 들어가는 사거리인 모양이다 청운 초등학교 교정 이 곳은 또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일인자로 꼽히는 송강 정철의 탄생지였다 담장밖에 세워진 그의 詩歌들을 일일이 읽을 새가 없어 사진에 담아왔다 이 곳에서 왼쪽 비탈길로 오른다 거대한 저택(邸宅)의 받침돌이 되고 있는 백세청풍(百世淸風) 각자를 만나러 온 것이다 김수근의 건축을 외부에서나마 만날 수도 있었는데 쥔장께서는 오르내리는 언덕길이 힘들기는 하겠지만 청와대를 내려다 보며 산다고 으쓱하는 건 아닐까? 나로서는 근접해 보지 못한 위항문학 어떤 내용인지 들여다 볼 필요가 생긴 것 같다 북한산 보현봉이 날카로운 첨봉으로 솟아 있다 출렁다리인 가온교는 중심을 뜻하는 우리말에서 나온 이름이란다 깊지는 않지만 바위협곡도 있는 이곳이 청풍계로 여러분야의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얘깃거리가 많은 곳이라 하고! 두꺼비 바위 조현명이 교유하던 벗들과 산에도 오르고 시회를 즐기기도 했던 장소라는데 인걸도 간 곳 없지만 자취도 희미할 뿐이다 "인왕산 차돌을 먹고 말지, 사돈의 밥을 먹으랴" 충북 송계계곡의 제수리재 이빨바위만은 못하지만 꽤 그럴 듯 하이! 수풀에 가려진 현대가(現代家)의 건물들을 내려다 보며 길을 돌아 궁정동과는 또 다른 안가(安家) 앞으로 나온다 독재 정권 시절 왜 그리 비밀의 집이 많아야 했는지 새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청운장 청운동에서 버스를 타고 경복궁 부근에서 내려 사진 전시회에 잠깐 들렀다 나와서 북촌 거리(인사동)를 걸었다 조용한 음식점을 찾아 오늘의 일행들과 뒷풀이를 한 후 가까운 모텔에 들면서 하루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 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 고가 부천에 사시는 이중현님과 그의 지인 인왕산에서 합류하여 정식 인사를 나눴건만 그만 성함을 까 묵고 말았다 재을님 2020년 한국산서회 첫 인문 산행에서 고수(高手)님들에게 많은 걸 배운 하루였습니다 특히 조장빈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고된 발품 팔아가며 안내와 설명에 열정을 쏟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혹시 누가 되는 사진이나 오류가 있으면 수정하겠습니다 |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덕분에 앉아서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올해는 또 어떤 인문산행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강사 선생님들의 열정이 있는 한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참으로 꼼꼼한, 하나의 단초도 놓치지 않은 인문산행 기록입니다.
애쓰셨네요~~
그릇이 옅아서 애써 설명해주신 내용들을 제대로 다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감사하구요 만나뵈서 반가웠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는 학생입니다. 민망하니 수정 요청드립니다.
수정은 했습니다마는
그 날의 저에게는 어디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현장지식을 교수 받았습니다
깊고 넓고 다양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
인왕산 옥류동 각자는 현재 이런 상태입니다. 보호를 하는 건지 은폐하는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