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6X3xsgbwD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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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 누가복음 15:18~24
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15: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15: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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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기다리는 사랑(이상욱 목사)
플로리다로 가는 장거리 여행 버스가 있었습니다. 이 버스에는 뉴욕 형무소에서 4년의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빙고라는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빙고는 버스 안에서 알게 된 청년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빙고는 감옥에 수감되면서 아내에게 자기를 잊어달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아내에게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석방되기 전에 빙고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만일 나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 있다면 마을 어귀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매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노란 손수건이 없으면 자기도 역시 모든 것을 잊고 그대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버스 안에 있던 다른 승객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버스가 마을 어귀를 지날 때 ‘빙고’는 차마 창밖을 보지 못하고 있는데 승객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참나무는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뒤덮여 있었던 것입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오천석 선생의 수필 「노란 손수건」의 내용입니다. 이 수필은 피트 해밀이라는 미국의 칼럼니스트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올린 글을 오천석 선생이 번역한 것입니다. 참나무를 뒤덮은 노란 손수건은 빙고를 용서하고 맞아들이는 아내의 사랑이었습니다.
「노란 손수건」의 주인공 빙고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오늘 읽은 성경 본문에 나오는 탕자입니다.
둘째 아들이었던 그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상속해 달라고 했습니다. 어차피 받을 유산이니 미리 받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두 아들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상속받은 유산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멋진 인생을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의 삶은 방탕한 삶이었습니다. 낭비하는 삶이었습니다.
이 아들이 허비하며 사는 동안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요즘으로 하면 불경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농장에서 돼지를 치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짐승이라 하여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돼지를 접촉하는 정도가 아니라 돼지와 함께 지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도둑질 빼고는 무엇이든지 해야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 몰리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도 없었고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라도 먹으려 했지만 그것조차도 여의치 않을 정도로 비참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탕자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말합니다.
누가복음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스스로 돌이켰다는 것은 정신을 차렸다는 뜻입니다.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하는 것은 자기가 얼마나 잘못된 삶을 살았는지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스라는 신학자는 탕자의 이 말은 회개의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직시한 탕자는 결심합니다.
누가복음 15:18~19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일어나 아버지께 가겠다”는 것은 바로 잡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삶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깨달은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나 마음대로 살고자 했던 것이 잘못된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으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하는 것은 철저한 자기 반성입니다. 자기가 이 비참한 처지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 변명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자기의 잘못과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탕자는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하고 아버지께로 갑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자기의 비참한 형편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죄가 죄인 줄 알았을 때, 자기가 잘못 살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죄와 잘못을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떠나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회개하며 돌아오는 아들을 아버지는 멀리서 보고 달려 나와 품에 안습니다.
누가복음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측은히 여겼다는 것은 용서했다는 뜻입니다.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목을 안고 입을 맞췄다는 것은 환대의 표현입니다. 헬라어 원문에서는 이 장면을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고 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환대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쁘고 반가운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몇 번이고 입을 맞추며 환대한 것입니다.
탕자가 자기는 죄인이라며 아들의 자격이 없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누가복음 15:22~24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들은 아버지를 떠났지만 아버지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아들을 본 아버지는 먼저 달려 나가 품에 안습니다. 옷을 갈아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줍니다.
옷을 갈아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는 것은 아들의 자격을 회복했음을 의미합니다. 아버지는 말합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다.” 회복의 선언입니다. 이 한 마디에 아버지의 사랑이 녹아 있습니다.
탕자는 누구입니까? 탕자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즐겁게 살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헛된 것을 쫓아 살았구나.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살았구나.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여기가 아니구나. 그런데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탕자는 돌아갈 곳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곳에 계시며 기다리는 아버지의 집입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기다리듯이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다리십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품에 안듯이 품어 주십니다. 옷을 벗기고 새옷을 입히듯이 실패의 옷, 죄인의 옷, 옛사람의 옷을 벗기고 새사람의 옷, 아들의 옷을 입히십니다.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죄인을 용서하고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미우라 아야코의 「양치는 언덕」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고오스케 목사의 딸인 나오미는 아버지를 떠나 바람둥이에 술고래인 료이치와 동거합니다. 잘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알콜 중독에 의처증까지 보이는 료이치와 헤어지고 만신창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년만에 집에 돌아왔지만 차마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루종일 서성대다가 저녁 늦게 문을 여는데 문이 잠겨 있지 않았습니다. 문을 열고 한발 들어서자 “나오미, 이제 왔니?”라는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버지는 2년 동안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딸이 돌아올 때까지 문을 연 채 기다리고 딸이 돌아왔을 때 품어주는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폐병에 걸려 갈 곳 없는 료이치가 나오미를 찾아옵니다. 나오미는 갈 곳 없는 료이치를 받아었습니다. 료이치는 다락방에서 틈만 나면 그림을 그렸습니다. 료이치가 죽은 후 다락방에서 발견된 그림은 십자가의 예수님 앞에 한 사람이 다가서지 못하고 손을 내미는 모습의 그림이었습니다. 그것은 료이치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세상은 돌아갈 곳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 아무리 실패한 인생이라도, 아무리 죄가 많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기다리십니다.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십니다. 나오미의 아버지가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듯이 문을 열고 기다리십니다. 료이치처럼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먼저 달려 나와 안으십니다. 그리고 선언하십니다. “내 자녀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내 자녀다. 잃었다가 다시 찾은 내 자녀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십니다. 그러니 우리 또한 하나님의 자녀를 포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노란 리본을 참나무에 매는 빙고의 아내처럼 용서의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나오미의 아버지처럼 문을 열고 기다려야 합니다. 탕자가 돌아오듯이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의 자녀가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