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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王蠋이 曰 忠臣은 不事二君하고 烈女는 不更二夫니라
(왕촉 왈 충신 불사이군 열녀 불경이부)
왕촉이 이르길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바꾸어 섬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 王蠋(왕. 나비애벌레 촉) : 중국 전국시대의 제(齊)나라 사람. 연(燕)나라 군대가 쳐들어와서 항복을 권하자 이를 물리치고 자결하였다 함.
⋇ 事(일 사. 섬길 사) : 섬기다.
(해설)
천명을 받았다는 옛 군주들은 절대 권력을 행사하며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했다. 그 권위에 도전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여겨질 무모한 행위였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 충성은 선택할 여지가 없는 절대적 도의가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군주가 흉폭하고 주지육림에 빠져 있더라도 그를 넘어서는 안 되고 오로지 목숨을 건 간언을 되풀이 할 뿐이다. 그러다 정변이나 역모로 군주가 바뀌는 사태가 발발하면 자리에서 물러나 은거하며 여생을 보내야 했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왕조 말기에 힘의 공백을 타고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봉기나 민란이 체계를 잡으며, 많은 국가를 세우니, 대표적인 시대가 춘추전국시대요, 그 이후에도 그러한 전철을 밟고 있다. 그런데 중화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자부심을 뭉개버리는 이민족(거란, 선비, 말갈, 몽고, 여진 등)의 침입으로 그들의 지배를 받게 되지만, 그들은 세월 속에 한족의 문화에 융화되어 버리고 만다. 또한, 역성혁명이 일어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보면 대표적인 사례가 고려왕조가 망하자 새 왕조에 출사하지 않고 한 곳으로 은거한 사례와 수양대군(세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으로 등극하는 과정에 발생한 사육신, 생육신 등이다.
再嫁(재가)를 금지한 여자에 대한 가혹한 관습은 女必從夫(여필종부)와 七去之惡(칠거지악)까지 매우 혹독하였다. 열녀의 칭호를 받는 것이 양반가로서는 당연한 일로 치부되니, 조금이라도 잘못된 소문이라도 나면 가문에 먹칠을 하였다 하여 私刑(사형)을 가하기도 하여 죽음으로 까지 몰고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고 한다. 평생을 수절하고, 시부모를 모셔 나라에서 인정하고 열녀문을 하사받음을 최고의 영예로 받아들였다. 우리나라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유럽 등도 여성들에 인권을 보장하기 까지는 많은 세월이 걸렸다. 아직도 남아 있는 여성차별과 비하에 대한 남성우월주의사상이 가끔씩 도마에 오르고 있는 실정이니 그 시절에는 오죽했을까? 상상이 간다. 현대적인 가치관으로 재해석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인간적 존경과 신망 그리고 영향력을 갖는 인격을 지님으로서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복종이 아닌 자발적이고 자연스럽게 따르게 만들고, 힘을 가졌어도 합리적이고 공평하게 모두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며 평화스러워 모두가 공감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여성인권의 신장부분도 많은 분야에서 제도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사회구조적인 부분과 인식의 변화는 상당부분에서 미흡한 실정이다. 평등의 원칙이 모두 적용되고 행사할 수 있으며 보호되어야 하는 완벽한 제도적 장치와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樽俎折衝(준조절충)
- 술통과 안주를 놓은 상에서 적의 창끝을 꺾는다는 뜻으로, 공식적인 연회에서 담소하면서 유리하게 외교활동을 벌임을 이르는 말. -
춘추시대, 齊(제)나라 景公(경공)은 자기 형 莊公(장공)을 살해한 崔杼(최저)와 慶封(경봉)의 권세에 못 이겨 이 둘을 左·右相(좌우상)에 임명해야만 했다. 그리고는 이 두 사람에게 반대하는 자는 죽이기로 맹세까지 했다. 이에 모든 신하들도 맹세하였으나, 오직 安嬰(안영)만은 맹세하지 않고, 임금에게 충정이 되고 나라에 이로우면 따르겠다고 말했다. 뒤에 정변이 일어나 최저 일당은 피살되거나 도망쳐 안영이 國事(국사)를 맡아 보게 되었다. 그가 경공을 모시고 강대국 晉 (진)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여흥으로 投壺(투호)놀이를 하게 되었는데, 진나라의 신하가, 만일 우리 主上(주상)께서 맞히면 제후의 주장이 될 징조라 했다. 진나라 평공이 맞혔다. 이번엔 안영이 만일 우리 主君(주군)께서 맞히면 제나라는 진나라에 대신해 흥하리라고 말했다. 드디어 경공도 맞히자, 평공은 불쾌히 여겼다. 이때에 안영은 “투호는 하나의 놀이일 뿐이지 맹약은 아닙니다.”하고 돌아왔다. 이와 같이, 안영은 복잡한 국제외교 문제를 잘 처리하였다고 함.(출전 晏子春秋 : 안자춘추) ※ 杼(북 저).
이쑤시개
이쑤시개의 역사도 인류의 역사만큼 깊다. 이미 기원전 3,000년 슈메르인들은 금속제 이쑤시개를 목걸이나 귀고리로 주렁주렁 몸에 달고 다녔다. 중국 고분의 출토물에서 장식을 겸한 이쑤시개 목걸이를 보았는데 각기 다른 용도를 위한 다섯 가지형의 바늘 모양 이쑤시개가 금구슬로 엮여져 있음을 보았다.
고대 희랍이나 로마 사람들은 새의 깃이나, 향내 나는 나무로 이쑤시개를 삼았다. 후추나무(胡椒木 :호초목)를 마치 추잉 껌 씹듯이 씹어 입안을 매케 하고 개운하게 하기도 했다. “고슴도치의 바늘로 이쑤시개를 하면 잇몸이 튼튼해지는데 독수리 깃으로 이쑤시개를 하면 입내가 나 좋지 않다.”고 말한 이는 프리니우스다.
이슬람 사람들은 식사와 아랑곳없이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있는데 保身(보신)수단이라 한다. 이슬람지역서 강제키스를 했다가는 입 속에 숨겨둔 이쑤시개로 상해를 입는다는 건 상식이 돼 있기도 하다. 이에 비해 동양의 이쑤시개는 평화적이다. 불교에서는 大乘(대승)의 比丘(비구)가 몸에 지녀야 할 필수기구를 “十八物(십팔물)”이라 하는데 맨 첫 번째로 꼽히는 것이 이빨을 깨끗이 하고 혓바닥을 닦는 楊枝(양지)다. 齒木(치목)이라고도 불리는 이쑤시개다. “五分率(오분율)”이라는 불경에 보면 양지를 씹음으로써 다섯 가지 공덕을 얻는다 하였다. 밥을 잘 삭히고 冷熱(냉열)은 식히며, 맛을 분별케 하고, 입내를 없애며, 눈을 밝게 한다는 것이 다섯 공덕이다.
그리고 양지질을 한 입으로 불경을 외워야 그 맑고 순결한 진리가 유효해진다고 알았기에 修道(수도)의 첫걸음이 바로 양지질이었다. 큰 스님이 치목을 나누어 주어 東面(동면) 혹은 北面(북면)하여 이를 씹게 하고 그 동안에 “이로써 菩提心(보리심)을 發心(발심)하고 三業(삼업)을 淨除(정제)하며 三世無碍(삼세무애)의 번뇌를 이빨로 씹어 일산 시키라.”는 설법을 한다.
이 같은 이쑤시개 문화가 불교에 묻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본다. 양치질을 사전에서 “養齒(양치)”로 쓰고 있는데 한문 원전에는 그림으로 눈을 즐겁게 하는 養目(양목), 소리로 귀를 즐겁게 하는 養耳(양이)라는 말은 있어도 양치라는 말은 없고 쓴 用例(용례)도 없다. 이쑤시개를 뜻하는 양지질이 양치질로 변화되지 않았는가 싶어진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楊枝木(양지목)을 절간에 가서 공양하고 얻어오는 습속이 있었는데 그로써 無病息災(무병식재)하는 것으로 알았으니 佛心(불심)과 이쑤시개의 함수를 엿보게 해준다. 우리전통 이쑤시개는 버들(柳-楊)-뽕(桑), 닥(楮 : 저), 대추나무(棗 : 조) 그리고 대(竹 : 죽)나무 등으로 만들었으며 손가락의 여섯 마디 정도의 길이로 길게 만들어 이를 깎아가며 썼기에 이쑤시개 하나로 석 달 열흘을 닦는다 했으니 대단한 이쑤시개 절약이 아닐 수 없다. 보도된 바로 이쑤시개 수입하는데 만 2백 만 달러어치를 날려 무역적자를 가중시키고 있다 한다. 팔도강산에 있는 것이 나무뿐인데 어찌 이쑤시개까지 수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이규태 코너 1991년)
13-8. 忠子曰 治官엔 莫若平하고 臨財엔 莫若廉이니라
(충자왈 치관 막약평 임재 막약염)
충자가 말하길 “벼슬아치를 다스림에는 공평함만 같음이 없고, 재물을 대함에는 청렴함만 같음이 없다.”고 하였다.
⋇ 忠子(충자) : 어떤 사람인지 미상.
(해설)
세태에 빠른 적응을 위한 변신은 살아남는데 가장 커다란 장점이 된다. 힘이 뛰어나서 강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처럼 수 천만 년에 걸쳐 끈질기게 살아남은 동. 식물들을 보면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진화한 것들이다. 원자폭탄을 실험하여 폐허가 되어 버린 무인도에 세월이 흐른 뒤에 제일 먼저 모습을 보이는 것이 곤충이라 하지 않는가. 왕성한 번식력과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는 생명력과 환경적응력은 상상을 불허 한다. 사람 또한 다르지 않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공이란 열매를 따기 위하여서는 무한변신과 앞서 가는 미래예측능력 및 남보다 배의 노력이 합쳐져야 가능하다. 권력의 흐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계층은 관료들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의 뿐 아니라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의 경우 임기 말에 나타나는 “레임 덕”현상은 그런 실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관료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바닥을 치면 사정의 칼날이 노리게 되는데, 이때에 보신을 위해 행하는 행태를 꼬집은 말들이 “伏地不動(복지부동)”“伏地眼動(복지안동)” “법대로 한다.” 등의 유행어를 만들어 내었다.
공평함이란 어디에 치우침이 없음을 뜻한다. 어느 한쪽으로 조금이라도 균형이 맞지 않고 기운다면 형평성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감정이 이성보다 앞설 때가 많은 사람인 이상 아무리 공평하게 한다고 해도 자신이 예뻐하고, 좋아하며, 말이 통하고, 잘 따르는 자에게 정이 더 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리라. 그래서 객관적인 판단기준을 만들고 그를 통한 평가를 하게 되지만 주관적인 요소가 조금이라도 개입될 소지가 있으면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권력이란 자체가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함을 무기로 하기에 부모형제도 하루아침에 원수지간으로 만드는가 하면 한 번 맛을 들이면 손에서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치게 만들어 버리는 마력을 지니고 있기에 불행의 싹이 튼다. 당근과 채찍이란 말로 다스림의 요체를 말하지만 대개는 당근보다 채찍 쪽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 당근을 주려면 그만한 財源(재원)과 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반해 채찍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두를 불식시키며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방법이 바로 公平無私(공평무사)로 가장 좋은 원칙이자 지표가 된다.
재물을 앞에 놓고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정당한 노력과 땀의 대가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아니하는 경우에 문제는 발생된다. 사업을 위하여, 신분상승을 위하여, 남보다 빠른 일처리를 위하여, 정당하지 않은 방법을 위하여, 등의 이유로 부정을 저지르게 된다. 청렴은 이러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굳센 신념과 확고한 주관을 지닐 때 가능하다. 유혹에 흔들리지 말아야 하고, 정당한 절차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한 것을 과감하게 “No"를 외치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가장 병폐인 三緣主義(삼연주의)의 연결고리를 깨뜨려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외치고 있지만 뿌리가 깊어 쉽사리 사라지지는 못하는 것 같다.
공평과 청렴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경제력보다 앞서야 하는 커다란 가치이자 모두가 생활 속에 실천하여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四面楚歌(사면초가)
-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의 노래라는 뜻으로,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이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상태에 빠짐을 이르는 말. -
楚(초)나라의 覇王(패왕) 項羽(항우)와 漢(한)나라의 劉邦(유방)이 천하를 다투던 때, 항우에게 마지막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끼던 슬기로운 장수 范增(범증)마저 떠나 버리고, 결국 유방에 눌려 한나라와 강화하고 동쪽으로 돌아가던 도중 垓下(해하)에서 한나라의 명장 韓信(한신)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빠져나갈 길은 좀처럼 보이지 않고, 병졸은 줄어들며 군량미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군과 제후의 군사는 포위망을 점점 좁혀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려왔다. 가뜩이나 고달픈 초나라 병사로 하여금 고향을 그리게 하는 구슬픈 노래였다. 한나라가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로 하여금 고향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項王軍壁垓下 兵少食盡 漢軍及諸侯兵圍之數重 夜聞漢軍四面皆楚歌 : 항왕군벽해하 병소식진 한군급제후병위지수중 야문한군사면개초가). 항우는 깜짝 놀라면서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빼앗았단 말인가? 어찌 초나라 사람이 저렇게 많은고?(項王乃大驚曰 漢皆旣得楚乎 是何楚人之多也? : 항왕내대경왈 한개기득초호 시하초인지다야?)”하고 탄식했다. 그는 진중에서 마지막 주연을 베풀었다. 그리고 유명한 “力拔山氣蓋世(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時不利騶不逝 騶不逝可奈何 虞美也奈若何 : 역발산기개세 시불리추불서 추불서가내하 우미야나약하)”의 시를 지어 자신의 운명을 탄식했고, 총애 받던 虞美人(우미인)도(漢兵已略地 四方楚歌聲 大王意氣盡 賤妾何聊生 : 한병이약지 사방초가성 대왕의기진 천첩하료생) 그의 시에 화답하고 자결하였다. 항우는 800騎(기)의 잔병을 이끌고 烏江(오강)까지 갔다가 결국 건너지 못하고 그 곳에서 자결하고 마니, 그의 나이 31세였다.
(출전 史記 項羽本紀) ※ 騶(마부 추), 聊(잠시 료, 애오라지 료).
“천국의 문” 분석
39명이 편안히 누워 죽은 샌디에이고의 “천국의 문” 집단자살은 천체의 리듬과 무관치 않다고 한 것은 뉴욕 타임스이다. 그 증거로 여태까지의 대량 집단자살은 추분이나 동지 전후에 일어났고, 샌디에이고의 사건도 춘분 전후에 일어났다는 것을 든다. 또 다른 공통점은 자살이 일어난 시기가 달이 차는 날 전후라는 것을 들고, 이 사건도 우리 음력 보름날에 시작해 사흘 간 진행됐다는 점이다.
섹스피어의 “오셀로”에서 오셀로의 광기를 달이 지구에 접근했기 때문이라고 핑계 대는 대목이 있다. 브라질에서는 아기가 달빛을 쬐면 머리가 돈다고 여기고, 아이슬란드에서 임산부가 달을 향해 앉으면 뱃속의 아이가 미친다고 알았다.
달을 뜻하는 “루나”에서 파생된 “루나시”는 정신이상, 미치광이를 뜻하고 “루나덕”하면 광인이나 돈 사람을 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모델인 영국의 한 직공 하이드는 달이 차는 밤만 되면 자신도 지각하지 못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만다. 그리고는 법정에서 달이 원흉이요,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한다.
매사추세츠의 살인마 잭이나 보스턴의 교살마가 범행한 것 중에 80%가 보름날 밤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에서는 보름날 밤의 특별경계가 관례라던데 이날 밤에 투신 빈도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경기도 화성의 연쇄살인사건도 보름날 밤 전후에 많이 일어났음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달 운이 집단자살을 부치기는 요인이 되었을지언정 집단자살을 하게 한 원인일수는 없다.
“메르키제딕 신드름”이라는 게 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 예언자가 1976년 2월 UFO를 타고 로스엔젤라스에 하강하여 여자택시운전자로 일하고 있다 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하찮은 인생에 환멸을 느낀 사람을 모아 UFO에 태워 천국으로 이주케 한다 하여 민심을 교란시켰던 것이다. 종교에 안식처를 구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그 종교적인 갈증을 縱的(종적)인 상승에 추구하는 것이 “메르키제딕 신드름”이다. 샌디에이고의 사교도들이 “의심이 가지 않는 건 아니나, 선택의 길이 없다.”하고 UFO에 타기 위한 의례로 그렇게 행복한 얼굴을 하고 죽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수직상승하면 나타날 것이라는 천국에 가기 위해 그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교의 교주를 따라 현세의 삶을 매미 허물 벗듯 벗어 버린 것이다. 어쩌면 이번 “천국의 문”사건으로 가장 분노한 것은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는 성 베드로일지도 모른다.(이규태 코너 1997년)
13-9. 張思叔座右銘에 曰 凡語를 必忠信하며 凡行을 必篤敬하며 飮食을 必
(장사숙좌우명 왈 범어 필충신 범행 필독경 음식 필
愼節하며 字畫을 必楷正하며 容貌를 必端莊하며 衣冠을 必整肅하며 步履를 必
신절 자획 필해정 용모 필단장 의관 필정숙 보리 필
安詳하며 居處를 必正靜하며 作事를 必謀始하며 出言을 必顧行하며 常德을 必
안상 거처 필정정 작사 필모시 출언 필고행 상덕 필
固持하며 然諾을 必重應하며 見善如己出하며 見惡如己病하라 凡此十四者는 皆
고지 연락 필중응 견선여기출 견악여기병 범차십사자 개
我末深省이라 書此當座右하며 朝夕親爲警하노라
아미심성 서차당좌우 조석친위경)
장사숙좌우명에 이르길 “무릇 말은 반드시 충성되고 믿음이 있어야 되며, 행실은 반드시 돈독해야 하며, 음식은 반드시 삼가고 절제하며, 글씨는 반드시 바르고 똑똑히 쓰며, 용모는 반드시 단정하고 씩씩하게 하며, 의관은 반드시 반듯하고 엄숙하게 하며, 걸음걸이는 반드시 찬찬하고 자상히 하며, 거처하는 곳은 반드시 바르고 정숙하게 하며, 일하는 것은 반드시 계획을 세워 시작하며, 말을 할 때는 반드시 그 실행여부를 돌아보고 하며, 평상(平常)의 덕을 반드시 굳게 가지며, 일을 허락하는 것은 반드시 신중히 생각해서 응하며, 선을 보거든 자기에게서 나온 것처럼 하며, 악을 보거든 자기의 병 같이 하라. 무릇 이 열 네 가지는 모두 아직 내가 깊이 살피지 못한 것이다. 이를 마땅히 자리의 오른편에 써 붙여 놓고 아침저녁으로 보고 경계로 삼고자 하노라.”하였다.
⋇ 張思叔(장사숙) : 북송(北宋) 때의 학자. 본명은 장역(張繹 : 장. 풀어낼 역), 사숙(思叔)은 자(字). 정이천(程伊川)의 제자.
⋇ 凡(무릇 범. 모두. 다) : 무릇.
⋇ 字畫(자획) : 글자의 획.
⋇ 篤敬(독경) : 돈독하고 공경하는 자세가 있음.
⋇ 愼節(신절) : 삼가고 절조 있게 함.
⋇ 楷正(본, 본보기, 나무이름 해. 정) : 해서체(楷書體)로 또박또박 씀.
⋇ 端莊(바를, 곧다 단. 엄숙할, 풀 무성할 단) : 단정하고 엄숙함.
⋇ 步履(보. 신, 밟다 리) : 걸음걸이.
⋇ 安詳(안상) : 안정되고 자상함.
⋇ 謀始(꾀할 모. 시) : 계획을 세워 시작함.
⋇ 顧行(돌아볼 고. 행) : 실행여부를 돌아 봄.
⋇ 常德(상덕) : 평상(平常)의 덕.
⋇ 然諾(연락) : 승낙함.
⋇ 重應(중응): 신중하게 대답함. 신중을 기해 응함.
⋇ 深省(심성) : 깊이 살펴봄(살핌).
(해설)
누구나 평생을 살아가면서 일상생활에 질서와 이루고자 하는 일에 성공을 위해 지켜야 할 한가지의 신조랄까 지침이랄까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한다. 한 가정에는 가훈이 있고, 사회에는 준칙이 존재하며, 국가는 국정지표가 있다.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항로를 이탈하지 않고 바로 가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방법인데, 나침반이 없던 시절에는 하늘의 별을 보고, 낯에는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배의 항로를 이탈하면 난파라는 끔찍한 사태가 발생하듯, 사람 또한 같다. 바른 길로 가기 위한 기준을 설정해 놓고 늘 제대로 가고 있는가를 확인하여야 한다. 그렇게 해도 늘 엉뚱하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발생하여 불가피하게 수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아무런 기준도 없다면 그 가는 길은 험난하고 장님이 길을 가듯 더듬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확실한 목표가 없다면 어떠한 것을 달성할 것인가도 모호하니 어디쯤 와 있는지 조차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시작은 하였으나 무엇을 하려는지 윤곽도 기준도 없으니 무슨 일이든 우왕좌왕하다 끝날지도 모를 것이다.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넘어서는 안 되는 기준이 있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예절과 지켜 주어야 하며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하여야 하는 일들 또한 많이 존재한다. 믿음과 신뢰 그리고 인간적인 정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말 한마디도 실수하여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돌이킬 수 없는 사이로 만드는 일이 없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행동거지 하나하나 절도가 있고, 예의를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주위를 살펴 마땅히 지켜야 하는 도리를 따라야 한다. 비굴하지도 않고, 소란스럽지도 않으며 장중하면서도 단정하고 용모 또한 미소를 띠며 온화하고 화평하도록 하여야 한다. 거처하는 곳은 청결과 정숙을 유지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머무는데 불편함이 없고, 모든 일은 계획되어 선후와 진행될 절차에 따르고, 무언가 허락을 요할 때는 성사여부와 지킬 수 있는가를 신중히 생각하여 답하며, 일단 약속한 일에 대해서는 우선하여 지키는 신의를 가져야 한다. 좋은 일을 보면 내가 하는 것처럼 즐거워하고 나쁜 일은 나를 병들게 하는 것으로 멀리하여야 한다.
살아가면서 늘 올바르고, 모든 일에 용기 있게 행동하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굴곡도 있고, 귀가 솔깃해져 잠시 망각하거나 이익에 눈이 멀어 의기를 잃어버리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약자를 괴롭히고, 나쁜 일에 집중하며, 무익한 오락에 빠져 방탕한 길을 걷기도 한다.
때론 방황도 하고, 때론 젊은 혈기에 의한 잘못도 저지르게 되며, 주색과 도박의 유혹에 포로가 되기도 한다. 실패에 따른 좌절과 절망도 맛보고, 작은 성공에 기뻐하기도 한다.
그래서 늘 돌아보며 자신을 살피라 했다. 하루에 세 번 반성하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亡國之音(망국지음)
- 나라를 망하게 할 퇴폐적인 음악 -
춘추시대 衛(위)나라의 靈公(영공)이 晉(진)나라로 가는 도중에 濮水(복수) 근방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현묘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음률이 너무나 절묘하여 마치 천상의 소리인 듯했다. 한참을 넋을 잃고 듣던 영공은 수행하던 樂師(악사)에게 그 가사를 베끼고 악보까지도 채록하라 명하였다. 진나라에 도착하자 영공은 그 신묘한 음악을 진나라의 평공(平公)에게 손수 연주하여 들려주었다. 평공은 당시 진나라에서 유명한 음악가였던 師曠(사광)을 불러들여 함께 듣도록 했는데, 영공의 음악을 듣고 있던 사광은 깜짝 놀라 영공의 손을 잡으며 “그것은 망국의 음악입니다.”라고 말했다. 놀란 영공과 평공에게 사광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 師延(사연)이라는 유명한 음악가가 “新聲百里(신성백리)”라는 음탕한 음악을 지어 殷(은)나라의 紂王(주왕)에게 바쳤다. 주왕은 이 음악을 즐기며 酒池肉林(주지육림)에 빠져 무왕에게 망하였고, 사연은 복수에 빠져 죽었다. 이에 사람들은 이 노래를 망국의 음악이라 하였다고 함.(출전 韓非子)
(治世止音 安以樂 其政和 亂世之音 怨以怒 其政乖 亡國之音 哀以思 其民困 : 치세지음 안이락 기정화 난세지음 원이노 기정괴 망국지음 애이사 기민곤 - 세상을 다스리는 음악은 편하고 즐거우니 그 정치가 조화를 이루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음악은 원망과 성내게 하니 정치를 어긋나게 만든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음악은 슬프며 생각하게 하니 그 백성이 곤궁하게 된다. : 禮記 樂記篇)
白首文(백수문)
일심동체로 뜻을 모우고 그 뜻을 다지며 그 뜻을 기원하는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운 구심매체로서 “白首文(백수문)”이란 게 있다.
어느 한 친지의 자제가 돌을 맞거나 서당에 입학하면 1,000명의 친지들이 각자 한자씩 “천자문”을 써서 책을 엮어 그 아이에게 선물함으로써 면학과 축원하는 것도 백수문의 하나다. 백수는 하얀 머리 - 곧 장수를 뜻하며 백수문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장수를 기원하는 글이란 뜻이다.
한국출판판매주식회사 주최 희귀도서전에 1937년 3월1일이 돌날인 이희수란 아이에게 돌선물로 주어진 “백수문(안춘근씨 소장)” 한 권이 전시되었다. “천”자를 쓰고 그 아래 “하늘 턴”이란 훈을 달았으며 그 곁에 쓴 사람의 자필 이름, 그 아래 도장이나 사인을 해서 1,000명이 이 축원에 참여하고 있으니 대단한 정성이 아닐 수 없다. 이만한 축원을 받고 어떻게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장수하지 않을까 싶었다. 또한 이 세상에서 한 친지의 자제를 위해 이만한 정성을 들이는 어떤 나라가 있었던가도 싶어진다.
한국교육사 뿐 아니라 세계교육사에 특기할 만한 일이요, 이 자체 하나를 구심체로 두고 결속된 1,000여명의 정신적 결속 또한 싱그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일심동체를 다지는 정신민속은 이밖에도 많다. 정다산이 강진에 유배되어 차를 가꾸며 제자들을 가르쳤었다. 유배가 풀려 다산이 서울로 올라온 후 그의 제자 20여명은 茶信契(다신계)를 맺고 해마다 각기 제 차밭에서 수확한 차 한줌을 보탠 合心茶(합심차) 한 봉지와 스승을 흠모하는 시 한 수씩을 지어 백수문으로 만들어 스승에게 보내곤 했던 것이다. 合心扇(합심선) 또는 일심선이라 하여 뜻을 같이 하는 사람끼리 부채살 한 줄기에 단구와 각자의 이름을 적어 드리기도 했다.
미국 애나 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가보면 신미년의 한. 미 전쟁 때 강화에서 노획한 전리품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죽음을 맹세한 한국 병사들의 합심선도 끼어 있어 숙연해졌던 생각이 난다. 스승이나 뜻있는 선비가 회갑을 맞으면 구절병풍에다 흠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뜻을 받드는 뜻에서 시구와 이름을 적어 백수를 축원하기도 했는데 이를 萬人屛(만인병)이라 하여 어느 한 고을 원님이 자신의 선정을 조정에 현창하기 위해 사람을 사주하여 커다란 日傘(일산)에다 많은 사람의 송덕시를 적은 베 나부랭이를 주렁주렁 달고 三絃六角(삼현육각)을 잡아 서울 종로를 오가는 습속도 있었는데 이것은 백수민속을 악용한 경우랄 것이다.
공동체로서 구심력을 잃고 됫 밖에서 흩어져 나간 콩알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력(引力)을 잃고 사는 현대인의 상황에서 이 백수문이라는 정신민속이 별나게 싱그럽고 새삼스럽기만 하다(이규태 코너 1986년)
13-10. 笵益謙座右銘에 曰 一不言朝廷利害邊報差除요 二不言州縣官員長短得
(범익겸좌우명 왈 일불언조정이해변보차제 이불언주현관원장단득
失이요 三不言衆人所作過惡之事요 四不言仕進官職趨時附勢요 五不言財利多少
실 삼불언중인소작과악지사 사불언사진관직추시부세 오불언재리다소
厭貧求富요 六不言淫媟戲慢評論女色이요 七不言求覓人物干索酒食이요 又人付
염빈구부 육불언음설희만평론여색 칠불언구멱인물간색주식 우인부
書信을 不可開坼沈滯요 與人竝坐에 不可窺人私書요 凡入人家에 不可看人文字
서신 불가개탁침체 여인병좌 불가규인사서 범입인가 불가간인문자
요 凡借人物에 不可損壞不還이요 凡喫飮食에 不可揀擇去取요 與人同處에 不可
범차인물 불가손괴불환 범끽음식 불가간택거취 여인동처 불가
自擇便利요 凡人富貴를 不可歎羨詆毁니 凡此數事에 有犯之者면 足以見用心之
자택편리 범인부귀 불가탄선저훼 범차수사 유범지자 족이견용심지
不正이라 於正心修身에 大有所害라 因書以自警하노라
부정 어정심수신 대유소해 인서이자경)
범익겸 좌우명에 말하길 “첫째 조정에서의 이해와 변방으로부터의 보고와 관직의 임명에 대하여 말하지 말고, 둘째 주현(州縣)의 관원의 장단과 득실에 대하여 말하지 말고, 셋째 여러 사람이 저지른 악한 일을 말하지 말고, 넷째 벼슬에 나가는 것과 기회를 따라 권세에 아부하는 일을 말하지 말고, 다섯째 재리(財利)의 많고 적음이나 가난을 싫어하고 부를 구하는 것을 말하지 말고, 여섯째 음탕하고 난잡한 농지거리나 여색에 대하여 말하지 말고, 일곱째 남의 물건을 탐내거나 주식(酒食)을 토색하는 것을 말하지 말지니. 그리고 남이 부치는 편지를 뜯어보거나 지체시켜서는 안 되며, 남과 같이 앉아있으면서 남의 사사로운 글을 엿보아서는 안 되며, 무릇 남의 집에 들어감에 남이 만든 글을 보지 말며, 무릇 남의 물건을 빌렸을 때 이것을 손상시키고 돌려보내서는 안 되며, 무릇 음식을 먹음에 가려서 취하지 말며, 무릇 남과 같이 있으면서 스스로의 편리만을 가리어 취하지 말며, 무릇 남의 부하고 귀한 것을 보고 한탄하거나 부러워하거나 헐뜯지 말 것이니, 무릇 이 몇 가지 일을 범하는 자가 있으면 넉넉히 그 마음 쓰는 것의 바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는데 크게 해되는 바가 있는지라, 이로 인하여 이 글을 써서 스스로 경계하노라.”고 하였다.
⋇ 범익겸(范益謙) : 송나라 고종(高宗) 때 사람. 이름은 충(冲), 자는 원장(元長).
⋇ 邊報(변보) : 변방의 보고.
⋇ 差除(어긋날, 틀릴 차. 섬돌, 길 제) : 뽑혀 벼슬에 임명됨.
⋇ 過惡之事(과악지사) : 잘못되고 악한 일.
⋇ 趨時附勢(추시부세) : 기회에 따라 권세에 아부함.
⋇ 厭貧求富(염빈구부) : 가난을 싫어하고 부를 구함.
⋇ 淫媟(음. 깔볼 설) : 음탕한 것.
⋇ 戲慢(희만) : 희롱하는 것.
⋇ 求覓人物(구. 찾을 멱. 인물) : 남의 물건을 바라며 찾음.
⋇ 干索酒食(간색주식) : 술과 음식을 토색(討索)함.
⋇ 開坼(개. 열다, 펼 탁) : 열어 보는 것. 뜯어 봄.
⋇ 窺人私書(엿볼 규. 인사서) : 남의 사사로운 글을 엿봄.
⋇ 看人文字(간인문자) : 남이 지은 글을 봄.
⋇ 損壞不還(손괴불환) : 손상시키고 파괴하거나, 돌려보내지 않음.
⋇ 揀擇去取(간택거취) : 가려서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만 취함.
⋇ 同處(동처) : 같이 있음. 함께 있음.
⋇ 歎羨詆毁(탄. 부러워할, 탐낼 선. 꾸짖다, 비난할 저. 헐 훼) : 한탄하고 부러워하거나, 꾸짖고 훼방함.
(해설)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무엇을 삼가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현재 자신이 서있는 자리와 하는 일 그리고 주변은 어떠한가에 따라 조금씩은 차이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과 넘어서는 안 되는 일, 하여서는 안 되는 일 등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보편타당성을 지니는 도리이기 때문이다.
어느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 지켜야 하는 규범과 그에 따르는 책임이 있게 마련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 파장은 매우 크고, 넓으며, 심각한 사태를 유발시킨다. 그것이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간에 영향력은 상상을 불허하기에 늘 신중하고 진중한 처신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작은 먼지가 쌓이고 쌓여 산을 만들듯 하찮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일들이 하나씩 몸에 익숙해지면 그를 고치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그나마 그런 잘못됨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혹은 잘못됨을 알면서도 사사로운 이익이나 경쟁상대를 넘어서기 위한 방편으로 눈 딱 감고 한번만 하는 식으로 자기암시를 하며 저지르는 일도 왕왕 존재하는데 한번 그 달콤하고, 향기로움에 맛들이면 그 유혹을 떨쳐 버리기는 쉽지 않다. 모르고 저지른 행동보다 알면서도 행한 잘못은 더 용서받기가 어렵다. 자신에게 엄격해야 하는 것을 망각한 잘못은 두고두고 자신의 양심을 자극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한 마음의 고통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자칫하면 범하기 쉬운 일상에 일들이라 무심코 넘어가기 쉽고, 작고 하찮기에 전혀 낌새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기에 조심하고 늘 염두에 두고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의 손에 쥔 떡이 커보일지라도 내가 배부르다 생각하면 작아 보일 것이요, 내일 생길 백 원이 현재의 십 원보다 작다 생각하고, 악의적이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라도 내가 듣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허공으로 날아가는 말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양반체면이란 허울도 벗어 던지고 나면 홀가분할 것을 왜 무겁게 지고 다니는지, 온 몸을 아무리 보석과 황금으로 치장한다 해도 눈 감으면 모두 허사인 것을 알면서도 집착하는 마음을 왜 강물에 띄어 보내지 못하는지. 아무리 산해진미라 해도 배부르고 나면 모두 도루묵이라 했잖은가?
눈뜨면 눈에 들어오는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에 정신을 빼앗기고, 귀로 들리는 수많은 유혹과 감성을 자극하는 말들의 홍수 속에 자신을 지킨다는 것을 시험무대에 오른 수험생이다 생각하자. 아무리 피가 뜨거워져서 발길을 멈추지 못하게 하더라도 컴컴하고 낯 선 어두운 밤길을 걷듯이 걸어가자.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하라고 하지 않는가?
빚쟁이 명부
넓은 평원을 떠돌며 사는 유목민족일수록 인정에 메마르고 빚에 대해 냉혹하다. 조상대대로 한마을에 정착하여 살아온 농경민족일수록 인정 없이 못 살고 따라서 빚에 대해 관대하다.
기마유목민족인 북쪽 오랑캐의 빚에 대한 기록을 보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빚을 갚지 않았을 경우 부채액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① 코나 성기 같은 하나만 있는 육체부위를 절단하는 重刑(중형) ② 손이나, 발, 귀, 눈 같이 두 개가 있는 육체부위의 어느 하나를 제거하는 中刑(중형) ③ 손가락, 발가락처럼 열 개가 있는 육체부위의 어느 하나를 절단하는 輕刑(경형)으로 응징하고 있다. 가혹한 응징이요, 웬만해서는 빚을 얻을 엄두를 못 냈을 유목사회였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태인 샤일록이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인육 1파운드를 요구한 것은 소설 속의 허구가 아니라 유목민족의 관습을 도입한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회교를 믿는 사막민족들은 약속을 어긴 빚쟁이를 그날로 노예 신분으로 下賤(하천)시켜 빚 준 사람의 재산목록으로 등록된다.
투키디데스의 “게르마니아”에 보면 유럽을 휩쓸던 무렵의 게르만 민족도 빚을 갚지 않으면 빚 준 사람의 노예로 평생을 살게끔 엄한 제재가 가해지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관용하기 이를 데 없었다. 촌락자치규약인 향약에 보면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갚지 않는 악질적인 빚쟁이에 한해 양반일 경우 벽을 바라보고 앉혀두는 면벽, 상민일 경우 시장바닥에 세워두는 立市(입시)로 명예형을 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빚쟁이의 사정이 딱할 경우 十匙債(십시채)라 하여 마을사람들이 십시일반식으로 추렴하여 갚아주는 미풍도 있었다. 우리 옛 선조들 돈을 빌려 줄 때 “우리 집 외양간에서 만나게 되는 일이 없게 하게나”하는 말을 곧잘 했다. 빚지고 죽으면 빚진 집의 송아지로 태어나 빚을 갚게 된다고 알았으니 우리 선조들의 부채문화는 선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부채문화가 도시화, 산업화로 옮겨 가면서 質惡(질악)해지고 타락해 온 것이다. 그래서 상습 빚쟁이를 시용사회에서 소외시키는 방편으로 빚쟁이 명부를 만들어 공람케 할 참이란다. 고려 때 바람기가 있는 여인을 恣女安(자녀안)이라는 명부에 등록케 하여 그 가문과 자손에게 불이익을 주었던 것과 같은 맥락의 명예형이랄 수 있다. 악의의 빚은 그로써도 약과지만 선의의 빚이 그 때문에 다칠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이규태 코너 1990년)
贈家奴順目(증가노순목) - 梧里(오리) 李元翼(이원익) -
露梁春水野(노량춘수야) 노들에 봄이 오니 들 물이 차오르고
洪峽夏雲天(홍협하운천) 산마을 여름 와서 구름 뭉게 떠오른다.
跋涉來尋再(발섭래심재) 산 넘고 물을 건너 두세 번 찾아오니
多渠繼父賢(다거계부현) 네 아비 그 착함을 네가 이어 받았구나
13-11. 武王이 問太公曰 人居世上에 何得貴賤貧富不等하고 願聞說之하여 欲
(무왕 문태공왈 인거세상 하득귀천빈부부등 원문설지 욕
知是矣로다 太公이 曰 富貴는 如聖人之德하여 皆由天命이거니와 富者는 用之
지시의 태공 왈 부귀 여성인지덕 개유천명 부자 용지
有節하고 不富者는 家有十盜니이다
유절 불부자 가유십도)
무왕이 태공에게 묻기를 “사람이 세상을 사는데 어찌하여 귀천과 빈부가 고르지 못할 것이 있습니까? 원컨대 설명을 들어서 이를 알고자 합니다.”하니, 태공이 말하길 “부귀는 성인의 덕과 같아서 다 천명에 말미암거니와, 부자는 쓰는 것이 절도(節度)가 있고 부하지 못한 자는 집에 열 도둑이 있나이다.”고 하였다.
⋇ 武王(무왕) : 문왕의 아들로 성은 희(姬), 이름은 발(發). 부왕의 유업을 계승하여 은(殷)나라의 폭군 주왕(紂王)을 멸하고 주왕조(周王朝)를 세움. 강태공을 왕사(王師)로 삼음.
⋇ 何得(하득) : 어찌 ~할 수 있는가? 어찌 능히.
⋇ 不等(부등) : 같지 아니함. 고루지 못함.
⋇ 聞說之(문설지) : 이에 대한 설명을 들음.
⋇ 欲知是(욕지시) : 이를 알고자 함.
⋇ 由天命(유천명) : 천명에 달려있음. 천명에 말미암은.
(해설)
누구는 부자로 호사를 누리고, 누구는 뼈 빠지게 일해도 입에 풀칠하기 급급하게 살아가야 하는지? 현세에서도 많이 회자되는 문제점에 하나이다. 부의 집중화 현상으로 상위 1%가 전 國富(국부)의 80∼90%를 소유하고 있다고 하니 이제는 빈곤도 상속 받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되었다. 때로는 희귀동물처럼 바늘의 귀를 통과하는 몇몇의 사람도 있지만 어느 정도 체계화되고 질서가 잡힌 체제 속에서 “개천에서 용 나듯이” 성공의 열매를 따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계속 진화하는 IT산업 분야에서 신화를 이룩하고, 또 다른 분야에서도 신화는 써지겠지만 그리 녹녹치만은 않다. 그래서 도전정신과 모험심의 상징인 젊은 세대들이 펼쳐나갈 꿈이 사라지고 있다 하여 “꿈을 잃은 세대”라 부르기도 하지만 무한히 발전해 나가는 새로운 영역의 개척에는 아직도 무한의 도전과 끊임없는 열정, 그리고 금맥 같이 찾아주기를 강력하게 희망하며 손짓하고 있다. 쉴 새도 없이 변화하고, 발전해 가는 사회적 현상들이 상품의 수명을 점차 단축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처럼 뒤집어 보면 그만큼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틈새가 많다는 것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앞서도 큰 부자는 하늘에서 내고, 작은 부는 근면에 달렸다 하였는데, 흔히 말하는 “안 되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처럼 주변을 살펴보면 벌리는 일마다 고배의 쓴 잔을 마시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되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성공을 한다. “돈이 사람을 따라야지, 사람이 돈을 따라 가면 안 된다.”는 말처럼, 있는 노력과 없는 정성을 다해도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면에 그다지 노력하지도 않고, 대충 설렁설렁 하는 것 같아도 성공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타고 난 자질을 거론하기도 한다. 즉, 재운을 타고 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하여, 재운 대신에 다른 자질을 부여 받았기에 타고난 자질에 대한 분야로 투자하여야 성공한다는 논리이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자질이 무엇인가? 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을 발견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스승 혹은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수많은 분야 중에 과연 어떤 것에 소질을 갖고 태어났는가? 어려서부터 확연하게 나타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뒤늦게야 나타나는 사람도 있기에 판단을 내리는데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유 없는 사실은 없듯이 부자는 나름대로 실천하고 지키는 신념이 남다르다고 한다. 생활은 검소하고 재물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여 쓸데없는 소비는 삼가며, 무조건 저축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쓰는 방법을 알아 필요한 데에는 과감하게 사용한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생활 속에 낭비와 쓸데 쓰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사용하며 재물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간과하기 일쑤다. 낭비와 무계획적이고 쓰임새를 알지 못하며, 무조건 쌓아만 두려고 하는 등의 무지를 범한다. 여기서는 열 도둑이라 칭하였지만.
枕流漱石(침류수석)
- 시냇물을 베개 삼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뜻, 몹시 남에게 지기 싫어함을 이르는 말. -
晉(진)나라 초기에 孫楚(손초)는 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낸 가문에서 태어나 글재주가 뛰어났다. 인재 등룡관인 大中正(대중정)이 손초에 대한 소문을 듣고 손초의 친구인 王濟(왕제)를 찾아가 그의 인물됨을 물었다. 왕제는 “그는 貴公(귀공)이 직접 보고서 알 수 있는 인물이 아니요. 손초는 놀라운 사람으로 보통 사람같이 다루어서는 안 되오.”하고 말했다. 일찍이 손초는 당시의 竹林七賢(죽림칠현) 등의 영향을 받아 속세를 떠나 산속에 들어가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연구하고 淸談(청담)을 주고받으면서 일생을 지내려고 생각했다. 손초는 떠나기 전날 친구 왕제를 찾아가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그런데, “돌을 베개 삼고 시냇물로 양치질하는 생활(枕石漱流 : 침석수류)을 하며 지내고 싶다.”라고 해야 할 말을, 손초는 “돌로 양치질하고 시냇물을 베개 삼는다.”라고 했다. 이 말에 왕제가 어찌 시냇물을 베개 삼을 수 있으며, 돌로 양치질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손초는 즉시 “시냇물을 베개 삼는다는 말은 옛날 隱士(은사) 許由(허유)와 같이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에 귀를 씻으려 한다는 것이며, 돌로 양치질 한다는 말은 이를 닦으려는 것일세.”하고 응수하였다고 한다.(출전 晉書 孫楚傳)
붉은 옷의 정신분석
1888년 런던의 밤을 공포의 회오리 속에 몰아쳤던 “칼잡이 블랙 잭”이라는 사나이가 있었다. 밤거리의 젊은 여인을 교묘하게 유인, 변태적으로 즐기고는 무자비하게 칼질을 하여 길거리에 버리기를 석 달 동안 여섯 명이나 하였다. 이때 피해 여성들은 한결 같이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해서 칼잡이 블랙잭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다. 블랙잭은 칼솜씨로 보아 머리가 돈 외과의사라느니, 러시아 황제의 비밀공작원이라느니, 여자들의 타락을 증오하는 청교도의 소행이라느니, 차별에 반발하는 유태인이라느니, 갖은 소문이 떠돌았었다.
하지만 런던 경찰이 추적한 블랙잭의 정체는 모계로 정신이상을 유전 받은 중년의 돌위트 변호사로, 마지막 사건이 있은 지 7주일 후에 템즈강에 시체로 떠올랐던 것이다. 왜 검은 옷의 여인만을 노렸는가는 그의 어머니가 항상 검고 속이 붉은 망토를 걸치고 다녔다는 것으로 유추, 혹심한 어머니 콤플렉스에 걸려 있었을 것이라는 것 밖에 알 수가 없었다.
화성의 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연쇄살인사건의 한 혐의자가 수사를 받고 있다던데, 만약 그 혐의자가 진범이라면 런던의 블랙잭과 그 동기나 수법이 너무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칼질 대신에 목을 졸라 죽였다는 것과 검은 옷 대신에 붉은 옷의 여인만을 추적한 “레드 잭”이라는 사실이다. 결국은 미궁에 빠지고 말았지만. 스페인의 투우사들이 붉은 천으로 투우를 흥분시켜 돌진시키듯이, 사람도 붉은 빛에 쉽게 흥분, 이성을 상실하고 저돌적이게 되는 원초적 심성이 잠재돼 있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자극적인 말들을 들려주고 얼마나 흥분하는가를 전류계로 측정한 실험을 한 일이 있다. 그 흥분 순위대로 刺戟語(자극어)를 적어보면 ① 키스(72.8=전류계 편각) ② 사랑(59.5) ③ 이혼(58.5) ④ 피험자의 이름(48.7) ⑤ 피(45.3) ⑥ 여자(40.3) ⑦ 붉은 색(38.0) ⑧ 불(37.4) ⑨ 돈(35.6) ⑩ 죽음(35.0) 순 이었다. 피-불-붉은 색 등 붉은 빛이 주는 흥분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불의 정신분석”에서 붉은 색이 섹스를 가장 민감하게 연상시킨다고도 했다.
그는 연쇄방화사건의 범인들은 예외 없이 성적인 요구불만이나 성적 도착에서 비롯되고 있다 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도깨비불을 빙자, 이집 저집 방화하고 다니는 방화사건이 잦았는데 성적 도착에서 비롯된 데 예외가 없다. “性(성)=火(화)=赤(적)”의 등식이 연쇄방화사건으로 나타나듯이 붉은 옷이 변태성욕을 유발, 연쇄음락살인사건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옛 우리 전통사회에서 신명을 받드는 임금님과 무당 이외에는 붉은 옷을 입지 않았던 것은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선견이 있었던 것이다.(이규태 코너 1987년)
자료출처-http://cafe.daum.net/sungho52
박광순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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