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무비는 말 그대로 '길'에 관한 영화이다. 여행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여 길(혹은 강)을 배경으로 삼는 로드 무비는 다양한 주재와 장르를 포함하며 60년대에 와서야 만들어진 신종 장르이다.
로드 무비는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그것이 '성장의 영화'라는 것이다. 로브 라이너 Rob Reiner의 <스탠 바이미 Stand By Me>, 구스 반 산트 Gus Van Sant의 <약방의 카우보이 Drugstore Cowboy>, <아이다호 My Own Private Idaho> 등은 젊은 날의 불안감이 여행을 통해 성숙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흐름 속에서 한 인간은 인생의 의미를 체득해 나가는 것이다.
로드 무비는 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해부하기도 한다. 미국 로드 무비의 원조는 아서 펜의 <보니와 클라이드 Bonny & Clyde>나 데니스 호퍼의 <이지 라이더 Easy Rider>는 1930년대와 60년대의 미국을 비극적으로 반영한다. 특히 <이지 라이더> 같은 경우는 오토바이와 록음악을 혼합하여 당시의 청년 문화를 적절히 묘사한다. 이 영화 이후로 로드 무비는 영화에 걸맞는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처럼 사용되었다. 핀란드의 감독인 아키 키우리스마키의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Leningrad Cowboy go America>에서는 러시아의 록그룹이 미국으로 가서 겪는 에피소드들을 황당한 언어로 그리고 있는데 여기서는 음악이 영화의 주제와 직결된다.
여성들은 여행을 통해서 자아를 발견하기도 한다. 리들리 스코트의 <델마와 루이스 Thelma & Louise>는 두 여인이 권태로운 삶을 벗어나 여행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영화이다.
로드 무비가 힘을 가지는 것은 그것이 역사에 대해 질문할 때이다. 베르너 헤어쪼크의 <아귀레, 신의 분노 Aguirre, der Zorn Gottes>는 강을 따라서 제국주의의 과오를 강렬하게 파헤치며 새로운 역사관과 만난다. 프란시스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도 강을 소재로 하는데 여기서는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월남전에 관한 가장 철학적인 영화'로 불리는 <지옥의 묵시록>은 여행이 진행되면서 점점 증가되는 공포의 강도를 통해, 월남전이라는 미국의 추악한 역사를 해부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퍼펙트 월드 Perfect World>도 순진했던 미국의 과거를 탈주범의 비극적인 최후를 통해 슬프게 그린다.
그러나 로드 무비의 최고봉은 단연 빔 벤더스이다. 로드 무비 3부작인 <도시의 앨리스 Alice inder Statden>, <그릇된 행동 Falsche Bewegung>, <시간의 흐름 속에서 Im Lauf der Zeit>를 통해 서독의 상황을 차갑게 그린 빔 벤더스는 분단, 미국 문화, 도시의 삶 등 심각한 주제를 마치 고행하듯 그려낸다. 그의 대표작인 <베를린 천사의 시 Der Himmel uber Berlin>는 독일 통일을 예언한 듯한 작품으로 그의 영화 중 가장 뛰어난 걸작이다. 천사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의 희비(喜悲)와 그것에 동참하려는 천사의 희생을 통해 벤더스는 야스지로와 트뤼포와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경배를 바치며, 세상을 응시한다.
벤더스의 또 다른 로드 무비인 <빠리 텍사스 Paris Texas>에는 그가 주로 다루는 소재인 현대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잘 나타나 있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자신의 과거와 가족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기억 상실에 빠진 그는 자신의 아들을 만나게 되고 추억 속의 아내를 찾아 떠난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핍쇼 peep show 의 창녀로 전락해 있었다. 그는 아내를 보지만 그녀는 남편을 보지 못한다. 거울을 가운데 놓고 서로를 응시하는 장면은 '의사 소통의 단절'이 집약되어 있는 부분인데, 벤더스는 여기서 '말'이라는 구원의 매개체를 꺼낸다. 대화를 통해 둘은 서로를 느끼며, 남자는 다시 길을 떠난다. 우리는 이 영화에 제시된 길의 의미를 통해 현대 사회의 단면을 정확히 느낄 수 있다. <빠리 텍사스>에서 그가 제기한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는 한, 영화의 '길 위의 방황'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관객의 행렬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