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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시지명유래
다음은 1995년에 춘천문화원에서 펴낸 『춘천의 지명유래 』를 소개한 것으로, 춘천문화원에서 제공한 지명자료를 옮긴 것입니다.
『춘천의 지명유래 』
춘천문화원, 1995
차 례
1. 신북읍
2. 동 면
3. 동산면
4. 신동면
5. 동내면
6. 남 면
7. 남산면
8. 서 면
9. 사북면
10.북산면
11.중앙동
12.교 동
13.조운동
14.약사동
15.죽림동
16.소락동
17.근화동
18.소양동
19.호반동
20.후평1동
21.후평2동
22.후평3동
23.효자1동
24.효자2동
25.효자3동
26.석사동
27.퇴계동
28.온의동
29.삼천동
30.칠송동
31.사우동
32.신 동
1. 신북읍(新北邑)
율문리(栗文里)
율대리(栗垈里),문정리(文廷里),천구리(泉邱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율대리의 「율(栗)」자와 문정리의 「문(文)」자를 따서 「율문리」가 된 것이다. 율대리는 밤나무가 많아 「밤나무 터」란 이름이 붙은 것이며 6.25후까지도 오래된 밤나무가 남아있었다.
< 장거리>
샘밭장이 벌어지는 장소라는 뜻에서 「장거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샘밭장은 본래 천전리의 웃샘밭(上泉田)에 있었으나 율문리가 읍의 중심지가 되면서 구한말께부터 율문리 현 위치로 이전했다.
< 샘밭장(泉田場)>
옛날에는 웃샘밭(上泉田)에 장터가 있었으나 130여년전부터 아래샘밭으로 옮겼으나 지금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 여우고개>
신북읍에서 우두동으로 가는 춘천∼샘밭 국도 사이의 고개를 가리킨다. 옛날에는 고개였으나 도로 개설로 평지가 되었다. 지금부터 70여년전 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참나무 등 숲이 울창해 우두벌과 샘밭 사이를 오가는 샛길만이 나 있을 뿐이었다.
천전리(泉田里)
샘(泉)과 밭(田)이 많으므로 샘밭, 한자로 표기해서 천전(泉田)이라 불렀다.
---> 샘밭이란 샘이 있는 밭이란 뜻입니다.
< 뜨내리재>
옛날 되소금(胡鹽)장수가 소금을 지고 소양강을 건너 마작산(麻作山)줄기에 있는 뜨내리재( 浮沈峙)를 넘게 되었다. 천전리 지석묘군(支石墓群) 천전리 앞을 흐르는 소강변 사질(沙質) 퇴적층에 5개의 지석묘가 강변을 따라 동서 80여m 거리에 분포되어 있다.
< 소양댐>
댐은 1967년 4월 17일 착공,1973년 10월 15일 완공된 동양 최대의 사력다목적댐이다. 소양호의 담수량은 총 29억t이고 댐의 높이 123m, 길이 530m이며 발전설비용량은 20만㎾이다. 거대한 인공호수가 생김으로써 소양강 수운이 발달, 춘천(소양댐)에서 양구를 거쳐 인제에 이르는 64㎞의 뱃길이 열렸다.
< 지퇴당 이정형사당(知退堂 李廷馨)>
조선조 선조때 조정에서 천전리에 살던 李씨에게 국가에 유공한 공로로 지어준 사당. 李씨 문중에서 봄, 가을로 시제를 지내고 있다.
< 마작산(麻作山)>
일명 마적산(馬蹟山)이라고도 불리우며 마재기마을 뒤쪽에 우람하게 자리잡은 산.
< 건넌-구레>
추묵정 옆에 있는 들.
< 고무랫 골>
산제당 골 옆에 있는 골짜기
< 골 말>
골짜기에 있는 마을.
< 굴뚝 골>
굴뚝처럼 생겼다는 골짜기.
< 느칫 골>
승짓골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 덩 서리>
보매기 건너편에 있는 들.
< 도지가(賭地街)>
〔마을〕일명 「도지걸」이라고 불리며 예전에 이곳에서 도지〔소작료〕를 받았다고 함.
< 동막 골>
큰 동막골과 작은 동막골로 나누어짐.
< 마재기>
샘밭 동북쪽 마작산 아래 골짜기에 있는 마을.
< 문-바우>
문처럼 생겼다는 바위.
< 백-골>
퉁퉁바우 부근에 있는 골짜기.
< 뱃-소>
배 모양으로 생긴 소(沼).
< 버들-우물>
버드나무와 우물이 있었다는 들.
---> 버드나무가 우거진 곳에 있는 우물의 뜻임.
< 보-매기>
보(洑)를 막은 들.
< 보매기-소>
보매기 근처에 있는 소.
< 보매기-여울>
보매기 부근에 있는 여울.
< 비득-재>
마작산 부근에 있는 재.
---> 비득은 비둘기의 방언임.
< 빙-소>
낭떠러지 밑에 있는 소.
< 산장-모퉁이>
모퉁이에 있는 마을.
< 산지당-꼴>
산제당이 있는 골짜기.
< 삼형제-바우>
마치 삼형제처럼 세개가 나란히 있는 바위.
< 샘-밭>
천전리.
< 승짓-골>
동막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아랫-고개>
천전리 옆에 있는 골짜기.
< 언매기-못>
뚝을 막는 못.
< 연막-골>
느칫골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 오수-물>
샘밭 서북쪽에 있는 마을. 옻 우물이 있었다하며 옻 오른데 잘 낫는다는 우물이 있었던 곳.
< 웃묵-골>
우물이 있는 골짜기.
< 워-나리>
원나리 나루, 동면으로 가는 소양강 가의 나루.
< 일새-여울>
동면으로 건너가는 길목에 있는 여울.
< 작은-동막골>
동막골의 작은 골짜기.
< 장-꼴>
굴뚝골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
< 정성-바우>
치성을 드리는 바위.
< 지-둔지>
길게 생긴 둔지로된 들.
< 추묵-정>
옛날에 가래나무가 있던 들.
< 큰-골>
동막골의 큰 골짜기.
< 퉁퉁-바우>
퉁퉁하게 생긴 바위.
< 할미-여울>
웃샘밭에 있는 여울.
< 호전-구레>
웃샘밭에 있는 들.
유포리(柳浦里)
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아 버들냇가 유포(柳浦)또는 「버들개」라고도 했다.
< 갈기식>
웃 문정리 들인데 경지정리사업으로 인해 바둑판처럼 잘 다듬어진 옥답으로 변했다.
< 금송>
버들개에 있는 산.
< 닥-구뎅이>
버들개에 있는 무덤처럼 생긴 터.
< 마당 음덩개>
버들개에 있는 들.
< 망두석 -개>
망두석이 서 있던 들.
< 무짓 골(茂枝洞)>
유포리 뒷쪽에 있는 골짜기.
< 무짓골-개울>
무짓골에 있는 내(川).
< 문정리(文廷里)>
지금의 천전리와 율문리에 걸쳐 있던 마을.
< 박정승-묘>
고려 충렬왕때 정승을 지낸 사람의 산소로 전해오는 묘.
< 방아-다리>
버들개에 있는 웅덩이.
< 버들-개>
유포리.
< 삼성-구렁>
버들개에 있는 산.
< 샛가지>
삿갓을 벗어 놓으면 그 밑에 들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논이라 함.
< 서낭-고개>
서낭이 있던 고개.
< 솟대-배기>
솟대를 세웠던 곳.
< 시냇-들>
이곳에 옛 맥국의 유적이 있었다 함.
< 웃 문정>
문정리 윗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며 지금의 유포리.
< 잡박 골>
옛날에 잣(柏)밭이 있었다는 골짜기.
< 장녹 개>
버들개에 있는 들.
< 지-둔지>
길게 생긴 들.
< 초당-개>
초당이 있었던 들.
산천리(山泉里)
< 금강 터>
옛날에 금광이라는 부자가 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금광대(金光垈), 금광리로 불렸다.
< 구릿고개>
신동리의 구리개로 가는 고개.
< 다락 개>
산천리 앞에 있는 들이며 경지정리사업으로 바둑판처럼 잘 가꾸어진 옥답으로 변했다.
< 산본리(山本里)>
「새밑」으로 불리던 마을이며 산 밑에 있는 마을이란 뜻.
< 샘두럭>
산천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며 샘두리, 한자로 천구리(泉邱里)로 표기했다. 마을에 큰 샘과 언덕이 있다고 해서 이름 붙인것.
< 유춧 물>
다락개에 있는 논.
< 조간 개>
산천리 앞에 있는 들로서 다락개와 함께 경지정리된 옥답으로 변했다.
< 새밀>
현재의 산천리 마을(산본리).
발산리(鉢山里)
바리(鉢)처럼 생긴 작은 산이 있어 바리미 또는 발산(鉢山)이라 했다.
< 맥국의 도읍지(貊國 터)>
춘천지방에서 원시부족사회가 형성되었을 때 그 중심지는 지금의 발산리와 천전리 일대로 전해진다.
< 왕대산(王臺山.왕뒤)>
바리미에 있는 작은 산이며 「왕뒤」라고도 불렸는데 발산 위에 자리잡아 맥국시대의 성 터가 있었고 왕뒤 아래 맥국의 궁 터가 있었다고 전한다.
< 옹기점 말>
토점리(土店里) 또는 점말이라고도 불리며 고종3년 병인양요때 천주교 신자들이 피신해 와서 옹기를 만들어 생활했다는데서 유래했다.
< 효자 바위>
발산리 삼한골 계곡에는 독수리가 금새라도 날아갈듯한 산세를 이룬 수리봉이라는 산이 있다.
< 지석묘군(支石墓群)> 맥국 옛 터의 전설로 지석묘와 적석총이 혼재했으나 일제때 일본인들이 발굴되고 주민들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다.
< 삼한 골(三韓 谷)>
언덕 개 북쪽에 있는 긴 골짜기.
< 가마 골>
< 고치장 골>
< 너라웃 골>
< 도장 골>
< 붉은 더기>
< 사냥 메기>
< 새절 꼴>
< 서남 골>
< 손 골>
< 송 골>
< 연냇 골>
< 채덕막 골>
< 치마바웃 골>
< 탑상 골>
< 학숫 골>
< 황 골>
< 득칫 골>
< 승짓골>
< 원숫 골>
< 동녘잿 골>
삼한골에 딸린 골짜기
< 골텃 말>
옛날 고을이 있었다는 마을.
< 글쓴 바우>
글을 새겨 놓은 바위.
< 동녘 벌(東坪)>
발산 동쪽 평평한 지대에 있는 마을.
< 둘쨋 내>
바리미에서 첫내 다음에 있는 내(川).
< 바리미>
발산리.
< 발등 바우>
삼한골에 있는 바위.
< 발산(鉢山)>
발산리.
< 배후령(背後嶺)>
신북읍에서 북쪽으로 화천 간척리로 통하는 고개.
< 벌 바리미말>
바리미 앞 벌판에 있는 마을.
< 신선 바우>
옛날 신선이 놀았다는 바위.
< 아들 바우>
돌을 던져서 바위 위에 얹히면 아들을 낳는다고 함.
< 양통 고개(楊通嶺)>
양통 마을 너머에 있는 고개.
< 언덕 개>
맥국시대 때 발산 앞 개울에서 용이 소를 만들어 물이 깊고 언덕이 크다 함.
< 장본(章本)>
장번, 바리미 동북쪽 산밑에 있는 마을.
< 중 고개>
바리미 중앙에 있는 고개.
< 쪽도리 바우>
족두리처럼 생긴 바위.
< 첫 내>
바리미에서 첫째 가는 내.
< 촛대 봉>
촛대처럼 우뚝한 봉우리가 있는 산.
< 학 소>
삼한골에 있는 소.
지내리(池內里)
큰 못 안쪽이 되므로 지름물 또는 지내(池內)라고 했다.
< 5백년 넘은 은행나무>
이 나무는 지금으로부터 5백40여년전 문화류씨의 중시조인 류견룡(柳見龍)이 낙향하면서 심은 나무로 전한다.
< 삼회사(三檜寺)>
옛 지내상리 북쪽 산허리에 삼한시대에 지어진 삼회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 지석묘(支石墓)> 지내리 397번지 박성한씨 집 축대 밑에 있다.
< 개명 골>
사탯골 옆에 있는 골짜기.
< 개 서리>
개울가에 있는 들.
< 거북 바위>
모양이 거북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 고개.
< 고룬 고개>
지내리에서 사북면 고탄리의 고룬이로 가는 고개.
< 구수 골>
불땅골 옆에 있는 골짜기.
< 노송나뭇 골>
노송(老松)이 서 있던 들.
< 늘안 말>
율무리와의 경계에 있는 마을.
< 대명 골>
용산리와의 중간에 있는 산.
< 돌봉 산>
돌이 많은 산.
< 동무 산>
샛골 위에 있는 산.
< 둔짓 들>
높은 곳에 있는 들.
< 말 무덤>
지내리에 있는 큰 무덤.
< 물 고개>
예전에 이 고개로 물이 넘어왔다 함.
< 뻐꾹 재>
뻐꾹새가 많은 산.
< 부원군 묘>
옛날 어느 부원군의 묘.
< 불땅 골>
불당이 있던 골짜기.
< 사탯 골>
전에 사태가 났던 골짜기.
< 상리(上里)>
지내리 윗쪽에 있는 마을.
< 샘 골>
좋은 샘이 있던 골짜기.
< 샛 골>
샘골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 서낭댕이>
옛날 서낭이 있던 들.
< 성문 안>
맥국시대 성문이 있던 곳의 안쪽이 되는 마을.
< 승짓 묵>
장승박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쑥 고개>
숯을 구웠던 고개.
< 아랫 텃골>
텃골 아래쪽의 골짜기.
< 안 꼴>
동리 북쪽에 있는 들.
< 어른 골>
사탯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오릿 들>
오리나무가 많은 들.
< 웃 텃골>
텃골 윗쪽의 골짜기.
< 은 고개>
물고개 건너편에 있는 고개.
< 작은 젤봉>
젤봉 옆에 있는 작은 산.
< 장승박 골>
장승이 있던 골짜기.
< 절 터>
예전에 절이 있었던 마을.
< 젤 봉>
지내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 중리(中里)>
중말, 지내리 중앙에 있는 마을.
< 지 둔지>
땅이 질다는 들.
< 지름 물>
지내리.
< 짝 바위>
두개가 나란히 있는 바위.
< 춘덕 골>
피나뭇간 옆에 있는 골짜기.
< 텃 골>
맥국시대 옛 건물 터가 있었다 함.
< 피나뭇 간>
피나무가 있던 골짜기.
< 하리(下里)>
지내리 아랫쪽에 있는 마을.
용산리(龍山里)
< 춘천댐>
춘천댐은 신북읍 용산리와 서면 오월리간의 북한강 본류를 막아 축조한 수력발전댐이다.
< 조씨묘(趙氏墓)와 어서각(御書閣)>
춘천에서 북쪽으로 약 8km지점 용산리에 있다. 조선조 중엽 헌종(憲宗)의 장인인 풍원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의 묘소이다.
< 성산(成山)약수>
춘천에서 화천방면으로 약 12km지점인 춘천댐 하류 용산리 국도변에 자리잡고 있다.
< 문암서원(文巖書院)>
조선조 광해군 4년(1612년) 춘천 유생들이 모여 용산리에 문암서원을 지었다.
< 강신 터>
이 바위에서 강신제(降神祭)를 지냈다 함.
< 골미 나루>
서면 서상리의 골미마을로 건너는 나루.
< 놋 점(鍮店)>
옛날 놋그릇을 만드는 점(店)이 있었던 마을.
< 뒷 골>
동리 뒷쪽에 있는 골짜기.
< 뫼칫 골>
용산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
< 문암서원 터>
서원 말(마을)에 있던 문암서원의 터.
< 뭇푸레 고개>
용산리에서 사북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 봉앳 뚝>
옛날에 봉화를 올리던 산.
< 사군정 터>
영귀정 터, 문암서원 동쪽에 있는 정자 터. 성종때 시인 이주(李胄)의 서(序)가 있었다 함.
< 샛골>
사이에 있는 골짜기.
< 서원말>
용산리 서쪽 북한강에 있는 마을로서 문암서원이 있었음.
< 소리 개>
고개 마루턱에 큰 소나무가 있었다 함.
< 수청령 고개>
뭇푸레 고개.
< 숫나짓 골>
오리나무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역 골(驛洞)>
놋점 남동쪽에 있는 마을, 조선시대에 역이 있었다고 함.
< 오리나뭇 골>
오리나무가 많은 골짜기.
< 유점(鍮店)>
놋점.
< 저울 골>
회나무가 많은 마을.
< 지너 물>
칼사봉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 태봉 꼴>
옛날 공주의 태봉(胎封)이 있던 골짜기.
< 태봉 장등>
태봉 꼴 위에 있는 산등.
< 행계나뭇 골>
행계나무가 있는 골짜기.
2. 동면(東面)
만천리(萬泉里)
< 박씨묘(朴氏墓)와 백로.왜가리 번식지>
만천리에 살던 천석군인 박승익(밀양박씨)이란 사람이 박씨의 시조인 박혁거세(朴赫居世)를 모신 숭덕단(崇德壇)을 쌓은 것이며 지금도 후손들이 봄. 가을 두차례 제향을 올리고 있다. 주위 일대에는 노송들로 숲을 이루고 백로떼가 날아와 번식하면서 장관을 이룬다.
< 굼벵이(상천곡리)>
구봉산 아래 천곡 윗쪽에 있는 마을.
< 금대 울>
전에 금(金)이 많이 나왔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굼벵이 남서쪽에 있는 마을.
< 도 일>
샘골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 뒷모테 이>
도일과 샘골 중간에 있는 마을.
< 마니리>
적골.
< 만법리>
적골.
< 상천곡리(上泉谷里)>
굼벵이.
< 샘 골>
마을에 좋은 샘이 있음.
< 적 골(절골, 마니리, 만법리)>
예전에 절이 있었음.
< 절 골>
적골.
< 천곡>
샘골.
장학리(獐鶴里)
< 민씨묘(閔氏墓)>
장학리에 있으며 구한말 명성황후의 집안으로 당대 거부이자 세도가이던 민영위의 묘소이다.
< 춘천 삼일운동의 진원지>
춘천지방의 3.1민족운동은 장학리에서 비롯되었다.
< 가래-울(加來鬱)>
하일 북쪽, 소양강 가에 있는 마을.
< 거니리(건일)>
노루목 서쪽에 있는 마을.
< 거닐-고개>
마천리와의 사이에 있는 고개.
< 건-일(乾日)>
거니리.
< 기와집-골>
기와집이 있는 골짜기.
< 깃대-봉>
측량 표준기를 세운 봉우리.
< 논 꼴>
논이 있는 골짜기.
< 놀-목(獐項 노루목)>
장학리에서 가장 큰 마을. 지형이 노루의 목처럼생겼다 함.
< 놀목고-개>
놀목 뒤에 있는 고개. 감정리로 감.
< 놀목 저수지>
놀목에 있는 저수지
< 능-꼴>
장학리에 있는 골짜기.
< 독수릿-골>
독수리가 많이 살았던 골짜기.
< 독지-붕>
옛날 홍수 때 산봉우리가 독만큼 남아 있었다 함.
< 뒷-골>
뒤에 있는 골짜기.
< 똥-골>
행인들이 똥을 누는 곳이라 함.
< 먼-골>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골짜기.
< 목터진-골>
경오년(1930) 장마에 목이 끊어진 골짜기.
< 묵밭-골>
묵밭이 있는 골짜기.
< 미끄렁-바우>
미끄러운 바위.
< 미끄렁바우-샘>
미끄렁바우 밑에 있는 샘.
< 밭-골>
밭이 있는 골짜기.
< 불당-골>
불당이 있던 골짜기.
< 사심이 뿔빠진-골>
전에 사슴의 뿔이 빠진 골짜기.
< 삼푸짓-골>
삼푸지(삼굿)을 하던 골짜기.
< 새-말>
새로 생긴 마을.
< 샘-딸치>
샘이 있는 골짜기.
< 샘물-둥지>
샘물이 있는 둔덕.
< 샛-골>
사이에 있는 골짜기.
< 선-바우>
서 있는 바위.
< 쑥-개>
쑥대밭이었던 들.
< 자-월>
소양강 가에 있는 마을.
< 자월-배터>
자월에 있는 나루터.
< 장-뚜루>
장학리 앞에 있는 들. 이곳에 장이 설 것이라 함.
< 장항(獐項)>
놀목 노루목.
< 정제-골>
정씨의 묘막이 있었다 함.
< 중무덤-꼴>
중의 무덤이 있던 골짜기.
< 진-골>
길게 생긴 골짜기.
< 집-골>
집이 있는 골짜기.
< 하-일(학곡리)>
놀목 서북쪽에 있는 마을.
< 하일-고개>
하일에 있는 고개.
< 하일-배터>
하일에 있는 나루터.
< 하일-뻘>
하일에 있는 들.
< 학곡-리(鶴谷里)>
하일.
감정리(甘井里)
감자가 잘 되므로 감잣골이라 했다.
< 감정리(甘井里) 약수>
감정리 느랏재 중턱에 있으며 1980년 6월 발견 되었다.
< 감정리 종유굴>
감정리 마을길로부터 서쪽으로 300m지점에 위치하고 입구는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높이40cm, 폭 60cm 정도. 춘천근교에서는 보기드문 종유굴이다.
< 갈-골>
떡갈나무가 많은 골짜기
< 감잣-골>
감정리.
< 거믄덩-골>
팥배나무골 옆에 있는 골짜기.
< 까근-데>
저고리골 옆에 있는 골짜기.
< 늘목-고개>
장학리(獐鶴里)의 놀목으로 가는 고개.
< 느랏-재(유현)>
품안리(品安里)로 가는 고개. 고개가 높아 느릿느릿 넘어간다고해서 느랏재 또는 느릿재로 불림. 정상 부근에 느랏재터널이 있음.
< 덕밧-재>
까끈데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 독-점>
옹기점이 있는 마을.
< 된-이매>
가파른 골짜기.
< 삼밭-골>
삼밭이 있던 골짜기.
< 새-골>
신배나무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새창-골>
갈골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 쇠-번데기>
아랫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승방아-골>
승정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승정-골>
감정리에 있는 골짜기.
< 시-밀(이십곡리)>
감잣골 동쪽에 있는 마을. 감정리에 으뜸이 됨. 골짜기가 20개 있는 마을(스므곡).
< 신배나뭇-골>
신배나무(돌배나무)가 있던 골짜기.
< 아래-골>
느랏재 아래에 있는 골짜기.
< 약수-터>
감정리에 있는 약물터.
< 양지막-골>
양지편에 있는 골짜기.
< 어두우니>
골이 깊어서 컴컴하다 함.
< 연산-골(연산동)>
산이 연달아 있는 골짜기.
< 연산-동(連山洞)>
연산골.
< 옥점-고개>
평촌리(坪村里)로 가는 고개.
< 유-현(鍮峴)【마을】>
느랏재.
< 이십곡-리(二十谷里)>
시밀. 스므곡리.
< 장자-골>
옛날 장자가 살았다 함.
< 저고리-골>
저고리처럼 생긴 골짜기.
< 제비-골>
지형이 제비처럼 생겼다 함.
< 진산짓-골>
양지막골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 퉁정-골>
제비골 옆에 있는 골짜기.
< 팥배나무-골>
팥배나무가 있던 골짜기.
< 호랑이-바우>
호랑이처럼 생겼다는 바위.
지내리(枝內里)
마을 지형이 가지처럼 생겼고 그 안쪽에 해당하므로 가지안, 갓안, 가산, 지내(枝內)라는 이름이 생겼다.
< 지석묘(支石墓)>
신북읍 천전리.발산리 지석묘군과 같은 형태이며 지내리44번지 도로변에 있었다.
< 공깃돌 바위>
지내리에 있고 크기는 설악산 흔들바위 2배나 되는 큰 바위이다.
< 은행나무>
지내리 마을 한복판에 있으며 높이 16m 둘레 7.4m로 수령은 6백년이상으로 전한다.
< 지내리 솔밭>
60∼70년 묵은 소나무들이 1천여평에 빽빽이 들어차고 옆으로 소양강을 끼고 있어 여름 피서지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 가-산(嘉山)>
지내리.
< 가산-개울(지내천)>
지내리 복판으로 흐르는 내.
< 가지안>
지내리.
< 갓안>
지내리.
< 굴-아우>
밑에 굴이 뚫린 바위.
< 김-제공>
김씨의 묘가 있는 골짜기.
< 덕-골>
언덕이 진 골짜기.
< 멍에-여울>
멍에처럼 턱이 진 여울.
< 무암-산>
무당바우가 있다 함.
< 빙-산>
벼랑이 진 산.
< 삼-성>
삼십이라는 사람의 땅이었다 함.
< 삼태-골>
삼태기처럼 생긴 골짜기.
< 샘-꼴>
좋은 샘이 있는 골짜기.
< 속-말>
산 속에 있는 마을.
< 수펑-말>
속말에 딸린 마을. 숲이 많음.
< 아랫-두루>
제일 아래에 있는 마을.
< 아랫-청룡>
청룡들 아랫쪽의 들.
< 앞-구렁>
아랫두루 남쪽에 있는 들.
< 양정-말(양젱,양정촌)>
동리 북서쪽 소양강가에 있는 마을.
< 양정-촌>
양정말.
< 양젱이>
양정말.
< 양지-말(양지촌, 양지편)>
양지쪽에 있는 마을.
< 양지-촌>
양지말.
< 양지-편>
양지말.
< 우름-바우>
지내리에 있는 바위. 굴이 있어서 소리를 지르면 울려나옴.
< 웃-양정>
양젱이 위쪽의 마을.
< 웃-청룡>
청룡들 위쪽의 들.
< 위나리-나루(원아리, 원진, 원진강, 원할진)>
신북읍(新北邑) 천전리(泉田里)로 건너는 나루터.
< 원-아리>
워나리나루.
< 원-진(元津)>
워나리나루.
< 원진-강(元津江)>
워나리나루.
< 원할-진(願割津)>
워나리나루.
< 음-골>
응달이 진 골짜기.
< 이-제공>
이씨의 묘가 있는 골짜기.
< 일세-여울>
일세라는 사람이 빠졌다 함.
< 조개-웅덩>
물이 고여있는 소.
< 지겸-말(지겸촌)>
가산에 딸린 작은 마을.
< 지겸-촌(芝謙村)>
지겸말.
< 지내>
지내리.
< 청룡(靑龍)>
지내리 왼쪽에 있는 산.
< 청룡-들(靑龍)>
청룡밑에 있는 들.
< 할미-여울>
소양강에 있는 여울.
월곡리(月谷里)
가막골, 쇠골, 영당말을 병합하여 월곡영당(月谷影堂)의 이름을 따서 월곡리라 했다. 전국에서 이름난 연옥(軟玉)광산이 개발되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 연옥(軟玉)광산>
월곡리에는 품질이 뛰어난 대일광업(주) 연옥광산이 있고 이를 원료로한 옥 가공품이 다양하게 생산되고있다.
< 가막-골(오악골)>
두리봉 밑에 있는 마을.
< 건드레>
영당말 아래쪽에 있는 마을.
< 능-뻔지>
옛날에 유명한 사람의 무덤이 있다 함.
< 덧-보뎅이>
옛날에 덫을 놓았다 함.
< 도종-골>
아랫건드레 뒤에 있는 골짜기.
< 돌리-매>
샛골고개 남쪽에 있는 골짜기.
< 돌리매-개울>
돌리매에서 내려오는 내.
< 땀맥-골>
막대족골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 막대족-골>
막대처럼 생긴 골짜기.
< 맹이-산>
옛날 홍수때 매만큼 남았었다 함.
< 문앞-들>
동리 바로 앞에 있는 들.
< 부처접-골>
돌부처가 있는 골짜기.
< 샛골-고개>
품안리 샛골로 가는 고개.
< 선당잇-고개>
품안으로 가는 고개.
< 쇠-골>
옛부터 철분이 있다 함.
< 아랫-건드레>
건드레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안개-골>
안개가 자주 낀다고 함.
< 영당-말(影堂一)>
회헌(晦軒), 안유(安裕)의 영당인 월곡영당(月谷影堂)이 있던 마을.
< 오악-골(烏岳谷)>
가막골.
< 욕객-골>
아랫건드레 뒤에 있는 골짜기.
< 지방-골>
부처접골 곁에 있는 골짜기.
< 철투-골>
욕객골 부근에 있는 골짜기.
< 큰-점>
큰 옹기점이 있던 골짜기.
< 탑싼-골>
탑을 쌓았던 골짜기.
품안리(品安里)
< 가매-소>
가마처럼 된 소.
< 갬-번대기>
두리봉 밑에 있는 골짜기.
< 고갯-다리>
고개가 있는 골짜기.
< 고른-동(직동)>
곧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
< 고쿨-바우>
두리봉에 있는 바위.
< 곰의 -도랭이>
품안리에 있는 골짜기. 돌이 많음.
< 공동묏-구렁>
공동묘지가 있는 골짜기.
< 광산-굴>
광산으로 인하여 생긴 굴.
< 구미(口尾)>
귀미.
< 구재바웃-소>
구재바우라는 바위가 있는 소.
< 귀미(구미)>
안품실 남쪽 굽이 진 곳에 있는 마을.
< 귀미-응달>
귀미 응달쪽에 있는 골짜기.
< 귕-골>
구유처럼 생긴 골짜기.
< 날름고개-골>
수리바웃골 옆에 있는 골짜기.
< 내-품곡(內品谷)>
안품실.
< 넙적-등>
넙적하게 생긴 등성이.
< 논-꼴>
논이 있던 골짜기.
< 늘렁-골>
두리봉 밑에 있는 골짜기.
< 당-꼴>
전에 이곳에 산제당이 있었다 함.
< 더렁-산>
두리봉 맞은편에 있는 산.
< 덕-새>
논꼴 위에 있는 산.
< 등산-재>
학동 동남쪽에 있는 조그마한 산.
< 되눈텃-골>
작은 양지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 된-양지>
절 터가 있는 골짜기.
< 둔덕-말>
언덕이 진 마을.
< 마당-바우>
마당처럼 넓적하게 생긴 바위.
< 마당바웃-소>
마당바우 부근에 있는 소.
< 마-산등>
말의 등어리처럼 생긴 산등성이.
< 막-골>
품안리 끝에 있는 골짜기.
< 말죽은 산골>
말이 죽은 골짜기.
< 매차나뭇-골>
매차나무가 많은 골짜기.
< 모약-골>
모이(뫼)가 있는 골짜기
< 바깥품실(하품곡)>
품실 바깥쪽에 있는 마을.
< 박대나뭇-골>
박달나무가 많은 골짜기.
< 방-축>
염석천 안에 있는 들.
< 방축-아래>
방죽들 아래에 있는 들.
< 배기-터>
영산재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 배나뭇-골>
고른동에 딸린 골짜기. 배나무가 있었음.
< 백장의-백골>
백장이 살았다는 골짜기.
< 벌개-골>
두리봉 밑에 있는 골짜기.
< 벼락-바우>
벼락을 맞은 바위.
< 부댓-골>
부대처럼 생긴 골짜기.
< 상금바웃-골>
두리봉 밑에 있는 골짜기.
< 샛-골(조곡)>
새가 많았다는 마을.
< 샛골-고개>
샛골에 있는 고개.
< 석장애-골>
두리봉 밑에 있는 골짜기.
< 성엇-골>
된양지 옆에 있는 골짜기.
< 소중-포(所仲浦)>
소진개.
< 소진-개(소중포)>
품실 북쪽, 소양강 가에 있는 마을. 소(沼)가 있음.
< 속갯-들>
소진개 옆에 있는 들.
< 속샛-골>
배나뭇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손꾸락-골>
말죽은 산골 밑에 있는 골짜기.
< 쇠매깃-들>
소를 먹이던 곳이라 함.
< 수리바웃-골> 독수리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 골짜기.
< 실-등>
실처럼 가늘게 된 등성이.
< 싱앳-골>
큰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싸리-두멍>
벌개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안갯-골>
안개가 자주 끼는 골짜기.
< 안-품실(내품곡)>
품실 안쪽에 있는 마을.
< 안현-동(鞍峴洞)>
지르마재.
< 애성-골>
갬번대기 옆에 있는 골짜기.
< 양재-들>
배기터 밑에 있는 들.
< 영산-재>
귀미 옆에 있는 골짜기.
< 워남-정>
귀미 옆에 있는 골짜기.
< 장승배깃-들>
장승이 서 있던 들.
< 조-곡(鳥谷)>
샛골.
< 중사린-골>
고갯다리 옆에 있는 골짜기.
< 쥐-골>
막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지르마-재(안현동)>
지르마재 밑에 있는 마을.
< 지르마재-고개>
지르마재 서남쪽에 있는 고개.
< 지치바웃-골>
싸리두멍 옆에 있는 골짜기.
< 진무개-양지>
두리봉 밑에 있는 골짜기.
< 큰-골>
절터가 있다 함.
< 큰소-골>
두리봉에 있는 골짜기.
< 품-실>
품걸리의“품실”.
< 품안-나루>
품안리 앞에 있는 소양강 나루. 북산면 청평리로 통함.
< 하-품곡(下品谷)>
바깥 품실.
< 합죽할멈 묫구렁>
합죽할멈 무덤이 있었다 함.
< 호랑-멍더리>
호랑바우가 있는 너설.
< 호랑-바우>
호랑이처럼 생긴 바위.
< 홍문-안>
두리봉 밑에 있는 골짜기.
< 화랑밭-들>
장승배기 부근에 있는 들.
< 횟감-배기>
중사린골 부근에 있는 골짜기.
< 흐릿-골>
안갯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오안골>
품걸리(品傑里)
< 가리산-고개(加里山一)>
가리산 등을 넘어가는 고개.
< 갈골-고개>
북산면 물로리(勿老里)의 갈골로 가는 고개.
< 고등-골>
곧게 생긴 골짜기.
< 고약-골(고약동)>
늘목 남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 고약-동(古約洞)>
고약골.
< 광산-동(鑛山洞)>
예전에 중석 광산이 있었음.
< 날근-고개>
품걸리에 있는 고개.
< 날근고개-골>
날근고개 밑의 골짜기.
< 늘-묵>
삼년골 동남쪽에 있는 마을. 큰 고개가 있음.
< 늘묵-고개(판창고개, 판항형)>
늘목과 삼년골 사이에 있는 고개.
< 대-거리(大巨里)>
큰 거리.
< 더르래기>
품걸리에 있는 골짜기.
< 덧-골>
옛날 덫을 놓았던 골짜기.
< 덧골-고개>
덧골에 있는 고개.
< 막-골>
품걸리 제일 끝에 있는 골짜기.
< 말-거리(말걸리)>
품걸리 중앙에 있는 마을.
< 물노리-고개>
북산면 물노리(勿老里)로 가는 고개.
< 밤바우-골>
야전동.
< 베틀-바우>
선녀가 이 바위에서 베를 짰다 함.
< 부처-바우>
부처처럼 생긴바위.
< 사실-고개>
사실골 위에 있는 고개. 홍천군(洪川郡) 화촌면(化村面)과의 중간에 있음.
< 사실-골>
홍천군(洪川郡) 화촌면(化村面)으로 가는 골짜기.
< 사오랑(沙五郞)>
사호랭이.
< 사오랑-치(沙五郞峙)>
사호랑고개.
< 사호랑-고개(사오랑치)>
북소면(北小面)과의 경계에 있는 고개.
< 사호랭-이(사오랑)>
사호랑고개 밑에 있는 마을.
< 삼년-골(삼년동)>
큰거리 동쪽에 있는 마을.
< 삼년-동(三年洞)>
삼년골.
< 상-품곡리(上品谷里)>
웃품실.
< 석거리-바우>
품걸리에 있는 바위.
< 석장-골>
돌함이 나왔다는 골짜기.
< 설통-바우>
설통 모양으로 된 바위.
< 성제-봉>
형제처럼 서 있는 산.
< 소태뭇-골>
가리산 밑에 있는 골짜기.
< 쇵골>
가리산 밑에 있는 골짜기.
< 아래 말거리>
말거리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야전-동(夜田洞)>
밤바우골.
< 약물-둔지>
좋은 샘물이 있는 골짜기.
< 열두다물-골>
가리산 밑에 있는 골짜기.
< 오망-골>
가리산 밑에 있는 골짜기.
< 요옥-동(堯玉洞)>
욧골.
< 욧-골(요옥동)>
말거리 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 웃-덕새>
가리산 밑에 있는 골짜기.
< 웃-말거리>
말거리 위쪽에 있는 마을.
< 웃-무랑골>
가리산 밑에 있는 골짜기.
< 웃-방꼴>
가리산 밑에 있는 골짜기.
< 웃버덩-들>
품걸리 위쪽에 있는 들.
< 웃-품실(상품곡리)>
품실 위쪽에 있는 마을.
< 작은 고미기>
가리산 밑에 있는 골짜기.
< 장-골>
가리산 밑에 있는 골짜기.
< 장자-덤부리>
가리산 밑에 있는 골짜기.
< 큰-거리(대거리)>
말거리 동남쪽 위에 있는 마을.
< 큰-고미기>
가리산 밑에 있는 골짜기.
< 큰-골>
큰 골짜기.
< 파랑-광산>
판항고개에 있는 광산.
< 판창-고개>
늘묵고개.
< 판항-현(板項峴)>
늘묵고개.
< 품-곡(品谷)>
품실.
< 품-실(품곡)>
품걸리와 품안리에 걸쳐 있는 마을.
< 호랑-바우>
호라이가 살았다 함.
< 혼인-바우>
이 바위에 돌을 던져 얹히면 장가들게 된다 함.
신이리(辛梨里)
신배나무(돌배나무)가 많이 있으므로 신뱃골, 신이동 또는 이동이라 했다.
< 감투-봉>
감투처럼 생긴 산.
< 골-말>
골짜기에 있는 마을.
< 논-말>
논이 있는 마을.
< 떡-소>
마을 앞에 있는 소.
< 바릉-골>
바른쪽에 있는 골짜기.
< 배맥-골>
여냇골 바로 위에 있는 골짜기.
< 수리-봉>
봉우리가 수리머리와 같다 함.
< 신뱃-골>
신리리.
< 신리-동>
신리리.
< 여냇-골>
신리리에 있는 골짜기.
< 연봉(鳶峰)>
수리봉.
< 연엽-골(연엽동)>
우뭇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
< 연엽-동(蓮葉洞)>
연엽골.
< 우무-동(又舞洞)>
우뭇골.
< 우뭇-골(우무동)>
산이 높아 우물과 같이 보인다 함.
< 이-동(梨洞)>
신리리.
< 자개-월>
신리리에 있는 골짜기.
< 작은 우뭇골>
우뭇골 곁에 있는 골짜기.
< 조고죄-골>
바릉골 부근에 있는 골짜기.
< 턱-골>
배맥골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평촌리(坪村里)
< 갈개-터>
평촌에 딸린 작은 마을.
< 느랏재-고개>
고개가 길어서 지루하다 함.
< 독점-고개>
감정리의 독점으로 가는 고개.
< 무푸레-골(수청동)>
함박골 북쪽에 있는 마을, 물푸레나무가 많다 함.
< 수청-동(水靑洞)>
무푸레골.
< 아갈-바우>
짐승이 아가리를 벌린 것처럼 생긴 바위.
< 평촌(坪村)>
평촌리.
< 함박-골(함박동)>
평촌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 함박-동(咸朴洞)>
함박골.
상걸리(上傑里)
걸은골 위쪽이 되므로 웃걸은 골 또는 상걸은리(上傑隱里)라 했다.
< 가락-고개>
가락재.
< 가락-재(가치, 가락고개)>
동산면 풍천리와 경계를 이룬 재.
< 가-치(加峙)>
동산면 풍천리와 경계를 이룬 재.
< 갑둔이-고개>
갑둔재.
< 갑둔-재(갑둔치, 갑둔이 고개)>
신동면 고은리(古隱里)로 가는 재.
< 갑둔-치(甲屯峙)>
갑둔재.
< 거지울-고개>
동산면 거지울로 가는 고개.
< 걸은-골(걸은동)>
상걸리 북서쪽에 있는 마을.
< 걸은-동(傑隱洞)>
걸은 골.
< 곡-골>
전부터 아름다운 진달래꽃이 많이 있음.
< 공-골(공동)>
약 200년전에 공씨가 개척하였다 함.
< 공-동(孔洞)>
공골.
< 떡갈나무-고개>
떡갈나무가 많은 고개.
< 백자 - 동(柏子洞)>
잣밭골.
< 상-걸은리(上傑隱里)>
상걸리.
< 웃-걸은골>
상걸리.
< 잣밭-골(백자동)>
예전에 잣나무 밭이 있던 마을.
< 질-꼴>
큰 길이 있는 마을.
< 초당-말(초당촌)>
전에 초당집을 짓고 공부하던 곳이라 함.
< 초당-촌(草堂村)>
초당말.
3. 동산면(東山面)
조양리(朝陽里)
동막골, 모래재, 매주울, 사방루, 상부사원, 하부사원, 박칠,하명암을 병합하여 조양리라 했다.
< 느릅실고개(유현)>
하부사원에서 사방우로 넘어가는 고개.
< 능골>
옛날에 높은 사람의 무덤〔능〕이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
< 동막골>
임진왜란 때 춘천 진병산에 관군과 의병이 진을 치고 있었고 동막골에도 의병들이 막을 치고 있었다.
< 모래재(砂峴)>
사방우 서북쪽에 있는 고개.원창리로 통하는 큰 길. 모래가 많았기 때문에 생긴 이름.
< 정신요양원>
모래재 동쪽 산을 깎아내리고 요양원을 지었다. 정신 장애아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 바칠(田雉谷)>
조양리 서남쪽 끝에 있는 마을. 밭(田) 꿩(雉) 골짜기(谷)의 뜻을 합쳐 밭치리, 전치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 방울고개(鈴峴)>
예전에 어떤 사람이 금방울을 얻어 부자가 되었다 한다.
< 부사원(府司院)>
느릅실고개 남동쪽으로 자리잡은 마을. 조선시대에 부사원이 있었다. 길손들이 쉬어가던 주막촌이었다.
< 부처바우골>
부처바위가 있었는데 없어지고 산제당이 있었다.
< 사방우(四防隅)>
네거리에 있던 마을.
< 상부사원(上府司院)>
상부사원리. 부사원 위쪽에 있는 마을. 춘천서 홍천으로 가는 길목.
< 은파정>
옛날 은(銀)광산이 있었다. 은광산에 정자가 있었기에 은파정이 되었다.
< 조양천(朝陽川)>
조양리 미을을 흘러내리는 내.
< 하명암(下鳴岩)>
명암 아래쪽에 있는 마을.
< 하부사원(下府司院)>
부사원 아래쪽에 있는 마을.
< 메지울>
사방우 남쪽에 있는 마을. 메주나무가 있던 골짜기를 나뭇골이라고 불렀다.
봉명리(鳳鳴里)
< 석동골>
상명암과 원무동 중간에 있는 마을.
< 범정골>
법정골이라고도 부른다. 원무골 안에 있는 골짜기 마을.
< 양지말>
원무동(元武洞)이라고도 부른다. 고려 때 원참위라는 무관이 마을을 이룩했다. 양지가 드는 마을이라해서 양지골 이라고 부른다.
< 원무동>
양지말. 원무동 안쪽 마을은 안원무동.
< 상명암(上鳴岩)>
상명암리. 명암 위쪽에 있는 마을.
< 관골(冠谷)>
관곡, 관꼴이라고도 부른다. 지형이 관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
< 복사골(桃花洞)>
복사골, 도화동이라고도 부른다. 복숭아나무가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
< 명암(鳴岩)>
봉명리와 조양리에 걸쳐있는 마을. 부엉나무(봉바우)가 있다. 부엉이가 잘 깃들어서 붙여진 이름. 명암 위쪽에 있는 마을은 상명암리.
< 성골>
성동(城洞) 성동리라고도 부른다. 산이 험하게 둘러 쌓여 있는 마을. 성처럼 둘러 쌓였음.
< 조항현(鳥項峴)>
새목현, 새메기 고개라고도 부른다. 새의 목과 같이 생긴 고개. 새목고개 밑에 있는 마을은 새메기. 조항현은 새메기 고개를 한자로 표기한 것.
< 장재울>
긴 골짜기에 있는 마을. 부자가 살았는데 쌀뜨물이 20리까지 이어져 떠내려 갔다 함.
원창리(原昌里)
조선시대에 원창역(原昌驛)이 있었으므로 원창리라는 이름이 생겼다.
< 안산들>
마을 앞에 있는 들. 마을 앞에 있는 골짜기는 안산꼴(골)
< 구암동(鳩岩洞)>
굴아우라고 부르기도 한다. 밑에 굴이 뚫린 바위가 있는 마을.
< 봉위>
봉위언덕 밑에 있는 마을. 원창리에 있는 산으로 봉이언덕이 있다. 봉이언덕 밑에 골짜기는 봉이큰골.
< 안말>
산 밑 구석에 있는 마을.
< 관거리>
관꺼리라고도 부른다. 원창 앞에 있는 마을. 조선시대에 원창역이 있었다. 관거리 부근에 있는 들은 관뜰(들).
< 새술막>
새로 생긴 술막이 있던 마을. 신점리(新店里)라고도 불렀다. 신문화가 들어온 이후 새술집이 생긴 것에 따라 생긴 이름.
< 가지울(加芝洞)>
새술막 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가재가 많았다 함. 가지동이라고 부르기도 함.
< 쉰동 골>
옛날에 집이 50호 있었다 함.
< 매나미>
매봉 너머에 있는 마을. 매가 앉은 모양과 같은 산은 매봉. 매내미, 매네미라고도 부른다.
< 덤바위>
덤바우가 있는 마을. 바위 위에 큰 바위가 덤으로 얹어 있어 덤바위라 부르는 덤바위.
< 쉬영골>
원창들에 있는 산골짜기.
< 덕재(고개)>
원창리에 있는 고개.
< 상명고개>
봉명리의 상명암으로 가는 고개.
< 왁박골>
원창들의 동쪽에 있는 마을. 왁박골에 있는 너설은 왁박골 서덜이라고 한다.
< 원창고개>
원창현. 원창 북쪽에 있는 고개. 높이 317m 신동면 학곡리를 통한다. 춘천으로 들어오는 관문처럼 되어 원창고개에서 춘천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 은아릿골>
옛날 어떤사람이 현몽을 하여 은항아리를 캤다 함.
< 조리텃골>
지형이 조리처럼 생겼다 함.
< 호냇골>
관딧골 옆에 있는 골짜기.
군자리(君子里)
군자골 또는 군자곡(君子谷) 이라고 했다.
< 군들>
군자리의 서남쪽 끝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
< 논골>
논이 많은 마을.
< 재취동(才取洞)>
군자리의 맨 북쪽에 있는 마을.
< 종자리(宗子里)>
군들 동쪽에 있는 마을. 종자동(洞)이라고도 부른다. 봉명리로 넘어가는 고개는 종자현(宗子峴).
< 가래나무골>
가래나무가 있던 골짜기.
< 갈골>
전에 갈부자가 살던 마을.
< 농바우>
종자리에 있는 바우. 농처럼 생겼다. 농바우 앞에 있는 산은 농바우 안산.
< 덩마니고개(덕만이고개)>
신동면 덩마니로 가는 고개. 예전에 어느 관찰사가 이 고개를 넘다가 덕만이라는 심복 종을 잃어버렸다.
< 두무골>
두무동. 군들과 재취동 중간에 있는 마을 두무동(杜武洞)으로 표기.
< 사냥피장등>
사냥을 하던 곳.
< 삼막골>
예전에 삼을 캐러 다니던 사람들이 모여 막을 치고 살았다.
< 샛골>
종자리와 군들 사이에 있는 골짜기.
< 솟대배깃 들>
예전에 솟대가 서 있던 곳.
< 수리봉>
조양리 사이에 있는 산봉우리.
< 옻밭골>
예전에 옻나무 밭이 있던 마을.
< 재골>
기와를 굽던 골짜기.
< 폭포숫개>
폭포수 부근에 있는 개.
< 두껍바우>
두껍처럼 생긴 바위가 있음.
4. 신동면(新東面)
의암리(衣岩里)
옷바우가 있었으므로 옷바우, 칠바우 의암(衣岩)이라고 불렀다.
< 아래옷바위>
아래옷바우. 옷바위 아래쪽에 있는 마을. 하의암(下衣岩)
< 윗보바위>
웃옷바우. 옷바위 위쪽에 있는 마을. 상의암(上衣岩)
< 옷바위(衣岩)>
의암리 앞 강가에 있는 바위.
< 복두산>
노적봉이라고 부른다. 꼭대기가 노적처럼 생긴 산.
< 쇠목여울>
쇠목처럼 생긴 여울. 지금은 의암호 물밑에 잠겼다.
< 수리봉>
독수리처럼 생긴 봉우리.
< 수리봉굴>
수리봉 밑에 있는 경춘선 기차굴.
< 신연교(新延橋)>
신연강에 놓인 다리.
< 의암댐>
의암리에 있는 댐. 옷바위의 한자 표기인「의암」의 이름을 따서 의암댐이라 함.
< 의암교>
경춘4차선국도 개설과 함께 새로 놓은 다리.
< 의암터널>
경춘국도 4차선을 확장하면서 2개의 터널을 뚫어 춘천시내로 진입하는 도로의 관문터널이 됨.
< 칠바우>
옷바우. 의암리를 칠바우라 부르기도 함.
팔미리(八味里)
발미라고도 부른다.
< 모오리(毛五里)>
발미 동쪽에 있는 마을.
< 작은설미(소선동)>
설미의 작은 마을. 설미는 깨길(깨끼리) 동쪽에 있는 마을. 소선동(小仙洞)이라고도 부른다.
< 큰설미(대선동)>
설미의 큰 마을. 대선동(大仙洞)이라고도 부른다.
< 깨길>
각길(却吉), 깨꺼리, 깨끼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팔미리 서쪽 끝에 있는 마을.
< 발미>
발미(跋尾) 팔미리라고 부른다. 발미에 있는 개울은 발밋개울.
< 매봉산>
매처럼 생긴 산.
< 모란봉>
벼락재라고도 부른다. 신남(新南)에서는 벼락재라 부르고 발미에서는 모란봉이라고 부른다.
< 사실기 고개>
발미 부근에 있는 고개.
< 연포>
발미에 있는 들.
< 영갯버덩>
발미에 있는 버덩.
< 오소리봉>
옛날 홍수 때 오소리가 앉을 만큼 봉우리가 남았었다는 산.
< 장턱거리>
정월 대보름 때 줄다리기, 씨름 등을 하던 터.
< 정의공 묘>
청풍 김석연의 묘. 증리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 함.
< 한골 개울>
혈동리(穴洞里)의 한골에서 내리는 냇물.
< 황골>
큰설미에 있는 골짜기.
혈동리(穴洞里)
설꼴 또는 혈동이라고 불렀다.
< 오봉(五峰)>
오뵝이라고도 부른다. 설골 동북쪽 산너머에 있는 마을.
< 덕만이(德蠻里)>
덩마니라고 부른다. 혈동리의남쪽 끝에 있는 마을. 덩마니에서 동산면 군자리 두뭇골로 넘어가는 고개는 덩마니고개라 한다. 김유정의 소설에도 덩마니가 나온다.
< 혈골>
설꼴, 혈동리를 혈골이라 부른다.
< 한골>
설꼴 서북쪽에 있는 마을. 한곡(汗谷).
< 한골고개>
한치현(寒峙峴) 한꼴에서 남산면 수동리로 가는 고개.
< 갈미봉골>
고깔처럼 생긴 봉우리 밑에 있는 골짜기.
< 나가짓고개>
남산면 수동리의 나가지로 가는 고개.
증리(甑里)
실내, 실레라고 부른다. 실레의 뜻에따라 증리라 하여 신남(신동)면에 편입되었다. 신남면 사무소가 있었으므로 신남이라 부르기도 한다.
< 대평(大坪)>
한두루라고 부른다. 큰 들이 있는 마을. 한두루를 흐르는 개울은 한두루개울, 농경지정리가 잘되어 있다. 대평은 한두루의 한자 표기.
< 거문관>
거문가니라고 부른다. 실내 서쪽에 딸린 작은 마을.
< 신트랑>
신드랭이. 화기암(靴機岩). 신틀바우가 있는 마을.
< 역전>
신남역(新南驛) 앞에 있는 마을. 신동면사무소 앞에 있는 경춘선 완행열차가 서는 곳.
< 아랫말>
하리(下里). 실내 아랫쪽에 있는 마을.
< 상재이>
상증(上甑) 실내 위쪽에 있는 마을.
< 삼포(三浦)>
옛날에 삼포(參圃)가 있었다. 원창리 새술막으로 통하는 아스팔트가 나 있다. 김유정의 소설「소낙비」에 삼포가 나온다.
< 새고개>
샛고개, 신촌리로 가는 고개가 있는 마을.
< 강신재>
옛날에 강신제(降神祭)를 지냈다는 재.
< 담안>
정의공이라는 사람의 무덤이 있던 안쪽의 골짜기. 담안에 있는 우물은 담안우물.
< 마삼재>
실내에 있는 산골짜기.
< 백토고개>
흰 흙이 있는 고개. 김유정의 소설에는 백두고개라 했다.
< 수하릿골>
송하곡(松下谷), 송화곡(松花谷) 실내 안쪽의 마을. 소나무가 많아 소나무꽃가루가 떨어져 쌓인다 한다. 수하리골을 흐르는 냇물은 수하리골 개울.
< 온수들>
따뜻한 물이 나온다. 온수(溫水)가 솟아 마을 아낙네들의 빨래터가 되기도 했다.
< 금병산>
실내마을 동쪽으로 솟은 산. 병풍을 두른듯 아름답다 해서 금병산이라 한다.
< 김유정 생가터>
소설가 김유정이 탄생했던 집터. 신동면 증리 427번지.
< 김유정기적비(金裕貞紀蹟碑)>
1978년 3월 29일에 제막한 김유정을 기리는 기적비이다. 펜모양의 자연석을 세웠다. 김유정이 사용하던 펜모양을 닮았다.
< 김유정 느티나무>
김유정이 고향 실레마을에 머물러 농촌운동을 하면서 느티나무를 심었다. 1932년 김유정이 23세 되던 해이다. 김유정 느티나무는 해마다 푸른 잎을 무성하게 피우고 있다.
< 김유정 금병의숙터>
김유정은 1932년 23세 되던 해에 실내마을에서 야학당(夜學堂)을 열었다.
< 김유정 문학산실 표징>
한국현대문학 표징사업의 하나로 한국문인 협회에서 1995년 12월 2일 세웠다. 비문은 『이「금병의숙」터는 1930년 단편소설의 금자탑을 세운 김유정선생께서 야학당을 열고 농민계몽운동을 펴면서 〈산골나그네〉〈총각과 맹꽁이〉등 작품 구상을 했던 문학 산실이다. 〈만무방〉〈소낙비〉〈동백꽃〉〈금따는 콩밭〉등 주옥같은 작품의 무대이기도 하다.
< 연자방아>
옛날에 사용하던 연자방아가 김유정기적비 옆에 놓여있다. 연자방아는 증리마을의 고색창연함을 보여준다.
< 진병산전적비>
진병산(陳兵山)은 임진왜란 때 강원도 조방장(助防將) 원호(元豪)장군이 진을 친 산이라 해서 진병산이라 했다. 진병산은 금병산이라고도 부른다.
< 금병초등학교>
실레에 있는 초등학교. 김유정이 야학당을 세우고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할 때 인가를 받아 금병의숙을 세웠다. 금병초등학교는 금병산과 금병의숙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금병학교는 농악으로 이름나 있다.
정족리(鼎足里)
솟바리, 정족이라고 부른다. 지형이 솥다리 같으므로 솟바리, 한자로 표기해서 정족이라 했다.
< 고창말>
솟바리 동쪽에 있는 마을. 고청리(古靑里)가 고창말로 바뀌었다. 본래는 고청말.
< 솥바리>
솟바리. 한자로 표기해서 정족리. 원래의 표기 솟바리가 솥바리로 변했다.
< 방축개>
방축깨라 부른다. 방축 부근에 있는 마을. 솟바리에 있는 들을 든던두루. 솟바리 뒤에 있는 산은 뒷벌. 솟바리에 있는 골짜기는 도장골. 솟바리에 있는 들을 섬뚜루.
< 사자우>
사자유라 부른다. 솟바리에 딸린 마을.
< 양지편>
양지 바른 곳에 있는 마을.
< 지품(地品)>
새미 남쪽에 있는 마을. 정병산(正屛山) 밑에 있어 골이 깊다.
< 구실>
솟바리의 서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 국사봉(國士峰)>
솟바리에 있는 산.
< 당고개>
서낭당이 있던 고개.
< 돌틉>
돌이 많은 곳을 개간한 들.
< 방애재>
솟바리 부근에 있는 재.
< 보광사(普光寺)>
안화산 있는 절.
< 새미(新岩)>
솟바리 부근에 있는 마을. 새미에 있는 들을 새미들.
< 안마산(鞍馬山)>
안화산이라고도 부른다. 말의 안장처럼 생겼다.
< 한석개>
정족리에 있는 들. 한석개 들에 있는 마을.
< 화챗간터>
옛날에 상여집이 있던 골짜기.
< 개처네골>
솟바리에 있는 골짜기.
< 덧고개>
덫을 놓았던 고개.
< 두들개>
화채간터 옆에 있는 골짜기.
< 안골>
솟바리 안쪽에 있는 마을.
< 준전두루>
솟바리 부근에 있는 들.
5.동내면(東內面)
거두리(擧頭里)
< 못안>
못밖 안쪽에 있는 마을. 큰 못과 숲 안쪽 마을. 숲안이라고 부른다.
< 윗거들>
웃거들. 거들의 위쪽 마을.
< 방아골>
거들 동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방아처럼 생겼다.
< 못밖>
숲밖이라 부른다. 거들 남서쪽에 있는 마을.
< 갑둔치(甲屯峙)>
갑두니고개. 방아골 동쪽에 있는 고개. 동면과의 경계에 있다.
< 거두일리(擧頭逸里)>
거두리에 딸린 마을.
< 굴양지>
양지 바른 곳에 있는 마을.
< 아랫거들>
거들의 아랫 마을. 웃거들도 있다.
< 중두루>
거두리의 중간에 있는 마을.
< 쥐역들>
거두리에 있는 들.
신촌리(新村里) >
새말 또는 신촌이라 했다.
< 뒷골>
후동(後洞), 후중리(後中里). 신촌리의 뒤쪽에 있는 마을.
< 서말>
장안말 동북쪽에 있는 마을.
< 장안마을>
장안말. 시장 안쪽에 있는 마을.
< 가마바위>
가마처럼 생긴 바위.
< 뚝샛골>
거두리와의 사이에 있는 골짜기.
< 방고개>
거두리와의 사이에 있는 고개.
< 장승배기>
장승이 서 있던 들.
< 장안구렁>
장앗버렁 옆에 있는 골짜기.
< 장안버렁>
고은리와의 중간에 있는 들.
< 후하리(後下里)>
뒷골 아래쪽에 있는 마을.
고은리(古隱里)
곰실, 고은동, 웅곡(熊谷)이라 불렀다.
< 본부락>
고은리의 중앙이 되는 마을.
< 새버덩>
새버덩. 곰실에 있는 버덩.
< 너브래>
너부랭이. 곰실뒤에 있는 골짜기 이름.
< 곰실>
고은리. 웅곡(熊谷)이라 부른다.
< 끼묵들>
화찻간들.
< 매바우>
곰실에 있는 바위. 곰실에는 벙어리바위도 있다.
< 소삼밭>
곰실에 있는 골짜기.
< 수리동>
곰실에 있는 산.
< 아갈바우>
아가리를 벌린 것같은 모양의 바위.
< 장앗버렁>
곰실에 있는 버덩.
사암리(沙岩里)
내동리(內東里), 사열리(沙悅里), 암곡리(岩谷里)를 병합하여 사열과 암곡의 이름을 따서 사암리라 했다.
< 안마을>
안골, 내동(內洞). 사암리 안쪽에 있는 마을.
< 오리골>
사래울 부근에 있는 들을 오릿갯들, 오릿개에 있는 못을 오릿갯목이라 한다.
< 태백동(太白洞)>
태백. 안골 서쪽에 있는 마을.
< 안골>
안마을. 내동.
< 암실(岩室)>
암곡촌, 사래울 동북쪽에 있는 마을. 바위가 많고 지형이 둥굴게 생겼다.
< 샛골>
사래울에 딸린 작은 마을. 샛골에 있는 고개를 샛골고개.
< 세거리>
사암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 세갈래 길이 나있다.
< 건너말>
건너편에 있는 마을.
< 점말>
옹기점이 있던 마을.
< 가막골>
사래울 뒤에 있는 골짜기. 개막골.
< 갈기리못>
사래울에 있는 못.
< 괴박골>
사암리에 있는 골짜기. 고양이 모양의 바위가 있다.
< 너래바우폭포>
넓은 바위가 있는 폭포.
< 들우물>
들에 있는 우물.
< 동두막>
사래울 뒤에 있는 골짜기.
< 두둑들>
지대가 높은 곳에 있는 들.
< 바르르미들>
사래울에 있는 골짜기.
< 사래울>
사리아(沙里牙), 사열(沙悅). 암실 남쪽에 있는 마을.
< 수리봉(守理峰)>
바위촌에서 독수리가 해마다 새끼를 많이 낳았다.
< 신선바우>
암실에 있는 바위.
< 연장골>
사래울 뒤에 있는 골짜기.
< 원텅고개>
원텅으로 가는 고개.
< 은골>
사래울 뒤에 있는 골짜기.
< 점말>
옹기점이 있던 마을.
< 호랑바우굴>
호랑이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 골짜기.
< 효자문거리>
예전에 효자의 정문이 있던 길거리.
학곡리(鶴谷里)
두름실, 두음동(豆音洞)이라 했다.
< 중말>
학곡리 중앙에 있는 마을.
< 장거리>
옛날에 장이 섰던 마을.
< 갈기리>
갈길. 떡갈나무가 많았던 마을.
< 갈전교>
갈길에 있는 다리.
< 미렷재>
두름실에 있는 재.
< 불당골>
전에 불당이 있던 골짜기.
< 용가맛골>
용이 났다는 골짜기.
< 원창고개>
원창치(原昌峙). 동산면 원창으로 가는 고개.
< 장배밋들>
길다랗게 생긴들.
< 점터버덩>
옹기점이 있던 버덩.
< 정지말>
정자나무가 있던 마을.
< 평골>
불당골 옆에 있는 골짜기.
6. 남면(南面)
관천리(冠川里)
간내울, 갓내울이라고 부른다. 소양강(昭陽江)과 홍천강(洪川江)이 합치는 어귀에 있었으므로 갓내울 또는 관천이라고 했다.
< 서낭당>
서낭댕이라고 부른다. 서낭댕이에 서낭고개가 있고 서낭댕이는 서낭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다. 서낭댕이가 서낭당으로 변했다.
< 웃골>
갓내울 위쪽에 있는 마을. 웃말이라고 부른다.
< 강마산>
갓내울에 있는 산.
< 개옹개>
가옹개. 관천리의 한 마을. 개옹개에 있는 고개는 개옹개 고개.
< 단지뫼기>
박암리와의 사이에 있는 골짜기.
< 봉우리>
웃말에 있는 산.
< 넉동구리>
홍천강 속에 잠긴 모롱이.
< 세목여울>
홍천강 속에 있는 여울.
< 윤대>
웃말에 있는 골짜기, 윤대에 있는 들.
< 항짬부리>
홍천강 속에 잠겨 있다.
< 장사바우>
옛날에 장사가 공기를 받다가 던진 바위라 한다.
박암리(博岩里)
바개미, 소가암, 박의암, 박암이라고 부른다.
< 웃말>
웃바개미, 상박암, 상리. 바개미 웃쪽에 있는 마을.
< 본말>
박암리의 중앙. 벌판에 있는 마을. 벌말, 중리라고도 부른다.
< 함바지>
바개미 아래쪽에 있는 마을. 하리(下里).
< 단지메기>
바랑골 부근에 있는 골짜기.
< 단지목>
북한강 쪽으로 있는 고개.
< 문앞골>
문하동(門下洞)에 있는 골짜기.
< 봉우재>
옛날에 봉화를 놓았던 산.
< 소가암(所加岩)>
박암리.
< 팔풍재>
가얏마루, 이대울. 바개미에 있는 재.
< 차멸>
채멸. 가문렛골 밑에 있는 골짜기.
< 천자골>
차멸 밑에 있는 골짜기.
< 횟모롱이>
횟골이 있는 모롱이.
가정리(柯亭里)
가정자라고 부른다. 왜적을 물리치고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의병(義兵)을 일으킨 유인석(柳麟錫) 등 많은 의병장이 탄생했다.
< 개경자>
가정자, 가정리. 가정리 앞에는 홍천강의 나루가 있다.
< 왕월>
왕동(旺洞), 왱월이라고 부른다. 여우내 북쪽 들에 있는 마을. 왱월 뒤에 있는 골짜기는 왱월골.
< 대골>
대곡(垈谷), 텃골. 고란터 북쪽에 있는 마을.
< 평촌>
버덩버렁에 있는 마을. 평촌부근에 있는 들을 평촌들.
< 약바우>
약암리(藥岩里) 약바우가 있는 마을. 텃골 북쪽 딴묏산 기슭에 있는 큰바우가 매우 영검하여 병든 사람을 위하여 빌면 효험이 있다 함.
< 제청말>
제청촌. 왕월 북쪽에 있는 마을. 광해군 때 유숙(柳潚), 유혁, 유활 3형제가 그 부모의 제청을 모시고 6년간 시묘를 살았다.
< 집술>
약바우 북쪽에 있는 마을. 집실(執室)이라고 부른다.
< 쟁골>
재궁동(齋宮洞). 제창말 위에 있는 마을. 흥성부원군(興城府院君) 유몽표(柳夢彪)의 재궁이 있었다.
< 고란터>
고란(皐蘭一) 난곡(蘭谷). 가정자 서쪽에 있는 마을. 고란터앞에 고란터나루가 있었다.
< 고흥유씨 분산동구비>
가정리 어귀에 있는 비. 비 앞면에 고흥유씨 분산동구비(高興柳氏墳山洞口碑)의 8자를 새겼다.
< 능골>
능곡(陵谷), 제청말,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 흥성부원군 유몽표의 묘가 있다.
< 두리봉>
고란터 뒤에 있는 산. 봉우리가 둥그스름 하다.
< 독산>
딴묏산. 약바우 뒤에 외따로 있는 산.
< 미나리골>
산미나리가 나는 골짜기.
< 빗들배깃들>
왕동 윗쪽에 있는 들. 흥성부원군 유몽표와 그 아들 취흘(醉訖) 유숙(柳潚) 부자(父子)의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 사동(寺洞)>
절골이라고 부른다. 집실 동쪽에 있는 마을. 절이 있었다.
< 삼성봉(三聖峯)>
텃골에 있는 산. 삼성묘(三聖廟)가 있었다.
< 상암산(上岩山)>
텃골 뒤에 있는 산.
< 새악시골>
색싯골이라 부른다. 미나리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설통바우>
설통(벌통)처럼 생긴 바우. 설통바위 밑에 설통바웃보가 있다.
< 쇠파니>
전에 쇠를 파냈던 골짜기.
< 수락산(壽樂山)>
능골 뒤에 있는 산. 흥성부원군 유몽표의 묘가 있다.
< 술워니고개>
주원현. 가정리에서 방하리로 가는 고개.
< 늠연실(凜然室)>
제청말에 있는 사당. 인조때 참판 유숙의 화본을 모신 사당. 춘추로 고흥유씨 문중에서 제사를 지낸다.
< 여우내 우계>
가정리 옆에 있는 마을. 이곳에서 의암 유인석이 탄생했다. 여우내 뒤에있는 골짜기를 여우냇골이라 한다. 정미의병때 유홍석(柳弘錫)을 주축으로 한 의병이 탄약을 만들었으며 의병을 훈련시켰다. 지금도 쇳조각이 나오고 쇳물이 녹았던 자리가 붉은 빛을 띄우고 있었다. 여성의병 윤희순(尹熙順)도 여우냇골 의병전에 참가했다.
< 열녀정문>
쟁골 입구에 있었다. 조선 영조때 유재한(柳宰漢)의 아내 양천허씨(陽川許氏)의 열녀정문이다.
< 제청촌(祭廳村)>
제청말. 제청말앞에 제청보(湺)가 있었다.
< 의암선생묘(毅菴先生墓)>
성역화된 의암 유인석의 묘가 있다. 가정리 출신으로 화서학파(華西學派) 3대 종주가 되었고 척사위정(斥邪衛正)의 기치를 내걸고 제천(堤川)의병을 지휘했다. 팔도창의대장(八道 倡義大將)이 되었으며 우리나라 의병을 총지휘했다. 일본의 침략을 막고 왜적을 쫓아내는데 일생을 보냈다. 의암제때는 여기에서 제사를 올린다.
< 주일당(主一堂)>
가정리에 있는 사당.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 의암 유인석(柳麟錫). 항와(恒 ) 유중악(柳重岳)을 배향하고 춘추로 제사를 지낸다.
< 취흘공묘(醉吃公墓)>
능골에 있는 취흘 유숙의 묘.
< 홍무벽(洪武壁)>
고란터 남서쪽 홍천강가에 있는 큰 바위. 앞면에 기봉강역홍무의관(箕封彊域洪武衣冠)의 8자가 새겨져 있다.
< 효정(孝井)>
약바우 서쪽에 있는 우물. 조선 철종(哲宗) 때 유중이(柳重履)와 그 아내 이씨(李氏)가 효성이 지극하여 산새와 물고기를 잡아 부모를 봉양하며 먼 산골짜기의 물을 길어다가 부모님께 드렸다.
< 강원도학생교육원>
의암 유인석 등 구국항쟁으로 자주독립을 위해 싸웠던 독립투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강원도교육청에서 건립한 학생 교육원. 중고생들을 뽑아 나라사랑 교육을 실시한다.
발산리(鉢山里)
발봉(鉢峯)의 이름을 따서 발산리라 했다.
< 황골>
항골, 항곡(恒谷). 홍천강 어귀에 골짜기가 있는 마을. 항골마을에 있는 큰 골짜기를 큰항골. 항골이 황골로 변했다. 항골유원지가 발달하여 여름에는 피서객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홍천강은 모래가 깨끗하고 물이 맑아 피서객을 부른다.
< 저질>
좌방동(座防洞). 잣방산 밑에 있는 마을.
< 솔만이>
송만리(松巒里). 박암리에서 제일위에 있는 마을.
< 전의골>
전의동(全儀洞) 솔만이 서쪽에 있는 마을.
< 가재골>
가작골, 가지동(加之洞).
< 곰동골>
되통골에 딸린 골짜기.
< 달부재>
가작골로 가는 재.
< 둥지봉>
둥지처럼 생긴 봉우리가 있는 산.
< 바력바우굴멍>
큰 항골에 있는 골짜기.
< 발봉>
발산리 마을 가운데 있는 작은 산. 모양이 바릿대처럼 생겼다 함. 발봉에 있는 보를 발봉보.
< 삼형제바우>
되통골에 있는 바우. 바위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다.
< 새여울>
홍천강에 있는 마을.
< 속실>
안쪽으로 있는 마을. 속실에 있는 들을 속실들.
< 소못들어가는 골>
소가 들어가지 못하는 골짜기. 아래 소 못들어가는 골, 위 소 못들어가는 골짜기도 있다.
< 열녀정문>
가지동에 있는 조선시대 영조때 유준(柳埈)의 아내 함평 이씨의 열녀정문. 근년에 발산지서 뒤로 옮겼다.
< 작은 나미섬>
소남도(小南島). 작은남이섬. 홍천강에 있는 섬. 섬이 두 개 있는데 큰 섬은 방하리에 있다.
< 작은 항골>
항골에 딸린 작은 골짜기.
< 장발들>
마을 앞에 있는 들.
< 처녀바우>
촛대봉 밑에 있는 바위.
< 촛대봉>
촛대처럼 생긴 봉우리.
< 평풍바우>
큰 항골에 있는 바위. 병풍을 세운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 호랑바우>
호랑이처럼 생긴 바위.
< 화채바우>
상여처럼 생긴 바위.
< 조리봉>
조리를 얹어놓은 듯한 산.
< 느티나무>
유학자 성재 유중교가 심었다는 느티나무. 황골 오른쪽 언덕에 큰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 유홍석 생가터>
유학자이며 의병대장인 유홍석(柳弘錫)이 살던 생가 터가 있다. 며느리 여성의병 윤희순이 백일기도를 올렸다는 샘물이 있다. 강원대학교에서 세운 해주윤씨 기적비가 주변에 있다.
후동리(後洞里)
뒷골이라고도 한다. 발봉 뒤쪽에 있으므로 뒷골, 후동이라 했다.
< 골말>
고촌(古村)이라고도 부른다.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 옹장골>
가래나무가 많은 가래버덩 부근에 있는 골짜기 마을.
< 의실>
으실. 가래버덩 부근에 있는 골짜기 마을.
< 버들>
유대곡(柳垈谷)이라고 부른다. 버드나무가 많다하여 이름이 유래.
< 소실촌(小室村)>
쇠실이라고 부른다. 버들 서쪽에 있는 마을.
< 소주고개>
소주현(燒酒峴). 고개가 너무 가파라서 전에 어느 사람이 소주를 많이 먹고 고개에서 굴렀다 하며, 또 소가죽은 고개라해서 소주고개라 불리운다.
< 살신모정비>
6.25때 어머니가 아들을 감싸고 죽었던 것을 기려 비석을 세움.
< 충의현비(忠義峴碑)>
춘천지역에서 일어난 화서학파 의병과 충절을 기리는 의병기념비다. 1987년 건립.
추곡리(秋谷里)
가래나무가 많으므로 가래울 또는 추곡이라 했다.
< 터골>
대곡리(垈谷里)라 부른다. 가래울 남쪽에 있는 마을.
< 안말>
가래울 안쪽에 있는 마을.
< 본말>
가래울의 큰마을, 본마을.
<공주묘>
조선왕조 중종(中宗)의 셋째 따님 효순공주(孝順公主)와 그 부군 능원위(陵原尉) 구사안(具思顔)의 묘이다.
< 덕둔지>
문닫은 골 부근에 있는 골짜기.
< 덩망골>
넘남골 옆에 있는 골짜기. 넘남골은 덤뱃골 옆에 있는 골짜기. 덤뱃골은 마당재 옆에 있는 고개. 꼭대기가 마당처럼 평평한재를 마당재라 한다.
< 문닫은 골>
골 어귀가 좁아서 문을 닫은 것 같은 골짜기.
< 벌말>
평촌리(坪村里). 벌판에 있는 마을.
< 베틀바우>
베틀처럼 생긴 바위.
< 산제당 골>
산제당이 있는 골짜기.
< 삽다리>
텃골 위쪽에 있는 마을. 삽다리 고개는 삽다리에 있는 고개.
< 섬배고개>
행촌리의 섬배로 가는 고개.
< 신단지 터>
가래울에 있는 터.
< 아랭이 고개>
추곡현, 추곡고개. 수동리의 아랭이로 넘어가는 고개.
< 아치기>
덕둔지 위에 있는 산.
< 약수터>
추곡리에 있는 약물터.
< 여우밭>
여우가 살던 굴.
< 은골>
전에 은항아리를 캣던 골짜기.
< 자주봉>
자주색으로 보이는 산.
< 장사바우>
장사가 들었다 놓은 손자국이 있다.
< 저고리골>
전에 범이 사람을 물어가서는 저고리를 이 골짜기에 걸어 놓았다.
< 채나물채>
채반이나 바구니를 만드는 나무가 많은 골짜기.
< 행성너머>
공주묘 부근 고개는 알반의 행상〔상여〕이 다니지 못하게 하고, 오직 이 고개로만 다니게 했다.
한덕리(漢德里)
홍천강 가 큰 언덕에 있으므로 한덕이라 했다.
< 안말>
한덕 안쪽에 있는 마을.
< 바깥말>
한덕 바깥쪽에 있는 마을.
< 오라우>
오아동(五我洞), 섭일 서남쪽에 있는 마을.
< 매봉>
옛날 홍수때 모든것은 물에 잠기고 이 산에 매 앉을만큼 남게 되었다.
< 셉일>
협의동, 섭일. 한덕리의 가장 북쪽에 있는 마을. 셉일고개가 있다.
< 시밀>
이십곡. 이 마을에 골짜기가 스물이나 있다고 함.
7. 남산면(南山面)
통곡리(通谷里)
통골이라고도 한다.
< 웃말>
통곡에서 윗쪽에 있는 마을.
< 본말>
통곡리의 본말.
< 망단이>
망월리(望月里)라고도 부른다. 통골 남쪽에 있는 마을.
< 논골>
답동(沓洞)이라고도 부른다. 논이 많은 마을.
< 큰골>
대곡(大谷)이라고 부른다. 통골 북서쪽 큰 골짜기에 있는 마을.
< 앵골>
한덕리에 가까운 마을.
광판리(光坂里)
넓은 벌판에 있으므로 광판(光坂)이라고 했다.
< 장거리>
광판리에 있는 마을. 5일장이 섰으나 지금은 사라져 버린 거리
< 새마을>
새로 생긴 마을.
< 골말>
광판리에 딸린 마을.
< 탑골>
탑동(塔洞). 탑이 있던 마을. 현재 광판리, 국제레미콘앞 마을로 탑재가 일부 있으며 예전 전방사(箭防寺)가 있었다 한다.
< 반이동>
반의동(班衣洞) 광판리 북쪽에 있는 마을.
< 양지말>
양지편에 있는 마을.
< 우러니골>
날근터와 양지말 중간에 있는 마을.
< 낡은터>
날근터라고 부른다. 오래된 터.
< 굼둘이>
구은동(九隱洞). 구만리 서쪽에 있는 마을.
< 구만리(九萬里)>
광판리 남쪽에 있는 마을. 굽이 안쪽에 있다. 구마니라고 부른다.
< 가린내>
광판리의 한 부분. 가린내고개와 가인내들이 있다.
< 덩미니고개>
큰넉골에서 법소리로 가는데 있는 고개.
< 몽골>
행촌과 광판리 경계에 있는 골짜기.
< 법소리(法所里)>
광판리 서쪽에 있는 마을. 법비라고 부른다.
< 섬뱃골>
행촌리와 경계에 있는 골짜기.
< 안동막골>
광판리의 한 마을. 그냥 동막골이라고 한다.
< 안산>
가린내 앞에 있는 산.
< 작은 넉골>
광판리의 제일 위쪽에 있는 마을. 큰넉골도 있다.
< 작은여내>
광판리에 딸린 마을.
< 텃골>
옛날에 집터가 있었던 골짜기.
< 호랑부리>
호랑이 처럼 생긴 바위.
행촌리(杏村里)
살구나무가 많으므로 행촌(杏村)이라 불렀다.
< 섬배(蟾背)>
섬배, 섬배리라고 부른다. 행촌 동쪽에 있는 마을. 섬 배에 있는 골짜기는 논골.
< 검운동>
거믄동이, 흑림동이라고도 부른다. 행촌 북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거믄동이에서 광판리로 가는 고개는 거믄동고개.
< 가래올고개>
섬배에서 추곡리의 가래울로 가는 고개.
< 논골>
섬배에 있는 골짜기.
< 미역골>
예전에 침수되어 미역오리만큼 남았었다.
< 벙에터골>
붕에터골, 휴대곡( 垈谷). 토목골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부엉이가 많이 살았다.
< 삽다리>
미역골 부근에 있는 골짜기. 삽다리 고개가 있다.
< 샘칫골>
샘물이 많은 골짜기.
< 옻물>
옻 오른데 효험이 있는 우물.
< 토목동(土木洞)>
토목골. 거믄동이 동쪽에 있는 마을.
< 톡골계곡>
신동면 혈동리로 가는 고개. 신동면 혈동리와의 경계에 있는 골짜기는 톡골.
< 흑림동(黑林洞)>
거믄동이가 검운동으로 표기가 변화.
수동리(壽洞里)
숯가마골, 탄부리라고도 부른다.
< 숯가마리>
숯가마골, 수동리라고 부른다. 탄부리라고도 부른다.
< 한치골>
한치곡(寒峙谷) 한치고개 밑에 있는 마을. 한치고개 한치현(寒峙峴)은 숯가마골에서 신동면(新洞面) 팔미리로 넘어가는 큰 고개.
< 나가지(羅加池)>
큰 못이 있는 마을.
< 와룡(臥龍)>
아랭이, 와룡이, 도치골 남쪽에 있는 마을.
< 흔드레골>
아랭이 부근에 있는 마을.
< 낙안현(落雁峴)>
나기지고개. 나가지 위에 있는 고개. 기러기가 날아가다 이곳에 떨어졌다.
< 도치골>
도곡(桃谷). 숯가마골 남쪽에 있는 마을.
< 무당산>
무당이 굿을 하던 산.
< 삼밭골>
삼밭이 있던 골짜기.
< 설꼴고개>
신동면 혈동리 설꼴로 가는 고개.
< 영천골>
바웃골 부근에 있는 골짜기.
< 지방골>
삼밭골 옆에 있는 골짜기.
< 피악골>
뒷골 부근에 있는 골짜기.
< 할미바우>
전에 마귀할미가 놓았다는 바위.
창촌리(倉村里)
남사창(南社倉)이 있었으므로 창말 또는 창촌(倉村)이라고 했다.
< 새말>
신촌(新村). 새로 생긴 마을.새말 뒤에 있는 산은 새말뒷산. 새말에 있는 못은 새말못.
< 창말>
창촌리. 창말에 있는 개울은 창촌개울.
< 창터>
옛날 남사창(南社倉)이 있던 터.
< 보매기>
보촌(洑村)이라고 부른다. 보가 있는 마을.
< 빙하밑>
빙하촌(氷下村)이라고 부른다. 빙애산 밑에 있는 마을. 벼랑으로 된 산을 빙하산(氷下山) 빙애산이라고 부른다.
< 둔일>
두릉(杜陵)이라 부른다. 노일 남쪽 산 너머에 있는 마을. 둔일에 있는 개울은 둘일개울. 둔일 앞에 있는 산은 둔일안산. 둔일에 있는 높은 산봉우리는 된봉.
< 양단이>
양단리(陽丹里)라고 부른다. 둔일 남쪽에 있는 마을. 양단이에 있는 개울은 양단이 개울. 양단이 뒤에 있는 산은 양단이 뒷산.
< 느질매기>
봇둔지 위에 있는 마을.
< 도리개>
보매기 뒤에 있는 마을.
< 도장골>
둔일에 있는 골짜기.
< 되짝골>
마산부리 부근에 있는 골짜기.
< 마산부리>
둔일 한 복판을 가로지르는 산.
< 밤나무골>
밤나무가 많았던 골짜기.
< 배나무골>
배나무가 많았던 골짜기.
< 새우갯들>
창촌 건너편에 있는 들.
< 소주고개>
후동리로 가는 고개.
< 송학골>
둔일 어귀에 있는 골짜기.
< 수렁골>
느질메기 뒤에 있는 골짜기. 수렁이 있다.
< 창뒷산>
옛날 창고뒤에 있는 산.
< 창촌농공단지>
창촌에 새로 생긴 농공단지. 농촌의 공업화의 일환으로 공업단지를 만들 때 창촌에 세워진 농공단지.
< 큰성개>
탑안 부근에 있는 산.
< 탑안>
절터와 탑이 있는 안쪽 골짜기.
< 품실못>
품실에 있는 못.
< 횟골산>
횟돌이 나는 산.
방곡리(芳谷里)
방골 또는 방곡(芳谷)이라 한다.
< 풀무골>
품뭇골, 야동(冶洞)이라 부른다. 모퉁이에 대장간이 있던 마을. 쇠녹이는 풀무깐이 있던 마을.
< 중말>
죽리(竹里), 중촌(中村)이라고도 부른다. 방곡리 중앙에 있는 마을.
< 덕거리(德巨里)>
덕걸이. 중리 북쪽에 있는 마을.
< 갯골>
노일 북쪽에 있는 마을.
< 노일(魯日)>
구만이 서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 구만이>
구만리(九巒里)라고도 부른다. 창촌 서쪽에 있는 마을.
< 개텃골>
방아텃골 옆에 있는 골짜기.
< 방아텃골>
방앗간이 있던 골짜기.
< 배맹산>
용이 난 산.
< 보락골>
갯터골 옆에 있는 골짜기.
< 복치혈(伏雉穴)>
방곡리에 있는 묘자리. 꿩이 엎드린 형국이라 한다.
< 불당골>
불당이 있던 골짜기.
< 삼봉(三峯)>
세 봉우리로 된 산. 토지 측량 때 표준기를 세웠다.
< 수수밭골>
수수밭이 많았던 골짜기.
< 승짓골>
수수밭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왕마나골>
고려때 왕마나 라는 사람이 살았다는 골짜기.
< 하방곡리>
방곡 아래쪽에 있는 마을.
강촌리(江村里)
북한강 강가에 있으므로 물께 말(마을)이라고 불렀다.
< 본부락>
강촌의 본부가 되는 마을. 새로 마을이 번창했다. 본마을이라고 부른다.
< 구구리>
구곡리(九曲里)라고 부른다. 강촌 남쪽에 있는 마을. 골이 깊고 여러 굽이로 되어있다.
< 문배>
문보(文甫)라고 부른다. 구구리의 서남쪽에 구곡폭포 상단에 있는 마을. 구곡폭포의 뒤로 넘어가는 길이 생겼다. 관광 등산객들이 음식을 들 수 있는 민간 음식점이 생겼다. 문배마을 산채도 유명하다. 문배에 있는 고개는 문뱃고개.
< 물개>
물깨말이라고 부른다. 강촌리.
< 말골>
마곡(馬谷)이라 부른다. 강촌 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말 처럼 생겼다.
< 발뢰(發雷)>
물깨말. 서북쪽 북한강가에 있는 마을. 발뢰에 있는 여울을 발뢰여울이라 불렀다. 발뢰 뒤에 있는 골짜기는 발릿골.
< 강선사(江仙寺)>
강촌리 검봉산 기슭에 있는 절.
< 강촌역(江村驛)>
강촌리에 있는 경춘선(京春線)의 역이 있는곳. 1936년에 설치되었다. 강촌유원지와 구곡폭포 등의 관광지로 모여 드는 관광객이 항상 붐빈다.
< 강촌교(江村橋)>
강촌다리. 북한강 강촌을 연결하는 다리.
< 구곡폭포(九曲瀑布)>
구구리 서남쪽 문배 밑에 있는 폭포. 중첩된 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로서 명승지로 알려져 있다. 영화 촬영장으로도 많이 이용된다. 구구리폭포라고도 부른다.
< 도치골>
구구리에 있는 골짜기.
< 돌자수바우>
강촌역 뒤에 있는 바위.
< 돕바우>
본마을에서 구구리로 가는 중간에 있는 산.
< 두멍>
북한강에 있는 소.
< 듬바우>
강촌역 앞 바위가 있는 산.
< 띳골>
물개말과 구곡폭포 중간에 있는 골짜기.
< 박달>
철도 가에 있는 산.
< 승새>
구구리에 있는 산. 승새에 있는 고개는 승샛고개.
< 어두니>
구구리에 있는 골짜기.
< 역논>
역에 딸렸던 논.
< 월정바우>
본마을과 백양리역 사이에 있는 바위.
< 작은문배>
문배 옆에 있던 마을.
< 칭기미>
강촌 앞에 있는 골짜기.
< 호랑바우>
호랑이처럼 생긴 바위.
< 강촌검문소>
강촌 앞에 있는 검문소.
서천리(西川里)
서사천(西士川) 가에 있으므로 서사천이라 했다.
< 중간말>
서천리 중간이 되는 마을.
< 역전말>
역 앞이 되는 마을.
< 다리골>
다릿골이라 부른다. 두 골이 마주치는 곳에 있는 마을.
< 횃골>
햇골. 하약곡(荷藥谷), 학익동(鶴翼洞)이라 부른다. 서사천 남쪽에 있는 마을.
< 경강역(京江驛)>
정강말 앞에 있는 경춘선의 기차역.
< 정강말>
경강역이 있는 마을. 역전말.
백양리(白楊里)
긴 골짜기에 있었으므로 방골이라 한다.
< 샘말>
서사천상리. 도치골 북쪽에 있는 마을. 서사천 윗쪽으로 큰 샘이 있다.
< 응달말>
응지쪽에 있는 마을.
< 양달말>
양지쪽에 있는 마을.
< 뱅골>
백양리.
< 건넌골>
골짜기 건너편에 있는 마을.
< 배나무골>
문뱃골. 샛골 동쪽 방곡리 절경에 있는 마을 골짜기.
< 샛골>
샛말, 간곡(間谷). 웃마을과 아랫마을 사이에 있는 마을.
< 굴봉산(屈峯山)>
도치골 동북쪽에 있는 산. 높이 393m로 굴이 있다.
< 당골>
서낭당이 있던 골짜기.
< 도치골>
도치동(道治洞)이라고 부른다. 뱅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 예전에 산돛이 많았다 한다.
< 안뱅골>
뱅골 안쪽에 있는 마을.
< 절골>
예전에 절이 있던 골짜기.
< 한치고개>
한안치(寒雁峙). 샛골에서 가정리 절골로 가는 고개. 한치고개. 밑에 있는 골짜기는 한칫골.
방하리(芳荷里)
방하울이라고도 한다.
< 문의골>
문의곡(文義谷) 무닛골이라고 부른다. 방하울 북쪽에 있는 마을.
< 큰말>
방하리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마을.
< 술어원리>
술워니, 술원리(述院里). 술워니고개밑에 있는 마을.
< 샛말>
웃마을과 아랫마을 중간에 있는 마을. 간촌(間村)이라고 부른다.
< 나미섬>
남도(南島). 남이섬(南怡島)라고도 부른다. 북한강 안에 있는 섬. 남이(南怡)장군이 섬으로 귀양왔다고 함. 남이장군의 묘가 있다.
8. 서면(西面)
현암리(玄岩里)
가마리, 감와리, 현암으로도 부른다.
< 감와리(堪臥里)>
현암리. 상현암은 지시울이라 부르고 하현암은 현암리 아래쪽에 있는 마을을 가리킨다.
< 지시울>
가마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 상현암이라고도 부른다.지시울 배터기는 이름있는 나루터였다.
< 버드내(柳浦)>
전에 버드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버드내, 유포라고 불렀다.
< 구순대(九脣垈)>
깃대봉 밑에 있는 골짜기.
< 깃대봉>
토지측량 할때 이 봉에 삼각점 표준기를 세웠다 함.
< 돌뜨기바위>
부석이라 했다. 북한강 복판에 있던 큰 바위.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 동지야(桐枝野)>
동잿들이라고 불렀다. 북한강가에 있었던 마을이었다.
< 뭉숭골>
지시울 뒤에 있는 골짜기.
< 봉우리재>
지시울 뒤에 있는 산.
< 사닥다리벼루>
덕두원리와의 경계에 있는 벼랑.
< 산매기>
가마리 뒤에 있는 골짜기.
< 삼선당>
북한강에 있는 여울. 의암호에 잠겼다.
< 새마을>
백로주(白鷺洲) 소양강과 북한강 사이에 있던 마을. 지금은 의암호 물 밑에 잠겼다. 신촌(新村).
< 쇠경골>
덕두원과 경계가 되는 골짜기.
< 아울치>
합수머리. 두 개울이 합치는 곳에 있던 들. 물 속에 잠겼다.
< 정갯골>
가마리 뒤에 있는 골짜기.
< 중나루터>
중진(中津). 서면과 삼천동 중간에 있는 나루터. 물에 잠겨 버렸다.
< 초당골>
지시울 뒤에 있는 골짜기.
< 태봉골>
태봉산(胎峰山) 밑에 있는 골짜기. 예전 고려 왕의 태를 묻었다는 산.
< 풋뭇고개>
버드내와 지시울 경계에 있는 고개. 전에 대장간이 있었던 골짜기를 풋뭇골이라 한다.
< 한강골>
버드내에 있는 골짜기.
금산리(錦山里)
금산(錦山)이라 했다.
< 눈늪>
와빈(臥濱)이라고 한다. 갈둔 동쪽 소양강 가에 있는 마을. 전에는 길게 누워있는 것처럼 생긴 늪이 있었다. 눈늪에 있는나루를 눈늪나루라 했다.
< 점말>
옹기점이 있던 마을.
< 진박골>
길게 생긴 마을.
< 뒷말>
금산리 뒤쪽에 있는 마을.
< 우무골>
움묵골. 움묵하게 생긴 마을.
< 장승부락>
장승배기. 장승이 서 있던 마을.
< 갈둔(葛屯)>
원금산 북쪽에 있는 마을. 전에 갈대가 무성했다.
< 장군터>
장군봉 밑에 있는 마을. 장군봉(將軍峰)은 원금산 뒤에 있는 높이 187m의 산. 그 기상이 장군과 같다하여 장군봉이라했다. 장군이 났다고도 한다.
< 원금산(元錦山)>
금산리의 원 마을. 서면 사무소와 경찰지서, 학교등이 자리잡고 있다.
< 도하부락>
뱃터가 있는 부락.
< 두멍개>
금산 앞 북한강에 있는 개. 의암호 물밑에 잠겼다.
< 방뚝개>
북한강 가에 있는 개.
< 서낭고개>
신매리(新梅里)로 가는 고개. 서낭당이 있었다.
< 성지봉>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있는 산.
< 수정골개울>
수정골에서 내려오는 개.
< 신선>
장승배기 북쪽에 있는 마을.
< 아랫새말>
금산 아래쪽에 새로 생긴 마을.
< 여냇개울>
북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내.
< 오릿골>
금산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웃샛말>
금산 위쪽에 새로생긴 마을.
< 윗두루>
장승배기에 있는 들.
< 횟골>
옛날 이곳에서 횟돌이 났다 함.
신매리(新梅里)
의매하리, 사리, 반송하리, 신포리의 각 일부와 오매상리, 보가대리를 병합하여 신포와 오매의 이름을 따서 신매리라 했다.
< 보가터>
보가대(寶家垈). 신매리 서북쪽에 있는 마을.
< 사리말>
사리(沙里). 신매리 북쪽에 있는 마을. 사리에 있는 들은 사릿들이라 한다.
< 오미(梧美)>
신매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 오미에 있는 들은 오밋들, 오미 앞에 있는 나루는 오미나루.
< 쇠때배기>
솟대배기라고 부른다. 예전에 솟대가 서 있던 마을.
< 뫼밑터>
장산 밑에 있는 마을을 뫼밑이라 부른다. 뫼밑이 뫼밑터로 변했다.
< 진두말>
진두촌(津頭村). 나룻가에 있는 마을.
< 내해평(內海坪)>
안바닷들이라고 불렀다. 바닷들 안쪽에 있던 넓은 들. 신매리의 큰 들. 외해평도 있음.
< 뒷개버덩>
신매리 뒤쪽에 있는 개흙으로 된 버덩.
< 모자바우>
사포바우. 모자처럼 생긴 바우.
< 상두개울>
월송리에서 발원하여 북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내.
< 샛골>
월송리 경계에 있는 들.
< 서낭고개>
자작나무와 서낭이 있는 고개. 짜작고개라고 불렀다.
< 서원터>
장절공 신승겸을 배향했던 도포서원(道浦書院)의 터.
< 우앵이>
우양(禹楊). 수백년전에 우씨와 양씨가 많이 살았던 마을.
서상리(西上里)
권산리, 신포, 툇골을 병합하였고 서상면사무소가 있으므로 서상리라 했다.
< 탑말>
양화사(楊花寺)에 딸렸던 탑이 았는 마을. 높이 424cm의 3층 석탑이 있는 마을.
< 웃말>
서상리 위쪽에 있는 마을.
< 중간말>
서상리 중간에 있는 마을.
< 아랫말>
서상리 아랫쪽에 있는 마을.
< 석갓>
신포(薪浦). 섶(땔나무)이 많았다.
< 화전마을>
화전이 있던 마을.
< 가덕산>
멍에더기. 서상리에 있는 산.
< 골미>
곡미(谷尾). 권산리(權山里). 서상리에서 가장 큰 마을. 골미에 있는 나루터를 골미나루. 권산진두(權山津一).
< 곧은골>
북배산 밑에 있는 골짜기.
< 귕골>
구유처럼 생긴 골짜기.
< 노루목고개>
노루가 다니던 목이었던 고개.
< 또리골>
툇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마당재>
툇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 망태정골>
옛날 어떤 사람이 망태 하나를 지고 와서 여러 대를 살았던 곳.
< 면터골>
툇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무지버덩>
옛적에 숲이었던 것을 개간했다.
< 봉구실>
툇골 어귀에 있는 마을. 봉구실 바위가 있다.
< 삿갓봉>
삿갓처럼 생긴 산.
< 서낭들>
전에 서낭당이 있었다.
< 소징갯골>
툇골 서쪽에 있는 마을.
< 쇠막골>
옛날 이곳에서 쇠가 났다.
< 쇠메기>
소가 누운듯한 모양의 골짜기.
< 안지매기>
안지매기고개 밑에 있는 들. 비탈이 심하여 앉아서 기어간다는 고개를 안지매기고개.
< 어영골>
외양간 모양으로 생긴 골짜기.
< 외자국고개>
서상리에서 월송리로 사는 고개.
< 응달들>
응달쪽에 있는 들.
< 장설맷들>
툇골 북쪽에 있는 들.
< 툇골>
퇴동리(退洞里). 조선조 중종때 윤세호(尹世豪)라는 사람이 살다가 간곳이라 한다. 툇골이 있는 고개를 툇골고개, 퇴동현(退洞現), 깎은봉이라고도 부른다.
< 황골>
툇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 흑칫골>
툇골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
오월리(梧月里)
오구남리와 갈월의 이름을 따서 오월리라 했다.
< 윗골>
웃골. 머구너미 위쪽에 있는 마을.
< 매운탕골>
춘천호에서 나는 물고기로 매운탕을 만들어 파는 유원지가 생겨 매운탕골로 유명하게 되었다.
< 벌둔이>
벌둔리(伐屯里). 가락리 남쪽 벌판에있는 마을. 벌둔이에 있는 고개를 벌둔이 고개.
< 가락>
갈월(葛月), 갈월리. 북한강 서안에 있는 마을.
< 하납실>
납실의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상납실>
납실의 위쪽에 있는 마을.
< 납실(納實)>
머구너미 서남쪽 봉덕산 밑에 있는 마을. 납실에 있는 고개는 납실고개. 납실현(納實峴).
< 고든골>
납실에 있는 골짜기.
< 고래논들>
머구너미에 있는 들.
< 땀띠물>
춘천호 물속에 잠겼으나 예전에 이 우물물이 땀띠에 잘들었다.
< 마장고개>
사북면 지암리 마장으로 가는 고개.
< 물어구나루터>
춘천호 물속에 잠겼다. 사북면에서 오월리로 건너던 나루터.
< 머구너미>
오구남리(梧口南里) 옛적에 북한강 물이 넘쳐서 이 지역까지 범람했다.
< 범박골>
머구너미에서 동덕산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골짜기.
< 복숫골(福壽谷)>
팟(破)골. 본래 팟골이라 했다. 파(破)자가 좋지 않다 하여 복수(福壽)로 고쳤다.
< 삿갓봉>
머구너미 북쪽에 있는 산. 삿갓모양으로 생겼다.
< 새미기>
벌둔리에 있는 골짜기.
< 양지들>
양지편에 있던 들. 춘천호 물속에 잠겼다.
< 옻나무들>
뒷골 밑에 있는 들.
< 옻박골>
옻나무가 있던 골짜기.
< 지루너미고개>
납실에서 사북면 지암리로 가는 고개.
< 진삽박골>
옻박골 밑에 있는 골짜기.
< 춘천댐>
1965년 2월8일에 완성된 댐. 오월리와 신북면 용산리의 서원마을을 잇는 북한강(모진강)을 막았다. 춘천댐을 막아서 생긴 호수가 춘천호.
월송리(月松里)
마근골, 반송, 수정, 월촌리, 향천리를 병합하여 월촌리와 반송의 이름을 따서 월송리라 했다.
< 압실>
못둥지 동쪽에 있는 마을.
< 내골>
냇골. 월송리 냇가에 있는 마을.
< 막은골>
망골, 색동(塞洞). 반송 골짜기 위에 있는 마을.
< 반송>
반송(盤松). 큰 반송이 있는 마을. 반송저수지가 있어 반송 못이라고 부른다.
< 가제미>
가재미. 벌판말 북쪽에 있는 마을.
< 탑골>
탑이 있는 골마을.
< 하촌>
월송리 아래마을.
< 안말>
월송리 안쪽의 마을.
< 곽씨바웃골>
옛날 이곳에 곽(郭)씨가 살았다. 걱수바웃골이라고도 불렀다.
< 당두리>
월굴 근처에 있는 마을.
< 못둥지>
옛날에 못이 있었던 들.
< 벌판말>
월송리 중심에 있는 마을.
< 봉화산>
발판말 서남쪽에 있는 산.
< 삼승(三僧)>
당두리 건너편에 있는 마을.
< 상두개>
향천. 월송리에 있는 내.
< 수정리(水井里)>
수정. 월송리에 있는 마을.
< 아미산>
벌판말 남쪽에 있는 산.
< 안질목>
툇골과의 경계가 되는 등성이.
< 외자국고개>
툇골과의 경계가 있는 산.
< 월굴(月窟)>
수정리 서쪽에 있는 마을.
< 응골>
벌판말 동쪽에 있는 마을.
< 제당터>
산제당이 있던 터
< 흥녕골>
벌판말 서쪽에 있는 마을. 흥녕사 터가 있다.
방동리(芳洞里)
방골 또는 방동(芳洞)이라 했다.
< 홍골>
홍곡(洪谷), 홍꼴. 당버덩 북쪽에 있는 마을.
< 당미>
당산(唐山). 방동 서쪽에 있는 마을.
< 두둑부리>
두평(斗坪). 당버덩 동남쪽에 있는 마을. 두평저수지가 있다. 두평저수지는 두둑못이라고 부른다. 두둑부리 근처의 들을 두둑들.
< 양지말>
양지쪽에 있는 마을.
< 응달말>
응지쪽에 있는 마을.
< 샛골>
방동리 사이에 있는 마을.
< 가지곡(可芝谷)>
가주러니. 장절공묘 남쪽에 있는 골짜기.
< 고붓골>
장절공묘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 고깔바우>
종자리에 있는 바위.
< 대서비>
장절공묘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덧재>
방동리에 있는 재.
< 마산>
당버덩 서남쪽에 있는 산.
< 사그막골>
사기막이 있던 골짜기.
< 상방동(上芳洞)>
방동 위쪽에 있는 마을.
< 수리너미고개>
거현〔車峴〕. 옛날에 춘천 유수(留守)가 도임할때 수레를 타고 넘었다. 장절공묘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수리네미.
< 신선바우>
대서비에 있는 바위.
< 안장바우>
안장같이 생긴 바위.
< 알밋부리>
두둑들 건너편에 있는 들.
< 오얏골>
장절공묘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자작고개>
째작고개. 자작고개. 방동리에서 덕두원으로 통하는 고개.
< 장절공묘(壯節公墓)>
방동리에 있는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 장군의 묘. 우리나라 10대 명당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 장절공산>
장절공 신숭겸의 묘가 있는 산.
< 종자리>
장절공묘 서쪽에 있는 골짜기.
< 하방동(下芳洞)>
방동리의 아랫마을.
< 황골>
장절공묘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덕두원(德斗院)
조선시대 덕두원이 있었으므로 덕두원이라 했다. 한양과 춘천으로 통하는 길목이었다.
< 물개말>
물가에 있는 마을.
< 웃말>
웃쪽에 있는 마을.
< 주산(主山)>
덕두원 뒤 북쪽에 있는 산. 주산아래에 있는 마을.
< 고도트미>
덕두원 건너편에 있는 마을.
< 독가동(獨柯洞)>
독가맛골. 옛날에 독점이 있었다.
< 원당(元糖)>
원당리. 당집이 있던 마을.
< 등폭>
등선폭포가 있는 마을.
< 등선폭(登仙瀑)>
등선폭포. 경천폭(境川瀑)이라고 불렀다. 춘천에서 서울로 가는 국도변 북한강가 삼악산 계곡속에 있는 폭포. 높이가 5m 이며 부근에 기암괴석이 많아 관광지로 이름이 높다.
< 달개지고개>
가평군 가평면 개곡리의 달개지로 가는 고개.
< 명월리(明月里)>
덕두원 북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 싸리재고개>
사리현(沙里峴). 덕두원에 있는 고개.
< 삼악산(三岳山)>
삼학산(三鶴山 해발 654m)이라고도 불렀다. 덕두원 남쪽에 있는 명산. 세개의 봉우리로 이어져 삼악산이라 불리우며, 폭포 및 등산로로 유명하다.
< 신연강(新延江)>
소양강과 화천에서 흘러오는 북한강(모진강)이 만나는 지점부터 가평까지 이르는 사이의 강을 말한다. 예전 한양에서 춘천에 오기 위해서는 삼악산 석파령을 넘어 이 강을 건너야 했으므로 신연강 나루터가 춘천의 교통수단이었다.
< 통천굴(通天窟)>
삼악산 중턱에 있는 굴. 지름 2m, 높이 8m되는 굴이 하늘을 향해 뚫려있어 하늘로 통하는 굴이라고해 통천굴로 불린다. 상원사 좌측에 있다.
당림리(塘林里)
신당(神堂)을 모신 숲이 있었으므로 당숲 또는 당림(堂林)이라고 했다.
< 고역촌>
예전에 역(驛)이 있던 마을.
< 새말>
새로 생긴 마을.
< 안반지>
지형이 안반같이 생겼다.
< 당림농공단지>
당림리 435-1번지 일대에 자리잡고 있다.
< 당수반>
당숲안. 당숲 안쪽 마을.
< 배일골>
백일동(白日洞), 파일골. 당림 북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옛날 마귀할미가 베틀바우에서 소변을 보는데 그 오줌줄기가 강해서 골짜기가 패였다 한다.
< 면골>
마당(馬塘), 마당리, 당림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 현암리로 가는 고개. 말골고개가 있다. 싯골고개라고도 한다.
< 복사골>
안반지에 있는 골짜기.
< 삼박골 덕>
예전에 삼밭이 있었다.
< 소자골>
당숲 안에 있는 골짜기.
< 정짓골>
현 당림초등학교 뒤에 있는 골짜기.
< 아랫말>
아래쪽에 있는 마을.
< 큰골>
안반지에 있는 큰 골짜기.
< 중간말>
당림리 중간에 있는 마을.
안보리(安保里)
조선시대 안보역(安保驛)이 있었으므로 안보라 했다.
< 고역터>
고역촌(古驛村) 역말. 조선시대 안보역(安保驛)이 있었던 마을.
< 노동골(蘆洞谷)>
예전 갈밭이 있던 곳에 생긴 마을.
< 안비(雁飛)>
기러기 형상의 산이 있는 마을.
< 물개말>
물깨말. 북한강가에 있는 마을.
< 율장(栗長)>
뱀기리, 밤기리, 율장리. 탑골 북서쪽에 있는 마을. 율장교 밤기리다리가 있다.
< 강신터>
뱀기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
< 경강교(京江橋)>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에 있는 다리.
< 굴봉산>
뱀기리 서남쪽에 있는 산.
< 귀바우>
뱀기리 서남쪽에 있는 바우.
< 능산>
뱀기리 동북쪽에 있는 산.
< 대대울고개>
뱀기리 북쪽에 있는 고개.
< 덕거리>
뱀기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디령골>
뱀기리 북쪽에 있는 골짜기. 디렁바우가 있다.
< 비석바우>
뱀기리 동쪽에 있는 바위.
< 쇠파니고개>
뱀기리 동북쪽에 있는 고개.
< 승지골>
뱀기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안골>
뱀기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안말>
뱀기리 안쪽에 있는 마을.
< 오강재>
뱀기리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월두봉(月頭峰)>
멀뚜산. 탑골 서쪽에 있는 산. 높이가 854m.
< 줄길리( 吉里)>
주길리.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를 이루는 마을. 1907년 정미의병 때 춘천의병이 왜병과 여기서 싸웠다.
< 중간말>
중간에 있는 마을.
< 큰개울>
율장천(栗長天). 율장리 앞을 흐르는 내.
< 탑동(塔洞)>
탑골. 안보 서쪽에 있는 마을. 탑이 있었다.
9. 사북면(史北面)
신포리(新浦里)
논개 답포(畓浦)라고도 부른다. 갯가에 논이 많이 있다.
< 군량대(軍糧垈)>
군량터라고도 부른다. 구한말 때 군량을 쌓아둔 마을.
< 광산골>
광산이 있던 골짜기 마을.한치짓골에 있는 광산은 신포광산. 삼화광산(三和鑛山) 이라고 함.
< 건너들>
큰 개울 건너편에 있는 들.
< 걸기(傑基)>
신포리 서쪽에 있는 마을.
< 곡둔산>
신포리 북쪽에 있는 산.
< 도두니>
토둔리(土屯里). 언덕배기가 있는 마을.
< 말고개>
원평리의 마평(馬坪)으로 가는 고개.
< 문골>
신포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산골샘>
뼈 다친 데 치료하는 산골이 나는 샘.
< 살구골>
신포리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 서오지들>
서오지 앞에 있는 들.
< 석동거리>
세거리 길이 있는 마을.
< 섬바우>
큰걸기에 있는 바위.
< 성장군묘>
원댕이 뒷산에 있는 옛무덤. 여기서 옛 도자기가 나왔다 함.
< 승짓골>
신포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연내골>
여우내,연천동. 연적의 물이 흐르듯 물이 졸졸 흐른다. 연내골에서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개울을 연내개울.
< 연천교>
연내개울에 놓인 다리. 지금은 춘천호 물속에 잠겨버렸다.
< 원댕이 뒷산>
원평리 원댕이 뒤에 있는 산.
< 재주재>
신포리 서쪽에 있는 산.
< 지역골>
살구골 옆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귀양살이 하던 곳.
< 짝박골>
말고개 밑에 있는 골짜기.
< 통골>
짝박골 옆에 있는 골짜기.
< 한치짓골>
바른골 옆에 있는 골짜기. 바른골은 신포리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지촌리(芝村里)
서오지하촌(鋤吾芝下村)과 화천군 하서면(下西面)의 서오지상촌, 서오지외촌을 병합하여 지촌리라 한다.
< 상촌>
서오지상촌. 서오지 위쪽에 있는 마을.
< 양지말>
양지쪽에 있는 마을
< 챙벌>
챙평(昌坪). 창벌에 있는 마을. 창바우 밑에 있는 들도 챙벌, 차양평(遮陽坪)이라고 부른다.
< 차양바우>
챙바우. 밧서오지 동쪽에 있는 바우.
< 밧서지오>
받서오지. 서오지외촌. 서오지 밖에 있는 마을.
< 시장>
장이 서는 마을. 장이 있는 마을.
< 가마소>
지촌리에 있는 소.
< 궁산말(弓山村)>
궁산촌. 산이 궁(弓)자 모양으로 생겼다.
< 금산소>
호랑바우 위에 있는 소.
< 뒴박산>
산이 뒤웅박처럼 생겼다.
< 마구뚝>
북한강의 천연적인 뚝.
< 마산(馬山)>
말처럼 생긴 산.
< 만아버덩>
서오지 동남쪽에 있는 산.
< 미륵댕이>
예전에 미륵당이 있었다.
< 바리여울>
큰개울이 있는 여울.
< 비석거리>
비석이 있는 마을.
< 서오지상촌(西吾芝上村)>
상촌. 서오지외촌(西吾芝外村)은 밧(밭)서오지.
< 석금바우>
바위 빛이 누렇다.
< 석금소>
석금바위 밑에 있는 소.
< 대알미산>
대안미산(大雁尾山) 소안미산(작은 안미산)이 있다. 옛날 장사가 산안미에서 낳았다. 큰알미산.
< 어름치>
마을 뒤에 있는 바위.
< 어리고개>
마을 뒤에 있는 고개.
< 왜갈동산>
예부터 왜가리가 집을 지었다.
< 잔잘고개>
오탄리로 가는 고개. 잔잘고개 밑에 있는 골짜기는 잔잘골.
< 점말>
점촌(店村). 옹기점이 있던 마을.
오탄리(吾灘里)
오리동, 탄감리와 화천군 하서면(下西面) 서오지리(鋤吾芝里) 일부를 병합하여 오동리와 탄감리의 이름을 따서 오탄리라 했다.
< 배율골>
이곡(梨谷). 오동리 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 뒷말>
뒤쪽에 있는 마을.
< 마루터>
마루테미라 부른다. 마루턱이 있는 마을.
< 아랫말>
오탄리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소태벌>
소탯벌이라 부른다. 외창 동쪽에 있는 마을.
< 열개미>
탄감리(灘甘里)라고도 부른다. 오리동 서쪽에 있는 마을.
< 놀미>
떡우지 북서쪽에 있는 마을. 화천놀미로 가는 길가가 된다. 놀미골, 판미동(板尾洞)이라고도 부른다.
< 우뢰골>
우렛골, 우릿골 등으로도 발음한다. 산울림이 자주 일어난다.
< 명류동(鳴流洞)>
열개미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 광대봉>
오탄리에 있는 산.
< 구중골>
숯가마골이 있는 부근의 골짜기.
< 귀말>
오탄리에 있는 마을.
< 두짝골>
역골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 마늘고개>
마눌고개, 만월고개, 만월현(滿月峴)이라 부른다.
< 마산(馬山)>
말 같이 생겼다.
< 멱우지(覓友地)>
메구지. 열개미 북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 물꼬탄>
우뢰골에 딸린 골짜기.
< 방화기>
방화계(訪花溪), 폭포가 떨어져서 돌이 방아확 처럼 패었다.
< 배거리>
외창 뒷산.
< 삼밭골>
예전에 인삼밭이 있었다.
< 서직골>
오탄리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숯가마골>
전에 숯을 구웠다.
< 역골>
서직골 부근에 있는 골짜기.
< 오탄약수>
배거리에 있는 약물.
< 외창(外倉)>
옛날에 사탄헌(史呑縣)의 외창이 있었다.
< 잔잘고개>
지촌리와 오탄리 사이에 있는 고개.
< 잔등말>
산등이 있는 마을.
< 토보산(土堡山)>
임진왜란 때 토성을 쌓고 보루로 삼아 대처했다.
가일리(佳日里)
북한강가 골짜기에 있으므로 가일리라 했다.
< 벌말>
가일리 벌판에 있는 마을.
< 중간말>
가일리 중심부에 있는 마을.
< 중추골>
충충골. 안가일 부근에 있는 골짜기.
< 가일고개>
안가일 뒤에 있는 고개.
< 가일배터>
가일리에 있는 나루터.
< 구재바우>
가일리에 있는 바우.
< 까치여울>
북한강의 여울이었으나 춘천호 밑에 잠겼다.
< 안가일>
가일리 안쪽에 있는 마을. 내촌.
< 다릿골>
안가일 동쪽에 있는 골짜기.
< 대명탄>
대탄(大灘). 북한강가에 있는 여울. 춘천호 물속에 잠겼다.
< 매치고개>
화천군 하남면 가예리의 매치로 통하는 고개.
< 모래재>
잿마루에 모래가 많다.
< 싸리재>
싸리가 많은 재. 싸리재에 딸린 골짜기는 싸리골.
< 안골개울>
안골에 있는 개울.
< 역밭구미>
옛날 역(驛)에 딸렸던 밭.
< 은평니메>
안가일 부근에 있는 골짜기.
< 작은재골>
벌가일과 안가일 사이에 있는 골짜기.
< 절골>
1백여년 전 절이 있었던 골짜기.
< 정자터>
정자나무가 있던 골짜기.
< 지옷골>
가일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질갯등>
가일리 뒤에 있는 골짜기.
< 집뒤골>
가일리 뒤에 있는 골짜기.
< 천냇골>
안기일 부근에 있는 골짜기.
< 춘나무쥣골>
안가일 부근에 있는 골짜기.
< 큰재골>
벌가일과 안가일 사이에 있는 골짜기.
원평리(圓坪里)
원당리와 마평리를 병합하여 원평리라 했다.
< 밤나무골>
밤나무가 많이 있는 마을. 원댕이 뒤에 있는 마을.
< 원데이>
원댕이. 마평리 동쪽 북한강 가에 있는 마을.
< 마평(馬坪)>
마람또리라고 부른다. 장승터 서쪽에 있는 마을. 서울의 장수들이 말을 많이 매고 유숙했다.
< 응달말>
응달쪽에 있는 마을. 양지쪽에 있는 마을은 양짓골.
< 고시락고개>
고수령(高秀嶺). 원평리와 지암리 사이에 있는 고개. 고시락고개 밑에 있는 골짜기는 고시락골.
< 구명터>
사직골 들머리에 있는 터.
< 늪실>
예전에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춘천호 물속에 잠겼다.
< 말고개>
마현(馬峴). 신포리쪽으로 가는 고개.
< 모진교(母津橋)>
원래는 모진강(母津江·북한강)에 놓여 있었으므로 모진교라 불렀다. 춘천호에 잠겨버렸다. 햇나드리개울에 다리를 놓고 모진교라 부르고 있다.
< 모진나루>
모진강가에 잇던 나루터. 옛날에는 북한강으로 오르내리던 배가 드나들었다.
< 무시덕>
마람또리에 있는 버덩.
< 미약골>
작은 미약골과 큰 미약골로 나눈다.
< 베룻골>
밤나뭇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사자동(獅子洞)>
사직골이라 부른다. 원평리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산막골>
베룻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새터>
신대(新垈). 새로 생긴 마을.
< 엄방소>
북한강에 있던 옛 소.
< 왜덕>
마랑또리에 있는 버덩.
< 용숫골>
용소가 있던 골짜기.
< 장승대>
장승터. 원평리 어귀에 장승이 서 있었다.
< 지당골>
산제당이 있던 골짜기.
< 하대>
상대 바로 밑에 있는 버덩. 상대(버덩)도 있다.
< 할미바우>
마귀할미가 갖다 놓았다는 바위.
< 햇나드리개울>
원평리에서 나들이하는 길목에 있는 내.
< 형제바우>
바위 두개가 나란히 있다.
< 사자사터>
사직골(사자동)에 있던 절. 병자호란때 많은 사람들이 이 절에서 피낭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폐사되어 주춧돌만 남아 있다.
지암리(芝岩里)
지개미, 지가암(芝加岩)이라고도 불러왔다.
< 샛말>
간촌(間村). 지암리 중간에 있는 마을.
< 삼거리>
거리가 세갈래로 난 마을.
< 본마을>
지암리의 본 마을.
< 동가정이>
마장리 건너편에 있는 마을.
< 뒷말>
집다리 뒤에 잇는 마을.
< 마장리(馬場里)>
초신골 남쪽에 있는 마을. 마장이라고도 부른다.
< 강원도 자연휴양림>
지암리에 강원도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피서 관광객에게 명소가 되고 있다.
< 방확둔지(芳確屯地)>
여우내. 방아확처럼 우묵하게 되었다.
< 조계(鳥溪)>
집다리 서남쪽에 있는 마을.
< 집다리>
직교(直橋)라고 부른다. 지개미 서쪽으로 떨어져 있는 마을.
< 초신골>
초화동(草花洞). 집다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
< 탑두레기>
탑둔지, 탑두욱. 옛날에 탑이 있던 마을.
< 홍지고개>
홍적령(紅積嶺) 조계에서 경기도 가평군 북면으로 가는 고개.
고탄리(古呑里)
고룬이라고도 부른다.
< 응달말>
고룬 음지쪽에 있는 마을.
< 양지말>
고룬 양지쪽에 있는 마을.
< 적둔지골>
적두니. 양지울 동쪽에 있는 마을.
< 구만리골>
구마니. 고습 동남쪽에 있는 마을.
< 고룬고개>
새밑고개. 고개너머 신북읍 새밑으로 가는 고개.
< 고습(古習)>
고룬 서쪽에 있는 마을. 고습앞에 있는 산은 고습안산.
< 고탄개울>
고성리에서 시작하여 고탄리를 거쳐 북한강(춘천호)로 들어가는 내.
< 괴산>
고탄리에 있는 산. 고양이처럼 생겼다.
< 능장골>
예전에 지위가 높은 사람의 무덤이 있었다는 골짜기. 능장골이 있는 산은 능재.
< 다릿골고개>
가일리 다릿골로 가는 고개.
< 단배나무골>
단배나무(甘梨)가 있던 골짜기.
< 덕재>
높은 산에 있는 골짜기.
< 뒷버덩>
뒤편에 있는 버덩.
< 물먹는골>
나무꾼이 물을 먹는 샘이 있다는 골짜기.
< 방아다리>
지형이 방아의 다리처럼 생겼다.
< 범잡은골>
옛날에 범을 잡았다는 골짜기.
< 산제당골>
옛적에 산제당이 있던 골짜기.
< 설통골>
설통을 놓았던 골짜기.
< 성문안>
옛날의 성터안에 있는 산.
< 송암고개>
송암리로 가는 고개.
< 쇠파니>
옛날에 쇠를 파냈다는 골짜기.
< 용수암(龍首岩)>
용의 머리처럼 생긴 바위.
< 장군봉>
장군이 났다는 산.
< 장망터>
투구봉 부근에 있는 골짜기. 투구봉은 투구처럼 생긴 산.
< 절터>
성문안 고개에 있다. 예전에 절이 있던 골짜기.
< 쥐산>
적두니 서쪽에 있는 작은 산. 모양이 쥐처럼 생겼다.
< 진따배기>
예전에 군사가 진을 쳤다.
고성리(古城里)
양지말 양지쪽에 있는 마을.
< 도장골>
도장나무가 많았다.
< 새남골>
새남바위가 있는 마을. 사인암(舍人岩), 고성리에 있는 바위.
< 양통>
양달에 있는 마을.
< 가매소>
가마처럼 생겼다.
< 가재골>
고성리에 딸린 마을.
< 고룬고개>
샛밑고개. 고룬으로 가는 고개.
< 고탄상리(古呑上里)>
양통 북쪽에 있는 마을.
< 낭자바우>
쪽도리 바우 옆에 있는 바우.
< 늘재>
장댓골 부근에 있는 재.
< 덕박골>
고성리에 있는 마을.
< 덕재>
고성리에 있는 재.
< 도트매기>
절터 부근에 있는 골짜기.
< 둔덕갈래>
둔덕진 곳에 있는 들.
< 마귀할미 오줌자리>
마귀할미가 오줌을 누어서 파인 자리가 있는 바위.
< 매산이>
매부리처럼 산이 생겼다.
< 먼갯버덩>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갯가에 있는 들.
< 무당소>
무당이 물에 빠졌다는 소.
< 물방앗골>
옛날에 물방아가 있었던 골짜기.
< 반석개울>
반석에서 흐르는 개울.
< 베틀바우>
베틀처럼 생긴 바위.
< 쌍아우>
불알바우. 두 개가 나란히 있는 바위.
< 붓다리고개>
방아다리처럼 생긴 고개.
< 사이고개>
고성리에 있는 고개.
< 사여골>
고성리에 있는 골짜기.
< 석방구렁>
석봉 밑에 있는 골짜기. 돌로 이루워진 산은 석봉.
< 선들바위>
길가에 있는 바위. 길이가 18척 넓이가 5척이나 된다.
< 선돌안>
선돌 안쪽 마을.
< 수리봉>
독수리가 많이 산다.
< 약물바위>
큰 바위 밑에서 약물이 흐른다. 약물바위가 있는 골짜기는 약물바우구렁.
< 얏말>
고성리에 딸린 마을.
< 여우골>
여우가 믾았던 골짜기.
< 움텃골고개>
송암리 움텃골로 가는 고개.
< 장댓골>
불방앗골 부근에 있는 골짜기.
< 장수발자국>
바위에 발자국처럼 팬 곳이 있는데, 옛날 장수가 밟은 자국이라 한다.
< 정짓골>
정지소 뒤에 있는 골짜기. 고성리에 있는 소는 정지소.
< 주전자 꼭지바위>
주전자 꼭지처럼 생긴 바위.
< 지당골>
산제당이 있던 골짜기.
< 쪽소들>
쪽수들. 고성리에 있는 들.
< 칼새봉>
칼날처럼 생긴 바위.
< 큰고개>
새남바위고개, 태현(泰峴). 양통에서 제일 큰 고개.
< 학골>
학이 날았다는 골짜기.
< 황새버덩>
황새 목처럼 길게 생겼다.
송암리(松岩里)
솔과 바위가 많았으므로 송암(松岩)이라 했다.
< 뒷골>
송암리 뒤에 있는 마을.
< 재골>
승방골 스님들이 제를 올리던 골.
< 삽수리>
송암리 서쪽에 있는 마을.
< 상송암(上松岩)>
송암리 위쪽에 있는 마을.
< 가운데 구렁>
한가운데 있는 구렁.
< 개적심터>
가물때 개를 잡아서 물에 적시며 제사를 지내면 비가 온다고 했다.
< 갬벌>
뒷골 안산 밑에 있는 벌.
< 갯구덩>
싸리재 부근에 있는 골짜기.
< 귕골>
송암리에 있는 골짜기.
< 닥밭>
닥나무(楮田)밭이 있었다. 닥밭골 부근에 있는 벼랑은 닥밭골빙.
< 덕두리고개>
덕두현(德頭峴). 덕두리로 가는 고개.
< 도릿골>
돌아앉은 골짜기. 도릿골에 있는 벼랑을 도릿골빙.
< 돼지텃골>
산돼지가 많았다는 골짜기.
< 무넷빙>
촛대봉 건너편에 있는 벼랑.
< 사실골>
제당골 부근에 있는 골짜기.
< 삿갓봉>
산이 삿갓모양으로 생겼다.
< 송공지묏구렁>
송씨의 묘가 있는 골짜기. 송공지묘(宋公之墓)라 쓴 비석이 있다.
< 승방골>
승방곡(僧房谷). 상송암 동북쪽에 있는 마을. 승방이 있었다.
< 싸리아칫고개>
가일리로 가는 고개. 송암리에 있는 재는 싸리재.
< 양짓말>
양지쪽에 있는 마을. 응달말도 있다.
< 우물둔지>
우물 위편에 있는 언덕.
< 응애잇골>
송암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째기골>
귕골빙 옆에 있는 골짜기. 가일리쪽에 있는 산벼랑을 째기빙.
< 청강골>
정참판묘역 옆에 있는 골짜기.
< 촛대봉>
촛대처럼 삐죽한 봉우리.
< 형제봉>
두 봉우리가 형제처럼 서있다.
< 화채집골>
화채집(상여집)이 있던 골짜기.
인람리(仁嵐里)
인람이라고도 부른다.
< 점말>
점촌(店村). 예전에 옹기점이 있었다.
< 본부락>
본부가 되는 마을.
< 거리말>
춘천호 물속에 잠겼다
< 떼둔지>
사평리(沙平里), 춘천호 물밑에 잠겼다. 떼둔지다리(沙平橋)도 물밑에 잠겼다.
< 모진교(母津橋)>
신포리로 건너가는 다리. 춘천호 물밑에 잠겼다.
< 뭇푸레고개>
수청령(水淸嶺). 인람리 남쪽에 있는 고개.
< 삼막골>
인삼 캐는 사람의 막이 있었다.
< 서낭고개>
서낭이 있던 고개.
< 설들아웃골>
됨바웃골. 인람리에 있는 골짜기. 큰 바위가 있다.
< 융모번드기>
인람리에 있는 버덩.
< 인람배터>
인람나루터. 춘천호에 잠겼다.
10. 북산면(北山面)
내평리(內平里)
소양강(昭陽江)의 안쪽이 되므로 내평이라 했다.
< 백민터>
뱅민터 백민대(白民垈)라고도 부른다.
< 당골(唐谷)>
감북두루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불당이 있었다. 당골에 있는 개는 당골개.
< 감북두루>
내평리의 본마을. 앞에 큰 늪이 있었다. 본마을.감호동(鑑湖洞)이라고도 부른다.
< 고물개배미>
감북두루에 있는 논.
< 고일>
감북두루 남서쪽에 있는 마을.
< 내평나무>
내평리 앞에 있는 소양강의 나루. 물노리(勿老里)로 통한다.
< 대구배미>
감북두루에 있는 논. 덕배미도 있다.
< 뒷덕봉>
내평리에 있는 산.
< 망태봉>
망태바우가 있는 산봉우리. 망태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 매봉>
내평리에 있는 산. 모양이 매처럼 생겼다.
< 배소구미>
감북두루 서쪽에 있는 마을.
< 버들골>
유동(柳洞). 백민터 서북쪽에 있는 마을.
< 붕애뚝>
예전에 봉화를 놓던 산.
< 삼밭골>
200여년 전에 박제삼이라는 사람이 망태를 지고 살곳을 찾아와 보니 삼을 심어 질삼을 하면 잘 살수 있다 하여 삼을 많이 보급했다.
< 피란망태골>
피란을 했던 골짜기. 삼간바우가 있다.
< 상평(上坪)>
웃버덩. 내평리 위쪽에 있는 마을.
< 솔미정>
소나무 정자가 있던 곳.
< 송이잿봉>
송이(松 )가 많이 나는 산.
< 역밭두루>
예전에 역(驛)에 딸렸던 들.
< 안질재>
내평리에 있는 산.
< 장맛두루>
감북두루에 있는 들.
< 정개고개>
솔미정 부근에 있는 고개.
< 제비여울>
소양강에 있는 여울.
< 증멧등>
붕애뚝 건너편에 있는 산.
< 한터>
한대(汗垈· 漢垈). 내평 서북쪽에 있는 마을.
청평리
청평골 청평동(淸平洞). 오봉산(청평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이어진 계곡, 소양호에 들어가는 내를 청평내.
< 청평사(淸平寺)>
고려 광종24년(973년)에 선사(禪師) 영현(永賢)이 창건하고 백암선원(白岩禪院)이라했다. 문종22년(1068년)에 이의(李 )가 춘주도(春州道) 감창사(監倉使)가 되어 이 절을 중건하고 보현원(普賢院)이라 했다. 이의의 아들 이자현(李資玄)이 경운산(慶雲山)에 들어와서 청평사라 하고 중수하여 문수원(文殊院)이라 했다. 조선시대 명종(明宗)5년(1550년)에 보우(普雨)스님이 중수하여 경운 산만수성청평사(慶雲山萬壽聖淸平寺)라 했다. 6·25전쟁 직전에 불탔으며 새로 중건되었다. 그때의 건물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찰의 중문인 회전문(回轉門)이 보물(164호)로 지정되어 있다.
< 산막골>
산막동(山幕洞). 수나무정 동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산막이 있었다. 흔히 삼막골로 불리고 있다.
< 관터>
조선시대 부창역(富昌驛)이 있던 마을. 소양호에 잠겼다.
< 구성폭포(九聲瀑布)>
청평산 계곡에 있는 폭포. 아홉가지 소리가 난다.
< 말골>
마곡(馬谷) 청평산 밑에 있는 골짜기.
< 물어구>
수구동(水口洞). 청평내 어귀에 있던 마을. 지금은 소양호 물밑에 잠겼다.
< 배치고개>
백치령(白峙嶺). 흰자갈이 많았다.
< 부창(富昌)>
조선시대 부창역(富昌驛)이 있었다. 수무나무정 동쪽 소양강가에 있던 마을.
< 수용(水龍)골>
청평산 밑에 있는 골짜기.
< 영지(影池)>
청평사 아래에 있는 못.
< 오봉산(五峯山)>
봉우리가 5개라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경운산, 청평산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다.
< 하우고개>
하령(夏嶺). 청평골에서 부귀리의 무라니로 넘어가는 고개.
< 황골>
서낭재 밑에 있는 골짜기.
< 회전문(回轉門)>
청평사의 중문으로 사천왕을 모셨던것 같다. 보물 제164호로 지정되어 있다.
< 청평사배터>
청평골 입구 새로 생긴 배터.소양호에 뱃길이 생겨 소양댐 배터에서 청평사배터로 여객선, 유람선이 정기적으로 또는 수시로 다닌다.
부귀리(富貴里)
부귀터, 부귀대(富貴垈)라고도 부른다.
< 물안리(物安里)>
무라니라고도 부른다. 텃골 남쪽에 있는 마을.
< 간척고개>
건천령(乾川嶺). 부귀리에서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로 넘어가는 고개.
< 텃골>
대곡(垈谷). 부귀터 남쪽에 있는 마을.
< 아랫말>
부귀리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마을. 하촌(下村).
< 여우내>
여오천리(汝吾川里). 무라니 남동쪽 냇가에 있는 마을.
< 부청고개>
부창현, 부창고개. 부귀리와 청평리 사이에 있는 고개.
추곡리(楸谷里)
가랫골, 추곡(楸谷)이라고도 불렀다.
< 공골>
공굴, 공동(孔洞)이라 부른다. 가랫골 남쪽에 있는 마을.
< 새마을터>
새말터. 새로생긴 마을.
< 번지두루>
빈지평(彬地坪), 빈지두루. 공골 서쪽 골짜기 안에있는 마을.
< 응달말>
음지쪽에 있는 마을.
< 양지말>
양지쪽에 있는 마을.
< 약수골>
약수곡(藥水谷), 여동(汝洞) 약수터. 추곡약터에 있는 마을.
< 상추곡(上楸谷)>
웃가래골. 가랫골의 위쪽에 있는 마을. 중추곡(中楸谷)도 있다.
< 느티나무골>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
< 횟골>
회곡령(灰谷嶺) 밑에 있는 마을. 회가 많이 나는 회곡령, 횟골고개가 있다.
< 추곡령>
간척고개. 추곡리에서 화천군 간척으로 넘어가는 고개.
< 종노봉>
추곡리에 있는 산. 종노봉 밑에 있는 골짜기는 종늦골.
오항리(吾項里)
지형이 다람쥐의 목처럼 생겼으므로 다라메기 또는 오항이라 했다.
< 횟골>
회동(灰洞). 철리터 남동쪽에 있는 마을. 석회를 많이 만들었다.
< 천리터>
철리대, 천리대(泉李垈). 벌말 남동쪽에 있는 마을.
< 수청골>
수청동(水淸洞). 철리터 남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 벌말>
하촌(下村). 다라메기 동쪽 벌판에 있는 마을.
< 장재골>
장재동(長財洞). 다라메기 북서쪽에 있는 마을.
< 안말>
내촌(內村). 다라메기 안쪽에 있는 마을.
< 가맛골>
떡갈메기 부근에 있는 골짜기.
< 공골고개>
공골로 가는 고개.
< 능목고개>
판항령(板項嶺).
< 당골고개>
옛날에 당(堂)이 있었다.
< 떡갈메기>
덕갈현(德葛峴). 수청골 남동쪽에 있는 마을. 뒤에 큰고개가 있다.
< 두리봉>
등지봉 옆에 잇는 산. 수리봉 옆에 있는 산은 등지봉.
< 무라니고개>
부귀리의 무라니로 넘어가는 고개.
< 버들골>
버드나무가 많은 골짜기.
< 버실아우>
버실아우라는 바우 밑에 있는 여울.
< 샘골>
새무골. 좋은 샘이 있는 골짜기.
< 수리봉>
독수리처럼 생긴 산.
< 쇠자산>
벌말 부근에 있는 산.
< 오항( 項)>
오항리. 다라메기. 다람쥐메기.
< 쟁길골>
오항리에 있는 골짜기.
< 자지봉>
오항리에 있는 산. 자지(지초)가 있다.
< 종누봉>
수리봉 건너편에 있는 산.
< 피란바우>
밑에 굴이 있어 전란 때 피난을 했다.
물로리(勿老里)
무로골 또는 모로곡(無老谷)이라 불렀다.
< 삽다리골>
물로리의 마을. 삽다리고개. 삽다리골이 있다. 조교리로 가는 골짜기를 삽다리골짜기.
< 갈골>
갈곡(葛谷). 물로리 서쪽에 있는 마을.
< 양지말>
양지쪽에 있는 마을.
< 장촌말>
조선시대 장씨가 개간 했다는 마을.
< 절골>
하촌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사동(寺洞)이라고 부른다.
< 가락골>
배나무골 밑에 있는 골짜기.
< 가삽>
가협리(加峽里). 가리산 밑에 있는 마을.
< 고사리덕>
고사리가 많았다.
< 굼벙골>
물로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
< 당모루>
쉰동골 밑에 있는 마을.
< 물로리고개>
물로현 삽다리고개. 물로리에서 삽다리로 넘어가는 고개.
< 물어구>
아랫말, 수구동. 물로리 아래쪽 수구(水口)에 있던 마을.
< 부귀터>
물안에 딸린 마을.
< 오띠기>
소의동(小衣洞), 칠곡(漆谷). 무라니와 여오내 중간에 있는 마을.
< 쉰동골>
오십동(五十洞). 물로리에 있는 골짜기.
< 참배나무골>
진리동(眞梨洞). 굼벙골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큰참배나무가 있었다.
< 째작나무골>
자작나무가 많았던 마을.
< 평내고개>
평내현(平內峴). 홍천군 두촌면 평내로 넘어가는 고개.
조교리(照橋里)
중밭 조교리 중간에 있는 마을.
< 지장골>
지장곡(地長谷). 삽다리 동쪽에 있는 마을.
< 통골>
통곡(通谷). 외따른 곳에 있는 마을.
< 삼거리>
거리가 3갈래로 나 있다.
< 무애>
무애리(無涯里). 삽다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
< 바랑골고개>
바랑처럼 생긴 고개.
< 밤까시>
들어갈때는 한 골짜기이나 들어가면 밤까시처럼 골짜기가 많다.
< 삽다리>
삽교리(揷橋里).조교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
< 영무애>
작은 무애. 무애의 작은 마을.
< 오봉산>
조교리에 있는 산. 다섯 봉오리로 되어 있다.
< 용소나루터>
용소메기에서 조교리로 건너다니는 나루터.
< 이상수(梨上守)>
창말 서남쪽에 있는 마을.
< 창말>
창촌(倉村). 옛날 춘천부의 북사창(北社倉)이 있던 마을.
< 홍천현>
홍천고개. 홍천으로 가는 고개.
대동리(大同里)
한골, 한꼴 또는 대동이라 했다.
< 동막골>
동막곡(東幕谷). 아랫말 동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 개여울>
견탄(犬灘), 포탄(浦灘). 아랫말 남쪽 소양강 가에 있는 마을.
< 대동(大洞)>
대동리. 대동령(大同嶺), 대동리하촌(大同里下村), 대동재(大同峙)가 있다. 한골고개.
< 덩무개>
배나무골 부근에 있는 골짜기.
< 둔지봉>
대동리에 있는 산.
< 웃말>
상촌(上村). 아랫말(下村)도 있다.
< 이상시>
배나무골 옆에 있는 골짜기.
< 통골>
이개울 부근에 있는 골짜기.
< 한골고개>
한골에서 수리산쪽으로 가는 고개. 대동령, 대동재. 대동치.
< 한신박골>
통골 부근에 있는 골짜기.
대곡리(垈谷里)
벌판에 있으므로 터일 또는 대곡(垈谷)이라 했다.
< 더운샘골>
더운샘 온천(溫泉). 터일 동쪽에 있는 마을.
< 계명산(鷄鳴山)>
터일동쪽에 있는 산. 높이 764m. 이 산에서 닭이 울었다.
< 고패서덕>
동대문 밖에서 제일 컸다는 너설.
< 다름다리>
월교(月橋). 터일 북쪽에 있는 마을.
< 명오지(明吾地)>
다름다리 동쪽 소양강가에 있는 마을.
< 무쇠말봉>
무쇠 말뚝을 박았던 산.
< 밤무니>
율문리(栗門里). 터일남쪽에 있는 마을.
< 장막골>
종묘산 밑에 있는 골짜기.
< 참대바우>
북대바우. 모양이 대처럼 생겼다.
< 포아리>
폭포가 있는 개울.
< 화령덕이>
대곡리에 있는 골짜기.
추전리(楸田里)
< 안모래골>
내사전(內沙田). 모래밭 안쪽에 있는 마을.
< 가랫골>
추전리와 추곡리에 걸쳐있는 마을.
< 가랫양지>
추양(楸陽). 가랫골 양지쪽 마을.
< 거무성>
천연기념물 제 75호인 장수하늘소가 서식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멸종 되었다.
< 냉정터>
추전리에 있는 폭포.
< 동동산(洞東山)>
추전리 가운데 있는 작은 산.
< 마산>
말등처럼 생긴 산.
< 바깥모래밭>
외사전(外沙田). 모래밭 바깥에 있는 마을.
< 뒷골>
추전리 뒤에 있는 골짜기.
< 반쟁이>
뒷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용늪>
용소(龍沼), 용소항(龍沼項), 용소메기가 있다. 소양강가에 있던 늪.
< 운수현(雲水峴)>
양구군 운수골로 가는 고개.
< 행경판>
추전리 북쪽에 있는 버덩.
< 황새봉>
황새처럼 생긴 봉우리.
11. 중앙동(中央洞)
옥천동(玉泉洞)
아골말, 아동, 단양정이라고도 불렀다. 본래 춘천의 중심지 격이다. 춘천도호부의 관아가 있었으므로 아골말, 또는 아동(衙洞)이라고 불렀다. 아동, 아골말의 지명은 전국적으로 관아가 있는 지역이면 모두 그렇게 불렀다. 대성정(교동), 봉의정(봉의동), 단양정(丹陽町)으로 정했다. 1946년 왜식 동명을 변경할 때 옥천동으로 고쳤다.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옥천동 102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가족계획협회의 명칭이 2001.4월에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로 바뀜
< 강원도교육연구원>
춘천시 옥천동 25번지 도교육청이 자리잡았다가 1991년 지방자치제 실시로 강원도교육청이 사농동으로 이전하고 강원도교육연구원이 자리잡았다.
< 춘천시청>
춘천시 옥천동 111번지에 위치. 춘천시의 살림살이를 맡아보는 시민의 집이다. ㄷ자형으로 건물을 배치했고 시청광장을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지하주차장을 건설, 유료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 춘천문화원>
춘천시 옥천동 107번지에 있다. 향토문화의 산실이다.
< 한림대학교>
춘천시 옥천동 1번지에 위치. 1962년 성심여대가 봉의산록을 깎아 대학을 설립했다. 한림대학교가 성심여대를 인수하고 한림대학교를 설립하여 전국적으로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특히 의과대학을 설립하고 성심병원을 세워 춘천지역의 의대시대와 대학병원 시대를 열었다.
< 아골말>
아골마을. 아동이 변해서 옥천동이 되었다.
< 아동(衙洞)>
아골말. 관아가 있었던 마을.
< 혈거유지>
선사시대인 신석기시대 혈거주거지(穴居住居地=굴을 파고 살던 곳)로서 봉의산(鳳儀山) 중턱에 있다. (한림대학교 뒷편 운동장)
요선동(要仙洞)
요선당리(要仙堂里). 춘천읍의 요선당(要仙堂)이 있었으므로 요선당리라 했다. 1939년 읍제 실시에 의하여 화원정(花園町) 일정목(一丁目)이라 했다가 1946년 왜식 동명변경에 의해 요선동으로 고쳤다.
< 구릉고개>
요선동에서 소양로 2가로 가는 고개.
< 문소각터(聞韶閣址)>
요선당 동쪽에 있던 정각터. 조선 인조24년(1646년)에 춘천도호부사 엄황(嚴滉)이 세우고 이민구(李敏求)가 글을지었다. 홍봉조(洪鳳祚)가 시를 지어 찬양했다. 문루(門樓)인 조양루(朝陽樓)만 남았다가 우두산으로 옮겨졌고, 문소각은 그 이름만 전하고 있다.
< 새거리>
6·25한국전쟁때 요선동은 불타고 폐허화 되었다. 한국전쟁 후에 새로 생긴 요선동의 마을을 새거리라고 했다.
< 요선당리(要仙堂里)>
요선당이 있는 마을을 요선당리라고 불렀다. 요선당리가 변해서 요선동이 되었다.
< 요선당터(要仙堂址)>
요선당은 조선선조 6년(1573년) 춘천 도호부사 성의국(成義國)이 세웠다. 유경종(柳慶宗)이 글을 썼고 박태보(朴泰輔)와 오도일(吳道一)이 시를 지어 찬양했다. 선조 15년 부사 심흥겸(沈興謙)이 단청을 해서 요선당(要仙堂)이라고 이름붙였다.
< 요선터널지(址)>
도심속의 유일한 터널이 있었다.
< 요선시장>
6·25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요선동이 재건될때 요선동 시장이 크게 번창했다.
봉의동(鳳儀洞)
춘천도호부 아동리(衙洞里)의 일부였다. 1939년 아동리를 갈라서 봉의정(鳳儀町)이라 했다. 봉의산 밑에 있으므로 봉의동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1946년 외식으로 동명 변경때 정(町)을 동(洞)으로 고쳤다.
< 강원도청>
춘천시 봉의동 15번지에 위치. 강원도의 행정을 총관장하는 중심이 되고 있다. 조선 고종 33년(1896년) 원주의 감영이 춘천으로 옮겨왔고, 춘천은 관찰부의 소재지가 되었다. 춘천부에 관찰부를 없애고 도청을 두면서 도청소재지가 된 것은 융희4년(1910년)이었다. 일제가 강제로 우리나라를 침탈했던 해가 된다. 조선왕조의 멸망과 함께 일제 식민지의 암흑기로 접어 들면서 춘천의 도청은 일제식민주의의 본산이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우리나라는 독립이 되었으며 불행하게도 남북이 분단되었다. 춘천의 도청은 38선 이남의 행정구역으로 축소되었고 6·25한국전쟁 이후 수복이 되면서 38선은 분단때보다는 수복된 지역만큼 행정구역이 넓어졌다. 6·25 한국전쟁 이후 강원도청건물은 새로 세워졌다. 이궁(離宮) 건물과 관찰부(觀察府) 건물은 흔적도 남지 않았다.
< 강원도의회>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강원도청 구내에 새로 건물을 세웠다. 강원도의회 건물은 강원도민 의사의 총집결장이 되고 있다.
< 강원도청 구관지(舊冠址)>
원주에서 강원관찰부가 춘천으로 옮겨오기 전 춘천도호부 관아가 있던 자리에 현재 강원도청이 들어섰다.
< 봉의산(鳳儀山)>
춘천의 진산(鎭山), 해발 301.5m. 산 남쪽에는 강원도청이 있고 동남쪽에는 한림대학교가 있다. 북쪽에는 소양강이 흐른다.
< 춘천세종호텔>
춘천시 봉의동산 1번지에 있다. 춘천에서 가장 오래되고 이름있는 호텔이다. 도청뒤, 봉의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어 춘천시를 굽어볼 수 있어 관망이 좋다.
< 선화당(宣化堂)>
고종(高宗)때 강원도청 즉 강원감영이 원주에서 춘천으로 이전하고 감사의 사실로 쓰던 집이라고 한다. 현 도청구내 북쪽 뒤편에 자리하였으나 지금은 흔적도 없다.
< 봉의루(鳳儀樓)>
객사(客舍) 북쪽에 있던 누정(樓亭)으로 유수(留守= 도읍을 다스리던 정이품 벼슬)가 있는 도내 각 고을마다 관청안에 있던 누대(樓臺)가 객사(客舍)와 더불어 있었는데 춘천은 봉의루(鳳儀樓)가 여기에 해당된다.
< 수춘관(壽春館)>
수춘관(壽春館)은 춘천도호부(春川都護府)의 객사로서 6·25전 춘천경찰서, 지금의 강원도청 주차장자리에 있었으며 여기는 원래 세곡을 쌓아두던 사창청(司倉廳) 자리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선조(宣組)34년 부사 허상(府使 許 )이 객사(客舍)를 건립하고 수춘관(壽春館)으로 현판했다. 구한말에 큰 화재로 소실되어 흔적도 없어졌다.
< 위봉문(威鳳門)>
1646년 부사 엄황(府使 嚴滉)이 문소각(聞韶閣)을 세울때 건립한 것으로 1890년 유수(留守) 민두호(閔斗鎬)가 확장 개축하였는데 1916년 본 건물이 소실되므로 조양루(朝陽樓)와 위봉문(威鳳門)만 남아 조양루(朝陽樓)는 우두산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위봉문을 이전하였다가 1955년 다시 도청뒤로 이전했었으며 1972년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겼다.
< 잣고개>
봉의동에 잣고개가 있었다. 교동에서 후평동으로 넘어가는 지금의 한림대 자리가 바로 잣고개였다.
< 머수물재(梧植嶺)>
도청 뒷쪽에서 소양로로 넘어가는 고개를 머수 물재, 오식령(梧植嶺)이라 불렀다.
<중앙로1가(中央路一街)>
중앙로라는 현대식 이름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냥 허문, 허문리라고 불렀다. 춘천의 중앙이 되므로 중앙로 1가로 했다.
< 강원일보사>
중앙로1가 53번지에 위치. 1945년 9월 5일 창립, 10월 24일 창간호를 발행했다.
< 지하상가>
중앙로 로타리를 중심으로 남쪽으로 육림극장 앞, 서쪽으로 중앙시장, 서쪽으로 인성병원, 북쪽으로 한국은행 앞까지 지하공사를 했다. 만남의 광장등 번화가 가 되고있다.
< 대한결핵협회 강원지부>
중앙로 25번지에 위치. 강원도내 결핵퇴치사업을 위해 세워졌다.
< 한국은행 춘천지점>
춘천시 중앙로1가 60의 1에 위치. 춘천경찰서가 있던 자리에 새로 건물을 지었다.
< 보훈회관>
중앙로1가 78번지에 위치. 보훈회관에는 상이군경 강원지부, 전몰군경유족회강원지회, 전몰군경미망인회강원지회가 있다.
< 농협중앙회 춘천지부>
중앙로1가 73번지에 위치. 1994년 1월 낡은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세웠다.
< 대한적십자사 강원지사>
중앙로1가45번지에 위치. 6·25동란 직후 세웠던 건물을 헐고 새로 지었다. 적십자혈액원도 적십자사 건물안에 있다.
< 제일은행 춘천지점>
중앙로1가 47번지에 위치. 새로 건물을 세웠다. 중앙로 로타리에서 도청으로 올라가는 오른편 관문자리다.
< 서울은행 춘천지점>
중앙로1가 83번지에 위치. 춘천시청과 피카디리극장, 춘천여고로 통하는 도로의 관문이다.
< 중앙로 로터리>
6·25한국전쟁으로 폐허화된 춘천의 도심거리가 재건되면서 춘천의 가장 번화한 중앙로터리가 만들어졌다,
< 허문리(虛門里)>
허문리가 변하여 중앙로1가가 되었다. 허문(虛門), 허문(許文)이라고도 불렀다. 지금은 흔적도 없어졌다.
12. 교동(校洞)
교 동(校洞)
향교골, 아동리, 아동이라고 불렀다.
< 말탕개미(馬乘監)>
마승감(馬乘監), 마현(馬峴)을 말탕개미라고 불렀다. 향교끝에 있는 마을이다. 향교앞을 지나갈때는 반드시 행인은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 향교 앞으로 나 있던 고갯길은 마현, 말고개라고 불렀는데 이 또한 향교앞으로 말을 타고 가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말고개 마현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 백고개>
교동에서 옥천동으로 나가는 고개.
< 아동리(衙洞里)>
아동(衙洞). 아동리는 고을의 아전들이 사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관아의 관리들이 살던 마을이라는 뜻도 있다. 이 아동리가 교동에 편입되었다.
< 유봉여자고등학교>
교동 93의 37번지에 위치. 옛 강원고등학교와 마주 보고 있고 한림대학교의 후문으로 통한다. 전국에 여고부 배구로 한때 명성을 떨쳤다.
< 지계사 호성비(池繼泗 護聖碑)>
조선 인조(仁組)14년(1636년) 병자호란때 교생 지계사(池繼泗)가 대성전(大成殿)에 봉안한 제위비(諸位碑)를 대룡산(大龍山)에 옮겼다가 평정이 된 후 무사히 제위치에 옮겨 받들어 모신 사실을 기록하여(1682년) 임술에 부사 이정현(李廷顯)이 건립한 것이다.
< 춘천문묘(春川文廟), 춘천향교>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갑오년 부사 서인원(徐仁元)이 중건하고 신축년에 허상(許 )이 명륜당(明倫堂)을 중건하였으며 갑신년에는 이원엽(李元燁)이 다시 중수하고 인조(仁組)때 부사 김계수(府使 金系洙)가 각각 중수 하였다.
< 춘천여자고등학교>
춘천시 교동 36번지에 위치. 강원도내 대표적인 여성교육기관이었다. 학교의 교화인 백합꽃나무가 운동장 한가운데 서있어 여성교육의 전당의 표상이 되고 있다.
< 향교골>
교동을 향교골이라고 부른다.
< 한우물>
교동에 있는 큰우물. 도시가 개발되고 수도물이 공급되면서 한우물은 폐쇄되었다.
13. 조운동(朝雲洞)
운교동(雲橋洞)
구름다리를 한자로 표기해서 운교라 불렀다.
< 구렁다리>
구룡다리, 구름다리라고도 부른다. 운교동과 효자동 사이를 흐르는 운교천에 다리가 놓여 있었다. 지금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개울도 보이지 않고 다리도 없어졌다.
< 도수장걸>
도수장거리. 도살장이 있었던 마을.
< 삼거리>
길이 세 갈래로 갈라진 마을.
< 운교동 로터리>
운교동에 삼거리가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운교동로터리가 형성되어 있다.
< 조흥은행>
운교동 72의 3번지에 위치. 여러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다.
조양동(朝陽洞)
< 대파니>
대파니가 대판리로 변하고 다시 조양동으로 변했다.
< 새명동(新明洞)>
조양동의 새거리를 새명동으로 이름을 짓고 상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새명동 주변에는 먹거리와 의류업체가 번창하고 있다.
< 미가리고개>
홍천으로 가는 고개. 조양동에서 홍천 원주방면으로 가는 고개를 미가리고개라고 불렀다.
14. 약사동(藥司洞)
약사동(藥司洞)
조선시대에는 역(驛), 원(院)의 제도가 있어서 역은 역마가 머물던 곳이고, 원은 주막이 있던 곳이다. 서면 덕두원(德斗院)이 곧 약사원과 같은 기능을 가졌다. 약사원이 있었으므로 약사원이라고 불렀다.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지명으로 고칠때 약사동으로 정했다.
< 약사교(藥司橋)>
약사동 앞에 있는 다리. 운교, 효자동의 어름이 되는 곳에 1960년 3월 10일 준공을 한 다리. 약사교는 원래 나무다리로 길게 놓여 있었다.
< 약사리고개>
약사동에서 죽림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 춘천교육청>
약사동 2의2번지에 위치. 춘천시내 초·중등 교육을 관장하는 기관.
< 강원평생교육정보관>
약사동 32번지에 위치. 강원교육연구원이었던 건물을 개조해서 중앙도서관으로 활용하다가 강원평생교육원으로 바뀜.
< 춘천형무소터>
약사동에는 춘천형무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형무소가 동내면 신촌리 지역으로 옮겨간 후에 형무소건물을 허물고 이곳에 약사아파트를 지었다. 지금은 아파트촌으로 변했다.
15. 죽림동(竹林洞)
죽림동(竹林洞)
개못안. 개못의 안쪽이 되므로 개못안이라고 했다. 연못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가연리(佳淵里)라 했다. 또 연못 주변에는 신우대나무가 많이 자랐고 부근 일대가 숲을 이루고 있었으므로 수평말이라고 불렀다. 개못안}}개못안이 가연리(假淵里), 가연리는 다시 죽림동이 되었다.
< 수평말>
지금의 죽림동 천주교성당 부근 일대를 가리키는 옛이름이다. 숲을 이루고 있었으므로 수평마을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지금도 천주교 성당 부근에 숲이 있고 고목이 남아 있다.
< 죽림동성당>
6·25한국전쟁때 춘천시가지는 거의 폐허화되었다. 죽림동 성당(천주교회)는 유일하게 남아서 폭격을 받지않은 건물로서의 신비감을 더해주었다.
< 약사리고개>
약사리에서 죽림동으로 통하는 고개를 약사리고개라고 불렀다. 지금은 죽림동쪽에서 약사동으로 통할 때는 죽림동고개라고 부르기도 한다.
< 춘천시의회>
죽림동 5-1번지 소재. 춘천시로 통합전 춘천군 청사로(예전 춘천지방법원과 검찰청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춘천시의회에서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중앙로2가(中央路2街)
< 가연리(佳淵里)>
가연(佳淵)이라는 연못에서 유래했다. 가연리는 다시 중앙로2가로 되었다.
< 시장고개>
중앙시장으로 통하는 고개를 시장고개라고 부른다.
< 제일공설시장·제일백화점>
죽림동에 있는 첫째되는 시장이라는 뜻에서 제일공설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죽림동 천주교 성당 바로 아래 자리잡고 있으며 현대식 시장 개설을 갖추고 제일백화점으로 불리고 있다.
< 중앙시장>
춘천의 가장 중앙에 있는 시장이라 해서 중앙시장이라 부른다.
< 한일은행 춘천지점>
중앙로2가 96번지에 위치. 중앙로 로터리의 서남편에 위치하고 있어서 시청쪽에서 보는 전망이 좋다.
< 한국투자신탁 춘천지점>
중앙로2가 75번지에 위치. 투자신탁점포로는 춘천에 가장 먼저 설치되었다.
중앙로3가(中央路3街)
가연(可淵) 가연(可淵)이라고도 했다. 개못이라는 못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연못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가연리(可淵里) 가연, 개못 또는 가연이라고 불렀다. 우리지명으로 고칠때 중앙로(中央路)의 2가, 3가, 죽림동 낙원동으로 정했다.
< 개못>
한자로 표기해서 개못은 가연(佳淵), 가연(可淵)이 되었다. 혹은 견연(犬淵)이라고 브르기도 했다.
< 중앙도서관 분관>
중앙로3가 25의 35번지에 위치. 간호학교가 간호전문대학으로 되었었고, 간호전문대학 자리가 다시 강원도연구원이 되었다가 지금은 중앙도서관 분관이 되었다.
< 춘천교육청>
중앙로3가 74의 5번지에 위치. 춘천시와 춘천군이 분리되면서 춘천교육청이 생겼다.
< 농협 강원지역본부>
중앙로3가 61번지에 위치. 강원도내 농협의 총본산.
16. 소락동(昭樂洞)
소양로3가(昭陽路3街)
1939년 춘천 읍제 실시에 따라 사창리(司倉里) 일부를 갈라서 소양통3정목(昭陽通三丁目)이라 했다.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지명으로 고칠 때 소양로3가로 정했다.
< 기와집골>
부자들이 많이 살아서 기와집이 많았다. 기와집이 많았다고 해서 기와집골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 백석동(百石洞)>
기와집골을 백석동이라고 불렀다.
< 사창고개>
소양로3가와 낙원동 중간에 있는 고개. 옛날에 사창(司倉) 있었으므로 사창고개라고 불렀다.
낙원동(樂園洞)
1939년 춘천읍제 실시에 따라 가연리(佳淵里)의 일부를 갈라서 화원정이정목(花園町二丁目)이라 했다.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 이름으로 고칠 때 낙원동으로 정했다. 낙원동이라는 이름은 1946년 새로 생겨난 이름이다.
< 가연리(佳淵里)>
중앙로3가와 이어져 있는 가연리. 가연리의 일부가 갈라져서 낙원동이 되었으므로 노년층에서는 지금도 낙원동을연리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 미미기고개>
소양로3가로 가는 고개. 약사고개와 함께 춘천시내에서는 이름이 나있던 고개였다.
< 사창고개>
낙원동과 소양로3가 중간에 있는 고개.
< 송장고개>
옛날에 상여가 이 고개로만 통과하였다고 한다. 상여지나가는 고개라 해서 송장고개로 불리어졌다.
< 성수고등학교>
낙원동 45번지에 위치. 6·25한국전쟁이후에 설립되었다. 성수여자상업고등학교도 같은 구내에 있다.
< KBS춘천방송총국>
낙원동86-1에 위치. 강원도내 KBS방송국의 총 본산.
17. 근화동(槿花洞)
근화동(槿花洞)
무궁화가 많이 있던 지역이라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갯대>
근화동 당간지주(幢竿支柱)를 갯대라고 불렀다. 소양강가에 있는 이 당간지주는 보물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 갯대배기>
소양강가에 있는 들을 갯대배기라 불렀다. 즉 당간지주가 서 있는 들이었으므로 갯대배기라 했다.
< 강변대로>
춘천역과 춘천시외버스터미널을 연결하는 도로로서 온의동과 남춘천을 연결하는 도로와 이어지는 강변대로(江邊大路) 35m폭으로 개설된 도로.
< 공지교(孔之橋)>
공지천에 있는 다리. 6·25한국전쟁 직후에 공지천에 다리를 놓았다. 지금은 그때의 다리 교각위에 팔각정을 세웠으며, 새로운 다리를 놓고 있다. 닥개 근화동 앞에 있던 개. 의암호가 생긴 이후에는 의암호 밑으로 잠겨버렸다.
< 대바지>
옛날에 대밭이 있었으므로 대바지라 했다. 한자로 죽전리(竹田里)라 했다.
< 뚝너머>
소양강이 범람하면 춘천읍내로 물이 넘쳐 들어오므로 뚝을 쌓았다. 뚝너머의 마을을 그냥 뚝너머로 불렀다.
< 말무덤터>
말이 죽어서 물었다는 터. 실제로 말이 죽어서 물었던 터가 아니라 옛무덤(고총)이 있었으므로 말무덤이라고 불렀다. 중도의 적석총도 말무덤이라고 부른것과 비슷한 이름이다.
< 명당구미>
아래닥개와 웃닥개 중간에 있던 소. 소양강이 근화동앞으로 흐르면서 물구비를 만들었는데 그 둑 안쪽으로 소가 있었다. 춘천폐수처리장 윗쪽에 있었다.
< 석동거리>
근화동 앞에 있던 들.
< 성뚝>
소양강 물이 읍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뚝.
< 속갯보>
근화동 들 복판에 있던 보.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보가 만들어졌었다.
< 아래닥개>
닥개 아래쪽에 있는 개.
< 앞두루>
앞두루가 근화동으로 이름이 변했다.
< 왜둔지(瓦屯地)>
진흙으로 된 들.
< 전평리(前坪里)>
순수한 우리 이름인 앞두루가 전평리(한자식)로 변화는 과정을 보여주는 지명이다.
< 춘천역>
경춘선(京春線)의 기차정거장. 춘천의 시발역이며 종착역.
< 근화동 절터>
소양강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보물(寶物) 제76호 당간지주와 석등(石燈)의 지대석(地臺石)으로 보이는 조각이 연화문대석(蓮花紋臺石)이 이곳에 있어 옛날부터 절터 였음을 말해줄뿐 별다른 흔적은 찾을 수 없으나 이 주변에 지하에서 옛날기와편이 나왔다고 한다.
< 춘천주한미군부대캠페이지>
6·25한국전쟁 직후부터 춘천은 군사요 충지가 되어 왔다. 1·4후퇴 이후 전선이 교착되고 수복지가 확정 되면서 춘천에는 주한미군부대가 근화동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주한미군캠페이지는 한때 유도탄부대가 있었고 헬리콥터부대도 배치되었다. 캠페이지 안에는 비행장이 있어서 춘천의 항공기지를 상징한다. 중국비행기가 비상착륙, 중국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일반에서는 그냥 미군부대라고 부른다.
< 할미바우>
소양강 할미여울 뒤에있는 바위.
< 할미여울>
소양강에 있는 여울.
< 이디오피아 참전기념비>
6·25한국전에 참전한 유엔의 우방 16개국중 주로 화천의 산양리, 인제의 문등리와 철원, 김화등지에서 253회의 전투를 치른 이디오피아군(1개대대)의 참전 기념과 침략자에 대한 자유 우방의 승리를 상징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18. 소양동(昭陽洞)
소양동(昭陽洞)
< 칠층석탑(고려탑)>
7층으로 된 돌탑. 이 일대에 고려시대 이래 많은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오나 이석탑이 언제 어느 사찰에 속했던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 구렁고개>
소양로2가에서 요선동으로 가는 고개.
< 기와집골>
부자들이 많이 살았으므로 자연히 많은 기와집이 세워졌다. 기와집만 즐비했으므로 기와집골이라고 불렀다.
< 백석동(百石洞)>
백석골이 처음에 형성되가는 앞두루였다. 앞두루에 농토가 많았으므로 거기에 부자마을이 생겼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나자 부자들은 기와집골로 하나둘 옮겼도 백석골에는 소작농이 살게 되었다. 농토의 일부는 과수원과 뽕밭도 들어서게 되었다. 후대에는 부자들이 살던 기와집골이 백석동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 모수물재>
모수물 근처에 있는 재. 소양로1가 2가의 중간이 된다.
< 비각거리>
비각이 있던 마을.
< 아랫비각거리>
비각거리 아래쪽에 있는 마을.
< 탑거리>
고려시대 칠층석탑이 있는 거리를 탑거라고 한다.
< 웃비각거리>
비각거리를 중심으로 위쪽에 형성되었던 마을이다.
< 주막거리>
주막이 있었던 마을. 서부시장 부근.
19. 호반동(湖畔洞)
소양로1가(昭陽路1街)
소양강이라는 명칭의 1번지라 할 수 있는 지역이다. 소양1교, 소양2교, 소양정, 소양강창 등의 이름이 모두 소양강에 유래했고 소양로1가에 소양이라는 이름이 집중되어 있다.
< 구렁고개>
요선동으로 가는 고개. 구룡고개라고도 부른다.
< 댓골>
대나무가 있던 골짜기.
< 모수물>
봉의산 밑에 있는 샘. 춘천에서는 가장 좋다는 샘.
< 모수물재>
모수물 근처에 있는 재. 소양로1가와 소양로2가의 중간에 있다.
< 배나무골>
봉의산에 있는 골짜기.
< 배터기>
소양강의 나룻배가 닿던 곳.
< 범바웃골>
봉의산의 골짜기.
< 석왕사>
태고종 계통의 절로 시내에서 가까운 절이다.
< 소양1교>
소양강에 놓은 첫째 다리. 양구, 화천으로 통한다.
< 소양2교>
소양1교 아래쪽에 있는 다리.
< 소양정(昭陽亭)>
봉의산 북쪽 기슭 소양강가에 있던 정자.
< 약수터>
봉의산에 좋은 약수가 있는 골짜기.
< 절터>
옛날에 절이 있던 곳.
< 추안텃골>
원수골 봉의산에 있는 골짜기.
< 전계심 묘비>
춘천절기(春川節妓) 전계심(全桂心)의 묘는 소양로1가 봉의산록 기슭이었으나 소양로1가와 후평동을 연결하는 도로를 낼때 파헤쳐져 없어졌다. 「춘천절기전계심묘」라는 묘비만 봉의산 뒷편에 옮겨져 있다.
< 자유수호탑>
6·25한국전쟁때 소양강전투의 전적을 기념하여 착공한 탑이다.
< 소양교>
소양2교 윗쪽에 소양2교와 쌍다리로 1995년 준공했다. 소양2교의 교통량을 많이 흡수했다. 춘천의 새로운 명물로 등장했다.
20. 후평1동(後坪1洞)
후평1동(後坪1洞)
뒷두루, 뒷뜰, 후평이라고 불렀다. 봉의산 뒤쪽이 되고 또 읍내에서 뒤쪽이 되므로 뒷두루, 뒷뜰, 후평(後坪)이라고 불렀다.
< 건짓모리>
뒷두루에 있는 마을.
< 관꼴>
뒷두루에 있는 골짜기.
< 동광(東光)>
후평리에 있는 마을.
< 동전리(東田里)>
물개울. 동쪽에 밭이 많다하여 생긴 이름.
< 뒷두루>
뒷들 후평리라고도 했다. 읍내의 뒤쪽들, 봉의산 뒤의 들.
< 보안(保安)>
보안역(保安驛)이 있던 마을을 보안이라 했다. 보안역, 보안말이 변하여 부안마을이 되었다. 후에 부안초등학교를 설립할 때 한자를 잘못 표기하여 부안(扶安)이 되었다. 지금은 보안보다는 부안이라는 이름이 일반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 섬베미>
예전에 한 섬지기 논인데 흉년이 들어서 이 논을 콩죽 한 그릇과 바꾸었다고 한다.
< 얼개골>
얼개빗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얼개골이라고 불렀다.
< 위사리>
우사리(隅沙里). 동전리 서쪽 모퉁이에 있던 마을.
< 후평공단>
후평동에 조성된 공단. 강원도내에서는 원주공단과 함께 처음으로 건설된 공단. 섬유, 기계, 농수산물가공, 주물등 다양한 기업체가 들어섰으나 지금은 불황에서 활기를 되찾고 있다.
< 후평동 1차 현대아파트>
후평1동 845번지에 위치. 춘천에서는 최초로 대기업 건설업체가 지은 아파트이다.
<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후평1동 257의 4번지에 위치. 후평공단 안에 자리잡았고 춘천이 공업도시로 발전하는데 중요한 역할를 담당하고 있다.
< 춘천직업훈련원>
후평1동 290의 1번지에 위치. 기능공 양성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 강원도민일보>
1992년 퇴계동 399번지에서 창간호를 내었다. 1994 년 후평1동으로 이전 하였다.
< 한국전력공사 강원지사>
후평1동 95번지에 위치. 소양댐, 의암댐, 춘천댐에서 생산하는 전력이 공급되는 만큼 한국전력 강원지사의 기능도 중요하다. 일반에서는 그냥 한전이라고 부른다.
21. 후평2동(後坪2洞)
후평2동(後坪2洞)
뒷두루, 뒷들, 후평1동과 지명유래를 같이한다.
< 보안>
후평2동은 보안역과 보안마을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주공아파트2단지, 후평4단지아파트, 한신아파트 등 도시가 발전했다. 보안마을의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다.
< 부안막국수>
부안막국수집이 춘천의 먹거리로 유명하다. 보안이 부안으로, 상호로 정한 실례이다.
< 후평로터리>
후평동, 소양강방면, 동면방면, 만천리방면, 8호광장방면, 4단지 주공아파트 방면으로 도로망이 뻗쳐있다.
< 후평동 고분지(古墳址)>
1973년 4월 삼국시대 받침이 있는 항아리 1 점, 손잡이가 달린 토기2점, 뚜껑이 있는 토기 2점, 목이 짧은 항아리 1 점, 흙으로 만든 주발 5점, 뚜껑이 있는 술잔 13점, 술잔 뚜껑 4점이 출토되었다.
22. 후평3동(後坪3洞)
내용없음
23. 효자1동(孝子1洞)
효자1동(孝子1洞)
효자정문이 있어 효자문거리라고 불렀다.
< 과수원골>
과수원이 있는 골짜기.
< 대추나무골>
대추나무가 있는 골짜기.
< 도와리>
옛날에 도자기를 굽던 마을.
< 도화리(桃花里)>
복숭아꽃이 피는 마을.
< 두하리(枓下里)>
효자동에 있는 마을. 지형이 또아리처럼 생겼다. 도와리, 도화리, 두아리 등의 이름이 변하면서 두하리가 되었다.
< 둘째서낭>
효자동에 있던 둘째 서낭.
< 말무덤>
효자동에 있던 큰 무덤.
< 매봉>
매로 사냥하던곳.
< 면산(面山)>
면 소유의 산.
< 무릇골>
두짓골. 효자동에 있는 마을.
< 미역골>
효자동에 있는 마을.
< 바우물>
바위틈에서 물이 나오던 우물.
< 뱀굴>
불당굴 효자동에 있는 골짜기.
< 새마을>
효자문거리 위에 새로 생긴 마을.
< 왕덕개산>
효자동에 있는 산.
< 작은 미역골>
미역골의 작은 마을을 작은 미역골이라 불렀다.
< 진등>
두하리에 있던 등성이.
< 진서리>
산의 능선을 따라 20리나 길게 뻗은 길.
< 첫서낭>
첫번째 서낭. 효자동에는 불당이 있었고 서낭이 있었으므로 민간신앙처가 되었다.
< 콩죽배미>
효자2동에 있는 논.
< 큰 미역골>
미역골의 큰 마을.
< 투구봉>
공동묘지의 들머리에 있는 봉우리.
< 한사골>
한가한 선비가 살았던 골짜기.
< 춘천경찰서>
효자1동 590-1번지에 위치. 중앙로1가 지금의 한국은 행춘천지점 자리에 있었으나 효자동로터리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 춘천우체국>
효자1동 676번지에 위치. 소낙동 전신전화국 자리에 있었으나 새건물을 지어 지금의 터로 옮겼다.
< 한국토지개발공사 강원지사>
효자1동 685번지에 위치. 택지개발공사가 활발해져 한국토지개발공사 강원지사가 설치되었다.
< 남부종합시장>
효자1동 684번지에 위치. 효자1동 로터리에 자리잡고 있어 춘천남부의 중요한 시장역할을 한다.
24. 효자2동(孝子2洞)
효자2동(孝子2洞)
강원대학교 효자2동 192의 1번지에 위치. 춘천농과대학으로 시작, 춘천대학과 통합하면서 강원대학이 되고, 이어서 강원대학교로 발전했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대학교이다. 효자2동 일대의 넓은 지역을 차지, 효자골 학문의 전당이 되었다.
< 춘천지방법원>
효자2동 365번지에 위치. 강원도 사법부의 1번지 총본산이 되고 있다.
< 춘천지방검찰청>
효자2동 365번지에 위치. 강원도 검찰의 본산이 되고있다.
< 춘천지방병무청>
효자2동 349의2번지에 위치. 강원도 병무행정을 총괄한다.
< 조달청 강원지청>
효자2동 303의 14번지에 위치. 정부의 물자를 조달하는 강원도 본산.
25. 효자3동(孝子3洞)
효자3동(孝子三洞)
1974년 1월1일 시조례 621에 의해 분리되어 효자3동이 되었다. 효자3동이라고 행정명칭이 생긴것은 20년째가 된다.
<8호광장>
춘천에서 여덟 번째로 조성된 광장이라는 유권해석
< 강원도 재향군인회>
효자3동 756의 6번지에 위치. 효자3동에서 후평동으로 넘어가는 도로의 고개길 옆이다. 강원도내 재향군인회의 총본산이다.
< 춘천보훈지청>
효자3동 750번지에 위치. 춘천지역 보훈가족을 돌보는 본산이다.
< 춘천지방노동사무소>
효자3동 757번지에 위치. 노동문제를 담당한다.
< 한국노총 강원도지역본부>
효자3동 640의 8번지에 위치. 강원도 노동조합 총본산이 되고 있다.
26. 석사동(碩士洞)
석사동
석사동은 원래 돌과 모래가 많은 곳이라 하여 石沙洞이었던 것을 1939년 춘천사범학교가 들어서면서 미래의 스승을 배출하는 것이라고 碩士洞으로 바뀐것이다.
< 강원도여성회관>
강원도여성회관은 처음에 시내 죽림동 지역에 건립 되었으나 사옥이 협소해 새로 지어 옮겼다. 여성회관은 강원도 여성들의 요람이 되고 있다.
< 말무덤>
난리때 죽은 말을 묻었다는 무덤. 중도와 우두동의 말무덤과 같은 고총.
< 배다리보>
벌말앞에 있던 보.
< 사기장골>
사기를 구웠다는 골짜기.
< 상보>
석사동 위쪽에 있는 보.
< 석사교>
석사동에 있는 다리.
< 쌍다리>
괸돌 동쪽에 있는 쌍으로 된 다리.
< 스무숲>
스무나무 숲이 있었다.
< 승지골>
석사동에 있는 마을.
< 앞개울>
벌말 앞에 있는 개울.
< 애막골(艾幕洞)>
애막골이 무인지경이었을때 죽은 애기들을 갖다 묻어 애총(兒塚)이 즐비해서 생긴이름이라는 설과 무덤옆에 여막을 지어 시묘살이한 효자들이 많았던데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가난해서 번듯한 집을 지을수도 없고 도심에서 셋방살이 하기도 어려운 소외계층 사람들이 유막을 얶어 쑥부쟁이로 지붕을 덮고 살았기에 애막골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어 보임.
< 약물골>
약물이 나는 골짜기.
< 양지말>
양지편에 있는 마을.
< 외솔배기>
큰 소나무가 한 그루가 서있던 마을.
< 응달말>
응달쪽에 있던 마을.
< 중보>
가운데 있는 보.
< 쥐역두루>
석사동에 있던 들.
< 지석리>
석사동에 있는 마을.
< 진선이장둥이>
상등성이가 길다고 진선이 장둥이라고 불렀다.
< 큰골>
골이 큰 골.
< 태백교(太百橋)>
동내면 사암리의 태백동(太百洞)에서 나오는 개울에 놓인 다리.
< 후하교(後下橋)>
쌍다리를 후하교라 부른다.
< 춘천교육대학>
석사동 339번지에 위치. 처음에 춘천사범학교에서 춘천교육대학교로 발전했다. 강원도 초등교사 배출의 산실이며 총본산이기도 하다.
< 선사유적(先史遺蹟)>
1973년 6월, 갈아서 만든 돌도끼 1점, 돌 화살촉 1점, 반달형 돌칼 1점이 출토되었다.
27. 퇴계동(退溪洞)
퇴계동(退溪洞)
공동묘지골 공동묘지가 있는 골짜기.
< 궁꼴>
권꼴이라고도 부른다.
< 남춘천역>
퇴계동에 있는 보.
< 무릉계(武陵溪)>
무리개, 무린개, 무릉계가 퇴계동으로 변했다.
< 백석동(百石洞)>
백석동이 한두루골로 변했다.
< 뱀바우>
국사봉밑에 있던 바우.
< 범바우골>
범바우가 있는 골짜기.
< 보아귀>
문앞보의 어귀가 되는 개.
< 삼포짓보>
삼(麻)푸지(푸새)하는 곳의 보.
< 성미>
안화산에 있는 마을.
< 소금텃골>
성미에 있는 골짜기.
< 앵두나무배미>
앵두나무가 서 있던 논.
< 연못골짜기>
퇴계동에 있는 연못의 보통명사를 그대로 사용해서 연못골짜기가 되었다.
< 우뭇들>
퇴계동에 있는 들. 지형이 우묵해서 우뭇들.
< 우미나리>
안화산에 있는 골짜기.
< 이삭골>
뱀잠등이 밑에 있는 골짜기.
< 장사나무>
퇴계동에 서 있는 큰 느릅나무.
< 제당물>
퇴계동 산제당이 있었고 산제당에 샘물이 있었다. 이 샘물을 제당물이라고 불렀다.
< 종방들>
종방(鍾 )이 있는 들.
< 중두루>
퇴계동에 있는 들.
< 평장들>
중두루 윗쪽에 있는 들.
< 한두루골>
큰 골짜기가 있는 들.
< 황새배미>
황새처럼 생긴 논.
< 퇴계농공단지>
춘천시 외곽도로와 경춘4차선 도로가 만나는 지역에 퇴계농공단지를 개발, 후평공단에 대처할만한 농공단지를 조성했다.
< 국사봉(國士峰)>
퇴계동 산43번지에 위치. 고종이 승하했을때 춘천의 선비들이 태극기를 모셔놓고 고종의 망제를 지냈다. 이후부터 국사봉이 널리 알려졌으며 1993년 12월 7일 국사봉망제탑 제막식이 있었다.
28. 온의동(溫衣洞)
온의동(溫衣洞)
강원종합운동장 전국체전과 강원도민체전을 개최하면서 도내에서는 가장 좋은 체육시설이 완성되었다.
< 강원체육고등학교>
강원종합운동장 뒤편에 강원체육고등학교가 세워져 강원체육 선수육성의 요람이 되고 있다.
< 갈매울>
갈마곡이라고도 부른다.
< 갯골>
온의동 서쪽에 있는 산골짜기.
< 궁갯들>
온의동 마을 앞에 있는 들.
< 궤바우>
궤처럼 생긴 바위.
< 고속버스터미널>
전국에서 고속도로가 통과하지 않는 도청소재지는 춘천뿐이다. 중앙고속도로가 건설중에 있으므로 불원간 춘천에도 고속도로가 관통하게 된다. 임시 고속버스터미널이 온의동에 마련 되어 대구, 부산, 광주등로 운행한다. 온의동 임시 고속버스터미널은 춘천의 고속버스운행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강원도공예관>
온의동의 강원도공예관은 강원도의 관광공예품의 전시장이고 강원관광상품 개발의 전당이다. 강원종합운동장 입구에 자리잡고 있어서 강원관광공예품을 홍보하는데 안성맞춤이다.
< 농바우>
농처럼 생긴 바위.
< 마내>
온의동 서쪽에 있는 산골짜기.
< 모래바우>
온의동 서쪽 산에 있는 바우.
< 백바우>
온의동에 있는 바위.
< 선들고개>
삼천리(三川里)로 가는 고개.
< 실라바우>
온의동에 있는 바우.
< 안반지구렁>
처녀가 아이를 낳아 돌로 눌러 죽인곳이라고 한다.
< 온의동(溫衣洞) 무문토기(無紋土器)>
공지천 다리를 지나 경춘가도를 따라 의암댐쪽으로 약 500m 내려가면 왼쪽으로 과수원이 있는 야산(野山)에 있는데 돌도끼, 반월형 돌칼, 원반형 돌그릇, 화살촉, 무문토기조각 등의 선사시대 유물이 출토 되었다.
< 은행나무골>
은행나무가 있던 골짜기.
< 음짓말>
온의동 응달쪽에 있는 마을.
< 장조개>
장고개에 있는 마을.
< 쥐바우>
쥐처럼 생긴 바우.
< 큰골>
큰 골짜기 밑의 들.
29. 삼천동(三川洞)
삼천동(三川洞)
강창골 강창리. 마삼내 북쪽 소양강가에 있는 마을.
< 공지교(孔之橋)>
곰짓내에 놓인 다리.
< 구마니>
마삼내 동북쪽에 있는 마을.
< 돌고개>
석현(石峴). 삼천리의 서북쪽에 있는 고개.
< 마삼내(麻三內)>
시내에서 송암리로 가는 언덕의 첫마을.
< 선들>
칠전리로 넘어가는데 있는 들.
< 장고개>
삼천동과 돌고개 중간에 있는 고개.
< 삼천리모텔>
삼천동을 상징하는 호텔.
< 춘천문화방송>
춘천문화방송(MBC)는 삼천동 238의 3번에 위치. 경관이 뛰어난 방송건물이라는 칭송을 받는다.
< 춘천어린이회관>
춘천어린이회관은 전국에 이름이 나있는 건물이다. 나비가 날아갈듯한 모양으로 건축되었고 야외공연장이 설치되어 있다. 매년 어린이와 청소년 관련 행사가 열린다.
< 자유총연맹 강원도지회>
삼천동 239의 1번지에 위치. 반공연맹에서 변신, 자유총연맹으로 다시 탄생했다. 전적기념관을 운영하고 있어 6·25 한국전쟁때의 격전을 벌였던 실상을 보여준다. 경비행기와 탱크 각종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30. 칠송동(漆松洞)
칠전리
1973년 춘천시에 편입되었다.
< 갓박골>
칠전리에 있는 골짜기. 광성군묘역(光城君墓域) 고려 때 인물 광성군 김정(金鼎)의 무덤이 있다.
< 마냇고개>
온의동의 마내로 가는 고개.
< 사실기고개>
팔미리(八味里)와의 중간에 있는 고개.
< 시창내>
웃창내와 아래창내 중간에 있는 마을.
< 서낭고개>
정족리로 가는 고개.
< 아르쟁이>
향노산에 있는 골짜기.
< 자라우고개>
송람리의 자라우로 가는 고개.
< 진고개>
실레마을(증리)로 가는 고개.
< 풀뭇골>
쇠를 녹이는데 쓰는 풀무가 있던 골짜기.
< 창내>
창내(倉內). 조선시대 세금을 거두어들여 보관했던 곳.
< 회골>
회(灰)골. 횟돌이 나는 골짜기.
송암리(松岩里)
1973년 춘천시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 거칠>
소리개, (송현) 앞에 있는 들.
< 골통바우>
송암리 산 봉우리에 있는 바우.
< 도둑고개>
예전에 도둑이 자주 나타난 고개.
< 마삼내고개>
삼천리의 마삼내로 가는 고개.
< 물방우둔지>
예전에 물방아가 있던 둔지.
< 샘골>
소리개 북쪽에 있는 마을.
< 선들고개>
자라우(별동)에서 춘천시내로 가는 고개.
< 소리개>
송현(松峴). 송암리에서 가장 큰 마을
< 여나드리>
신연강가에 있는 마루터.
< 용늪>
용이 올라갔다는 늪.
< 자라우>
샘골 동쪽에 있는 마을.
< 전나무골>
전나무가 많은 골짜기.
< 창내고개>
칠전리의 창내로 넘어가는 고개.
< 풋나무골>
소리개 근처에 있는 골짜기.
< 화랑개>
소리개에 있는 내.
< 김유정문인비>
의암호를 내려다 보면서 김유정문인비가 서있다. 김유정문학을 찬양하는 춘천의 문화인들이 김유정문인비를 세운것은 1968년 5월 29일이었다. 소설가의 문인비가 세워진 것은 전국에서 처음이었다. 비는 그가 즐겨 사용했다는 펜의 모형으로 만들고 비문은 「산골나그네」 첫 구절에서 뽑아서 새겼다.
< 송암리낚시터>
송암리 주민들이 만든 공동 낚시터.
< 강원도사격장>
사격장이 마련되어있어 도민체전과 전국체전때 활용된다.
31. 사우동(司牛洞)
우두동(牛頭洞)
소머리, 쇠머리, 우두리라 했다.
< 가라목(加羅頂)>
우두동에 있는 마을.
< 가마소>
소양강에 있는 소.
< 내라리여울>
우두동에 있는 여울.
< 달마지봉>
우두산 북쪽에 있는 산봉우리.
< 물고개>
소양강의 물을 우두평야로 끌어들이는 고개.
< 배뛰리기>
소양강가에 있다. 소금배가 닿던 곳.
< 새서낭고개>
서낭이 있었던 길.
< 새청벌>
소양강 쪽의 벌판을 통틀어서 새청벌이라 했다.
< 소슬뫼>
우두산 꼭대기에 있는 옛무덤.
< 아랫가라목>
가라목 아래 쪽에 있는 마을.
< 언덕소>
소양강에 있는 소.
< 여우고개>
우두산 북쪽에 있는 고개.
< 우두산(牛頭山)>
용화산맥이 흘러와 우두평야 끝에서 멈추었다. 동북쪽에서 소양강이 흘러내리고 서북쪽에서 모진강이 흘러내린다. 두 강물의 퇴적토가 더 넓은 평야를 만들어 우두평야가 되었다. 우두평야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멈추게 한 산이 우두산, 높이133m. 산정상에 충렬탑이 서있다.
< 우두벌>
우두동 앞에 있는 큰 들.
< 장수배기>
장승이 있던 들.
< 절구렁이>
절귀미, 절터갯바닥. 옛날 우두사가 있었던 골짜기.
< 우두사>
춘천시 우두동 우두산에 있었던 우두사(牛頭寺)는 신라말기에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다.
< 조양루(朝陽樓)>
인조 24년(1646년) 춘천도호부사 엄황(嚴滉)이 세운 문소각의 문루였다. 지금의 도청앞에 있던것을 1938년 우두산으로 옮겨 이름도 조양루로 고쳤다. 6·25 한국전쟁때 일부 파손된 것을 1955년 중수했다. 1969년 기둥을 고치고 단청도 다시 했다.
사농동(司農洞)
강원도교육청 강원도 교육의 총 본산.
< 가래묵>
추항이라고도 부른다.. 자양강(북한강)가에 있는 마을.
< 개미뛰리기>
자양강가에 있는 들.
< 관돌마을>
관돌, 지석묘가 있는 마을. 지석리(之石里)라고도 부른다.
< 마산리>
마산리(馬山里). 마적리와 옥산포의 마자와 산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 무른데미>
들 가운데 있는 돌무더기.
< 상추항>
상추항(上湫項). 웃가래목. 가래나무가 있는 마을.
< 싸근다리>
자양강가에 있는 들. 우두벌의 한부분.
< 오미배터>
사농동에서 서면 신매리의 오미로 통하는 나루터.
< 옥산포>
옥산포(玉山浦). 푸른데미. 푸른더미라는 돌더미가 있었다.
< 우두벌>
우둣벌. 우두평(牛頭坪). 우두평야. 우두평야에 있는 마을.
< 웃가라목>
웃가라목 상추항(上湫項). 가래목 윗쪽에 있는 마을.
< 육림공원>
각종 동물과 식물을 갖춘 공원. 어린이들의 각종 놀이터도 갖추었다. 춘천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이용하는 유원지.
< 하추항(下湫項).>
가래목 아래쪽에 있는 마을.
32. 신동(新洞)
신동(新洞)
< 구리개>
동포(銅浦). 구리성분이 흐르는 냇물이 흐르는 마을이라서 구리개라는 이름이 생겼고 한자로 동포(銅浦)라 표했다.
< 방고개>
신동리에 있는 고개.
< 산지골>
구리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수리봉>
산이 독수리처럼 생겼다. 독수리의 이름을 원용해서 수리봉이라 했다.
< 심금솔(숲)>
구리개 앞에 있는 숲.
< 여우고개>
우두동으로 가는 고개.
< 올미>
옷미, 올뫼, 칠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리개 동남쪽에 있는 마을.
< 칼사봉>
칼날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 산.
< 한개울>
한계(寒溪), 대포곡(大浦谷), 구리개 북쪽에 있는 마을.
< 황새봉>
황새처럼 생긴 산이 있다.
첫댓글 요약 정리를 해주셔서 보기가 수월합니다.
고맙습니다~^~